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이는 여름입니다.
모두가 떠나는 꿈을 꾸지요.
그냥 집에 눌러앉아 있기는 너무 아까운 계절이니까요.


연인이나 친구들과 함께
땀 뻘뻘 흘리며 높은 산을 오르거나, 드넓은 바다에서의 해수욕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깊은 산속 삼림욕이라도 한번쯤 시도해 볼만 할거고요.


여름은 장마의 계절이니 언제 빗방울이 거세질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방구석에서 뒹굴며 주말을 보내자니 왠지 억울하고….
비와 어울리는 나드리... 비안개 서린 산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숲길을 가득 덮는 빗소리, 몸을 부풀린 계곡물,
그리고 은은한 독경소리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맑게 해주지 않을까요?
한 주일 켜켜이 쌓인 속진 그산 한 귀퉁이 가만히 내려 놓고파 산을 찾았습니다.
마침 숲 우거지고 물 맑은... 거기다 삼학사란 고찰까지 낀 두타산을 찾았답니다.


얼굴이라도 보고싶다 대전서 올라온 아우님과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산 대신 룸사롱이나 가자는 유혹에도 내가 산을 선택함은 그만큼 산이 좋기 때문입니다.
산이 좋고, 사람이 좋으니... 이밖에 그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나의 해방구...


술에 폭삭 젖어 옆자리 아가씨의 미모도 눈에 들지 않습니다.
채 꿈틀거려보지도 못하다 눈을 뜨니 벌써 댓재에 도착했는 모양입니다.
어두운 하늘에 별자릴 찾을 순 없지만 그래도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으~ 추워... 산중 추위에 떨면서도 두리번거림은 비가 반갑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소망이 하늘에 닿았을까요?
산행 때마다 비를 몰고 다니는 분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으니까요.


밤길 랜턴 불빛 하나에 매달려 걷고 또 걸을 수 밖에 없습니다.
목통령 지나 두타산... 박달령 지나 청옥산...
그리고 연칠성령에서 그 긴 능선길을 접고 지루한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두타산 못미쳐 부지런한 산새가 안내하는 아침도 맞고...
청옥산 밑 칠십줄 할아버지께 오십이라 우김은 산이 주는 풍요가 전이되었음이 아닐까요?
거기다 더하여 어느 분이 주신 오리알이 배낭에 가득하고 또 양귀비 잎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계곡길은 울울창창 숲으로 덮여 있습니다.
수령이 수백년은 됨직한 소나무와 참나무는 서로 키재기를 하며 가지를 치켜들었고
제법 거센 물살이 휘도는 계곡 가장자리엔 수십번 홍수를 이겨냈을 법한 고목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한여름 땡볕이 아무리 기세등등해도
이런 고목이 드리우는 그늘에 들어서면 금방 서늘하게 풀이 죽습니다.
땡볕 가려준 구름에 산행내내 고마워했는데 갑자기 미워짐은 나 또한 평범한 인간이니까요.
고목 그늘이 있는 계곡에선 아무래도 땡볕이 제격 아닐까요?


앞쪽의 벼랑은 날카롭지만 산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습니다.
타박타박 걷기 좋은 코스. 계곡 옆 길이 시종 물길을 곁에 두고 걷게 하는군요.
그러나 그 코스와 궁합 안 맞는 등산화를 신은 난 미끄러움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큰 나무와 작은 숲은 울창해 원시림을 연상시키고, 산아래 벼랑과 벼랑 사이로
맑은 계곡이 흐르고, 눈을 들면 숲과 숲 사이로 푸른 하늘이 떠있습니다.
무릉계곡에서 바라본 세상은 이처럼 푸르디 푸릅니다


이름 모를 새 노랫소리 울려퍼지는 숲 그늘에서
파아란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은 비록 없지만 초여름의 한가함을 즐기고 싶습니다.
등줄기 서늘한 암반에 가만히 누워봅니다. 그리고 가만히 두눈을 감습니다.


그 고요의 명상은(낮잠?) 발랄한 세 아가씨의 깔깔거림에 끝나버립니다.
그래도 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음은
뼈속까지 시린 물속에 온몸 내 던진 그녀들의 싱그러움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린 두타산...  맑은 계루에 두 발 담그고
하루쯤 원시의 숲 드리워진 자연에 온 몸을 맡기면 바로 그곳이 유토피가 아닐까요?


그래서 이곳이 무릉도원에서 따온 무릉개라 불린답니다.


그 곳 한켠에 喜·怒·哀·樂·愛·惡·欲 내 七情을 가만히 내려놓고 돌아왔답니다.
무릉도원의 신선께 깨끗이 씻어 돌려달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