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대만 여행
여행일정 : ‘17. 12. 12(화) - 15(금)
여행국가 : 대만
여 행 지 : 타이페이(용산사, 고궁박물관, 101층 전망대, 스린야시장, 시먼당거리), 화련(태로각협곡, 칠성담 해변), 지우펀, 스펀, 야류 지질공원
여행 둘째 날 : 화련의 ’태로각 협곡(太魯閣 峽谷)‘
특징 : 중앙 횡단고속도로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화련 ’태로각 협곡‘은 평균 해발 2,000m의 험준한 산과 바위에 첩첩이 둘러싸인 대만에서 4번째로 지정된 국가공원(國家公園)이다. 공원의 전체 면적은 920㎢이고 길이가 20㎞쯤 되는데,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이 무려 3,742m나 된다고 한다. 협곡 사이로 흐르는 물의 색깔이 탁한 이유는 이 협곡이 거대한 대리석 협곡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이 정도 규모의 대리석 암반으로 구성된 협곡은 거의 없을 것이란다. 협곡(峽谷)은 침식작용에 의해 대리석과 화강암의 산이 강의 흐름을 따라 깎여져 좁은 협곡을 이룬 독특한 지형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장춘 폭포와 '태로각 협곡' 중 가장 좁은 절벽인 연자구는 '태로각'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명소라 할 수 있다. 거센 물살의 괴롭힘에 깎여나간 바위벼랑들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은다. 거기에다 산 속에 뚫린 작은 터널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과 출렁이는 다리, 폭포의 물줄기는 장엄한 '태로각'의 역사를 고스란히 관광객에게 전하기에 충분하다. 참고로 태로각이란 이곳의 원주민이었던 ‘타이야르족’의 용감한 족장이었던 ‘타로코’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 태로각협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타이페이역에서 기차를 타야한다. 자동차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길이 험한 탓에 기차에 비해 소요시간이 훨씬 더 걸리기 때문이다. 지하에 있는 승강장으로 가서 기차를 타려면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비슷한 절차와 풍경을 거치게 된다. 타게 될 기차는 ‘타이루거하오(太魯閣號)’, 가이드의 말로는 우리나라의 ‘새마을호’쯤 되는 등급이란다. 널찍하면서도 깨끗한 열차 안에서의 풍경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간식거리를 파는 손수레가 지나다니는가 하면, 가끔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손수레도 나타난다. 예쁘장한 검표요원도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참! 깜빡 잊을 뻔 했다. 열차를 타고가다 보면 심심찮게 바닷가 풍경이 차창 밖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이다. 태평양과 맞닿은 바닷가 풍경들이 눈에 담을 만 했지만 아쉽게도 빗줄기에 가려 반쪽짜리 풍경화가 되어버렸다.
▼ 화련까지는 3시간이 조금 못 걸리는데, 가는 도중에 일곱 번 정도 정차(停車)를 한다. 화련역 바로 전에 있는 ‘신창역(타로코)’에서 내리라는 가이드의 연락이다. 행선지인 태로각협곡이 화련역보다 이곳 신청역에서 가는 것이 더 가깝기 때문이란다. 아니 그보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 화련역의 복잡함을 피해보려는 심산(心算)이 더 강했을 것이다. 아무튼 덕분에 점심식사도 느긋하게 먹을 수 있었다.
▼ 태로각 협곡의 동쪽은 태평양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차로 약 20분 정도를 더 들어가야만 웅장한 협곡과 아찔한 절벽 사이를 관통하는 도로를 만날 수 있다. 그 시작지점에는 커다란 대문을 만들어 놓았다. 들머리임을 알리려는 모양이다. 그런데 현판은 ’동서횡관공로(東西橫貫公路)‘가 전부가 아닌가. 국립공원의 입구인데도 말이다. 그게 미안했던지 그 옆에다 빗돌(碑石)을 하나 더 세우고 ’태로각국가공원(太魯閣國家公園)‘을 횡관공로와 함께 병기(倂記)해 놓았다.
▼ 잠시 후 길이 둘로 나뉜다. 버스는 오른편으로 향한다. 왼편은 사카당보도(神秘谷步道)라고 한다. 예전 이름은 ‘신비곡 보도(神秘谷步道)’였는데 2001년부터 아타얄족(Atayal, 泰雅族)의 지명이었던 ‘Sagadan(어금니라는 뜻)’을 따서 사카당(砂卡礑)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보도는 사카당계곡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로, 절벽을 깎아 만들었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 잠시 달리면 왼편 산자락에 조금 전에 갈려나갔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깎아지른 바위절벽에 홈을 파서 만든 것이, 2년 전엔가 둘러봤던 사천성의 ‘차마고도(茶馬古道)’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 도로는 생각보다는 훨씬 더 널찍하다니 말이다.
▼ 조금 더 들어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장춘사(長春祠)가 잘 조망되는 곳이다. 장춘사는 ‘동서횡관공로’를 건설하다가 순직한 인부들의 영령을 기리는 사원(寺院)이다. 장제스 총통은 본토에서 이곳으로 쫓겨 오면서 많은 군인들을 데려왔다고 한다. 본토 수복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군인들은 일반 국민들의 원성의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할일 없이 밥만 축낸다는 불평들이었을 것이다. 이때 생각해 낸 것이 이 도로를 건설하는데 군인들을 활용하는 것이었단다. 국민들의 불만도 잠재우면서 숙원사업인 동서횡단공로를 만드는 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중장비가 없던 시절이어서 수많은 근로자들이 죽었는데, 당시에 순직한 사람들의 영령을 기리는 곳이 장춘사이다.
▼ 건너편 산자락에 당나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장춘사(長春祠)가 보인다. 이곳 태로각 협곡 도로를 짓는 데는 2만여 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들 중에 225명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이들의 명복을 장춘사를 지었는데 태로각을 찾은 여행객들이라면 한번쯤은 꼭 방문하는 명소이다. 사원의 앞에는 ‘장춘사 폭포’가 자리 잡고 있다.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떨어지는 부챗살 물줄기가 장관을 연출한다. 4년쯤 전에 들렀던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에서 만났던 ‘큰폭포(Veliki slap = Big waterfall)’의 경관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단(段)을 나누어가며 떨어지는 모양새만은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다.
▼ 장춘사 뒤편 절벽에 제비집처럼 걸터앉은 사원 하나가 보인다. 선광사(禪光寺)라는 사찰인데 갈자(之)자로 난 트레킹 코스로 연결된단다. 이 길은 ‘선광사 보도’ 또는 ‘천당보도(天堂步道)’라고 불리는데, 대만 현지에서는 트래킹 코스로 각광받는 길이란다. 선광사는 불교의 사찰이지만 특이하게도 절 내에 장개석의 동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곳의 방문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장춘사로 들어가는 길 자체를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 전망대 옆에는 빨강 일색인 다리가 하나 놓여있다. ‘장춘교’라는 다리인데 장춘사로 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만 한다. 다리의 끄트머리에서 장춘사로 들어가는 길이 나뉘기 때문이다.
▼ 다리를 지나다보면 다리 양쪽의 계곡의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물의 색깔이 마치 우유가 섞인 것처럼 뽀얗다. 석회질이 많은 것이 그 원인라고 한다. 생물들이 살지를 못함은 물론이다. 이따가 연자구 협곡에 들어서면 물빛은 이보다도 훨씬 더 짙어진다.
▼ 다리를 건너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은 다리 모양으로 생긴 전망대로 연결된다. 계단과 전망대의 사이에는 부처님을 모셔놓았다. 부처님의 양 옆에는 두 분의 보살을 협시보살(脇侍菩薩)로 배치했다.
▼ 조망대에 서면 장춘사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바위절벽에 굴을 뚫어 길을 냈다. 눈요깃거리뿐만 아니라 스릴까지 느껴볼 수 있는 멋진 길이지만 지금은 통행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공사 중이라서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 이번에는 태로각협곡의 제2경이라는 연자구(燕子口)로 이동한다. 물론 버스를 이용해서다. 가는 길 차창 밖으로 엄청나게 긴 폭포가 보인다. 마치 하늘로 승천(昇天)하는 용(龍)이 용트림을 하고 있는 형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목포의 이름은 알 수가 없었다.
▼ 잠시 후에는 자그마한 댐(dam)도 보인다. 태로각협곡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만든 댐이라고 한다. 그렇게 돌려진 물은 큰 낙차를 이용해 전기(電氣)를 만들게 된단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저런 발전시설들이 모이면 대만 소요전력의 10%를 차지하게 된다니 무시할 수 없는 규모라고 봐야하겠다.
▼ 잘 달리던 버스가 잠시 멈추어서더니 가이드가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관리사무소에서 챙겨온 안전모(安全帽)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잠시 후 트레킹이 있는데 필히 안전모를 써야한다는 것이다. 언제 낙석(落石)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비록 바위로 이루어진 협곡(峽谷)이지만 생각보다는 암질이 약하단다. 아까 오는 길에 보았던 산사태 현장이 그 증거란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산사태로 봉우리 하나가 거의 다 무너져 내린 광경을 보았었다. 어찌나 많이 무너졌던지 다른 산자락에 터널을 뚫어가며 아예 새로운 도로를 내고 있었다.
▼ 버스에서 내리면 바위협곡에 자리 잡은 ‘연자구(燕子口)’이다. 해발이 247m쯤 되는 연자구는 절벽 아래 부분에 침식작용으로 인해 생긴 구멍들이 숭숭 뚫려있다. 이 구멍을 제비들이 자신들의 둥지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예전에는 많은 제비들이 살았었으나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고 공사가 계속되면서 이곳을 찾는 제비들의 숫자가 해마다 줄어든다고 한다. 앞서가던 가이드가 ‘침 흘리지 마라’는 조크(joke)를 던진다. 중국의 진미(珍味) 중 하나로 꼽히는 ‘제비집 요리(燕窩:연와)’를 떠올리지 말라는 것이다. 연와(燕窩)의 재료는 바닷가에서 사는 재비의 둥지로 만들기 때문에 이곳과는 무관하단다.
▼ 억겁의 세월동안 폭풍우와 홍수로 등으로 침식작용을 일으켜 단애(斷崖)가 형성되었고, 또 아주 오랜 세월동안 물이 흐르면서 수많은 구멍, 즉 포트홀(Pothole)이 만들어 졌다. 저 구멍에 제비가 집을 짓고 산다고 해서 ‘제비구멍’이란 뜻의 ‘연자구(燕子口)’라는 이름이 붙었다.
▼ 아래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출렁다리 하나가 보인다. JTBC에서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의 출연자들이 건너던 다리가 아닐까 싶다. 겁쟁이 정형돈이 무섭다고 벌벌 떨다가 중간에도 이르지 못하고 되돌아서던 그 다리 말이다. 하지만 우리 팀의 일정에는 다리를 건너보는 게 포함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
▼ 연자구는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구성된 곳이다. 이 바위들이 자연적인 침식작용에 의해 아름다운 지형과 독특한 협곡을 만들어 냈다. 탐방로는 도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웅장하고 아름다운 태로각협곡을 안전하게 감상할 수 있는데, 협곡 쪽으로 뚫린 작은 터널들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이 수려하기 짝이 없다. 하긴 대만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 명소라니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길을 걷다가 눈을 들어 올려다보면 아름다운 협곡이 보이고, 내려다보면 한없이 꿈틀대고 있는 계곡이 보인다. 계곡에 흐르는 물이 맑은 옥빛이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어쩌겠는가. 이 정도의 풍광만 갖고도 훌륭하니 만족하고 볼 일이다. 아무튼 협곡 사이로 흐르는 물은 장춘사 앞에서보다 훨씬 더 탁해졌다. 참고로 이곳 태로각협곡의 대리석 암반(巖盤)은 탄산칼슘의 함유량이 높아 물에 잘 녹는다고 한다. 그렇게 녹아내린 물이 우유를 연상시킬 정도로 뽀얀 색깔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 잠시 후 진행방향 저만큼에 기둥들이 늘어선 근형교(斳珩橋, 진헝차오)가 보인다. 하지만 저건 다리가 아니다. 그 왼편에 보이는 다리가 근형교(斳珩橋)이며, 기둥들이 늘어선 곳은 근형교의 부수시설쯤으로 보면 되겠다. 아무튼 도로를 내면서 깊게 파인 터널의 외곽에 교각(橋脚)을 세운 것이 여간 특이한 게 아니다.
▼ 근형교가 멋진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온다. 작년에 로마에 들렀을 때 보았던 ’성 베드로성당‘의 열주(列柱)들처럼 늘어선 교각들이 여간 멋스럽지가 않다. 근형교 아래의 독특하게 생긴 바위가 바로 ’추장암(酋長岩)‘이다. 그 모양이 인디언 추장의 옆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추장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툴툴 거리는데 토사 붕괴를 우려하여 입 부분을 메워 모양이 조금 바뀐 탓일 거라고 일행이 알려준다.
▼ 잠시 후 각종 음료와 간편한 음식 등을 파는 휴게소 하나가 나타난다. ’근형휴게소(斳珩休憩所)‘라는데 이곳 ’동서횡관공로‘ 공사 중에 순직한 ’근형((斳珩)‘이라는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휴게소란다. 휴게소 주변은 전망대와 쉼터를 갖춘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 공원에는 ’근형((斳珩)‘의 흉상(胸像)이 세워져 있다. 그는 동서횡관공로 공사의 기술부문 총 책임자였는데, 1957년 10월에 발생했던 지진의 피해상황을 점검하러 나갔다가 산사태에 휩쓸려 순직했다고 한다. 이에 장제스의 아들이자 역시 총통이었던 장징궈(蔣經國)가 그를 기리기 위해 공원을 조성하고 흉상을 세웠다. 공원의 옆에 있는 다리의 이름도 ’백룡교(白龍橋)‘에서 근형교(斳珩橋)로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 휴게소를 지나면 ’근형교(斳珩橋)‘가 길손을 맞는다. 근형공원을 조성하면서 다리의 이름까지 바꿨다는데, 다리의 초입에는 제비의 동상을 만들어놓았다. 이곳이 ’연자구 협곡‘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 다리를 지나면서 뒤돌아본 풍경
▼ 협곡에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폭포들도 꽤나 많이 눈에 띈다. 바위에 뚫린 구멍에서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힘이 제법 강하다. 아무튼 누군가는 저때만 해도 맑은 물이라고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반원형으로 늘어선 교각들이 올해 초 스웨덴에 들렀을 때 보았던 왕궁 앞 회랑(回廊)을 쏙 빼다 닮았다. 아니 바티칸시티의 ’성 베드로 성당‘ 앞 열주들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게 옳겠다. 재질이나 마감은 많이 다르겠지만 저런 외형 하나만 갖고도 ’포토죤(photo zone)‘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 이제 탐방로는 ’구곡동(九曲洞)‘으로 들어선다. 태로각 협곡의 절벽 사이를 꺾어 들어가는 아홉 개의 동굴이라 하여 구곡동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해발 300m를 기점으로 하는 태로각 협곡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인들은 ’구(九)‘라는 숫자를 아주 많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구곡동 또한 그런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란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골짜기가 있는 골짜기라는 것이다.
▼ 길은 절벽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나있다. 건설 당시만 해도 이 길은 군사용 목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새로운 도로를 낸 곳에서는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경관을 보여준다. 깎아지른 절벽 중간에 걸쳐진 도로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그 하나하나에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멋진 풍경화가 되어 다시 되살아난다.
▼ 용해(溶解)가 잘되는 암반이 물길에 닿아 쉽게 침식(侵蝕)되면서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지금과 같이 구불구불하고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연의 섭리가 저런 절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반면에 나쁜 점도 있다. 비가 오면 낙석이나 산사태가 발생하는 빈도가 매우 잦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안전모를 그 증거로 보면 된다.
▼ 눈을 돌리는 곳마다 깎아지른 절벽들이 사방을 뒤덮고 있다. 소문대로 뷰포인트(viewpoint)로 각광받을 만하다. 어느 방향을 보아도 절벽의 거대한 암반들이 보이는데, 저 절벽들의 대부분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졌다니 그저 놀랄 수밖에 없다. 태로각의 가치가 그저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이곳의 대리석을 모두 채취하여 수출할 경우 대만의 2천만 국민들이 2년 동안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라고 한다.
▼ 연자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 태로각 협곡에서 가장 거대한 바위인 추록 대단애(錐麓大斷崖)와 복기 대단애(福磯大斷崖)를 볼 수 있다. 이 바위들은 각각 한 덩어리로 이루어졌는데, 길이 1.2km에 높이가 200m쯤 되는 거대한 바위들이다. 그런데 앞서가던 탐방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카메라로 잡지는 못했지만 산자락에서 원숭이가 노닐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글에선가 공로를 걷다보면 새소리와 시원한 바람은 기본, 운이 좋을 경우엔 ‘타이완 원숭이’의 특이한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행운이 찾아왔는데 어찌 환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추록 대단애(錐麓大斷崖) 앞에 자동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더 이상은 관광객의 통행이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대만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환태평양 지반 위에 위치한 섬으로 태풍과 지진이 비교적 잦은 편이다. 거기다 급한 경사면이 더해지니 낙석(落石)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항상 주의가 요구되는 곳이라는 얘기다. 이로 인해 가끔은 통행이 금지되기도 한단다. 그런데 다음 구간은 이보다 한 수 위의 조치가 내려졌다고 한다. 아예 통행을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낙석이 우려되는 구간의 보수공사가 한창이란다.
▼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느 글에선가 두 대단애(大斷崖)가 맞닿아 있는 부분의 하늘이 마치 대만 국토의 생김새와 흡사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대만의 북쪽 부분, 그러니까 고구마의 머리 부분을 쏙 빼다 닮았다.
▼ 협곡의 바위들은 대리석의 무늬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다. 아름다운 문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아래로 흐르는 물은 탁하기 짝이 없다. 미추(美醜)가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 다음 행선지인 ’천상(天祥)‘까지는 버스로 이동한다. 잠시 후 달리는 차창 밖으로 붉은 빛 다리가 하나 보인다. 자모교(慈母橋)라는 다리인데, 이름에 대한 유래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장개석의 아들이자 대만의 전 총통이었던 장징궈(蔣經國)가 이 지역의 순찰을 돌다가 밤이 늦어 하룻밤을 자모교 인근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 이 다리의 이름을 자모교로 지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이곳에서 공사에 동원된 원주민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 그의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였으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믿지 않고 이곳에서 아들이 오기만을 계속 기다렸다고 하여 자모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이 자모교는 본래 현재 위치보다 30m 가량 높은 곳에 지어져 있었는데, 1979년 태풍으로 유실되어 1984년에 현재의 위치에 붉은 색 기둥과 대리석으로 재건하였다고 한다. 자모교의 반대편에는 난정(蘭亭)이라는 정자가 지어져 있다. 정자가 세워져 있는 바위는 옆에서 보았을 때 그 모양이 마치 개구리 같아 예전부터 개구리 바위라고 불렸는데, 난정이 세워지자 마치 개구리가 왕관을 쓴 것 같다 하여 ‘개구리 왕자’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 잠시 후 널따란 주차장에 이른다. 원주민인 아미족(阿美族)이 운영하는 휴게소가 이곳에 마련되어 있다. 길은 계속해서 협곡을 따라 위로 향한다. 대만의 동과 서를 관통하는 도로(東西橫貫公路)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막혀있다고 한다. 폭풍우로 인해 막힌 길을 다시 잇는 공사가 지금 한창이란다.
▼ 주차장에는 삼각으로 된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녹수상조(綠水賞鳥)라는 새와 이곳 녹수(淥水, Lushui)의 관광안내도와 함께 중횡공로(中橫公路), 즉 동서횡단공로(東西橫貫公路)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건설 당시의 험난했던 공사현장의 사진을 첨부해두었다.
▼ 고개를 드니 반대편 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산자락의 한가운데를 마치 숟가락으로 긁어낸 것과 같이 골짜기가 깊게 파여 있다. 이른바 바위 협곡(峽谷)이다. 그 한쪽 바위벼랑에 길을 내놓았다. 이 길은 자연적으로 생긴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삽과 곡괭이로 파내려가 조금 더 넓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본래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길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원주민들을 감시하기 편하게 하기 위하여 넓게 만든 것이란다.
▼ 천상(天祥)은 태로각협곡 중 가장 중심에 있는 서비스구역이다.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식당과 상점, 그리고 호텔까지 갖추고 있다. 일단은 식당으로 내려가 본다. 원주민인 아메이족(阿美族)이 운영하고 있는 시설들 중 하나인데 테라스(terrace)까지 갖추고 있는 걸로 보아 손님이 제법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튼 이곳 천상에서는 아메이족들의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전통복장을 차려 입은 무희들이 수렵과 결혼, 축제 등을 주제로 노래와 군무(群舞)를 펼친다는 것이다. 특히 끝부분에 이르면 출연자들과 관람객들이 함께 어울려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춘단다. 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던지 공연관람은 여행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휴게소의 별미라는 망고주스 한잔 마시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는 일정이다.
▼ 태로각협곡을 둘러보고 타이페이로 되돌아 나가는 도중에 칠성담(七星潭) 해변에 들렀다. 화련을 대표하는 칠성담은 별과 관련이 많은 해변이다. 밤이 되면 빛나는 ‘북두칠성이 가장 잘 보이고 별들이 쏟아질 듯하다’고 해서 ‘7개의 별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의 칠성담(七星潭)이라고 불린다. 또한 이곳 칠성담은 시간에 따라 물색이 바뀌는 태평양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타이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도 유명한데 당장이라도 고래가 튀어나올 것 같은 바다 옆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단다.
▼ 빗속에 도착한 칠성담은 한마디로 광활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는 비 때문인지 파도가 무척 높다. 바람 또한 거세기 짝이 없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우산을 펼칠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느긋하게 머물 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냥 돌아설까 하다가 수면 가까이 가보기로 한다. 바닷가로 가까이 가면 바닥에 깔린 특별한 돌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게 될 거라는 누군가의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회색돌 표면에 누군가 직선으로 그림을 그려 놓은 듯한 석화암(石畵岩)이 해안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몽돌은 눈에 띄지 않았다. 파도가 높은 탓에 물로 들어가 볼 수도 없다. 몽돌의 반출이 불가능하니 정 욕심이 날 경우 자그마한 것 한 개만 살짝 들고 가라는 가이드의 충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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