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산천이 변합니다. 아니 아침저녁으로...
갈색의 나뭇가지들은 이제 푸른 잎을 한껏 머금었습니다.
그야말로 신록(新綠)의 물결입니다. 그 물결은 청초하고 마냥 싱그럽습니다

 

청초하고 싱그러움을 호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조건 숲으로 드는 것입니다.
거기다 그 숲 옆으로 물 넘치는 계곡이라도 흐르고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사랑을 키워 가는 가정의 달... 하고도 어버이날...
비록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길을 나서지는 못하지만,
난 산으로 나섭니다. 푸르름을 더해가는 앙증맞은 새 잎이 꽃보다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꽃을 봐야 꽃을 그릴 수 있듯이, 산으로 들어야 연초록의 추억을 그릴 수 있을테니까요.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이 있다하여 찾아 나선 곳...
빗속에 도착한 주왕산은 아직 어둠에 묻혀 있습니다.
제법 샌 빗줄기를 피해 민박촌 입구 취사장에 자릴 잡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요.

 

어버이날 부모님께 재롱부리느라 한병, 조이님 아버님 기분 맞추느라 한병...
술에 취해 도착한 버스 속에서 또 한병... 제가 잠을 잤었나요? 술이 취해서 기억이 영~
아직도 술이 덜 깼지만 반주는 해야지요? 이번엔 와인으로... 아침부터 비몽사몽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산행입니다.
대부분의 산행에선 비가 오면 우선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본인은 비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소풍 나온 것일까요? 배낭은 어디다들 버렸는지 맨몸에 우산을 쓰고 있군요.

 

주왕산 입구... 두가지에 놀랍니다.
매표소의 요금표...와~ 3,500원이나 됩니다. 문화재 관람료가 많아서랍니다.
대전사에 뭐 볼만하게 있나요? 있다해도 산에 왔으니 문화재엔 관심이 없습니다.
문화재관람은 관심이 많은 사람이거나, 전문가 조언이 있을 경우에야 의미가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대전사 뒤쪽에 우뚝 솟은 암봉의 위세에 눌려 튀어나온 입술을 곧 오므리고 맙니다.
안개구름에 허리 아래를 감춘 모습이 한폭의 동양화입니다. 안개 아래로 내를 그려봅니다.
그리고 여백에 나룻배 한척 띄우고 난간에 걸터앉은 영감님께 낚싯대 하나 쥐어드립니다.

 

내원마을을 향해 계곡으로 들어섭니다.
오늘의 산행은 여태껏 경험했던 산행하곤 완전히 다릅니다.
계속 평지...길은 부드럽고 숲이 빽빽하니 훌륭한 산책로입니다.
계곡을 따라 아무리 올라가도 고도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땀이 날리 없는 신선 놀음입니다.
그럼 주변의 경치가 시시하냐고요?  기암 괴석이 즐비하고 계곡의 물소리는 싱그럽습니다.

 

잘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면 바윗덩어리들은 점차 커져 갑니다.
갑자기 물소리가 거세지고, 빗줄기에 가린 너머로 거대한 암벽이 보입니다.
그 아래 놓인게 제1폭포입니다. 계곡을 둘러싼 까마득한 절벽과 웅장한 바위들...
제2폭포...제3폭포... 물살에 팬 커다란 동굴들에 저절로 탄성을 지릅니다. 계곡미의 극치...

 

그러나 누가 폭포의 이름을 지었을까요? 
이리도 아름다운 폭포에 걸맞은 이름하나 지을 수 없었을까요? 싱거운 사람들...

 

구비 구비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천년 묵은 때를 벗겨 내듯 시원합니다.
비 때문에 매미소리. 새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폭포소리 하나만으로도 신선이 된 듯 합니다.
이른 아침이라 한적함까지...혹시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이 이렇지 않을까요? 고요와 평화...

 

내원동이라는 안내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보입니다.
얼마안가 허름한 민가가 보이고 곁에 조금 큰 낡은 건물이 있네요. 내원분교랍니다.
지금은 폐교가 되고 민박집으로 마지막 역할을 하고 있군요. 1박3식에 4만8천원입니다.

 

비싸다구요? 걱정마세요.
건물 앞에 "참 좋은 인연 입니다."라고 써진 판자가 원인?. 예약하기가 쉽지 않답니다.
안에 들어서니 고장난 풍금에 난쟁이 의자... 주인장이 난로에 장작불을 피워줍니다.

 

따뜻한 난로를 버리고 정상쪽으로 올라가봅니다.
솔방울을 맞히려면 달을 보고 쏘랬다고, 마을을 알려면 끝까지 가봐야 하니까요.
오르는 길목에 드문드문 초췌하지만 정겨운 민가가 있습니다.
집집마다 민박한다고 써 있는데, 과연 잠이 올까요? 전 "아니올시다"입니다.
냇가엔 물이 넘치고, 주변엔 밭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잡초만 무성합니다. 직업전환?
방아취라는 이름에 끌려 들어간 헛간(주인장껜 미안!), 아~ 써! 동동주로 행구어냅니다.

 

비 오는 날 숲길을 거닐면 누군가 뒤에서 따라 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곳을 다녀오면 뒤에 뭔가를 남겨 놓고 온 것 같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가슴에 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목, 쏟아지는 폭포소리에 넋을 잃습니다.

 

문화재 관람료가 아까워 들른 대전사 앞마당의 수국이 비가 무거워 고갤 숙이고 있습니다.
초입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암봉을 배경삼아 증명사진을 찍습니다. 물론 수국도 함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