산행 후기

대관령

2005. 12. 1. 14:07

소슬바람을 앞세워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열기와 습기가 밴 여름의 바람과 달리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소매깃을 파고듭니다.
이 바람은 곧 푸르렀던 여름을 울긋불긋한 가을로 바꿔놓을 것입니다.
코스모스 한들거리던 자리에, 꽃이 지고 나면 어느새 억새가 하얗게 피어나겠지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지루했던
여름날의 기억도 지워버릴 겸, 남보다 일찍 가을의 향기를 느끼고 싶어 산을 찾습니다.
주말마다 나서는 산행이지만 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월출산 산행을 포기하고
선자령을 찾은 건 지난번 지리산 산행기의 여운에서 못 벗어남이 아닐런지요.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던 선배님의 안내에 따라 향하는 삼양목장 가는 길...
올 여름 수해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길옆 냇가에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습니다.
목장이 가까워질수록 단풍의 무더기들이 점점 커지고... 또 붉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워메~  산불 나부렀네, 산불~!"
그래~ 거기엔 온통 타오르는 산만이 존재의 의미를 부여...약간의 과장일까요?.
모든 이들의 눈길이 시내 방향 따라 오른쪽, 왼쪽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군요


황량하게 비인 축사를 지나자 차는 능선의 등허리가 힘들다고 용트림을 합니다.
언덕에 널린 저 인파는 가을동화의 은서나무 아래서 기념사진이라도 찍으려나봅니다.


줄줄이 늘어선 짚들의 숲을 해치고 전망대에 올라섭니다.
눈앞에 드넓은 삼양목장이 펼쳐집니다. 600여 만평, 서울 여의도의 7.5배...
이 엄청난 삼양목장은 하늘을 가리던 참나무 숲이 한 평 두 평 초지로 바뀌는데 10여 년,
그러고 우사를 짓고 목부들이 머물 아파트가 지어질 때까지 몇 년,  85년에 완성되었다나요?


기념사진 한컷, 선배님의 인도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한낮의 햇살도 매섭지 않은 것이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는 모양입니다.
가파르지 않은 능선을 따라 올라서니 야트막한 산자락에 보라색 벌개미취가 한창이군요.


오른쪽에 황병산 능선을 이고,
왼쪽으로 눈돌리면 광활한 강릉바다가 가물거리는 능선 백두대간 제25구간이랍니다.
그 앞에 수줍은 듯 웅크리고 있는 강릉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대관령 준령이 강릉 쪽으로 뻗어 내리는 힘찬 기세와 옹기종기 모인 강릉시가지의 풍경...
"동해에 오징어 뒤 다리가 보인다..."  아~ 갑자기 오징어 물회가 먹고 싶어집니다.


1시간쯤 걸었을까? 야트막한 봉우리에 선 이정표... 높이가 1,157m인 선자령입니다.
이곳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선자령이라 불린다나?
대관령에 새로운 길이 나기 전까지 많은 길손들이 이곳으로 넘나들었다고 하는군요.
선자령 주위 드문드문 억새가 가을이 왔다며 우릴 반깁니다.


이름 모를 봉우리에서 패러글라이딩 구경하는걸 끝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길 양편에 늘어선 나무들... 서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비바람에 낮게, 그리고 등져있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타협할 수밖에 없는 인생사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만 같군요.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옵니다.
굳이 대간 종주처럼 능선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 마음 편하게 걷는 하산길이 편합니다.


이윽고 도착한 대관령 정상은 을씨년스럽기 짝이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이 있었는데 이젠 비인 휴게소 건물만...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 내려서던 백두대간 길, 그것도 이젠 다 추억 일뿐입니다.


아흔 아홉 굽이 대관령,
비록 보고싶었던 순백 설원과 소나무 가지가 휘어지게 수북히 쌓인 눈은 없었지만,
초록의 능선과 파란 하늘이 그려내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위안을 삼으며 산행을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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