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산(八峰山, 327.4m)

 

산행일 : ‘13. 10. 6()

소재지 :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리

산행코스 : 팔봉산 매표소1~8홍천강변(江邊)팔봉교유원지 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터산우회

 

특징 : 팔봉산은 해발(海拔)300m에 불과한 자그마한 산이다. 당연히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대 명산에 들어있으니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팔봉산의 앞에 서면 그런 의문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친 여덟 개의 봉우리와 단애(斷崖)를 이루는 기암절벽(奇巖絶壁)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산을 휘감아 도는 홍천강이 기암괴석과 잘 어울리면서 마치 수반(水盤) 위에 놓인 수석(壽石)을 연상시켜 준다. 단 산행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1봉에서 8봉까지 종주하고 난 후 주차장까지 되돌아나오는 거리가 고작 4Km, 사람들 때문에 정체(停滯)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2시간 남짓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팔봉산은 감물악(甘勿岳)이라는 딴 이름을 하나 더 갖고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행들머리는 팔봉산 매표소

서울-춘천고속도로 남춘천 I.C에서 내려오자마자 만나게 되는 86번 지방도에서 우회전하면 잠시 후에 70번 지방도와 만나는 광판삼거리(춘천시 남산면 광판리)가 나온다. 광판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좌회전(용문, 양평방면)하여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팔봉산 관광지(홍천군 서면 어유포리)에 이르게 된다. 이어서 홍천강을 가로지르는 팔봉교()를 건너면 팔봉산 매표소이다.

 

 

 

산행은 팔봉산매표소를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물론 매표소에서 입장권(어른 기준 1,500)을 구입하고 난 후, 단체산행일 경우에는 관리인의 머리 헤아리기 과정이 따름은 물론이다. 입장료가 조금 비싸다는 생각도 들지만, 산을 깨끗하게 잘 관리하는데 사용한다니 아깝지는 않다. 매표소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맞은편에 보이는 철다리(鐵橋)를 건너 제1봉으로 오를 수도 있고, 오른편 강변(江邊)으로 내려서더라도 팔봉산을 오르는 데는 지장이 없다. 다만 강변을 경유하는 역()코스를 선택할 경우에는 만만찮게 산행시간이 늘어난다. 거의 모든 등산객들이 1봉부터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반대방향에서 오는 사람들과 엇갈리며 기다리는데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1봉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의외라는 생각이 머리를 내민다. 짙게 우거진 숲하며 녹색의 이끼를 잔뜩 머금은 고목(枯木)들이 마치 원시림(原始林)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그맣고, 거기다가 사람들로 들끓는 산에서 원시림을 연상시킬 정도의 숲을 만나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길은 초입부터 제법 가파르다. 산길이 곧장 산위로 향하지 못하고, 왔다갔다 갈지()자를 만들고서야 겨우 고도(高度)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10분쯤 올랐을까 이정표(1봉 가는 길 : 쉬운 길) 하나가 세워진 자그마한 쉼터가 보인다. 등산객들은 모두 이정표가 지시하는 데로 진행하고 있다. 호젓하게 산행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 다른 길을 찾아본다. 쉬운 길이 있다면 당연히 어려운 길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 것이다. 그러나 금방 발걸음을 돌려버리고 만다. 이정표에도 나와 있지 않은 어려운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은 탓인지 길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쉼터에서 조금 더 오르면 길은 두 갈래(이정표 : 1봉 가는 길/ 2봉 가는 길)로 나뉜다. 오른편이 1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왼편은 1봉을 건너뛰고 곧장 2봉으로 가는 길이다. 1봉으로 방향을 잡자마자 장사진(長蛇陣)이 늘어서있는 것이 보인다. 비록 높이는 10m도 채 안되지만 거의 암벽(巖壁)수준의 급경사(急傾斜)가 이유인 모양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자꾸 길어지는 이유는 여자들 때문이다. 남자들이라면 이 정도쯤이야하고 콧방귀를 뀌겠지만 여자들에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오늘 팔봉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숫자가 더 많다. 잘못하면 산행시간보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오늘 산행은 구간별 소요시간이 무의미해져 버렸다.

 

 

 

 

로프와 철판으로 만든 발판에 의지해 겨우겨우 경사(傾斜)길을 오른다. 산행을 시작해서 35분 정도를 바위와 싸우다보면 1봉에 올라서게 된다. 올라오는 길에 두어 번 시야(視野)가 트이지만 나무들 때문에 조망(眺望)은 썩 좋지 않다. 좁다란 공터로 이루어진 1봉 위에는 앙증맞게 작은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날카로운 바위 위에는 잔돌로 쌓은 작은 탑()도 보인다. 1봉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S라인의 홍천강이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S자를 그리고 있는 것이 내려다보인다. 옛 선비들은 홍천강이 아홉 굽이를 휘돌아 흐른다고 하여 구곡강’(九曲江)이라 불렀다고 한다. 참고로 태극(太極)모양으로 나타나는 굽이를 수태극(水太極)’이라 말하는데, 홍천강에서 가장 완벽하게 태극모양을 만드는 곳은 북방면에 있는 금학산으로 알려져 있다.

 

 

 

1봉에서 2봉 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역시 바윗길이다. 긴장은 해야겠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암벽에 밧줄과 쇠()난간 등 안전시설이 잘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발을 디뎌야 하는 곳마다 쇠()발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이러한 안전시설들은 산행을 마칠 때까지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1봉과 2봉 사이의 안부에서도 갈림길(이정표 : 2봉 가는 길/ 3봉 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 2봉을 거치지 않고 곧장 3봉으로 가는 길이 있는 것이다.

 

 

 

 

2봉 오르는 길 역시 가파르고 험하다. 로프와 쇠난간을 잡고 암릉을 오르면 바위 봉우리 꼭대기에 작은 사당(祠堂)이 하나 보인다. 삼부인당(三婦人堂)이다. 그 옆에는 칠성각(七星閣)까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산꼭대기에 차려진 당집은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것이다. 이 당집은 시어머니, 며느리, 딸의 혼()을 모신 곳으로 해마다 봄, 가을이면 마을주민들이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옛날 옛적에 팔봉리 마을에 성격이 각기 다른 이씨(李氏) 시어머니와, 김씨(金氏) , 그리고 홍씨(洪氏) 며느리가 살았다고 한다. 이씨 부인은 성격이 까다로웠으나 인자하였고, 김씨 부인은 푼수기가 많았으나 후덕하였고, 홍씨 부인은 정은 많았으나 다혈질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과부(寡婦)들이었지만 서로 아옹다옹 싸우면서도 다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기에 주위에서 삼부인집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세 과부들은 후사(後嗣)를 이을 수 없는데다가, 살림살이까지 궁핍해지자 이곳 2봉에 올라 세상을 한탄하며 울다가 그만 혼절(昏絶)하였다. 그리고 3일 후에 깨어나서는 농사를 주관하는 ()내림을 받았다고 한다. ‘()내림을 받은 곳을 신성(神聖)시 하던 주민들이 이곳에다 사당(祠堂)을 짓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당굿을 지냈음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당굿을 할 때 이씨가 강신(降神)하면 풍년, 김씨가 내리면 대풍, 홍씨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2봉에 오르면 시야(視野)는 더 넓어진다. 용문산과 삼악산, 화악산 등 인근의 명산들이 더욱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발아래에 흐르고 있는 홍천강은 점점 더 부드러운 곡선(曲線)을 드러내고 있다. 굽이굽이 휘돌고 있는 홍천강은 그야말로 절경(絶景)이다. 홍천군이 자랑하는 제1경으로서 결코 손색이 없는 풍경이다.

 

 

2봉에서 바라본 3, 정상어림의 철계단이 멋진 조형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2봉에서 3봉을 향해 내려서는 길에는 안전시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비록 바윗길이지만 그다지 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봉과 3봉사이의 안부는 사거리(이정표 : 3봉 가는 길/ 2·3봉 사이 하산로/ 1·2봉 가는 길)이다. 왼편에 보이는 길이 1봉과 2봉 사이의 안부에서 2봉을 거치지 않고 곧장 오는 길이고, 오른편은 강변으로 내려가는 하산로이다. 물론 3봉은 맞은편에 보이는 철계단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

 

 

 

거의 수직(垂直)에 가까운 철계단을 오른 후 잠시 암릉에 부대끼다보면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장군바위이다. 오래 가물 때에는 이 장군바위에 치마를 씌우고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 바위를 돌아서 오르면 정상석이 있는 3봉 정상이다. 3봉은 팔봉산의 주봉(主峰) 역할을 하지만 정상을 이루고 있는 공터는 몇 사람이 앉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다. 그러나 조망만은 뛰어나다. 팔봉산의 중심이 되는 봉우리답게 북서쪽으로 다섯 봉우리들을 한눈에 펼쳐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북서릉을 설악산의 공룡능선과 비유하기도 한다. 거친 암릉과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노송(老松)들이 마치 설악의 공룡능선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고 해서이다.

 

 

 

 

3봉에 오르면 조망(眺望)은 절정을 이룬다. 아까 2봉에서 즐겼던 조망을 한층 더 뛰어넘는 것이다. 팔봉산을 감싸고 굽이굽이 흐르는 홍천강의 곡선은 더욱 유연해지고, 연봉(連峰)으로 이어지는 주변의 산들은 물론이고, 저 멀리 용문산, 화야산, 운길산, 명지산까지 높고 낮은 산들이 첩첩(疊疊)이 겹쳐있다. 이곳뿐만이 아니고 팔봉산은 봉우리마다 조망이 뛰어나다. 강으로 빙 둘러싸인 탓에 어느 봉우리에서나 시야(視野)가 툭 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3봉에서 바라본 2, 정상에 있는 삼부인당이 또렷하다.

 

3봉에서 바라본 북서릉, 많은 사람들이 설악의 공룡능선을 빼다 박았다고들 한다.

 

 

4봉을 향해 내려가는 길도 험하기는 아까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이다. 밧줄과 철사다리 등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철계단을 내려서다보면 안부로 떨어지기 직전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맞은편으로 난 철다리를 건너면 곧장 4봉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팔봉산의 명물인 해산굴(解産窟)을 통과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안부까지 내려가야만 한다.

 

 

 

해산굴은 비스듬하게 수직(垂直)으로 뻗은 바위굴이다. 침니(암벽이 세로로 갈라진 틈)의 형태로 되어있어서 제법 고난도(高難度)의 등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만일 몸이 뚱뚱한 사람이라면 결코 모험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이 굴은 산파바위라고도 하는데 산모(産母)가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겪는 것만큼이나 통과하기 어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밑에서 받쳐주고 밀어준다면 빠져나가기가 조금이라도 쉬워지겠지만 받쳐주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침니 자체가 워낙 좁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산굴 앞은 굴을 통과해 보려는 사람들로 인해 항상 장사진(長蛇陣)을 이룬다. 굴로 들어서기 전에는 먼저 배낭을 벗어 앞에다 안아야 한다. 그런 다음 굴의 막바지에 이르면 배낭을 먼저 굴 밖으로 밀어 올리고 난 후, 다음에는 몸을 누운 자세로 서서히 밖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해산굴을 빠져나오자마자 4봉 정상석이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마치 굴을 빠져나오느라 고생한 이들을 환영이라도 하는 듯하다. 여기서 우스개 한마디, 해산굴이라함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는 애들이 통과하는 굴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오늘 저 굴을 통과한 수백 명의 남녀들은 모두가 한 뱃속에서 나왔으니 형제나 남매, 그리고 자매들일 것이다. 요즘 같은 저출산(低出産) 시대에 꼭 필요한 모티브(motive)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해산굴을 통과하지 않고 곧바로 4봉에 오른 사람들은 제왕절개수술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닐까?

 

 

 

 

 

가장 어렵다는 4봉을 지나서도 바윗길은 계속된다. 차라리 더 험해진다고 말해도 그다지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은 아까보다 깊지 않지만 암릉의 경사(傾斜)는 차라리 더 가팔라지기 때문이다. 4봉에서 철계단을 밟고 안부로 내려섰다가, 이번에는 한층 더 가팔라진 철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5봉 정상이다. 5봉의 정상도 조망(眺望)은 뛰어난 편이다. 주변의 산군(山群)들은 물론, 홍천강의 유려한 몸짓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5봉과 6봉 사이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제법 길다. 두 봉우리 사이에 자그마한 봉우리들이 여럿이 솟아있는 것이다. 봉우리들이 작다고 해서 봉우리들 사이의 골까지 얕은 것은 아니다. 어떤 안부는 거의 수직(垂直)에 가까운 철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산의 이름이 팔봉산이 아니고, 구봉산이나 십봉산이었다면 정상석 하나쯤은 족히 차고도 남았을 정도의 봉우리들이다.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다가 6봉 앞의 안부에 이르면 길은 세 갈래(이정표 : 6봉 가는길/ 5·6봉 사이 하산로/ 5봉 가는 길)로 나뉜다.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강변으로 탈출하면 된다. 6봉으로 오르는 길은 다른 곳에 비해 안전시설이 없는 편이다. 그만큼 험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6봉의 정상은 다른 봉우리들에 비해 험하다. 유난히도 날카로운 바위 꼭대기에 정상석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는 탓에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하긴 공간이 있다고 해도 구태여 머무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이라고 해봐야 다른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보아온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6봉에서 7봉으로 가는 길은 경치가 좋은 편이다. 주변에 널린 노송들이 암릉과 어우러지면 뛰어난 경관(景觀)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길가 암벽 위에 얹혀있는 고사리과의 작은 식물들도 아름다운 경관을 만드는데 일조(一助)를 하고 있다. 붉게 물들어가는 잎들이 가을의 풍치(風致)를 한층 더 멋지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5봉과 6봉 사이에는 제법 너른 안부가 있다. 날카로운 암릉으로 이루어진 팔봉산에서 유일하게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부는 시장바닥을 연상시키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점심상을 차리고 있는 것이다.

 

 

 

안부에서 다시 짧은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이번에는 밧줄 구간이다. 이어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은 뒤, 다시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7봉 정상이다. 7봉의 정상은 제법 날카로운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때문인지 정상석이 바위 아래에 조용히 숨어있다. 아마도 바위 위에다 얹어 놓는 것이 힘들었나 보다.

 

 

 

 

7봉과 8봉 사이의 능선은 그동안 지나왔던 일곱 개의 봉우리 사이들 중 가장 길고 경사(傾斜)도 순한 편이다. 또한 경관도 뛰어나다. 능선에 늘어선 노송(老松)들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홍천강 줄기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그런 경관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구간이 갖고 있는 장점 중의 하나이다. 아기자기한 산길이 그다지 험하지 않는데다가, 조금만 험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철계단이나 안전밧줄, 그리고 철다리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잠깐 눈을 돌려도 괜찮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8봉 앞의 안부(이정표 : 8봉 가는 길/ 7·8봉 사이 하산로/ 7봉 가는 길)에 이르면 8봉이 험하니 주의하라는 경고판(警告板)이 두 개나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중 하나는 이곳 안부에서 곧장 하산할 것을 권하고 있다. 옛날에는 대부분 이곳에서 하산을 했다. 8봉에서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에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8봉을 둘러본 후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 하산을 했던 것이다.

 

7봉을 내려오다 본 8봉 전경

 

 

 

경고판에 놀라 탈출을 고집할 필요까지는 없다. 8봉으로 오르는 길이나, 8봉에서 강변(江邊)으로 내려가는 하산길 모두 안전시설을 잘 갖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주의한다면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겁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8봉으로 향하자마자 지레 겁부터 먹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수직(垂直)에 가까운 철계단은 끝도 없이 위로 향하고, 철계단이 끝나면 외가닥 쇠난간을 붙잡고 서슬이 시퍼런 바위벼랑 위로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고생 끝에 정상에 오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는 노송들에 둘러싸인 널따란 암반(巖盤)이 나타난다. 8봉은 여덟 개 봉우리들 중에서 가장 낮다. 하지만 종주(縱走)의 대단원을 마무리 짓는 봉우리답게 조망이 수준급이다. 산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홍천강의 물줄기는 푸르다 못해 시릴 지경이고, 고개를 들면 오음산을 비롯해 용문산, 삼악산, 화악산 등 인근의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즐기는 조망(眺望), 이런 것을 일컬어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지 않나 싶다.

 

 

8봉에서 바라본 7봉 능선

 

 

 

8봉에서 강변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전체 구간 중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그래서 아까 지나왔던 7봉과 8봉 사이의 안부에 경고판까지 세워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안전밧줄과 철계단, 그리고 쇠난간을 곳곳에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주의만 한다면 별다른 사고 없이 내려설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옛날 이곳을 ()의 구간이라고 부르게 만들었던 바위의 미끄러움도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발을 디뎌야 할 곳에는 어김없이 철판(鐵板)으로 발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지막 철계단에 이어 수직(垂直)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강변길이다. 이 길은 홍천강과 산 밑 바위사면(斜面)을 따라 다리 등으로 매표소까지 연결한 길이다. 강변길은 암벽(巖壁) 밑을 허리까지 숙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구간이 있는 가하면, 좁은 철판(鐵板)을 딛고 로프에 의지해서 강물 위를 건너야 하는 출렁다리 구간도 있다. 다리들은 거의 수면(水面) 위로 지나가기 때문에 마치 물위를 걷는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구간은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통행이 제한된다. 길이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팔봉산 유원지(遊園地) 주차장

산행이 종료되는 유원지의 주차장은 매표소에서도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한다. ‘! 기막히게 빼다 박았다매표소를 지나는데 어느 여성분의 상큼한 외침이 들려온다. 매표소 앞 통행로의 한가운데 박혀있는 바위에 남성의 성기(性器)가 조각되어 있는 것이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할 때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만큼 여유 있는 산행을 즐겼음이리라. 팔봉교를 건너 유원지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눈요깃거리로 넘친다. 인도 옆에 늘어선 팔랑개비들은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날개들을 열심히 돌리고 있고, 강 건너에는 팔봉산이 그 뛰어난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팔봉산은 등반의 묘미(妙味)를 만끽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고도(高度)가 높은 거대한 육산(肉山)에서 느낄 수 있는 웅장함은 빠져있지만, 나머지 요소들이 그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이다. 이로 인해 팔봉산은 홍천9(洪川九景 : 가리산, 미약골, 금학산, 가령폭포, 공작산 수타사, 용소계곡, 살둔계곡, 가칠봉 삼봉약수) 중 단연 1()으로 꼽힌다. 인접한 고산(高山)들에 비해 그 규모가 보잘것없는 이 꼬마산에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