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대만 여행
여행일정 : ‘17. 12. 12(화) - 15(금)
여행국가 : 대만
여 행 지 : 타이페이(용산사, 고궁박물관, 101층 전망대, 스린야시장, 시먼당거리), 화련(태로각협곡, 칠성담 해변), 지우펀, 스펀, 야류 지질공원
개관 :
♧ 대만(臺灣 Taiwan) : 고구마처럼 생긴 3만6000㎢(한국의 약 4분의 1)의 땅덩어리에서 약 2300만 명의 국민(대만성인 84%, 대륙본토 14%, 원주민 2%)이 살아가는 인구밀도(人口密度)가 매우 높은 섬나라이다. 이중 원주민은 루카이, 파이완, 부눈, 트로코, 아미 등 13개 부족으로 약 32만5000명에 이르고 있다. 수도는 타이페이(臺北 Taipei)로 대만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치, 경제, 금융의 중심지로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또한 대만의 발상지이자 역사와 문화의 도시인 대남(臺南 Tainan), 대만서쪽의 교통중심도시 대중(臺中 Taichung), 대중시의 중앙고속도로 끝에 위치한 대만 5대 국제항과 태로각 협곡의 도시 화련(華連 Hualien), 대만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고웅(高雄 Kaohsiung), 열대지방의 아름다움이 있는 최남단 도시 간정(墾丁 Kenting)) 등의 주요도시가 있다. 대만의 정식 명칭는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고 하며, 중국의 내전에서 밀린 국민당이 세운나라로 쑨원(孫文)을 국부로 삼고 있으며, 고(故) 장쩌스(張介石)총통이 장기간 집권하면서 대만을 번영시켜 놓았다고 해서 장 총통의 동상과 유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타이페이의 중정기념관과 중정기념공원, 충렬사, 고궁박물관 등이 장 총통 집권과 그의 사후에 건립된 관광명소이다. 하지만 집권당인 현 총통 차이잉원(蔡英文, Tsai Ing wen)의 민진당 정부는 중정기념관의 현판인 '중정지정(中正至正)을 자유광장(自由廣場)으로 바꾸는 등 탈(脫) 장쩌스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때문에 찬반 양측의 충돌과 데모가 잦은 편이다.
♧ 타이베이(臺北, Taipei) : 타이완 섬의 북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시간을 돌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찍이 기원전 4000~2500년의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지리적으로는 동아시아 해상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17세기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 서구 열강이 차례로 점령하며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청나라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제1 항구인 멍자(艋舺), 즉 오늘날의 완화(萬華)를 통해 중국 동남부 해안 지역의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하여 타이베이 성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 후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반세기 동안 받게 되었고, 2차 대전 이후에 국민당 정부에 반환되어 1949년 중화민국의 수도로 선포되었다. 이런 복잡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타이베이의 문화는 다원적인 특색을 가지게 되었다. 타이베이에는 중국 역사의 보고인 ’국립 고궁박물원‘과 현대의 건축 기술을 자랑하는 ’타이베이 101‘ 빌딩이 공존하고 있으며,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사원들과 야시장의 음식이 여행자의 눈과 입을 사로잡는다. 또한 중국의 전통 문화를 보존하면서도 세련된 현대 문화를 향유하고 있어, 여행자들의 발이 닿는 곳 어디든 독특한 문화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국제도시이다.


여행 첫날 오후 : 타이페이 용산사(龍山寺)
특징 : 타이베이시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寺院)으로, 1738년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절 중국 복건성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소실되어 전후인 1957년에 다시 재건하였다. 이 사원은 두 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조용하고 고즈넉한 우리나라의 사원들과는 달리 매우 번잡한 도심(都心)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모시는 신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절들과는 달리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와 유교, 그리고 토속 신앙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 용산사가 대만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이 절의 대전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 때문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이다. 공습경보가 발령될 때마다 이곳 타이페이의 주민들은 용산사로 대피하였다. 부처님의 가호를 받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모기떼들이 용산사로 몰려들었단다. 모기에 시달리다 못한 주민들이 용산사에서 나와 다른 대피장소로 이동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주민들이 모두 이동하자마자 용산사에 폭격이 떨어져서 절이 초토화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주민들이 용산사로 돌아왔는데, 폭격을 맞은 절에 오로지 ’관세음보살상‘만이 아무 피해가 없더란다. 이에 주민들은 폭격을 피했던 것이 관세음보살의 가호라고 생각하여 용산사를 다시 재건하고 관세음보살을 크게 모셨다고 한다.

▼ 버스는 용산사의 담벼락 아래에다 우리를 내려놓는다. 사원의 정문 앞으로도 차도(車道)가 나있지만, 아무래도 그쪽에서는 주·정차가 허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튼 담벼락 아래로 난 인도를 따라 50m쯤 걷자 사원의 정문(正門)이 나타난다. 정문은 세 개로 나뉘어 있다. 가운데는 차량이 지나다녀도 될 정도로 넓은 반면에, 양 옆의 두 문은 그보다는 한참이나 좁게 만들었다. 신도(信徒)나 관광객 등 방문객들을 위한 문일 게다.


▼ 정문으로 들어서면 ’용산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전전(前展)이 길손을 맞는다. 용산사의 전체적인 구조는 중국 궁전(宮殿)의 건축 양식 중 하나인 ‘삼진사합원(三進 四合院)’의 양식을 따라 지어졌다고 한다. 후원(後園)까지 이르는데 문(門)을 세 번 통과해야 하는 건축양식이다. 산문(山門)과 조정(朝庭), 전전(前殿), 중정(中庭), 대전(大殿), 후정(後庭), 후전(後殿)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돌아올 회(回)’ 혹은 ‘날 일(日)’자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조정(朝庭)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방금 산문이랄 수 있는 정문을 들어섰으니 말이다.

▼ 전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삼천전(三川殿)과 두 개의 출입문인 용문(龍門)과 호문(虎門)이다. 이중 삼천전의 ‘삼(三)’은 전각이 갖고 있는 문(門)의 개수를 나타내고, 천은 ‘내 천(川)’자를 사용하여 전각문의 외형을 상징한단다. 참고로 이곳 삼천전의 중앙에는 금강저를 들고 있는 인왕이 서 있으며, 동서남북 방향으로는 지국천왕과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 등 사대천왕이 절을 수호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러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 용산사의 전각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기 짝이 없다. 특히 지붕에 있는 화려한 색채의 장식들이 눈길을 끈다. 중국 남부와 대만의 전통 양식인 ‘교지도(交趾陶)’라고 한다. 교지도(交趾陶)란 광동(廣東)에서 발원한 저온(低溫) 다채(多彩) 유약(釉藥) 도자기로 현재 대만 가의현에서 적극 보호 발전시키고 있는 전통공예 중의 하나이다. 아무튼 용산사의 고풍스러움과 화려함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요소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너무 요란해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라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다. 담백하면서도 고풍스런 것들을 좋아하는 내 취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의견보다는 가이드가 전해준 내용을 잠시 옮겨본다. <용산사는 중국 남방 지역과 대만의 전통 건축 기술이 융합된 건축 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특히 전전(前殿) 특유의 팔각 천장 장식(조정, 藻井) 및 대만 유일의 주동 용(龍)기둥과 대전(大殿)을 떠받치고 있는 황금 기둥의 나선형태의 천정 장식 등은 매우 희소한 양식이다. 또한 지붕에 있는 화려한 색채의 장식도 빼놓을 수 없다.>

▼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지붕과 처마는 화려하게 채색(彩色)되어 있다. 특히 지붕의 장식물들 모두는 도자기로 되어 있단다. 햇빛으로 인한 변색(變色)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란다. 가이드는 그 예로 서안(西安)의 병마총(兵馬塚)을 들었다. 무채색(無彩色)인 현재의 도용(陶俑)이 발굴 당시만 해도 화려한 색상을 자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중국 당국은 다른 여러 황릉의 발굴을 추후로 미루고 있다고도 했다.

▼ 오른편에는 ‘정심폭포(淨心瀑布)’라는 인공폭포가 만들어져 있다. 저 폭포의 물줄기를 따라 세속에 찌든 잡념들을 다 씻어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한 뒤에 사원으로 들어가라는 모양이다. 그 맞은편에도 작은 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용(龍)과 잉어 조형물이 가는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 여간 예쁘장한 게 아니다. 연못에는 여러 색깔의 인어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 아래 그림들은 삼천전의 양 옆으로 난 용문(龍門)과 호문(虎門)을 차례로 올렸다. 대만 사람들은 흔히 오른편으로 난 용의 입으로 들어갔다가 왼편 호랑이의 입으로 나오면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고 있단다. 가이드의 말로는 용과 호랑이가 갖고 있는 신성함의 차이 때문이라는데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는 삼천전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이런 행위는 자칫 큰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삼가야 한단다. 그래선지 삼천전으로 들어가는 문에다 아예 울타리를 쳐놓았다.


▼ 용문을 통과하면 2개의 향로와 함께 대전(大殿)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이 나타난다.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이다. 관세음보살은 불교에서 아미타불의 협시보살(脇侍菩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사찰 중앙의 가장 큰 자리에 대웅전을 짓고 그 안에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게 보통이다. 이때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을 모시기도 한다. 하지만 용산사는 이와 반대로 되어 있다. 대전에다 보살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관세음보살을 관음보살로 줄여 부르는 게 보통이다. 이는 당태종의 이름인 이세민의 ‘세’자와 같다고 해서 민간에서 줄여 부른데서 연유한단다.


▼ 사원은 참배객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 우리나라 절간이 조용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도심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부처님뿐만 아니라 도교와 유교의 신들까지 몽땅 모시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향을 태우며 신들께 비는 게 습관화된 중국인들의 특성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용산사는 수많은 신(神)들과 7개의 큰 향로가 있다. 7개 향로는 관음로(불교의 대보살이자 대만 가정오신의 수존, 자비로 중생들을 구원), 천공로(천계를 다스리는 신이자 도교 최고의 신인 옥황상제), 마조로(항해의 수호여신 및 재물신인 천상성모와 천성성모, 천후, 천기 등), 수선존왕로(바다의 수호신), 주생랑랑로(순산의 신), 문창로(승진과 시험의 신), 관성로(상업과 무의 신인 관우) 등인데, 먼저 가장 인기가 좋은 천공로와 관음로를 들른 후, 후전의 가운데에 있는 마조로를 참배하고 이어서 우측의 수선존왕로, 좌측의 주생랑랑로에 향을 올리고, 다시 우측의 문창로와 좌측의 관성로를 참배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참배 방법이란다.


▼ 참! 깜빡 잊을 뻔 했다. 들어서자마자 사무실로 보이는 곳에서 사원에서 모시고 있는 신들을 참배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용산사의 구석구석을 설명해놓은 팸플릿도 비치되어 있으니 한번쯤 들러보는 게 좋을 것 같다.

▼ 대전을 왼편에 끼고 돌면 후전(後展)이 나온다. 용산사의 가장 뒤 쪽에 위치한 후전에는 천상성모전과 문창제군전, 화타청, 관성제군전, 월노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전과 대전과는 달리 후전에는 주로 도교(道敎)의 신들이 모셔져 있다. 후전의 중앙에 위치한 천상성모전은 바다의 여신이자 재물신인 마조를 봉양하는 전이다. 그 양 옆으로 문창전과 관제전이 위치하고 있으니 문무(文武)를 좌우에 끼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 성모전 안쪽 중앙에는 천상성모, 즉 마조 상이 있으며, 양 옆에는 해의 신인 태양성군과 달의 신인 태음성군이 있고, 도교의 신이자 마조의 호법인 천리안과 순풍이가 있다. 천리안과 순풍이의 도움으로 마조는 바다 위의 재난의 모습과 통곡의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천상성모전 내부 우측에는 바다의 왕인 수선존왕, 권선징악을 행하는 성황예, 토지의 신이자 농업과 상업을 보호하는 복덕정신, 비와 바다의 신인 용신이 위치하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순산과 육아의 신인 주생랑랑,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할매인 지두부인, 잉태부터 육아까지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12노파가 자리 잡고 있다.

▼ 천상성모전을 마주보고 우측에는 학문의 신이자 수험의 신인 문창제군을 모시는 문창제군전과 의술의 신인 화타를 모시는 화타청이 자리하고 있다. 문창제군은 학문의 신이어서 고대만 해도 인기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명나라 시대에 과거시험이 새로이 정비·활성화되는 한편, 많은 이들이 과거 합격에 응시하기 시작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특히 청나라 시기에는 대륙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신이었다고 전해진다. 화타청은 삼국지를 읽으신 분이라면 모두 알고 있듯, 역사상의 실존 인물이다. 당시 외과술에 대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을 받았으며, 후대에는 도교의 신으로 추앙 받게 된다. 또한 화타청 벽면에는 사신무 중 동쪽을 수호하는 청룡이 교지도로 장식되어 용산사의 동쪽을 지키고 있다.

▼ 문창제군전의 반대편에는 무신이자 재신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관우(關雲長)를 모시는 관성제군전이 있다. 관우의 양 옆으로는 관우의 장자인 관평과 그의 충성스러운 장군인 주창장군이 관우를 호위하듯 자리하고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관평은 관우와 함께 형주에서 오나라의 군대에 죽임을 당했고, 주창은 관우와 관평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스스로 자결을 하였다 알려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관우는 무신일 뿐만 아니라 재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과거 관우가 의형인 유비의 부인과 함께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 조조가 관우를 회유하기 위하여 많은 재산을 내렸으나 그것을 전혀 쓰지 않고 두었다가 유비의 생환 소식을 듣자마자 아무 것도 취하지 않고 바로 떠나 버린 적이 있는데, 이러한 금전적인 청렴함 때문에 관우에게 기원을 하면 반드시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준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무신과 재신 이외에도, 관우는 요괴를 퇴치하는 신, 재난을 예지하는 신, 천계를 지키는 신 등 여러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숭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동묘(東廟) 역시 관우를 모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관묘(關廟)’이다. 관우 우측의 삼궁대제는 도교의 신으로써, 본래 천궁대제, 지궁대제, 수궁대제 셋을 합쳐 삼궁대제로 칭하나, 이 곳 용산사에는 수궁대제만 모셔져 있다. 관우의 좌측에는 불교의 지장보살이 있는데, 중생들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대보살로 숭배된다. 관성제군전을 나서면 바로 옆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월하노인의 월하청이 있다. 월하노인은 흔히 알고 있다시피 남녀 사이에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는 전설 속의 노인으로, 월하노인의 주머니에 있는 붉은 색 실로 서로 묶인 남녀는 서로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고 전해진다. 월하청의 벽면에는 반대편 화타청과 마찬가지로 사신무 중 서쪽을 수호하는 백호가 교지도로 장식되어 있다.





▼ 사원의 곳곳에는 제대(祭臺)가 만들어져 있다. 제대에는 과일이나 과자 등 갖가지 제물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이 제물들은 봉양한 사람들이 도로 가져가 먹는다고 한다. 자신이 불을 붙인 향 한 자루가 다 타고 난 후에 제물을 내리는데 이 제물들을 먹을 경우 복을 받은 다는 것이다.

▼ 이번 나들이는 ‘패키지여행’이다. 그러니 쇼핑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 대리석 가공품과 잡화, 보석 상점을 둘러봤는데,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대리석공장이었다. 대만의 특산품 중 하나인 대리석으로 만든 다양한 크기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정교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선지 가격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가장 비싼 것은 4억 원이 넘는다니 말이다. 대리석 조각품 외에도 옥(玉)으로 만든 팔찌와 반지들을 팔고 있었다. 하나같이 건강과 재복(財福)을 위한 것들이라는데 촬영이 금지되어 내부 사진은 생략했다.

▼ 이번 패키지여행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특전으로 ‘특별한 식사’를 내걸고 있었다. ‘금품딤섬’과 ‘샤브샤브’이다. 이중 내가 흥미를 가졌던 것은 ‘샤브샤브’이다. ‘딤섬’은 상하이에 출장 갔을 때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에 이미 들러봤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라는 JTBC-TV의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흘렸던 침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옳겠다. 지난주엔가 방영되었던 ‘대만편’에서 출연진들이 정신없이 먹어대던 ‘샤브샤브’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우선 맛도 기대에 못 미쳤을 뿐만 아니라 ‘뭉쳐야 뜬다’에서 제공되던 ‘무제한 리필’도 여기서는 없었다. 각자의 앞에 제공되는 야채와 몇 점 안되는 ‘대패 소고기’로는 고량주 한 병 비우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 패키지여행의 또 다른 특징인 ‘선택 관광’이 빠졌을 리가 없다. 일정에는 ‘타이페이 101’ 전망대 투어와 ‘전통 발마사지’를 끼워 놓았다. 이중 발마사지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코스였다. 그저 피로를 풀어주는 다른 나라의 발마사지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반사요법이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특정 부위의 경혈(經穴)에 자극을 줌으로써 관련된 다른 부분에까지 자극을 미치게 하는 치료요법이다. 특히 마사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평소의 질환까지 알아맞히는 그네들의 능력에는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지경이었다. 가이드의 전언에 의하면 이 기술은 대만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스위스의 오약석신부(본명 Fr. Josef Eugster)가 기존의 지압요법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원주민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병치레를 하는 이주민들을 위해 개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약석신부’ 자신의 치료 경험을 토대로 연구한 결과라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랫동안 류마티스(rheumatism)로 고생을 하던 그가 제도권 의학으로는 효험을 보지 못했는데, 동료 선교사가 권한 '각부반사구건강안마법'으로 치료해 본 결과 3일 만에 병마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그는 발의 안마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수많은 임상 시험을 거친 후, 그 결과를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대만에서 큰 센세이션(sensation)을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이고, 아시아 각국과 유럽에서까지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 차창 밖으로 자금성을 닮은 지붕이 보여 렌즈에 담아봤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꽃보다 할배(tvN 방영)’의 대만편에서 출연자들이 머물렀던 호텔이라고 한다.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금색 타일 지붕과 붉은색 기둥으로 외부를 장식했다니 내 눈이 정확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정식이름은 ‘그랜드호텔(The Grand Hotel)’, 중국어로는 ‘원산대반점(圓山大飯店)’이다. 원래는 ‘타이완 신궁’이 있던 곳이었으나, 1952년 초대 총통이었던 장제스의 영부인인 송미령여사의 제안으로 호텔로 재 조성되었단다.

▼ 여행 내내 머물렀던 ‘쿠바 샤또 호텔 (Kuva Chateau Hotel)’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255개의 객실을 보유한 5성급 호텔이다. 무료 Wi-Fi에 헬스클럽과 야외 수영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객실 또한 깨끗하면서도 널따랗다. 칫솔에 치약, 비누, 헤어·바디 샴푸는 물론이고 드라이기까지 제공되고 있어 잡다한 세면도구들을 챙겨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다. 룸에 전기포트가 비치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아침 식사 또한 최근에 들렀던 호텔 가운데 가장 뛰어났음을 보장한다. 5성급 호텔에 어울리는 시설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텔의 바로 앞에는 광명 공원(Guang Ming Park)이 있어 산책이 가능하고, 특히 5분 거리에 ‘중리 야시장’까지 끼고 있어 저녁시간대의 무료함까지 달랠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



♧ 에필로그(epilogue), 거리의 이정표나 광고판 등은 하나같이 눈에 익은 한자(漢字)로 표기되어 있다. 변형된 한자인 반자(半字)로 쓰여 있던 중국 본토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농땡이를 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웬만큼은 알아차릴 수가 있을 거라는 얘기이다. 다만 표의문자(表意文字)라는 한자의 특징으로 인해 영어를 바꿔놓은 한자 앞에서 쩔쩔매야 하는 상황도 가끔은 연출되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대만의 언어는 북경어와 대만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또 다른 특이점은, 길가에 수많은 오토바이(스쿠터)들이 주차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예 주차장까지 만들어져 있다. 출․퇴근 때에는 오토바이 행렬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서민들이 애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이드의 말로는 이 또한 아열대성 기후가 만든 특징이라고 한다. 더운 날씨다보니 걷는 게 죽기보다 더 싫은데, 이때 목적지까지 닿을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이동수단이 오토바이라는 것이다. 하긴 옳은 말이다. 부피가 큰 승용차의 주차장은 시설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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