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산문

봄날의 소고

2004. 3. 30. 09:01

어린시절 봄이되면 늘상 배가 고팠다
먹을 것이 없어 비참했던 보리고개, 얼른 모리가 익었으면...
참다 못해 보리서리라도 하다보면 입 언저리뿐 아니라 얼굴 전체가 먹물로 물들었다.

 

아이야 무슨 소린지 이해할까마는 그래도 들려주고 싶다.
"사기그릇에 고봉으로 가득담은 보리밥과
열무김치 하나로 끼니를 때워도 뿌듯햇던 때가 있었노라고...."

 

학교갔다 돌아오면 다들 들녁에 나간 빈자리만이 아이들을 반길뿐...
점심때 먹은 도시락은 기억에 없고 처마 밑에 매달린 대나무 광주리만 눈에 차 오를 뿐.
한걸음에 도착한 뒤안 옹달샘가...
바닥에 깔린 보리 알갱이 하나라도 놓칠새라 조심스레 물에 인다.

 

몽당 놋수저 움직임을 누가 볼새라
두입 걸러 한입 넣는 된장 입힌 풋고추의 얼얼함에 엉덩이 들썩거림은 차라리 추임새다.
그나마도 보리밥에도 정신없이 코박던 옆집아이는 갈비뼈 앙상한 가슴에 배만 남산만했다.

 

옆집 그 아이 벌써 며느리 본단다. 그 꼬마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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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에 한주, 한북정맥에 또 다른 한주,
'산과 하늘(daum cafe)'과 함께 하나의 주말을 보내고,
마지막 남은 주말마저도 서울 근교의 산을 찾으니 주위에선 산에 미쳤다고 그러더군요.

 

홀로된 외로움을 달래려 찾기 시작한 산이 어느덧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젠 평생을 곁에 머물며 지켜주고 싶은 이가 생겼는데도 말입니다.
지난 주말에 난 한북정맥을 찾았습니다. 내사랑 조이님과 함께요.
산의 초입부터 비오듯 흐르는 땀. 어느새 봄은 땀과 함께 우리 곁에 와 있었습니다.

 

산의 초입에서 만난 진달래는 꽃망울 터뜨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더군요.
아스라한 세월의 끄트머리에서 추억 한점 끄집어내어 꽃술 한입 베어물어봅니다.
아~써! 아직은 이른 봄이었습니다.

한켠에는 복수초 한송이가 낙엽을 들추며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군요. 나도 있다면서요.
그 샛노란 아름다움은 외로운 슬픔보다는 차라리 요염한 손님 맞이였습니다..

 

사방에 널린 생강나무는 노란 꽃술을 내밀며 마음껏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나무는 내가 여러사람을 웃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나무였습니다.
전문가가 가르켜준지 채 십분도 되지 않아 내 입에서 자연스레 나온말은 당근나무...
당근이나 생강이나 김치에 들어가기는 마찬가지잖아요? 제 연상기억법의 오차였답니다.

 

산행중 다라이(얼마나 크지 알지요?)에다 나물 그득 넣어 만든 비빔밥은
둘이 먹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그 맛이 가히 일품이었습니다.
따뜻한 봄날, 꽃 속에 둘러 쌓여,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깔깔거리며 먹는 산밥...
이런 행복이 있어 산을 오르는게 아닐까요? 전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에도 산을 찾았습니다.

 

산행 끝내고 한강 둔치에서 뒷풀이까지...
족발 풀어 해치고 산행의 안전을 위해 참았던 쐬주...그렇게 난 취해갔습니다.
저녁내내 속 풀어주느라 고생하신 조이님... 아마 조이님댁 꿀단지 다 비워버렸을 것입니다.

 

아직도 쓰린 속을 부여안고 또 산을 찾아 나서는 나... 산에서 무엇을 찾으려함일까요.
그 답은 단 하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랍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만남이 있고, 대화가 있는 산을 찾지 않을 수 없는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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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사람이 그리운 나이

2004. 3. 26. 09:26

한 살 한 살 세월이 물들어 가고 있다

 

도무지 빛깔도 형체도 알 수 없는 색깔로 나를 물들이고
갈수록 내 안의 숨겨진 욕망의 파도는 더욱 거센 물살을 일으키고
처참히 부서져 깨어질 줄 알면서도
여전히 바람의 유혹엔 더 없이 무력하기만 한데...
아마도 그건 잘 훈련 되어진 정숙함을 가장한 완전한 삶의 자세일 뿐일 것 같다

 

어떤 유혹에든 가장 약한 세대에 내가 놓여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
더없이 푸른 하늘도...
회색빛 높게 떠 흘러가는 쪽빛 구름도
창가에 투명하게 비치는 햇살도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코끝의 라일락 향기도
그 모두가 다 내 품어야 할 유혹임을...

끝없는 내 마음의 반란임을...

 

창가에 서서 홀로 즐겨 마시던 커피도
이젠 누군가를 필요로 하면서 같이 마시고 싶고...
늘 즐겨 듣던 음악도 그 누군가와 함께 듣고 싶어진다.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을 만나고픈...
그런 나이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싶다.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을 만나고픈 나이에 내가 놓여있다.
사람들의 향기가 그리워 찾아든 '다음카페' , 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웃고 떠들며 같이 산을 올랐었지.

그만하면 흡족해야 할 터인데 왜 공허하기만 할까?
혹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또 다른 좋은 사람들과 불편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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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산문

연모

2004. 3. 25. 16:16

두손 호호불며 체육관으로 향하는 아침...
어슴프레 밝아오는 하늘에서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날 반겨줍니다.

 

저 별이 저리도 살갑게 다가오는건
저 별에서 이미 내 마음의 별로 앉으신 당신을 떠올리는 탓이 아닐런지요.

 

종종걸음 잠시 멈추고 
스러져가는 별빛에 내 마음을 띄워보냅니다.
그리곤 내 사랑, 내 진실, 내 소망을 당신께 가져다 전해주길 빌어본답니다.

 

유안진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우리사이 청실홍실로 엮일지라도
부부의 익숙함보다는 지금의 순수한 열정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아침 출근길
누가 뭐라해도 좋습니다.
아니 나이를 얘기하며 흉을 봐도 좋습니다.
현관을 나서며 스무살 젊음만이 잠깐의 이별을 아쉬워하는게 아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근무시간에도
무심한 전화벨을 탓하기보단 먼저 사랑의 메시질 보내는 솔선수범을 실천하겠습니다.
자기를 개발하려는 당신의 직장생활은 그리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진 않을테니까요.

 

퇴근후 저를 맞아주는 당신
채 갈아입지 못한 당신 옷에, 저녁준비 때 배인 김치냄새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아니 그 보다 더 지독한 내음이면 어떻습니까?
내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데.... 심지어는 당신의 결점까지도요.

 

지난주에 영화 봤는데, 또 연극 보러가자 조른다 해도 귀찮아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당신이 조르기 전에 이미 당신의 손엔 음악회티켓 두장이 놓여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티켓을 찾아 컴과 친해질거고 어느새 난 인터넷 전문가가 되어있겠지요.

 

당신은 여자...
때론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릴 때도 있겠지요.
그것을 애교로 받아 드리고 당신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굴 쳐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당신이 편해지실 때 부드럽게 충고 드리는 일을 빠뜨려서는 안되겠지요?

 

내가 가진 모든걸 다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언어능력을 다 동원해서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건 미사여구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오직 하나 하고 싶은 말 "당신은 내 안식처입니다"
그래도 여유가 남는다면 "죽는 날 까지 아니 천생만생 당신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죽음이 우릴 갈라놓을지라도 수만생의 윤회속에서...
비록 모습이 바뀌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가슴저린 행복이 우리 사랑했음을 일깨워
또 한생의 연분을 이어줄 한자락의 끈이 되어주길 두손모아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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