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모텔 앞으로 나간다. 아침 6시에 시작된다는 트레킹(trekking)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아침 화장까지 마치고 나오느라 늦장을 부린 아줌마들로 인한 작은 해프닝(happening)을 뒤로 하고 사곶마을까지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이 트레킹은 사곶마을에서 진촌마을까지 이어지는 1.8Km의 산길을 따라 걷게 되는데,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산이 언덕을 연상시킬 정도로 낮은데다가, 그나마 정상을 군부대(軍部隊)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산길은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산길은 일절 조망(眺望)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답답한 느낌, 그저 가끔 나타나는 군부대의 철조망과 길가에 설치된 체육시설, 거기다 조금 더 호사(豪奢)를 부린다면 길가에 핀 들꽃과 기괴(奇怪)하게 생긴 야생(野生)버섯을 보는 일 정도이다. 백령도 지도(地圖)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라고는 용기원산이 유일하기 때문에 용기산을 다녀 왔나보다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용기원산이 아닌 다른 이름 없는 산이었다.

 

 

 

 

 

 

 

 

 

백령면 소재지인 진촌리

 

 

용기포 마을 바닷가에 세워진 국기봉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그 수가 46개로서 천안함에서 순국한 장병들의 숫자를 나타내고 있단다. 원래는 47개로서 이 마을 가구 당 1개씩 세웠는데, 천안함사태 이후부터 마지막 국기봉 하나는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은 채로 비워놓고 있다고 한다(가이드의 설명).

 

 

 

용기포의 옛 선착장 오른쪽 해안에는 아주 근사한 비경(秘境)이 있다. 옛 선착장 초입에 자리한 해경 백령출장소 옆의 계단을 지나 10여분만 걸으면 즐비한 기암절벽(奇巖絶壁)과 아담한 몽돌해변이 인상적인 '등대해안'에 도착한다. 등대(燈臺)가 서 있는 용기원산(136m)과 용기포 구선착장(舊船着場 : 예전에는 이곳으로 여객선이 들어왔다) 사이에 위치한 이곳 해안에는 커다란 해식(海蝕)동굴이 형성돼 있어 풍광이 다채롭다.

 

 

 

 

 

 

섬의 북쪽에 있는 두무진을 ‘서해의 해금강’이라 부른다. 그만큼 뛰어난 웅장미(雄壯美)를 자랑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 침식해안(浸蝕海岸)도 결코 두무진에 뒤지지 않는다. 두무진에 비해 비록 웅장미는 떨어지지만 바위들은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각기 다른 모습이다. 다양하고 기묘(奇妙)한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펼쳐지고 있어 가히 자연풍광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침식해안에서 가장 뛰어난 곳은 단연 침식동굴이다. 그중에서도 십(十)로 침식된 동굴이 단연 백미(白眉)이다. 서해바다에서 밀려오는 크고 억샌 바닷물이 이런 비경을 만들어 냈다. 오랜 세월동안 힘찬 물살을 받은 백령도 절벽(絶壁)이 깎이고 구멍이 뚫리면서 저렇게 기묘(奇妙)한 자연 비경(秘境)을 연출해 낸 것이다.

 

 

 

 

 

백령도의 야트막한 산 정상, 북녘 땅 황해도를 지척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심청각(沈淸閣)이 세워져 있다. 백령도가 심청전의 무대였던 사실을 기리기 위해 심청이가 공양미 300백석에 몸을 던진 북한의 장산곶 인당수와 인근 대청도 사이의 연봉바위가 동시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건립했다. 그 옛날 심청이가 뛰어들었다는 절벽(絶壁)아래의 인당수는 민감한 군사지역(軍事地域)이라서 남북한 어느 쪽에서도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덕분에 중국(中國) 어선들만 희희낙락(喜喜樂樂)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인망(底引網) 그물을 이용해서 고기들을 싹쓸이 해 간다는 얘기이다. 하긴 중국인들은 그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그럴 만도 하겠다.

* 예로부터 인당수를 지나는 배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한다. 해저(海底)의 바위에 부딪친 해류(海流)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탓에, 수많은 배들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주(船主)들은 용왕(龍王)님의 심술을 달래기 위한 제물(祭物)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에 순결한 숫처녀만 바쳤던 것을 보면, 여자를 보는 용왕님의 시각(視覺)도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가 보다.

 

 

심청각 뒤에는 해풍(海風)에 치마를 날리며 바다로 뛰어드는 심청의 동상(銅像)이 있다. 만일 슬픔에 잠긴 그녀의 마음을 공감(共感)하고 싶다면 심청각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녀의 기구하고도 극적인 일생이 아름다운 조형물로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용왕의 도움으로 환생한 심청이 황후마마가 되고, 아버지가 눈을 뜨게 되는 클라이맥스(climax)는 압권(壓卷), 이보다 더 나은 줄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인생 역전(人生 逆轉)은 평범한 우리네들이 가장 갈망하는 삶일 테니까...

 

 

 

심청각에 도착하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언덕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탱크이다. 그리고 잠깐 눈을 돌려보면 곡사포(曲射砲) 한 문 (門 : 포나 기관총 따위를 세는 단위)이 북한을 향해 머리를 치켜세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제도 용기포 선착장 근처에서 외지인(外地人)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장갑차(裝甲車)를 볼 수 있었는데, 아마 노후(老朽)된 군(軍) 장비들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분단(分斷)된 조국의 현실을 일깨워 주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어제 본, 흑룡이라는 부대에서 사용했던 상륙함은 귀엽기까지 해서 눈요기꺼리로도 충분했다.

 

 

 

심청각을 떠나 콩돌해안으로 가는 길에 잠깐 약쑥매장에 들른다. ‘지역경제를 위한 길이랍니다.’라는 가이드의 인도로 들어선 매장에는 진액(津液)과 환(丸), 그리고 향(香) 등 약쑥으로 만든 갖가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보약(補藥)을 팔고 있나 보다. 보약을 선전할 때에는 보통 대부분 ‘남성의 성기능(性機能) 강화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는 효능(效能)을 가장 먼저 내세우는데, 이곳에서도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게 남성의 성기능 강화이기 때문이다. 상품을 한 아름씩 안고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자들이다. 자기 남편에게 만족하는 여자들이 극히 드물다는 속언(俗言)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하긴 그래서 ‘이웃집 남자’라는 신조어(新造語)가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콩돌해안(海岸 : 천연기념물 제392호), 두무진 해안의 반대편 해안에 위치한 콩돌해변(海邊)도 백령도가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길이 1㎞가량의 해변 전체가 콩처럼 자잘한 돌로 가득하다. 돌의 크기와 모양이 진짜 콩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 하긴 얼마나 콩과 닮았으면 이름까지도 콩돌이라고 지었겠는가. 이 콩돌들은 백령도에 흔하게 분포된 규암이 억겁(億劫)의 세월동안 파도에 깎이고 씻겨 지면서 만들어 낸 모양이란다. 돌의 색깔도 매우 다채롭다. 보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은 흰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회색, 청록색 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색적(異色的인) 콩돌은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神秘)한 경험이며, 거기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산책(散策)까지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호사(豪奢)는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같이 간 사람들이 너나없이 신발을 벗어 들고 걷고 있다. 발바닥 지압에 좋다는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가 있었는데, 어느 누가 신발을 벗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맨발로 바닷물을 첨벙이는 사람들과,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바다, 그리고 바닥에 깔린 부드러운 자갈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영화(映畵) 속의 한 장면을 연출해 내고 있다.

* ‘여기의 돌을 갖고 나가면 3년간 집안에 우환(憂患)이 끊이지 않는답니다.’ 가이드가 잔뜩 겁을 주는 것을 보면 꽁돌을 몰래 숨겨나가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모양이다. 자연을 보존(保存)하기 위한 얕은 심리전이겠지만 고향을 지키려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아 보기가 좋다.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자갈찜질을 하면 건강에 좋다고 한다.

 

 

 

 

 

용트림 바위는 절벽(絶壁)위에 만들어진 전망대(展望臺)의 바로 아래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치 용(龍)이 하늘로 승천(昇天)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위 스스로 하늘을 향해 나선처럼 꼬며 오르는 형상(形象)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곳에는 많은 갈매기 가마우지가 서식(棲息)하고 있다. 깎인 절벽 곳곳에 둥지를 튼 갈매기 떼들의 모습이 평소에도 장관(壯觀)을 이루는 곳이다. 천안함의 함미(艦尾) 인양(引揚) 시 모든 방송사들이 이곳 용트림 전망대를 중계 포인트로 삼았었다.

 

 

 

 

 

용트림바위 전망대(展望臺)에서 왼편에 보이는 나무테크 계단을 밟고 오르면 서해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그 한 가운데에 면봉바위가 있다. 전망대에서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연봉바위는 효녀 심청의 설화(說話)와 관련이 있는 바위이다. 심청이 바다에 몸을 던진 사연에 감동한 용왕이 심청을 연꽃에 태워 다시 바다위로 보냈는데, 그 연꽃이 바로 백령도 남쪽 연화리 앞바다에 있는 연봉바위 근처에 떠올랐다는 것이다. 참고로 연봉바위는 천안함이 좌초(坐礁)되었던 곳이다.

 

 

 

 

둘째 날 점심메뉴는 짼지떡과 메밀칼국수이다(메밀칼국수가 싫은 사람들에게는 메밀냉면이 제공된다). 백령도의 대표적 토속(土俗)음식을 맛보지 않고 육지로 나갈 경우,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된다니 어떻게 해서라도 꼭 먹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칼국수의 맛은 내륙(內陸)에서 맛보던 칼국수에 비해 썩 뛰어나지 못했고, 짼지떡은 짜디 짠 것이 싱거운 음식들로 길들여진 도회지(都會地) 사람들 입맛에는 별로였다.

* 겨울이면 백령도 주민(住民)들은 동네사람들끼리 둘러앉아 '짼지떡'을 해먹는다고 한다. 황해도 사투리(方言)로 김치를 '짼지'라고 하는데, '짼지 떡'은 메밀로 반죽한 피에 총총 썬 김치와 자연산 굴로 속을 채운 만두 같은 떡이다. 끓는 물에 익히고 참기름에 잘 버무려 주면 '짼지 떡'이 완성된단다. 백령도 전통음식은 이 외에도 메밀냉면과 메밀칼국수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성게와 메밀이 만나는 ‘성게 칼국수’의 맛이 환상적(幻想的)이라는데, 운(幸運)이 따르지 않았던지 우리가 들른 음식점의 메뉴판에는 성게칼국수가 적혀있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 들른 곳은 ‘백령도 특산품 판매장’ 이곳에서는 돌미역과 다시마, 까나리액젓 등 백령도에서 생산하는 특산품(特産品)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콩돌해안에 가기 전에 들렀던 곳에서 팔던 약쑥으로 만든 제품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지역경제를 위해서 들르는 것입니다.’ 가이드의 충심(忠心)이 전이(轉移)되었는지 사람들마다 특산품들을 한 아름씩 안고 버스에 오르고 있다. 같이 간 집사람까지 동참한 덕분에 난 의도하지 않았던 포터(porter) 역할까지 해야만 했다.

 

 

특산품 매장’을 둘러보고 여객선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잠깐 ‘백령심청 연꽃마을’에 들렀다. 연꽃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이국풍(異國風)으로 지어진 펜션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연꽃이 만발한 널따란 연꽃방죽, 길가에는 남성의 성기(性器)를 형상화한 장승들이 눈길을 끈다. 연꽃마을을 조성한 사람은 김진일씨라고 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외진 곳에다, 집을 짓고 연못을 만드는 등 심청이 테마마을을 만든 그는, 아이러니(irony : 모순)하게도 백령도 원주민(原住民)이 아니고 다른 지역 출신이란다. 그는 이곳에다 집을 짓고, 연못에 연꽃을 심었다. 그리고 곳곳에 독특한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조형물(造形物)이 있는 곳’ 가이드의 말마따나 아줌마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너무도 튼실한 남성의 상징물(象徵物)이 늘어서 있으니까. 육지로 돌아가는 배의 출항시간이 빠듯하니 대충대충 둘러보라는 가이드의 말을 착실하게 따른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커다란 허탈감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남자들이 좋아하는 목각(木刻)들이 널려있단다. 그럼 테마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얘기를 해주어야지 이 나쁜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