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64코스(궁리항 - 태안관광안내소)

 

여 행 일 : ‘24. 12. 14()

소 재 지 : 충남 홍성군 서북면 및 서산시 부석면, 태안군 남면 일원

여행코스 : 궁리항서산A지구방조제간월교차로간월암창리교차로창리항서산B지구방조제태안관광안내소(거리/시간 : 13.2km, 실제는 15.03km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64코스를 걷는다. 8로 이루어진 서산남부·태안남부 구간(64-68코스 및 지선1-3)의 첫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서산군의 서쪽해안선을 따라 북서진하는 여정이다. 난이도는 별이 1(전체 5), 수월한 코스로 분류된다.

 

 들머리는 궁리항(충남 홍성군 서부면 궁리)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에서 내려와 좌회전, 상촌교차로(29번 국도)에서 96번 지방도를 타고 안면방면으로 8km쯤 달리다가 궁리교차로에서 내려오면 된다. 서해랑길(서산 64코스) 안내도는 궁리 어판장 마당에 설치되어 있다.

 궁리항에서 서산군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북서진, ‘서산B지구방조제까지 가는 13.2km짜리 여정으로, 절반가까이를 방조제를 걸어야하는 유별난 코스이다. 하지만 철새를 실컷 구경할 수 있는가 하면, ‘간월암이라는 명소를 끼고 있어 심심해 할 틈이 없는 멋진 코스이기도 하다.

 어판장 지붕의 조각상. 낚시 명소인 궁리항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고기를 막 낚았는지 히트를 외치며 낚싯대를 잡아채는 아버지, 뒤에서는 어린 아들이 두 손 들어 환호성을 지른다. 어머니와 딸은 한 발 뒤에서 그 광경을 잔잔히 지켜보고 서있다. 정감이 뚝뚝 떨어지는 풍경이라 하겠다.

 09 : 26. ‘남당항로를 따라 북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어깨를 맞댄 바닷가는 선착장으로 변해있었다. 하시라도 입출항이 가능한 선착장이 버젓이 있는데도 말이다. 모래사장 위로 배를 끌어올리려면 꽤나 힘이 들었을 텐데도.

 도로변은 숫제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전망 데크에서 천수만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는가 하면, 인생샷이라도 건지라는 듯 저런 천국의 계단도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서 바라본 궁리항’. ‘궁리(弓里)’란 지명은 포구의 모양이 활처럼 휘어있다는데서 유래했다. 천수만(淺水灣)의 포구답게 봄에는 꽃게와 주꾸미, 가을에는 대하와 꽃게, 겨울에는 간재미 등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방파제 끝에는 놀궁리 해상파크라는 해상 놀이공원이 들어섰다. ‘어촌뉴딜 300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간인데 궁리라는 지명이 누군가의 재치가 더해지면서 놀 궁리라는 위트 넘치는 또 다른 지명으로 변했다.

 길은 서산 A지구 방조제를 향하여 간다. 길고도 긴 방조제의 둑 위로 도로(천수만로/96번 지방도)’가 나있기 때문이다.

 천수만 풍경. 이곳 궁리포구 일대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광활하면서도 잔잔한 천수만을 앞에 두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거기에 명품 낙조까지 더해지면서 홍성8의 한 자리까지 꿰차고 있다나?

 서산A지구 방조제 배수갑문. 방조제를 쌓으면서 생긴 간월호의 수위를 조절하라는 임무를 맡았다. 참고로 간월호(看月湖)는 천수만의 물길이 막히면서 생긴 인공호수이다. 1980 5월에 착공 1982 10월 서산시 부석면 창리와 홍성군 서부면 궁리를 잇는 서산A지구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면서 담수호가 형성됐다.

 09 : 38. 탐방로는 과학관교차로 못미처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배수갑문교를 건넌다. 서산A지구 배수갑문의 수로에 놓인 다리다. 이정표(종점 12.4km/ 시점 0.8km) 64코스의 하이라이트인 간월암까지 4.2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다리를 건넌 다음, 이번에는 궁리교의 교각 아래를 지나간다.

 이후부터는 천수만로를 따라간다. 서산시 부석면(간월도리) 홍성군 서부면(궁리)을 잇는 방조제의 둑 위로 4차선의 도로(천수만로)를 냈다. 서해랑길은 도로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따로 만들어놓은 자건거길을 빌려 쓴다.

 눈에 들어오는 간월호는 숫제 바다이다. 이곳 천수만은 철새들의 국제 정거장이다. 그중에서도 간월호 일대는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로 꼽힌다. 철새들이 마음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인공 섬까지 만들어 놓았을 정도다. 하지만 때를 못 맞춘 탓인지 인공 섬은 물론이고 철새도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09 : 55. 둑 중간쯤에는 철새 탐조대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방조제의 준공과 함께 간월호 주변은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가 됐다. 매년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수십만 마리에 달하는 철새가 찾아온단다. 추수 후 농경지에 남겨지는 이삭과 호수에 서식하는 어류, 양서류 등이 월동 조류의 주 먹이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철새탐조대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두고두고 회자될 건설사가 적혀있다. 1980년대 시작된 서산 간척지사업 7.7km의 방조제를 축조해 4,660만평의 간척지를 조성하는 대역사였다. 하도 대규모이다 보니 마지막 물막이 단계에서 난관에 부딪혔던 모양이다. 9m에 달하는 조수간만의 차와 초당 8.2m의 빠른 유속이 승용차만한 바윗덩어리조차 흔적도 없이 쓸어내 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정주영 회장이 고철로 쓸 23만 톤급(길이 322m, 높이 27m) 폐유조선을 가라앉히는 공법을 생각해냈고, 그게 성공하면서 정주영 공법이란 이름으로 세계 토목건설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나?

 이후로도 둑길은 한참이나 이어진다. 하긴 방조제의 길이가 3km(A지구만)도 넘는다니 어련하겠는가.

 방조제가 끝나갈 즈음 만나게 되는 농경지. 논에 물이 잡혀 있는 게 눈길을 끈다. 천수만 여행 때나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천수만을 찾은 철새들에게 먹이터와 쉼터를 제공하기 위해 수확을 마친 논에 물을 가득 채워놓는 것이다. 물론 정부에서 적절한 보상을 해주고는 있지만.

 10 : 13. 둑길을 걷다보면 길은 자연스레 홍성군에서 서산시 부석면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방조제 끝에서 간월교차로를 만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계속해서 천수만로를 고집하는 자전거길과 헤어져, 해안도로(간월도2)를 새로운 길벗으로 삼기 때문이다.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자 화장실까지 갖춘 널찍한 주차장이 맞는다. 초입의 글자조형물이 간월도에 가까워졌음을 알려준다.

 이제 길은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서산A지구방조제로 인해 물길이 끊긴 천수만을 눈에 담으며 걷는 구간이다.

 도로변에는 통창을 통해 천수만을 바라볼 수 있는 뷰 맛집이 꽤 여럿 들어서 있었다. 무인 카페인 ‘Cafe 월도리684’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저곳은 커피보다 수제맥주에 특화되었나 보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천수만을 낀 도로, 곳곳에서 멋진 뷰가 터지는데 그냥 놓아둘 지자체가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라는 듯 도로변을 따라 두어 곳에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전망대에 오르자 천수만이 드넓게 펼쳐진다. 천수만 건너편에서는 안면도가 수평선을 대신하고 있다. ! 물 빠진 해변에서 조개를 잡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했다. 길을 가다보면 얕은 물에 들어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띈다.

 시선을 조금 옮기면 간월도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고 있는 스카이워크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10 : 27. ‘간월도 스카이워크는 곡선의 미를 한껏 살린 모양새이다. 좌우로도 모자라 상하로까지 곡선의 형태를 취했다.

 툭 터지는 조망을 실컷 눈에 담다보면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광장에 이른다. 그곳에는 예쁘장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보통 요물이 아니다. 동그라미 안에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간월암을 품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인생샷 하나쯤 너끈히 건질 수 있는 명소로 꼽히는 이유이다.

 구름을 뚫고 내려온 햇살이 간월암 주변을 조명처럼 비춘다. 간월암은 분명 섬, 아니 돌섬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암자다. 하지만 지금처럼 썰물 때면 산봉우리에 걸터앉은 작은 암자가 된다. 아름다움에 신비함까지 더한 명소라고 보면 되겠다. ‘서산9 ‘3으로 꼽히는 이유일 것이다.

 스카이워크를 빠져나오니 굴 따는 여인들 조형물이 반긴다. 하단에 적힌 글을 옮겨본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고려 말기부터 조정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구전에 의하면 무학대사가 태조에게 간월도에서 난 어리굴젓을 진상했단다. 간월도의 굴은 자라는 과정이 특이하단다. 어릴 때는 돌과 바위에 붙어 석화(石花)로 자라다가 다 크면 떨어져서 갯벌에서 살아간다나? 그래서 토굴(土花)’로 불리기도 하는데, 육질이 단단하고 굴 특유의 바다냄새가 풍부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 굴로 젓갈을 담갔다니 임금님의 밥상에 올라가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10 : 32. 호로병의 목처럼 생긴 간월도(看月島) 입구. 간월도가 원래 섬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다. 맞다. 간월도는 천수만에 떠있는 작은 섬이었다. 안면도 북부를 관할하는 안면읍에 속해있었지만 1984년 천수만 일대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부석면과 육지로 이어지면서 서산시 부석면으로 편입됐다.

 간월도 입구는 굴탑을 중심으로 작은 광장을 만들어놓았다. 음식물을 소재로 한 유별난 기념탑으로 매년 정월 대보름날 굴의 풍요를 위한 굴부르기제까지 지낸다고 한다. 100년 이상 이어져온다는 이 전통행사는 굴왕제 또는 군왕제로도 불리는데, 부정한 행동을 하지 않은 아낙네 들이 소복을 입고 마을 입구에서 춤을 추며 출발해 굴탑 앞에 도착하면 제물을 차려 놓고 굴 풍년 기원제를 지낸단다. 그런 다음 채취한 굴을 나눠 먹는다나? 이때 관광객들도 함께 즐길 수 있게 시식이 가능하단다. 굴 채취가 간월도 주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는지 알 수 있는 풍경이다.

 간월암은 서산, 아니 충남에서도 유명 관광지로 꼽힌다. 돌섬에 걸터앉은 사찰의 아름다움에 더해 선승(禪僧) 만공의 광복 기도발이 먹혔다는 소문 덕분이다. 그래선지 주차장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차량들로 한 가득이다.

 10 : 36. 주차장을 지난 길은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 건너에 작은 섬이 있다. 아니 섬이라기에는 민망한 크기라, 커다란 암초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 그 돌섬에 신비로운 사찰 간월암(看月菴)’이 있다. 물이 빠지면 암자까지 50m 정도 걸어서 들어갈 수 있지만 물이 차면 암자는 바다에 갇힌다. 암자가 바다 위에 떠있는 형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간월암이 더 신비롭게 보이는 이유이다.

 가람배치도. 사진처럼 바닷물이 차면 물 한 가운데에 둥둥 뜬 형상이 된다. 그나저나 간월암은 아담했다. 법당인 관음전을 비롯해 산신각과 용왕각, 범종각까지 전부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허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곳곳에서 만공선사의 숨결을 음미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싶다.

 간월암의 금당(金堂)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 대신 관음보살을 모시는 원통전이다. ‘어떤 이야기든 다 들어준다는 관음보살은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자비의 화신이다. 원통전은 그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고뇌를 주원융통(周圓融通, 두루 막힘이 없는 상태)하게 씻어준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관음보살을 모신 건물을 관음전이라 칭하는 절들이 많단다. 하나 더. 금당에는 간월암이라고 적힌 편액이 하나 더 붙어있었다. 일주문이 하도 작다보니 편액을 붙일만한 공간이 없었나보다.

 법당에는 유형문화재(충남) 목조보살좌상 말고도 무학대사, 만공선사, 벽초대사(만공의 제자)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간월암은 무학대사가 달빛을 보고 득도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만공대사는 암자를 중건했다. 조선불교 초기의 대표적 선승인 무학대사와 근대불교 선종의 중흥기 법통을 이은 만공선사의 정신이 간월암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나 더. 만공스님은 만해스님이나 용성스님처럼 직접 독립운동 일선에 나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원에서 정진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선학원을 만들어 한국불교 말살 정책을 피던 조선총독부의 핍박에서 벗어나 독신 수행가풍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다. 스스로를 인간 부처라 일컫고 근세 선불교의 중흥을 이끈 괴짜 스님 경허대사의 셋째 제자이기도한데, 조계종 최대 문중 중 하나인 덕숭문중은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으로부터 법맥(法脈, 스승과 제자로 엮어진 인맥)을 잇는다.

 범종각과 산신각이다. 산이 있을 리가 없는 이런 꼬맹이 돌섬에 산신각이라니. 만공선사에게 이 돌섬은 산하가 압축된 산수석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바닷가. 그것도 섬에 들어앉았으니 용왕각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 것이다. 그런데 용왕이 아닌 부처님이 용을 타고 있다는 게 특이하다. 바다에서 파도를 다스리고 사람을 지켜준다는 해수관음상도 눈에 띈다. 용왕각 곁에서 소원 초를 켜려고 찾아오는 이들을 맞고 있었다.

 마당에는 덩치 큰 사철나무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안내판은 무학대사의 지팡이라고 알려준다. 무학대사가 간월암을 떠나면서 짚고 다니던 주장자(拄杖子, 수행승들이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를 뜰에 꽂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나뭇가지가 다시 살아나면 불교가 다시 흥하리라고 예언하셨다나?

 하지만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은 폐사됐다. 잊혀진 이름이던 간월암이 다시 역사에 등장한 건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다. 수덕사를 중창하고 마곡사 주지를 지내던 만공선사(滿空禪師, 1871-1946) 간월암 고목나무가 다시 살아나 잎이 핀다는 소문을 듣고 간월암을 찾았다. 그는 고목나무에서 새파란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을 보았고, 그곳에 머물며 암자를 짓고 손수 간월암이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만공스님은 1942 8월부터 3년 동안 이곳에서 조선독립을 기원하는 1000일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기도를 마치고 회황한 지 3일 만에 광복을 맞이했다나? 그런 이야기가 퍼지면서 간월암도 세간에 알려졌다. 그래선지 공양실 앞, 테라스풍의 공간에는 소원 연등이 덕지덕지 걸려있었다. 간절한 소원 하나 없는 중생이 어디 있겠는가. 만공선사의 소원이 이루어졌던 것처럼 자신들의 바람도 이루지기를 비는 간절한 소원이 담겼을 것이다. 나도 빌어본다. 지친 몸과 마음의 무거운 짐들을 한꺼번에 다 내려놓는 올 한해가 될 수 있도록 해주소서.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담장으로 다가가자 고요한 서해가 앞마당인 양 펼쳐진다. 저 멀리 고깃배 몇 척이 한가롭게 떠 있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스카이워크가 다가온다. 그 뒤로는 천수만의 남단이 드넓게 펼쳐진다. 간월도는 천수만의 북쪽 중앙에 해당하기 때문에 가깝게는 궁리항과 홍성 스카이타워가 보이고, 날씨라도 좋을라치면 천수만 입구의 보령화력발전소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간월암은 낮보다 저녁 무렵이 더 사람들로 붐빈다고 했다. 간월암을 배경으로 하늘과 바다가 붉게 물들고 마침내 장엄하게 사그라드는 모습이 잊지 못할 감동을 준다나?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빌려왔다.

 10 : 48. 간월암에서 나와 왼쪽을 보면 긴 방파제 끝에 빨간 등대가 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진행하는 등대 스탬프투어에 포함되어 있는 곳인데, 어둠이 내리면 방파제와 등대에 조명이 들어와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해준다고 했다.

 간월도항. 방파제는 물론이고 선착장과 물양장까지 갖춘 의젓한 항구이다. 거기다 썰물인데도 저렇게 물이 찰랑거리니 천혜의 항구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꼬맹이 고깃배 열대여섯 척이 정박하고 있어 한산함 그 자체였다. 인근 수역에서 우럭·감성돔·농어 등이 잘 잡힌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10 : 55. ‘굴탑광장으로 되돌아와 트레킹을 이어간다. 관광 명소답게 도로변은 식당이 즐비했다. 하나같이 간월도 어리굴로 만든 영양굴밥을 메인메뉴로 내걸고 있다. 맞다. 굴은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선사시대의 조개더미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오랜 세월 바닷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왔다. 갯바위에 덕지덕지 붙어있어 어려운 해루질 없이도 쉽게 채취할 수 있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청산별곡(靑山別曲)이 그 증거 중 하나다.

 식당이 아닌 곳에서는 어김없이 어리굴젓을 팔고 있었다. 좌판 덕장에서는 인근 해역에서 잡아 올린 생선이 꼬실 꼬실 말라가고 있었다.

 천수만은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라고 했다. 그만큼 먹을거리가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길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이런 풍경을 만난다. 저게 맹추위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우리네 밥도둑으로 변해간다.

 길은 천수만로(96번 지방도)’를 향해 간다. 그리고 간월·영농교차로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 구간에서도 천수만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저 갯벌은 어민들의 일터다. 다 자란 굴이 돌이나 바위에서 떨어지면 그것을 주워온다. 뻘로 범벅이 된 굴은 저 갯샘에서 깨끗이 씻을 게고 말이다.

 시선을 조금 옮기면 길고 긴 방조제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후 우리가 걸어가야 할 둑길이다. 그 시선 끝에는 토끼섬과 창리포구가 겹으로 놓여있다.

 11 : 10. ‘간월·영농교차로(이정표 : 종점까지 7.7km)’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런 다음 간월도리와 창리를 잇는 서산A-2지구 방조제를 탄다. 둑 위로 천수만로를 냈고, 서해랑길은 오른편 가장자리를 따라 따로 내놓은 자전거길을 빌려 쓴다.

 방조제가 만들어낸 들녘. 얼마나 넓은지 마한시대 이곳에 있었을 웬만한 나라 하나쯤은 너끈히 먹여 살릴 수도 있겠다. 그 끄트머리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은 도비산일 것이다. 서해랑길의 지선인 ‘64-2코스 답사 때 도비산의 허리 어림을 지나간다.

 도로변에 가로수 삼아 심어놓은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서산시를 상징하는 만년청(萬年靑)’이라는데, 내한성이 강하고 사계절 푸른 것이 변함없이 씩씩한 서산시민의 기상을 나타낸다나?

 들녘너머 야산에는 서산 버드랜드가 걸터앉았다. 이곳 천수만 일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철새도래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 철새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서산시에서 철새를 테마로 한 공원을 만들어놓았다. 철새전시관, 4D영상관, 둥지전망대, 야외광장 등으로 구성되는데,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둥지전망대는 배를 형상화한 하부 구조물과 역동적인 회오리 모양의 상부 구조물이 철새 알을 상징하는 다양한 크기의 원형 공간들과 잘 어우러지는 전망대로 알려진다.

 11 : 41. 옛날 닭섬이라 부르던 곳에는 간월휴게소가 들어서 있었다. 주유소 말고도 식당 두엇이 있어 간월도나 창리포구로 이동하는 길에 들러 한 끼를 때우기 딱 좋은 곳이다.

 길은 버드랜드 교차로를 향해 간다. 도로 건너에는 천수만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주변에서 주워온 듯한 바위들을 진열해 놓은 풍경인데, 그 뒤에서 토끼섬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건물에 쓰인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버드랜드가 가까워졌다. 서산 천수만에서 ‘2025 아시아 조류박람회(Asian Bird Fair 2025)’가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울산과 순천에 이어 국내 세 번째인데, 26개국 300명이 넘는 대표단과 연인원 1만 명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조류행사라고 한다. 저런 시설이 있었기에 유치가 가능했지 않나 싶다.

 천수만은 86 7 6029개체의 철새가 확인된다고 했다.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날갯짓을 하는 저 철새들이 그 증거라 하겠다. 천수만을 따라가는 서해랑길은 곳곳에서 인간과 야생조류가 공존해나가는 가슴 따뜻한 풍경들을 보여준다.

 11 : 53. 버드랜드 진입로 아래로 난 굴다리를 통과한다.

 굴다리 입구에 아라메길의 안내도와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라메는 바다의 순수한 우리말인 아라에 산의 우리말인 를 더한 합성어로 청정한 바다와 수려한 숲길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서산시 전역에 17개 구간을 개설할 예정이라는데, 현재 1개 구간 5개 코스만 완성되었단다.

 버드랜드 조형물. 간척사업으로 인해 천수만 주변은 곳곳에 대단위 농경지가 조성됐다. 그 들녘에 추수 후 이삭이 남겨졌고, 거기에 수심 낮은 갯벌의 바다 생물들이 보태지면서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11 : 55  12 : 25. 굴다리를 지난 탐방로는 또 다시 천수만로로 올라간다. 하지만 산악회에서 간월호(창리) 쉼터공원에 잠시 들렀다 가란다. 점심상을 차려놓았으니 끼니를 먼저 때우고 잔여구간을 이어가라는 것이다. 공원은 굴다리 위로 올라선 다음 횡단보도를 건너면 된다.

 공원에는 화장실과 배드민턴장 등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점심상은 차릴만한 주차장도 물론 갖추었다.

 간월도로 향하는 길목에 조성해놓은 공원(‘해당화공원으로도 불리는 모양이다)은 천수만을 감상하며 쉬어갈 수 있는 휴식공간이다. 낮에는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고, 저녁에는 노을빛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바닷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단다.

 바다는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홍성으로 들어서면서 사라졌던 해식애가 다시 나타났는가하면, 잔물결조차도 일지 않는 천수만에는 바다낚시 좌대가 기다랗게 펼쳐진다.

 공원 근처에는 파티엔이라는 카라반도 들어서 있었다. 뷰 맛집으로 소문난 곳인데, 부대시설인 카페의 외모가 눈길을 끌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12 : 25. 굴다리로 되돌아와 트레킹을 이어간다. 이후부터는 천수만로를 따라간다. 오른쪽 가장자리에 잇대어 내놓은 자전거길을 따라 부남호 방향으로 간다.

 12 : 37. ‘창리교차로(이정표 : 종점까지 1.9km)’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이어서 창리2을 따라 창리 포구로 간다. 포구 풍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천수만로를 따라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현대 서산농장 앞에서 서해랑길과 다시 만난다.

 12 : 43. 인도가 따로 없는 도로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자 꼬맹이 고깃배 서너 척이 정박해있는 창촌나루터가 반긴다. 뒤로 보이는 구릉지대는 파티엔 카라반이 들어서 있는 검조도’,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로 변한 섬이다.

 이후부터는 해안길을 따라간다. 바닷가, 그것도 포구를 낀 바닷가답게 회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12 : 47. ‘창리 선착장은 낚시꾼들 사이에서 소문난 곳이다. 선착장 근처에서 낚시를 즐길 수도 있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좌대 낚시의 재미에 푹 빠져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 더. 창리포구의 역사는 조선시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군의 배를 매어두던 주사창(舟師倉)이 있었는가 하면, 왜구의 침략이 잦자 태종이 도비산에서 강무(講武, 왕의 앞에서 실시하는 훈련)를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선착장이나 물양장 등 부대시설은 간월도항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묶여있는 배의 숫자나 크기는 간월도항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우럭이나 참돔, 점성어 등이 잘 잡힌다고 했다.

 수산복합단지라도 조성했는지 회 타운도 따로 만들어놓았다. 주차장도 차들로 붐빈다. 간월도로 관광 오는 사람들이 먹거리는 이곳에서 찾는 모양이다. 아니 이곳에도 구경거리가 있다고 했다. 매년 정월 초사흗날 창리 영신제가 어촌계 주관으로 열린다는 것이다. 임경업 장군(1594-1646)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당굿형 동제로, 300년 넘게 이어져오는 전통 행사라고 한다.

 창리포구 입구. 공중화장실 앞에 서해랑길 64-1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었다. 지선이라서 64코스의 종점에서 출발시킬 이유가 없었나 보다. 아무튼 2주 후에는 이곳에서 64-1코스를 시작하게 된다.

 서산64-1코스 안내도. 이곳 창리포구에서 출발 부남호의 동쪽 호안을 거쳐 부석버스정류장에 이르는 11.9km짜리 코스다.

 12 : 54. 창리포구를 빠져나와 천수만로(이정표 : 종점까지 0.7km)’로 올라선다. 서해랑길은 횡단보도를 건너 현대 서산농장 입구로 간다. 정주영 회장이 북한으로 1001마리 소떼를 몰고 간 일화가 깃든 곳으로, 지금은 당시 북으로 실려 갔던 한우의 후손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단다.

 서해랑길은 이제 서산B지구 방조제를 탄다. 초입에 부남호(浮南湖)의 배수갑문이 있다.

 서산B지구 방조제도 길이가 1.228m나 된다. 창리포구와 건너편 당암포구를 잇는 이 방조제는 천수만의 끝이기도 하다. 둑이 완공되면서 천수만의 내륙 쪽 일부가 담수호와 간척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부남호는 다시 바다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방조제(1228m) 가운데 일부 구간을 헐어 바닷물이나 배가 드나들게 한다는 것이다. 2019년부터 수질이 6등급 이하(화학적 산소요구량 기준 10mg/L 이상)로 악화되면서 담수호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간척사업 45년 만에 역간척사업으로 변해 세상을 다시 떠들썩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13 : 08. 방조제 중간쯤, 그러니까 태안과 서산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태안군 관광안내소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서해랑길 안내도(태안 65코스) 안내도는 관광안내소 곁에 세워놓았다. 오늘은 15.03km 3시간 30분에 걸었다. 간월암을 둘러보느라 지체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꽤 빨리 걸은 셈이다. 하긴 날씨가 춥다보니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관광안내소 옥상은 전망대로 꾸며져 있었다. 부남호와 천수만 방향에 망원경은 물론이고 조망도까지 세워 실물과 비교해가면서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천수만 풍경. 좌대낚시터 뒤로 보이는 섬은 황도(荒島)’인데, 연도교(連島橋)로 안면도(安眠島)와 연결된다. 본섬에 딸린 꼬맹이 섬이니 섬 속의 섬이라고나 할까? 곁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작은 솔섬이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오늘도 함께 걸었다. 부부(夫婦)란 결혼한 남편과 아내를 이르는 말이다. 한자에서 부()는 지아비, ()는 지어미라는 뜻으로 둘이 나란히 서있는 형상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앞서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의 마음이 멀어져 다른 한 사람이 눈물을 훔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짝으로 생각하면서 함께 나란히 걸어야하는 이유다. 트레킹 덕분이지만, 오늘도 우리 부부는 그런 삶의 지혜를 실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