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27코스(태평염전-증도면사무소)
여행일 : ‘23. 4. 8(토)
소재지 : 전남 무안군 증도면 일원
여행코스 : 태평염전→소금밭전망대→갯벌도립공원→대초마을→우전해수욕장→한반도 해송숲→짱뚱어다리→증도면사무소(거리/시간 : 14.3km/ 15.79km를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7코스를 걷는다. 10개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네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증도의 2/3정도를 느리게 둘러보는 코스다. 소금 창고가 가지런히 늘어선 태평염전에서는 작은 금덩어리들을 만나고, 광활하게 펼쳐지는 갯벌도립공원에서는 물이 빠지면 짱뚱어·농게·칠게 등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반도를 닮았다는 해송 숲(10만여 그루가 자란다)과 드넓은 갯벌 위로 내놓은 짱뚱어다리를 걷기기도 한다. 단 슬로시티라는 슬로건에 맞게 천천히 걷는 것은 필수. 그래야 숨겨진 보물들을 챙겨갈 수 있으니까.
▼ 들머리는 태평염전(신안군 증도면 대초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지도’로 들어온다. 지도사거리(지도읍 읍내리)에서 805번 지방도로 옮기면 ‘송도’와 ‘사옥도’를 거쳐 ‘증도’로 들어간다. 잠시 후 유명관광지가 부럽지 않은 ‘태평염전(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360호)’에 닿는다. 시작점 표지판은 염전의 입구, 슬로시티를 홍보하는 안내판 기둥에 매달려 있다.
▼ 증도는 느리게 둘러보는 섬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섬답게 모든 것이 더디게 흘러간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멀다. 태평염전은 국내 최대 규모(여의도 면적의 2배란다)고,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갯벌도립공원은 바다를 향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한반도를 닮은 숲도 해송이 10만 그루가 넘고, 짱뚱어를 형상한 목교도 472m나 바다를 가로지른다. 주어진 시간은 빠듯한데 어떻게 느릿느릿 걷느냐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어갈 수 있는 것을...
▼ 길을 나서기 전 염전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 그럼 초입에 세워놓은 ‘태평염전 100배 즐기기’ 안내판부터 살펴보자. 박물관에서 시작해 염생식물원·천일염결정지·소금가게 등을 거친 다음 소금동굴체험에서 끝나는 총 10개 코스로 이를 모두 둘러볼 경우 행복이 백배로 불어나게 된다나?
▼ 입구 왼편에는 초창기의 창고(석조)를 전시관으로 단장해놓은 ‘소금박물관’이 있다. 소금의 역사·문화는 물론이고, 미네랄과 천일염 등 소금에 대한 유익한 정보와 소금 장인들의 일상과 천일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지만 시간이 없어 들어가지는 못했다. 박물관 옆에 있다는 체험장은 아예 둘러보지도 못했다. 장화를 신고 고무래로 대파질을 하는 과정이야 TV에서 자주 봐왔으니 그 정도면 되지 않겠는가.
▼ 맞은편에는 소금향을 간직한 ‘솔트카페(Salt Cafe)’가 있다. 예전 소금을 배로 실어 나르던 항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카페로, 중도의 소금을 외지로 실어 나르던 항구의 기억을 간직한 추억의 장소이자 기억의 공간이라 하겠다. 카페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솔티미네랄라떼’와, 소금아이스크림, 함초쿠기 등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커피의 향은 살리고 쓴맛은 줄인 커피와 소금의 달콤한 어울림, 커피의 향긋함과 천일염이 품은 미네랄의 조화가 ‘솔티미네랄라떼’ 한잔에 가득히 녹아있단다.
▼ ‘소금가게’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중의 하나다. 특히 증도 지역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모래가 적은 ‘진펄’로 최고 수준의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태평염전에서 나오는 천일염은 바닷물, 양수와 유사한 미네랄 성분비로 자연의 밸런스와도 가깝다. 또 대표적 염생식물인 함초를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생산한 소금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 ‘소금전망대’로 가는 길목에서는 ‘소금아이스크림’과 ‘함초차’도 판다. 꼭 맛봐야 하는 신안의 대표 먹거리이자, 딴데 가면 안 판다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6년쯤 전 로마에 갔을 때도 저런 상술에 홀려 ‘젤라또’를 사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 이제 ‘염생식물원’에 들어가 볼 차례다. 참고로 태평염전은 1953년 6·25전쟁 후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고 소금생산을 늘리기 위해 조성된 염전이다. 전증도와 후증도를 둑으로 연결하고 그 사이 갯벌에 조성됐다. 동서 방향으로 긴 장방형의 1공구가 북쪽에, 2공구가 남쪽에, 남북 방향으로 3공구가 있다. 이후 정부가 민간사업자에게 영업권을 넘기면서 몇 차례 염전의 주인이 바뀌었다.
▼ 염생식물원(鹽生植物園)은 갯벌 미네랄을 먹고 자라는 건강한 염생 식물들이 군집을 이루는 곳에 조성했다. 바다의 홍삼으로 알려진 함초(퉁퉁마디)를 비롯해서 겟메꽃·해당화·칠면초 등 100여 종의 식물들이 이곳에서 생장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안내판을 읽으며 220미터의 목조 관찰데크를 걸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새로운 앎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신안 문인들의 작품을 읊조려보면 될 일이고...
▼ 때는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었다. 5일만 지나면 천지가 상쾌하고 맑은 공기로 가득해진다는 청명(淸明). 그래선지 함초(퉁퉁마디)와 칠면초로 붉게 물들어있어야 할 갯벌은 거무티티한 자색으로 퇴색해버렸다. 함초와 칠면초는 염분이 있는 갯벌과 습지에서 생육하는 한해살이풀로 생장 초기에 녹색이었던 함초는 가을이 되면 붉은색으로 바뀌고 칠면초의 꽃은 8~9월에 펴 차차 자주색으로 변한다.
▼ ‘소금밭낙조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전망대로 연결되는 나무계단 옆에 ‘서해랑길 신안 27코스’의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 나무계단에 이어서 나타나는 통나무계단. 지자체는 계단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나 보다. 중간 중간에 올라온 계단의 숫자와 소모한 칼로리를 적은 안내판을 세웠다. 감소된 스트레스의 양과 연장된 수명을 숫자로 적었다. 전망대까지 오르면 10분을 더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초입에서 6분.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이면 ‘전망대’에 올라선다. 증도가 세계슬로시티로 지정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태평염전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버지봉’의 능선, 해발 50m 높이의 구릉지에 세워져 있다. 2007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증도를 아시아에서 처음 슬로시티로 지정하며, 인류의 생명을 위해 갯벌 염전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그 가치를 인정했단다.
▼ 전망대에 서자 태평염전과 염생식물원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바둑판처럼 연결된 소금밭에 세모난 지붕 창고들이 쭉 늘어섰고, 그 뒤로 바다가 이어지는 아득한 풍경이다. 그러자 ‘슬로시티’의 한 템포 더딘 심호흡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온다. 참! 오른편 저 어디쯤에는 증도대교가 놓여있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을 나몰라하며 빠르게 오가는 차들로 넘쳐나는...
▼ 다시 길을 나설 차례, 하산은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이번에는 침목계단이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로 연결해준다.
▼ 도로로 내려서자 샛노란 유채 꽃밭이 길손을 반긴다. 유채꽃은 봄을 알리는 얼굴마담. 2월 무렵 꽃망울을 열기 시작해 4월이면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노란빛 꽃구름에 안긴 인생 사진을 찍기에 딱 좋은 시기이라 할 수 있겠다. 참! 꽃밭의 둑을 따라 ‘모네의 연인길’도 나있었다. 안내판은 앞서가는 연인(까미유)을 불러 뒤돌아보는 그녀와 아들 장의 모습을 그린 ‘모네(프랑스의 인상파 창시자)’처럼 함께 간 이를 부른 다음 이 장면을 인생사진으로 남겨보라고 권한다.
▼ 탐방로는 이제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를 따른다. 3공구(염전)의 소금창고(목조)를 옆구리에 끼고 걷다보면 생각 없이 스쳐 지나던 염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세월에 빛바랜 나무 창고와 소금을 싣고 오가던 수레(플라스틱 수레로 바뀐 게 조금 아쉽지만)가 낯설게 다가선다. 하나 더, 저 창고 가득 쌓인 천일염은 한때 천시 받던 염부들의 땀방울로 얻어낸 귀한 결과물이다. 국내 생산 천일염 가운데 6%가 이곳에서 나온다.
▼ 창고 뒤로는 3공구의 증발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저곳에서 생산되는 갯벌천일염은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소금의 0.1%에 불과한 희소한 보물이라고 한다. 미네랄이 풍부해서 쓴맛이 없고 단맛을 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보다도 우수성을 인정받는단다. 게랑드 소금보다 칼륨은 3배, 마그네슘은 2배 이상 많다는 것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40분. 탐방로는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와 헤어져 왼편 ‘돌마지길’로 들어선다. 이어서 ‘돌마지’ 마을을 경유해 바닷가로 간다.
▼ 예로부터 전남지방 해안가에는 ‘건정’이라 불리는 생선이 있었다. 우럭·돔·참조기 등을 손질하고 염장한 다음 해풍과 햇볕에 말리면 ‘건정’이 된단다. 내 어릴 적, 심심산골의 양반가 종갓집이던 우리 제사상에 올라가던 생선이다. 아니면 귀한 손님이 올 때나 꺼내 양념을 해서 구워먹거나 탕으로 해서 먹었을 정도로 귀하디귀한 생선이었다. 그걸 신안지역에서 재현하여 ‘신안 건정 하늘물고기’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단다. ‘시간이 말린 생선의 맛’이란 너스레를 떨면서... 직판에 체험까지 더한다기에 잠깐 들러보고도 싶었지만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니 어찌할꼬?
▼ 그렇게 몇 14분쯤 걷다보면 기다란 방조제로 올라선다. 왼쪽 답사도(kakaomap의 지명)와 오른쪽 대술웅도를 잇는 긴 방조제이다. 이때 대술웅도(지금은 육지)와 화도·석섬 등이 조망된다.
▼ 왼편으로는 신안의 자랑거리인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유네스코(UNESCO)는 저처럼 아름다운 섬과 갯벌 그리고 염전으로 이뤄진 신안군의 해양환경을 ‘신안 다도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 오른편은 간척사업이 만들어놓은 들녘, 그곳에는 ‘대하양식장’이 들어섰다. 1997년 우루과이라운드 발효를 계기로 산업자원부는 폐 염전정책을 시행한다. 수입소금이 들어오면서 서해안에 산재하던 천일염 생산지도 급격히 줄게 돼 신안·영광 등 일부 서남해안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당시 염전을 그만둔 사업자들이 새롭게 시작한 것이 대하양식장이다. 정부는 그런 이들에게 시설자금을 지원했었고...
▼ 800m쯤 되는 방조제의 끝(‘대술웅도 해변길’ 입구)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 그런데 서해랑길의 주황색 방향표시가 양 방향 모두를 가리키니 문제다. 코너에 세워놓은 ‘수릉섬 길’ 이정표(덕정마을/ 돌마지마을/ 화도마을)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 그 해답은 방조제에 붙여놓은 안내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왼쪽 해안으로 가는 방향이 정규 코스인데, 만조 등 기상악화 때는 오른쪽 산 아래 길로 우회하라는 것이다. 하나 더, 어디로 가다라도 ‘대술웅도’를 반 바퀴 돌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 썰물 때이니 망설일 일도 없다. 냉큼 바닷가로 내려서 물 빠진 갯벌을 걷는다. 그리고 대술웅도의 해안을 돌아 ‘화도 노두길’로 간다.
▼ 잠시 후 ‘화도’로 들어가는 ‘노두길’로 올라선다. 노두는 개펄 위에 돌을 놓아 건너다니던 징검다리다. 바다와 바다 사이에 어민들이 다닐 수 있게 만든 통로로 물이 차면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화도 노두길은 의젓한 도로(그것도 2차선)다. 두 차례 확장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단다. 밀물 때면 지금도 바닷물 속에 잠긴다고 해서 아직까지 ‘노두길’로 불린다나?
▼ 초입에는 ‘신안 섬 자전거길’ 안내판(스탬프보관함과 함께)이 세워져 있었다. 장혁과 공효진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안내판도 보인다. 수혈 실수로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와 그의 엄마인 미혼모 연신의 이야기가 마음 아프게 또는 따스하게 그려진 드라마였었다.
▼ 2013년 증도 일원은 신안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면적은 144.0㎢(육지 0.737, 해면 143,263).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대한민국 서남해안 갯벌의 생태적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체계적인 보존과 지속가능한 이용 도모한다는 목적에서다. 그나저나 ‘마음을 다스리는 산행’의 저자 이석암선생의 말처럼 저 조형물의 색깔이 조금 밝은 색이면 어땠을까?
▼ 길이가 1200m에 이른다는 노두길 너머로 ‘화도’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섬의 모양이 바다 위의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마을에 해당화가 가득하다는 섬으로, 국립해양조사원에서 2021년 ‘바다 갈라짐’의 명소로 추천했던 섬이기도 하다. 하나 더, ‘고맙습니다’의 영신과 봄이가 살던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시간을 쪼개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화도 전체가 일몰의 명소로 알려져 있으니 해넘이 시간에 맞추면 더 좋겠고...
▼ 갯벌은 온통 구멍투성이다. 짱뚱어, 칠게, 농게 등 갯벌 생물들이 들락거리면 뚫어놓은 삶의 현장이자 생명의 길이다.
▼ 조금 더 돌면 공중화장실이 있는 갈림길(아까 헤어졌던 우회로와 만난다). 탐방로는 이곳에서 바닷가와 헤어진다. 그리고 오른쪽의 들녘을 돌아 ‘덕정마을’로 간다.
▼ 들녘을 지난 다음 나지막한 언덕을 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덕정(德鼎)’ 마을이 놓여있다. 법정 동리인 대초리를 구성하고 있는 5개 자연부락(대초·덕정·화도·등선·장고) 중 하나로 전증(일명 앞시루)과 후증(일명 뒷시루)이 있어도 솥이 없으면 물을 담을 수 없다 하여 ‘솥 정(鼎)’자를 붙여 덕정이라 하였단다.
▼ 이 마을은 ‘순흥 안씨’의 집성촌인 모양이다. 문중 세장산(世葬山)을 마을 앞에 놓고, 반듯하게 지어진 찬성공파 사당과 추모관을 배경으로 삼았다.
▼ 경로당 외벽에서 마을 주민들의 행복한 표정을 읽는다. ‘행복이 내린다’니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참! 잘 왔어요’라는 문구도 보인다. 자신들의 행복을 길손들에게도 나누어주겠다는 얘기겠지?
▼ 덕정마을을 빠져나오면 805번 지방도, 탐방로는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 다음 150m쯤 도로를 따른다. 대초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대초(大棗)’ 마을을 앞에 두고 걷는 모양새이다.
▼ 탐방로는 대초마을을 스치듯 지나간다. 이때 마을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대초리교회’가 눈길을 끈다. TV의 해외여행 코너에서나 볼 법한 기괴한 생김새다. 인도네시아 편에서 본 건물을 쏙 빼닮았는데, 한국전쟁 때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가 3번째로 개척한 교회라고 한다. 한국철도의 국내기독교 유적지를 둘러보는 ‘기독교 성지순례 탐방 열차’ 코스에도 포함된 교회라고 한다.
▼ 마을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언덕을 넘어간다. 이어서 805번 지방도를 가로지르면서 바닷가로 나아간다.
▼ 이 구간에서 난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을 만났다. 사진 전문가들 사이에서 떠돌던 얘기. 즉 개개로는 보잘 것 없지만 무리지어 피어날 때는 그 어느 꽃보다도 아름답다는 한국 야생화 꽃밭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곳이다. 먹는 나물로만 알았던 냉이가 저렇게도 예쁜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50분. 우전방조제(신산경표에서 옮긴 지명)로 올라선다.
▼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태양광발전소’. 그런데 패널이 씌워져 있지 않은 건 무슨 이유일까? 정권이 바뀌면서 신·재생에너지가 뒷전으로 밀려났는지도 모르겠다.
▼ 왼쪽은 드넓은 갯벌. 물 빠진 바다지만 다도해의 풍광을 여실히 보여준다. 화도를 위시해 석섬·가운데섬·끝섬·비겨섬·갈매섬 등 수많은 섬들이 바닷물이 아닌 갯벌에 둥둥 떠다니는 풍경이 극히 이질적이다.
▼ 증도의 봄은 노란색일 수도 있겠다. 유채꽃이 저 드넓은 들녘을 온통 샛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증도의 유채꽃은 최근에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게 올해는 더 늘어났나보다.
▼ 방조제를 빠져나오다 잠깐 헤매기도 했다. 서해랑길의 특징은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도 갈림길이 많다보니 가끔은 헷갈릴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놓친 표식을 다시 확인해보는 편이 낫다. 리본 등의 표식이 하도 촘촘히 세워져 있어 금방 옳은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제방을 빠져나온 탐방로는 농로에서 방향을 꺾어 우전마을 방향의 숲속으로 들어선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우전(羽田)’ 마을(사진은 우전해수욕장 주차장)로 들어선다. 예전에는 기러기 떼가 한 겨울을 지내고 간다 하여 ‘깃밭(일명 길밭)’이라 부르다가 언제부턴가 우전으로 변했다.
▼ 우전해안에는 ‘갯벌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지상3층(지하1층)의 규모로 국내 최대이자 최초의 갯벌생태 교육공간이라는데 어찌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2006년 개관한 박물관에서 우린 갯벌의 탄생과정과 우리나라 갯벌의 모습, 갯벌에 사는 여러 생물들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영상실에서는 신안군의 아름다운 섬과 갯벌에 대한 홍보영상물을 수시로 상영한다.
▼ 박물관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호남 수석전시관’도 들어가 보자. 증도 출신인 전호남씨가 한 평생 모아온 수석 671점을 기증함으로써 만들어진 소중한 공간이다.
▼ 전시관에는 그가 기증한 수석 300여 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었다.
▼ 박물관을 빠져나오면 ‘우전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푸른 해송 숲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4km나 되는 드넓은 은빛 백사장이 자랑거리인 해수욕장이다. 파란 바다와 숲의 정취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 우전해수욕장은 증도의 대표적 해변이다. 백사장 길이가 무려 4km가 넘는다. 백사장의 모래는 아주 하얗고 가늘다. 결이 고운 밀가루가 이렇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천연규사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닷물의 깊이도 적당하단다. 특히 짚풀로 만든 비치파라솔은 동남아 휴양지 같은 이국적 풍경을 선사한다. 여름 시즌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일 것이다.
▼ 왼쪽을 바라보면 유럽의 근사한 리조트를 쏙 빼닮은 건물들이 보인다. ‘엘도라도’라는 전망이 좋은 리조트이다. 엘도라도는 보물섬·황금도시를 뜻한다. 낙조와 일출을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꽤나 유명세를 탄다는데, 모든 객실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오션 뷰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 인간의 이기주의가 빚어낸 아픈 상처도 엿볼 수 있었다. 피서객을 위한 시설물들이 물의 흐름을 바꿨고, 그 물길은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파먹어간다.
▼ 이젠 해수욕장의 배후 숲을 걸어볼 차례다. 한반도 속 또 하나의 작은 한반도를 이룬, 해송 숲속에 내놓은 ‘천년의 숲길’은 증도여행의 필수 코스다. 이 구간은 증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모실길’의 제3코스인 ‘천년의 숲길’이기도 하다. ‘갯벌박물관’에서 ‘짱뚱어다리’까지로 그 거리가 총 4.6km에 이른다.
▼ 숲길 초입에 ‘철학의 길’이라는 문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슬로시티’이니 느릿느릿 느림의 미학은 기본. 거기에 사색을 즐기며 걸어보라는 모양이다. ‘천년의 숲길’은 백사장의 뒤편으로 나있다. 때문에 발이 푹푹 빠지기도 하지만 낭만이 넘치는 길이다. 이런 길은 짱뚱어다리까지 4Km나 이어진다. 그렇다고 이 모든 길을 완주할 다 필요는 없다. ‘모실’은 마을을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마실’과도 같은 뜻이다. 그러니 모실길은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가듯’ 걸어야 한다. 마음 내키는 곳에서부터 원하는 곳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며 경치를 즐기면 그만이다.
▼ 잠시 후 이번에는 ‘망각의 길’이란 문이 길손을 맞는다. 뭘 잊으라는 얘기일까? 그나저나 사목사목 걷다 보면 어느새 한껏 여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도시의 삶에서 오염됐던 ‘시간’이 비로소 본래대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 이곳 증도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이런 곳에서까지 발걸음을 제촉할 이유는 없다. 모처럼 ‘느림보의 미학’을 쫒아보자. 그러다 포토죤이라도 만나면 인생샷 하나 건지면 될 일이고...
▼ 느리게 걷기의 방점은 우전해변에서 만나는 일몰이라고 했다. 저 플라스틱 의자가 그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서해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를 주워 담기 딱 좋은 곳에 누군가가 가져다놓은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 우전해변 중간쯤에서 만난 백사장. 모래가 유독 고운 저 백사장은 썰물 때면 개펄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개펄은 마사지를 즐기기에 적합한 성분들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해서 매년 ‘게르마늄갯벌축제’까지 열린단다.
▼ ‘별자리 보기 체험장’은 등받이벤치까지 갖추었다. 지극히 편한 자세로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라는 배려일 것이다. 그 많은 별자리들을 무슨 수로 아느냐고? 벤치 옆에 계절별 별자리를 그린 안내판을 세워두었으니 그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 길가 곳곳에는 시비(詩碑) 등 읽을거리까지 챙겨놓았다. 나무 사이로 내다보이는 바다를 감상하며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비(사진은 이해인 수녀의 ‘바다일기’)에 적힌 시들을 읽어보기도 한다. 이런 재미가 있어 사람들은 트레킹에 열광하는가 보다.
▼ 지자체는 걷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라며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모래의 입자가 밀가루처럼 고우니 맨발로 걸어보란다. 저런 숲길은 걷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다. 바람결에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그득하다. 건강한 기운으로 충만한 초록색 숲길에 기분 좋은 솔향까지 보태진다. 이런 게 바로 힐링(healing)이 아니겠는가.
▼ 우전해안이 끝나갈 즈음 바닷가로 내려가 봤다. 그리고 바닷가를 따라난 길을 따라 짱뚱어다리로 간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으나 모래의 유실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방사제(말뚝을 일렬로 박았다)가 눈길을 끌고 있었다.
▼ 우전해안의 끝은 ‘짱뚱어해수욕장’이 장식한다. 널따란 주차장은 물론이고 해수풀장·샤워장·몽골텐트촌·야영장 등 편의시설을 두루두루 갖춘 명품 해수욕장이다. 하지만 5년 전 들렀을 때 눈여겨봤던 ‘와싱톤야자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당시에도 대부분이 죽어가고 있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20분. ‘짱뚱어다리’는 광활한 갯벌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든다. 나무와 철재로 만든 이 예쁜 다리는 다리 아래에서 짱뚱어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바닷물이라도 빠져나가면 갯벌 위로 새겨진 굽이굽이 흐르는 물곬을 눈으로 쫓으며 어슬렁어슬렁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나?
▼ 다리 아래로 물이 넘실거리는 걸 보면 물때를 잘 맞춘 모양이다. 바닷물이 가득한 만조(滿潮) 때 찾아와야 ‘짱뚱어다리’의 진면모(眞面貌)를 제대로 볼 수 있다니 말이다. 마치 바다 위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말이다. 바닷물이 빠졌다고 해서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단다. 배를 드러낸 갯벌에서 이곳 증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갯벌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초입에 커다란 조형물(造形物)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먼저 ‘2위’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만들고, 그 아래에 ‘1004’라는 글자모양을 배치했다. 이곳 증도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100선’에서 두 번째로 꼽힌바 있다. 또한 증도는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천사의 섬’ 신안군에 소속된 하나의 섬이다. 고로 저 조형물은 천사의 섬 증도가 한국인들이 두 번째로 가보고 싶어 하는 섬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증도는 CNN에서 선정한 ‘외국인들이 꼭 가봐야 할 50곳’에도 뽑힌바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 다리로 오르기 전, 읽어볼 게 하나 더 있다. 입구에 세워놓은 빗돌들인데, 이곳 증도에 살고 있는 각종 생물들을 빠짐없이 비석에다 새겨놓았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과 같이 알고 나서 해변을 걷는다면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사시사철 관광객이 몰려드니 푸드 트럭 하나쯤 어찌 없겠는가. 아니 냉장고에 비치파라솔까지 갖춘 의젓한 간이식당이다.
▼ 짱뚱어다리는 철제구조에 나무널판을 댄 모양새다. 만조 때 이 다리에 서면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들고, 썰물 때는 갯벌 생명체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갯벌에서 2m쯤 위로 놓인 다리를 걷다가 중간에 갯벌로 내려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중간지점 두 곳에는 섬 모양의 갯벌 관찰대도 만들었다.
▼ 오늘처럼 물이 차오르지 않는다면 갯벌체험은 다리에 올라서자마자 시작된다. 짱뚱어다리 주변, 즉 우전해변 북쪽 끝에 약 429만㎥(128만평)의 갯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갯벌을 탐방할 수 있도록 갯벌 위에 놓은 다리가 증도의 명물로 자리 잡은 ‘짱뚱어다리’인 것이다. 다리를 따라 걸으며(조망대도 따로 만들어두었다) 칠게·농게·짱뚱어 등 다양한 갯벌 생명들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 툭 튀어나온 저 부분이 ‘짱뚱어’의 머리쯤 되겠다. 짱뚱어는 눈이 툭 튀어나온 철목어(凸目魚)로 머리는 크고 그 아래는 납작하다. 옛날 어린 시절 눈이 왕방울 만하게 튀어나온 친구 녀석들을 ‘짱뚱어’라고 놀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짱뚱어의 머리 부분을 지금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 다리에서면 증도의 자랑거리인 갯벌(지금은 물이 넘실거리지만)을 실컷 볼 수 있다. 길이 472m의 짱뚱어다리는 128만 평이나 되는 저 갯벌을 가로지른다.
▼ 뒤돌아보면 한반도를 닮았다는 해송 숲의 절반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으로부터 약 50여 년 전 증도 사람들은 북서풍(모래날림)을 막기 위해 우전리 해변에다 소나무(곰솔 또는 해송이라고도 부른다)를 심었다고 한다. 방풍림(防風林) 및 방사림(防沙林)의 용도다. 이 숲이 울창해지면서 그 모습이 한반도의 지형을 빼다 닮아 증도의 명물이 되었다. 그리고 저 숲은 ‘한반도 해송공원’이란 예쁜 이름까지 얻었다. 또한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인 ‘공존상’을 받기도 했다.
▼ 다리 건너에도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다리를 암시하는 ‘짱뚱어’ 조형물. 그 옆에는 증도에 명품 자전거길이 나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자전거 조형물을 커다랗게 만들어 놓았다. 이름도 생소한 ‘순비기 전시관’도 눈길을 끈다. 순비기(herb)는 바닷가 모래땅에서 넝쿨을 뻗으면서 자라는 허브라고 한다. 증도면에서는 순비기로 천연염색을 해서 스카프나 베개 등을 만들어 팔고 있단다.
▼ 앗! 우리 동네가 왜 이곳에? 함께 걷던 일행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수인 ‘강남’이 이곳 증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단다.
▼ 철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특산품판매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뭐라도 하나 살까 기웃거리다가 그만 둔다. 5년 전 형제들과 함께 진도를 찾았을 때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산품이라는 (건조)톳을 사서 형제들에게 나눠줬는데, 집에 와서 먹어보니 톳이 아니라 미역 자른 것이었으니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그게 우리 집 하나였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 특산품 판매장을 지나면 섬이 아닌 듯 섬인 증도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섬답지 않게 너른 들녘이 펼쳐지는 것이다. 탐방로는 이 들녘을 지나 증도면사무소로 간다.
▼ 종점이 코앞. 주어긴 시간까지 30분 정도가 남았으니 먹거리를 찾아볼 자투리시간이 생겼다. 마침 이곳 증도는 ’짱뚱어탕‘으로 유명하지 않겠는가. 맛집으로 소문난 ‘안성식당’에서는 반주로 ‘낚지볶음’까지 추가할 수 있단다. 그런데도 독감과 헤어지지 못하고 빌빌대는 형우군은 술도 없는(독감 때문에 술은 엄두도 못 낸단다) 안줏거리가 웬 말이냐며 손사래를 치는 게 아닌가. 술 없이 짱퉁어탕이라도 먹으면 될 일을 고집이라니...
▼ 날머리는 증도면사무소(신안군 지도면 중동리)
마을을 지나면 상정봉(127m) 앞 비탈진 언덕에 걸터앉은 ‘증도면사무소’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핸드폰의 앱은 15.79km를 찍는다. 구간 전체가 평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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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오백리길 16구간(벌랏한지마을 길)
여행일 : ‘23. 4. 1(토)
소재지 : 충북 보은군 회남면 및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일원
여행코스 : 회남면사무소→남대문교소공원→남대문리→거구리→325봉→벌랏한지마을→소전교삼거리(거리/시간 : 10km, 실제는 ‘거신교삼거리’부터 10.48km를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대청호(大淸湖)는 ‘전국 3대 호수’ 중 하나로 2개 광역(대전·충북)과 5개 기초(대전 대덕구·동구, 청주시·보은군·옥천군) 자치단체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도 무려 ‘500리’나 된다. 이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지는데, 그 야산과 호숫가·자연부락·소하천·옛길 등을 둘레길로 이은 다음 ‘대청호 오백리길(220km을 21개 구간으로 나누었다)’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은 열여섯 번째 구간인 ‘벌랏 한지마을 길(10km)’을 걷는다. 이 구간은 브랜드가 된 ‘벌랏 한지마을’에서 한지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다. 사담길에서는 아름다운 대청호 풍광까지 눈에 담는다. 하지만 가파른 산봉우리를 3개나 넘어야하는 버거운 여정이기도 하다.
▼ 들머리는 거신교 삼거리(보은군 회남면 거구리)
당진-영덕고속도로(청주-상주) 회인 IC에서 내려와 571번 지방도를 타고 문의·대전 방면으로 6km쯤 내려오면 회인천을 건너기 직전 ‘거신교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16구간의 공식 시점은 회남면사무소이나 지난 15구간을 이곳에서 마쳤기 때문에 출발지를 변경했다.
▼ 오늘도 부부의 출발지를 따로 잡았다. 2km쯤 전방에 위치한 ‘남대문 소공원’에서 집사람을 출발시키고 내가 쫒아가는 형식이다. 기껏해야 10km 밖에 되지 않는 구간이지만, 300m 내외의 산봉우리를 3개나 넘어야 하는 난이도가 집사람에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 이정표(회남면사무소 0.4㎞/ 분저리 7.1㎞)가 가리키는 회남면사무소 방향(서쪽)으로 걸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참! 행장은 삼거리 근처 주차장에서 꾸리면 되겠다.
▼ 첫 만남은 ‘거신교’. 2차선 도로가 ‘회인천’을 가로지르는데, 그 왼편에 보행자만의 길을 따로 내놓았다. 참고로 다리 건너 거교리(巨橋里)에는 것다리(‘거교’라는 지명의 원천으로 큰 다리가 마을 앞에 있었다고 한다)·날방·멱골·본말·사당마루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이중 멱골·본말·사당마루는 대청댐 조성과 함께 수몰됐다.
▼ 다리 아래로는 대청호가 널찍하게 펼쳐진다. 아니 금강의 지류인 회인천(懷仁川)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피반령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 이곳(거교리)에서 금강 본류(대청호)로 흘러든다.
▼ 다리를 건너면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직진은 ‘거교리’를 횡단하는 지방도(회남로)이고, 가운데는 거교리의 마을 안길로 이어준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선답자의 ‘GPX 트랙’은 대청호반을 따라 난 ‘데크로드’를 따르란다.
▼ 하지만 난 가운데 길을 따라 마을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문득 벽화로 가득한 골목길을 만날 수 있다는 어느 르포기사를 떠올렸었기 때문이다. ‘민화’란 이어져 내려오는 생활상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일상생활 양식이나 관습 등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민속적인 내용을 그려왔다. 그러니 부담 없이 감상만 하면 될 일이다.
▼ ‘이 뭐꼬!’ 옛 풍경 속에 요즘 옷차림의 여인이 등장하다니. 맞다. 민화에는 경계가 없다고 했다. 자연경관·생활풍속·장수·흥복은 물론이고 종교에 대한 믿음까지 모든 것을 아우른단다. 그러니 옷차림보다는 아이를 달래고 있는 어미의 마음이 되어 그림을 감상해 보자.
▼ 끌고나온 소가 꼴을 먹거나 말거나, 꼬맹이들에게는 남의 집 불구경이다. 하루가 멀다않고 만나겠건만 주고받을 말이 무에 그리 많을꼬? 참! 충청도 처자들은 소에게 꼴까지 뜯기는가 보다. 소를 몰고 나온 처자가 다른 벽화에 떡하니 등장하는 걸 보면 말이다.
▼ 새참으로는 막걸리만한 것도 없었을 게다. 안주 그릇도 안 보이건만, 불콰하게 달아오른 농부는 왕골을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서 팁 하나! 민화는 내용에 따라 화조도(꽃과 새)·어해도(물고기)·호작도(호랑이·까치)·십장생도(장수를 뜻하는 동식물)·산수도(자연경관)·풍속도(생활상)·고사도(옛이야기)·문자도(글자)·책가도(책·문방사우)·무속도(종교적 내용) 등으로 나뉜다.
▼ 민화에는 순수하고 소박하며 솔직한 우리 민족의 정서가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자연에 대한 사랑, 웃음을 잃지 않는 익살과 멋이 배어 있다. 물고기를 꼬드기고 있는 저 어부들의 몸짓에도 그런 익살이 배어있다.
▼ ‘⼖’자 모양으로 마을을 돈 다음 화장실(옛 차림의 처녀총각이 안을 기웃거리는 그림이 웃음을 자아낸다)에서 호반으로 내려선다. 이어서 대청호반에 내놓은 데크로드를 따른다.
▼ 최근 날씨가 확 풀렸다. 지난 주말, 10여 일의 ‘그리스’여행에서 돌아오니 흡사 여름에 가까워져 있었다. 날씨가 풀리면 어부의 손길은 바빠지는 법.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어부의 손길은 바쁘기만 하다.
▼ 호반을 따라 내놓은 이 길은 ‘사담길’로 불린다. 옛 사람들은 나지막한 산 고개 끄트머리를 ‘날방’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날방 주변은 지금 대청호반을 따라 산책길이 조성됐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거교리로 편입된 고을(사담리)의 옛 지명을 살리기 위해 사담길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 사담길은 그다지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름의 볼 것은 다 갖췄다. 드넓게 펼쳐지는 호반은 기본.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는 물론이고, 작은 쉼터도 두어 곳 마련했다.
▼ 요런 작은 나루터도 만날 수 있다. 대청호를 일터로 삼아 살아가는 주민들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나루터로 내려가면 대청호의 작은 흐름까지 눈여겨 볼 수 있다.
▼ 비닐 망(網)으로 둘러싸인 터널도 사담길의 한 축을 담당한다. 벚꽃 등의 봄꽃이 흐드러진 지금이야 저렇듯 삭막하지만, 넝쿨식물이 물을 만나는 여름철이면 사담길의 제왕은 이곳이 되지 않을까 싶다.
▼ 거교리 선착장은 바닷가가 부럽지 않은 규모다. 꼬맹이 어선 예닐곱 척이 묶여있는 시멘트구조물 말고도, 부교(浮橋) 형의 선착장까지 따로 만들어 놓았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0분. 571번 지방도로 올라서니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반긴다. 충청도 사람들이 세계 제일로 치켜세우는 ‘벚꽃길’이 아닐까 싶다. 571호선 구간이 포함돼 ‘회인선 벚꽃길’로 불리어오다가, 최근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로 이름을 바꾼 길이가 무려 26.6km에 달한다는 그 명품 둘레길 말이다.
▼ 벚꽃 향기에 취해 5분쯤 걷다가 왼편 언덕으로 오른다. 그리고 회남면수몰유래비와 탑을 만났다. 맞다. 이곳 회남면은 대청호 수몰지역으로 유명하다.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많은 마을들이 물속에 잠겼고, 나머지 마을들도 삶의 근거지를 대부분 잃었다. 그 과정에서 면소재지도 신곡리에서 거교리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언덕에서 내려오면 널따란 주차장에 화장실까지 갖춘 ‘남대문 공원’이 반긴다. 회남면의 ‘녹색장터’가 열리는 곳이다. 도농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토·일요일 열린다는데 밴드까지 동원돼 흥을 돋우던 지난번과는 달리 조용히 손님을 맞고 있었다.
▼ 이번에는 스치듯 장터를 지나쳤다. 구입한 물건을 짊어지고 산을 넘을 형편이 못되어서다. 구경을 했다고 해도 구입했을지는 의문이다. 녹색장터는 주민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판다는 슬로건을 내건다. 하지만 전에 살펴본 바로는 우리 동네 할인마트보다 조금 더 비쌌다.
▼ ‘남대문 유래비’는 ‘남대문’이란 지명의 내력을 적고 있었다. 둘레가 2.722m쯤 되는 호점산성(虎岾山城)의 남문 밖에 있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그밖에도 산성의 역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었다.
▼ 호반에는 수질정화를 위한 ‘인공 수초섬’이 떠 있었다. 수초섬 주변에 부교(浮橋)를 띄워 학생들의 자연생태학습장으로 활용한다는데, 그런 시설은 눈에 띄지 않았다.
▼ ‘남대문교’는 물이 반 고기가 반이라는 속설이 떠돌 정도로 소문난 낚시터이다. 하지만 오백리길 나그네들에게는 6구간과 연결되는 다리로 더 중요하다.
▼ 16구간은 남대문교를 건너지 않는다. 대신 도로를 횡단한 다음, 회인천의 천변을 따라 남대문마을로 들어간다.
▼ 인적이 뜸한 길은 캠핑족 차지인가 보다. 하지만 텐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근처 어디에서 베스(large mouth bass)라도 낚고 있는 모양이다.
▼ 긴 가뭄에 시달린 대청호는 그 속살을 드러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는 홍수로 인한 피해까지 있었는데도 말이다. 맞다. 지구는 최근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큰 가뭄과 폭우를 인접지역인데도 나누어가며 때려버린다. 인간이 저지른 환경파괴에 대한 조물주의 반격이다.
▼ 회인천을 벗어나기도 전에 집사람을 따라 잡았다. 걸어오는 도중 냉이라도 캤던 모양이다. 사랑하는 이의 밥상에 올리고자 하는 예쁜 마음으로...
▼ 남대문마을의 초입에도 서낭당이 있었다. 민속문화제인 청마리의 제신탑(祭神塔)을 본떠 원추형의 돌탑을 반듯하게 쌓아올렸다. 다만 그 규모가 작고, 솟대와 장승이 함께 있던 청마리와는 달리 이곳에는 돌탑 하나만이 외롭다.
▼ 이곳 보은은 대추나무로 대변되는 고장하다. 주변 풍광만 바라봐도 이곳이 보은 땅임을 금방 알아차린다. 터만 있으면 어김없이 대추나무를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 사람이 떠난 자리는 사람이 채워가는 법. 대청호 주변은 농부들이 떠난 자리를 노후를 즐기려는 도시민들이 대신했다. 잘 다듬어진 소나무하며, 마당을 가득 매운 항아리들이 주인장의 풍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43분. ‘남대문(南大門)’ 마을에 이른다. 법정 동리인 ‘남대문리’를 형성하는 3개의 자연부락(남대문·거구·만마루) 중 하나로 대추나무가 유독 많은 마을이다. 마을 곳곳 조그만 빈터라도 날라치면 어김없이 대추나무를 심어놓았다. 그래선지 연 소득이 1억을 넘기는 농민도 있단다.
▼ 아름다움에 겨운 듯 담장 아래까지 가지를 내려뜨린 홍매화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동백꽃·매화·산수유·개나리·진달래·벚꽃·유채꽃·철쭉 등 이른 봄부터 차례차례 피어나는 저런 꽃들이 없었다면 봄을 기다리는 일이 지금처럼 설레지 않을 것이다.
▼ 마을을 빠져나오면 ‘남대문삼거리’.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507번 지방도를 따른다.
▼ 이 구간도 활짝 핀 벚꽃 가로수가 줄지어 반긴다. 하긴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은 벚꽃놀이 문화가 발달한 일본인들이 ‘세계 제일’이라며 자랑하는 ‘아오모리현 이와키산 벚꽃길(총 길이 20km)’보다도 더 길다고 하지 않았던가.
▼ 귀하디귀한 토종 민들레라는 집사람의 호들갑에 카메라부터 들이대 본다. 아니 집사람에게 저 민들레는 훌륭한 식재료다. 어린잎은 생채로 먹거나,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 먹는다. 뿌리는 튀겨 먹고, 꽃은 그늘에 말려 차로 마신다.
▼ 8분쯤 더 걸어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면 ‘거구마을’. 남대문리의 3개 자연부락 중 하나로, 옛날 아홉 명의 부자가 살았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정표(남대문리 1㎞/ 남대문교)가 가야할 방향(벌랏마을)을 빼먹고 양쪽 도로만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GPX트랙의 도움을 받지 않을 경우 헷갈리기 딱 좋겠다.
▼ 마을을 통과한 오백리길은 임도를 따라 계곡으로 파고든다. 저 멀리 길은 숲속으로 달려가고 있다. 숲으로 흐르던 길은 결국은 다시 계곡을 따라 흐르고 만다. 물이 그러하듯 길마저도 계곡을 벗어나지 못한다.
▼ 근육질의 저 나무는 정력까지 넘쳐난다. 한 뿌리에서 여섯 개의 줄기를 밀어 올렸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출산률이 0.78%라는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취업 이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저 나무처럼 튼실한 몸과 마음을 지녔으면 좋으련만...
▼ 임도를 따라 30분 조금 못되게 걷자 오솔길이 하나 갈려나간다. 오백리길은 이 오솔길을 따른다.
▼ 초입의 나무줄기에 오백리길 표지판이 매달려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 이후부터는 산길을 따른다. 이 구간은 오백리길 나그네들이 애를 많이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웃자란 잡목이 곳곳에 들어차면서 방향 찾기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거기다 수북하게 쌓인 참나무 낙엽은 길의 흔적까지 없애버렸다. 오죽했으면 GPX트랙을 만들어낼 정도의 전문가까지 길을 잃고 헤맸었겠는가.
▼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지에 의지해 10분 거리의 능선 안부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두 방향(반대편 산비탈과 왼쪽 능선)에 선답자들의 리본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 우리는 매달려 있는 리본의 수가 많은 방향(능선)을 선택했다. 이어서 진달래와 산벚꽃으로 치장된 아름다운 길을 오른다. 가파르다는 게 다소 흠이지만 ‘아름다움은 모든 걸 용서한다’는 말도 있지 않겠는가.
▼ 5분쯤 후,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이면 ‘325,9m봉’에 올라선다. 오늘 오르게 될 3개의 산봉우리 중 가장 높지만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오백리길 표지판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해준다고나 할까?
▼ 올라왔으니 내려갈 차례.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무지막지하게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되는 것이다. 스틱에 의지해 엉거주춤 내려가는 집사람은 그나마 양반, 스틱을 챙겨오지 않은 유사장은 네 발로 기며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 내리막길이 끝났다고 길이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작지만 가파른 오르내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아니 완만한 경사로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 325m봉에서 14분쯤 진행했을까 가파른 오르막길이 기다린다. 첨부된 지도에 표기된 ‘어성리 갈림길’이 위치한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대기까지 올라가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산비탈을 옆으로 째는 지름길이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비탈진 탓에 무섭기까지 했지만, 저렇게 가파른 오르막길을 피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 또 다시 나타난 가파른 내리막길과 한바탕 싸움을 치루고 나면, 산길은 능선을 벗어난다.
▼ 이 구간도 역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하지만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네 발로 길 정도는 아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30분(산길로 들어서고 1시간). 밭두렁에 쳐놓은 울타리 때문에 고생고생 해가며 ‘소금골’ 임도로 내려설 수 있었다. 이어서 비닐 망(網)으로 둘러싸인 터널을 지난다.
▼ 터널이 끝나갈 즈음 나그네를 위한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준비해 온 먹거리라도 펼쳐놓으라는 듯 식탁까지 떡하니 배치했다. 덕분에 난 오백리길 도반이자 갑장인 유사장이 준비해온 금준미주(金樽美酒)에 옥반가효(玉盤佳肴)로 한껏 즐길 수 있었다.
▼ 쉼터에서 간식을 먹은 뒤 다시 길을 나선다. 그런데 몇 걸음 걷지 않아 만나는 ‘삼거리’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이정표가 2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착장’까지의 거리를 0.5km로 적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거리가 부담스러워 다녀오는 것을 포기해버린 일행도 있었다.
▼ 5분쯤 걸으면 나타나는 ‘선착장’은 벌랏마을의 옛 나루터이다. 현재는 승객대기소로 쓰던 낡은 건물만 남아있지만 벌랏마을에서 문의로 가는 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 나루터가 주민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단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벌랏마을이 육지 속 섬이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 벤치에 앉자 빼어난 풍광이 펼쳐진다. 멀리 대청호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휘어진 물길이 무척 인상적인데, 대청호의 수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리 보인다고 한다. 참고로 대청호가 조성되기 전 금강을 낀 마을엔 나루터가 많았다고 한다. 금강을 거슬러 신탄진에 물산이 모이면 뱃길을 따라 내륙지역 곳곳을 파고들었단다. 저 물길도 그중 하나가 분명하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벌랏’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서 서낭당을 만났다. 340년이나 묵었다는 느티나무(보호수) 앞에 돌탑을 쌓아올렸는데, 당제까지 지내오는 듯 금줄을 친 흔적까지 엿볼 수 있었다.
▼ 서낭당 옆 돌장승(시멘트일 수도 있겠다)은 명찰을 따로 달지 않았다. 대신 대장군은 수염을 그려 넣었고, 여장군은 수염 대신 비녀를 꽂았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40분. 임진왜란 때 사람들이 피난 와 정착하면서 생겨났다는 ‘벌랏마을’로 들어선다. ‘벌랏’이란 지명은 수몰 전 마을 어귀의 벌랏나루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현재 20여 농가에 30여 명이 거주하는데, 첩첩산중에 물길로 막혀 있던 마을은 6.25 전쟁 당시 전쟁이 난 줄도 모를 정도로 외진 곳이었단다.
▼ 300년 동안 주민들의 생명수였던 우물 위에는 ‘담한정(澹韓亭)’을 세웠다. 담백하고 넉넉하며 평안한 한지(韓紙) 마을이라는 뜻을 담았단다. 그런데 백·천·만·억(百千萬億)으로 시작되는 저 사언절구(四言絶句)는 대체 누구의 작품일까?
▼ 조금 더 올라가면 ‘벌랏 한지마당’이 나온다. 이 마을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봄에 한지를 만들어 대전·옥천·청주 등지로 나가 팔았고 가을 추수 때 쌀로 종이 값을 받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활력을 잃었다. 마을을 되살린 것은 마을에 널린 닥나무였다. 마을 주민들은 20여 년 전 닥나무를 가공해서 전승이 끊겼던 한지생산을 다시 시작했다. 거기에 재미(다양한 체험)와 예술이 더해지면서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 오백리길은 이제 도로(염티·소전로)를 따른다. 1차선으로도 모자라 한없이 구불대기까지 하지만 벌랏마을 주민들에게 이 길은 생명선이다. 이 길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벌랏나루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밖에 없던 육지 속 섬이었기 때문이다.
▼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이때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벌랏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마을전체가 골짜기에 푹 파묻혀 있는 모양새이다. 아까 눈여겨보았던 ‘주위가 대부분 밭이고 논은 거의 없는 마을’이라는 특징이 여실히 들어나는 풍경이다. 하긴 누군가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빗대 ‘충북의 동막골’로 부르고 있었다.
▼ 그렇게 15분쯤 올라섰을까. 또 하나의 서낭당이 만들어져 있었다. 마을 표지석 곁에 정자까지 들어앉혀 오백리길 나그네들의 소중한 쉼터가 되어준다.
▼ 벌랏마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안내판도 세웠다. 조감도 모양의 지도를 그린 다음 한지체험장, 생태체험장, 물놀이장, 민박촌 등 찾아볼만한 곳들을 표시했다. 일종의 관광지도인 셈이다. 참고로 한지체험은 닥나무 껍질을 벗겨 삶아내고 방망이로 두드려 무르게 한 뒤 채로 걸러 한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 20분쯤 더 걸으면 고갯길의 정점에 이른다. 고도계가 214.7m를 찍고 있으니, 산마루 하나를 오롯이 넘은 셈이다.
▼ 길은 이제 아래로 향한다. 자동차도로 치고는 제법 가파르게 내려간다. 이 구간에서 우린 널따란 포도밭을 만날 수 있었다. 보은에서 청주로 넘어온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대추밭이 포도밭으로 변해있다.
▼ 날머리는 소전보건 진료소(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소전리)
홍매화·벚꽃·진달래 등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꽃들에 눈 맞추며 걷다보면 어느덧 소전2리(所田2里 : ‘산서’마을이지 싶다)에 이른다. 공식적인 종점은 마을을 지나 ‘소전교삼거리’이지만 주차문제로 인해 소전마을 입구에서 트레킹을 마쳤다. 그나저나 오늘은 3시간 30분을 걸었다. gpx트랙이 10.48km를 찍고 있으니 무척 더디게 걸은 셈이다. 4km도 못되는 산길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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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오백리길 15구간(구름고개 길)
여행일 : ‘23. 3. 18(토)
소재지 : 충북 보은군 회남면 일원
여행코스 : 은운리(싸리골)→언목마을→구름고개(독수리봉 전망대 왕복)→분저리→용호리선착장→판장대교→회남면사무소(거리/시간 : 14km, 실제는 15.35km를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대청호(大淸湖)는 ‘전국 3대 호수’ 중 하나로 2개 광역(대전·충북)과 5개 기초(대전 대덕구·동구, 청주시·보은군·옥천군) 자치단체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도 무려 ‘500리’나 된다. 이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지는데, 그 야산과 호숫가·자연부락·소하천·옛길 등을 둘레길로 이은 다음 ‘대청호 오백리길(220km을 21개 구간으로 나누었다)’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은 열다섯 번째 구간인 ‘구름고개 길(14km)’을 걷는다. 이 구간은 구름이 넘나든다는 ‘고개’ 하나를 오롯이 넘는다. 하지만 고개를 넘으며 바라보는 감입곡류(嵌入曲流)의 비경이 그 고생을 상쇄시켜 준다. 하나 더, 다리품만 조금 더 팔면 ‘독수리봉 전망대’에서 악어 한 마리를 만날 수도 있다. 보은 제일의 비경이라니 그냥 지나치지 말 일이다.
▼ 들머리는 은운리 경로당(보은군 회남면 은운리)
당진-영덕고속도로(청주-상주) 보은 IC에서 내려와 37번 국도를 타고 옥천방면으로 12km쯤 내려오다 안내교차로(옥천군 안내면 현리)에서 502번 지방도로 옮겨 10km쯤 들어오면 ‘은운리(‘싸리골’이지 싶다)’에 이르게 된다. 이 마을 경로당이 15코스의 들머리이다.
▼ 오늘은 풀코스를 완주했다. 2km쯤 전방에 위치한 ‘언목마을’에서 집사람을 출발시키고 내가 쫒아가는 형식이다. ‘구름고개 길’란 브랜드까지 만들어낸 고갯길(은운리-분저리)이 부담스러웠지만, 집사람의 체력에 맞춰 걷다가 마땅한 곳에서 회남면 택시를 부를 요량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하는 집사람 덕분에 택시를 부르지 않고도 마칠 수 있었다.
▼ 15구간이 시작됨을 알리는 이정표(분저리 6.5㎞/ 장고개 2.1㎞)는 ‘답양1교’에 세워져 있었다.
▼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분저리 방향(북쪽)의 협곡으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참! 행장은 주차장 한켠에 세워놓은 쉼터용 정자에서 꾸리면 되겠다.
▼ 그런데 100m쯤 떨어진 곳에서 도로가 1차선으로 바뀌어버리는 게 아닌가. 입구에는 협소한데다 급커브가 많아 대형차량의 통행을 제한한다는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하지만 마음 좋은 황사장님은 체력이 부담스러운 회원(우리 집사람처럼)들을 조금이라도 더 태워다 주겠다며 차를 몰고 들어간다. 그러다가 ‘언목마을’에서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고생고생하고 있었지만...
▼ 오백리길은 ‘가산천(佳山川)’을 옆구리에 끼고 좁디좁은 협곡 속으로 들어간다. 은운교를 건너고 이름조차 없는 또 다른 다리를 건넌다. 조잘대는 시냇물 소리에 발맞추니 발걸음도 경쾌해진다. 참고로 ‘가산천’은 노성산(보은군 수한면)에서 발원하여 용촌리·답양리·은운리를 거쳐 대청호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하천이다.
▼ 이 길은 공인된 ‘지방도(502호선)’이다. 보은군(회남면) 거신교 동단에서 시작 옥천군을 거친 다음 보은군(탄부면) 탄부교차로까지 간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구간(분저리와 은운리 사이 5.8 km)은 명목만 ‘지방도’일 뿐이지 등치 큰 자동차는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데다 구불구불하기까지 하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8분. 첨부된 지도에 ‘보호수(이를 알리는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로 명기된 삼거리에 이른다. 왼쪽은 계곡을 돌아나가 대청호로 들고, 오백리길인 오른쪽은 ‘언목마을’을 지나 구름고개로 오른다. 아무튼 이곳에서 우린 몸집 큰 느티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근처에 돌탑까지 쌓아놓은 것으로 보아 ‘언목마을’의 당산나무가 아닐까 싶다.
▼ 이정표(분저리 4.5㎞/지경리 2㎞)는 이곳을 ‘언목’으로 적고 있었다. 지명에서 ‘목’은 ‘노루목’처럼 쓰이는 게 보통이다. 사람의 목덜미처럼 잘록하게 돌아가거나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그러니 노루목처럼 생긴 저 골짜기 안에 작은 마을이 숨어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인적이 뜸한 산골마을에서는 외지인이 반가움의 대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젠 옛말이 되었나보다. 흐르는 시절이 얼마나 하 수상했으면 저리도 섬뜩한 현수막까지 내걸었을까.
▼ 몇 걸음 더 걸어 모퉁이를 돌아서자 ‘언목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아까 들머리에서 만났던 ‘싸리골(은운리)’도 오지였는데, 은운리와 분저리를 잇는 고갯길에 위치한 이곳은 가히 오지의 끝판왕이라 하겠다. ‘구름도 울고 넘는 저 산 아래’로 시작되는 유행가가 생각나는 동네라고나 할까? 그런데도 4층짜리 주택이 들어섰다.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 마을을 빠져나와 비탈진 언덕으로 오르면 ‘카페 은운리’가 반긴다. 은운리 출신의 젊은 주인장이 운영(2021년에 문을 열었단다)하는 저 카페는, view가 좋은데다 브라질산 최고급 원두를 쓰는 커피 맛이 일품으로 알려지면서 호사가들의 입소문을 타는 중이라고 했다. 직접 구운 빵과 컵라면도 제공되며, 날이 추워지면 대추차와 생강차 등 수제차도 판단다.
▼ 카페를 지나면서 산길 구간이 시작된다. 오르막의 가파름도 만만찮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산허리에 올라서게 되고, 이후부터는 경사가 거의 없는 밋밋한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온통 산에 둘러싸여 보이는 건 하늘에 그려진 능선뿐이다. 15구간의 브랜드가 ‘구름고개 길’로 굳어진 이유가 아닐까 싶다.
▼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 지나온 ‘언목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에는 ‘호도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때그때 제철 농산물을 파는 ‘카페 은운리’에서 내놓는 지역 특산품 중 하나이다. 참! 카페에서는 직접 생산하는 가구 소품도 살 수 있다고 했다.
▼ 오백리길을 벗어나지 말라는 경고용 현수막도 내걸려 있다. 가드레일을 넘지 말 것. 그러니 산나물 채취는 언감생심이다.
▼ 오늘도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26코스에 들어선 ‘서해랑길’을 함께 걷고 있는 여성 도반인데, 이곳 대청호오백리길은 무서움도 없이 혼자서 걷는 중이라고 했다.
▼ 3일 후면 춘분(春分).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갑다.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기 때문이다. ‘꽃샘’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은 옛말이 됐다. 그 덕에 진달래도 저렇게 소담스러운 꽃망울을 활짝 피워냈다.
▼ 평생을 꽃다운 소녀로 살고 싶다는 집사람이다. 그러니 활짝 핀 진달래를 보고 어찌 방심이 동하지 않겠는가. 냉큼 달려가 포즈부터 취하고 본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카페에서는 32분). 구름고개의 정점(고도계는 273m를 찍는다)으로 여겨지는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이곳에 왼편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제법 또렷하게 나있었다. 행여 대청호라도 눈에 담을 수 있을까 일단을 올라봤다.
▼ 하지만 대청호는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들 뒤로 숨어버렸다. 소나무 사이사이를 돌아가며 2~3분을 더 내려가고 나서야 요 정도의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금강일보의 김현호 기자는 언목마을로 가는 길을 ‘한국 10대 오지마을 길(나머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로 적고 있었다. 맞다. 얼마나 오지였으면 명색이 지방도(5로 시작되는 세 자리 수의 도로는 충청북도 소관이고, 6으로 시작되는 세 자리 수는 충청남도 소관이다)인데도 1차선으로 그냥 놓아두고 있겠는가. 하긴 심심찮게 나타나는 저런 암벽들 때문에 이 정도의 길조차 내는 게 쉽지는 않았겠다.
▼ 10분쯤 더 걸어 또 다른 모퉁이에 다다랐다. 이곳에도 왼쪽 능선을 향해 길이 나있었고, 대청호가 그리운 나는 그 길로 들어섬을 망설이지 않는다.
▼ 하지만 또 속았다. 잘 써진 묘역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청호 너머로 서탄봉(7구간 ’꽃봉‘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져 나온 봉우리이다)과 환산이 눈에 들어오지만 주변 잡목이 아랫도리를 몽땅 잘라먹어 버렸다.
▼ 자칫 심심해지기 쉬운 산길이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구불구불’로도 모자라 ‘삐뚤빼뚤’대기까지 하는 길을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 이즈음부터 대청호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일부러 찾아갔던 아까보다도 훨씬 더 완벽해졌는데, 굽이굽이 돌고 도는 오백리길처럼 대청호 역시 곡선으로 요동치고 있다. 옥천 방아실에서 길게 뻗어 나온 산줄기를 굽이굽이 휘감으며 흐르는 금강 물길이다.
▼ 저녁 잠자리 때 부인이 두려운 이들이여 오백리길로 오라. 복분자(覆盆子) 나무가 저렇게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복분자를 먹으면 정력이 강화되어 소변 줄기에 요강이 엎어진다는 속설도 있지 아니한가.
▼ 나그네들을 위한 쉼터도 빼먹지 않았다. 준비해온 소찬에 박주로 목을 축이고 가기에 딱 좋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20분. 쉬엄쉬엄 내려오다 보면 왼쪽으로 무덤들이 보인다. 그 무덤 위로 ‘독수리봉 전망대’로 가는 오솔길이 나있다. 오백리길에서 살짝 비켜나 있지만 보은 제일의 비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꼭 들어가 보자.
▼ 오솔길은 오백리길 7구간이 지나가는 ‘서탄리’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인도한다. 그 초입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전망대까지의 거리(0.5km)와 함께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지형은 악어의 머리를 쏙 빼다 닮았다.
▼ 전망대로 가는 길은 15구간에서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오솔길이다. 500m의 산길이니 짧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폭신폭신한 흙길에 경사까지 무디다보니 걷는데 부담이 없다. 거기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피톤치드까지 흠뻑 보내주니 내딛는 발걸음이 오히려 힘차진다.
▼ 8분쯤 들어가면 ‘독수리봉 전망대(독수리봉에 걸터앉았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가 나온다. 은운리 고갯길에서 잠시 쉬다 온 구름이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반해 다시 쉬어갈 수밖에 없다는 곳. 그곳에 전망대를 짓고 절경을 감상하도록 했다. 절경을 바라보며 멍이라도 때리다 가라는 모양이다.
▼ 전망대에 서면 입이 떡 벌어지는 절경과 마주한다. 건너편 ‘서탄봉’이 큰 악어 한 마리가 호수 위에 떠있는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곧바로 달려들 기세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거울처럼 잔잔한 물 위로 파란하늘이 비치는 호수, 그리고 그 주면을 둘러싼 절경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호수여행의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 대청호의 또 다른 비경인 ‘부소담악’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서탄리를 크게 휘감아 굽이쳐온 물길이 또 하나의 절경을 만들어냈다. 자연이 빚어낸 조각품으로 대청호의 위엄과 신비로움이 함께 어우러지며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 오백리길로 되돌아와 답사를 이어간다. 이제는 완연한 내리막길이다. 하지만 볼거리는 전무한 편이다.
▼ 그렇게 15분쯤 내려오자 예상 외로 너른 들녘이 나타난다. 회남면에서 가장 너른 ‘빈정들’이라는데, 대청호에 물이 채워진 다음에도 2만 평이나 되는 농경지를 유지하고 있단다.
▼ 분저실 초입에는 폐교(회남초교 분저분교)를 활용해 만든 ‘드림스쿨 예지원’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만두었는지 텅 빈 마당에는 경작을 금한다는 경고판만이 외롭게 서있었다.
▼ 폐교 부근에서 도로가 2차선으로 바뀌었다. 꽃망울을 활짝 연 매화나무 가로수가 길손을 반기는 멋진 구간이다.
▼ ‘대한민국 스타팜(Star-Farm)’이란 팻말이 눈길을 끈다. ‘스타팜’이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농장이다. 국가인증제를 선도하는 농장을 지정해 소비자에게 국가인증 농·식품의 올바른 이해와 신뢰를 제고시키고, 체험을 통한 소비촉진을 위해 2010년 도입했다.
▼ 한때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가 세상을 들썩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모든 게 과학으로 귀결되는 추세다. 저 과일나무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나무의 높이를 최대한으로 낮춤으로써 일손을 확 줄여버렸다.
▼ 그 과학은 작물의 재배 범위까지 확 넓혀놓았다. 드넓은 들녘을 꽉 채워버린 인삼밭이 그 증거일 것이고 말이다.
▼ 잠시 후 들른 ‘분저리(粉諸里, 또는 분저실)’는 여말 명장인 최영 장군이 군량을 모아 가루로 만들어 군사들에게 나눠주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여말은 북쪽에는 홍건적, 남쪽에는 왜구가 날뛰던 시절이다. 특히 왜구와는 끝없는 전쟁을 치렀다. 이에 공민왕은 최영에게 양광도(충청도와 경기도 일대)와 전라도의 체복사를 맡겼고, 왜구들에게 최영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고 역사는 적는다. 그러니 최영장군이 왜구를 토벌하러 가는 도중 이곳에 들렀을 수도 있겠다.
▼ 분저리(이정표 : 회남면사무소 7.5㎞/ 은운리 6.5㎞)는 녹색체험마을로 운영되고 있었다. 수영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는 체험마을로, 여름이면 복숭아따기체험과 농촌생활체험, 전통문화체험, 레저스포츠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단다. 가족단위 나들이지로 안성맞춤이라 하겠다.
▼ 마을 앞 가로수에는 새집이 매달려 있었다. 녹색체험마을다운 발상이라 하겠다. ‘나누는 삶’이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식물간의 사이에도 존재한다는 게 요즘 추세이니 말이다.
▼ 오백리길은 분저리를 지나 대청호와 마주한다. 이즈음 만난 버스정류장(하루에 3번 멈춘다나?)은 ‘용호리’란 옛 지명을 적고 있었다. 현재의 지명인 ‘분저리’도 병기했다. 용호리(龍湖里)가 대청호에 수몰되면서 남은 부분을 분저리에 포함시켰다는 얘기일 것이다.
▼ 대청호(금강의 지류인 ‘회인천’이기도 하다) 너머는 ‘신곡리’. 오백리길 6구간 때 신곡리 앞의 호반도로(회남로)를 걷기도 했었다.
▼ 용호리선착장(이젠 ‘분저나루’라고 해야겠지?)은 개점휴업 상태인가 보다. 선착장 옆 전원주택의 소유로 여겨지는 보트 한척이 외로울 뿐이다. 그것도 뭍에서...
▼ 이제 오백리길은 ‘회인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걷는 내내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 언제부턴가 가로수가 벚나무로 바뀌었다. 대전(동구)의 자랑거리인 오백미(五白眉), 그중에서도 첫째로 꼽히는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굵은 벚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 앗! 교회에 십자가가 없다니. 건물의 생김새도 예배당이라기보다는 여염집에 더 가깝다. 요즘은 이해 불가능한 교회도 많던데...
▼ 교회 근처에서 왼쪽으로 크게 방향을 튼 도로가 능선으로 올라선다. 뒤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황개골(kakaomap에 그렇게 적고 있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 회남면은 대청호에 물이 채워지면서 큰 수난을 겪었다. 대부분의 농경지가 수몰되었고, 경사도가 심한 박토만 남았다. 그러다보니 한 평의 땅도 소중했을 테고, 농부는 저런 산비탈까지 개간을 위한 삽질을 멈추지 않는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40분. 판장소교를 지났다싶으면 ‘판장대교’가 기다린다. ‘대교’라는 이름이 부끄럽게 길이가 100m에도 못 미치는 자그만 다리다. 하긴 이런 산골에서는 저만한 다리를 놓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 다리 건너 ‘판장교삼거리’. 이정표(회남면사무소 4.3㎞/ 분저리 3.2㎞)가 트레킹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 저 낚시꾼은 강태공은 못되는가 보다. 부지하세월이 일상화되어야 하겠건만, 움직임을 멈춘 찌에 노한 어부는 아예 물속으로 들어서 버렸다.
▼ 대청호의 담수는 지형까지도 변화를 주었다. 산줄기가 물에 잠기면서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串)을 곳곳에 만들었다. 덕분에 오백리길은 심심찮게 능선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넘는다.
▼ 15분쯤 더 걸어 ‘늘개미 마을(광포1리)’ 앞을 지난다. 법정 동리인 ‘광포리(廣浦里)’를 구성하는 4개 자연부락(늘개미·늘티·도목·큰골) 중 하나다. ‘늘개미’는 지형이 널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판장’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옛 이름인 판장리(板藏里)가 되었다.
▼ 긴 겨울가뭄은 대청호의 아름다움을 많이 훼손시켰다. 저 버드나무 숲이 물에 잠기면, 거기다 대청호의 안개라도 더해진다면 주산지(注山池)에 못지않는 장관을 연출할 텐데 아쉽다.
▼ 올해는 꽃이 꽤 일찍 피었다고 했다. 꿀벌의 날갯짓도 바빠졌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심심찮게 영하로 내려가는 수은주까지 무시할 수야 있겠는가. 겹겹이 둘러놓은 저 포대기는 농부가 전하는 애틋한 ‘벌 사랑’이다.
▼ 잠시 후 조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넘는다. 고갯마루에는 ‘오백리길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 이곳이 ‘늘개미 마을’임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표석과 마을유래비를 세웠다. 1914년부터 불려오던 판장리(板藏里)라는 지명에 부정적 이미지가 담겨있다고 해서 2019년 구전으로 전해오던 광포리(廣浦里)로 고쳤다는 것이다. 양한석 시인의 ‘수몰지구 내 고향’이라는 시비도 보였으나 옮기는 것까지는 사양한다.
▼ 광포리 고개를 넘으면서 주변 풍광이 확 바뀌어버린다. 대청호 너머로 산만 첩첩이 쌓였던 풍경 대신 규모가 제법 큰 마을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15구간의 종점인 ‘거교리’이다. 하지만 길은 곧장 마을로 들어가지 않는다. 호안을 따라 한없이 구불대면서 목적지를 외면하고 만다.
▼ 산비탈에 터를 잡은 ‘거교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회남면의 새로운 소재지다. 대청댐의 완공되면서 신곡리·조곡리·산수리·거교리·사탄리·매산리·어성리·분제리 등 대부분의 마을이 수몰되었고, 그 과정에서 면사무소도 신곡리에서 거교리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이처럼 고운 풍광을 놓칠 집사람이 아니다. 그 풍광을 배경삼아 포즈부터 취하고 본다. 그리고 ‘뒤센 미소’를 보내온다. 예의를 차리는 웃음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밝히며 진정한 기쁨을 드러내는 그런 웃음 말이다.
▼ 또 다시 나타나는 ‘거교리’, 그게 아까보다 한참 더 고와졌다. 나무데크길(‘사담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탁 트인 대청호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산책하듯 걸을 수 있게 만들었다)이 성곽처럼 마을을 감싸고 이어지며 한 폭의 그림으로 승화된다.
▼ 한없이 구불대는 길이 지겨워질 즈음 ‘새실마을’에 이른다. 법정 동리인 조곡리(鳥谷里)를 구성하는 2개 자연부락(새실·마전사) 중 하나다. ‘새실’은 노성산과 호점산성 사이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마을을 전면에서 바라보면 ‘새 조(鳥)’자 모양으로 나타난다며 ‘조곡’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게 현재의 지명이 됐다.
▼ 마을 앞, 옛날 사진들이 담긴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섶다리가 장마로 끊겨 다리 걷고 영당으로 장보러 갔었지. 가재또랑에서 가재·중태기 잡아 끓여 먹었지. 주막거리에서 막걸리 내기 윷놀이 하면서 놀았지. 각시둠벙에서 멱감고 오다가 복숭아 서리해 먹다가 들켰지. 군량뜰에 모심을 때 물이 모자라 도링(?)이 입고 물댔지. 방앗간 옆 공터에서 추석맞이 콩쿨대회도 하고 공회당 앞마당에선 낮엔 자치기하고 밤엔 도둑놈 잡기도 했었지.’
▼ 조금 더 걸으면 ‘거교삼거리’. 이정표(면사무소 0.4㎞/ 분저리 7.1㎞)는 400m쯤 더 가야 날머리가 나온다고 알려준다.
▼ 조곡리도 마을 표석과 함께 마을 자랑비를 세워놓았다. 홍희표 시인의 ‘오, 조곡리’란 시비도 보인다.
▼ 반대편은 돌탑과 장승 차지다. 내력이야 청마리의 랜드마크인 ‘제신탑(祭神塔, 충북 민속문화재 제1호)’에 못 미치지만 외형은 훨씬 더 잘생겼다. 청마리의 것은 주민들이 손수 쌓거나 깎았으나 이곳은 돈을 들여 전문가의 손을 빌렸음이리라.
▼ 날머리는 거교삼거리 주차장(보은군 회남면 조곡리)
이정표 앞에 깔아놓은 방향표시지가 오른편으로 가란다. 이쯤에서 15구간을 마치고 다음 16구간을 이곳에서 출발하겠다는 산악회의 결정이다. 취사가 가능한 장소를 찾다가 화장실까지 갖춘 주차장을 만났다니 어쩌겠는가. 아무튼 오늘은 3시간 30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는 15.35km, 앞세운 집사람을 뒤쫓느라 걸음이 빨라졌던 모양이다.
▼ 부지런한 집사람은 한시도 손을 놀리지 않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냉이를 캐더니만 식사를 마친 후에는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호강에 넘치는 난 내일 아침 밥상에서 저 냉이로 끓인 국을 마주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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