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도(龍虎島)
여행일 : ‘24. 9. 14(토)
소재지 :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용호리
트레킹 코스 : 용초선착장→정자→(수동산)갈림길→저수지터(포로수용소 유적, 지도에서 양식장)→용머리→(수동산)갈림길→수동산 정상→용초항→고양이보호분양센터(지도에서 학생수련장)→호두선착장(소요시간 : 11.21km/4시간 10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통영에서 남동쪽으로 14km 지점에 위치한 동서로 길게 뻗은 섬으로, 최고봉은 섬의 중앙에 위치한 수동산(秀東山, 191.9m)이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다. 남쪽은 암석해안을 이루며, 북쪽은 사빈해안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취락은 북서쪽에 위치한 용초(龍草) 마을과 북동쪽에 위치한 호두(虎頭) 마을에 집중해 있다. 이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용호도(龍虎島)‘가 되었다.
▼ 찾아오는 방법.
용초도로 들어가려면 일단 ‘통영항 여객선터미널’까지 와야만 한다. 이곳에서 용호도(옛 용초도)로 들어가는 배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용호도’말고도 연화도·욕지도·한산도·비진도·소매물도·두미도·노대도 등 남해바다의 수많은 섬을 오가는 배들이 통영항을 기항지로 삼아 운항하고 있다.
▼ ‘용호도’는 통영에서 남동쪽으로 14km, 면소재지인 한산도(閑山島)와는 2km쯤 떨어진 지점에 있다. 면적은 3.407㎢(국내 섬 중 100번째로 크다)이고, 해안선 길이는 8.0km이다. 주위에는 비진도·죽도·추암도 등이 있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 버스에서 내리니 새벽 4시 30분. 배를 타기 전 요기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터미널 앞에 있는 ‘서호전통시장’, 홍합 까기에 여념이 없는 활어 점포들을 지나 ‘훈이시락국’으로 갔다. 이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은 이 집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메뉴도 ‘백반(6천원)’이 유일하다. 셀프코너에서 먹고 싶은 반찬(열 가지 정도가 준비되어 있었다)을 골라 접시에 담은 후 자리에 앉으면 주인장이 밥과 시래깃국을 가져다준다. 빨리 그리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라 하겠다. 아무튼 난 멸치볶음과 어묵무침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 병까지 비운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 오늘은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이른 새벽인데도 터미널은 고향 찾아가는 귀성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 우리를 태우고 갈 ‘한산농협 카페리2호’. 하루에 세 번(7:00, 10:30, 14:30) 운항한다. 용호도에 있는 ‘호두항’과 ‘용초항’ 말고도 죽도·진두·비산도·화도 등 여러 항구들을 들른다.
▼ 통영항을 출발한지 40분쯤 지나 ‘용호도’의 북서쪽 끄트머리쯤에 위치한 ‘용초항’에 도착했다. 용호도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섬에 있는 두 선착장 중 ‘용초항’에서 하선하여 섬을 돌아본 다음, ‘호두항’에서 배를 타고 통영항으로 돌아온다.
▼ ‘용초항’에서 출발 붉은 선을 따라 (수동산)갈림길까지 올라간다. 먼저 ‘용머리해안’을 다녀온다. 갈림길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수동산’ 정상을 다녀온다. 용초항으로 되돌아와 해안도로를 따라 ‘호두항’으로 간다. 호두산은 등산로를 찾을 수가 없어 포기했다.
▼ 배에서 내리면 웬만한 운동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널찍한 ‘물양장’이다. 그 너머 마을은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그래선지 마을보다는 건물 외벽에 그려진 ‘고양이’가 더 눈길을 끌었다. 고양이가 꽃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길고양이들을 인간과 다름없이 보호해주는 이 섬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벽화라 하겠다.
▼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찍었노라!’. 여행의 정석처럼 ‘용초마을’ 표지석을 배경삼아 사진부터 찍고 본다.
▼ 다음은 ‘용초도 안내도(南北이 바뀌었다)’. 먼저 섬의 내력부터 읽은 다음, 등산로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해안을 따라 철탑까지 간 다음, 능선을 따라 수동산과 호두산을 종주하란다. 하지만 이를 믿어서는 안 된다. 등산로 정비가 일절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잡초가 어른의 키에 육박할 정도까지 자라 길을 찾기는커녕 한 걸음 내딛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 ‘포로수용소 안내판’도 눈에 띈다. 6·25 포로수용소 유적 하면 사람들은 흔히 거제도를 떠올리지만, 용호도는 특히나 주의가 필요한 포로들을 수용했던 섬이다.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를 짓기 위해 이곳 주민들은 인근 섬으로 강제이주를 당해야만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몇 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못했다고 하니, 그 상처로부터 회복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쉬이 상상할 수 없다.
▼ 7 : 42, 해안도로(용초1길)를 따라 동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한산도와의 사이 해협을 왼쪽에 끼고 간다고 보면 되겠다.
▼ 반짝이는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면 맑은 빛이 용초도에 흩어진다나? 바닷물이 맑다는 자신감일 것이다. 그런 곳에서 자란 미역 등의 특산물들도 많이 좀 챙겨가라는 부탁일 게고.
▼ 선착장은 꼬맹이 어선 서너 척이 전부였다. 용호도는 바다 양식 조건이 좋아 미역양식을 많이 해왔고, 채취한 미역은 생미역을 내다 팔기도 하고 말려서 팔기도 한단다.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더니 어선까지 숫자가 줄어든 것일까?
▼ ‘용초’ 마을회관(경로당과 어촌계도 입주해 있다)의 담장도 고양이를 그려 넣었다. 하긴 KBS 1TV ‘다큐 인사이트’에까지 나온 ‘용호도’이니 어련하겠는가. 당시 방송에서는 외로운 섬마을 소녀와 외톨이 길고양이의 따뜻한 우정 이야기를 담은 ‘고양이 소녀’가 방영됐었다.
▼ 7 : 49. 그렇게 잠시 걷자 2층으로 된 정자쉼터가 반긴다. 남쪽 해안에 위치한 ‘용머리(황금바위)’로 넘어가는 임도는 정자 오른쪽으로 열린다. 초입에 세워놓은 ‘용초포로수용소 표지판’의 방향표시를 따라가면 된다.
▼ 이곳에서는 그림이 아닌 실제 살아있는 고양이들을 만났다. 고양이 십여 마리가 길에서 놀고 있는데, 방금 목욕이라도 하고 나온 듯 하나같이 깔끔한 모습들이다. 주민들의 관리 없이는 불가능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는 꽤나 가팔랐다. 그렇다고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걷는 속도를 조금 떨어뜨리고 산천경개를 즐기며 오르면 될 일이다.
▼ 내 판단은 옳았다. 시선만 조금 옮기면 아름다운 섬 풍경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 임도는 무척 좁았다. 승용차라도 지나갈라치면 보행자는 길섶으로 내려서야만 했다. 그래선지 일정 간격을 두고 교차(交叉) 장소를 만들어두고 있었다.
▼ 선착장의 ‘용초도 안내도’에 나타나있던 능선으로, 114m봉과 161m봉을 거쳐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철탑’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등산로 정비가 되어있지 않아 답사는 불가능하다.
▼ 8 : 00. 능선에서 만난 ‘6·25 용초도 포로수용소유적 가는 길’ 팻말. 이때만 해도 이게 유적지 진입로를 나타내는 표식인 줄 몰랐다.
▼ 때문에 유적지를 지나치고 나서야 잘못을 깨달았다. 주변 풍광을 살펴보다 문득 안내판까지 세워놓은 시멘트 구조물을 발견했던 것이다.
▼ 그런데 문제는 유적지로 들어가는 길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길은 없었다. 어른의 키에 이를 정도로 웃자란 잡초가 길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행운일까? 주변을 서성이다 문득 벌초가 되어있는 길 하나를 찾아냈고, 방향은 약간 틀리지만 일단 내려가 보기로 했다.
▼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기에 찾아갔더니, 행복은 그 다음 산 너머에 있다더라’고 했던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길의 끄트머리에서 유적지 대신 벌초가 한창인 묘역을 만났다.
▼ 8 : 05. 눈대중으로 방향을 잡은 다음, 웃자란 잡초를 헤치며 나가자 원형의 ‘저수탱크’가 나타났다. 6·25 때 수용자(포로) 및 국군에게 식수를 공급하던 저수조(貯水槽)로, 깊고(2.7m)도 넓은(직경 18.5m) 것이 당시 수용소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
▼ 안내판은 이곳을 ‘용초도 포로수용소 급수장(저수시설)’으로 적고 있었다. 참고로 1952년 6월에 설치해 1954년 4월까지 유지된 ‘용초도 포로수용소’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인원증가와 포로 집중관리를 위해 계획됐다. 섬에서 만난 주민들은 거제도에 수용된 포로 중에서 ‘악질’만 옮겨온 것이라고 했다. 아무튼 포로수용소는 모두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제1구역 작은마을은 4동, 제 2구역 큰마을도 4동, 비진도가 바라보이는 수동산 서쪽 사면에 8동 등 모두 16개 수용동이 만들어졌다. 하나 더. 이곳 용초도에는 북한인민군 장교 및 사병 8,040명이 수용됐었다.
▼ 8 : 08. 몇 걸음 더 걷자 길이 둘로 나뉜다. 계속해서 능선을 타면 ‘수동산’ 정상으로 간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용머리(황금바위)를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하나 더. 이곳에도 ‘포로수용소유적 가는 길’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유적지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니 분명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어느 방향, 어디쯤에 어떤 유적지가 있다는 것까지 표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 이곳에는 ‘대일해운’에서 만든 이정표도 세워져 있었다. 통영을 기항지로 삼는 여객선 운영회사인데 사회봉사 차원에서 만들어놓은 모양이다.
▼ 이정표가 가리키는 ‘황금바위’ 쪽으로 간다. 완만한 내리막길이라서 노약자들도 내려서는데 부담이 없다. 아니 소나무 숲속에서 보내오는 피톤치드 덕분에 오히려 심신이 상쾌해진다.
▼ 8 : 14. 그렇게 잠시 내려서니 또 하나의 삼거리가 나타난다. 왼쪽으로 오솔길 하나가 갈려나가는 것이다.
▼ 대일해운에서 만든 이정표가 잠시 들러보라며 유혹을 보내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호두초소’라는 지명에 이끌려 다녀왔다. 포로수용소 시설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 포장이 비포장으로 바뀌었을 뿐 길은 임도처럼 폭이 넓었다. 하지만 정비가 되어있지 않아 걷기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 8 : 20. 포로수용소 유적지일지도 모르겠다는 내 예측은 옳았다. ‘작은솔등’과 ‘삼여’ 사이 협곡에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다. 이 역시 포로수용소에서 사용하던 시설이란다.
▼ ‘포로수용소 유적(저수지)’ 안내판. 참! 인터넷에서 떠도는 지도들은 이곳을 ‘양식장’으로 적고 있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에는 폐(廢) 가두리양식 시설이 널브러져 있었다.
▼ 바닷가로 더 내려가 보기로 했다. 이 저수지가 한국군 주둔지에서 제3구역으로 가는 길에 있다는 안내판의 문구 때문이다. 아무튼 이후부터의 길은 무척 험했다;
▼ 8 : 25. 웃자란 잡초무더기를 헤치며 내려서자 유적지 대신 아름다운 바닷가가 나왔다. ‘작은솔등’과 ‘삼여’ 사이로, 바다가 열리며 매물도와 소매물도, 소지도 등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 ‘작은솔등’과 ‘삼여’ 등 좌우로 펼쳐지는 곶부리(串)도 빼어난 풍광을 보여준다. 먼 바다에서 몰아쳐오는 파도에 씻기고 시달리며 기기묘묘한 모양새의 바위들을 만들어냈다.
▼ 8 : 36.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황금바위’ 쪽으로 간다. 제법 가파른 포장임도가 계속된다.
▼ 8 : 45. 임도 끝에서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러자 용초도 제일 비경이라는 ‘용머리해안’이 기다랗게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갯바위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용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왼쪽은 ‘작은솔등’이다. 이곳도 역시 바다를 향해 뻗어나갔는데, 용머리만큼은 아니어도 험상궂은 바위지대가 해안선을 감싸고 있다.
▼ 그 험상궂음은 ‘작은솔등’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그리고는 더 이상 진행을 못할 정도로 날카로우면서도 높아져버린다. 발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 이때 ‘용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본섬과의 사이가 움푹 파인 게 별도의 섬처럼 보인다.
▼ 물질하는 ‘해녀’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이번에는 ‘용머리’ 쪽으로 간다. 참고로 용호도의 옛 지명인 ‘용초도(龍草島)’는 저 ‘용머리’에서 유래했다. 용의 머리를 닮은 바위 곶(串)과 다른 섬에 비해 유독 풀이 많다는 두 가지 특징을 살려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8년 용초(龍草)마을과 호두(虎頭)마을에서 한 글자씩을 따 용호도(龍虎島)로 개명했다.
▼ 용머리는 쉽게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바위지대였다. 그래선지 붙잡고 오를 수 있도록 안전 로프를 매달아 놓았다.
▼ ‘작든솔등’으로 이어지는 해안. 바다는 비취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문득 6년 전쯤 들렀던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이 떠오른다. 나폴리 앞바다에 있는 휴양지로 유명한 섬인데, 난 그곳에서 맑고도 푸른 바다색깔에 놀라 꺼이꺼이는 아니어도 눈물 몇 방울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바다 색깔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많은 이들이 통영을 일러 ‘한국의 나폴리’라고 한다. 입소문이라는 게 그냥 생기지는 않는 모양이다.
▼ 바다 건너에는 ‘비진도’가 있다. 하나인 듯 둘이고, 둘로 보면 어느새 하나가 되어버리는 요술쟁이 섬이다. 명성에 걸맞게 섬은 두 개로 나타나고 있었다.
▼ 아득히 펼쳐지는 남쪽바다 저 멀리에서는 꼬맹이 섬들이 흡사 돛단배라도 되는 양 두둥실 떠다닌다. 매물도와 소매물도, 어유도, 소지도 등일 것이다.
▼ 갯바위 끝. 납작하면서도 너른 저 바위는 낚시꾼들에게 인기라고 했다. 감성돔 낚시의 일급 포인트라나? 그래선지 서너 명의 강태공이 대어의 꿈을 풀어가고 있었다.
▼ 용머리는 서슬 시퍼런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꼭대기에는 이 일대가 한려해상국립공원임을 알리는 말뚝을 세워놓았다. 전남 여수시에서 경남 통영시 한산도에 이르는 한려수도(閑麗水道)와 남해도·거제도의 해안 일부를 포함하는 국립공원이다. 360여 개의 섬들이 깔려 있어 해상 경관이 아름답다고 소문났다.
▼ 말뚝에는 국립공원에서 하지 말아야 할 사항들을 적어놓았다. 그렇다면 저 갯바위 낚시꾼들도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 저게 ‘황금바위’라고 했다. 맞다. 누렇게 생긴 게 영락없는 황금덩어리이다. 그러니 어찌 올라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꽤나 높고 험해 보이지만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니 말이다.
▼ 고생깨나 해서 오른 황금바위. 강태공 둘이 드러누워 있었다. 갈치 낚시를 왔는데 하도 더워서 해 넘어갈 때까지 낮잠이나 늘어지게 잘 거란다. 휴대용 선풍기까지 들고 왔지만 삼복더위 못지않은 폭염에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더라나?
▼ 북쪽 바다에도 크고 작은 섬들이 널려있다. 오른쪽은 미륵산이 있는 충무의 산양읍, 그 왼쪽은 학림도가 아닐까 싶다.
▼ 반대편 ‘울등 해안’ 쪽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조금은 왜소하지만 용머리해안과 비슷한 풍경을 보여준다.
▼ 이어서 잠시 후에는 본섬과 용머리를 연결시키는 능선의 안부를 지난다. 그런데 이게 하도 낮아 파도가 조금이라도 높으면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아까 ‘작은솔등’에서 바라봤을 때 용머리가 섬으로 보였던 이유이다.
▼ 9 : 56. ‘능선삼거리(수동산 갈림길)’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수동산’의 정상을 향해 간다. 능선을 따라 난 길은 임도만큼이나 널찍하다.
▼ 10 : 04. 그렇게 잠시 걷자 ‘포로수용소 유적지’가 반갑다며 잠시 들렀다가란다. 이번에는 국군(또는 미군)이 사용하던 ‘국기게양대’이다.
▼ 국기게양대는 대만 남아있었다. 그 옆에는 안내판 하나만 썰렁하니 놓여있다. 그럼 ‘포로수용소 유적’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공원화한다는 얘기는 공염불이었을까? 그동안 KBS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어갔는가 하면, 다른 방송사의 취재도 수차례 있었다고 했다. 안내판도 이곳이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도 유적지 주변의 관리는 물론이고, 어디로 어디쯤 가야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는 이정표 하나 세워놓지 않았다. 이왕에 하는 일이라면 하나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 근처에 또 하나의 포로수용소유적 안내판이 있었다. 저 아래 어디쯤에 ‘한국군 초소’나 ‘한국군 막사’가 있을 것이다. 아니 배급저장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난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급경사 내리막길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나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곳저곳 혼자서 쏘다닌다며 째려보는 집사람의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 때문에 요 어디쯤에 있을 ‘배급저장소’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구한 다른 분의 것을 올려본다. 그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콘크리트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 설치한 것인지도 모를 양철지붕은 많이 부식되어 있더란다.
▼ 잠시 후, 길이 오솔길로 변하는가 싶더니 웃자란 잡초를 헤쳐가야 할 정도로 거칠어져 버린다. 경사도 아까보다 많이 가팔라졌다.
▼ 그러다 대운해운의 이정표(공동묘지에서 정상 방향을 가리키는)를 지나면서부터는 버겁다싶을 정도로 가팔라져버린다.
▼ 10 : 22.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올라온 만큼이나 실망도 컸다. 볼거리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저 능선 상에서 뽈록하니 솟아오른 한 지점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마저도 트이지 않는다. 육산(肉山)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 정상은 텅 비어있기까지 했다.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블랙야크 섬&산’에서 붙여놓은 정상표지판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 대운해운의 이정표는 반대편으로 진행하란다. 선답자의 표지기들도 그쪽에 매달려 있었다. 호두마을로 내려가는 가장 빠른 길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름철 저 길은 ‘개고생 길’이라고 했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우거진 잡초무더기를 헤쳐 나가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유지랍시고 곳곳에 비닐망까지 쳐놓아 진행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 11 : 05. 별수 없이 ‘용초마을’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는 해안도로(용초1길)을 따라 ‘호두마을’로 간다.
▼ ‘용초 어구보관창고’의 벽에서도 고양이가 놀고 있었다. 섬 전체가 고양이 놀이터인 셈이다.
▼ 마을 앞바다에는 커다란 양식장이 들어서 있었다. 바닷길을 거의 막아버릴 정도로 규모가 크다. 용초도 주민들의 주 수입원인 가두리 양식장이라고 한다.
▼ 마을 앞 바닷가는 질 좋은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폭은 비록 좁지만 길이만큼은 웬만한 해수욕장 저리가라다.
▼ 10시 30분에 통영을 출발한 배가 용초항에 승객들을 내려주고 다시 길을 나서나보다. 배 뒤로 보이는 섬은 ‘한산도(閑山島)’다. 이순신 장군의 최대 전승지(한산대첩)로, 1597년 정유재란 때 원균(元均)의 참패로 폐진(廢陣)되었던 것을 1739년 통제사 조경(趙儆)이 중건하고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다. 1963년에 이 일대가 사적 제113호로 지정되었다.
▼ 바닷가를 따라가는 해안도로는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곡선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갯바위들이 포개지면서 그림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이룬다.
▼ 용초도 인근 해역은 물이 맑고 조류가 좋은 청정해역이다. 덕분에 이곳에서 생산되는 미역은 맛이 쫄깃쫄깃하기로 전국에 이름나 있다. 이곳에서 수확되는 자연산 ‘톳’도 유명하단다.
▼ 한산도와 용초도 사이를 화물선 한 척이 지나간다. 이 해협이 뱃길로 이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 11 : 21. 그렇게 바닷가를 따라가던 길이 느닷없이 능선을 횡단해버린다. 이때 한산도와 추봉도를 잇는 ‘추봉교’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 뒤로 보이는 섬은 ‘거제도’일 것이다.
▼ 11 : 25. 잠시 후 올라선 고갯마루. 전신주에 매달린 ‘공공형 고양이보호분양센터’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흔치않은 시설이니 한번쯤 꼭 들러보도록 하자.
▼ 11 : 27 – 11 : 37. ‘공공형 고양이보호분양센터’. 용호도의 폐교(舊 한산초등학교 용호분교장)를 개보수해 2023년 문을 연 전국 최초의 길고양이를 위한 공공시설로,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구조되어 질병검사와 중성화를 거쳐 입소된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안락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반려동물 친화도시 ‘통영’을 표방한다고나 할까?
▼ 내부는 연속극에서 본 ‘펜트하우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잘 꾸며져 있었다. 거기다 직원들의 친절은 나를 더 놀라게 했다. 3시간도 넘게 걸어온 내 행색이 지쳐보였던지 얼음을 가득 채운 냉수부터 권하고 본다. 의자를 내주면서 커피까지 대접하겠단다. 도로변에서 기다리고 있을 집사람 때문에 사양할 수밖에 없었지만, 대신 집사람에게 줄 얼음물을 듬뿍 얻어올 수 있었다.
▼ 입소 고양이들은 행복권이 보장되고 있었다. 통영시 소속 수의사가 정기적으로 건강상태를 체크해주는가 하면, 나아가 평생 가족을 만나 따뜻한 묘생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단다.
▼ 바다를 운동장으로 삼고 있는 옛 학교는 2003년 개봉한 ‘국화꽃향기(장진영·박해일 주연)’에 등장하기도 했다. 죽음을 앞둔 연인이 마지막 여행지로 찾아왔었다. 하나 더. 지금 보이는 저 건물은 영화 속에 나왔던 그 건물은 아니다. 그해 태풍 매미가 원래 건물을 휩쓸어 간 탓이다. 이후 현대식 건물이 지어졌으나 결국 분교는 2012년 문을 닫았고, 지금은 고양이보호분양센터가 들어섰다. 하지만 영화 속 풍경을 찾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단다.
▼ 분교장이던 시절‘ 우리나라에서 바닷가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운동장이었다고 한다. 운동장이 곧 바다 모래사장이었다는 것이다. 밀물 때 파도가 일면 교실까지 바닷물이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나? 건물은 옛 모습을 잃었다. 용도도 바뀌었다. 운동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바닷가 늙은 해송은 아직도 푸름을 자랑한다. 그 아래 그네도 운동장 한쪽 귀퉁이를 차지한 채로 바람결 따라 한들거리고 있다.
▼ 11 : 40. 고양이보호분양센터는 용초마을과 호두마을의 딱 중간 지점이다. 그러니 걸어온 만큼 더 가야 호두마을에 이를 수 있다.
▼ 이때 바다 건너 ‘추봉도’가 자신도 한번쯤 봐 달란다. 6·25의 아픈 상처는 자신들도 품고 있다면서 말이다. 맞다. 당시 거제수용소의 포화 및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추가로 만든 수용소가 저 섬에도 있었다.
▼ 11 : 56. 통영항으로 나가는 배를 타게 될 ‘호두마을’에 이른다. 용초마을과 비교하면 호두마을은 상당히 큰 마을로, 공중화장실과 편의점 등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다. 매점을 겸한 ‘섬안의 미자집’에서는 백반(1만원)도 판다. 예약(010-3156-9826)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도 기억해 두자.
▼ 마을입구. ‘거리지신위(巨里之神位)’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기단은 2005년에 세웠음을 밝힌다. 용호도에서 가장 큰(巨) 마을이 ‘호두’이니,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번영과 풍어를 비는 굿판이 열리지 않았을까 싶다. ‘남해안별신굿’이라도 펼치면서 말이다.
▼ 마을은 하나같이 하얀 벽에 붉은 지붕을 하고 있었다. 영락없는 지중해 연안의 모습이다.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터키·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마케도니아 등 지중해 연안을 돌아다니며 늘 감탄해오던 아름다운 풍경인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 마을 뒤에서 송곳처럼 솟아오른 산이 ‘호두산(200.9m)’이다. 하지만 여름철에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산으로 변한다. 가슴까지 차오른 잡초로 인해 길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같이 온 일행 한둘이 개척 산행이라도 하겠다며 당차게 도전해봤지만 옷만 엉망진창이 되어 돌아왔었다.
▼ 마을 내 골목길을 누비다 선착장으로 간다. 아니 식당에서 두 시간이나 버티다 나왔다. 식사를 끝내고 3만 원 짜리 전복구이를 시켜놓고 소주 1병에 맥주를 3병이나 마셨는데도 배의 출항시간까지는 아직도 멀었단다. 더 버티기도 뭐해서 동네를 돌아다니다 정자에서 동네 할머니들로부터 구수한 옛 얘기 두어 편을 듣고 난 뒤에야 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헤어짐은 아쉬운 법. 배 난간에 기대서서 멀어지는 용호도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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