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후반 충청도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 때아닌 폭설이 내리고
한겨울 같은 추위가 몰아닥치는 바람에 계절이 잠시 거꾸로 가는
듯했습니다.
말 그대로 '봄이 왔으나 봄답지 않았다'(春來不似春).
하지만 봄은 동장군의 시샘을 아랑곳하지 않는 법이지요.
대지에
흠뻑 밴 봄기운의 완숙함에 비하면 꽃샘 추위는 앙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내렸던 눈은 대부분 녹아 땅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리고 눈 녹은 물은 봄을 더욱 살찌우고 풍성케 하는 자양분이
됐습니다.
봄빛 잔치가 시작됐다는 남녘의 화사한 봄소식을 뒤로하고 난 북녘으로 떠났습니다.
꼭 꽃이 아니더라도 봄을 불러온 빛깔, 봄이
흠뻑 담긴 빛깔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지요.
그리고 난 그 곳 오봉산에서 봄기운 완연한 연초록 푸르름 듬뿍 담아 올 수
있었습니다.
사회자의 안내로 자기소개가 이어지는데, 창밖의 하늘이 어둡습니다.
일기예보는 오전에 비가 올 확률이 60%이지만 그러나 비가
올 것 같지는 않군요.
지난번 내린 눈에 춘천가도 주위 들과 산이 촉촉이 젖어 창밖에는 봄기운이 피어오릅니다.
물어물어 잘못 도착한 소양호 입구입니다. 아저씨왈 배후령은 입산통제라나요?
오늘의 리더 베모양 부지런히 헨펀을 때립니다. '못
들어갑니다' '교섭중입니다' '통과했습니다'
구불구불 전형적인 강원도 도로를 올라 배후령에 도착합니다. '산불 때문에 못
들어갑니다'
'한번만 싹~싹~' '저렇게 담배피우는 사람이 있는데도요?' 하필 그때 담배를 피울게 뭡니까.
그래도 우린 꿋꿋이 시산제
잘 지내고 입산을 합니다. 사교력의 승리입니다.
남의 눈에 안띄게 빨리 올라가라는 아저씨의 말에 깔딱고개를 쉬지도 않고 채 오릅니다.
숨이 턱에 차오르니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느새 머리위에 해가 빼꼼이 얼굴을 내밀었는데도 말입니다.
떡갈나무(?) 낙엽이 쌓인 길은 푹신푹신합니다. 길가에는
진달래 관목이 계속 이어집니다.
봄에 다시 찾아오면 원 없이 분홍 진달래 구경할 수 있다는 어느 분의 해설이 친절합니다.
밋밋한 나한봉과 관음봉을 넘으니 드디어 쇠줄로 연결된 암릉 구간이 나타납니다.
비교적 시설이 잘된 암릉은 오봉산의 묘미를
만끽하게 하고,
바위에 까지 기기 묘묘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노송은 가히 압권입니다.
푸르른 생명력이 무생물인 바위에 기대어
공생하는 절묘한 어울림은 기막힌 궁합입니다.
줄을 붙잡고 바위를 한번 치고 오르니 정상(보현봉)입니다.
자그마한 정상 표지석 이 보이고 조망 또한 비교적 좋은 작은
암봉입니다.
북동쪽에 추곡약수로 유명하다는 사명산이, 남서쪽으로는 마적산과 수리봉이 보입니다.
'사진대형으로 헤쳐 모여!' 찍사의
명령에 팻말의 모교이름이 가릴까봐 걱정인 분도계십니다.
정상의 작은 공터에서 점심을 하기로 합니다.
좁은 공간이라 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는데, 새내기분들을 챙기는 운영자의 모습이
참 아름답네요.
역시 여럿이 어울려 먹는 점심은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해서 늘 즐겁습니다
오늘의 별미는 이천댁의 오리알, 큰건
거위알이라네요. 못먹는 사람의 몫까지 제것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알콜은 산행의 피로를 풀어줍니다. 겁많은 사람에겐 용기까지
선물하지요.
사봉(문수봉)을 향해 가는 길은 암릉의 연속입니다.
산다람쥐(맞나?) 앞의 아가씨가 릿찌로 우회하며 따라오라 손짓하는군요.
물론 따라야지요.
그리 멀지 않게 소양호가 살포시 얼굴을 내밀고, 고즈넉이 자리잡은 청평사도 보입니다.
술취한 아줌마의 모습까지도 밉지 않는 산, 역시 산은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드나봅니다.
오봉(비로봉)에서 청평사로 내려가는
슬랩지대에는 쇠줄로 계속되어 손목이 힘들어합니다.
오죽 쇠줄이 길면 `쇠줄 지역'이라고 안내지도에 표시했을까요.
힘들지만 오봉에서
내려오는 바위지대를 좋아할 사람들이 많을 걸요? 스릴을 좋아들 하니까요
암릉이 지루할 즈음 천년의 고찰 청평사에 닿습니다.
시원한 약수를 한바가지 마시러 가는 길에 윤회를 상징하는 회전문(보물)을
지납니다.
다시 한번 '사진 대형!' 산행을 마무리 지어야하니까요.
요즘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산행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산과 싸움이나 하려는 듯 앞사람 발 뒷쿰치만 바라보며 걷는
야간산행이나,
구간을 정해 놓고 그 구간을 짚어보는 목적산행... 이러니 산행기 적을 소재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산이 좋아 산에 들고 있으니, 아름답지 않다 산에 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무작정 걷고, 무작정 메모하고,
무작정 정리해 봅니다. 다만 나만의 앨범에...
한장한장 쌓여가는 앨범의 숫자만큼이나 산에 대한 내 사랑도 두터워만 갑니다.
다시 돌아온 일터는 힘들기만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열심히 일을 해야 또 다음 산행을 나설 수 있는 걸요.
어깨가 축 늘어져서 힘없이 걷고 있는 친구에게
'거치른 벌판을 달려 가자~~♬'
하면서 씨익 웃어주는 최민식이 나오는
TV의 선전광고가 생각납니다.
우리 살아가면서 내 맘대로 안될때..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서 길을 못찾고 헤맬 때
내 등을 토닥거려줄 친구가
있다면 우린 정말 외롭지 않겠지요?
내가 아는 모든 분들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그런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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