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27코스(태평염전-증도면사무소)
여행일 : ‘23. 4. 8(토)
소재지 : 전남 무안군 증도면 일원
여행코스 : 태평염전→소금밭전망대→갯벌도립공원→대초마을→우전해수욕장→한반도 해송숲→짱뚱어다리→증도면사무소(거리/시간 : 14.3km/ 15.79km를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7코스를 걷는다. 10개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네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증도의 2/3정도를 느리게 둘러보는 코스다. 소금 창고가 가지런히 늘어선 태평염전에서는 작은 금덩어리들을 만나고, 광활하게 펼쳐지는 갯벌도립공원에서는 물이 빠지면 짱뚱어·농게·칠게 등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반도를 닮았다는 해송 숲(10만여 그루가 자란다)과 드넓은 갯벌 위로 내놓은 짱뚱어다리를 걷기기도 한다. 단 슬로시티라는 슬로건에 맞게 천천히 걷는 것은 필수. 그래야 숨겨진 보물들을 챙겨갈 수 있으니까.
▼ 들머리는 태평염전(신안군 증도면 대초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지도’로 들어온다. 지도사거리(지도읍 읍내리)에서 805번 지방도로 옮기면 ‘송도’와 ‘사옥도’를 거쳐 ‘증도’로 들어간다. 잠시 후 유명관광지가 부럽지 않은 ‘태평염전(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360호)’에 닿는다. 시작점 표지판은 염전의 입구, 슬로시티를 홍보하는 안내판 기둥에 매달려 있다.
▼ 증도는 느리게 둘러보는 섬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섬답게 모든 것이 더디게 흘러간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멀다. 태평염전은 국내 최대 규모(여의도 면적의 2배란다)고,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갯벌도립공원은 바다를 향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한반도를 닮은 숲도 해송이 10만 그루가 넘고, 짱뚱어를 형상한 목교도 472m나 바다를 가로지른다. 주어진 시간은 빠듯한데 어떻게 느릿느릿 걷느냐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어갈 수 있는 것을...
▼ 길을 나서기 전 염전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 그럼 초입에 세워놓은 ‘태평염전 100배 즐기기’ 안내판부터 살펴보자. 박물관에서 시작해 염생식물원·천일염결정지·소금가게 등을 거친 다음 소금동굴체험에서 끝나는 총 10개 코스로 이를 모두 둘러볼 경우 행복이 백배로 불어나게 된다나?
▼ 입구 왼편에는 초창기의 창고(석조)를 전시관으로 단장해놓은 ‘소금박물관’이 있다. 소금의 역사·문화는 물론이고, 미네랄과 천일염 등 소금에 대한 유익한 정보와 소금 장인들의 일상과 천일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지만 시간이 없어 들어가지는 못했다. 박물관 옆에 있다는 체험장은 아예 둘러보지도 못했다. 장화를 신고 고무래로 대파질을 하는 과정이야 TV에서 자주 봐왔으니 그 정도면 되지 않겠는가.
▼ 맞은편에는 소금향을 간직한 ‘솔트카페(Salt Cafe)’가 있다. 예전 소금을 배로 실어 나르던 항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카페로, 중도의 소금을 외지로 실어 나르던 항구의 기억을 간직한 추억의 장소이자 기억의 공간이라 하겠다. 카페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솔티미네랄라떼’와, 소금아이스크림, 함초쿠기 등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커피의 향은 살리고 쓴맛은 줄인 커피와 소금의 달콤한 어울림, 커피의 향긋함과 천일염이 품은 미네랄의 조화가 ‘솔티미네랄라떼’ 한잔에 가득히 녹아있단다.
▼ ‘소금가게’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중의 하나다. 특히 증도 지역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모래가 적은 ‘진펄’로 최고 수준의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태평염전에서 나오는 천일염은 바닷물, 양수와 유사한 미네랄 성분비로 자연의 밸런스와도 가깝다. 또 대표적 염생식물인 함초를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생산한 소금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 ‘소금전망대’로 가는 길목에서는 ‘소금아이스크림’과 ‘함초차’도 판다. 꼭 맛봐야 하는 신안의 대표 먹거리이자, 딴데 가면 안 판다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6년쯤 전 로마에 갔을 때도 저런 상술에 홀려 ‘젤라또’를 사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 이제 ‘염생식물원’에 들어가 볼 차례다. 참고로 태평염전은 1953년 6·25전쟁 후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고 소금생산을 늘리기 위해 조성된 염전이다. 전증도와 후증도를 둑으로 연결하고 그 사이 갯벌에 조성됐다. 동서 방향으로 긴 장방형의 1공구가 북쪽에, 2공구가 남쪽에, 남북 방향으로 3공구가 있다. 이후 정부가 민간사업자에게 영업권을 넘기면서 몇 차례 염전의 주인이 바뀌었다.
▼ 염생식물원(鹽生植物園)은 갯벌 미네랄을 먹고 자라는 건강한 염생 식물들이 군집을 이루는 곳에 조성했다. 바다의 홍삼으로 알려진 함초(퉁퉁마디)를 비롯해서 겟메꽃·해당화·칠면초 등 100여 종의 식물들이 이곳에서 생장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안내판을 읽으며 220미터의 목조 관찰데크를 걸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새로운 앎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신안 문인들의 작품을 읊조려보면 될 일이고...
▼ 때는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었다. 5일만 지나면 천지가 상쾌하고 맑은 공기로 가득해진다는 청명(淸明). 그래선지 함초(퉁퉁마디)와 칠면초로 붉게 물들어있어야 할 갯벌은 거무티티한 자색으로 퇴색해버렸다. 함초와 칠면초는 염분이 있는 갯벌과 습지에서 생육하는 한해살이풀로 생장 초기에 녹색이었던 함초는 가을이 되면 붉은색으로 바뀌고 칠면초의 꽃은 8~9월에 펴 차차 자주색으로 변한다.
▼ ‘소금밭낙조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전망대로 연결되는 나무계단 옆에 ‘서해랑길 신안 27코스’의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 나무계단에 이어서 나타나는 통나무계단. 지자체는 계단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나 보다. 중간 중간에 올라온 계단의 숫자와 소모한 칼로리를 적은 안내판을 세웠다. 감소된 스트레스의 양과 연장된 수명을 숫자로 적었다. 전망대까지 오르면 10분을 더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초입에서 6분.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이면 ‘전망대’에 올라선다. 증도가 세계슬로시티로 지정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태평염전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버지봉’의 능선, 해발 50m 높이의 구릉지에 세워져 있다. 2007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증도를 아시아에서 처음 슬로시티로 지정하며, 인류의 생명을 위해 갯벌 염전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그 가치를 인정했단다.
▼ 전망대에 서자 태평염전과 염생식물원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바둑판처럼 연결된 소금밭에 세모난 지붕 창고들이 쭉 늘어섰고, 그 뒤로 바다가 이어지는 아득한 풍경이다. 그러자 ‘슬로시티’의 한 템포 더딘 심호흡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온다. 참! 오른편 저 어디쯤에는 증도대교가 놓여있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을 나몰라하며 빠르게 오가는 차들로 넘쳐나는...
▼ 다시 길을 나설 차례, 하산은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이번에는 침목계단이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로 연결해준다.
▼ 도로로 내려서자 샛노란 유채 꽃밭이 길손을 반긴다. 유채꽃은 봄을 알리는 얼굴마담. 2월 무렵 꽃망울을 열기 시작해 4월이면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노란빛 꽃구름에 안긴 인생 사진을 찍기에 딱 좋은 시기이라 할 수 있겠다. 참! 꽃밭의 둑을 따라 ‘모네의 연인길’도 나있었다. 안내판은 앞서가는 연인(까미유)을 불러 뒤돌아보는 그녀와 아들 장의 모습을 그린 ‘모네(프랑스의 인상파 창시자)’처럼 함께 간 이를 부른 다음 이 장면을 인생사진으로 남겨보라고 권한다.
▼ 탐방로는 이제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를 따른다. 3공구(염전)의 소금창고(목조)를 옆구리에 끼고 걷다보면 생각 없이 스쳐 지나던 염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세월에 빛바랜 나무 창고와 소금을 싣고 오가던 수레(플라스틱 수레로 바뀐 게 조금 아쉽지만)가 낯설게 다가선다. 하나 더, 저 창고 가득 쌓인 천일염은 한때 천시 받던 염부들의 땀방울로 얻어낸 귀한 결과물이다. 국내 생산 천일염 가운데 6%가 이곳에서 나온다.
▼ 창고 뒤로는 3공구의 증발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저곳에서 생산되는 갯벌천일염은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소금의 0.1%에 불과한 희소한 보물이라고 한다. 미네랄이 풍부해서 쓴맛이 없고 단맛을 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보다도 우수성을 인정받는단다. 게랑드 소금보다 칼륨은 3배, 마그네슘은 2배 이상 많다는 것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40분. 탐방로는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와 헤어져 왼편 ‘돌마지길’로 들어선다. 이어서 ‘돌마지’ 마을을 경유해 바닷가로 간다.
▼ 예로부터 전남지방 해안가에는 ‘건정’이라 불리는 생선이 있었다. 우럭·돔·참조기 등을 손질하고 염장한 다음 해풍과 햇볕에 말리면 ‘건정’이 된단다. 내 어릴 적, 심심산골의 양반가 종갓집이던 우리 제사상에 올라가던 생선이다. 아니면 귀한 손님이 올 때나 꺼내 양념을 해서 구워먹거나 탕으로 해서 먹었을 정도로 귀하디귀한 생선이었다. 그걸 신안지역에서 재현하여 ‘신안 건정 하늘물고기’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단다. ‘시간이 말린 생선의 맛’이란 너스레를 떨면서... 직판에 체험까지 더한다기에 잠깐 들러보고도 싶었지만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니 어찌할꼬?
▼ 그렇게 몇 14분쯤 걷다보면 기다란 방조제로 올라선다. 왼쪽 답사도(kakaomap의 지명)와 오른쪽 대술웅도를 잇는 긴 방조제이다. 이때 대술웅도(지금은 육지)와 화도·석섬 등이 조망된다.
▼ 왼편으로는 신안의 자랑거리인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유네스코(UNESCO)는 저처럼 아름다운 섬과 갯벌 그리고 염전으로 이뤄진 신안군의 해양환경을 ‘신안 다도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 오른편은 간척사업이 만들어놓은 들녘, 그곳에는 ‘대하양식장’이 들어섰다. 1997년 우루과이라운드 발효를 계기로 산업자원부는 폐 염전정책을 시행한다. 수입소금이 들어오면서 서해안에 산재하던 천일염 생산지도 급격히 줄게 돼 신안·영광 등 일부 서남해안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당시 염전을 그만둔 사업자들이 새롭게 시작한 것이 대하양식장이다. 정부는 그런 이들에게 시설자금을 지원했었고...
▼ 800m쯤 되는 방조제의 끝(‘대술웅도 해변길’ 입구)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 그런데 서해랑길의 주황색 방향표시가 양 방향 모두를 가리키니 문제다. 코너에 세워놓은 ‘수릉섬 길’ 이정표(덕정마을/ 돌마지마을/ 화도마을)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 그 해답은 방조제에 붙여놓은 안내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왼쪽 해안으로 가는 방향이 정규 코스인데, 만조 등 기상악화 때는 오른쪽 산 아래 길로 우회하라는 것이다. 하나 더, 어디로 가다라도 ‘대술웅도’를 반 바퀴 돌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 썰물 때이니 망설일 일도 없다. 냉큼 바닷가로 내려서 물 빠진 갯벌을 걷는다. 그리고 대술웅도의 해안을 돌아 ‘화도 노두길’로 간다.
▼ 잠시 후 ‘화도’로 들어가는 ‘노두길’로 올라선다. 노두는 개펄 위에 돌을 놓아 건너다니던 징검다리다. 바다와 바다 사이에 어민들이 다닐 수 있게 만든 통로로 물이 차면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화도 노두길은 의젓한 도로(그것도 2차선)다. 두 차례 확장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단다. 밀물 때면 지금도 바닷물 속에 잠긴다고 해서 아직까지 ‘노두길’로 불린다나?
▼ 초입에는 ‘신안 섬 자전거길’ 안내판(스탬프보관함과 함께)이 세워져 있었다. 장혁과 공효진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안내판도 보인다. 수혈 실수로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와 그의 엄마인 미혼모 연신의 이야기가 마음 아프게 또는 따스하게 그려진 드라마였었다.
▼ 2013년 증도 일원은 신안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면적은 144.0㎢(육지 0.737, 해면 143,263).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대한민국 서남해안 갯벌의 생태적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체계적인 보존과 지속가능한 이용 도모한다는 목적에서다. 그나저나 ‘마음을 다스리는 산행’의 저자 이석암선생의 말처럼 저 조형물의 색깔이 조금 밝은 색이면 어땠을까?
▼ 길이가 1200m에 이른다는 노두길 너머로 ‘화도’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섬의 모양이 바다 위의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마을에 해당화가 가득하다는 섬으로, 국립해양조사원에서 2021년 ‘바다 갈라짐’의 명소로 추천했던 섬이기도 하다. 하나 더, ‘고맙습니다’의 영신과 봄이가 살던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시간을 쪼개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화도 전체가 일몰의 명소로 알려져 있으니 해넘이 시간에 맞추면 더 좋겠고...
▼ 갯벌은 온통 구멍투성이다. 짱뚱어, 칠게, 농게 등 갯벌 생물들이 들락거리면 뚫어놓은 삶의 현장이자 생명의 길이다.
▼ 조금 더 돌면 공중화장실이 있는 갈림길(아까 헤어졌던 우회로와 만난다). 탐방로는 이곳에서 바닷가와 헤어진다. 그리고 오른쪽의 들녘을 돌아 ‘덕정마을’로 간다.
▼ 들녘을 지난 다음 나지막한 언덕을 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덕정(德鼎)’ 마을이 놓여있다. 법정 동리인 대초리를 구성하고 있는 5개 자연부락(대초·덕정·화도·등선·장고) 중 하나로 전증(일명 앞시루)과 후증(일명 뒷시루)이 있어도 솥이 없으면 물을 담을 수 없다 하여 ‘솥 정(鼎)’자를 붙여 덕정이라 하였단다.
▼ 이 마을은 ‘순흥 안씨’의 집성촌인 모양이다. 문중 세장산(世葬山)을 마을 앞에 놓고, 반듯하게 지어진 찬성공파 사당과 추모관을 배경으로 삼았다.
▼ 경로당 외벽에서 마을 주민들의 행복한 표정을 읽는다. ‘행복이 내린다’니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참! 잘 왔어요’라는 문구도 보인다. 자신들의 행복을 길손들에게도 나누어주겠다는 얘기겠지?
▼ 덕정마을을 빠져나오면 805번 지방도, 탐방로는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 다음 150m쯤 도로를 따른다. 대초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대초(大棗)’ 마을을 앞에 두고 걷는 모양새이다.
▼ 탐방로는 대초마을을 스치듯 지나간다. 이때 마을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대초리교회’가 눈길을 끈다. TV의 해외여행 코너에서나 볼 법한 기괴한 생김새다. 인도네시아 편에서 본 건물을 쏙 빼닮았는데, 한국전쟁 때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가 3번째로 개척한 교회라고 한다. 한국철도의 국내기독교 유적지를 둘러보는 ‘기독교 성지순례 탐방 열차’ 코스에도 포함된 교회라고 한다.
▼ 마을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언덕을 넘어간다. 이어서 805번 지방도를 가로지르면서 바닷가로 나아간다.
▼ 이 구간에서 난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을 만났다. 사진 전문가들 사이에서 떠돌던 얘기. 즉 개개로는 보잘 것 없지만 무리지어 피어날 때는 그 어느 꽃보다도 아름답다는 한국 야생화 꽃밭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곳이다. 먹는 나물로만 알았던 냉이가 저렇게도 예쁜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50분. 우전방조제(신산경표에서 옮긴 지명)로 올라선다.
▼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태양광발전소’. 그런데 패널이 씌워져 있지 않은 건 무슨 이유일까? 정권이 바뀌면서 신·재생에너지가 뒷전으로 밀려났는지도 모르겠다.
▼ 왼쪽은 드넓은 갯벌. 물 빠진 바다지만 다도해의 풍광을 여실히 보여준다. 화도를 위시해 석섬·가운데섬·끝섬·비겨섬·갈매섬 등 수많은 섬들이 바닷물이 아닌 갯벌에 둥둥 떠다니는 풍경이 극히 이질적이다.
▼ 증도의 봄은 노란색일 수도 있겠다. 유채꽃이 저 드넓은 들녘을 온통 샛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증도의 유채꽃은 최근에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게 올해는 더 늘어났나보다.
▼ 방조제를 빠져나오다 잠깐 헤매기도 했다. 서해랑길의 특징은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도 갈림길이 많다보니 가끔은 헷갈릴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놓친 표식을 다시 확인해보는 편이 낫다. 리본 등의 표식이 하도 촘촘히 세워져 있어 금방 옳은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제방을 빠져나온 탐방로는 농로에서 방향을 꺾어 우전마을 방향의 숲속으로 들어선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우전(羽田)’ 마을(사진은 우전해수욕장 주차장)로 들어선다. 예전에는 기러기 떼가 한 겨울을 지내고 간다 하여 ‘깃밭(일명 길밭)’이라 부르다가 언제부턴가 우전으로 변했다.
▼ 우전해안에는 ‘갯벌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지상3층(지하1층)의 규모로 국내 최대이자 최초의 갯벌생태 교육공간이라는데 어찌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2006년 개관한 박물관에서 우린 갯벌의 탄생과정과 우리나라 갯벌의 모습, 갯벌에 사는 여러 생물들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영상실에서는 신안군의 아름다운 섬과 갯벌에 대한 홍보영상물을 수시로 상영한다.
▼ 박물관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호남 수석전시관’도 들어가 보자. 증도 출신인 전호남씨가 한 평생 모아온 수석 671점을 기증함으로써 만들어진 소중한 공간이다.
▼ 전시관에는 그가 기증한 수석 300여 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었다.
▼ 박물관을 빠져나오면 ‘우전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푸른 해송 숲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4km나 되는 드넓은 은빛 백사장이 자랑거리인 해수욕장이다. 파란 바다와 숲의 정취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 우전해수욕장은 증도의 대표적 해변이다. 백사장 길이가 무려 4km가 넘는다. 백사장의 모래는 아주 하얗고 가늘다. 결이 고운 밀가루가 이렇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천연규사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닷물의 깊이도 적당하단다. 특히 짚풀로 만든 비치파라솔은 동남아 휴양지 같은 이국적 풍경을 선사한다. 여름 시즌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일 것이다.
▼ 왼쪽을 바라보면 유럽의 근사한 리조트를 쏙 빼닮은 건물들이 보인다. ‘엘도라도’라는 전망이 좋은 리조트이다. 엘도라도는 보물섬·황금도시를 뜻한다. 낙조와 일출을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꽤나 유명세를 탄다는데, 모든 객실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오션 뷰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 인간의 이기주의가 빚어낸 아픈 상처도 엿볼 수 있었다. 피서객을 위한 시설물들이 물의 흐름을 바꿨고, 그 물길은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파먹어간다.
▼ 이젠 해수욕장의 배후 숲을 걸어볼 차례다. 한반도 속 또 하나의 작은 한반도를 이룬, 해송 숲속에 내놓은 ‘천년의 숲길’은 증도여행의 필수 코스다. 이 구간은 증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모실길’의 제3코스인 ‘천년의 숲길’이기도 하다. ‘갯벌박물관’에서 ‘짱뚱어다리’까지로 그 거리가 총 4.6km에 이른다.
▼ 숲길 초입에 ‘철학의 길’이라는 문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슬로시티’이니 느릿느릿 느림의 미학은 기본. 거기에 사색을 즐기며 걸어보라는 모양이다. ‘천년의 숲길’은 백사장의 뒤편으로 나있다. 때문에 발이 푹푹 빠지기도 하지만 낭만이 넘치는 길이다. 이런 길은 짱뚱어다리까지 4Km나 이어진다. 그렇다고 이 모든 길을 완주할 다 필요는 없다. ‘모실’은 마을을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마실’과도 같은 뜻이다. 그러니 모실길은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가듯’ 걸어야 한다. 마음 내키는 곳에서부터 원하는 곳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며 경치를 즐기면 그만이다.
▼ 잠시 후 이번에는 ‘망각의 길’이란 문이 길손을 맞는다. 뭘 잊으라는 얘기일까? 그나저나 사목사목 걷다 보면 어느새 한껏 여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도시의 삶에서 오염됐던 ‘시간’이 비로소 본래대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 이곳 증도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이런 곳에서까지 발걸음을 제촉할 이유는 없다. 모처럼 ‘느림보의 미학’을 쫒아보자. 그러다 포토죤이라도 만나면 인생샷 하나 건지면 될 일이고...
▼ 느리게 걷기의 방점은 우전해변에서 만나는 일몰이라고 했다. 저 플라스틱 의자가 그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서해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를 주워 담기 딱 좋은 곳에 누군가가 가져다놓은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 우전해변 중간쯤에서 만난 백사장. 모래가 유독 고운 저 백사장은 썰물 때면 개펄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개펄은 마사지를 즐기기에 적합한 성분들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해서 매년 ‘게르마늄갯벌축제’까지 열린단다.
▼ ‘별자리 보기 체험장’은 등받이벤치까지 갖추었다. 지극히 편한 자세로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라는 배려일 것이다. 그 많은 별자리들을 무슨 수로 아느냐고? 벤치 옆에 계절별 별자리를 그린 안내판을 세워두었으니 그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 길가 곳곳에는 시비(詩碑) 등 읽을거리까지 챙겨놓았다. 나무 사이로 내다보이는 바다를 감상하며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비(사진은 이해인 수녀의 ‘바다일기’)에 적힌 시들을 읽어보기도 한다. 이런 재미가 있어 사람들은 트레킹에 열광하는가 보다.
▼ 지자체는 걷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라며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모래의 입자가 밀가루처럼 고우니 맨발로 걸어보란다. 저런 숲길은 걷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다. 바람결에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그득하다. 건강한 기운으로 충만한 초록색 숲길에 기분 좋은 솔향까지 보태진다. 이런 게 바로 힐링(healing)이 아니겠는가.
▼ 우전해안이 끝나갈 즈음 바닷가로 내려가 봤다. 그리고 바닷가를 따라난 길을 따라 짱뚱어다리로 간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으나 모래의 유실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방사제(말뚝을 일렬로 박았다)가 눈길을 끌고 있었다.
▼ 우전해안의 끝은 ‘짱뚱어해수욕장’이 장식한다. 널따란 주차장은 물론이고 해수풀장·샤워장·몽골텐트촌·야영장 등 편의시설을 두루두루 갖춘 명품 해수욕장이다. 하지만 5년 전 들렀을 때 눈여겨봤던 ‘와싱톤야자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당시에도 대부분이 죽어가고 있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20분. ‘짱뚱어다리’는 광활한 갯벌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든다. 나무와 철재로 만든 이 예쁜 다리는 다리 아래에서 짱뚱어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바닷물이라도 빠져나가면 갯벌 위로 새겨진 굽이굽이 흐르는 물곬을 눈으로 쫓으며 어슬렁어슬렁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나?
▼ 다리 아래로 물이 넘실거리는 걸 보면 물때를 잘 맞춘 모양이다. 바닷물이 가득한 만조(滿潮) 때 찾아와야 ‘짱뚱어다리’의 진면모(眞面貌)를 제대로 볼 수 있다니 말이다. 마치 바다 위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말이다. 바닷물이 빠졌다고 해서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단다. 배를 드러낸 갯벌에서 이곳 증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갯벌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초입에 커다란 조형물(造形物)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먼저 ‘2위’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만들고, 그 아래에 ‘1004’라는 글자모양을 배치했다. 이곳 증도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100선’에서 두 번째로 꼽힌바 있다. 또한 증도는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천사의 섬’ 신안군에 소속된 하나의 섬이다. 고로 저 조형물은 천사의 섬 증도가 한국인들이 두 번째로 가보고 싶어 하는 섬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증도는 CNN에서 선정한 ‘외국인들이 꼭 가봐야 할 50곳’에도 뽑힌바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 다리로 오르기 전, 읽어볼 게 하나 더 있다. 입구에 세워놓은 빗돌들인데, 이곳 증도에 살고 있는 각종 생물들을 빠짐없이 비석에다 새겨놓았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과 같이 알고 나서 해변을 걷는다면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사시사철 관광객이 몰려드니 푸드 트럭 하나쯤 어찌 없겠는가. 아니 냉장고에 비치파라솔까지 갖춘 의젓한 간이식당이다.
▼ 짱뚱어다리는 철제구조에 나무널판을 댄 모양새다. 만조 때 이 다리에 서면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들고, 썰물 때는 갯벌 생명체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갯벌에서 2m쯤 위로 놓인 다리를 걷다가 중간에 갯벌로 내려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중간지점 두 곳에는 섬 모양의 갯벌 관찰대도 만들었다.
▼ 오늘처럼 물이 차오르지 않는다면 갯벌체험은 다리에 올라서자마자 시작된다. 짱뚱어다리 주변, 즉 우전해변 북쪽 끝에 약 429만㎥(128만평)의 갯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갯벌을 탐방할 수 있도록 갯벌 위에 놓은 다리가 증도의 명물로 자리 잡은 ‘짱뚱어다리’인 것이다. 다리를 따라 걸으며(조망대도 따로 만들어두었다) 칠게·농게·짱뚱어 등 다양한 갯벌 생명들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 툭 튀어나온 저 부분이 ‘짱뚱어’의 머리쯤 되겠다. 짱뚱어는 눈이 툭 튀어나온 철목어(凸目魚)로 머리는 크고 그 아래는 납작하다. 옛날 어린 시절 눈이 왕방울 만하게 튀어나온 친구 녀석들을 ‘짱뚱어’라고 놀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짱뚱어의 머리 부분을 지금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 다리에서면 증도의 자랑거리인 갯벌(지금은 물이 넘실거리지만)을 실컷 볼 수 있다. 길이 472m의 짱뚱어다리는 128만 평이나 되는 저 갯벌을 가로지른다.
▼ 뒤돌아보면 한반도를 닮았다는 해송 숲의 절반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으로부터 약 50여 년 전 증도 사람들은 북서풍(모래날림)을 막기 위해 우전리 해변에다 소나무(곰솔 또는 해송이라고도 부른다)를 심었다고 한다. 방풍림(防風林) 및 방사림(防沙林)의 용도다. 이 숲이 울창해지면서 그 모습이 한반도의 지형을 빼다 닮아 증도의 명물이 되었다. 그리고 저 숲은 ‘한반도 해송공원’이란 예쁜 이름까지 얻었다. 또한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인 ‘공존상’을 받기도 했다.
▼ 다리 건너에도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다리를 암시하는 ‘짱뚱어’ 조형물. 그 옆에는 증도에 명품 자전거길이 나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자전거 조형물을 커다랗게 만들어 놓았다. 이름도 생소한 ‘순비기 전시관’도 눈길을 끈다. 순비기(herb)는 바닷가 모래땅에서 넝쿨을 뻗으면서 자라는 허브라고 한다. 증도면에서는 순비기로 천연염색을 해서 스카프나 베개 등을 만들어 팔고 있단다.
▼ 앗! 우리 동네가 왜 이곳에? 함께 걷던 일행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수인 ‘강남’이 이곳 증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단다.
▼ 철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특산품판매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뭐라도 하나 살까 기웃거리다가 그만 둔다. 5년 전 형제들과 함께 진도를 찾았을 때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산품이라는 (건조)톳을 사서 형제들에게 나눠줬는데, 집에 와서 먹어보니 톳이 아니라 미역 자른 것이었으니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그게 우리 집 하나였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 특산품 판매장을 지나면 섬이 아닌 듯 섬인 증도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섬답지 않게 너른 들녘이 펼쳐지는 것이다. 탐방로는 이 들녘을 지나 증도면사무소로 간다.
▼ 종점이 코앞. 주어긴 시간까지 30분 정도가 남았으니 먹거리를 찾아볼 자투리시간이 생겼다. 마침 이곳 증도는 ’짱뚱어탕‘으로 유명하지 않겠는가. 맛집으로 소문난 ‘안성식당’에서는 반주로 ‘낚지볶음’까지 추가할 수 있단다. 그런데도 독감과 헤어지지 못하고 빌빌대는 형우군은 술도 없는(독감 때문에 술은 엄두도 못 낸단다) 안줏거리가 웬 말이냐며 손사래를 치는 게 아닌가. 술 없이 짱퉁어탕이라도 먹으면 될 일을 고집이라니...
▼ 날머리는 증도면사무소(신안군 지도면 중동리)
마을을 지나면 상정봉(127m) 앞 비탈진 언덕에 걸터앉은 ‘증도면사무소’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핸드폰의 앱은 15.79km를 찍는다. 구간 전체가 평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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