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과 땅끝 나들이(3.11-12)

 

소재지 : 광주광역시 및 전라남도 나주시, 영암군, 해남군, 강진군, 담양군

일 정 : ‘11. 3. 11(금)-12(토)

3. 11(금)

15:10 : 서울출발(고속버스)

18:20:광주 비아간이정류장 도착

18:30:용영*본부장의 안내로 한국광기술원 방문

19:30:저녁식사(강호동의 ‘1박2일’로 뜬 육전 전문점)

21:30:호텔 체크인

3. 12(토)

07:00 : 광주 출발(승합차량)

07:30:아침식사(나주시내에서 전통음식인 나주곰탕)

09:00:월출산 무위사 답사

10:00:달마산 미황사 답사

10:30:박형* 부사장 처갓집 방문

11:00:달마산 도솔봉 및 천년역사길 답사

13:00:땅끝 전망대 및 땅끝탑 답사

14:00:점심식사(용영* 본부장의 전원주택에서 바비큐 파티)

16:00:강진군의 다산초당 및 백련사 답사

19:00:저녁시사(담양군 금성면, 청둥오리 전문점)

21:00:광주출발(고속버스)

같이한 사람들 : 박형*부사장, 유종*전무, 구제*전무, 용영*본부장

 

 

▼  무위사(無爲寺)

월출산 남쪽인 경포대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서 新羅 진평왕 39년(617년)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할 때에는 관음사(觀音寺)라 하였는데, 그 후 갈옥사(葛屋寺), 모옥사(茅玉寺)로 이름이 바뀌다가 조선 명종 때부터 무위사가 되었다. 문화재로는 國寶 제13호인 극락전과 寶物 507호인 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 등이 있다.

 

 

 

▼  해남읍에서 미황사가는 길, 미황사 조금 못미쳐에 있는 박형*군의 妻家, 부자집이라는 느낌이 外觀에서부터 전해져 온다. 아래의 향나무는 市價가 무려 일억원이나 된단다.

 

 

 

▼  미황사(美黃寺)

신령스러운 달마산의 암릉, 병풍처럼 펼쳐지는 그 암릉을 배경삼아, 오롯이 앉아있는 이름 그대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가람이 미황사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경덕왕 8년(749년)에 의조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947), 응진당(보물 1183) 등이 있다.

* 사적기에 따르면 금인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대사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일렀다고 한다. 이에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黃)’자를 쓴 것이라 한다.

 

 

 

 

▼  달마산(達摩山) 도솔봉(兜率峰, 417m))

미황사를 빠져나와 땅끝 방향으로 달리다가 마봉리에서 오른편 작은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산 정상을 향해 무섭도록 비탈진 도로가 나타난다. 급경사를 줄이기 위해 갈之자를 그리고 있는 도로의 오른편은 아찔한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왼편 봉우리 위에 군부대의 통신안테나가 보인다. 군부대 시설 방향으로 ‘등산 안내판’과 ‘도솔암 800m’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고, 산행은 ‘도솔암 이정표’ 뒤편 오솔길에서 시작된다.

 

 

 

▼  도솔암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은 기암괴석들이 즐비하여 그야말로 작은 금강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해남과 강진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멀리 서해 바다에는 다도해의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  도솔암(兜率庵)

이정표에서 약 15분 정도 걸으면 능선안부, 고갯마루에 도착하게 된다. 고갯마루 오른편에 허름한 요사채가 보이고, 왼편 바위 사이로 얼핏 도솔암의 殿閣이 보인다. 도솔암은 통일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고 산 아래 미황사를 세운 의조화상도 미황사 완성 전에 이곳에 머물며 수행했단다. 지금의 전각은 정유재란 때, 불탓던 것을 2002년에 다시 지었단다.

 

 

 

▼  하늘 뚫을 듯 뾰족하게 솟은 암봉 사이에, 암자가 마치 제비집마냥 딱 붙어 있다. 암자 가는 길도 운치가 있을뿐더러, 암자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도 일품이다. 저 멀리 남해바다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고, 그 물결 따라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이 흘러 다니는 광경이라니...

 

 

 

 

▼  미황사 천년역사길 : 땅끝에서 미황사 부도전까지 이어지는 길로서, 달마산의 산중턱을 가로지르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담소를 나누며 산책하기 딱 좋은 이 길은, 인도에서 불교가 처음 전파될 때 이 길을 통해 황소가 불상을 운반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어부와 아낙들이 불공을 드리러 오던 이 길은 半世紀前 도로가 뚫리면서 잊혀졌다가 얼마전 다시 정비했단다. 길은 대체로 완만하며, 편백나무 숲도 지나고, 너덜길도 지가가면서 이어진다. 대체로 볼거리는 많지 않으나 호젓해서 좋은 길이다. 불공을 드리러 오는 민초들이나 구도의 길을 찾는 스님들이 걷던 길은 구태여 아름다울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마음이 곧 눈일지니...

 

 

 

 

 

 

 

 

 

 

▼  땅끝전망대

땅끝은 끝이 아니다. 바다의 시작이다. 아니다. 바다의 끝이자, 땅의 시작이다. ‘끝의 끝은 다시 시작’이라는 오세영 시인의 말처럼, 땅끝은 땅과 바다가 그어놓은 ‘출렁 금’일 따름이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가슴이 울렁거린단다. 어찔어찔 머리가 어지럽단다. 발바닥이 간질간질, 귓속이 우렁우렁 젖어온단다. 그래서 찾아든 사람들일까? 한반도의 최남단인 외진 곳이 꽤나 많은 사람들로 넘치고 있었다.

 

 

 

 

 

 

 

 

▼  달마산 아래에 위치한 용본부장의 전원주택, 기존의 주택을 매입했다는데 뼈대를 보니 지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 집앞의 정자나무가 탐이날 정도로 멋지다. 

 

 

 

▼  다산 정약용 유적지(茶山 丁若鏞 遺蹟地)

소재지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사적 제107호)

코 스 : 다산초당-해월정-백련사(약 2Km)

특 징 : 다산이 백련사의 혜장선사(惠藏禪師)를 만나러 다녔던 이 길은 만덕산 중턱에 걸쳐 있다. 노약자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편한 오솔길로, 활엽수와 침엽수, 그리고 동백나무가 어울리면서 아늑하면서도 깊은 숲의 향기를 전해준다. 이 코스는 산림청과 (사)생명의숲국민운동에서 ‘아름다운 숲길’로 지정한바 있다.

* 다산은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됐고, 그 후 만덕산 중턱 초당에서 머물며 실학을 꽃피웠다. 그 고통스러운 유배의 나날을 함께 해준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혜장(惠藏)이다. 다산은 이슥한 밤이 되면 만덕산 자락에 자리한 백련사로 혜장선사를 만나러 산길을 더듬어 다녔단다. 그런 다산을 혜장선사는 언제나 차와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주었고... 두 사람은 思想과 宗敎가 판이하게 달랐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서로를 교우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다산이 혹독하다는 유배에서 살아남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혜장선사의 德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다산초당(茶山草堂) : 원래 작은 초가집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진 것을 해남윤씨 후손들이 다산유적보존회를 조직하여 기와집으로 새롭게 지었다. 1801년(순조 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강진으로 유배된 다산은,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18년 가운데 11년간을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백여 권에 이르는 책을 저술하였다고 전해진다.

 

▼  해월정에서는 강진 앞바다인 구강포와 강진들판, 그 너머에는 장흥의 천관산이 잘 조망된다.

 

 

 

▼  백련사(白蓮寺)

만덕산(萬德山, 408m) 아래에 위치한 절로서 통일신라시대 末期인 839년(문성왕 1)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다. 원래 만덕산 백련사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만덕사로 바뀌었다가,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고 있단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고, 비자나무와 후박나무 등과 함께 어우러진 절 앞의 동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 제151)로 지정될 정도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