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산(道明山, 643m)


산행일 : ‘11. 8. 15(월)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산행코스 : 낙영산입구→공림사→낙영산→미륵산성→도명산→마애삼존불상→학소대→와룡암→화양2교(탐방지원센터→화양1교 야영장(산행시간 : 4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도명산은 총 6㎞에 달하는 화양구곡을 끼고 있어 여름철 계곡 산행지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우암 송시열이 중국의 우이산(武夷山) 구곡(九曲)에 빗대어 골짜기마다 일일이 이름을 붙일 정도로 빼어난 계곡미를 자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낙영산과 도명산 일대는 기암괴석(奇巖怪石)과 아름다운 노송(老松)들로 가득 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이 절경(絶景)이다.

 


산행들머리는 공림사 주차장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I.C에서 빠져나와 19번국도(國道/ 보은방향)와 37번 국도(보은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청천면 상신리 ‘사담 팜스테이 마을’에서 공림사 안내판을 보고 개울을 따라 들어가면 공림사 주차장이 나타난다.(참고로 중부고속도로 증평 I.C에서 들어오는 방법도 있는데, 안전산악회에서는 증평에서 들어오는 코스를 이용했다.)

 

* 사담마을 조금 못미처 도로변에 자그마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물레방아와 수많은 장승들이 늘어서있는 깜찍하고 예쁜 공원(公園)이다. 조성공사(造成工事)가 마무리되지 않았는지 물레방아는 마지막 마무리공사가 한창이다. 참고로 공림사 주차장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이곳 쉼터의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공림사로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공림사 주차장에는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임시로 사용되고 있는 모양으로 주차장의 노면(路面)도 포장이 되어있지 않다. 이번 장마에 물길이 깊게 파인 채로 방치되고 있어서, 작은 승용차는 주차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시멘트 포장길을 조금만 오르면 공림사이다. 절 뒤로 낙영산의 바위벼랑이 하안 배를 드러내 놓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 산행은 저 슬랩(Slab)을 밟고 오르게 될 것이다.

 

 

공림사에 들어서려면 먼저 우람하게 자란 느티나무들의 아래를 지나가야만 한다. 거대한 느티나무들은 녹음(綠陰)으로 짙게 물든 잎들을 무성하게 매달고 있다. 오뉴월 염천(炎天)의 더위에 찌든 중생(衆生)들을 끌어안기에 충분할 정도로... 절의 오른편에는 수령이 천년(千年) 가까이 되는 늙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천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이 나무 아래에서 쉬어 갔으며, 그들은 또 얼마나 많은 고뇌(苦惱)들을 내려놓고 갔을까?

* 공림사(空林寺), 신라 경문왕 때 자정선사(慈淨禪師)가 창건한 사찰(寺刹)로서 법주사의 말사이다. 자정선사의 법력을 백성들이 칭송하자  경문왕이 그 인물됨을 알고 국사의 칭호와 공림사라는 절 이름을 지어 액자를 하사(賜額寺刹)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 건물의 대부분이 소실(燒失)되었고, 현존하는 건물들은 1960년대 이후에 재건한 것들이다. 국가지정 문화재(國家指定 文化財)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산행은 공림사의 삼성각(三聖閣)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따라서 공림사 경내(境內)를 둘러보는 것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 거기다 문화재라도 몇 점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선현(先賢)들의 채취까지도 덤으로 얻어갈 수 있었으련만, 아쉽게도 이곳 공림사에는 국보(國寶)급 문화재(文化財)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당연히 문화재관람료도 받지 않는다. 삼성각 뒤로 난 오솔길로 접어든다. 공림사 경내를 통과하면서 혹시라도 스님들이 뭐라고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솔길이 로프로 막혀있다. 등산객들이 사찰(寺刹) 경내를 통과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스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로프를 넘어 산행을 계속한다. 그 누구라도 사찰입구로 되돌아 나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산(山)자락으로 접어들면 잎이 무성한 활엽수들이 먼저 등산객들을 맞는다. 바닥에 널린 돌맹이들 때문에 걷기가 다소 불편하지만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하기 때문에 참지 못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만나게 되는 바위지대, 경사가 점점 가팔라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허리를 곧게 펴고는 못 걸을 정도로까지 변해버린다. 장마철의 찐득한 습기 때문일까? 흐르는 땀은 방울의 수준을 넘어 웬만한 빗줄기로 변해버린다. ‘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안개도 아닌 것이...’ 이를 일컬어 안개비라고 한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는개>... 산행을 시작하면서 우리를 맞는 것은 바로 <는개>였었다,

 

 

 

가팔라지던 길은 끝내 바위벼랑 아래에서 발길을 멈추게 만들고야만다. 왼편의 바위벼랑에 로프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로프를 이용해 바위 위로 오르면 낙영산이 자랑하는 슬랩(Slab)이다. 경사가 조금 완만한 초반(初盤)의 슬랩은 맛보기 수준, 곧이어 나타나는 두 번째 슬랩은 경사가 가팔라서 릿지(Ridge)로 오르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회하면 슬랩의 위로 쉽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슬랩의 곳곳에  생긴 크랙(crack)에 꽂혀있는 소나무들이 경이롭다. 저렇게 척박(瘠薄)한 바위틈에서도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에 찬사를 보내본다.

 

 

 

 

 

 

슬랩을 지나면 또다시 등산로는 바윗길과 흙길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그러다가 완벽한 흙길로 변하면서 헬기장이 있는 685봉에 올라서게 된다. 한때는 낙영산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그러나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 표기된 현재의 낙영산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한참을 더 가야만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무영봉을 지나 가령산에 닿게 된다.

 

 

685봉에서 낙영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낙영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곳곳에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널려있는데, 그 사이사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잘 그린 한 폭의 동양화(東洋畵)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공림사 방향은 바위벼랑이기 때문에 조망이 뛰어나련만 구름에 뒤덮인 산하(山河)는 그 자태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천황봉에서 상학봉까지 속리산 줄기가 하늘금을 그리고 있을텐데...

 

 

 

바위를 잡고 오르거나 우회해가며 두 개의 암봉을 지나면 드디어 낙영산 정상이다. 낙영산 정상은 산의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정상에 세워진 말뚝모양으로 생긴 정상표지석만 아니라면 그냥 지나쳐버릴 정도로 흙으로 이루어진 밋밋한 분지(盆地)이기 때문이다. 정상은 사방이 나무들로 막혀있어서 일절 시야(視野)가 열리지 않는다. 증명사진을 찍는 외에는 오래 머물 이유가 없기 때문에 곧바로 절고개로 발걸음을 옮긴다. 산꾼들의 생각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인지 낙영산 정상은 텅 비어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낙영산 정상에서 경사가 심하지 않은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면 능선 안부인 절고개에 닿게 된다. 절고개는 낙영산과 조봉산쪽 쌀개봉 사이의 고개로 돌로 쌓은 산성(山城)터가 남아있다. 일명 도명산성이라고 불리는 미륵산성이다. 이 절고개는 사거리로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공림사가 나오고, 곧바로 직진하면 쌀개봉을 거쳐 조봉산으로 가게 된다. 내가 가려고하는 도명산은 이곳에서 오른편 계곡으로 내려서야 한다.

* 괴산 미륵산성(槐山 彌勒山城),  도명산(道明山)에 있는 포곡형(包谷形 :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름) 석축산성으로 일명 도명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의 둘레가 5.1km에 이르며, 인공으로 석축한 부분만도 3km가 넘는 대규모의 산성으로서, 성안에는 풍부한 수원과 충분한 생활공간이 있어서 외적(外敵)이 침입하였을 때 주민들이 들어가 농성하기 알맞은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다. 출토되는 유물이나 축성기법(築城技法)으로 보아 이 산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통일신라 말기인 9∼10세기경으로 추정되며, 사적(史蹟) 제40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고개에서 도명산으로 가려면 계곡을 따라 꽤나 길게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가야만  한다. 길은 전형적인 흙길, 고운 찰흙으로 이루어진 길은 걷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행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치일 새라, 나뭇가지로 떠받치고 있는 커다란 바위 곁을 지나가면서 웃다보면 어느덧 이름 모를 고갯마루에 도착하게 된다. 왼편에 거대한 바위절벽이 보인다. 도명산방향이니 저 벼랑만 올라서면 도명산 정상일 것이다. ‘위험하니 절대 올라가지 마세요!’ 여성 산행대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집사람의 매서운 눈초리를 무시하고 바위에 들어붙을 수는 없다. 아쉬운 입맛만 다시면서 우회로(迂廻路)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명산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우회로(迂廻路)를 따라 얼마간 걷다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학소대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이다. 이곳에서부터 정상까지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경사가 심하다 싶으면 통나무계단이 놓여있고, 바윗길이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철제로 안전시설(安全施設)을 만들어 놓았다.

 

맞은편 무영봉과 가령산 산자락들은 치마바위를 연상케 하는 바위들을 가득 두르고 있다. 초록의 바다위에 떠있는 하얀 바위들이라니...

 

 

삼거리에서 만난 어느 산악동호회, 다들 젊고 여자들은 다들 예쁘고 날씬하다. 그러나 그녀들의 입담은 40~50대 아줌마들 수준, 그것도 다라질 대로 달아빠진 아줌마들보다 더한 음담패설(淫談悖說)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고 있다. 그것도 큰 소리로... 더 이상 듣기가 민망한지 집사람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걸음을 재촉해서일까? 깜짝할 사이에 도명산 정상에 도착해 있다.

 

 

 

도명산 정상은 순수한 바위이다. ‘바위 위에 바위’... 광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널따란 암반(巖盤) 위에 집채(집의 한 덩이)만한 바위 3개가 놓여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정상표지석이 보인다. 올라오는 길에 추월했던 동호회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우선 정상표지석 앞에서 증명사진부터 찍고 본다. 그들이 도착하면 사진촬영이 만만치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산악회 선두대장이 권하는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 두잔 마시다보니 어느새 얼큰하다. 술기운에 올라본 정상의 바위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題)이다. 큰소리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외쳐보고 싶지만 행여나 도명산의 도(道)라도 깨뜨릴까 두려워 참는다.

 

 

 

 

정상의 주변은 큰 바위들과 멋지게 자란 소나무가 잘 어우러지고 있다. 특히 운치를 더하는 건 용의 몸통처럼 힘찬 굴곡을 가진 소나무들이다. 기암과 노송이 어우러지고, 그 너머에 펼쳐지고 있는 가령산의 암릉까지 더해본다. 그림에는 문외한인 내 눈에도 한 폭의 산수화가 부담 없이 그려지고 있다. 한 번에 휙 둘러보기 아까울 정도로 시원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정상에서 하산은 학소대 방향으로 내려선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만났던 삼거리까지 되돌아가, 아까 낙영산에서 올라왔던 길을 버리고 학소대 방향으로 직진하면 거대한 바위들이 길을 막고 서 있다. 깎아지른 듯한 수직의 암벽에 세 개의 불상(佛像)이 새겨져 있다. 고려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다.

* 도명산 마애삼존불상(磨崖三尊佛像), ‘ㄱ’자로 꺾인 암벽에 선각(線刻)방식으로 새겨진 3분의 부처님이다. 고려 초기에 조성(造成)된 것으로 추정되며 제일 큰 것은 그 길이가 무려 14m나 될 정도로 거대하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애불(磨崖佛)을 지나면 가파른 바윗길의 연속이다. 철다리를 내려서기도 하고 밧줄을 잡아야할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위험할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짧지 않은 거리를 내려오면 화양계곡이다. 우거진 숲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이내 학소대교가 나오고, 대교에서 바라보이는 우측의 벼랑이 학소대이다.

 

 

 

 

화양대교에서 이어지는 길은 수준급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의 화양계곡을 왼편에 끼고 이어지는 도로는 화양3교를 건너면서 화양계곡을 오른편에 놓여있다. 비포장으로 자연미를 잃지 않고 있는 도로는 자동차 두 대가 비켜가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넓지만 차량통행을 제한하고 있어 한적하기 이를데가 없다.

 

화양구곡(華陽九曲) 중 제8곡인 학소대

 

큰 바위가 물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능히 구름을 찌를 듯하다는 제6곡 '능운대'

 

 

제5곡인 '첨성대'는 경주의 천체관측소와 같은 이름이다. 경주의 첨성대가 인위적인 건축물이라면 이곳의 첨성대는 자연의 작품이라는 것이 다를 뿐 역할은 똑같다. 화양3교 우측 등산로에서 마주 보이는 이 바위덩어리에는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단다.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는 뜻의 이 글귀는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의 글씨라고 한다. 바위 맨 위에서 별을 관측했다는데 과연 어느 누가 그리했을까????

 

 

 

화양3교를 건너면 곧이어 송시열이 서재로 썼다는 암서재가 암반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다. 그리고 조금 더 하류에는 화양구곡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금사담이다. 금빛 모래가 물속에 가득 깔려있다는 금사담은 물놀이 나온 인파들로 넘치고 있다. 이 근처에 효종의 부음을 듣고 송시열이 매일 아침 슬피 울었다는 읍궁암이 있으나, 어느 바위인지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암서재와 금사담 근처의 도로변은 음식점들이 꽉 들어차 있고, 술손님들이 떠드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시장을 연상시키고 있다.

* 송시열은 조선의 선조 때부터 숙종조까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인물로, 효종과 함께 북벌계획(北伐計劃)을 추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송시열은 ‘임금은 8년 동안 제대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내용이 담긴 <정유봉사(丁酉封事)>라는 상소(上疏)까지 올릴 정도로 북벌정책(北伐政策)에 강하게 반대를 했던 사람이다. 결국 효종이 실권(實權)을 넘겨주면서까지 북벌에 대한 송시열의 협조를 구했지만, 기득권을 잃을 염려가 있는 일에 송시열이 신명을 바쳤을 리는 없다. 불벌준비가 지지부진하자 효종과 송시열간에 담판이 이루어졌고<기해독대(己亥獨對, 1659>, 독대가 있고 2달 후 효종이 승하하게 되면서 북벌정책도 그 생명을 마감하고 만다. 정유봉사에서 보듯이 ‘사대부(士大夫) 우대’라는 기득권보호에 열을 올리며 효종를 압박하던 그가 과연 효종의 부음을 전해 듣고 바위에 올라 통곡을 했을지는 의심스럽다. 만일 통곡을 했을 정도라면 일종의 쇼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의 제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니, 그렇다면 저 읍궁암은 큰 의미가 없어진 그저 평범한 바위로 전락(轉落)할 수밖에 없다.(이덕일의 ‘조선 왕을 말하다’ 내용을 참조했음)

 

 

 

 

암서재와 금사담의 맞은편에 화양서원(華陽書院)이 있다. 송시열이 죽은 후 문하생인 권상하 등이 세운 것으로 조선 후기 사림(士林)을 이끌던 서원(書院)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화양서원의 위세가 대단해서 인근의 수령들은 화양서원의 요구를 감히 거절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화양서원은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는 아픔을 맛보았고, 최근에야 복원되었다.

* 송시열은 조선(朝鮮)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인물이다. 물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개개인마다 시대마다 다르겠지만, 사약을 받고 죽었음에도 유교의 대가들만이 오른다는 문묘(文廟)에 배향되었고, 전국의 수많은 서원(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그의 죽음은 신념을 위한 순교로 이해되었고, 그의 이념을 계승한 제자들에 의해 조선사회는 움직였다. 그가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역사가 승자가 기록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흠결을 다 감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기득권보호를 위한 당파(黨派)싸움의 한쪽 축(老論)이었고, 모화사상(慕華思想)에 빠진 선비였다. 무이구곡에 비해 화양구곡을 지칭한 것이나, 주자의 운곡정사(雲谷精舍)를 모방해 암서재(岩棲齋)라는 정자를 세운 것만 봐도 능히 그의 사대성(事大性)을 짐작하게 한다. 송시열은 이곳에서 중국(中國) 방식을 따르기 위해 명나라 복장과 평정건(平頂巾)을 사용했다고 한다. 거기다 더해 부인에게도 명(明)나라 여자처럼 쪽을 지게하고, 아이들에게는 머리를 쌍각으로 땋아서 드리우게 하였을 정도이다. 조선을 이끌어가던 최고의 지도자가 이렇게까지 중국을 사모했으니, 일반 사대부(士大夫)들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 결과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를 불러오지는 않았을까?

 

 

화양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길은 우선 널따랗다. 차량(車輛) 두 대가 비켜지나가고도 여유가 남을 정도이다. 널따란 도로의 양(兩)쪽으로는 수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짙은 녹음으로 물든 느티나무 숲은 걷는 이의 기분을 맑게 해준다. 학소대에서 화양교까지 이어지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걷는데도 조금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보면 이곳이 속리산국립공원(國立公園)에 속해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도로 옆에 조금이라도 공터가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멋들어진 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화양계곡은 한마디로 말해 잘 가꾸어진 공원(公園)이다. 구절양장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화양구곡의 숲길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매력과 낭만을 주기에 충분하다.

 

산행날머리는 화양1교 근처에 있는 야영장

화양2교의 탐방안내소에서 화양1교까지의 구간은 거리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인도(人道)가 따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徒步) 내려가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고가는 차량(車輛)들을 피해 걷는 일은 싫지만, 사람이 잘 다니지 않은 덕택에 의외로 횡재(橫財)를 얻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저 아래 개울가에 보이는 것이 복숭아 아니나요?’ 눈이 좋은 집사람 덕분에 우린 꽤나 많은 자연산 복숭아를 수확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제1곡인 '경천벽', 층암절벽이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보통 자동차를 이용해서 화양구곡을 찾을 경우 놓치게 되는 곳인데, 산악회에서 집결지(集結地)를 화양1교로 정해준 덕분에 구경할 수 있었다.

 

 

제비봉(710m)

 

 

산행일 : ‘11. 7. 30(토)

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산행코스 : 얼음골 매표소→동릉→제비봉→안부→서릉(암릉지대)→장화나루(산행시간 : 3시간1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구담봉 쪽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바위능선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편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충주호의 아름다운 절경이 내려다보이고 그 위로 길게 물보라를 남기며 유유히 달려 나가는 유람선이 보인다. 특히 장회나루로 내려오는 바위 능선에서 바라보는 충주호반은 잘 그린 한 폭의 산수화와 같다. 구담봉과 옥순봉, 그리고 금수산과 가은산이 호반(湖畔)과 어우러져 절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 7시40분경에 복정역을 출발한 버스는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공회전으로 도로(道路)에 기름만 깔고 있다. 토막잠을 깨고 나니 광주, 버스는 용인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그것도 국도(國道)로... 용인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로 올라서지만 얼마 안 있어 다시 도로는 주차장(駐車場)으로 변해버린다. 또다시 토막잠에서 깨어나니 이번에는 감곡이란다. 이미 시간은 11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산악회 운영진들끼리 숙의를 하더니 회원들에게 의견을 물어온다. 함백산을 오르는 것은 시간상 도저히 불가능하니, 인근에 있는 산으로 산행지(山行地)를 변경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다들 운영진이 제시한 단양의 제비봉에 박수로 동의(同意), 나는 본의(本意) 아니게 제비봉을 세 번이나 오르게 되었다. 집사람은 두 번째...

 

 

 

산행들머리는 단성면 외중방리에 있는 얼음골 입구

중부내륙고속도로 단양 I.C를 빠져나와 단양군 대강면소재지를 통과한 후, 단성면 북하리에서 36번 국도(國道/ 음성방향)를 따라 충주호반을 달리다보면 왼편에 얼음골입구가 보인다. 얼음골 입구에는 ‘어름골 맛집’이라는 커다란 음식점 간판이 서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 제비봉을 오르는 코스는 얼음골이나 장화나루에서 제비봉으로 곧장 오르는 2개의 단거리 코스와 , 얼음골입구 또는 중방리의 과수원에서 사봉으로 오른 후, 능선을 따라 제비봉으로 넘어오는 1개의 종주코스가 있다. 산악회운영진의 말에 의하면 사봉이 현재 출입제한지역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종주코스의 이용은 불가능(不可能)하단다. 그럼 당연히 장화나루나 얼음골에서 곧장 제비봉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 사봉의 종주코스를 걸어봤던 나는 불만 없이 운영진의 결정에 따른다. 사실 종주코스를 걸어봐야 오랫동안 간직할만한 감동은 발견할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함백산 들꽃들의 향연을 구경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시작하는 산행이, 산악회 운영진들의 탁월한 산행코스 선정으로 다소나마 해소된다. 얼음골 입구를 산행들머리로 삼아야만 가깝게는 옥순봉과 구담봉에서 멀리 가은산과 금수산이 충주호와 어우러지는 절경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성면 외중방리의 얼음골입구에 있는 ‘어름골 맛집’의 뒤편으로 난 길로 접어들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 입구에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얼음골, 제비봉 탐방로’라고 적힌 안내판(案內板)을 세워 놓았다. 조금 더 들어가면 또 하나의 안내판이 보이는데 이번에는 산행지도(山行地圖)가 그려져 있다. 제비봉 정상까지의 거리가 1.8Km란다.

 

 

 

산행을 시작하면 길은 짙은 숲속을 뚫고 이어진다. 오름길의 경사(傾斜) 또한 만만치 않다. 거기다 간혹 나타나는 너덜길, 장마로 인해 잔뜩 물기를 머금은 바위들이 무척 미끄럽다. 여름철 무더위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걸음을, 미끄러운 바위들이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배낭의 어깨끈에서 덜렁거리고 있는 스포츠타월에 배인 땀은 짜내고 또 짜내지만, 금방 또다시 땀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해발 531m 지점에 있는 이정표, 얼음골입구의 공원지킴터에서 제비봉 정상까지의 거리가 바뀌어 있다. 분명히 얼음골입구에 세워진 산행안내도에는 정상까지의 거리가 1.8Km이었는데, 갑자기 2.3Km로 변하면서 0.5Km가 늘어나 버린 것이다.(이정표 : 얼음골입구 1.5Km/ 제비봉 정상 0.8Km)

 

 

 

531고지에서부터 능선은 경사가 완만해진다. 신갈나무와 굴참나무로 가득 찬 숲길은 걷기에 좋다. 그렇게 얼마간 걷다보면 갑자기 암릉이 나타나고 주변의 나무들도 굵은 소나무들로 바뀌어 있다. 등산로 주변의 크고 웅장한 소나무들은, 그 크기부터가 범상치 않은 노송(老松)들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흔적들이 역역하다. 하늘 위로 높게 뻗은 굵은 가지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다.

 

 

 

 

 

 

암릉을 내려서면 또다시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암벽(巖壁), 암벽을 오른편으로 돌면 장화나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다.(이정표 : 제비봉 0,1Km 얼음골지킴터 1.9Km/ 제비봉공원 지킴터 2.4Km).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100m 정도를 오르면 제비봉 정상이다.

 

 

 

제비봉 정상은 굵직한 바위들이 바닥에 깔려있는 10평 정도 되는 분지(盆地), 남쪽 귀퉁이에 정상표지석 대신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설치한 정상표지판이 서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북쪽에서 트인다. 북쪽방향의 절벽 위에 밧줄로 펜스(fence)가 쳐져있다. 밧줄을 넘어서서 바위벼랑 위에 올라서면 충주호의 절경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충주호반은 한없이 평온하고, 멀리 가은산과 금수산이 바라보이고, 왼쪽 발아래에는 옥순봉과 구담봉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다.

 

 

 

 

정상에서 장회나루 방향으로 산을 내려선다. 신갈나무와 굴참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있는 하산길은, 경사(傾斜)는 별로 심하지 않지만 물기를 듬뿍 머금은 진흙길은 많이 미끄럽다. 조심조심 내려서다보면 소나무로 뒤덮인 작은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나무계단을 밟고 봉우리 위로 오르면 오른편으로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서면 넓은 공터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눈을 즐겁게 하는 암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이정표 : 제비봉 1.3km/ 매표소 1.0km).

 

 

 

 

 

 

 

 

내려가는 암릉길은 마치 기기묘묘(奇奇妙妙)한 왜송(倭松)들의 전시장(展示場)과 같다. 척박(瘠薄)한 바위 틈새에서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소나무들은, 오랜 연륜에도 불구하고 굵지도 그렇다고 크지도 않다. 다만 이리 비뚤 저리 비뚤 풍파에 시달린 아픔을 자기 나름대로 독특하게 표현해 내고 있을 뿐이다

 

 

 

 

 

암릉은 날등으로 이어지다가 가파른 절벽에서는 철제(鐵製)계단으로 고도(高度)를 낮추어주고 있다. 철계단은 쇠로 골격을 이룬 계단에 나무판자를 덧대어 놓아 내려서기에 수월하다. 시선을 들면 건너편에 월악산 영봉의 특이한 암봉이 시야에 잡히고, 충주호 건너편의 금수산도 질세라 뾰족하게 정수리를 치켜세우고 있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키 작은 소나무들로 가득하다. 암릉과 어우러진 소나무, 거기에 바위산과 충주호반이 배경을 만들어주는 광경은, 마치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이게 꽃일까? 굴참나무에 붉은 색으로 물든 저 몽우리는 과연 꽃일까?

 

 

 

 

 

 

어느 글에서 이곳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 길'로 알려져 있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 글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벌어진 입을 다물기 힘들 만큼 빼어난 경관인 것만은 사실이다. 수십 곳의 전망대와 철계단, 바위벼랑에 버티고 선 노송의 아름다움에 듬뿍 빠지고, 충주호와 어우러지는 월악산의 비경을 원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산행 날머리는 장화나루

눈의 즐거움에 지루한 줄도 못 느끼고 암릉을 내려서다보면 점점 장회나루의 윤곽이 굵어지고, 호반을 가르는 유람선의 만들어내는 물살이 또렷해진다. 지능선의 끝에서 우측으로 난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산행의 끝 지점인 장회나루 앞 ‘제비봉 탐방지원센터’ 초소에 닿게 된다..

 

 

 

 

백운산(白雲山, 1,087m)

 

 

산행코스 : 원덕동→상리계곡→상재→정상→953봉→임도→약초꾼 길→용산골→차도리 (산행시간 : 6시간)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과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의 경계

산행일 : ‘11. 5. 22(일)

함께한 산악회 : 청지산악회

 

 

특색 : 백운산(白雲山)은 평소에 구름이 많은 산을 지칭하는 것일지니, 어디 구름 많은 산이 전국에 한두 곳이겠는가. 그 중에서도 광양의 백운산(1,217.8m)과 장수·함양의 백운산(1,278.6m), 그리고 포천의 백운산(937m)이 유명하고, 정선 백운산(882.5m)과 밀양 백운산(886m), 의왕 백운산(567m), 그리고 이곳 원주·제천에 있는 백운산이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산이다. 이곳 백운산은 전형적인 흙산(肉山)으로 다른 산들에 비해 특별히 내세울만한 점은 없으나, 다만 찾는 이가 드물기 때문에, 등산로의 훼손이 적어, 호젓하고 쾌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행들머리는 백운면 원덕동마을의 느티나무상회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 I.C를 빠져나온 후, 38번 국도를 따라 영월·태백방면으로 달리다보면 박달재 조금 못미처에서 제천시 백운면 소재지인 평동리에 닿게 된다. 이곳 평동에서 왼편 402번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백운천을 거슬러 8Km 쯤 들어가면 덕동삼거리인 여우네에 닿는다. 여기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달리면 덕동리 버스종점인 원덕동에 이르게 된다.

 

 

 

버스에서 내리면 느티나무상회 앞마당이다. 상호(商號)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상점 옆을 느티나무 한 그루가 듬직하게 지키고 있다. 느티나무의 건너편 코너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산행은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편 길로 접어들면서 시작된다(백운산 정상까지 7.6Km). 왼편으로 들어서면 오두치에서 능선에 올라 오두봉을 거친 후 백운산 정상으로 가게 된다(정상까지 9.9Km). 일행 두 명이 왼편 길로 접어들었으나 곧바로 회귀(回歸)... 입구에서 등산객의 출입을 막고 있단다. 아마 산나물 채취를 못하게 하려는 이곳 주민들인 모양이다.

 

 

원덕동에서 북쪽으로 패어든 계곡이 상리계곡이다. 상리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서면 도로왼편에 멋진 통나무로 지은 멋진 2층집이 보인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옛스런 종루(鐘樓)까지 갖춘 교회이다. 일본이깔나무(落葉松)와 멋스런 노송(老松), 그리고 예쁜 등나무꽃 등, 주변의 풍물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걷다보면 30분 조금 못되어 외딴농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전봇대 하나 정도 되는 거리에, 녹슨 채로 방치되고 있는 차단기(遮斷機)가 보인다.

 

 

 

 

 

 

차단기를 지나,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숲 속 임도(林道)를 10분 정도 더 걸으면 계류(溪流)가 보이고, 계류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으로 접어들어, 계곡(溪谷)의 왼편 위로 난 등산로로 올라서면서 산행은 계속된다. 길은 계곡과 평행선을 이루며 이어지다가, 두어 번 정도 계곡을 가로지르면서 조금씩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앗! 큰일이다’ 숲속으로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한숨... 등산로 주변에 나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물 적게 뜯으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예요’ 집을 나설 때 뽀뽀를 해주며 겁을 주던 집사람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데 말이다. 제길, 억대 연봉(億代 年俸)을 가져다 바치는데도 웬 나물타령이란 말인가?

 

 

 

 

보이지 않는 산나물을 찾아 눈빛을 반짝여보지만 나물은 결코 눈에 띄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계곡을 따라 오르길 1Km쯤, 등산로는 다시 임도위에 올라서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오두재, 오른쪽은 백운산 남릉에 이르게 된다.

 

 

 

 

임도를 건너 다시 계곡으로 들어선다. 낙엽송 숲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라 했던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산나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갑자기 피로가 싹 가셔버린다.

 

 

 

‘정규 등산로를 벗어나면 다시 그 벗어난 지점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나물산행의 기초상식(基礎常識)이건만, 백두대간과 정맥들을 끝냈다는 내 알량한 자만심이 등산로를 이탈(離脫)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물을 뜯으며 능선을 치고 올라가다 잘 닦인 등산로를 만나게 되었고, 이 길은 오늘 우리가 가려는 백운산과 정 반대 방향의 길임을 모르는 채로, 엉뚱하게도 오두봉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그렇게 바쁜 걸음으로 나아가길 한참,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두 사람을 만나고서야 난 길을 잘못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부러 오두봉을 들러 오시는 두 분이 아니었으면 난 오두봉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그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두 분을 따라 뛰다시피 되돌아와, 대용소계곡으로 넘어가는 백운산 서릉의 상재(이정표 : 오두봉 1.2Km/ 백운산 2.3Km)에 이르니 등산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재에서부터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달려도 좋을 만큼 고저가 완만한 흙길이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은 참나무 일색, 간혹 늦부지런을 떨며 활짝 피어오른 철쭉군락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상재에서 서릉을 따라 30분쯤 올라가면 경주최씨 무덤이 보인다. 무덤을 지나 5분쯤 내려서면 용소동방면 중간능선 갈림길이 있는 바위지대 아래 삼거리에 닿는다. 점심상 차리기에 좋은 듯,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점심상을 차리고 있다. ‘막걸리 한잔 하시지요’ 알콜(alcohol) 중독(中毒)이다 싶을 정도(우리 집사람이 자주 쓰는 말이다.)로 엄청나게 술을 좋아하지만 정중하게 사양하고 있음은 어제마신 술의 여독(餘毒)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50도짜리 독주를 두병이나 홀짝거렸으니 당연한 귀결(歸結)이겠지? 이곳 삼거리는 취나물의 군락지(群落地)이다.

 

 

 

삼거리(이정표 : 오두봉 2Km/ 백운산 0.3Km)에서 바위지대 오른쪽으로 난 가파른 사면(斜面)길을 따라 15분 정도 힘들게 오르면 백운산 정상이다. 서로를 도와가며 산을 오르고 있는, 한 가족(家族)의 정겨운 뒷모습이 잘 그린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빠 엄마를 따라나선 딸아이는, 부모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운지 끊임없이 재질거리고 있다.

 

 

백운산 정상은 네 평쯤 됨직한 분지(盆地), 삼각점(엄정308)이나 이정표, 그리고 정상표지석이 보이는 것은 여느 다른 산의 정상과 다를 것이 없지만, 이곳은 정상표지석이 두 개인 것이 색다르다. 이곳 정상이 원주시와 제천시의 경계선에 놓여있는 탓인지, 두 지자체 모두 각각의 정상표지석을 세워 놓은 것이다. 산을 올라올 때나 내려갈 때, 보이는 이정표들이 모두 제천시에서 설치한 것들이었는데..., 원주시에서 괜한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이 보여 씁쓸하다.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 때문에 조망이 썩 좋지는 않지만, 나뭇가지들 사이로 내다보면 지나온 능선 뒤로 오두봉과 십자봉 줄기가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이고, 저 멀리 구학산과 치악산의 산릉들이 첩첩(疊疊)이 쌓여있다.(이정표 : 오두봉 3.6Km/ 차도리 3.7Km/ 운학임도 3.9Km)

 

 

 

‘언니는 지금 제천시에서 원주시로 넘어 왔네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꼭 거치게 되는 ’정상에서의 인증-샷(認證-shot). 정상표지석이 두 개이니 당연히 두 번을 찍고 있을 것이고, 제천의 표지석에서 먼저 찍은 후, 두 번째로 원주의 표지석 뒤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모양이다. 재치 있는 아낙내들의 재잘거림을 뒤로하며 하산 길을 재촉한다. 하산 목표지점인 차도리를 가기위해서는 제천의 정상표지석 뒤로 난 길로 내려서야한다.

 

 

하산 목표지점인 운학리(차도리)로 가려면 남릉을 타고 내려오면 된다. 남릉을 따라 20분쯤 내려오면 지능선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왼편 길로 접어들어야 하건만 나물 뜯느라 정신을 딴데 두었던 나는 계속해서 남릉을 따라 내려선다. 왼편 차도리로 내려가는 길인 줄로만 안채로... 다행이 길가에는 취나물이 지천(至賤)으로 널려있어서, 집사람의 기대를 어느 정도는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 같다. 헬기장을 지나면서부터 길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오늘 이 길을 지나간 사람들이 없는지 발자국을 찾을 수가 없다. 겁이 나기 시작한다.

 

 

 

잘 조림된 일본이깔나무(落葉松) 숲, 남동쪽인 백운면 자락은, 온 천지에 바늘을 꽂아둔 듯, 빈틈없이 조림(造林)된 잘 자란 낙엽송 군락지가 눈 맛을 시원하게 해준다. 오래전에 조림되었는지 어떤 나무는 어른 한 명으로는 안을 수도 없을 만큼 굵디굵다. 

 

 

 

 

 

 

‘에그머니나! 또 길을 잘 못 접어 들었나보다’ 아까 길가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다른 산악회였는데, 내가 따라온 산악회는 다른 길로 갔었나보다. 지도와 등산로를 일치시키지 못한 나는 부랴부랴 뒤돌아서서 뛴다. 나침반도 챙기지 않고 산을 오른 오늘 같은 날에는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가는 것이 ‘산행(山行)의 기본정석(基本定石)’이기 때문이다. 되돌아 올라가길 얼마, 산을 맞은편에서 내려오고 있는 등산객이 한 명 눈에 띈다. 그도 청지산악회 소속이란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다. 지금 내려가는 길이 운학임도로 내려서는 길이니 잘못 접어든 것은 아니란다. 거기다 이렇게 인적이 뜸한 곳이라야 나물을 많이 뜯을 수 있단다. ‘맞습니다. 맞고요’

막걸리까지 나누어 주는 아량까지 베풀어 주신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그 분께 감사드린다.

 

 

 

 

 

임도에 내려서니 이정표가 보인다. 정상에서 여기까지의 거리가 3.9Km이니 계획대로 내려갔더라면 이미 차도리에 도착하고도 남을 거리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차도리, 오른편은 상학동이라는데 두 곳 다 거리표시가 없다. 차도리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얼마 안 있어 임도는 두 갈래로 나뉜다. 임도 위 언덕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들에게 길을 물어보지만, 그들도 차도리로 가는 길은 알지 못하는 눈치. 오른편 임도로 내려가다가 알아서 왼편으로 떨어지란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왼편으로 내려서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고도(高度)마저도 낮추어 주지 않고 있다. 그렇게 1Km이상을 걷다가, 우린 모험을 단행하고야 만다. 약초꾼들이나 다닐 법한 길을 뚫고 산 아래로 내려선 것이다.

 

 

임도(林道), 제천 근처의 산에 가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산을 가로지르고 있는 임도들이 자주 눈에 띈다. 특히 이곳 백운산은 가히 임도의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임도가 온 산을 휘젓고 있다. MTB 동호인들이 전국에서 몇 손가락의 안으로 꼽을 정도로 유명한 라이딩 코스로 알려져 있다.

 

 

낭떠러지는 꼭 바위 절벽에만 있는 것이 아닌 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약초꾼이나 다닐법한 등산로는 숫제 낭떠러지이다. 혹시 바위길이라면 바위를 부여잡고라도 내려서련만, 흙길이니 그나마도 어렵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선다. 끝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난 뒤에야 산을 내려설 수 있었다. 뒤돌아서 내려온 능선을 바라본다. 아찔하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처음 내려선 임도에서 이곳까지 약 3Km쯤 되는 것 같다)

 

 

 

 

산행날머리는 차도리 버스종점

어렵게 산을 내려와 농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선다. 밭일을 하고 있는 주민(住民)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차도리란다. 제대로 내려왔나 보다. 수령이 500년도 넘었다는 제천군 보호수를 지나 용산골 버스정류장까지 나오지만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산행대장과 통화를 해 보지만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 황당할 따름... 승용차를 멈추고 길을 물어보니 차에 올라타란다. 백운산은 자칫 길을 잘못 접어들면 낭패를 볼 우려가 있는 산이라며, 버스종점인 운학2리 마을회간 앞에 내려주신다. 고마우신 분! 오늘 산행에서는 여러 고마운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산행이 되었다. 이래서 사람들은 ‘아직은 살아갈만한 세상’이라고들 말하나 보다.

 

 

 

 

 

 

 

하산 후에는 백운면 소재지에 있는 식당으로 옮겨 식사, 겨우 2만5천원을 냈을 뿐인데도 밥까지 주다니, 역시 친목(親睦)산악회는 이래서 좋은 모양이다. 산행 중에 캤다는 더덕을 넣은 소주 석 잔에 어제 과음했던 술이 깨기 시작한다. 돌아오는 버스 안, 식사 때 마시고도 남은 술이 있었는지 계속해서 잔이 돌아간다. 조금 어수선하지만 정겹게 보이기 때문에 싫지는 않다. 그 정도 소란스러움 때문에 내가 즐기는 독서가 방해받을 정도는 아니니까 말이다. 평생을 책속에 빠져 살아온 이력이 어디로 사라지랴... 좋은 곳에 데려다 주시고, 맛난 것까지 제공해주신 청지산악회 임원(任員)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년전 겨울 진락산 산행에 참석하고 이번이 두 번째 산행이었는데 반가웠습니다.

 

 

동산(896m)

 

산행일 : '06 9. 16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과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

산행코스 : 성내리 주차장-무암사-애기바위 능선-성봉-동산 정상-새목재-무암사

함께한 사람들 : 산자부산악회 

 

 

애기바위 능선

 

 

 

 

 

애기바위

 

 

 

제천이나 단양의 특징은 바위와 소나무

 

작성산을 배경으로

 

 

남근바위 능선

 

 

 

속리산(1,054m)

 

산행일 : '05. 11. 19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장암리매표소-오송폭포-문장대-문수봉-신선대-법주사

함게한 사람들 : 산자부 산악회

 

 

산사랑회원들과 속리산을 찾았습니다.
상주시의 시어동에서 올려다 본 속리산의 모습니다.
이미 겨울의 초입...서리가 깊이 내렸고, 냇가는 얼어있었습니다
비인 가지 사이로 하늘은 높고 맑았지만, 거친 숨소리에 내품어지는
입김에 가려 흐려보입니다
23명의 회원들...대부분 문장대에서 그냥 하산입니다.
12월 산과하늘에서 천왕봉을 들를테니 구태여 오늘은...

 

 

 

 

 

 

 

 

구병산(876m)

 

산행일 : '04. 5. 5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외속리면과 마로면의 경계

산행코스 : 서원리-쌀개봉-구병산 정상-815봉-절터-적암리

함게한 사람들 : 석탄산업과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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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898m)-작성산(771m)

 

산행일 : '05. 12. 4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과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

산행코스 : 성내리 주차장-무암사-장군바위-성봉-동산-새목재-까치산-작성산-소뿔바위- 무암사

함께한 산악회 : 푸르뫼산악회

 

 

푸르뫼와 함께 작성산에 다녀왔습니다.
충북 제천시에 있는 산인데, 분재같은 소나무가 많고, 기암괴석이 많은 아름다운 산입니다.
단양군쪽 도로에서 출발...조금 더 나가면 올 봄 시산제를 지냈던 금수산이 나옵니다.
우측능선으로가면 작은동산으로 가지만, 그냥 좌측능선으로 오릅니다.
초반의 급한 경사을 거쳐 능선에 오르면 아기자기한 바위들과 만나게 됩니다.
남근바위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 조금더 오르면 성봉이 나오는데 바윗길은 여기까지이고, 이후 중봉, 동산은 흙으로 연결됩니다.
물론 작성산의 아름다우 자태도 여기까지입니다.
 

급경사를 지나 도착한 능선에서 바라본 충주 호입니다.
충주호는 참으로 넓은가 봅니다.
충북지방에 가면 많은 지역에서 충주호 안내간판과 마주치니까요

 

뒷편의 작성산 암벽이 고와서 한컷입니다
어제부터 감기로 고생하는 조이님이 걱정이었는데
아직은 저보다 더 늠름하게 오르고 있습니다.
아마 피톤치트를 많이 받아서 일것입니다.

 

소나무가 많은 산입니다.
간혹 분재같은 아담한 소나무들도 많습니다.
분재같이 아담하고 고운 조이님과 어울리기에 함께 담아봤습니다.
감기 때문데 힘들어도 웃으세요 내사랑

 

난 바위가 좋아 암벽앞에 섭니다.
산을 오르는 일은 저에겐 언제나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 힘듬 뒤에 찾아오는 희열이 좋아서 산을 찾는답니다.
부상의 여파로 몸이 불어 오늘도 죽을 맛입니다.
완주하려면 5시간 이상이 걸릴텐데 가능할런지 모르겟습니다ㅡ

 

거너편 산이 작성산입니다.
그러나 작성산에 오르면 바위는 별로입니다.

 

동산의 성봉입니다.
820미터 정도... 돌무더기 앞에서 증명사진입니다.
왠 증명사진이냐고요?
이때까지만 해도 여기가 동산의 정상인줄 알았거든요
안내도(사진까지 그려져있습니다)에 동산,성봉이라고 적혀있어 정상으로 오해하기 딱입니다

 

새목재로 내려가는 삼거리에 배낭을 놓아두고 온 동산 정상이랍니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가서 새목재를 거쳐 작성산으로 가야하니 잠깐이라도 배낭에서 해방되고 싶어서이지요.

그러고 요즘은 배낭 잃는 일은 없어졌고요.
동산 정상은 밋밋한 봉우리로 볼게 없는 평범한 봉우리에 불과합니다

 

새목재에서 점심을 먹고 식후의 거북함과 싸운끝에 도착한 작성산입니다.
초반 급경사의 힘듬보다도 손시림때문에 혼났습니다.
별 수없이 스틱을 갈무리하고 보온부터...덕분에 산행은 더 힘이듭니다.
까치산을 지나 도착한 작성산은 그야말로 에게~랍니다.
정상자체도 평범하기 이를데없지만 전망도 별로입니다

 

이번 산행에 함께한 박형우입니다.
제 친구이자 회사 동료이지요.
척추수술후에 한동안 힘들어했는데 요즘은 훨훨 날아다닌답니다.
촌놈답게 역시나 폼이 엉성합니다.ㅎㅎㅎ
오래오래 건강을 유지해서 늘 밝은 모습 보여줬으면합니다.

 

하산길에서
하산길은 급경사에 바윗길이라 조금 위험합니다.
경상도쪽에서 온 모양인데 山仰이란 리본이 보입니다.
어떤 아저씨 녹음기를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군요.
자기만 들으면 좋을텐데...산에까지 와서 듣는 소음입니다.

 

 

저 멀리 월악산이 보입니다

 

무암사를 지나면 영화촬영세트장이 나옵니다.
너와집도 보이고, 초가집에 망루...아마 옛날 산채였든가봅니다
오랫만에 보는 연기가 그리워 담아봅니다

여기까지가 이번 산행...
여기서부터 주차장까지는 지루한 시멘트포장길입니다
약 40분거리쯤 됩니다.
그러나 입구(주차장)에 있는 식당의 청국장은 무지 맛있었습니다.
다시한번 들려 정식으로 맛보고싶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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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봉(저승봉, 596m)-신선봉(845m)

 

산행일 : '06. 9. 10

소재재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산행코스 : 학현수퍼-신선봉-전망바위-미인봉(저승봉)-조가리봉-정방사-얼음골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이번 미인봉은 저에게 몇가지 뜻 깊은 의미가 있는 산행이었답니다
그 하나가 조이님이 암수술을 받고 6개월만에 산을 다시 찾음이었고,
둘째는 지난 북한산 번개산행 때 취우님 등 몇몇분과 나눈 얘기가 이루어진 거지요.
“30명쯤 모여서 대형 관광버스로 이동하는 산행이 되었으면...” 했던...
여러분들이 배려로 우려했던 ‘조이님의 완주’가 무사히 이루어 졌음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이상, 다음산행에도 조이님의 모습은 빠짐이 없을 것입니다.
술 위주로 많이 챙겨오신 머루님, 그리고 식당을 아예 옮긴 듯한 코스모스님,
몇년전 한북정맥 때의 아라치가 짊어지고 온 세수대야만은 못했어도 크디 큰 은결이의 양푼,
넘쳐나는 음식들과, 그 풍요함에 비례하는 인정들은 ‘산과 하늘’의 정서일 것입니다
이런 소중한 인연들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갔으면 합니다.


처음 뵌, 진철아우의 손윗동서분, 하루에 누나와 조카, 코스모스님의 껌딱지(ㅎㅎ),
풍경이 친구(지선씨?), 다들 반가웠고요. 앞으로도 자주 뵈올 수 있길 기원합니다.
오랫만에 나온 아침이슬님, 호수공원님, 특사, 오색약수, 해밀... 앞으론 안 빼먹을 거죠?
하나 더 보배양의 등산복... 생김새와 잘 어울리더라.
같이 하신 모든 님들 덕분에 행복감으로 넘친 산행이었기에 감사드립니다

학현수퍼 출발지점에서 바라본 학봉
 

 

6개월만에 산을 찾은 조이님

 

 

 
산행내내 우리와 함께 한 충주호
 

 

 
배불리 먹었으니 이젠 기념사진
 
 

산행전에 이런 곳을 겁냈었는데, 조이님은 잘 오르내려 주었습니다
 
 
 

 

 


 

 

 

 
산허리에 위치한 천년고찰 정방사
 


날머리인 얼음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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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산(959m)

 

산행일 : '06. 8. 13

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산행코스 : 빗재-남봉-너럭바위-황정산 정상-영인봉-작은황정산-대흥교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황정산 초입

 

맞은 편 도락산

 

 

 

 

 

 

 

 

 

 

 

 

 

 

 

 

 

 

 

 

백악산(857m)

 

산행일 : '07. 6. 3(일)

소재지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과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입석초교-물안이골-수안재-부처바위-대왕봉-

               돔형바위-백악산-헬기장-석문사-옥양폭포-의상동

산행시간 :  5시간(제대로 걸으면 4시간 반이면 족하다)

함께한 산악회 : 몽블랑산악회(여긴 식당에서 점심을 사준다)

 

특색 : 백색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돌산으로 로프를 잡거나 건너뛰고, 해산굴도 있는 아기자기한 세미릿찌코스의 산이다.

아침에 나눠준 김밥을 산에서 먹었는데, 상한것 같아 꽤나 걱정했다 

 

 

토요일 산행이 5시간으로 좀 짧기에 부랴부랴 따라나선 산이다.

바위산으로 위험구간이 많다고 해서 긴장했으나

목숨을 위협 받을 만한 코스는 없는 약한 새미릿찌코스이다

 

대왕봉 정상

 

 

돔형바위

 

돔형바위 정상...속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악산 정상(857m)

 

서울40-50의 리더인 녹산님과 표준협회에 근무하신 분...

여기에다 요가선생님... 나까지 4명이서 함께 했다

 

834봉 정상에서

뒷편의 능선이 속리산이다

 

석문사

근처 동굴은 조선초 세조대왕의 공주님과 김종서장군의 아들이

정난 후 피난을 와서 사랑을 나눴다는 애뜻한 전설이 깃든 곳이다

 

서울30-40에서 활약하신다는 녹산님의 야그다

 

천작교

석문사 못미쳐서 목욕재계하고 새옷으로 갈아 입었다.

바로 밑에 같이 산행을 한 아줌마가 있었으나

산은 사람들의 간덩이를 키우나 보다....

 

천작교...

길다란 바위가 하천을 가로질러 걸쳐있다

그 사이를 흐르는 물줄기를 옥양폭포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