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도 해솔길 1구간

 

산행일 : ‘13. 6. 15(토)

소재지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산행코스 : 구봉도 주차장→천영물 약수터→개미허리 아치교→낙조전망대→바닷가→송현어촌체험마을→구봉도 주차장(걷는 시간 : 2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해솔길’은 대부도의 둘레길이다. ‘해솔길’이란 이름은 명칭(名稱) 공모전을 통해서 선정된 이름이라고 한다. 바다 해(海)자와 소나무의 솔을 합친 것이 ‘해솔’이니 바닷가를 따라 난 길가에 멋진 소나무가 울창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해솔길은 대부도의 자연(自然)을 크게 손보지 않고 ‘해안(海岸) 따라 걷는 길’로 조성하였다. 길은 방아머리 선착장을 시점으로 구봉도, 선감도, 탄도항을 거쳐 대송단지까지 7개 구간(총 74km)으로 연결되어 있다.

 

 

걷기의 시작은 구봉도 주차장

지하철4호선 안산역에서 123번 시내버스를 타고 대부도로 오면 된다. 시화호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방아머리선착장이 걷기의 시작점이나, 걷는 거리를 단축시키고 싶을 경우에는 ‘구봉도 입구’에서 하차해도 괜찮을 것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구봉도 주차장’까지는 10분 이상을 더 걸어 들어가야만 한다. 입구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서 들머리를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둘레길은 주차장 뒤편으로 나있다. 들머리에 해솔길로 들어서는 입구임을 알려주는 아치(arch)와 둘레길안내도, 그리고 이정표(개미허리 아치교 1.8km. 천영물 약수터 0.8km) 등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솔길은 모두 7개 구간, 각 구간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구간은 1구간이다. 1코스는 방아머리공원에서 출발, 동서가든 캠핑장을 거쳐 북망산, 구봉약수터, 낙조전망대, 구봉선돌, 종현어촌체험마을을 거쳐, 돈지섬안길에 이르는 11.3km의 코스이다. 오늘 걷게 되는 구간은 그중 일부분으로 구봉도만 둘러보는 속칭 ‘속성 1코스’라고 불리는 4.3Km 구간이다. 그러나 1구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약수터와 ‘개미허리 아치교’, 그리고 낙조전망대 등이 모두 이곳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해솔길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애용하는 편이다.

 

 

 

 

 

일단 산으로 들어서서 오솔길을 따르다보면 어렵지 않게 걷기를 이어갈 수가 있다. 길이 아주 달 닦여있는 데다가, 중간 중간에 이정표까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산길은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준다. 주위 나무들은 대부분 참나무, ‘해솔길’ 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진 않지만 어떠랴 녹음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들과 교감(交感)을 시도해 본다. 심신(心身)이 풋풋해지더니 능선을 떠도는 바람결 따라 어느새 두둥실 떠오르고 있다.

 

 

 

산길을 조금 걷다보면 본격적으로 푸른 바다가 열린다. 시화방조제와 송도신도시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방조제에 세워진 풍력발전기가 이국적(異國的)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산행을 하다보면 가끔 항공기들이 머리 위를 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멀지않은 곳에 인천공항이 위치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20분쯤 걸으면 삼거리가 나타난다. 오른편에 보이는 해안(海岸)을 향해 나무데크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인다. 제법 긴 계단을 내려서면 ‘천영물 약수(藥水)’이다. 바닷가에 있는 탓에 혹시라도 짠물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물맛은 의외로 깔끔하면서도 시원했다.

 

 

 

 

 

 

약수터 근처 해안에서 또 다시 시야(視野)가 트인다. 바다 건너편에는 송도신도시와 인천대교가 아스라하고, 그 왼편에는 해안선 뒤에서 변도(島)가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있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까부터 눈에 들어오던 풍력발전기가 더욱 힘차게 그 날개를 돌리고 있다.

 

 

 

 

아까 내려왔던 삼거리로 다시 돌아가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는다. '개미허리 아치교‘로 가는 길이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짧게 치고 오르면 능선 위(이정표 : 개미허리 아치교 0.8Km, 낙조전망대 1.3Km/ 만남의 광장 0.9Km)에 올라서게 된다. 산길은 이곳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주변 풍경(風景)이 변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참나무 일색이던 숲길이 언제부턴가 소나무 숲길로 변해 있는 것이다. 이제야 ‘해솔길’이라는 둘레길의 이름이 실감이 난다. 소나무 숲 아래를 지나면서 바라보는 바다는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햇빛을 가린 소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솔향기가 향긋하다. 소나무 향기에 취하는 호사(豪奢)를 누려본다. 그러나 아쉽게도 소나무숲길은 그다지 길지가 않다.

 

 

 

다시 바뀌어버린 참나무 숲길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심심찮게 좌우(左右)로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멋진 바다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 걷고 있는 구봉도의 특징을 들라고 하면, ‘소나무 숲’ 보다는 차라리 바다가 열리는 조망(眺望)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구봉도는 아홉 개의 봉우리가 섬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육안(肉眼)으로 아홉 개의 봉우리를 구분할 수는 없다.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산길을 걸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해솔길의 주변은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 해안을 지키는 군인들의 초소까지도 아름답게 꾸며놓은 것이다. 주변 풍광(風光)을 헤치지 않으려고 공력을 들인 결과이리다.

 

 

능선을 따라 20분 정도를 오르내리다보면 본격적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그 내리막길의 끄트머리에서 해솔길의 백미(白眉)라고 일컫는 ‘개미허리 아치교’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는 구봉도와 건너편의 고깔섬을 잇는 다리이다. 그렇다면 그까짓 다리 하나를 갖고 ‘개미허리 아치교’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다들 왜 호들갑을 떨까. 이유는 단 하나다. 편의성으로 대변되는 다리를 예술(藝術)의 경지로 승화시켜버린 것이다. 내리막길에 서서 다리를 내려다보면 저절로 탄성(歎聲)이 나오게 된다.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다리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다.

 

 

 

 

 

개미허리 아치교를 건너면 ‘꼬깔섬(어느 글에서 찾아낸 이름이지만 정확하지는 않다)’이다. 울창한 참나무 숲길을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갑자기 길이 끊겨버린다. 해안과 연결된 곳이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진 탓이다. 10미터쯤 되돌아 나오면 오른편에 보이는 바다를 향해 길이 나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짧게 내려서면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다리가 나타난다. 아니 다리라기보다는 차라리 산책로에 더 가깝다. 바다를 향해 달려 나간 산책로의 끝에는 널따랗게 망대(望臺)가 조성되어 있다. 낙조전망대(落照展望臺)로서 한가운데에는 멋진 조형물 하나가 앉아있다. 노을과 햇빛을 형상화(形象化)했다는데 그 화려함이 서해의 낙조(落照)만큼이나 아름답다. 석양에 지는 해가 조형물의 중앙에 걸렸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일몰(日沒)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넓은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건너편에 웅크리고 있는 자그마한 섬 변도(島)는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서 두둥실 떠다니고,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영흥도로 건너가는 영흥대교가 아스라하다. 아스라한 서해바다 위에 펼쳐지는 하늘에는 하얀 새털구름이 둥둥, 도심(都心)의 하늘과 같은 하늘이건만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그 느낌 속에 또 하나의 멋진 추억이 알알이 여물어간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온 모처럼의 나들이, 일상의 번거로움을 벗어난 빈 여백(餘白) 위에다 ‘쉼표’ 하나를 찍어본다.

 

 

 

 

낙조전망대에서 다시 되돌아 나오면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바닷가로 내려서는 계단이 보인다. 종현어촌체험마을로 연결되는 바닷길이다. 해안선(海岸線)을 따라난 이 길은 밀물 때는 통행이 불가능하다.

 

 

 

‘개미허리 아치교’ 아래를 지나 갯벌로 내려서도 걷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갯벌이 바위와 자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질퍽거리지가 않는 탓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다보면 마치 제주도의 어느 해안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비릿한 바다 냄새를 잔뜩 머금은 바람 한 점이 코끝을 훔치며 지나간다. 바다 건너 저 멀리에는 선재도와 영흥도를 잇는 영흥대교가 뚜렷하고, 뒤돌아보면 개미허리 아치교가 나를 두고 어딜 가느냐며 애달픈 손짓을 보내온다. 낭만이 흠뻑 묻어나는 바닷길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면 바닷길은 자동차가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넓은 시멘트포장길로 변한다. 농촌에 농기계가 다닐 수 있는 농로(農路)가 있듯이 어촌에도 이렇게 넓은 도로가 필요한 모양이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얼마간 걷다보면 오른편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 두 개가 보인다. ‘구봉 선돌’이라고 불리는 바위들로서 큰 것이 할아배바위, 작은 것은 할매바위라고 한다. 고기잡이 나갔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오매불망(寤寐不忘) 기다리다 지친 할머니가 바위가 되었고, 몇 년 후에 무사히 돌아온 할아버지가 바위로 변한 할머니를 보고 따라서 바위가 되었다는 애달픈 사연을 지닌 바위라고 한다.

 

 

 

‘구봉 선돌’을 지나면 얼마 안 있어 ‘종현어촌체험마을’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낙조전망대 1.5Km/ 종현어촌마을안내소 0.5Km). 종현마을은 어촌체험과 함께 야외 수영장 등 다양한 놀이시설을 갖춘 유원지(遊園地)로 보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체험마을을 빠져나오면 해솔길 밟기를 시작했던 구봉도 주차장이다.

 

 

 

 

 

 

해솔길 걷기를 마친 뒤에는 근처에 있는 취우님 댁으로 이동했다. ‘바비큐(barbecue) 파티’를 열자는 취우님 부부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비큐를 준비하는 동안 집 근처를 둘러봤다. 집 바로 뒤에 위치한 ‘In Story'라는 펜션(아라치와 삼월이가 하룻밤을 묵은 곳이다)의 입구와 취우님 집의 경계어림에 있는 나이가 150살도 더 먹었다는 소나무가 너무 예쁘고, 집 주변의 묵밭에는 철 이른 쑥부쟁이가 한창이다. 그리고 집 아래에는 포도밭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도 주민들은 봄이 되면 늘 바빴다고 한다. 바다일과 채소밭 일만 해도 바쁜데, 거기다가 포도밭에서 순까지 매듭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 대부도의 포도는 바닷바람을 맞고 강한 햇빛을 쐰 탓에 당도(糖度)가 높아 예로부터 상품(上品)으로 대접 받아왔다. 참고로 대부도의 포도는 와인으로도 만들어 진다. 상표가 ‘그랑꼬또(Grand coteau)’인데, 프랑스어로 큰 언덕이라는 뜻이다. 대부도(大阜島)라는 지명(地名)의 한자풀이가 큰 언덕이니 생산지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취우님 댁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서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는 것이다. 서해바다는 낙조로 유명하니 취우님 댁에서 바라본 낙조도 당연히 일품일 것이다. 마치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파도가 넘실거리며 황금빛으로 빛나는 낙조(落照)를 카메라에 담았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놓쳐버렸다. 바비큐 파티에 흠뻑 빠져버린 탓에 해가 넘어가는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영암 기(氣)찬 묏길

 

산행일 : ‘13. 5. 25(토)

소재지 : 전남 영암군 영암읍과 군서면 일원

산행코스 : 천왕사주차장→기체육공원→기찬랜드→장곡제→월곡리주차장→월산사→왕인박사 유적지 갈림길→도갑저수지(소요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기(氣)찬 묏길’은 ‘기(氣)가 가득한 산길’이라는 뜻으로, 영암군에서 야심차게 만든 친환경(親環境) 명품 탐방로이다. 호남의 명산(名山)인 월출산과 도선국사와 왕인박사 등 이 지역출신 현인(賢人)들의 발자취를 한데 묶어 이야기가 있는 둘레길로 만들었다. 총 연장은 40㎞. 다섯 구간으로 나눠 테마별로 다르게 꾸몄다. 1구간(천황사 주차장↔기찬랜드)은 ‘기(氣)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공간, 그리고 2구간(기찬랜드↔월암마을)은 ‘문화 체험’의 공간으로 꾸몄다. 오늘은 이 두 구간을 걷게 된다. 나머지 3개 구간은 왕인박사와 도선국사의 삶을 배우는 ‘역사 체험’ 공간인 3구간(월암마을↔학산 용산마을), 영암의 자연과 생태를 즐길 수 있는 ‘생태 체험’ 공간인 4구간(용산마을↔학산 학계마을), 그리고 삼림욕과 영암시내를 조망(眺望)할 수 있는 ‘오감 체험’ 공간인 5구간(학계마을↔미암면 미암리)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 우리나라에서 기(氣)를 얘기하려면 계룡산을 빼 놓을 수 없다. 한때 전국의 무속인(巫俗人)들이 산의 기를 받는다고 계룡산으로 모여들었을 정도였다. 그 결과 신도안(新都內)이라는 취락(聚落)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그러나 계룡산에 못지않은 산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영암에 있는 월출산이다. 월출산의 기(氣)는 조선시대의 실학자(實學者)인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 1690~1756)선생에 의해 알려졌다. 그는 저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 월출산을 일컬어 ‘화승조천(火乘朝天)의 지세’라고 표현했다.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기를 내뿜는 기상’이라는 뜻이다. 영암군에서 월출산의 기(氣)를 스토리텔링(Storytelling)해서 야심차게 만들어 낸 상품이 바로 ‘기(氣)찬 묏길’인 것이다. 물론 이 지역이 배출한 현인인 왕인박사와 도선국사를 끼워 넣는 것도 결코 빠뜨리지 않았다.

 

 

‘기(氣)찬 묏길’의 들머리는 천황사 주차장

호남고속도로로 경유하여 무안-광주고속도로 나주 I.C에서 내려와 나주 방면으로 가다가 13번국도로 옮겨 타고 영암까지 가면 된다. 영암에서 계속해서 13번 국도를 타고 해남방면으로 달리다가 천황사교차로(交叉路 : 영암읍 개산리)에서 내려와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월출산 산자락에 자리 잡은 천황사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천황사주차장 입구의 반대편에서 영암의 명품 둘레길인 ‘기(氣)찬 묏길’ 걷기가 시작된다. 입구에 안내판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걷게 될 구간은 1구간과 2구간, 현재 2개 구간만 개통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걷게 될 거리는 천황사 주차장에서 기찬랜드까지의 1구간 6Km와 기찬랜드에서 왕인박사유적지까지의 2구간 8.9Km, 총 13.9Km가 될 것이다(안내도에 표시된 거리를 참조했다).

 

 

 

주차장에서 묏길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순수한 산길이 이어진다. 새로 개통을 시키면서 길을 조금 넓히는 등 사람의 손맛을 조금 탔으나 자연미(自然美)를 그대로 살리는 쪽으로 오솔길로 만들어 놓았다. 숲 사이로 난 길이 산의 지형을 따라 구불거리며 오르내린다. 산자락을 돌면서 가로지르다보면 가끔 숲이 열리면서, 영암 들녘이 내다보이기도 한다. 한 마디로 한적한 느낌이 드는 숲길이다. ‘기(氣)찬 묏길’의 1구간은 천황사주차장에서 기찬랜드까지의 6Km 구간이다. 이 구간의 테마는 ‘기(氣)를 체험 해보는 공간’이다. 월출산의 강한 기운을 느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1구간에서는 월출산의 헌걸찬 암릉이 조망(眺望)되지 않는다. 그저 새로 잘 단장해 놓은 둘레길에 울울창창하게 들어찬 소나무들을 보는 것이 다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월출산은 아주 가끔 산자락 일부분을 얼핏얼핏 보여줄 따름이다. 월출산의 기(氣)를 느끼기보다는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피톤치드(phytoncide)나 흠뻑 들이마시며 건강을 챙겨보는 것은 어떨까? 편백나무 다음으로 피톤치드를 많이 배출하는 나무가 소나무라니까 말이다.

 

 

 

 

주차장을 출발해서 1Km 정도 걸으면 길이 탑동약수터이다. 달고 시원한 물맛이 일품이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목을 축이고 가볼 일이다. 약수터에는 작고 예쁜 나무바가지가 놓여있으니 따로 잔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또한 약수터 옆에 ‘수질분석표’까지 붙어 있으니 마음 놓고 먹어도 괜찮다.

 

 

 

 

 

탑동약수터를 지나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길이 시작난다. 우선 길이 널따랗게 변한다. 돌을 깔아 포장한 길이 나오는가 하면, 계곡을 건너야 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다리를 설치해 놓았다. 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지만, 사람의 손을 탄 산길은 자연미를 잃어버린 게 흠이라면 흠이다. 주변 풍광(風光)도 별로 특이한 것이 없으니 다리 구경이라도 하며 걷는 것이 어떨까 싶다. 다리마다 모양새를 다르게 꾸몄으니 그것도 볼거리라면 볼거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약수터를 지나 600m만 더 걸으면 길이 두 갈래(기체육공원 2.5Km/ 기체육공원 2.8Km/ 탑동약수터 0.6Km)로 나뉜다. 왼편은 새로 개설한 길로 능선을 곧바로 치고 넘도록 해 놓았고, 오른편은 기존의 길로서 산자락을 우회(迂廻)하고 있다. 당연히 우회하는 길이 300m가 더 길다. 여기서 하나 알아두고 가야할 것이 있다. 아래로 우회하는 길에 대해서이다. 주차장에서 이곳을 거쳐 체육공원까지의 구간은 ‘삼남길’과 그리고 ‘정약용 남도유배길’이 겹치는 구간이다. 삼남길은 해남 땅끝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국내 최장의 걷기 코스이다. 또한 정약용 남도유배길은 전남 강진 다산수련원에서 구림마을까지 이어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다. 이 3개의 길은 기찬묏길이 시작되는 천황사에서 만난다. 어떤 길도 월출산이라는 명승지를 비켜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남도유배길은 구림마을까지 기찬묏길과 함께하고, 삼남길은 중간에 마을로 빠져나가 백룡산을 거쳐 북진(北進)한다.

산자락을 에도는 산길을 걷다보면 가끔 영암읍내가 내다보인다. 드넓은 영암평야의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도시가 둥지를 틀고 앉아있다.

 

 

 

 

자갈길을 걷다보면 돌을 바닥에 깔은 포장길이 나오고, 나무 데크로 만든 길을 지났다 싶으면 어느새 흙길이 이어진다. 거기다 볼품없는 시멘트길까지 보인다. 마치 세상의 모든 길을 죄다 모아 놓은 듯하다. 요새말로 길의 백화점인 것이다. 길가의 나무들도 각양각색(各樣各色)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참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로 시작된 길을, 언제부턴가 녹음이 짙은 단풍나무가 대신하더니, 이번에는 갑자기 산죽(山竹)이 군락을 이루며 한 낯인데도 어둡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리고 기찬랜드에 가까워지면서 산길은 금강송(金剛松)들이 독차지 하고 있다.

 

 

 

 

 

탑동약수터에서 새로 개설은 길을 따라 2.5Km를 걸으면 기체육공원삼거리이다. 기체육공원은 삼거리에 세워진 이정표(기체육공원 0.1Km/ 기찬랜드 1.4Km/ 탑동소공원 3.5Km)가 오른편 시가지(市街地)를 향하고 있고, 그쪽에 실내체육관이 보이는 것을 보면, 기체육공원은 체육관이나 종합운동장 등 영암군의 집단 체육시설 지역을 일컫는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기체육공원에서 월출산으로 올라갈 경우 산성치가 나온다. 그러나 산성치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구간은 막혀있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만 한다.

 

 

고래바위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기체육공원에서 1.4Km쯤 더 걸으면 기찬랜드이다. 기찬랜드는 월출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가둬 만든 천연 풀장이다. 2008년 개장한 이래 방문자 수가 1백만 명이 훨씬 넘었다고 한다. ‘기찬 묏길’과 함께 서로 보완(補完)을 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크다 할 것이다. 계곡 주변에도 캠핑장 등 사람들이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하게 꾸며 놓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계곡에는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 가뭄 탓인 모양이다. 물이 없어서인지 아직까지 수영장(水泳場)이나 이와 관련된 시설들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수영장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용 두 마리를 머리에 얹고 있는 도백교(道伯橋)가 보이고, 용추폭포는 이곳에서도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용추폭포의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고 도백교 난간 아래에 있는 용치약수(藥水)로 향한다. 폭포에서 내려오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가뭄에 물이 말라 메마른 폭포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용치약수는 지하 30m에서 용출(湧出)되어 나오는 지하 암반수(巖盤水)라고 한다. 이러니 물맛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용치약수

 

 

 

약수로 목을 축이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오른편에 야외무대가 보이고, 왼편에는 멋들어진 전통한옥지구(傳統韓屋地區)가 나온다. 숙박시설과 기(氣)건강센터, 그리고 친환경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단다. 한옥지구를 빠져나오면 엄청나게 널따란 주차장이 나온다. 기찬랜드는 년간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를 예상해서 저리도 넓은 주차장을 만들었나 보다. 저 주차장이 빼곡히 들어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기찬랜드가 월출산을 활용해서 새로운 관광(觀光) 소득을 올리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라니 말이다. 이곳 주차장에서 ‘기찬묏길’ 1구간은 끝을 맺고, 2구간이 시작된다.(이정표 : 왕인박사유적지 7.34Km)

 

 

 

 

 

‘기찬묏길’ 2구간은 도로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널따랗다. 아니 많은 구간에서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농로(農路)와 임도(林道)를 이용하고 있다. 기찬랜드 주차장을 출발해서 녹암마을 갈림길을 두 번(이정표 #1 : 기찬랜드 0.3Km/ 왕인박사유적지 7.14Km/ 녹암마을 0.4Km, 이정표 #2 : 기찬랜드 0.67Km/ 왕인박사유적지 6.81Km/ 녹암마을 0.5Km)을 지나면 대동제의 둑 위(이정표 : 왕인박사유적지 6.59Km/ 기찬랜드 0.85Km)로 올라서게 된다. 주차장에서 대동제까지의 묏길은 마을 앞 들녘을 가로지르거나 마을 뒤로 난 산길을 걷는 느낌이 강한 길이다.

 

 

 

대동제(堤) 둑에 설치한 나무 테크를 걷다보면 골짜기 너머로 월출산이 내다보인다.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이루어진 구정봉이다.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른다. 월출산의 기(氣)가 너무 강하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대동제의 ‘둑방길’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월출산의 봉우리들을 조망(眺望)할 수 있는 최적의 포인트이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잠시 한눈을 팔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거기다 운이 좋으면 철새들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기찬 묏길’은 원래 1구간은 ‘기(氣)의 체험’, 그리고 2구간은 ‘문화(文化)의 체험’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막상 걷다보면 1구간은 월출산의 기를 느끼기보다는 ‘소나무 숲길’이 인상적이었고, 월출산의 기(氣)는 2구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곳 대동제의 둑 위에서 바라본 월출산은 오늘 둘레길 걷기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다.

 

 

 

대동제를 지나면 주암마을 갈림길 두 번(이정표 #1 : 기찬랜드 1.81Km/ 왕인박사유적지 5.63Km/ 주암마을 0.2Km/ 이정표 #2 ; 기찬랜드 2.70Km/ 왕인박사유적지 4.74Km/ 주암마을 0.45Km)과 호동마을 갈림길 두 번(이정표 #1 : 기찬랜드 2.95Km/ 왕인박사유적지 4.49Km/ 호동마을 0.50Km, 이정표 #2 : 기찬랜드 3.05Km/ 왕인박사유적지 4.39Km/ 호동마을 0.30Km)을 지나 월암사입구(이정표 : 기찬랜드 3.90Km/ 왕인박사유적지 4.39Km)에 이르게 된다. 대동제에서 월암사입구까지의 길은 두 가지 느낌을 받게 된다. 먼저 대동제에서 ‘주암마을 갈림길’까지의 1Km구간은 그야말로 자연의 풍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배출된다는 편백나무 숲은 물론,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기는 산죽 숲, 그리고 행운의 상징인 클로버(clover)와 찔레꽃이 만개한 들길 등 산골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을 그대로 드러내 놓는다. 반면에 ‘주암마을 갈림길’에서부터 이어지는 묏길은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나 임도가 대부분이다. 농로(農路)를 겸한 묏길은 들판의 한가운데를 지난다. 길가의 논에서는 보리이삭이 한창 여물어가고, 마늘밭 너머로는 월출산이 의젓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인삼밭이 보이는가 하면, 분뇨냄새가 코를 찌르는 한우(韓牛) 사육농가(飼育農家)도 지나게 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길가에는 공장(工場) 건물들까지 보일 정도이다. 이정도면 묏길이 아니라 웬만한 도로를 걷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연히 시골길을 걷는 낭만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기(氣)찬 묏길’은 혼자 걷는 것 보다는 함께 걸어야 제 맛인 길이다. 가파른 오르막이나 험한 지형(地形)이 없는 순한 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길의 곳곳에는 월출산의 조망(眺望)이나 들꽃 등 구경할 것도 많다. 이런 길을 그냥 걷기만 한다는 것은 괜한 시간낭비일 것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걸어도 좋고, 그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걷는다면 오늘의 나들이는 웰빙(well-being)을 넘어 힐링(healing)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중간 중간에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정자(亭子)와 벤치들도 만들어 놓았다.

 

 

 

 

길이 너무 넓은 탓에 햇빛을 완전히 차단(遮斷)시키지는 못한다. 그늘을 쫒아가며 묏길을 이어가다보면, 심심찮게 정자(亭子)나 벤치들이 나타난다. 햇빛 때문에 지친 나그네들에게 잠시나마 그늘에서 쉬어가라는 모양이다. 그리고 가끔 나타나는 장승들은 인사성도 밝다.

 

 

 

월암사입구에서 왼편에 보이는 월출산방향으로 들어서서 100m쯤 올라가면 월암사가 나온다. 월암사는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직 단청(丹靑)도 하지 않았는데, 대웅전(大雄殿)과 요사(寮舍)채, 그리고 간판을 달고 있지 않은 단칸자리 전각(殿閣)이 전부인 자그마한 사찰(寺刹)이다. 그러나 기가 넘친다는 월출산의 암릉을 배경으로 서 있는 대웅전은 다른 유명사찰의 풍모(風貌)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참고로 이곳은 도선국사와 인연이 깊은 곳이라고 한다. 현재 3차 문화재발굴조사가 준비 중인데, 2차 발굴과정에서 ‘월산사’라고 쓰인 기와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월명사의 터가 월산사지(寺址)로 밝혀질 경우에는 도선국사가 스님이 되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는 불교의 성지(聖地)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월암사에서 440m만 더 걸으면 월산주차장이다. 오른쪽에 제법 넓은 주차장이 보이는데 이정표(월산주차장 0.14Km/ 기찬랜드 4.34Km)는 이곳에서 오른편 주차장 방향을 지시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새로 개통되었다는 왕인박사유적지는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주차장으로 내려가 보지만 끝내 나머지 구간의 진입로를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지도(地圖)를 검색해본 후에야 아까 이정표가 있던 삼거리에서 곧바로 직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영암군청에서 나머지 구간을 개설하면서 이정표 정비를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happening)이다. 기체육공원 근처에서 영암군수를 만났었다. 수행원 2명을 대동하고 둘레길을 둘러보던 그가 한 말은 ‘자주 찾아와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올레길을 잘 꾸며야할 것이다. 이정표 하나도 제대로 정비를 해놓지 못하고 다시 찾아오라고 부탁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일일 것이다. 이 뙤약볕에 주차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 방문객들이 과연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월산주차장 진입로에서 80m 정도만 곧장 나아가면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문화체험길’ 진입로를 알리는 이정표(죽정마을 2.3Km 무지개목교 500m/ 기찬랜드 4Km)를 만나게 된다. 이곳부터는 새로 개설된 흔적이 역력하다. 아직까지도 황토색깔이 그대로인 길바닥에는 파쇄(破碎)된 자갈들이 깔려있고, 길을 만들면서 깎은 산사면에는 아직까지 풀 한포기 자라나지 않은 상태이다. 당연히 길을 걷는 낭만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월출산은 예로부터 기가 센 산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월출산의 둘레를 감싸고도는 둘레길의 이름도 ‘기찬 묏길’이라고 붙였을 것이다. 월출산이 기가 세다는 것은 이중환선생이 ‘택리지’라는 책을 읽어볼 필요조차도 없다. 그가 얘기한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기를 내뿜은 기상(氣像)을 지녔다’는 표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하늘을 향해 솟구친 수많은 암봉들은 보기만 해도 뭔가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지개 다리

 

 

 

 

무지개육교에서 1.2Km, 그러니까 월산주차장에서 1.8Km를 걸으면 월암마을 표지석이 세워진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는 이정표(죽정마을 600m/ 봉창바위/ 왕인박사유적지 1.7Km)가 지시하는 죽정마을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삼거리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봉창바위 방향을 바라보면 산 중턱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의젓하게 앉아있다. 그러나 생김새만 봐서는 왜 봉창바위라고 부르는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는다.

봉창바위

 

 

 

 

월암마을 표지석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400m쯤 걸으면 오른편에 쉼터를 겸한 주차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이정표(왕인박사유적지 1.7Km/ 주차장 20m/ 봉창바위 400m)가 가리키는 왕인박사유적지 방향으로 조금만 더 걸으면 자동차도로를 만나게 되면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왕인박사유적지는 이곳 삼거리(이정표 : 왕인박사유적지/ 도갑사/ 기찬랜드)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어야 하나 오늘의 묏길 탐방은 이곳에서 접기로 한다. 책굴 둥 왕인박사유적지는 지난번 월각산을 오르는 길에 둘러봤기 때문이다.

 

 

 

둘레길 걷기의 날머리는 도갑사주차장

왕인박사유적지갈림길에서 도갑사주차장까지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갑자기 집사람의 발걸음이 더뎌지기 시작한다. 거리도 거리이지만 땡볕에 후끈 달아오른 아스팔트도로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보통 고역(苦役)이 아닌 모양이다. 도갑사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힘이 들기는 매 한가지인 모양이다. 하나같이 더위에 지친 모습들인데, 주차장까지의 남은 거리를 묻는 표정들이 거의 죽을상이다. 삼거리에서 2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도갑저수지가 나오고, 주차장은 저수지의 위쪽 끄트머리에 만들어져 있다.

 

 

 

남한산성(南漢山城)

 

산행일 : ‘11. 10. 3(월)

소재지 : 경기도 성남시, 광주시, 하남시의 경계

산행코스 : 남한산성유원지→약사사→검단산 갈림길→남문방향 성벽→동문→외성(벌봉)→북문→수어장대→왕궁→남문→유원지로 원점회귀(산행시간 : 4시간20분 )

 

함께한 산악회 : 나홀로

 

특징 : 전체면적 36.4㎢, 성 면적 2.3㎢에 달하는 남한산성 성곽(城郭)의 길이는 총 11.7㎞에 이른다. 이 가운데 본성은 9.05㎞이고, 나머지 2.71㎞는 옹성(甕城)이다. 성곽은 주봉인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의 연주봉, 동쪽의 망월봉과 벌봉, 남쪽의 이름 없는 봉우리 몇 개를 연결해서 쌓았다. 남한산성의 외부는 급경사(急傾斜)지만 성곽 안쪽에는 평균 해발고도(海拔高度) 350m 내외의 완만한 구릉(丘陵)이 있는 분지(盆地)가 형성돼 있다. 성안에는 우물 80개와 샘터 45개소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물도 풍부하다.

 

 

산행들머리는 남한산성 유원지 주차장(駐車場)

지하철 8호선 ‘산성입구 역’ 2번 출구 앞에서 버스(이곳에서 정차하는 거의 모든 버스)로 환승하여 4개 정거장 정도 들어가면 남한산성유원지(遊園地)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남한산성을 걸어서 오를 경우에는 이 유원지를 통과해야만 한다. 유원지 안으로 들어서면 도립공원(道立公園)답게 이정표 등 편의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남한산성 유원지 안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유원지답게 인파(人波)로 넘쳐나고 있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1/3 정도는 평상복 차림, 다들 요즘 살림살이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하긴 모처럼의 나들이에서까지 우거지상을 지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유원지 입구에 있는 공연장(公演場)에서는 굿이 한창이다. ‘단군제․도당굿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무당이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도당굿을 열연(熱演)하고 있는 모양이다.

 

 

유원지(遊園地)를 지나 남한산성의 남문(南門) 방향으로 오르다보면 오른편에 약사사(藥師寺)로 가는 길이 보인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자동차길이고 왼편은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게 되어 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왼편으로 접어든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오른편에 약사사가 보인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만 장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어딘지 모르게 주변의 경관(景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약사사(藥師寺) : 현 여래종(如來佛)의 종정(宗正)인 석인왕 대종사가 1967년에 세운 사찰(寺刹)이다. 약사사라는 이름은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을 봉안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대한불교(大韓佛敎) 여래종(如來宗) 총본산(總本山)으로서 종정스님이 상주하고 있으며, 여래종 승려의 교육장이자 수행처(修行處)이다.

 

 

 

약사사(藥師寺)를 벗어나 다시 계곡을 따라 올라선다. 약수터에서 시원한 감로수(甘露水) 한잔 마시고 다시 길을 재촉하면 얼마 안 있어 검단산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되는 능선위로 올라서게 된다. 검단산에서 올라오는 길은 차량(車輛)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널따란 도로(道路)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로가에 트럭이 세워져 있고, 트럭주막(酒幕)에는 막걸리를 사 마시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검단산 갈림길에서 남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왼편에 운동시설을 갖춘 작은 쉼터가 보인다. 훌라후프(Hula-Hoop)를 하고 있는 여인들의 자태가 참 곱다. 조금 더 걷다가 오른편으로 올라선다. 어수리꽃 등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언덕위에 옹성(甕城)이 나타난다. 제2남옹성(南甕城)이다. 성을 쌓을 때는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성벽으로 접근해 온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축성한다. 이 돌출부를 옹성(甕城) 또는 치성(雉城)이라 부르며, 남한산성의 남쪽 성벽에는 3개의 옹성이 있다.

 

 

 

 

 

첫 번째로 나타나는 암문(暗門)을 지나 성곽(城郭) 안으로 들어선다. 성곽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반반하고 넓어서 도무지 산성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길가에는 들국화와 코스모스가 무리지어 피어있다. 꽃에 약한 게 여심(女心)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들꽃 속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웃음소리가 온 산을 휘젓고 있다.

 

 

 

 

제3남옹성(甕城)을 지나면 길은 급경사를 이루면서 아래로 떨어진다. 저 멀리 동문(東門)을 지나 북장대터 쪽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선(線)이 무척 곱다. 동문의 왼편 위쪽에 비구니들의 수도처라는 망월사가 뚜렷하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동문이다. 동문 아래로는 노선버스가 지나다니는 널따란 자동차 도로(車道)가 지나가고 있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걸을 경우 1.7㎞ 지점에 남문이 있다.

* 동문(東門) : 남문(南門)인 지화문과 함께 사용빈도가 가장 높았던 성문이다. 인조 때 수축(修築)하였으며 정조 3년에 성곽을 개축한 후부터 좌익문(左翼門)이라 불렀다. 이 문이 다른 성문(城門)들과 다른 점은 성문을 돌로 계단을 쌓아 놓아 우마차(牛馬車)로 짐을 운반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곳의 지대(地帶)가 낮아서 성문을 지면(地面)보다 높은 곳에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동문(東門)에서 장경사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성벽(城壁)을 따라 오르는 것이 보통이나 계단을 오르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여유롭게 오를 수도 있다.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계단을 밟으며 힘겹게 오르면 왼편에 조계사의 말사(末寺)라는 호국사찰(護國寺刹)인 장경사가 보인다.

* 장경사(長慶寺,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 15호) : 남한산성 보수를 위해 전국의 승려(僧侶)들을 징집하여 성을 쌓게 하였고, 축성(築城) 후에는 승군(僧軍)을 주둔시켰는데 이들의 머무름을 위해 건립한 절이다. 멋스런 일주문(一柱門)에 비해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꼭 찾아보아야할 문화재(文化財)는 보유하고 있지 않으나, 윤장대(輪藏臺)는 한번쯤 둘러볼만하다. 윤장대란 티벳불교인 라마교에서 성행하고 있는 하나의 수행(修行)방식으로서, 원통에 경전(經典)을 복사해서 붙여 놓은 윤장대를, 한번 돌릴 때마다 불경(佛經)을 500번을 읽는 것과 같은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장경사에서 다시 성벽(城壁)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면 동장대터가 나오고, 암문(暗門)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봉암성이다. 봉암성의 주봉인 벌봉까지는 0.6Km, 성곽을 따라 돌아도 2Km가 채 못 되는 거리이니 한번쯤은 답사해 볼 일이다. 봉암성으로 들어가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하남시 객산 쪽으로 내려가는 암문이 보이고, 암문을 나서기 전에 오른편 성벽을 따라 위로 오르면 바위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벌봉이다. 벌봉은 봉암(蜂巖)이라고도 부르는데, 벌봉의 꼭대기에 있는 우람한 바위가 벌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물론 이곳 외성(外城)의 이름도 봉암성으로 부르고 있다.

* 장대(將臺) : 장대란 높은 곳에 세운 일종의 지휘소에 해당되며, 남한산성에는 4개의 장대(將臺)가 있었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각 하나씩 세웠는데 지금은 서장대(西將臺)에 해당하는 수어장대(守禦將臺)만이 남아 있다.

 

 

 

 

봉암성으로 들어가는 첫 성문(城門)으로 남한산성에 붙여 축조한 성문이다. 문루(門樓)가 있는 성문보다는 작고, 암문(暗門)보다는 다소 크다. 봉암성은 보조성곽(補助城郭)으로 위급할 경우에는 버릴 수 있도록 본성(本城)인 남한산성과는 성문(城門)으로 직접 연결시키지 않았다.

* 봉암성(蜂巖城) : 봉암성은 당초에는 없던 성곽으로 병자호란(胡亂)때 청나라 군대가 남한산성의 동쪽에 위치한 벌봉에서 남한산성을 엿보며 위협하므로 호란 후 숙종 12년(1686)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남한산성과 연결하여 추가로 쌓은 보조(補助)성곽을 말한다. 성의 입구는 길고 끝은 뭉퉁한 것이 마치 호리병을 닮았다. 남한산성과는 달리 성곽 대부분이 훼손(毁損)된 채로 방치되고 있다.

 

 

 

암문(暗門) : 성벽에 비밀히 뚫어놓은 문 또는 성벽에다 누(樓) 없이 만들어 놓은 문(門)을 말한다. 성곽(城郭)으로 통하는 문은 여러 곳이 있으나 모두 적(敵)이나 일반인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문이다. 하지만 암문은 비상시에 사용하는 문으로 일반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전시(戰時) 상황이 되면 군수물자를 조달하거나 비밀리에 군사를 이동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 숲이 우거진 곳이나 성곽 깊숙한 곳에 만들어져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는 문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들어진다(네이버백과 참조)

 

 

 

 

벌봉에서 다시 내성(內城)으로 들어가려면 주의가 필요하다. 성벽을 따라 곧바로 진행할 경우에는 꽤나 먼 곳에 위치한 한봉성까지 가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봉에서 다시 돌아오기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니 가는 길에 보이는 이정표를 확인하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 봉암성의 남쪽으로 다시 한봉성이 길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장대터에서 북문까지 성곽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대부분 산책로 같은 느낌이다. 급경사 내리막길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 거리는 길지 않기 때문에 걷는데 큰 부담이 없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오른편 성곽너머로 하남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문(北門) : 인조 때에 신축(新築)되었으며 이 문을 통해 세곡(稅穀)을 운반하였다. 정조 3년에 성곽을 개축한 후 전승문(戰勝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문으로 들어오는 길은 험하기 때문에 적들이 이 문으로 치고 들어올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우리 군(軍)이 적을 습격할 경우에나 사용했던 문이 아닐까 싶다. 전투용 문이니 당연히 전승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고...

 

 

 

북문에서부터는 성을 벗어나 성곽의 아래로 난 오솔길을 따라 답사(踏査)를 계속한다. 다소 거칠지만 들국화 등 야생화(野生花)가 만발한 천연(天然)의 길을 걷는 맛이 나름대로 운치(韻致)가 있어 좋다. 서문을 향해 오르는 길은 가파르지만 서두르지만 않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정도이다. 들꽃들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거닐다보면 저만큼에 암문(暗門)이 보이고 암문과 이어진 옹성이 보인다. 연주봉 옹성(瓮城)이다. 연주봉 옹성위로 오르면 하남시와 서울의 시가지(市街地)가 가깝게 다가온다.

 

 

 

옹성(瓮城) :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다. 남쪽에 제1, 2, 3 옹성, 북쪽에 연주봉 옹성, 그리고 동쪽에는 장경사 신지옹성 등이다.

 

 

 

 

‘연주봉 옹성’을 둘러보고 돌아와 이번에도 성곽(城郭)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성곽의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이곳에서 서문(西門)이 그리 멀지 않을뿐더러, 길을 따라 걷다가 바라보는 서울시가지의 조망이 뛰어남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걷다보니 전에는 보지 못하던 시설이 보인다. 망원경(望遠鏡)까지 갖춘 전망대(展望臺)이다. ‘아빠 홈플러스가 보여요.’ 망원경을 이용해서 자기 집 근처를 찾아낸 꼬마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전망대에서 고개만 돌리면 서문이 눈에 들어온다.

 

 

 

서문(西門) :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으며 정조 3년에 개축하여 우익문(右翼門)이라 불렀다. 1637년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降伏)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역사(歷史)의 현장이다. 서쪽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자를 이송하기는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서문(西門)에서부터는 다시 성곽의 위로 난 길을 따라 답사(踏査)를 이어간다. 서문에서 수어장대(守禦將臺)까지 이어지는 길은 한마디로 말해서 대로(大路)이다. 자동차 3~4가 한꺼번에 비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널따랗다. 성곽을 따라 세워진 울긋불긋한 깃발들이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고 있다. 어느 영화에서 본 한 장면 같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심경(心境)인지 성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뿜는 엔도르핀을 흡수하며 걷다보면 봉우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수어장대에 도착하게 된다.

 

 

수어장대(守禦將臺,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으로서, 남한산성 축성과 함께 축조된 동․ 서․ 남․ 북 4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대(將臺)로서, 수어청의 장관(將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장대의 특징대로 주변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솟아 있다. 인조 2년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 누각으로 지어 서장대로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에 이층 누각으로 증축하면서 수어장대로 이름을 바꿨다.

남한산성은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성곽(城郭)을 따라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려는 사람들과, 이곳 지자체(地自體)에서 개발한 둘레길을 돌며 심신(心身)을 단련하고 있는 사람들, 하나같이 건전한 생각과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들 사이에서 호흡하며 걷고 있는 나 또한 행복한 사람들에게서만 나온다는 엔도르핀(endorphin)이 무한정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어장대(守禦將臺)에서는 성곽(城郭)을 벗어나 왼편 오솔길로 접어든다. 행궁(行宮)을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행궁으로 내려서는 길은 울창한 수림(樹林)으로 뒤덮여있다. 소나무 군락지(群落地)가 장관으로 펼쳐지고 있다. 가파른 경사(傾斜)를 이겨내기 위해 갈지(之)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내리막길을 20여분 걸어 내려오면 음식점이 몰려있는 로터리(rotary) 부근이다. 왼편에 행궁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공사 중이라서 관람(觀覽)이 불가능하단다.

* 행궁(行宮) : 인조 때 지은 조선시대의 별궁(別宮) 또는 이궁(離宮)으로, 후금(後金)의 침입에 대비해 백제 때의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해 축조하였다. 유사시에 임금이 임시로 머무르던 궁궐의 하나로, 병자호란 당시에는 임시 궁궐(宮闕)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상궐(上闕) 73칸, 하궐(下闕) 154칸 등 총 3단 227칸으로 이루어진 행궁이었으나 모두 불에 타서 없어졌다. 지난 2003년 왕의 침소였던 상궐이 복원됐고, 이어서 업무를 보던 하궐도 2010년 가을에 준공되었다. 다만 일반인들에게 공개(公開)는 단청이 끝난 후에야 가능하단다.

 

 

행궁(行宮) 앞에 있는 주차장을 지나 성남 방향으로 얼마간 걸어 올라가다보면 왼편에 남문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널따란 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이내 고풍(古風)스런 남문을 만날 수 있다. 남문(南門)은 지화문(至和門)이다. 남한산성 4대문 중에 유일하게 현판 글씨가 남아 있는 문이기도 하다. 조선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 할 때 지화문으로 불렀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단다.

남문(南門)을 통과한 후 뒤돌아보면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성곽(城郭)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성을 수축(修築)할 당시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수령 350년된 느티나무 4그루이다. 느티나무들의 고고한 자태는,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려는 탐방객(探訪客)들에게 오랜 세월동안 지켜본 옛이야기라도 들려줄 것 같은 느낌이다. 하나 아쉬운 것은 치료를 위함인지 한쪽 면을 보호막으로 감싸고 있어서 마치 기둥처럼 보이는 것이 안쓰럽다는 것이다. 이 느티나무들은 보호수(保護樹)로 지정되어 있다.

 

 

산행날머리는 남한산성유원지 주차장(원점회귀)

남문에서 백련사를 거쳐 산행을 시작하면서 들머리로 삼았던 남한산성유원지까지 내려오는 길은 공원의 산책로를 방불케 한다. 경사가 진 곳도 있고, 굴곡이 크지 않은 계단도 있지만 오르내리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백련사 근처에까지 유모차(乳母車)를 끌고 온 젊은 아주머니도 볼 수 있었다. 등산로 주변은 헬스클럽형의 체육공원과 통일탑공원, 그리고 수많은 쉼터와 화장실을 곳곳에 설치해 놓아 찾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흔적들이 역역했다.

 

 

백련사(白蓮寺), 대한불교 원효종(元曉宗) 소속의 사찰(寺刹)로서 1975년 법선스님이 원래 정각사(正覺寺)가 있던 자리에 새로이 절을 개축하면서 이름을 백련암(白蓮庵)이라 고쳤고, 1979년 절을 신축(新築)하면서 다시 백련사로 바꾸었다.

 

 

 

 

달마산과 땅끝 나들이(3.11-12)

 

소재지 : 광주광역시 및 전라남도 나주시, 영암군, 해남군, 강진군, 담양군

일 정 : ‘11. 3. 11(금)-12(토)

3. 11(금)

15:10 : 서울출발(고속버스)

18:20:광주 비아간이정류장 도착

18:30:용영*본부장의 안내로 한국광기술원 방문

19:30:저녁식사(강호동의 ‘1박2일’로 뜬 육전 전문점)

21:30:호텔 체크인

3. 12(토)

07:00 : 광주 출발(승합차량)

07:30:아침식사(나주시내에서 전통음식인 나주곰탕)

09:00:월출산 무위사 답사

10:00:달마산 미황사 답사

10:30:박형* 부사장 처갓집 방문

11:00:달마산 도솔봉 및 천년역사길 답사

13:00:땅끝 전망대 및 땅끝탑 답사

14:00:점심식사(용영* 본부장의 전원주택에서 바비큐 파티)

16:00:강진군의 다산초당 및 백련사 답사

19:00:저녁시사(담양군 금성면, 청둥오리 전문점)

21:00:광주출발(고속버스)

같이한 사람들 : 박형*부사장, 유종*전무, 구제*전무, 용영*본부장

 

 

▼  무위사(無爲寺)

월출산 남쪽인 경포대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서 新羅 진평왕 39년(617년)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할 때에는 관음사(觀音寺)라 하였는데, 그 후 갈옥사(葛屋寺), 모옥사(茅玉寺)로 이름이 바뀌다가 조선 명종 때부터 무위사가 되었다. 문화재로는 國寶 제13호인 극락전과 寶物 507호인 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 등이 있다.

 

 

 

▼  해남읍에서 미황사가는 길, 미황사 조금 못미쳐에 있는 박형*군의 妻家, 부자집이라는 느낌이 外觀에서부터 전해져 온다. 아래의 향나무는 市價가 무려 일억원이나 된단다.

 

 

 

▼  미황사(美黃寺)

신령스러운 달마산의 암릉, 병풍처럼 펼쳐지는 그 암릉을 배경삼아, 오롯이 앉아있는 이름 그대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가람이 미황사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경덕왕 8년(749년)에 의조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947), 응진당(보물 1183) 등이 있다.

* 사적기에 따르면 금인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대사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일렀다고 한다. 이에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黃)’자를 쓴 것이라 한다.

 

 

 

 

▼  달마산(達摩山) 도솔봉(兜率峰, 417m))

미황사를 빠져나와 땅끝 방향으로 달리다가 마봉리에서 오른편 작은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산 정상을 향해 무섭도록 비탈진 도로가 나타난다. 급경사를 줄이기 위해 갈之자를 그리고 있는 도로의 오른편은 아찔한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왼편 봉우리 위에 군부대의 통신안테나가 보인다. 군부대 시설 방향으로 ‘등산 안내판’과 ‘도솔암 800m’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고, 산행은 ‘도솔암 이정표’ 뒤편 오솔길에서 시작된다.

 

 

 

▼  도솔암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은 기암괴석들이 즐비하여 그야말로 작은 금강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해남과 강진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멀리 서해 바다에는 다도해의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  도솔암(兜率庵)

이정표에서 약 15분 정도 걸으면 능선안부, 고갯마루에 도착하게 된다. 고갯마루 오른편에 허름한 요사채가 보이고, 왼편 바위 사이로 얼핏 도솔암의 殿閣이 보인다. 도솔암은 통일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고 산 아래 미황사를 세운 의조화상도 미황사 완성 전에 이곳에 머물며 수행했단다. 지금의 전각은 정유재란 때, 불탓던 것을 2002년에 다시 지었단다.

 

 

 

▼  하늘 뚫을 듯 뾰족하게 솟은 암봉 사이에, 암자가 마치 제비집마냥 딱 붙어 있다. 암자 가는 길도 운치가 있을뿐더러, 암자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도 일품이다. 저 멀리 남해바다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고, 그 물결 따라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이 흘러 다니는 광경이라니...

 

 

 

 

▼  미황사 천년역사길 : 땅끝에서 미황사 부도전까지 이어지는 길로서, 달마산의 산중턱을 가로지르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담소를 나누며 산책하기 딱 좋은 이 길은, 인도에서 불교가 처음 전파될 때 이 길을 통해 황소가 불상을 운반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어부와 아낙들이 불공을 드리러 오던 이 길은 半世紀前 도로가 뚫리면서 잊혀졌다가 얼마전 다시 정비했단다. 길은 대체로 완만하며, 편백나무 숲도 지나고, 너덜길도 지가가면서 이어진다. 대체로 볼거리는 많지 않으나 호젓해서 좋은 길이다. 불공을 드리러 오는 민초들이나 구도의 길을 찾는 스님들이 걷던 길은 구태여 아름다울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마음이 곧 눈일지니...

 

 

 

 

 

 

 

 

 

 

▼  땅끝전망대

땅끝은 끝이 아니다. 바다의 시작이다. 아니다. 바다의 끝이자, 땅의 시작이다. ‘끝의 끝은 다시 시작’이라는 오세영 시인의 말처럼, 땅끝은 땅과 바다가 그어놓은 ‘출렁 금’일 따름이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가슴이 울렁거린단다. 어찔어찔 머리가 어지럽단다. 발바닥이 간질간질, 귓속이 우렁우렁 젖어온단다. 그래서 찾아든 사람들일까? 한반도의 최남단인 외진 곳이 꽤나 많은 사람들로 넘치고 있었다.

 

 

 

 

 

 

 

 

▼  달마산 아래에 위치한 용본부장의 전원주택, 기존의 주택을 매입했다는데 뼈대를 보니 지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 집앞의 정자나무가 탐이날 정도로 멋지다. 

 

 

 

▼  다산 정약용 유적지(茶山 丁若鏞 遺蹟地)

소재지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사적 제107호)

코 스 : 다산초당-해월정-백련사(약 2Km)

특 징 : 다산이 백련사의 혜장선사(惠藏禪師)를 만나러 다녔던 이 길은 만덕산 중턱에 걸쳐 있다. 노약자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편한 오솔길로, 활엽수와 침엽수, 그리고 동백나무가 어울리면서 아늑하면서도 깊은 숲의 향기를 전해준다. 이 코스는 산림청과 (사)생명의숲국민운동에서 ‘아름다운 숲길’로 지정한바 있다.

* 다산은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됐고, 그 후 만덕산 중턱 초당에서 머물며 실학을 꽃피웠다. 그 고통스러운 유배의 나날을 함께 해준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혜장(惠藏)이다. 다산은 이슥한 밤이 되면 만덕산 자락에 자리한 백련사로 혜장선사를 만나러 산길을 더듬어 다녔단다. 그런 다산을 혜장선사는 언제나 차와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주었고... 두 사람은 思想과 宗敎가 판이하게 달랐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서로를 교우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다산이 혹독하다는 유배에서 살아남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혜장선사의 德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다산초당(茶山草堂) : 원래 작은 초가집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진 것을 해남윤씨 후손들이 다산유적보존회를 조직하여 기와집으로 새롭게 지었다. 1801년(순조 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강진으로 유배된 다산은,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18년 가운데 11년간을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백여 권에 이르는 책을 저술하였다고 전해진다.

 

▼  해월정에서는 강진 앞바다인 구강포와 강진들판, 그 너머에는 장흥의 천관산이 잘 조망된다.

 

 

 

▼  백련사(白蓮寺)

만덕산(萬德山, 408m) 아래에 위치한 절로서 통일신라시대 末期인 839년(문성왕 1)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다. 원래 만덕산 백련사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만덕사로 바뀌었다가,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고 있단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고, 비자나무와 후박나무 등과 함께 어우러진 절 앞의 동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 제151)로 지정될 정도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싸이월드의 미니월드 홈피를 정리하다가

아주 오래된 사진 몇 장을 찾아 냈습니다. 그리고 즐거웠던 추억 몇 점도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지 2년이 조금 못되었던 시점이니 만날 때마다 더 가슴이 설레었었고,

그런 분의 동생이나 친구분이었으니 모든 분들이 다 하나같이 소중한 분들이었던거지요.

아~ 물론 지금도 소중한 것은 마찬가지랍니다. ^^-*

 

사랑하는 집사람과 루다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집사람 친구분 내외와, 그 친구분 여동생네 내외...

그렇게 4쌍이서 충남 보령시에 있는 성주산 자연휴양림을 다녀왔었답니다.

 

이왕에 추억을 살리기로 작정했으니

당시 그곳을 다녀온 후에 제가 썼던 산문까지 찾아내서 함께 올려봅니다.

 

 

<당시의 소감을 적었던 산문>

 

요즘의 절은 아름답습니다.
풍경소리도 염불소리도 신록으로 스며들어 아득하기만 합니다.
연록에서 진록으로 변해가는 참으로 좋은 계절에 부처는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난 산속에 들었습니다. 꼭 부처님을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요.
산사의 숲길 걷다보면, 내 가진 번뇌 잠시라도 날려보낼 수 있을지 누가 아나요?


이름 모를 새소리에 눈을 뜹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마신 술의 후유증... 골이 지끈거립니다.
물론 속도 쓰리지만 조이님께는 내색할 수가 없습니다. 금주령 내릴지도 모르니까요.
수건만 달랑 들고 냇가로 내려갑니다. 이리도 맑은 물, 어찌 비눗물로 흐릴 수 있나요?.


봄의 계곡은 온유하고, 흐르는 물도 거칠지 않고 물가 풀잎은 보드랍습니다.
앗 차거~ 손가락 끄트머리, 돌 틈에 고인 초록빛 물속엔 묵색 조약돌이 옹기종기....
어~ 송사리 몇 마리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드는 걸 보니 동네 경사라도 있나봅니다.


아침식사 후 느긋하게 산행을 나섭니다.
발걸음이 왜이리 경쾌하냐구요? 저의 팔에 그녀가 매달려있거든요.
산의 초입... 꽃보다 고운 연둣빛 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입니다.
킁~킁~ 연둣빛 잎들의 싱그러운 비린내가 온 산에 가득하다 못해 산머리를 넘어섭니다.
새봄의 연둣빛 잎들은 조금씩 짙은 초록을 품어갑니다. 아마 여름을 예비하는 모양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녀린 잎들이 부대낌이 간지럽다 애교를 부립니다. 사르르~사르르~


산허리쯤에서 왼편에 편백나무 숲을 만났습니다.
수백 그루가 어디 하나 뒤틀린 곳 없이 하늘로 쭉쭉 뻗었습니다.
오른편엔 활엽수인 팽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들이 새 잎을 틔워 연둣빛 터널을 만드네요
양 숲의 머리끝에 짊어진 푸른 잎은 하늘에 맞닿았습니다. 열린 하늘가로 구름 한점 둥둥...


‘대·소변을 미련없이 버리듯, 번뇌·망상도 미련없이 버리자.’
언젠가 들렀던 선암사 뒤깐에 붙어있던 종이쪽지가 새삼스럽게 떠오름은 왜일까요.
어쩜 오늘이 초파일이라서? 조그만 인연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중생이랍니다.
늦은 봄 숲길 걷다보면 모든 번뇌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까요? 그 조차도 허망한 욕심...


숲의 넘치는 산소와 석가탄신일의 의미, 조그만 깨달음이 함께 해준 여행...
"하루를 잘 보내면 달콤한 잠을 이루고, 인생을 잘 보낸 이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어디선가 읽어본 글귀대로 오늘 저녁엔 달콤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귓가에 맴도는 창불(唱佛) 소리에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보령, 성주산 자연휴양림> 보령시장이 보내주신 한산소곡주와 안주... 잘 드셨죠?

 


 

 

 

 

 

 

 

 

 

 

 

 

 

 

 

 

 

 

6월의 첫째주...

수술후 집에만 계시는 조이님을 모시고

모처럼의 문경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혹시라도 심심해 하실까봐, 장인어른 내외분과...

고모님 두분을 모시고 다녀왔지요. 효도관광...ㅎㅎㅎ

다들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잘 모시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소와 레일자전거 등등...

문경시청에서 도와주셔서 편안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레일바이크 - 고모산성 - 진남교반 - 불정산 등산 - 문경새재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알뜰한 여행이 되었답니다. 

 

 

문경시 가은읍의 석탄박물과

전국에 석탄박물관은 태백과 보령, 그리고 이곳에 있답니다.

뒷산이 석탄공사의 은성광업소가 있던 곳인데,

갱도를 살려서 박물관으로 꾸몄답니다.

 

세계 각지의

희귀한 돌들을 수집해 놓았네요

 

 

굴속에서

광부들이 식사하는 모습입니다.

온통 먼지 투성이일텐데...

그래서 진폐환자들이 많이 생겼나봅니다.

 

굴속에서

석탄을 캐는 모습입니다.

 

SBS연속극 '연개소문' 촬영장 세트

가은읍의 석탄박물관 뒷편에 있습니다.

마침 촬영중있는데, 조용히 하라는 부탁외에는 아무 제지도 없는게 보기 좋았습니다.

대본 연습중인 배우들...

누워서 휴식중인 배우들 옆에서 같이 쉬었다 왔구요.

나중에 방영이 시작되면 꼭 봐야겠네요 

 

 

고모산성...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는데 적은 인원으로 능히 만군을 물리칠 수 있는 천험의 요새랍니다.

임란 때... 일본군이 몇번을 정찰해 본 결과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휘바람을 불며 지나갔다는군요.

씁쓸할 따름입니다

 

토천...

옛사람들은 참으로 위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았나봅니다.

절벽위의 조그만 소롯길인데 영남 선비들이 서울갈 때 다녔던 길이랍니다.

고려 태조가 원정을 왔는데 길이 끊어졌다는군요

그 때 토끼가 나타나 달려가며 길을 가르켜줬다나요?

믿거나, 말거나...

 

 

 

진남교반...

경북8경중 제 1경이랍니다.

철도자전거 출발지인 진남역 바로 앞입니다.

철도자전거는 사진이 없어서 쪼매 서운하네요

시청사람들이 따라다녀서 사진 찍는게 좀 쑥쓰러웠거든요

 

 

불정산 자연휴양림...

문경시청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쾌적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운영은 좀 문제가 있는듯...

세벽 세시까지 노래방기계 가져다 놓고 떠들어 쉬러온 모든 분들이 잠을 자지 못해 고생한 밤이 되어버렸습니다.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온 것인데...

 

 

자연휴양림의 뒷산인 불정산입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심합니다.

왕복 2시간30분 코스와 4시간 코스 등 네가지 코스가 있습니다.

 

5시에 산행을 시작했는데, 중턱쯤 가니 해가 떠 오르는군요

 

수술후 제일 높은 곳에 오른 것입니다.

힘들어 했지만 그래도 이루었다는 성취감 때문인지 밝은 표정입니다

 

불정산 정상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정상의 정자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서져 기둥만 남아 있습니다

 

아침이라 아랫마을에선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얼마만에 보는 연기인지 모릅니다...

요샌 기름이... 가스네... 나무로 취사를 하는 집은 찾을 수가 없거든요

 

 새재입구의 장승들...

 

 

 문경새재중 제 1관문인 주흘관입니다.

옛날 영남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려면

꼭 지나갈 수 밖에 없었던 곳이라는군요

험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좌측 봉우리가 조령, 우측 멀리가 마패봉, 주흘산은 아랫자락만 보입니다.

 

태조 왕건 & 무인시대 촬영 세트장...

문경세재의 첫관문인 주흘관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보입니다

 

 

조령산 

 

가산...

없었는데 새로 만들어서 가산이라나요?

참 별결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계곡이 참 곱습니다.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놨는데도

모처럼의 여행에 동심을 돌아간 조이님...

누가 뭐래도 꼭 지나가 봐야겠답니다.

 

길가에 그네가 설치되 있더군요

 

어쩜 조령산인듯...

 

신임관찰사와 떠나는 관찰사가 임무를 인수인계 했던 곳이랍니다

 

 

소원성취탑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는데... 글쎄요~~~

 

 

 물레방아 

 

조령폭포

 

문경세재의 조곡관(제2관문)

 

조곡관에서 주흘관까지 약 3킬로미터

맨발로 걸었답니다. 건강에 좋다는 야글 듣고서리....

 

왕건橋...왕견&무인시대 촬영 세트장 입구

세트장 뒷쪽에는 의적 일지매의 동네도 만들어 져 있습니다 

장모님과 조이님...

여름휴가


일   시 : '09. 7.27-29 (2박3일)

숙   소 : STX 리조트(문경시 농암면, 쌍룡계곡에 위치)

참가자 : 아버님과 어머님, 큰 여동생부부, 작은 여동생부부, 그리고 우리부부

특   징 : 회사 휴양시설인 단양의 대명리조트는 우리 인원을 수용하기에 비좁을 것 같아

            운전기사에게 양보하고, 문경의 STX리조트를 예약 41평인데 그리 넓은 것 같지는 않다.

 

 

첫째 날

10:00 서울 출발

10:30 성남서 아버님과 어머님 모시고 문경으로...

       (3번국도 → 곤지암 IC에서 중부고속도로 → 호법에서 영동고속도로 → 여주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 문경새재 IC → 가은 → 농암 쌍룡계곡

13:00 STX리조트 도착 (라운지에서 점심)

16:00 가은 석탄박물관 도착

      모노레일을 이용하여 SBS-TV 촬영세트장

      석탄박물관 관람

18:00 충주시 수안보로 이동 저녁식사( 양지말가든 : 꿩 샤브샤브)

21:00 리조트 잔디밭에서 열린 라이브에 가서 생맥주 한잔 더하고 취침


둘째 날

11:00 제천시 청풍면 청풍문화재 이주단지 도착

14:00 일지매 촬영세트장 관람(큰 여동생 딸인 유진이 합류)

15:00 청풍나루에서 유람선 승선(청풍나루↔장회나루, 1만2천원/인)

17:00 수안보로 나와 명산가든에서 저녁식사

         안남근君의 형수(사장님 부인)로부터 정성들인 서빙을 받음

20:00 리조트로 돌아와 라이브에서 필리핀 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며 한잔 더,

         방으로 옮긴 후 거의 인사불성으로 마셔버림.


셋째 날

11:00 마성면 도착 진남교반 구경

12:00 진남역으로 옮겨 레일바이크 탑승

14:00 문경읍으로 옮겨 점심식사(냉콩물 국수) 후 안녕히 돌아가세요

17:00 광주에 있는 오리전문점 신토불이에서 이른 저녁(어머님 계산)

17:00 성남 현대아파트에서 부모님 내려드리고 귀가

 

 

STX 리조트

경북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쌍용계곡 도장산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8년 12월에 개관한 초현대식 건물이다. 깊은 산 중에 위치하여 공기좋고 물좋으며 그리 비싸지 않고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며 인근에 문경의 관광지가 즐비하여 휴가철에 이용을 권장할 만한 훌륭한 리조트이다.


 

문경 석탄박물관(석탄박물관은 이곳 외에도 태백과 보령에 2곳이 더 있다) 

1999년 5월 20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왕릉리 옛 대한석탄공사 은성광업소에 개관한 전문박물관이다. 연탄 모습으로 꾸민 외관이 독특하다. 1∼2층 중앙전시실과 갱내전시실·야외전시장 등의 시설이 있다. 광산장비 및 광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실제 갱도 230m도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은성광업소는 1938년부터 1994년까지 석탄을 캐던 곳이다.

 

 

SBS촬영지에 오르는 모노레일 (석탄박물관 입장료 포함 5,000원)

SBS 대하드라마 ‘연개소문’의 촬영세트장으로 건립된 가은 오픈세트장은 KBS의 ‘대왕세종’ ‘최강칠우’ 등이 촬영되었고, 현재도 ‘자명고’가 촬영중이다. 석탄박물관 입구에서 세트장 까지 연결된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다 보면 석탄박물관 전경은 물론, 문경의 명산인 대야산까지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양지말 가든(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소재, 전 화 : 043-848-2430)

꿩 샤브샤브 전문식당, 수안보 온천 지역의 특화음식으로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꿩(장끼와 까투리로 구분되는데 장끼가 조금 더 비쌈) 한 마리를 부위에 따라 샤브샤브를 위시해서 육회, 불고기, 만두, 수제비, 전골, 튀김 등 8가지로 다양하게 요리해 주고 있다(TV방영)

 

청풍문화재단지(제천시 청풍면 소재)

충주댐 건설로 수장되는 문화재들을 1982~85년에 청풍호 연안 망월산성 기슭에 조성되었다. 남한강 상류인 이 일대는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쟁탈지로 찬란한 중원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했다.

 

 

 

 

 

 

  

 

 

연리지나무에서 사랑을 확인 

연인이나 부부의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연리지(連理枝 또는 連理木으로도 불림)가 청풍 문화재단지 내에도 자생하고 있다. 연리지란 두 나무가 중간에 사이좋게 합쳐진 것으로 한 뿌리에서 뻗은 이 소나무의 두 가지는 약 2m 높이에서 합쳐져 아름다운 자태와 함께 신비로움을 안겨주고 있다.

 

 

중국의 설화에는 동쪽 바다에 비목어(比目魚)가 살고 남쪽에는 비익조(比翼鳥)가 산다고 하는데 비목어는 눈이 한 쪽에 하나밖에 없어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가 있고 비익조는 눈과 날개가 한 쪽에만 있어 암수가 좌우일체가 돼야 날 수 있다고 전한다.  

 

 

비익이나 연리 모두 남녀 간의 결합을 의미하며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거대한 고목에서 연리지가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미녀들...

母女, 姑婦, 얼굴마다 활짝 핀 미소들이니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순 없을 거다. 

 

 

 

일지매 촬영 세트장

청풍문화재 단지 내에서도 곧바로 들어갈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초가집들이 오른쪽에 나열되어 있고 위로 둥근 나무 다리가 골목을 가로질러 놓여있다. 나무다리아래를 가로질러 들어가면, 대망에서 중국풍의 수로와 선착장을 오가며 격투를 벌였던 곳이 있다. 촬영장에서 가장 풍치가 뛰어난 곳으로 꼽힌다. 뒤로 난 길을 따라 한바퀴 돌아나가면 조선시대 장터와 선술집들이 실제처럼 사실감 있게 펼쳐진다.

 

 

평생 교육자의 품위를 잃지 않으시려고 언제나 근엄하신 아버님...

팔십을 넘기시고도 이렇게 건강을 유지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렇게 저희와 매년 나들이를 할 수 있도록 건강해 주십시오. 이번에 촬영하신 Camcorder 빨리 편집해서 구경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충주호 유람선 청풍나루 선착장

충주호는 우리나라 최대의 다목적댐으로 충주, 제천, 단양을 잇는 인공호수이며, 호수주변에  는 월악산국립공원, 단양팔경, 청풍문화재단지 등 뛰어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충주호 유람선은 모두 장회나루, 청풍나루, 단양 등 5곳을 운항 하고 있다. 호수 유람선 관광의 백미로서, 옥순봉과 구담봉 등 단양팔경을 호수에서 바라볼 수 있고 남으로 월악산, 북으로 금수산의 경관도 볼 만하다

 

 

 

 

구담봉 전경 

 

 

 

 

옥순봉 전경 

 

 

 

 

 

 

 

 

 

금수산 전경

 

 

 

 

유람선 3층 선상에서 망중한

 

 

 

 

명산가든(충주시 살미면 세성리 소재, 전화번호 043-851-7208-9)

수안보에서 충주방향으로 약 5분 거리, 자연산 송이전골, 꿩 샤브 등 여러 메뉴를 하고 있지만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신선한 재료만을 고집하여 사용하는 한정식이다. 예약을 해야만 안심하고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근에서 소문난 집으로 충주 분들이 자주 찾는 집이다.

 

 

진남교반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오른쪽 강변을 따라 하늘로 치솟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맑고 푸른 강 위에는 가지런히 철교와 함께 3개의 교량이 모습을 나타내어 자연과 인공의 묘한 조화를 나타내는 곳으로, 계절따라 천태만상으로 변하는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해서 문경의 소금강으로 불리우고 있다. 1933년 대구일보사 주최로 경북팔경을 정하는데 이곳 진남교반의 경승이 단연 제1위로 선정되어 진남휴게소 폭포 왼쪽 암벽 위에는 "경북팔경지일" 이라 새겨진 석비가 세워져 있다. 5분 거리에서 고모산성과 토끼비리를 구경할 수 있다. 

 

 

 

전에 들렀을 때는 문경시청 관계자분들과 함께였고, 근처 식당가의 매운탕이 일미였던 것을 기억된다.  부모님께 대접해 드리고 싶지만 팔십이 넘으신 아버님께서 위생때문에 꺼리신단다.

 

 

 

문경 레일바이크

1970년도에 가은에 은성탄광이 문을 열면서 생산된 석탄의 빠른 수송을 위해서 탄생한 가은선이 탄광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은성탄광 또한 1994년도에 폐광, 가은선 또한 폐지되었다. 이렇게 방치되던 가은선을 문경시에서 폐광지역 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레일바이크로 전환 운영을 시작하였고, 요즘은 경관을 해치던 애물단지에서 문경의 관광자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레일바이크과 나의 인연

폐광지역 진흥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레일바이크는 이곳 말고도 정선에도 있다. 이 사업에 관여하고 있던 나는 이 사업의 구상에서 부터 시운전 등 전반에 대해 관여를 했고, 문경의 레일바이크 탑승도 이번이 네번째... 사업에 관여를 한 인연 때문인지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여행일 : 2008.11.11-12

여행지 : 당진 왜목마을-서산 간월암-고창 국화꽃 축제장-김제 금산사-군산 철새조망대-서천 신성리 갈대밭-부여 부소산-공주 무령왕릉(내부관람은 포기)

 

 

이십년이 넘는 공직생활..., 틈날 때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되뇌이며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청빈을 꿈꿨고, 나보다는 남, 아니 내가 기획하는 정책의 수혜자 편에 서서 뭔가 하나라도 더 도와줄 수 없을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 왔다.

 

정년퇴직까지는 몇년 더 남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보기위해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이렇게 명예로운 은퇴를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집사람과 함께 모처럼 한가한 여행을 떠나본다. 이십여년의 급하고 맹렬했던 근무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그 한가하려던 목표는 어긋나 버렸지만...

 

< 참고사항 >

1. 충청도에서는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명색이 관광지로 육성하고 있으면, 외지인들이 찾을 수 있도록 이정표를 정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정표는 서산 시내에서 단 한번 간월암을 보여주고는 이내 사라져 버린다. 서산에서 간월암까지 단 두 번 보이는 것도 이정표가 아닌 표지판이다. 도로하단에 꽂히듯이 작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사거리를 진입한 후에야 발견되기에 교통사고가 우려된다.

 
2. 고창은 高物價?
“한 달이나 되는 축제 기간에 식당·여관·주유소마다 장사가 잘 돼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주지요. ” 주최측 인터뷰 탓일가?  하필이면 이곳에서 휘발유를 넣은 덕택에 이번 여행중 제일 저렴했던 서천군 모 주유소보다는 거의 L당 200원을 더 지불해야만 했고, 풍천장어를 먹고 나서 하룻밤 묵으려 찾아든 선운사의 모텔은 군청에서 공시해 놓았던 금액보다 만원을 더 받고 있었다. 까짓거 조금만 고생한다 생각하고 난 김제까지 나와서 일박을 했다. 한참을 저렴하면서도 깨끗하고 친절한 모텔에서...

 

3. 공주분들은 외식을 안한다?

무령왕릉을 방문하고자 들른 공주, 점심을 먹으려고 시내를 한바퀴 다 돌았지만 마땅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저냥 먹을가도 생각해 봤지만 주차장을 구비한 식당이 없고 비좁은 도로는 주차시킬 엄두를 낼 수가 없다. 민생고 해결을 위해 무령왕릉과 공산성 방문을 생략한채로 서둘러 귀경... 

 

 

왜목마을(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
배를 타고 왜목마을쪽을 바라보면 낮으막한 산과 산사이가 움푹 들어가 가늘게 이어진 땅 모양이 마치 누워있는 사람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옛문헌에는
"와목(臥木)" 이라 기록).서해안은 어디에서나 일몰을 볼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바다 일출을 볼 수 있다 해서 갑자기 유명해진 곳이다.

 

 

 

석문산(79.4m)

왜목마을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지만, 좀 더 웅장한 일출을 보려면 마을 뒷산 격인 석문산에 올라라야 한다(일몰은 이 곳에 올라가야만 감상이 가능), 매년12월 31일부터 1월1일에는 해맞이행사를 개최하여 이 산은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물이 빠져나간 바닷가 바위에서 굴을 따는 분들이 보이고 선착장 근처에 할머니 한분...

자연산 굴이라며 맛을 보라고 권하기에 사기는 했지만 깔끔하지 않아 먹기가 좀 꺼끄럽다. 할머니 상술은 일품... 1만원이라면서 호객하시더니만 젓가락을 집자마자 2천원을 더 내 놓으란다. 휴~~ 

 

 

 

대호방조제(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 ~ 서산시 대산읍 삼길포리)

1984년 11월 16일 준공된 방조제로 길이는 7.8km이며 해변 드라이브 코스로 좋으며, 바다에 떠있는 크고 작은 섬들의 풍경이 아름답고 바다낚시터로도 인기가 좋다. 이 방조제의 끄트머리엔 도비도 관광휴양단지가 있다

  

삼길포구

유람선 선착장앞에서 여행객들에게 갖잡은 횟감을 파는 작은 어선들이 삼길포의 살아있는 재미난 풍경이라 할수 있다. 주변 횟집보다 싼값에 부르며 여행객과 흥정하는 모습, 뱃전에서 흔들리며 맛보는 회 한 점이 삼길포의 매력포인트다. 몇 년전에 들로봤고, 오늘은 일정에 쫒겨 집사람에게 이곳의 풍경을 얘기로 전해주며 그냥 지나친다.

 

간월도(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천수만 내에 있으며, 원래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육지로 연결된 섬 아닌 섬으로, 오른쪽 절반은 횟집으로 둘러 쌓여 있고, 섬 상부의 구릉은 주차장으로 변해있다. 원래 이곳은 간월도에 딸린 부속섬이었으나 간월도가 육지화 되면서 이곳을 간월도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간월암은 만조시에는 합판으로 만든 땟목을  이용해서 건너 가야만 한다

 

 

간월암

조선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일제시대 만공선사가 중건한 작은 암자, 간조시에는 육지와 연결되고, 만조시에는 섬이 되는 특이한 암자로 만조시에는 물위에 떠 있는 암자처럼 느껴진다. 만공선사가 이곳에서 독립을 위한 천일기도를 마치자 마자 해방을 맞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육지로 연결되어버린 간월도는 오른쪽으로는 횟집으로 둘러쌓여 있고, 구릉 위는 주차장으로 가꾸어져 있다. 이곳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은 영양굴밥... 밤, 은행, 대추 등 각종 약재에다 굴을 듬뿍 넣고 지은 돌솥밥이다. 난 전어회 구이에 약주까지 한잔... 덕분에 다음 행선지까지의 운전대는 집사람 몫이다.

 

 

고창 국화꽃축제(10.22-11.23)

‘하늘열린 고창국화’란 주제의 이번 축제는 100만㎡부지에 300억 송이 국화를 직접 심어 조성한 것으로 경관농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관이 아닌 민간 주도로 하는 행사로, 국화누님선발대회, 국화꽃따기대회, 시낭송회 등 다양한 이벤트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고창은 미당 서정주시인의 고향, 시인의 묘역에 국화꽃을 심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 광활한 지역으로 번져있다. 

 

 

가을 속으로 국화가 성큼 걸어 들어왔다. 방장산 자락 약 100만㎡는 경이의 땅... 노랗고, 붉고, 하얀 국화 천지로 보는 이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 개인의 의지가 20년 가까이 버려진 땅을 드넓은 국화밭으로 바꿔놓았다고 한다.

 


시작은 2004년부터.... 미당의 묘소와 시문학관이 있는 고창군 부안면 질마재 1만7000㎡에 각종 국화를 심으면서부터란다.

 

 

국무총리배 전국국화경진대회

축제기간에 맞춰 국화경진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좋은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출품자의 의도대로 가꾸어진 작품들,,, 나비, 코끼리, 한반도, 분재... 봐도봐도 지루하지 않다.

 

 

국화의 변신(국화도 분재가 될 수 있다)

산과 들에서 얻은 자연석이나 괴목 등, 바탕의 심오한 매력에 국화의 아름다움을 잘 조화시킨 작품들은 작가들의 혼과 생명이 배어있는 듯,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금산사(전북 김제시 금산면)

백제 법왕 1년에 왕의 자복(自福)사찰로 세워진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전하는 바는 통일신라 때 진표율사가 중건한 미륵사찰이다

주요 문화제로는 미륵전(국보 62)·대적광전(보물 476)·대장전(보물 827) 등 건물과, 방등계단(方等戒壇)·5층석탑(보물 215)·6각다층석탑(보물 27)·석련대(보물 23)·석종(보물 26) 당간지주(보물 28)·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24) 등 옛것은 다 보물이라고 해도 될 성 싶다

 

 

'미륵전(彌勒殿)'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있는데, '법주사'의 '팔상전'과 함께 한국 건축사의 또다른 위대한 업적가운데 하나라고들 이야기한다.

  

 

입구의 홍교

빼어난 자태라서 문화제인가 했더니만 아니란다. 이곳의 그 흔한 문화재에도 못 끼다니... 

 

 

 

순환되는 삶의 수레바퀴속에서 어떤 삶은 저렇게 단풍처럼 저물어 가고 있는데... 어떤 삶은 또 새싹 처럼 돋아 나고 있겠지? 어느 가을 아침 금산사를 나서며 떠오르는 생각...  

 

  

군산세계철새축제(11.19-11.23)

'세계를 향한 새만금 꿈의 비상, 가족과 함께 떠나는 철새여행'이란 주제로 군산 금강철새 조망대를 비롯, 금강호와 새만금, 만경강 일원에서 개최된단다

 

 

군산 철새조망대

군산시 성산면의 금강하구 둑에 국민생태관광지로 조성, 상설전시장, 회전쉼터(10층), 전망대(11층), 식물생태관, 철새신체탐험관, 부화체험관, 조류공원, 생태습지공원 등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어류전시장

금강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안에서 발견되는 어류 전체를 전시한 듯 싶다 

 

 

 

 

철새전시장

겨울철새는 봄부터 여름에 걸쳐 주로 시베리아 등지에서 번식하고 가을에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나며 봄이 되면 북으로 돌아가는 새. 금강하구의 대표적인 겨울철새로는 기러기류, 오리류, 고니류 등이 있다. 여름철새는 봄에 동남아시아 등 남쪽으로부터 찾아와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고 가을에는 다시남쪽으로 이동하는 새로, 중대백로, 쇠백로, 해오라기 등이 있고, 또한 우리나라 북쪽에서 번식하고 우리나라 남쪽에서 겨울을 나는 나그네새로써 도요나 물떼새류가 있으며, 이를 통과철새라고도 한다.

 

 

식물생태관

이곳엔 식물과 함께 새들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성리 갈대밭

서천군과 군산시가 만나는 금강 하구에 펼쳐져 있는 갈대밭으로, 너비 200m, 길이 1.5km, 면적 10만여 평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며, 제방도로에 올라서면 드넓은 갈대밭이 눈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한국의 4대 갈대밭으로 꼽히는 동시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갈대 7선에 속하며, 각종 교육기관의 자연학습장은 물론 전국 사진작가들의 촬영장소로 인기 있다. 크게 히트를 쳤던 영화 ‘공동 경비구역 JSA'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이전에는 단순히 무성한 갈대숲이었으나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전체 갈대밭 면적의 2~3% 정도만 '갈대공원'으로 조성해 개방하고 나머지는 보존하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갈대공원은 양옆으로 갈대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2㎞ 남짓한 갈대밭 산책길에 박두진, 김소월, 박목월 등 서정시인들의 시를 써놓은 통나무 판자가 걸려 있다.  

 

 

부소산(충남 부여군 부여읍)의 가을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왕성으로 백제 시대에는 사비성으로 불렸으며, 부소산성에서 부소(扶蘇)의 뜻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松)의 뜻이라고 한다. 부소산은 “솔뫼” 즉 “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부소산은 남쪽은 완만하고 북쪽은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백마강이 흐른다.

  

백화정

낙화암 꼭대기에 세워진 이 육각형의 백화정은 궁녀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세운 정자이다.

 

 

낙화암

백제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되었을 때, 백마강 푸른 강물에 몸을 던졌던 곳... 그러나 좁고 험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당시의 길이라면 3천명의 궁녀가 다 뛰어 내리려면 한 이틀은 족히 걸렸을 성 싶다.  

 

 

고란사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가 나 있었으나 지금은 유리관 속에 곱게 모셔져 오가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고란사가 유명한건 한잔을 마셔도 노인이 아이가 된다는 고란약수 때문이다.  

그러나 난 구경만... 밀려드는 아이들의 북적댐 속에 약수터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집사람을 향한 내 마음을 담아 보냈던 戀詩를 되뇌이며, 다시한번 초심으로 돌아가 그녀에 대한 변함없는 내 마음을 다짐하면서 이번 여행을 접는다

 

두손 호호불며 체육관으로 향하는 아침...
어슴프레 밝아오는 하늘에서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날 반겨줍니다.

 

저 별이 저리도 살갑게 다가오는건
저 별에서 이미 내 마음의 별로 앉으신 당신을 떠올리는 탓이 아닐런지요.

 

종종걸음 잠시 멈추고 
스러져가는 별빛에 내 마음을 띄워보냅니다.
그리곤 내 사랑, 내 진실, 내 소망을 당신께 가져다 전해주길 빌어본답니다.

 

유안진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우리사이 청실홍실로 엮일지라도
부부의 익숙함보다는 지금의 순수한 열정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아침 출근길
누가 뭐라해도 좋습니다.
아니 나이를 얘기하며 흉을 봐도 좋습니다.
현관을 나서며 스무살 젊음만이 잠깐의 이별을 아쉬워하는게 아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근무시간에도
무심한 전화벨을 탓하기보단 먼저 사랑의 메시질 보내는 솔선수범을 실천하겠습니다.
자기를 개발하려는 당신의 직장생활은 그리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진 않을테니까요.

 

퇴근후 저를 맞아주는 당신
채 갈아입지 못한 당신 옷에, 저녁준비 때 배인 김치냄새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아니 그 보다 더 지독한 내음이면 어떻습니까?
내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데.... 심지어는 당신의 결점까지도요.

 

지난주에 영화 봤는데, 또 연극 보러가자 조른다 해도 귀찮아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당신이 조르기 전에 이미 당신의 손엔 음악회티켓 두장이 놓여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티켓을 찾아 컴과 친해질거고 어느새 난 인터넷 전문가가 되어있겠지요.

 

당신은 여자...
때론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릴 때도 있겠지요.
그것을 애교로 받아 드리고 당신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굴 쳐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당신이 편해지실 때 부드럽게 충고 드리는 일을 빠뜨려서는 안되겠지요?

 

내가 가진 모든걸 다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언어능력을 다 동원해서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건 미사여구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오직 하나 하고 싶은 말 "당신은 내 안식처입니다"
그래도 여유가 남는다면 "죽는 날 까지 아니 천생만생 당신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죽음이 우릴 갈라놓을지라도 수만생의 윤회속에서...
비록 모습이 바뀌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가슴저린 행복이 우리 사랑했음을 일깨워
또 한생의 연분을 이어줄 한자락의 끈이 되어주길 두손모아 빌어봅니다 

오늘은 어머님 생신...

산에 미쳐 주말엔 산 외엔 다른 생각이 없는 나지만,

오늘 하루만은 부모님과 함께다

 

 

아침에 집사람과 '인디에나 존스(스틸버그 감독작품이니 안 볼수 없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빠리바케트(애들 엉덩이 때리고 다시 진열한 막대빵이

싫은데 별수 없다)에 들러 산 케익은 오른손...

왼손엔 물론 어제 청옥산에서 채취한 싱싱한 산나물이 한보따리다. 

거기다 현금봉투는 보너스!!

 

식사야 매월 한번 이상 치루는 행사이니 별다를게 없지만,

오늘은 좀 특이한 날이니 좀 멀리까지 나가볼 요량으로 집을 나선다.

때이른 무더위에 창문을 열다 문득 초여름 음식을 떠 올린다.. 아~~ 초계탕!!!

 

문산, 양평, 곤지암... 난 서슴치 않고 곤지암을 택한다.

물론 제일 맛이 있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조금 멀기야 하지만 맛이 있으니 그정도 불편은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생일 케익부터...

저 웃음으로 표현해 내시는 여유속의 행복감... 

바라옵건데 더도말고 덜도말고 오늘처럼만... 오늘만큼만 웃으면서 오래오래 사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닭고기 초무침과 물김치가 나온다 

 

 

다음으로 닭고기

기름기를 완전히 빼버린 고기는, 육질이 실한게 틀림없이 촌닭이다

 

 

감자전...

기름기가 없는 감자전은 꼬독꼬독한게 여간 고소하지 않다.

생일케익을 봤던 시골스러운 사장님, 한 접시 더 주면서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던지 얘기하랜다

그러나 이미 배가 부른 우린 노땡큐~~~ 그 친절한 마음만 가슴에 담아둔다

 

 

본 메뉴인 초계탕

조선시대에 임금님이 즐겨 드시던 여름철 별식이란다.

크기는 새숫대야 냉면집의 냉면 사발만큼 크고,

내용물이 어느정도 줄었다 싶으면 막국수를 넣어준다

새콤, 달콤, 시원한 맛.... 난 이맛에 반에 매년 여름이면 한달에 두번 이상은 초계탕집을 찾는다 

 

 

마지막 입가심으로 나오는 양념 막국수...

이쯤이면 배가불러 맛을 음미하는게 사치가 되버린다.

아! 물론 커피는 셀프서비스다.................................. 

 

 

 밖에 나오면

울타리에 커다란 뽕나무가 두그루...

검붉은 오디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커피가 입에 안 맞는 사람들은 오디로 디저트를 삼으면 어떨까?

 

상호는 그냥 초계탕집이고 곤지암에서 양평쪽으로 약 20여 킬로미터를 들어가니 꽤 멀다.  그러나 조금 멀면 어떠랴, 맛이 있다면 그까짓 거리정도야 무시할 수 밖에...

 

가격은...

4명이서 배부르게 먹고 소주 두병 마셨는데 카드명세표에 5만원이 찍혀있다

 

 

평생을 교육계에 몸 담으시면서 소명의식에 차라리 가정에 소홀했던 분...

덕분에 저희들 못난 자녀들로부터 남만 못한 취급을 받는다고 불만의 대상이었던 분...

그러나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우린 사랑으로 똘똘 뭉친 부모와 자식이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팔십년...

아버님의 팔순을 맞이하여 2세대와 3세대... 군대에 가있는 제 둘째만 빼고 다 모였지요

거기다 아버님 형제분들과 자녀들... 모임의 범위를 놓고 고심한 끝에 전 가족 모임으로 정했답니다

 

추월산 밑의 팬션을 통째로 빌려 1박2일 동안 재밋게 놀다 왔습니다

성남에 모시로 갈 때부터, 이틋날 모셔다 드릴 때까지 내내 웃음으로 일관하신 아버님,,,

저 또한 모처럼 행복이 뭔지를 느껴볼 수 있던 기회가 아니었나 봅니다

 

아래 사진은 이번 행사를 치뤘던 팬션입니다.

흑염소 요리 전문집이랍니다.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토종닭 백숙이 준비되어 있더군요

 

 

 

축하기도는 큰 며느리인 조이님 차지...

온 가족이 기독교 집안이기 때문에 서로간에 경쟁이 되는 배역이지만 남편 잘 둔 덕택에 조이님 차지가 되었지요 ㅎㅎ

 

 

참! 대부분이 교육자들인 저희 집안엔 다들 숫기가 없어서 사회는 제 차지...

덕분에 사회보랴 사진 찍으랴 바쁜 제 모습은 사진에서 쏘옥 빠져 있네요

 

 

 

아버님과 형제분들도 교직에 몸을 담으셨고, 그 자녀들도 그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집안이지요

덕분에 음주와 가무는 영 아니랍니다... 술과 노래방기기의 마이크는 거의 제 차지가 되는 행운의 밤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