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64-1코스(창리포구 - 부석버스정류장)

 

여 행 일 : ‘24. 12. 28()

소 재 지 : 충남 서산시 부석면 일원

여행코스 : 창리항부남호 동안옻밭교차로봉락교차로대봉정교차로부석중학교부석버스정류장(거리/시간 : 11.9km, 실제는 12.03km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64-1코스를 걷는다. 8로 이루어진 서산남부·태안남부 구간(64-68코스 및 지선1-3)의 첫 번째 지선(창리항에서 삽교호함상공원까지 6개 코스로 이루어졌다)이기도 한데, 부남호의 동안을 따라 부석면소재로 가는 여정이다. 난이도는 별이 2(전체 5), 수월한 코스로 분류된다.

 

 들머리는 창리 포구(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에서 내려와 좌회전, 상촌교차로(29번 국도)에서 96번 지방도를 타고 태안·안면 방면으로 18km쯤 달리다 창리교차로에서 내려오면 된다. 서해랑길(서산 64-1코스) 안내도는 궁리항 공중화장실 앞에 설치되어 있다.

 궁리항에서 부남호의 동쪽 호숫가(東岸)를 따라가다 서산시의 내륙으로 파고드는 11.9km짜리 여정, 코스가 무척 짧은데다 부남호 말고는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그래서 꿈이 있다면 멈출 수 없다의 작가 이석암님의 제안으로 트레킹을 나서기 전 먼저 서산 버드랜드를 둘러보기로 했다. 64-1코스 시점인 창리항에서 2.1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산악회 황사장님의 배려로 버스를 이용해 다녀올 수 있었다.

 조선 수군의 주사창(舟師倉, 수군의 무기를 보관하던 곳)’이었던 창리포구는 성황을 누리던 포구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간척사업 이후 반으로 쪼그라들었고, 게다가 도로까지 확장되면서 간월도, 궁리포구, 남당항 등에 모든 명성을 내주고 이제는 뒷전의 한적한 포구로 남았다.

 수많은 군선이 오갔을 바다는 이제 가두리낚시터 차지가 됐다. 바다낚시의 일종인 가두리낚시는 손맛과 입맛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통상 우럭을 많이 풀어주는데 농어나 참돔을 풀기도 한단다. 시간을 정해 물고기를 풀어주는데 배낚시보다 접근성이 뛰어난데다 입질까지 좋아 낚시가 처음인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09 : 25  10 : 05. 그렇게 도착한 서산 버드랜드’. 하지만 10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단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발길을 돌리려는데 몽중루 작가님이 능력을 발휘해주셨다. 서울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점과 함께, 다음 일정에 쫓겨 개장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는 형편을 말씀드리고 관계자로부터 외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을 얻어낸 것이다. 관계자들의 배려는 그뿐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가동시켜주는가 하면, 철새에 대한 설명까지 해줘 속속들이는 아니지만 버드랜드의 이모저모를 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천수만의 산을 형상화했다는 ‘4D 영상관’. 천수만의 철새를 주제로 한 영상을 입체감 있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개장 전이라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참고로 서산 버드랜드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천수만을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하는 한편, 체험과 교육중심의 생태관광 활성화에 주력하고자 조성된 철새 생태공원이다. 철새를 주제로 다양한 볼거리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며, 철새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탐조투어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철새들을 주제로 한 생태공원답게 곳곳에 철새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그런데 이게 주변의 붉은 단풍과 어우러지며, 마치 꽃밭에서 춤을 추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하긴 화사하게 만개한 꽃들과 새들의 지저귐을 연상시키는 스프링 왈츠(Spring Waltz)’를 주제로 컬렉션을 연 주얼리 브랜드도 있지 않았던가.

 사람들이 왈츠를 추듯. 새들도 눈보라 이는 하늘위에서 날개를 펴고 춤을 추는 모양이다. 맞다. 클래식 음악 중에도 새를 소재로 한 것들이 제법 있었다. 스웨덴의 작곡가 요한 에마누엘 요나손의 뻐꾸기 왈츠는 이미 명곡의 반열에 올라있고, 차이콥스키의 고니의 호수도 엄청나게 유명하다. 비발디도 플루트 협주곡 홍방울새를 작곡했다지 않은가.

 들녘을 마주보는 언덕에는 오리·기러기 전망대가 걸터앉았다. 망원경까지 비치해 철새들의 안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탐조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간척사업이 만들어낸 들녘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망원경을 통하면 물이 가득한 논에서 노닐고 있는 철새들도 구경할 수 있다. 철새의 안정적인 월동환경 제공을 위해 버드랜드에서 해오고 있는 노력의 결과다. 간척농지 경작 농가를 대상으로 생태계서비스 지불제 사업을 시행하는데, 참가자들은 벼를 수확한 후 내년 3 10일까지 철새의 먹이활동을 위해 볏짚을 남겨두거나 휴식지로 사용될 수 있도록 무논을 유지해야 한단다. 참가자에게 소정의 대가를 지급함은 물론이다.

 철새전시관도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천수만에 서식하는 큰기러기, 청동오리,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등 200여 종의 다양한 철새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관람객들은 친환경 전기차를 이용해 경내를 둘러볼 수 있단다. 버드랜드의 범위가 그만큼 넓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철새뿐만 아니라 숲, 갯벌, 논 등 다양한 자연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연중 운영하고 있단다.

 둥지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에는 각종 철새가 난다. 그 위에 올라탄 집사람. 활짝 웃는 것이 선녀라도 된 듯한 기분인가 보다.

 둥지전망대. 배를 형상화 한 하부구조물과 역동적인 회오리 모양의 상부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게 철새 알을 상징하는 다양한 크기의 원형 공간들과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관계자의 배려로 전망대까지 올라가 볼 수 있었다. 30m 높이의 전망대는 4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꼭대기인 4층은 실내 전망대다. 빙둘러가며 커다란 창을 내놓았는가 하면, 주요 포인트마다 망원경을 배치해 철새들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4층 내부 벽면. 서해안의 비경을 하나만 꼽으라면 서해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낙조를 꼽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저녁노을이 주는 특유의 쓸쓸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천수만은 거기에 철새의 군무까지 더했다. 보라!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전망대 조망.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로 변해버린 검조도를 가운데 두고, 왼쪽은 토끼섬’, 그리고 오른편에는 창리포구가 있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서산A지구 방조제가 만들어놓은 간척지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오른쪽의 천수만과 함께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알려지는 곳이다. 천수만은 물살이 거칠지 않아 물고기가 풍부하다. 게다가 간월호, 부남호 주변의 대단위 간척지에는 추수 후에도 곡식들이 다량 남아 있다. 겨울 철새들의 먹이 조건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오는 이유다.

 반대 방향에는 부남호가 놓여있다.

 발아래 야외공원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했다. 가족, 연인, 친구 등과 함께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포토존으로 꾸며놓았다.

 3층은 창이 없는 전망대로 꾸몄다. 유리창 너머로 찍히는 사진이 싫은 사람들은 이곳으로 오면 된다. 대신, 낮아진 만큼 시야가 좁아진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10 : 14. 실제 출발지인 창리교차로’. 천수만로(96번 지방도)에서 무학로(649번 지방도)가 갈려나가는 지점으로, 서해랑길 64코스의 주요 포인트이기도 하다. 천수만로를 따라오던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교차로를 건넌 다음 창리 나루터로 간다.

 천수만로를 따라 서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4차선 도로의 오른편 가장자리를 따라 자전거길이 따로 나있다.

 10 : 18. 잠시 후 도착한 현대 서산농장’. 64코스와 64-1코스가 나뉘는 지점이다. ‘창리포구를 빠져나온 서해랑길은 이곳을 기점으로 64코스는 서산B지구방조제 둑길로 가고, 지선인 64-1코스는 부남호의 동쪽 호숫가를 따라 북진한다. 그리고 태안·서산·당진의 해안선을 거치지 않은 채 서산·당진의 내륙 지역을 가로질러 아산시 84코스에서 원래의 길과 합류한다.

 이정표가 64-1코스의 시점인 창리포구에서 300m쯤 떨어진 지점임을 알려준다. 창리교차로에서 기록을 시작한 내 GPX 트랙에는 360m를 걸어왔다고 찍혀있다.

 현대서산농장 정문에서 왼쪽으로 난 길로 들어간다. 농장 담장과 부남호의 가장자리 사이로 길이 나있다. 서해랑길의 지선을 따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서산에서 당진까지 6개 구간으로 나누어진 지선은 109km쯤 된다. 해파랑·남파랑·서해랑·DMZ평화의길 등 코리아트레일 중 본선에서 지선으로 연결된 별도의 길은 이곳이 유일하다.

 둑 모양으로 나있는 길은 비포장이다. 하지만 승용차의 교차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널찍했다.

 길이 1,228m의 서산B지구 방조제. 창리포구와 건너편 당암포구를 잇는 이 방조제는 천수만의 끝이기도 하다. 둑이 완공되면서 천수만의 내륙 쪽 일부가 담수호와 간척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야생생물 보호구역이란다. 맞다. 이곳 천수만은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이다. 요즘도 17만 마리의 철새가 관찰 된다고 했다. 지자체가 이를 놓쳤을 리가 없다. 서산시는 천수만의 다양한 철새와 간월암·부석사·해미읍성 등 주변 관광지를 함께 둘러보는 탐조투어를 운영한다고 했다. 참가자가 촬영한 사진 가운데 우수작품을 선정해 소정의 상품도 준단다.

 맞다. 부남호에서의 철새 조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하시라도 철새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사진이 별로여서 몽중루 작가님의 것을 빌려왔다.

 천수만 일원은 매년 11월과 12월에 철새가 가장 많이 머무른다고 했다. 국제보호종인 시베리아흰두루미, 가창오리와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 큰고니 등 희귀 철새들도 심심찮게 관측된단다. 겨울철 여행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다.

 철새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군무도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다.

 호숫가 두어 곳은 전망대까지 만들어놓았다. 철새들의 날갯짓을 실컷 구경하다 가라는 모양이다.

 눈에 들어오는 부남호(浮南湖)’는 호수라기보다 바다에 가깝다. 방조제 길이는 A지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로 인해 만들어진 호수는 간월호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길은 어느 곳 하나 포장된 구간이 없었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 자동차는 애물단지에 가깝다. 흙먼지만 흠뻑 선사해주고 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된 딱딱한 노면을 걸을 때보다 걷기는 한결 수월했다.

 오른편 울타리 너머는 온통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 있었다. 서산지역의 간척사업은 식량 자급이 강조되던 시절 농지 확보를 목표로 추진됐다. 하지만 세월 따라 음식문화가 변하면서 쌀은 남아돌았고, 거기다 소금기 많은 간척지라서 경제성까지 처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이 태양광발전사업이었고, 현대건설은 30만 평(여의도의 1/3 크기)에 가까운 부지에 국내 최대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했다. 22천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단다.

 호수 건너편에는 관제탑까지 갖춘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서 운영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타이어 테스트 트랙으로, 축구장 약 125개 크기의 부지(38만평) 13개의 다양한 트랙이 들어서있단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주관하는 운전 교육, 시승 프로그램인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도 저곳에서 진행하고 있단다.

 이 구간의 가장 큰 볼거리는 철새의 군무다. 또 다른 볼거리는 이따금 갈대와 같은 수초를 만나 눈길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꼼꼼히 살펴보지는 말자. 쓰레기로 뒤덮인 흉물스런 민낯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부남호가 다시 바다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2019년부터 수질이 6등급 이하로 악화되면서 담수호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탓에 방조제 가운데를 헐어 바닷물이 드나들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간척사업 45년 만에 역간척사업으로 변해 세상을 다시 떠들썩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10 : 56. 그런데 부남호를 가로지르고 있는 저 둑의 정체는 대체 뭘까? 중간에는 잠수교 모양의 다리까지 놓여있다. 어쩌면 서산지구A·B방조제가 축조되기 전 주민들이 이용하던 농로를 겸한 도로였을지도 모르겠다.

 (zoom)으로 당겨보니 다리 상판이 끊겨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행할 경우 호수로 빠지게 된다는 경고판이 초입에 세워져있었다.

 부남호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는 길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더 계속된다.

 부남호도 여전히 따라오고 있었다. 아니 물길 두엇이 합쳐지기라도 하는 듯 오히려 더 넓어진 느낌이다.

 11 : 03. ‘2-배수장에도 전망대가 세워져 있었다.

 부남호는 상류부로부터 유입되는 오염물질로 인한 수질악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그래선지 ‘2-배수장에서는 뭔지 모를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물관리자동화 시설이나 홍수·수질 예보·경보 시스템 같은 시설일지도 모르겠다.

 농업용수로도 못 쓸 정도로 수질이 악화되었다니 물고기라고 온전하겠는가.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는 저 꼬맹이 어선이 그 증거라 하겠다.

 호숫가 둑길은 가고 또 가도 끝날 줄 모른다. 40분 이상을 걸어왔건만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광활하기 짝이 없던 태양광발전소가 배수장을 경계로 끝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그보다 더 넓은 농경지가 펼쳐진다.

 지난 2000년 현대건설은 자금난을 겪었었다. 그 해소의 일환으로 영농조합법인과 전업농에게 서산간척지 중 B지구 일부를 매각하기도 했다. 저 현수막이 그 증거다.

 11 : 17. 다리를 건넌다. 부석면의 너른 들녘을 적시며 흘러오는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어깨를 맞대고 달려오던 부남호와는 이곳에서 헤어진다.

 이정표(종점까지 6.8km)가 이제 그만 봉락저수지 방향, 즉 내륙인 서산시의 산하 속으로 파고들란다.

 방향을 틀자마자 ‘3-배수장이 나타났다. 이곳도 역시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염 저감시설을 보강하는 공사가 아닐까 싶다.

 이후부터는 하천의 둑길을 따른다. ‘서산B지구 방조제로 인해 생긴 너른 들녘을 양옆구리에 끼고 걷는 모양새이다. ! B지구방조제로 인해 매립된 면적은 5,783헥타르(ha)라고 했다. 이중 농지는 3,745헥타르(11,328,625)란다. 여의도 면적이 290헥타르이니 여의도의 13배나 되는 농경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함께 가는 하천은 웬만한 강줄기에 못지않을 정도로 컸다. 하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저 들녘을 적셔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서산지역 간척사업은 한때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이나 지도를 바꾸는 등의 수식어까지 달고 다니지 않았던가.

 ! 들녘에 논두렁이 없다. 기계농이 아니면 농사를 짓지 못할 정도로 농경지가 넓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래 전, 비행기로 볍씨를 뿌리는가 하면, 농약까지 비행기로 쳐대던 뉴스를 보며 감탄해하던 일이 있었다. 그 뉴스의 생산지가 이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늘밭도 경계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산시에서 축제까지 연다는 서산6쪽마늘을 심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쪽저쪽 보시고, 서산6쪽마늘축제로 오세유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을 정도로 뛰어난 품종이라나?

 둑길이어선지 억새밭을 끼고 걷기도 한다. 가을철, 하얀 억새꽃이라도 흐드러지게 피면 또 하나의 풍성한 볼거리로 변할 게 분명하다.

 11 : 47. 봉락저수지에서 흘러오는 물길을 건넌다. 이정표가 종점까지 4.3km쯤 남았음을 알려준다.

 11 : 50. 조금 더 걷자 옻밭2교차로가 반긴다. 여기서 옻밭은 칠전리의 옛 이름이다. 옻나무밭이 많다고 해서 옻밭골, 옻밭말(漆田村), 칠전(漆田) 등으로 불리다가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옻 칠()’자가 일곱 ()’자로 바뀌어버렸다고 한다.

 서해랑길은 이제 ‘649번 지방도를 따라간다. 2차선 도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널찍하게 인도를 내놓았다.

 도로 건너. 태극기가 휘날리는 건물은 칠전리(七田里)’의 마을회관(경로당)이다. 부석면에 속한 법정리 중 하나로, 옻밭골·사기점·금곡·성절골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그렇다면 저 마을은 옻밭골일 것이다. 이 교차로의 이름이 옻밭인 것을 보면 말이다.

 11 : 56. 이번에는 옻밭2교차로. 도로 표지판은 옻밭골로 연결되는 지점임을 알려준다. 아니 신작로의 오른쪽에서 따라오고 있는 ()도로의 버스정류장은 성절말, 승지골 등 다른 자연부락으로도 연결된다고 알려준다.

 교차로 근처에 칠전리사무소가 지어져 있었다. ‘칠전리 영농회라는 편액도 눈에 띈다. 경로당 기능이 없는 순수 사무실인 모양이다.

 봉락저수지는 스치듯 지나간다. 간척지 들녘을 적셔주는 물길의 원천으로, 월척을 노리는 프로 낚시꾼들이 심심찮게 찾아오는 곳이다. 겨울철, 맹추위에 꽁꽁 얼어붙기라도 할라치면 얼음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단다.

 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마을은 부석면의 또 다른 법정 동리인 봉락리(鳳洛里)’. 검은돌·봉동·노라실·소댕이·장승배기 등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충남지역의 특징답게 어느 부락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옛 이름이 적힌 마을 표석을 세우는 등 옛 지명 찾기에 힘을 쏟는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충남에서는 여전히 1, 2, 3리로 통칭되는 행정 동리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12 : 05. ‘봉락교차로를 지난다.

 도로 건너에는 봉락경로당이 들어서 있었다.

 12 : 10. ‘초당2교차로라고 한다. 하지만 초당이란 이름을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끝내 알아낼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의 꿈속에 저장된 농촌은 대부분 낭만이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먹고 사는 게 우선이다. 스핑크스 고양이와 타조의 체험을 간판으로 내건 저 농장 & 카페도 그런 삶의 한 방편일 것이다.

 그런 현실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도태될 수밖에 없다.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는 저 주유소가 그 증거이다.

 12 : 15. 이번에는 초당1교차로를 지난다. 이름과는 달리 이곳은 봉락리’, 갈려나가는 길도 지산리로 연결된다.

 봉락1의 마을회관도 노인정을 겸하고 있나보다.

 생강 한과 공장도 눈에 띈다. 서산 생강은 전국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생강을 활용하는 서산 한과는 토종 생강을 곱게 갈아 일정 비율로 섞은 조청이나 물엿을 사용하기 때문에 맛과 향이 독특하다. 여기에 국산 참깨, , 백련초 등으로 각양각색의 한과를 만드는데, 한과 속살에 배어있는 생강 성분이 감칠맛을 더해줄 뿐 아니라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신장을 튼튼하게 해주며 감기 예방 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12 : 20. ‘대봉정교차로는 회전교차로 형식을 취했다.

 서산농협의 농산물집하장이란다. 마늘, 양파, 배추 등 서산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류의 홍수 출하를 막음으로써 산지가격을 지지해보려는 시설쯤으로 보면 되겠다. 그나저나 면단위 집하장치고는 대단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부석면의 들녘이 그만큼 넓고, 생산되는 농산물의 양도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농민들의 삶도 그만큼 풍요로울 것이고 말이다.

 칠전리와 봉락리를 연이어 달려온 서해랑길은 이제 대두리(大頭里)로 넘어간다. 지형이 큰 머리처럼 생겼다는 마을로, 내건너·구억지·들마당·부엉굴(구억말사양골 등의 자연부락을 품고 있다.

 사양골지도 스치듯 지나간다. 간척지에 물을 대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는 저수지다.

 12 : 33. ‘대두교차로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 도심(부석면 소재지)으로 진입한다. 종점까지 0.6km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길가에 세워져 있다.

 건너편에는 1954년에 문을 열었다는 부석중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전체 학생수가 100명도 채 안되지만, 사용하는 건물만큼은 대도시 중학교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12 : 40. 취평리(부석면 소재지)에 위치한 차부삼거리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아니 시간이 너무 일러 64-2코스 중 일부(부석사까지)를 더 걷기로 했다. 22.7km나 되는 64-2코스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은 간절함이라고나 할까?

 버스정류장 주변은 공중화장실까지 갖춘 쉼터 겸 소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서해랑길(서산 64-2코스) 안내도는 버스정류장에 기대듯 세워놓았다. 그나저나 64-1코스는 12.03km 2시간 30분에 걸었다. 상당히 빠른 속도다. 버드랜드를 들르지 않은 일행들을 따라잡으려고 발길을 서두른 데다. 추위에 쫓겨 간식은커녕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달려온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