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정방폭포, 외돌개, 주상절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일원

여행일 : ’13. 8. 3()

함께한 사람들 : 영진투어(소나무산악회)

 

특징 : 오늘은 제주 여행의 셋째 날, 오전에는 한라산 자락인 윗세오름 등반을 했고, 삼천포로 나가는 여객선의 출항시간까지 남은 자투리시간을 이용해서 서귀포시 일원에 있는 관광지 몇 곳을 둘러보기로 한다.

 

정방폭포(正房瀑布)

서귀포시에 있는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측 사면(斜面)에서부터 발원해 남쪽 서귀포시로 흘러내리는 애이리내(지금은 동홍천이라 부름)의 하단에 발달한 폭포로,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海岸瀑布)라고 한다. 이는 세계에서도 매우 희귀한 형태의 폭포로 자마이카의 던리버폭포 정도만이 알려져 있다. 천지연(天地淵)폭포, 천제연(天帝淵)폭포와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瀑布) 중의 하나이며, 제주 영주십이경(瀛州十二景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폭포 높이 23m, 너비는 10m정도 되는데, 폭포 양쪽에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수직(垂直) 암벽(巖壁)이 발달하였고 노송(老松)이 우거져 있다. 1995년 제주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에는 명승 제43호로 변경되었다.

 

 

 

천지연폭포와 천제연폭포가 남성적(男性的)인 힘의 폭포라고 한다면, 정방폭포는 오색영롱한 무지개 속에 조심스레 파도 위로 떨어지는 우아한 여성미(女性美)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 중평(衆評)이다. 위에서 떨어져 내린 물은 잠깐 작은 못을 만들었다가, 이내 바다로 흘러간다. 폭포 앞의 전망대에 서면, 폭포의 장쾌한 굉음(轟音)과 시원한 바다가 함께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멋진 풍광(風光)을 감상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진시황 때 황제의 사자인 서복(徐福)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동남동녀 500쌍을 거느리고 상륙하여 찾아 헤매었으나 캐지 못하고, 정방폭포의 벽에다 서불과차(徐不過此)’라는 네 글자를 새기고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서귀포(西歸浦)의 지명은 이곳 정방폭포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외돌개

서귀포시 서쪽에 위치한 분석구(噴石口)인 삼매봉의 남쪽 해안(海岸)에 있는 바위로서, 바다 한복판에 홀로 우뚝 솟아(20m) 있다고 하여 '외돌개'라 한다. 150만 년 전 화산(火山) 폭발로 섬의 모습이 바뀔 때 생긴 바위섬으로 꼭대기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몇 그루 자생하고 있다. 외돌개는 기암절벽(奇巖絶壁)의 형태이며,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2011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바 있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그렇듯 외돌개라고 옛날이야기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을 리가 없다. 외돌개는 고려(高麗) 말 최영 장군과 인연이 깊다. 최영 장군이 제주의 원나라 세력을 물리치면서 마지막으로 외돌개 앞으로 보이는 밤섬을 토벌하게 되는데, 그때 외돌개를 장수(將帥)로 치장시켜 원나라 세력의 기()를 꺾었다고 하는 이야기로 이때부터 장군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할망바위라는 다른 이름에 얽힌 전설(傳說)도 있다. 한라산 밑에 어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는데, 어느 날 바다에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風浪)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할머니는 바다를 향해 하르방을 외치며 통곡하다가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남편과 아들을 바다로 보내고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기다려야 했던 제주도 어멍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지 않나 생각된다.

 

 

 

주상절리(pillar-shaped joint, 柱狀節理)

제주도에는 여려 곳에 주상절리가 분포(分布)되어 있다. 그러나 중문단지에 있는 주상절리가 그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이동통로와 전망대(展望臺)까지 갖추고 있어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다. 주상절리의 기둥 하나 높이가 30~40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며, 그 길이가 1Km에 이른다. 2004년 천연기념물 제 443호로 지정되었다. 주상절리의 들머리에는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야자수가 심어져 있는 공원(公園)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싱싱한 해산물(海産物)을 파는 좌판(坐板)이 열려있으니, 그곳에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바다 내음이 그윽한 해산물을 안주삼아 술 한 잔 마시는 여유를 즐길 수가 있을 것이다  

 

 

 

 

 

주상절리는 화산 폭발에 의하여 분출된 용암이 바닷가로 흘러와 물과 만나 급격하게 수축하면서 만들어진 육각형 또는 사각형 형태의 기둥을 말한다. 중문단지의 주상절리는 해안가에 각진 기둥이 겹겹이 쌓인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그리고 검은 기둥에 파도가 부딪혀 생기는 하얀 포말이 검은색의 주상절리와 어우러지는 멋진 색의 조화를 보여준다.

 

 

 

 

 

                                                

 

한라산 윗세오름(1,700m)

 

산행일 : ‘13. 8. 3()

소재지 :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

산행코스 : 어리목탐방안내소(973m)사재비동산만세동산윗세오름 대피소병풍바위영실휴게소영실탐방안내소(산행시간 : 3시간40)

함께한 산악회 : 영진투어(소나무산악회)

 

특징 : 한라산에 속한 오름 중의 하나로 작은 봉우리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위에 있는 세 개의 오름이라는 의미이며, 제일 위쪽에 있는 큰 오름을 붉은오름이라 하고, 가운데 있는 오름을 누운오름, 그리고 아래쪽에 있는 오름을 족은오름이라 부르는데, 봄이 되면 오름 비탈면 대부분을 뒤덮으며 가득 핀 철쭉꽃과 진달래꽃이 장관(壯觀)을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라산의 등산로는 모두 5개로, 성판악코스와 관음사코스는 한라산 정상 백록담까지 이어지지만, 어리목코스, 영실코스, 돈내코코스는 모두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끝난다.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코스 중에서는 오늘 오르게 되는 어리목코스가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비록 900~1,300m까지는 다소 지루하고 힘들지만, 해발(海拔) 1,300m인 사재비 동산에서부터 해발 1,700m인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는 산길은 평화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어리목탐방안내소(해발 973m)

제주시에서 1139번 지방도를 이용 서귀포시 방향으로 달리다가 어리목입구 삼거리(제주시 해안동)에서 왼편으로 접어들면 5분이 채 안되어 어리목탐방안내소에 이르게 된다. 탐방안내소의 광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한라산이라고 적힌 커다란 표지석이다. 윗세오름으로 올라가려는 사람이나 어승생악으로 올라가려는 사람(탐방안내소 뒤편으로 올라가면 된다), 심지어는 그냥 들러본 사람들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표지석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들이 없다. 한라산의 정상(頂上)에 오르지 않고도 정상을 밟은 느낌을 만끽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리목탐방안내소의 널따란 광장(廣場)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나 있는 사각(四角)의 문()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문틀 위에 적혀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산이 싫어하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文句)와 그 앞에 세워진 정주석 (定柱石)이 눈길을 끈다. 정주석은 주인이 있고 없음을 알려주는 제주도 특유의 대문 형태이다. 긴 나무막대 하나가 걸쳐 있을 때에는 가까운 곳에 있으며, 두 개가 걸쳐 있으면 한참 있다가 돌아오며, 세 개가 걸쳐 있으면 저녁 무렵에야 주인(主人)이 돌아온다는 표시(表示)이다. 그렇다면 이 한라산의 윗세오름은 우리가 들어가도 좋다는 신호이다. 정주석에 나무막대가 하나도 걸쳐있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국립공원의 특징인 잘 닦여진 등산로를 따라 500m쯤 들어가면 어리목계곡(溪谷)’이 나온다. 바닥이 바짝 말라있는 건천(乾川)이기 때문에 바닥에 깔린 돌을 밟고 건너도 되겠건만 계곡에는 예쁘장한 나무다리(木橋)가 놓여있다. 지금은 비록 물기 한 점 없으나 폭우(暴雨)라도 내릴 경우에는 이 계곡도 거센 물길로 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리목계곡을 지나면 산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1,000m 조금 못되는 이곳에서 1,400m 고지에 있는 사제비 동산까지는 이런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비록 오르막길이지만 침목(枕木)계단과 돌계단 등 등산로가 잘 닦여있어 오르는 데는 그리 힘들지 않은 편이다. 거기다 날씨까지도 우리에게 우호적(友好的)이다. 무더위 때문에 산을 오르는 일정을 바꿔볼까 고민까지 했을 정도인데 의외로 선선한 것이다. 길가의 숲에는 졸참나무, 서어나무, 산벚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때죽나무, 물참나무 등이 울창하다. 그래서 여름철 무더위까지도 한풀 꺾인 모양이다.

 

 

 

 

 

 

1,300m 고지(高地) 근처에 송덕수라고 불리는 나이가 500백 살이나 먹은 상수리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우()를 범해버리고 말았다. 옛날 제주 도민(島民)들이 기근(饑饉)으로 굶주릴 때 이곳의 도토리 열매로 끼니를 연명했다는 유래가 있는 나무이기 때문에 한번 쯤은 구경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놓쳐버린 것이다. 안내판이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못보고 그냥 지나쳐버렸는지 모르겠다. 이 나무의 열매로 죽을 끓여 굶주림을 면한 후, 나무 아래에서 제사(祭祀)를 지내던 섬사람들을 마음으로나마 그려보려고 했는데 아쉽다. 따뜻한 감동을 주는 사람들의 얘기는 언제나 들어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해발(海拔) 1,400m 고지에 이르면 사제비 동산이 나온다. 산행들머리에서 2.4Km,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사제비 동산은 제주시와 북제주군 경계인 어리목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산(火山)체로 어승생오름과 마주보고 서있는 오름인데, 제비가 죽어 있는 형국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사제비새잽이에서 유래한 말로 새 매를 이르는 제주도 사투리(方言)이다. 일단 사제비동산에 올라서면 산길의 경사(傾斜)는 그지없이 완만(緩慢)해진다. 거기에다 등산로도 목제(木製)데크로 잘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도 없을뿐더러 오르는데도 조금도 힘이 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한껏 여유를 즐기면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風景)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구간인 것이다.

 

 

 

 

사제비동산에 올라 얼마간 걸으면 작은 샘이 하나 나온다. 행여나 목을 축일까 해서 다가갔지만 물이 말라버렸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제주도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얼마간 더 오르면 또 하나의 샘터가 나오는데 이곳에는 비록 적은 양이나마 샘물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사제비 동산에서는 뛰어노는 노루들을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눈에 띄지는 않는다. 기대하던 노루는 하산길에 영실에서 실컷 구경할 수가 있었다.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는 길과 나란히 모노레일(monorail)이 놓여있다. 모처럼 모노레일 위로 짐이 옮겨지고 있는 광경을 구경했다. 연약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레일 위로 거대한 짐이 옮겨지는 광경은 생경(生硬)스럽기 까지 했다.

 

 

 

 

샘터를 지나면서 돌길이 시작된다. 제주도의 특유의 화산석(火山石)이 바닥에 깔려있는 것이다. 돌길은 고도가 1,500m에 가까워지면서 다시 나무 데크길로 바뀐다. 사제비동산은 안개가 자주 끼기로도 유명하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주위가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짙은 안개로 덮여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안개가 아니라 비구름이었다. 사제비동산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빗줄기는 산행이 끝날 때까지 끊어졌다 이어지다를 반복했다. 오늘 산행을 강행하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오뉴월 뙤약볕이었다. 사제비동산이나 다음에 만날 만세동산, 그리고 영실로 내려가는 초반이 나무 한그루 없는 구릉(丘陵)이라서 햇빛에 완전히 노출(露出)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구름 덕분에 뙤약볕도 피하고, 거기에다 시원하기까지, 아니 춥기까지 한 것은 좋지만,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만약 비구름만 아니었더라면 만세동산으로 이어지는 오름들과 그 위를 흘러가는 뭉게구름들이 만들어내는 멋진 풍광(風光)을 실컷 즐길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걸 보고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사재비동산에서 만세동산으로 이어지는 오름길은 산 중 벌판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끝없이 긴 완경사(緩傾斜)의 고원(高原)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나무도 역시 그 수가 더욱 뜸해진다. 그리고 간혹 보이는 나무들도 그 키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등산로 주변에 진달래와 꽝나무 등 관목(灌木)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고도가 1,500m를 넘기면 온통 구름에 뒤덮인 만세동산이 나온다. ‘망동산이라 불리는 이 동산은 마소를 치는 테우리들이 망보는 동산이다. ‘테우리란 목동(牧童)들을 일컫는 제주도의 사투리이다. 그러니까 말을 기르던 목동들이 망()을 보던 곳이란 뜻이다. 만세동산에는 전망대(展望臺)가 설치되어 있으나 구름에 뒤덮인 탓에 아쉽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않다면 붉은오름, 어승생오름, 사제비오름, 망체오름, 노루오름, 산세미오름 등 수많은 오름(전망대의 안내판 참조)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질 텐데 말이다. 사제비동산에서 망동산까지는 0.8Km, 대략 30분 정도 걸린다.

 

 

 

 

 

1,600m 고지(高地)를 지나자 구름은 더욱 짙어진다. 한라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춥게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올라오면서 비를 맞은 탓에 체온(體溫)이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비옷을 꺼내 입는 것이 귀찮은지라 비를 맞으면서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망체오름과 어슬렁오름, 그리고 삼형제오름이 잘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한라산의 정상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낮게 깔린 비구름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저 앞만 보고 걸을 따름이다. 한라산 정상이야 한라산 산신령(山神靈)’의 도움이 있어야만 볼 수 있다니 별 수가 없겠지만 주변의 오름까지도 볼 수 없다는 것은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1,600m 표지석에서 조금 더 가면 길가에 두 번째 샘터가 나타난다. 아까 지나왔던 샘터와는 달리 이곳의 샘터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샘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목만 축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산행을 이어간다.

 

 

 

 

샘터에서 윗세오름 대피소(待避所)’는 금방이다. 대피소에 도착하면 먼저 너른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올라오는 길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사람들이 이곳에는 많이 보인다. 아마 영실탐방로를 이용해서 올라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다들 둥그렇게 둘러앉아 가지고 온 음식들을 나눠먹으며 즐거워들 하고 있다. 간식거리를 가져 오지 못한 사람들은 다들 대피소로 향한다. 대피소에서 파는 컵라면이 일미(一味)이면서도 한 끼 거리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만세동산에서 대피소까지는 1.5Km, 30분 정도 걸린다. ‘윗세오름 대피소는 영실 코스와 어리목 코스 두 갈래 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이다. 물론 두 코스 외에도 돈내코 코스에서도 이곳으로 올라올 수가 있다. 백록담으로 오르는 탐방로(探訪路)가 자연휴식년제(自然休息年制)로 통행이 금지된 탓에 남벽분기점에서 다시 돈내코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은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산은 영실코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영실코스는 대피소의 매점(賣店) 뒤편으로 열린다. 영실로 향하는 등산로도 역시 나무테크로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다. 대피소를 출발해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샘터를 만나게 된다. ‘노루샘이라 불리는 것이 한라산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노루들이 쉬어가며 목을 축이던 곳이 아닐까 싶다. 노루샘은 듣던 대로 많은 양의 샘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샘터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오른편에 보이는 오름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바로 윗세족은오름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윗세족은오름의 정상에는 전망대(展望臺)가 만들어져 있으며, 전망대에서는 백록담의 화구벽(火口壁)과 오름 군락(群落)들이 잘 조망(眺望)된다고 하지만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산행을 이어간다. 지금같이 비구름에 둘러싸인 상태에서는 조망이 불가능할 것임을 미루어 알기 때문이다  

 

 

 

윗세족은오름갈림길에서 얼마간 더 걸으면 나무데크 길이 끝나고 돌길이 나타난다. 길이 돌길로 바뀌면서 등산로 주변의 풍경도 색달라진다. 그동안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지던 초원(草原)이 끝을 맺으면서 구상나무숲으로 바뀌는 것이다. 길가의 구상나무들은 키가 별로 크지 않다. 그러나 나무의 굵기를 볼 때 수령(樹齡)은 꽤 오래된 모양이다. 여기저기에 고사목(枯死木)이 널려있는 것을 보면 나무의 크기에 비해 나이는 지긋한 것이 분명하다.

 

 

 

 

 

 

 

돌길이 끝나면 길은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리고 길의 바닥은 다시 나무로 변한다. 내려가는 길 전체를 나무계단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주변은 아직도 짙은 비구름에 덮여있다. 주변에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널려있는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만일 구름만 아니었더라면 주변의 기암괴석 외에도 일목요연하게 펼쳐지는 제주 방면의 산들이 눈에 잘 들어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산을 내려가다 보면 왼편에 전망대(展望臺)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영실의 기암절벽(奇巖絶壁)을 구경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일 게다. 구름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망대에 올라서본다. 예상대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병풍바위 건너편에 펼쳐지고 있을 천태만상(千態萬象)의 기암절벽을 마음속으로나마 그려본다. ‘오백 나한(羅漢)’들이 만들어내는 자태가 언젠가 꿈속에서 본 선경(仙境)으로 겹쳐지고 있다. 꿈에서 본 영실(靈室)신들이 사는 집이라는 말뜻대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윗세오름대피소에서 병풍바위까지는 2.2Km,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산길은 돌계단으로 변한다. 이 구간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싶다. 비록 내려가는 구간이지만 경사(傾斜)가 가파르고, 거기다가 돌계단이 계속되는 탓에 내려서기가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날씨라도 맑을 경우에는 왼편에 펼쳐지는 기암괴석을 구경하면서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으련만, 오늘 같이 비구름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날에는 내려서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고역(苦役)이다. 이러한 돌계단 길은 길의 경사(傾斜)가 평탄해지는 계곡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지루했던 돌계단 길이 끝나면 계곡(溪谷)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영실계곡에 들어서면서 오늘 처음으로 물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양은 많지 않다. 최근 제주도의 가뭄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몇 번 가로지르다보면 계곡은 멀어지고 울창하게 우거진 숲으로 들어서게 된다. 소문이 자자한 영실 숲에 들어선 것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영실 숲2001년에 소중한 명함 하나을 받았다.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유한킴벌리가 마련하고 산림청이 후원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하여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것이다.  

 

 

 

 

영실 숲을 지나면 저만큼에 휴게소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해발(海拔) 1,280m의 영실 휴게소에 도착한 것이다. 병풍바위에서 영실휴게소까지는 1.5Km, 30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제법 너른 주차장까지 갖춘 영실휴게소는 간단한 식사와 안주, 그리고 술과 음료를 파는 음식점(飮食店) 형의 휴게소이다. 당연히 술 한 병만 사더라도 슈퍼마켓 가격이 아닌 음식점 가격(3,000)을 지불해야만 한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도시락을 먹기로 한다. 반주로 술 한 병을 사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안주까지 주문하라고 권한다. 음식점에서 술만 갖고 나오는 게 민망해서 두 번째 주문은 집사람에게 부탁해야만 했다. 바가지를 쓰는 것 같아 조금 언짢았지만 잠깐잠깐 비구름이 벗겨지며 나타나는 영실의 기암(奇巖)들로 위안을 삼으며 찜찜했던 마음을 걷어낼 수 있었다.

 

 

 

산행날머리는 영실(靈室)지구탐방안내소

영실휴게소의 주차장은 소형차만 주차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사를 이용한 탐방객이라면 탐방안내소 주차장까지 더 걸어야만 한다. 여행사는 대부분 대형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휴게소부터는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그러나 도로의 왼편에 나무테크로 인도(人道)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걷는 데는 별로 부담이 없는 코스이다. 휴게소에서 탐방안내소까지는 2.4Km,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색다른 볼거리가 있어 생각보다는 지루하지가 않다. 영실 숲에 들어서면서 보이기 시작하던 노루가 이제는 심심찮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30분 정도를 노루와 눈을 맞추면서 걷다보면 저만큼에 영실교()가 보이고, 탐방안내소는 그 아래에 있다  

 

 

                                               

 

여행지 : 러브랜드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여행일 : ’13. 8. 2()

함께한 사람들 : 영진투어(소나무산악회)

 

특징 : 국내 유일의 성()을 주제로 한 테마조각공원이다. 현대문화의 화두인 성문화(性文化)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예술적으로 승화된 현대적 감각의 작품을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또한 선인장이나 야자수 등 남국(南國)의 풍취(風趣)를 흠뻑 묻어나는 식물들이 식재된 너른 공간에 조각 작품들을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제주도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러브랜드에서 남녀의 성기(性器)는 하나의 장난감이다. 러브랜드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남자의 성기를 이용한 이정표이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여자화장실 손잡이까지도 남자의 성기로 만들어 놓았다. 방심했던 여자들이 자지러지는 순간이다. 또한 여자의 성기를 거대하게 만들어놓은 상징물 속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각 방마다 갖가지 종류의 남자의 성기가 들어 있다.

 

 

 

()이란 드러내놓고 말하기에는 왠지 민망한 것이다. 누구나 관심은 있지만 아닌 척, 고상한 척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認識)되고 있다. 그러한 인식 때문에 우리들은 성을 꼭꼭 억누르며 살아왔다. 러브랜드는 어떻게 보면 성의 해방구라고 볼 수 있다. 꼭꼭 억눌렀던 성을 한방에 깨뜨려버렸으니까 말이다.

 

 

 

 

러브랜드는 한마디로 음란공원이다. 차마 똑바로 눈을 맞추기가 민망스러운 작품들이 공원의 곳곳에 널려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러브랜드는 우리들의 일상이다. 다만 표현을 못할 뿐인 우리네 삶인 것이다.

 

 

 

 

 

 

실내전시관도 볼거리가 참으로 많다. 밀폐된 공간이어선지 더 적나라한 공간이다. 성행위의 수십 가지 체위가 적나라하게 사진으로 전시되고, 옛날 우리네 주위에서 볼 수 있었던 성생활을 풍자화해서 그린 그림들도 전시되어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전시되고 있으니 꼭 들러보아야 할 공간이다.

 

 

 

 

 

 

 

 

 

 

러브랜드를 찾는 여성들은 크게 두 가지로 확연하게 나뉜다. 하나는 수줍어서 감히 조각품에 정면으로 눈을 맞추지 못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깔깔거리며 숫제 조각품을 만지는 사람들이다. 전자(前者)는 아가씨들이 대부분이고, 후자(後者)는 대개 중년의 아주머니들이다. 그런 아주머니들 중에는 아예 남근석(男根石) 위에 올라앉기까지 한다. 그러나 표정들은 모두 한결같다. 아주머니나 아가씨 할 것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거리낌 없는 웃음을 짓고 마는 것이다.

 

 

 

 

 

 

 

러브랜드는 발칙한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는 공간이다. 사실 발칙한 상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간도 별도로 만들어져 있다. 공원의 야외 공간에는 수많은 조각상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남녀의 성과 사랑이 모든 작품의 주제다. 지극히 평범하게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희화적인 작품들도 다수 배치돼 있다. '밤이 무서운 남자''뚱녀 마님을 피해 달아나는 남자', '샤워하는 여자와 괴로운 남자' 등은 남녀 공히 공감하는 작품들이다. 바깥세상에서의 '외설'을 이곳에서는 '예술'로 승화시켜 놓았다.

 

 

 

 

 

여행지 : 성읍민속(城邑民俗)마을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여행일 : ’13. 8. 2()

소요시간 : 잠깐의 투어(tour) 정도로 생각하면 됨

함께한 사람들 : 영진투어(소나무산악회)

 

특징 : 성읍리(城邑里)는 제주가 3개의 현()으로 나뉘어 다스려지고 있을 때(1410~1914) 정의현(旌義縣)의 현청(縣廳)이 있던 마을로서 제주도 동부 중산간지대 마을의 특징이 남아있다. 유형무형(有形無形)의 많은 문화유산과 옛 마을 형태의 민속경관(民俗景觀)이 잘 유지되어 있어 민속마을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순천의 낙안민속마을과 같이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생동감을 더한다.

 

2일 오후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제주시(연동)에 있는 러브랜드, 러브랜드로 가는 길에 위치한 관광지 두 곳을 들러보는 일정이 계획되어 있다. ‘성읍민속마을사려니 숲길이다. 먼저 표선면에 있는 성읍민속마을을 찾는다. 마을 주차장에 버스가 멈추면 기다리고 있던 안내원(案內員)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예쁘장하면서도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안내원은 영락없는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다. 안내원들은 이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맡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저 여성도 이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 중 한분이 분명하겠건만 낯선 이질감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쩌면 전문 가이드(guide)들을 뺨칠 정도로 능수능란한 그녀의 말솜씨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문(大門)이 없는 제주의 민가 (民家)에는 입구 (入口)에 정주석 (定柱石)을 세워 주인이 있고 없음 을 알린다. 하나가 걸쳐 있을 때에는 가까운 곳에 있으며, 두 개가 걸쳐 있으면 한참 있다가 돌아오며, 세 개가 걸쳐 있으면 저녁 무렵에야 주인(主人)이 돌아온다는 표시(表示)이다. 그렇다면 이 집은 우리가 들어와도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는 제주도 사투리로 인사를 시작하는 그녀는 안내를 하는 중간 중간에 심심찮게 제주도 사투리를 교육까지 시켜주는 여유까지 부린다. 그러나 그녀의 안내는 겨우 민가(民家) 한 가구를 돌아보는 것으로 끝을 맺어버리고 만다. 민속품이라곤 물허벅과 맷돌방아가 전부, 과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곳을 찾아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처삼촌 벌초하듯이 민속촌 안내를 끝내고, 나머지 시간은 이곳의 특산품인 오미자와 말뼈로 만든 제품 선전에 할애를 하고 있다. 건강에 좋은 것을 안내해 주는 것도 좋지만, 관광객들이 원하는 것은 이곳 민속마을이 갖고 있는 문화유산(文化遺産)에 대한 안내가 아닐까 한다. 참고로 한라산의 중산간(中山間)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성읍민속마을은 옛날(조선시대)에 정의현의 현청(縣廳)이 있던 곳이다. 1400년대부터 구한말까지 약 500여 년의 세월 동안 묵혀진 제주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제주를 대표할 만한 민속 유물(遺物)과 유적(遺跡)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향교와 일관헌을 비롯해서, 이 지역 특유의 민간초가(草家)와 돌하르방, 성지, 연자마, 옛 관아지, 오래된 비석 등의 유형문화유산(有形文化遺産)과 중산간지대 특유의 민요, 민속놀이, 향토음식, 민간공예, 제주방언 등의 무형문화유산(無形文化遺産)이 아직까지도 전수되고 있다. 특히 관광객에게 공개되는 가옥에 실제로 성읍리 주민들이 살고 있는 점이 다른 민속촌(民俗村)들과 다른 점이다.

 

 

 

 

 

 

동네 입구에서 눈에 띈 돌하르방, 이곳에는 박수머리 또는 무성목이라고 불리는 돌하르방 12기가 있다고 하는데, 저 돌하르방이 그중 하나인지는 모르겠다. 이곳의 돌하르방은 제주도 다른 지역의 것들에 비해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눈썹이 그려져 있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이 마을에는 돌하르방 외에도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신수를 관장하는안할망당', 부인들의 부인병을 관장하는 '광주 부인', 가축의 질병과 양육을 관장하는 '쉐당' 등 다양한 민간신앙이 남아 있으며, 마을제인 포제가 해마다 열린다고 한다.

 

 

사려니 숲길(제주시 봉개동과 서귀포시 남원읍 일원)  

성읍민속마을에서 1112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제주시로 가는 길에 사려니 숲길이 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절물 자연휴양림(제주시 봉개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자동차로 5분 거리) 곳이다. 사려니는 살안이혹은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혹은 이라는 단어는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신역(神域)의 산명(山名)에 쓰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려니 숲은 신의 영역 곧 신이 머무는 숲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사려니 숲길 걷기에 주어진 시간은 1시간 정도, ()구간을 모두 돌아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2Km만 걷다가 되돌아 나오는 것으로 절충했다.

 

 

 

 

 

사려니 숲길의 들머리는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15Km의 숲길을 말한다. 해발고도(海拔高度) 500~600m에 위치하고 있는 사려니 숲길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라서 걷는데 아무 부담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전형적인 온대산지(溫帶山地)인 사려니 숲길에는 자연림으로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등이 자생(自生)하고, 인공림(人工林)으로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조림(造林)되어 있다.

 

 

 

 

 

여행지 : 섭지코지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성산포시 성산읍 고성리

여행일 : ’13. 8. 2()

소요시간 : 서서히 걸어도 왕복 30분이면 충분하다.

함께한 사람들 : 영진투어(소나무산악회)

 

특징 : 제주섬 동쪽 끝에 위치해 예로부터 '금방 떠 오른 새로운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마을' 신양리(新陽里). 그 곳에 섭지코지가 있다. 성산일출봉이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이곳은 주변 경관(景觀)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난 2003년에 방영된 TV드라마 '올인'의 촬영지로 이름을 날리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 덕분에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섭지코지의 라는 지명(地名)의 코지는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좁은 곶이라는 의미의 제주 사투리다.

 

주차장에 내리면 바닥을 반반한 바위로 깔아놓은 너른 길이 보인다. 제주의 명물인 올레길답게 깔끔하게 잘 닦여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왼편으로 또 하나의 길이 보인다. 초원(草原)을 걷게 되는 산책로이다. 두 길은 협자연대 근처에서 다시 만나게 되므로 어느 길을 선택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돌아올 때에는 다른 길을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이 초원산책로를 놓쳐버리는 우()를 범해버리고 말았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지쳐 조금이라도 빨리 등대까지 다녀오는 것에 너무 집착했던 탓이다. 그만큼 섭지코지는 햇빛을 막아줄만한 나무 한그루 없는 온전한 초원지대이다.

 

 

 

올레길로 들어서기 전에 오른편에 보이는 전망대(展望臺)로 올라서면 올인 하우스선녀바위가 조망(眺望)된다. 바다 한 가운데 길쭉하게 서 있는 선녀바위의 모습은자태(姿態)’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신비롭다. 마치 선녀처럼 정숙하게 앉아 다소곳이 파도를 맞고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이 섭지코지는 옛날 선녀(仙女)들이 목욕을 즐기던 곳이라는 전설(傳說)이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 애틋한 사랑이야기 한 토막이 없을 리가 없다. 용왕(龍王)의 아들이 목욕하러 내려온 선녀의 미모에 홀딱 빠져 버렸나보다. 그 용왕의 아들은 선녀를 따라 하늘로 승천하려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그 자리에서 선돌이 되어 슬픈 운명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을 간직한 이 바위를 후세 사람들이 선녀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곳을 찾는 수많은 연인(戀人)들의 사랑을 지켜주는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고 한다.

 

 

 

올레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왼편에 아담한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언덕 위에 오롯이 앉아 있는 건물은 전형적인 시골성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 2003년에 방영된 TV드라마 '올인'의 촬영지이다. 그래서 이름도 올인 하우스이다. ‘올인 하우스는 지상 1, 지하 2층의 성당건물과 러브하우스 그리고 야외공원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에서는 재미삼아 카지노를 체험(體驗)할 수 있다고 한다. 입장객들은 3개씩 주어지는 칩으로 블랙잭과 바카라를 한차례씩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부의 결과는 뻔할 것이다. 도박 경험에 의하면 결코 딜러(dealer)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선카지노의 오프닝 세리머니(opening ceremony)’에 참석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나도 딜러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인하우스를 지나면 구릉 위를 점령하고 있는 돌무더기 하나가 보인다. 협자연대(煙臺)이다. 연대는 연기와 횃불을 이용하여 군사적(軍事的)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通信)수단이었다. 봉수대(烽燧臺)와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丘陵)이나 해안(海岸)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봉우리에 설치하였던 것이 다른 점이다. 이곳 협자연대에는 정의현 소속 별장 6명과 별군 12명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북쪽은 오소포연대(직선거리 4.5km)와 성산봉수대(직선거리 3.2Km) 서쪽으로 망등포연대(직선거리 5.2Km)와 교신(交信)하였다.

 

 

 

 

연대(煙臺)를 지나면 저만큼에 나지막한 봉우리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붉은오름(赤岳)'이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쌓인 층이 바닷물에 의해 깎아내리며, 검붉은 색을 띄어 붉은오름이란 이름을 얻었다. 붉은오름은 해발 33m, 오름 자체의 높이가 28m로 원추형의 낮은 오름이지만, 지질학적으로 분석구의 형성 과정과 분석구의 중앙부부터 외곽부까지 다양한 지질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바닷물이 깎아 내고 남아 있는 오름의 정상부까지는 길게 나무계단이 놓여 있는데, 그 정상부에 등대(燈臺)가 있다. 1998년 세워진 '방두포 등대'이다. 붉은오름 위에 우뚝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등대의 모습은 의젓하기만 하다. 등대에 올라 멀리 아득한 바다와 그 위에 떠있는 우도, 제주섬을 아우르는 오름들의 경치를 보는 멋은 일품이다. 참고로 등대에서 철제계단으로 내려서면 성산일출봉으로 연결되는 해안길이 나온다.

 

 

 

 

섭지코지의 백미(白眉)는 뭐니 뭐니 해도 해발고도(海拔高度) 33'붉은오름'이다. 오름의 위에는 오롯이 바다를 굽어 살피고 있는 방두포 등대(燈臺)’가 있고, 거기에다 슬픈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선돌바위(선녀바위)까지 오름의 끝자락에 도드라지게 솟구쳐 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붉은오름은 화산섬인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360여개 기생화산(오름) 중에서 심장부(오름의 절반이 바닷물에 씻겨나가 절반만 남았다)를 드러낸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제주도 지질여행(박기화 지음)'에서는 붉은오름 주변에 퇴적된 스코리아층의 층리(層理)를 연속해 그려보면 선돌바위는 화도(火道)에 있던 마그마가 굳어져 형성된 암경(volcanic neck.원통형 용암기둥)임을 확인할 수 있다화산폭발이 일어난 분화구(噴火口)의 중심부라고 붉은오름을 설명한바 있다. 참고로 남제주군에서는 붉은오름의 뛰어난 경관과 학술적가치(검붉은 송이층, 화산탄)가 높음을 들어 천연기념물 지정을 추진하다가 중단한바 있다.

 

 

 

 

섭지코지는 딱히 어디가 촬영(撮影) 포인트이고, 어디가 쉴 곳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다. 보이는 곳 모두가 촬영 포인트이고, 멈추는 곳 모두가 쉼터이기 때문이다. 걷다가 쉬고 싶어지면 어디에고 주저앉으면 되고, 그리고 마음 내키면 아무데서나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면 된다. 바라보이는 풍경(風景) 모두가 한 폭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멀리 성산 일출봉이 바라보이는 바닷가 언덕에는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그 풍경에 마음이 동했는지 집사람이 살금살금 말의 곁으로 다가간다. 하긴 이런 분위기에 취하지 않을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영화나 드라마 감독들이 이곳을 단골 촬영지로 정했던 것을 보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아까 얘기했던 올인은 제외하고라도 단적비연수, 천일야화 등이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행지 : 성산 일출봉(日出峰)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여행일 : ’13. 8. 2()

함께한 사람들 : 영진투어(소나무산악회)

소요시간 : 매표소에서 정상까지 오르는데 25분 돌아오는 데는 15분 정도 걸린다.

 

특징 : 성산일출봉은 삼면(三面)이 깎아지른 해식애(海蝕崖)를 이루고 있으며, 99개의 봉우리가 분화구를 빙 둘러싼 모습이 마치 거대한 성()을 닮았다고 해서 성산(城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일출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해돋이가 유명하며, 연말과 연초에 일출을 보고자 하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유독 아름다워 영주십경(瀛州十景)’에서 제1(城山日出)으로 손꼽힌다. 여기서 영주(瀛州)’는 탐라(耽羅)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제주의 옛 이름이다.

 

일출봉의 탄생(誕生)은 본섬인 제주도와는 별도로 약 10만 년 전 수심(水深)이 얕은 바다 속에서 화산(火山)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 제주도와 떨어져 있었지만, 섭지코지 해변 인근의 땅과 섬 사이에 모래와 자갈이 쌓이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연결됐다고 한다. 이러한 특이성으로 인해 수성화산의 분출(噴出)과 퇴적(堆積)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2000년 천연기념물 제420호에 이어, 아름다운 경관과 뛰어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으며, 2010년 세계지질공원, 2011년 세계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입장료(2천원)를 내고 공원(公園 : 도립)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깔끔하게 잘 가꾸어진 초원(草原)과 그 너머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 나타난다. 성산(城山)이라는 지역의 이름까지 만들어 낸 일출봉이다. 산으로 향하는 길도 초원만큼이나 잘 닦여 있다. 5분쯤 걸으면 계단이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으로 오르는데 낯선 단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강한 악센트(accent)로 인해 소란스럽다는 느낌까지 드는 중국어(中國語)이다. 아마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들이 아닐까 싶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이틀 동안의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강하게 느낀 점은 이곳이 한국 땅인지 중국 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중국인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잘 정비된 계단을 따라 오르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우뚝 솟은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빗물에 의한 차별침식(差別侵蝕)의 결과로 형성된 것들 이라고 한다. 그중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등경돌(징경돌)바위이다. 언젠가 전북 완주의 장군봉에서 본적이 있는 해골바위를 닮은 등경돌바위는 그만의 독특한 전설(傳說)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하나는 설문대할망에 관한 전설이다. 할망은 치마폭으로 흙을 날라 섬을 만들면서 밤에는 일출봉 꼭대기에 앉아 터진 치마를 바느질했다고 한다. 저녁인지라 기암(奇巖) 가운데 높이 솟은 바위 하나를 골라서 불을 켰지만 등잔이 낮아서 밝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큰 바위 하나를 더 얹어서 등잔으로 썼는데, 그 바위가 등경돌바위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전설은 고려(高麗) 말 원나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김통정장군에 대한 것이다. 장군이 성산마을에 성()을 쌓아 나라를 지켰는데, 등경돌 아래에 앉아 바다를 응시하고 때로는 바위 위로 뛰어오르며 심신(心身)을 단련했다고 한다. 바위의 중간에 큰 발자국 모양으로 패인 흔적은 이때 생긴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이 바위 앞에서 제()를 지내 마을의 번영과 가족의 안녕을 빌었으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쟁터에 나간 젊은이들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요즘도 이곳 주민들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네 번씩 절을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은 지겹다 싶을 정도로 오래 계속된다. 그러나 그 길이 결코 지겹지만은 않은 이유는 눈이 즐겁기 때문이다. 심심찮게 귓가를 살랑대는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길가에 늘어선 기암괴석을 눈으로 쫒다보면 지루할 새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일출봉은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사발 모양의 분화구(噴火口)와 그 너머로 넘실대는 푸른 바다 또한 장관(壯觀)이다. 하지만 성산 일출봉의 진가는 탄생(誕生)의 비밀에 있다. 제주도내 다른 오름들과는 달리 수심이 낮은 바다 속에서 화산(火山)이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이기 때문이다. 분화구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고 해안 절벽을 따라 다양한 퇴적(堆積)구조를 살펴볼 수 있어 지질학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이러한 점이 인정되어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2007)된바 있다.

 

 

 

 

정상으로 향하다가 힘들다싶으면 구태여 계속해서 오르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잠시 쉬었다가 오른다고 해도 다녀오는 시간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길게 늘어진 계단 아래에 시원한 바다 바람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그 뒤로는 제주의 오만가지 오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산행을 시작한지 20, 쉬면서 걸어도 25분이면 일출봉의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에 도착하면, 지름 600m, 바닥면의 높이가 해발 90m, 면적이 8만여 평이나 되는 거대한 분화구(噴火口)가 눈에 들어온다. 분화구는 얼핏 평원(平原)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넓고 푸르다. 어떻게 하면 산의 정상이 저리도 넓을 수가 있을까. 하긴 그러니까 옛날 성산주민들이 이곳의 풀을 베어 쓰거나 가축을 방목했었을 것이다. 정상은 넓고 아름답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분화구 밖에는 푸른 바다가, 그리고 분화구 안으로는 드넓은 풀밭이 펼쳐진 비경(秘境)이 더해져,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내려오는 길에 오른편에 오솔길이 보이기에 들어가 보았더니 기암괴석(奇巖怪石) 하나가 보인다. 안내판이 보이지 않아서 내력은 모르겠지만 울퉁불퉁하게 생긴 바위모양이 전형적인 화산석(火山石)이다. 소라껍질처럼 속이 텅 비어있는 것이 여간 괴이(怪異)하지가 않다.

 

 

 

산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해안절벽이 나타난다. 일출봉을 감싸고 있는 해안(海岸)으로서 우뭇개 해안이라고 불린다. ‘우뭇개해안가로 움푹 들어와 있는 바다’, 또는 우뭇가사리가 많이 나는 바다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해안절벽은 켜켜이 쌓인 층리(stratification, 層理 : 용암류 또는 화산쇄설성 퇴적물과 같이 지표에 형성된 화성암 및 대부분의 퇴적암에 나타나는 암석의 겹쳐진 상태)구조로 되어있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의 끄트머리에 붉은 지붕의 건물이 한 채 보인다. ‘해녀(海女)의 집이라고 불리는 해녀들의 공간이다. 저곳에 가면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어류나 조개류들을 맛볼 수 있으며, 해녀들의 물질 공연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해녀들의 발상지(發祥地)는 제주도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재 제주도에는 4,881(2011년 기준)의 해녀가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지 : 우도(牛島)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우도면

여행일 : ’13. 8. 2()

함께한 사람들 : 영진투어(소나무산악회)

 

특징 : 제주에서도 가장 제주다운 곳이 바로 우도(牛島)디다. 추자도, 가파도, 마라도, 비양도 등 8개의 유인도(有人島)중 제주의 속살로 불릴 정도로 제주와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속의 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소가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해서 이름이 붙여진 우도는 해안선 길이가 17km에 불과하지만 풍광(風光)만큼은 옹골차다. 참고로 이 섬이 세상에 나온 것은 신생대 제4기 홍적세(200만년~1만년 전)로 추정되며,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헌종 10(1844)때의 일이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배로 시작해서 배로 끝을 맺게 되는 일정이다. 삼천포항에서 두우 페리호(DooWoo Ferry : 11,000톤 선박으로 정원은 550)를 이용하여 제주도로 들어갔다가 제주에서 돌아올 때에도 같은 배를 이용해서 삼천포항으로 되돌아 나오는 것이다. 선실(船室)은 물론 다인(多人), 추가 요금을 내고 2인실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빈 방이 없다고 한다. 비좁은 잠자리가 불편할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편하게 잘 잤다. 아까 삼천포 어시장에서 얼큰하게 마신 술 덕분이 아닐까 싶다. 2230분에 삼천포항을 출항하는 배는 다음날 아침 7시 경에 제주항에 도착한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를 타고 늘봄 흑돼지식당으로 이동, 선지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해장국은 물론이고, 김치 등 밑반찬까지 음식은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영진투어는 지난해 관매도-조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친절하면서도 빈틈없는 진행이 돋보여 이번에도 따라나섰는데 내 결정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만남은 처음에 느끼는 선입견(先入見)이 전체를 좌우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모 정부공기업(公企業)의 부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한적함을 즐기고 있는 친구 형우군() 부부까지 꼬드겨 따라나섰으니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식사 후에는 곧바로 성산항으로 이동한다. 우도(牛島)로 들어가는 배편이 성산항에서 있기 때문이다.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15분 정도가 지나면 우도의 천진항이다. 천진항으로 가는 길에는 빼먹지 말아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우도에 닿기 직전에 뱃머리에 올라보는 일이다. 뱃머리에서 바라보는 우도의 아름다운 전경이 바로 우도8중의 하나인 전포망도(前浦望島)이기 때문이다. 이왕에 오른 뱃머리, 파란하늘 아래에 펼쳐지는 우도를 바라보며 그림 한 점 그려보자. 물위에 소()가 누워 있는 그림을 말이다. 참고로 우도여행은 '우도8'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우도의 풍경을 낮과 밤(주간명월야항어범), 하늘과 땅(천진관산지두청사), 앞과 뒤(전포망도후해석벽), 그리고 동과 서(동안경굴서빈백사)로 노래한 것이 우도8이다.

 

 

 

 

 

우도 여행의 묘미(妙味)는 뭐니 뭐니 해도 올레길을 걷는 것이다. 섬 한 바퀴를 원을 그리며 도는 올레길은 총 16.1km. 어른 걸음으로 5~6시간 걸린다. 올레길은 제 자리에서 시작해 제 자리에서 끝을 맺는다. 만약 천진항에서 일주(一周)를 시작할 경우, 우도봉과 하우목동항 등 섬을 한 바퀴 돈 뒤에 다시 천진항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 이런 삼복(三伏)더위에 걷는 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다. 별 수 없이 섬내 버스를 이용해서 섬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5천원을 주고 탄 버스는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도로를 잘도 누비더니 우도봉(쇠머리오름) 아래의 주차장에 손님들을 내려놓는다. 손님들은 이곳에서 해발 132m의 우도봉과 등대공원을 지나 반대편 검멀레해안에 있는 주차장까지 가야만 한다. 타고 온 버스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널따란 평원(平原)이다. 승마(乘馬) 체험장(體驗場)을 지나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바위벼랑의 위이다. 바위벼랑 위로 이어지는 올레길은 한마디로 장관(壯觀)이다. 왼편에는 녹색의 초원(草原), 그리고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온통 푸른빛으로 물든 바다가 펼쳐진다. 이런 멋진 풍경이 이름 하나 갖고 있지 않을 리가 없다. ‘우도8중의 하나인 천진관산(天津觀山)은 바로 이 경치를 일컫는다. 오늘은 비록 구름에 둘러싸여 그 자태를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시계(視界)가 또렷한 날 제주 쪽을 바라보면 바다 건너 우뚝 선 한라산과 봉긋봉긋한 오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한다.

 

 

 

 

 

비록 천진관산(天津觀山)의 본 모습은 아니지만,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성산일출봉이 또렷이 나타나고 있다. 구름 뒤로 숨어버린 한라산까지 나타날 때 우도8이 그 본 모습을 나타내는데도 말이다.

 

 

 

 

 

한가롭게 승마(乘馬)를 즐기는 사람들을 지나면 우도의 백미(白眉)인 우도봉(132m)에 올라서게 된다. 우도봉은 소 머리를 닮았다 해서 우두봉(牛頭峰) 혹은 소머리오름이라고도 불린다. 우도봉은 주변에 높이를 견줄 산이 없어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정상에서 굽어보는 풍광(風光)이 바로 우도8중의 하나인 지두청사(地頭靑莎). 곱디고운 잔디 너머로 우도의 들녘이 펼쳐지고, 들녘에 점점이 들어박힌 지붕들은 원색(原色)의 지붕을 이고 있다. 언젠가 화랑에서 본 이국적(異國的)인 풍경(風景)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다 건너에 성산일출봉이 두 눈에 꽉 찬다.

 

 

 

 

 

 

우도봉 정상에서 지두청사(地頭靑莎)를 실컷 즐겼다면 이제는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정상에서 등대로 넘어가는 길목을 통신시설이 가로막고 있어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되돌아 내려온다고 해서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다시 한 번 지두청사를 즐기는 호사(豪奢)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들이 온통 메말라버린, 집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소나무 시체가 즐비한 숲을 지나면 올레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진행방향에 우도등대로 올라가는 길이 나타난다.

 

 

 

 

 

등대를 향해 계단을 오르다보면 좌우의 빈 공간에 가지각색의 등대(燈臺)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바로 공원(公園)으로 조성된 우도등대의 야외전시장(野外展示場)이다. 전시장에는 우리나라의 등대를 비롯해 세계의 유명등대 모형 16점이 전시되고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들어가 볼 일이다. 멋진 등대들을 일일이 찾아가지 않고도 눈에 담을 수 있으니 얼마나 경제적이겠는가.

 

 

 

 

공원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등대가 하나가 아니고 두 개인 것에 눈이 동그래진다. 그러나 의아해 할 필요는 없다. 고전적인 창문이 돋보이는 우도 등대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등대는 1906년 무인등대로 출발해 97년간 불을 밝혀오다 2003년 새로운 등대에 그 자리를 넘겨줬다. ()등대는 제주도 최초의 등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6번째로 오래된 등대이다. 그리고 신()등대는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대형 회전식 등명기(燈明機)를 설치해서 50km 밖에서도 확인 할 수 있도록 광력(光力)을 증강시킨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참고로 등탑(燈塔)을 겸한 이곳 홍보실에는 항로표지 소개 판넬(panel) 13점이 전시돼 있으며, 전시실에 진열된 53점의 전시물과 함께 항로표지 3D 체험관(體驗館)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에 쫓기지만 않는다면 한번쯤은 들어가 볼 일이다.

 

 

 

등대에 올라서서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바람이 세다는 것이다. 등대에 오르면서 흘렸던 이마의 땀방울은 사라져버린 지 이미 오래다. 집사람이 갑자기 난간을 잡고 올라선다. 바람을 붙잡고 싶은 모양이다. 비록 두 팔을 활짝 벌리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귀에는 지금쯤 바람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을 것이다. 그 바람은 그녀를 관통하더니 이내 평원(平原)을 향해 거침없이 내닫아 버린다. 

 

 

 

등대를 떠난 올레길은 해안절벽(海岸絶壁)을 따라 이어지더니 갑자기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검멀레(검은 모래라는 뜻)해안으로 내려가기 위해서이다. 해안을 향해 길게 늘어선 계단을 내려서면 오른편에 거대한 바위절벽이 나타난다. 저 절벽 아래에 검게 보이는 부분이 우도8중의 하나인 동안경굴(東岸鯨窟)이다. ‘콧구멍이라고도 불리는 동안경굴은 '고래가 살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커 동굴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단다. 동굴까지는 검은 모래가 두텁게 깔린 검멀레해안(海岸)으로 연결된다. 썰물로 인해 물이 줄어들자 사람들이 걸어서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절벽아래에는 보트 몇 대가 사람들을 싣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우도8중의 하나인 주간명월(晝間明月)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주간명월은 우도봉 남쪽 기슭에 위치한 해식(海蝕)동굴 중 하나다. '오전 10~11시 햇빛이 동굴안의 바닷물을 비추면 물빛이 천장에 반사돼 영락없는 달 모양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주민들은 '달그린안'이란 예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우도봉 인근에 절경(絶景)들이 몰려있다. 야항어범과 전포망도, 서빈백사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의 우도8이 모두 이곳에 몰려있는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절경들 외에 후해석벽(後海石劈)도 우도봉 아래에 있다. 후해석벽은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 놓은 것 같이 생긴 우도봉의 기암절벽(奇巖絶壁)을 일컫는다. 이렇게 대부분의 절경들이 우도봉에 몰려있는 이유는 우도봉의 해안이 우도에서 유일하게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어진 배 출항시간에 쫓겨 동안경굴에는 들르지 못하고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집사람이 냉큼 해녀상(海女像) 앞에 선다. 절경 하나를 빼먹은 서운함이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검멀레해안을 출발한 버스는 해안선(海岸線)을 따라 달리더니 중간에서 방향을 틀어 섬을 관통한다. 반대편에 있는 우도산호라는 이름의 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중간에 우도마을과 비양도 등을 지나지만 멈추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것은 바쁜 일정 때문일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주변 경관(景觀)을 구경하는 것 외에도 다른 구경거리가 있다. 바로 버스기사의 너스레를 듣는 것이다. 우도에서 가장 어린 해녀(海女)를 부인으로 두고 있다는 버스기사가 섬의 내력과 동네 사람들의 인심 등 섬사람들의 자질구레한 일상까지도 유머(humor)를 섞어가며 재미있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청룡열차 체험이라며 좁은 골목길을 아슬아슬하게 곡예(曲藝)운전할 때에는 여성들이라면 비명을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스릴(thrill)이 만점이다  

 

 

 

섬의 가운데를 가로지른 버스는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백사장에 손님들을 내려놓는다. 사빈(sand beach , 砂濱 : 강에서 운반된 모래 또는 해안 침식으로 생긴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지는 모래해안)이 홍조단괴(紅藻團塊)의 파편으로 이루어졌다는 우도산호해수욕장이다. 홍조단괴는 바다풀의 일종인 홍조류가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백사장의 모래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다 못해 푸른빛을 띠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도 역시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우도8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바로 서빈백사(西濱白沙)이다. 서빈백사는 우도8지정만으로는 만족을 못했던지 천연기념물(438)로까지 지정된바 있다. 해수욕장에서 배가 출항하는 천진항까지는 금방이다.   참고로 우도 8경의 마지막 하나는 밤 풍경을 노래한 야항어범(夜航漁帆)이다. 여름이면 비양도 등의 앞바다에서 어선들이 고기를 잡느라 불야성을 이룬다고 한다. 이때는 칠흑같이 어두운 날이라도 마을 안길은 대낮처럼 밝고, 잔잔한 수면은 마치 바다가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현란하단다. 이를 우도8의 하나로 노래한 것이다.

 

 

 

                                                         

저지오름(239.3m)

 

산 행 일 : ‘13. 4. 20(토)

산행코스 : 저지마을→오름 둘레길→오름길→분화구 둘레길→정상↔분화구→나머지 둘레길(산행시간 : 1시간 30분)

 

특징 :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바다에 반한다. 그러나 여행객들을 반하게 만드는 것은 꼭 바다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을 반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오름’이다. 부드러운 오름의 능선과 그 오름에서 굽어보는 제주의 또 다른 풍광(風光)은 제주에서 만나게 되는 아름다움의 정점이다. 한라산이 거느리고 있는 크고 작은 오름은 360여 개에 이른다. 그런데 그 ‘오름’들은 각기 저마다의 독특한 풍광과 느낌을 준다고 한다. 은빛 억새들이 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오름, 소와 말이 노니는 이국적인 정취의 오름, 굼부리(분화구)에 연못이 있는 오름 등 오름마다 독특한 그들만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아름답고 개성 있는 오름들 가운데 드물게도 울창한 숲을 가진 오름이 있다. 바로 ‘저지오름’이다. 저지오름은 저지리(한경면)의 도로 오른쪽에 우뚝 솟아 있는 오름이다. 닥몰오름, 새오름, 저지악(楮旨岳) 등 여러 별칭으로 불린다. 높이 239.3m, 둘레 2,542m, 총면적 37만 9316m²의 규모로 모든 사면(斜面)의 경사도(傾斜度)와 거리가 거의 같아 전체적으로 원형을 이룬다. 산 정상에는 둘레 약 800m, 깊이 약 60m에 달하는 깔때기 모양의 분화구가 있다.

 

 

▼ 산행들머리는 저지마을

제주시에서 1132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한림읍까지 온다. 한림읍의 명월교차로(交叉路 : 한림읍 동명리)에서 빠져나와 1120번 지방도에 이어 1136번 지방도를 대정방향으로 달리면 산행들머리인 저지마을에 이르게 된다. 저지리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뒤에 버티고 있는 오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지오름의 특징이 숲오름이라고 하더니 정말 푸르른 나무들이 무성하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걸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마을에 들어서면 집들마다 어깨 높이의 새까만 돌담들이 쳐져 있다. 돌담 너머의 마당엔 때깔 고운 한라봉이 주렁주렁 배달려 있다. 수확할 시기인데도 아직까지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관상용(觀賞用)으로 기르는 모양이다.

 

 

 

▼ 마을을 지나면 오름의 들머리에 이르게 된다. 들머리에는 조그만 체육공원이 설치되어 있고, 오름의 지도와 오름에 대한 설명 팻말이 세워져 있다. 원래 허허벌판 민둥산이었던 오름. 30여 년 전부터 나무를 심고 가꾼 주민들의 정성으로 이렇게 숲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정성이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까지 차지하게 만든 것이다.

 

 

 

 

 

▼ 산행은 까만 제주의 돌 현무암으로 만든 계단을 밟고 오르면서 시작된다. 돌계단을 밟고 100m쯤 오르면 산길은 산의 사면을 좌우(左右)로 째면서 이어진다. 둘레길이란 말 그대로 산을 한 바퀴 돌도록 만들어졌다. 어느 쪽으로 진행하던지 반대편에서 다시 만나게 되므로 고민할 필요 없이 아무 방향이니 골라잡으면 된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가벼운 차림의 제주도 사람들 외에도 등산화와 등산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올레 13코스중의 마무리 구간인 저지오름을 걷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저지오름의 숲길이 올레길에 포함될 만큼 아름다운 숲길이라는 증거이다.

 

 

 

  

 

 

▼ 올레길을 걷다보면 반대편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만나게 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100m쯤 오르면 오르막길이 끝나면서 다시 길이 좌우로 나눈다. 곧바로 오름 정상으로 가려면 왼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그러나 오름 굼부리(분화구) 둘레를 삥 둘러 걷는 것을 권하고 싶다. 둘레길을 따라 왕초피나무, 가막살나무, 합다리나무, 예덕나무, 까마귀베개, 까마귀쪽나무, 좀작살나무 등 낯선 나무들로 꽉 찬 숲은 보기만 해도 즐겁기 때문이다. 

 

 

 

 

▼ 저지오름은 조망은 물론 숲이 좋은 오름이다. 35㏊ 면적에 220여 종 2만여 그루의 나무가 빼곡하다. 겉보기에는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속살을 파고들면 아름다운 숲에 이내 마음을 빼앗긴다. 왕초피나무, 가막살나무, 합다리나무, 예덕나무, 까마귀베개, 까마귀쪽나무, 좀작살나무 등 이름도 낯선 나무들로 꽉 찬 숲은 산자락을 삥 둘러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양탄자 위를 걷는 듯 푹신한 숲길은 햇빛이 들어오기가 힘겨울 만큼 울창하다. 저지오름의 울창한 나무숲은 2005년 6월 생명의 숲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는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 제주에는 오름에 관한 재미난 전설(傳說)이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제주의 거신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나르면서 한 줌씩 새어나온 게 봉긋봉긋한 오름이 되었고, 그 중 너무 도드라진 오름을 주먹으로 툭 쳐서 누른 게 굼부리(噴火口)라는 것이다.

 

 

 

 

▼ 오름의 정상엔 나무로 지어진 전망대(展望臺)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거칠 것 없는 풍광(風光)이 눈앞에 펼쳐진다. 널따란 한경면의 들판과 바다를 아우르는 제주의 서쪽 전경(全景)이다. 차귀도, 비양도, 추자도, 산방산, 송악산, 가파도 등이 한눈에 잡히고 등 뒤에는 한라산이 듬직하게 버티고 서 있다.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바람에 가슴이 뻥 뚫릴 듯 시원해진다. 해발 239m의 높이에서 이런 장쾌한 풍광(風光)이 펼쳐지다니, 오름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인 모양이다.

 

 

 

 

  

 

▼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내려가는 길 외에 또 하나의 길이 나있다. 오름의 굼부리(噴火口)로 내려가는 길인데 길게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이 250여 개나 되기 때문에 다소 버겁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내려간다. 그래야만 분화구(噴火口)의 바닥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전망테크가 만들어져 있고, 테크에 서면 분화구(噴火口)가 한눈에 들어온다. 분화구 숲은 아까 산을 오르면서 보았던 숲보다도 더 울창하다. 낙엽수림과 상록수림이 빼곡하게 자리해 원시(原始)의 자연림을 그대로 내보인다. 정상에서 세차게 불던 바람도 굼부리에선 흔적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유채와 보리, 감자농사를 지었다고 한다(안내 팻말). 그땐 이렇게 나무계단도 없었을 텐데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얼마나 삶이 척박했으면 이곳까지 찾아와 밭을 일구었을까 생각하니 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 나와 아까 올라섰던 길의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금방 산을 오를 때 만났던 삼거리이다. 이곳에서 오름의 둘레길로 내려서서 아까 걸어왔던 길과 반대편 방향으로 걸으면 산행을 시작했던 저지마을이 나온다.

 

 

여행 일자 : ‘13. 4. 19 - 21(2박3일)

여행 지 : 제주도 일원

여행 목적 : 부천테크노파크 입주자협의회 임원진 연수회

 

 

숙소인 라온골프텔(아래 사진은 클럽하우스), 눈을 뜨자마지 커튼을 제키고 날씨부터 확인한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리고 있다. 그것도 제법 많은 양이다. 부득이 골프 라운딩을 취소하고 투어로 계획을 수정한다.

 

 

 

 

먼저 찾아간 곳은 송악산, 송악산은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산으로 TV드라마인 ‘대장금’과 ‘올인’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산세(山勢)가 보잘 것이 없는 송악산을 오르려는 것은 아니고, 송악산 들머리에 있는 포구(浦口)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이곳에서 마라도를 왕복하는 ‘직항 유람선(遊覽船)’이 출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포구에 도착하고 나서는 마라도에 가는 것이 달갑지 않은 표정들이다. 비가 오니 구경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을 쫒아 주상절리로 방향을 잡는다.

 

 

 

대포주상절리(서귀포시 중문동 소재), 주상절리는 화산 폭발에 의하여 분출된 용암이 바닷가로 흘러와 물과 만나 급격하게 수축하면서 만들어진 육각형 또는 사각형 형태의 기둥을 말한다. 화산섬인 제주에는 곳곳에 주상절리가 있지만 제주 중문단지 안에 있는 주상절리는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가까이에 다가가 볼 수 있도록 이동 통로와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해안가에 각진 기둥이 겹겹이 쌓인 웅장한 모습으로, 검은 기둥에 파도가 부딪혀 생기는 하얀 포말이 검은색의 주상절리와 어우러지며 멋진 색의 조화를 보여준다.

 

 

 

 

 

 

 

 

 

주상절리 관광을 마친 후에는 제주시내에 있는 화북항으로 자동차를 달린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이다. 서귀포의 중문에서 제주시까지는 꽤나 먼 거리이지만 맛있고 저렴한 자연산 회를 맛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불편쯤이야 언제라도 감내(堪耐)할 수 있을 것이다. 일행인 김사장님의 지인(知人)이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데, 그분이 평소에 자주 찾는 집이라니까 품질이나 가격 모두 틀림없을 것이다. 1시간 정도를 달려 찾아온 해찬식당(064-721-0090)은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반갑게 맞이하는 김사장님의 지인은 수년 전에 부천에서 사업을 했었다고 한다. 그때의 인연으로 김사장과는 지금까지 친분을 나누고 있는 중이란다. 요즘은 한라산국립공원에 다니고 있는데, 좋은 집을 안내해 주는 것도 모자라 음식 값까지 계산해 주셨다. 자연산 ‘참돔 회’와 ‘자리돔 구이’는 우리들 입맛에 딱 맞았다. 밑반찬은 어제 점심때에 비해 비록 뒤떨어지지만, 회는 싱싱했고 가격 또한 어제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래서 아는 집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모양이다.

 

 

 

 

 

 

마지막 날은 공식 일정이 없다. 2시30분에 예약된 비행기만 타면 되는 것이다. 느긋하게 9시에 일어나 아침은 클럽하우스에서 해결한다. 아침 메뉴를 ‘고사리 해장국’으로 정하는 이유는 이것 역시 제주도의 별미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특산품 중 하나인 고사리를 재료로 사용하는 음식으로, 제주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먹어봐야할 별미이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제주시내에 있는 동문재래시장을 들르기로 한다. 제주도의 특산품을 사기 위해서이다.

 

 

 

 

 

 

 

여행 일자 : ‘13. 4. 19 - 21(2박3일)

여행 지 : 제주도 일원

여행 목적 : 부천테크노파크 입주자협의회 임원진 연수회

 

 

제주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9시30분, 짐을 찾고 나니 10시가 다 되었다. 같이 간 분들의 표정을 보니 다들 허기에 지친 모습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다 보니 아침밥을 거르고 나왔다는 것이다.

 

 

 

우선 ‘라온 골프클럽’이 위치한 한경면(저지리)으로 이동하여 라운딩(rounding) 멤버

(member)들을 내려놓고 한림읍으로 나간다. 골프장 인근에는 점심을 먹을 만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시가지를 두 번이 왕복하며 겨우 찾아낸 생선회 전문식당 ‘바다 이야기’, 자연산 돔의 가격은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모처럼 제주에까지 왔으니 비싸더라도 맛을 봐야 하기 않겠는가. 참돔과 벵어돔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데 수족관에 원산지(原産地)표시가 되어있다. 일본산이란다. ‘속은 것 아냐?’ 그러나 결코 속은 것은 아니다. 우린 자연산만 주문했지 원산지가 어디인지는 확인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오늘 난 새로운 요리법을 채득(採得)했다. 난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거의 안 먹는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 나에게 함께 간 김사장님이 회 먹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김 위에다 밥을 조금 편 후에, 그 위에다 겨자와 생선회, 그리고 락교를 넣고 싸서 먹으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수제(手製) 초밥이다. 의외로 맛이 있었고, 술안주로도 충분했다.

 

 

 

 

소주를 반주삼아 회를 즐긴 후에는 식당 근처에 있는 금능해수욕장으로 나가 산책을 즐긴다. 건너편에는 조그만 비양도가 마치 돛단배 마냥 파도위에서 출렁거리고, 해변의 방파제에는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다. 제주도의 특징인 바람을 그냥 흘려버리기가 아까웠던 모양이다.

 

 

 

 

 

 

금능해수욕장에서 한림공원(翰林公園)은 바로 근처이다. 그리고 한림공원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러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당연히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비싸다면 비쌀 9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공원은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한림공원(翰林公園)은 창업자인 송봉규씨가 협재리의 바닷가 황무지 모래밭을 사들여 야자수와 관상수를 심고 가꾼 사설(私設) 공원이다. 1981년 공원 내에 매몰되었던 협재동굴의 출구를 뚫고 쌍용동굴을 발굴하여 두 동굴을 연결한 뒤 1983년 10월 공개하였다. 그 뒤로 아열대식물원과 재암민속마을, 수석전시관, 그리고 제주석분재원을 잇달아 개원(開園)하였다.

 

 

 

아열대 식물원(亞熱帶 植物園)에는 제주도 자생식물과 워싱턴야자, 관엽식물, 종려나무, 키위, 제주감귤, 선인장 등 2천여 종의 아열대식물이 자라고 있다.

 

 

 

 

 

 

 

 

 

 

 

 

 

 

협재동굴은 약 250만 년 전에 한라산 일대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성된 용암동굴로서, 황금굴·쌍용굴·소천굴과 함께 용암동굴지대를 이루어 1971년 9월 30일 천연기념물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쌍룡동굴 등은 보통의 용암동굴에서는 생기지 않는 석회질 종유석과 석순 등이 자라고 있어 용암동굴과 석회동굴의 특징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제주석분재원은 기암괴석과 소나무·모과나무 등의 분재가 전시되어 있으며, 야외휴양시설 등도 갖추었다.

 

 

 

 

 

 

 

 

 

 

 

재암민속마을은 제주도의 전통가옥들을 재현(再現)해 놓았다.

 

 

 

 

 

 

 

 

저녁에는 골프팀과 다시 만나 이번에는 ‘제주흑돼지’ 전문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인근 골프리조트 지하로 자리를 옮겨 노래자랑, 웃고 떠들며 노래와 춤을 즐기는 모습들은 마치 어린아이들의 재롱을 보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환경은 나이까지도 잊을 수 있게 만드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