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적봉(吹笛峰, 728.2m)
산행일 : ‘13. 8. 10(토)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과 화암면의 경계
산행코스 : 덕우삼거리→석공예단지→하돌목교→전망대→사모바위(시계바위)→갈림길↔취적봉→옥순봉→덕산1교(산행시간 : 트레킹 2시간1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취적봉은 연산군과 인연이 깊은 산이다. 그 아들이자 세자였던 이황(당시 9세)이 귀양(流配)왔다가 23일 만에 사약(賜藥)을 먹고 사사(賜死)된 곳이기 때문이다. 폐세자(廢世子)가 된 이황이 이곳에서 감자로 연명하며 피리를 불던 곳이라 해서 취적봉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산이 얕고 자랑할 만한 볼거리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다가, 산이 끼고 있는 덕산기계곡이 ‘1박2일’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방영된 후부터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대부분의 산악회들이 덕산기계곡 트레킹(trekking)을 위해 이곳을 찾는 김에 취적봉 등산을 일정에 끼워 넣기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덕우삼거리(석공예단지 주차장)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나와 태백 방향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 문곡교차로(交叉路 : 정선군 남면 문곡리)에서 59번 국도로 바꿔 타고 정선읍 방향으로 들어가면 424번 지방도가 갈려나가는 덕우삼거리(정선읍 덕우리)에 이르게 된다. 삼거리에서 424번 지방도로 100m 정도 들어간 곳에 있는 석공예단지 주차장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 석공예단지주차장에서 424번 지방도를 따라 100m 정도 더 들어가면 왼편에 하돌목교(橋)가 보인다. 다리 입구에 ‘취적봉 등산로’라고 적힌 커다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하돌목교를 건넌 후(이정표 : 취적봉 등산로 1.3Km), 제방을 따라 어천(동대천)을 100m 조금 넘게 거슬러 올라가면 등산로는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밭 사이로 들어선다. 이 근처에 취적대가 있다고 하는데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옥수수 밭 사이로 난 길을 지나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게 된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 산으로 접어들자마자 산길은 곧바로 능선을 따르게 된다. 능선으로 올라서도 길은 순하기 그지없다.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데다가 흙길로 이뤄져 있어 걷는데 조금도 부담이 없는 것이다. 능선에 접어들면 묘지(墓地)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명당자리가 아닐까 싶다. 맨 위에 있는 묘(墓)의 주인이 숙부인(淑夫人 : 정3품 당상관의 부인)인 것을 보면 내 추측이 많은 듯 싶다.
▼ 묘역(墓域)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산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오른편 숲이 열리고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눈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이런 것을 보고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른 보답으로 눈이 호사(豪奢)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정도가 지났다. ‘영락없는 한반도(韓半島)네요’ 누군가가 감탄사와 함께 내쏟는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한반도를 닮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다른 곳에서 보았던 한반도의 생김새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었다.
▼ 전망대(展望臺)를 지나서 7~8분 정도 더 오르면 ‘사모바위’의 거대한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하는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모바위는 덕우리에서 이 바위를 올려다보면 그 생김새가 모자를 닮았다고 해서 사모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편 이 바위에 햇볕이 들지 않다가 정오가 되어서야 들기 때문에, 시계가 귀했던 시기에 이 봉우리를 보고 점심때가 된 것을 알았다고 해서 ‘시계바위’라고도 불린다.
▼ 사모바위를 지나면 길은 사납다싶을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팔라진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오르는 길에 심심찮게 조망(眺望)이 터지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오를 수가 있는 구간이다. 조망이 터지는 곳에 서면 아까 전망대에서 보았던 한반도 모형이 또 다시 나타난다. 동강을 향해 흘러가는 어천(동대천)이 갈지(之)자, 정확히는 'S'자(字)를 그리면서 한반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 건너편에 보이는 바위 절벽(絶壁)이 아마 취적대일 것이다. 연산군의 아들로서 폐세자(廢世子)가 된 이황은 덕우리 유천마을 강변에 있는 저곳에서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사람들은 불 취(吹)에 피리 적(笛)자를 붙여서 취적대라 불렀다고 한다.
▼ 보통 산에 가려고 할 때, 나는 가고자하는 산을 먼저 다녀온 분들이 쓴 후기(後記)들을 두루 읽어 보는 편이다. 산행에 참고를 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취적봉도 산행기들을 여럿 읽어보았다. 그런데 참조한 산행기 중에서 두 가지가 상이(相異)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첫째는 전망대 가기 전에 있다는 군대의 교통호처럼 파인 일제의 잔재(殘滓)이다. 이 지역에서 인재가 날 것을 두려워한 일제가 그 맥을 끊어 놓았다는 곳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번째는 ‘덕우삼거리 갈림길’이다. ‘사모바위’앞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과 덕우삼거리로 내려가는 길이 갈린다고 적었는데, 이 지점에서 갈려나가는 길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 난간역할을 하고 있는 안전로프와 나뭇가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비탈길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취적봉 정상이다.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삼거리(취적봉/ 덕산기계곡/ 덕우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난 길로 진행할 경우에는 옥순봉을 거쳐서 덕산기계곡으로 내려가게 된다. 덕산기계곡의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다면 정상을 지나 또 다른 정상(삼각점이 설치된 봉우리)으로 연결되는 능선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 덕산기계곡 갈림길에서 정상은 금방이다. 10평이 채 안 되는 바위지대인 정상은 정상표지석 하나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터진다. 건너편에는 진짜 취적봉(삼각점봉)이 보이고, 멀리 정선읍과 가리왕산은 물론이고 군의산, 민둥산, 지억산, 각희산 등이 보인다. 산행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대략 55분 정도가 소요된다. 참고로 취적봉의 정상은 건너편에 보이는 삼각점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정상표지석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을까? 어쩌면 저쪽 봉우리가 볼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볼거리도 없고 잡목(雜木)으로 둘러싸여 조망까지도 트이지 않는 봉우리보다는, 바위봉에다 조망(眺望)까지 시원스럽게 트이는 지금의 봉우리를 정상으로 내세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 정상의 건너편에 보이는 봉우리, 삼각점이 있는 정상으로 가려면 먼저 가파른 암릉을 내려서야 한다. 상당히 가파른 암릉에는 밧줄이 매어있기는 하지만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삼각점봉에 다녀와서 덕산기계곡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그냥 발걸음을 돌려버린다. 내려가는 암릉 위에서 10분을 기다려보았지만 늘어선 줄이 조금도 줄어들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오늘 취적봉을 찾은 산악회가 3개나 되니 위험한 구간에서 정체(停滯)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 아까의 ‘덕산기계곡 갈림길’로 되돌아와 하산을 시작한다. 완만(緩慢)한 경사(傾斜)로 시작된 내리막길이 내려갈수록 점점 가팔라지더니 언젠가부터 위험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까지 변해있다. 길가에도 ‘위험 낭떨어지’라고 쓰인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파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왼편이 날카로운 바위 절벽(絶壁)으로 변해있다. 그러나 눈 쌓인 겨울철이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왼편 바위벼랑 쪽에 비록 로프이긴 하지만 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 왼편 산자락이 바위벼랑으로 변하면서 눈이 호강을 누리기 시작한다. 벼랑의 특징대로 시야(視野)가 터지면서 주변 경관(景觀)이 아름답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건너편에 구운병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오른편에는 백평마을과 낙모암이 나도 있다며 손짓을 하고 있다. 거기다 고개를 돌려보면 제월대의 날카로운 암벽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참고로 구운병은 덕우리 1반 대촌마을 강변(江邊)에 마치 아홉 폭 병풍(屛風)을 세워 놓은 것처럼 펼쳐진 기암절벽(奇巖絶壁)이다.
▼ 제월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심심찮게 전망대(展望臺)가 나타난다. 반도(半島)처럼 툭 튀어나온 물돌이 지형(언내뜰 : 백평마을)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그 그림은 내려가다 멈추는 곳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며 계속해서 나타난다. 언내뜰(백평마을)은 어천(동대천)이 마치 뱀처럼 똬리를 틀면서 만들어 놓은 물방울처럼 생긴 반도이다. 언젠가 비룡산에서 내려다보던 회룡포를 닮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곡선의 아름다음은 회룡포에 미치지는 못한다. 이러한 물돌이는 용궁의 회룡포 외에도 안동의 하회마을과 영주의 무섬에서도 볼 수 있다.
▼ 제월대는 덕우리 1반 백평마을 강변에 우뚝 서있는 바위절벽이다. 달이 지는 광경이 마치 날카로운 암봉 사이를 달이 건너다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 낙모암은 덕우리 1반 백평마을 앞 강변에 서있는 모자(탕건) 모양을 한 기암절벽(奇巖絶壁)이다. 덕산기계곡(구진베리)의 물줄기는 이곳에서 어천(동대천)의 큰 물줄기와 합쳐진 후 동강을 향해 흘러간다.
▼ 옥순봉에서 뻗어 내린 양쪽 면(面)이 다 날카로운 암릉은 낙모암 앞의 합수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는 이정표(반선정 350m/ 취적봉 정상 1.3Km)와 덕우8경의 하나인 낙모암에 대한 설명판(파손되어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위험구간이므로 통행을 금한다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덕산기계곡의 경관(景觀)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이곳에서 반선정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백평마을과 구운병, 그리고 반선정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옛날 마고할멈이 봉우리에서 신을 삼아 신었다는 옥순봉의 바위 봉우리를 올려다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정표에 방향표시도 없는 오른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산악회에서 정한 하산지점이 덕산1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충분하다.
▼ 덕산기계곡에 내려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개울가에 쳐진 텐트들과 물속에서 떠들고 있는 인파(人波)들이다. 계곡물이 별로 많지 않지만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것은 그만큼 덕산기계곡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많이 탔다는 증거일 것이다. 계곡 상류를 향해 덕산1교를 건너면서 소란스러운 텐트집단은 극에 달한다. 다리 건너의 시설지구 마당을 조그만 빈틈도 주지 않고 텐트들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여탄마을회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버린다. 계곡에 물이 별로 없어서 트레킹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덕산기계곡은 사실 주위 풍경(風景)이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지만 절경(絶景)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모자란다. 이 계곡은 주변의 경관(景觀)보다는 매혹적인 물색에 있는 것이다. 희고 둥근 자갈 위를 흐르거나 고여 있는 물빛이 옥빛과 초록빛을 뒤섞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사람들이 찾는데 그 물이 없으니 더 이상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야할 명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덕산1교에서 산행이 종료되는 여탄마을회관까지는 1Km정도, 오가는 차량을 어렵게 피하면서 왕복1차선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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