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24코스(봉오제마을-매당마을)

 

여행일 : ‘23. 2. 25()

소재지 : 전남 무안군 현경면·해제면 일원

여행코스 : 봉오제마을곡지마을홀통해변가입마을물암마을금산방조제백동마을창산마을매당마을(거리/시간 : 20.5km/ 실제는 홀통해변부터 15.42km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4코스를 걷는다. 10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첫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해제반도의 구릉지와 해안을 이어 걷는다. 덕분에 무안을 상징하는 드넓은 갯벌과 특산물(양파·마늘·양배추)로 덧씌워진 들녘을 실컷 눈에 담게 된다. 주요 볼거리로는 윈드서핑지로 소문난 홀통유원지를 꼽을 수 있다.

 

 들머리는 봉오제마을(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를 빠져나와 77번 국도를 따라 신안(압해도) 방면으로 내려오다 용정교차로(현경면 용정리)에서 내려오면 곧이어 봉오제 마을에 이르게 된다. 마을 앞 버스정류장이 24코스의 시작점이다. 참고로 봉오제란 지명은 마을 뒤 봉대산에 있었다는 옹산봉수대(甕山烽燧臺)에서 유래했다.

 현경면 봉오제마을(용정리)에서 시작해 해제면 매당마을(창매리)에 이르는 20.5km짜리 코스로 해제반도(海際半島)의 구릉지와 해안을 따라 걷는다. 오늘도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 초반 6km를 생략하고, 주요 볼거리인 홀통유원지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혼자서 완주하는 것보다 부족하더라도 함께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버스에서 내려 탄도만부터 카메라에 담고 본다. 물 빠져나간 바다는 시커먼 갯벌이 배를 드러내놓고 있다. 물고기가 숨어든다는 어은도(漁隱島)’는 졸지에 육지가 되어버렸다. 그럼 그 많은 고기는 어디로 가서 숨어있을까?

 실제 출발지는 홀통선착장’, 현경면의 서쪽 끄트머리에서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 홀통’, 그중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축구장 크기만 한 선착장이 만들어져 있다.

 선착장에는 무안군해양스포츠센터와 초당대학교의 해양스포츠연구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윈드서핑대회가 열린다는 현수막도 눈에 띈다. 탄도만의 잔잔한 물결에다 맑은 물빛, 거기에 바람까지 쉬지 않고 불어준다니 무동력 윈드서핑을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바다는 서해안에서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물빛이다. 저리도 물빛이 고우니 원드서핑 마니아들이 어찌 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선을 조금 옮기자 탄도가 눈에 들어온다. 무안에서 하나뿐이 유인도로, 그게 의미가 컸던지 만()의 이름으로까지 굳어졌다.

 바람이 무척 거세다. 오늘따라 인지는 몰라도 집사람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하긴 이곳은 윈드서핑의 명소, 그렇다면 저 정도의 바람은 항시 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캠핑장 쪽으로 걸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바닷가 모래사장에는 어선 몇 척이 물이 차오를 때만 기다린다. 하릴없는 어부는 지금쯤 아내가 운영하는 횟집에서 허드렛일을 돕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홀통은 유원지로 개발되어 있다. 때문에 겨울철 비수기에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단다. 주변 해송 숲은 캠핑마니아들로 늘 붐비고, 둘레길 나그네들도 심심찮게 지나간다. 그러니 음식점은 필수가 아니겠는가.

 입소문을 탄 카페도 있었다. ‘cafe water front’가 그 주인공으로 무안이나 목포지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view’가 좋은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했다.

 작은 고개를 넘자 카페에 노래연습장까지 딸린 홀통캠핑장이 반긴다. 호리병 목처럼 잘록한 땅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갯벌, 반대편에는 모래사장이 형성돼 있다. 해변과 닿아있는 저 솔숲은 캠핑장으로 이용된다. 코로나에 시달리는 요즘은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간에서 프라이빗한 여가를 즐기는 ‘()캠핑이 주목받는다고 했다. 그래선지 유원지 숲속은 가족단위 캠핑마니아들로 붐비고 있었다.

 캠핑장 앞은 또 다른 선착장. 그 너머로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가족단위 캠핑마니아들의 조개잡이 체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캠핑장의 샤워시설이 잘 되어 있으니 갯벌에 뒹굴면서 조개를 잡아도 된다나?

 이때 오류리로 뻗어나가는 기다란 해안선이 눈에 들어온다. 봉오제마을에서 출발한 24코스는 곡지마을을 거친 다음 저 해안을 따라 이곳으로 온다.

 이후부터는 홀통길을 따른다. 홀통해안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다 2차선 도로를 냈다. 때문에 하얀 백사장이 발아래 깔려있는데도 내려가 볼 수는 없었다.

 백사장 너머로는 탄도만의 갯벌이 드넓게 펼쳐진다. 반대편에는 해송 숲이 가로수처럼 도열해 있다. 누군가는 이런 풍경을 남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적고 있었다.

 길가 안내판은 홀통이 호리병처럼 삐죽하게 튀어 나온 땅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적었다. 긴 백사장과 울창한 해송 숲은 휴양지로 딱 좋고. 물이 맑고 수심이 낮은데다 파도까지 잔잔해 윈드서핑 같은 해양스포츠를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단다.

 홀통해변도 해넘이의 명소로 알려진다. 지난 번 23코스처럼 밀물 때는 바다가 붉게 물들고 썰물 때는 갯벌이 깨진 거울 파편처럼 황홀하게 반짝인다고 했다. ‘놀멍 때리기 딱 좋다나? 해변에 전망대까지 만들어놓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구간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3구간이기도 하다. 삽다리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해 홀통해수욕장·가입마을·물암마을을 거쳐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 끝을 맺는 9km 길이의 둘레길인데, 그중 일부(오류동 앞 해안물암마을)가 서해랑길 24코스와 겹치는 것이다.

 해변으로 내려서니 곱디고운 백사장이 양옆으로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간다(사진은 해수욕장 방향). 이왕에 내려왔으니 모래사장을 꼭 걸어보길 권한다. 고운 모래를 밟는 느낌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직접 와서 느껴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극히 서해다웠다고나 할까?

 바람이 얼마나 거셌으면 펜션의 이름까지 ‘wind’로 시작되겠는가. 하긴 윈드서핑 대회까지 열린다니 어련하겠는가. 그것도 윈드서핑·패들링·카이트보딩 등 종목별 참여 선수가 300여명이나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홀통길은 우릴 마산리 선착장으로 데려다준다. 현경면 오류리에서 마산리로 넘어온 것이다. ‘마산(馬山)’은 조선시대에 말목장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단다. 하지만 네이버의 지식백과는 마을형국이 동으로 초장(草場), 서로 방마형(芳馬形)이라는 데서 찾고 있었다.

 선착장 위는 홀통교차로이다. 이정표(종점 12.2/ 시점 8.3)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24번 국도를 따르란다.

 다행히도 가드레일 밖으로 길이 나 있었다. 하지만 300m를 채 못가 길이 없어져버린다. 그리고 서해랑길 표식(리본)을 통해 국도를 건너도록 인도한다.

 덕분에 길을 잘못 드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지레짐작으로 도로를 벗어나 오른편 구릉지로 올라가버렸기 때문이다. 흡사 고속도로라도 되는 양 오가는 차량은 씽씽 잘도 달리는데 보행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억울할 것은 없었다. 구릉지에서 무안을 압축해 놓은 풍경, 즉 끝도 없이 펼쳐지는 채소밭을 만났기 때문이다.

 무안은 한국에서 양파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다. 전국 양파생산량의 20% 이상이 무안에서 나다보니 여기서는 소도 양파를 먹는단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양파로 만든 특수사료를 소에게 먹인다는 것이다. 덕분에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과 필수지방산이 일반 한우고기보다 많다고 한다.

 또 하나의 특산물로 뿌리를 내린 양배추 밭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겨울철 강추위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했을 저 양배추는 출하가 가능할까? 그러고 보니 언론에 가격폭락으로 인해 밭뙈기로 계약을 했던 중간상인이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었다.

 해남(화원반도)처럼 이곳 무안(해제반도)에서도 심심찮게 둠벙을 만날 수 있었다. 밭농사에도 물은 항시 필요했을 게고, 조상들은 밭의 한가운데나 근처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 웅덩이가 바로 둠벙이다.

 구릉지 너머에선 함해만(또는 함평만)이 드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입구가 좁고 안쪽이 넓은 전형적인 내만(길이 17km, 최대 폭 1.8km)이다. 아무튼 바닷가에 이른 우린 서해랑길(33코스) 특유의 방향표시를 발견했고, 이 표식을 보고나서야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24코스는 북서쪽(가입마을 방향)이 분명한데도, 서해랑길 표식은 자꾸 남동쪽(마산마을 방향)으로 가라했기 때문이다.

 바닷가 안내판은 무안갯벌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안내판 아래 방파제에 붙어있는 방향표시가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함해만은 탄도만과 함께 무안갯벌의 양대 축을 이룬다. 이곳도 갯벌습지보호지역(1) 및 갯벌도립공원(1)로 지정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2008년에는 람사르습지로도 지정됐다. 생물 다양성을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은 덕분이다. 실제로 무안갯벌에는 칠면초·갯잔디 등 47종의 염생식물과 250종의 저서생물이 서식한다. 또한 혹부리오리·알락꼬리마도요 등 52종의 철새가 찾는 곳이기도 하다.

 되돌아 온 국도. 이번에는 해제·지도 방면의 도로변을 걷는다. 둘레길 나그네들을 위한 보행로는 따로 없다. 그런데도 오가는 차량들은 고속도로처럼 씽씽 잘도 달려댄다. 목숨이 위협받는 구간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걸을 일이다.

 조심조심 15분쯤 걸으면 가입리 버스정류장’. 이정표(종점 10.7/ 시점 9.8)는 이곳에서 가입마을로 들어가란다. 계속해서 국도를 따르더라도 물암마을로 갈 수는 있다. 거리도 1km정도 단축된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도로를 피해 가입마을까지 에둘러가도록 해놓은 모양이다.

 나지막한 구릉지를 넘으면 가입마을’. 가입(加入)이란 지명은 조금 더 들어가야 마을을 볼 수 있다는 뜻의 더드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금 전 고개를 넘어올 때의 상황을 이른다고나 할까? 아무튼 상주주씨 집성촌인 저 마을은 팽나무(천연기념물 제310)로 유명하다. 입향 시조인 주근봉이 심었다는데, 수령이 400년도 넘었단다. 하지만 살펴보는 것까지는 사양하기로 했다. 가장 아름다운 팽나무라는 별호로도 모자라 삼년에 한 번씩 볏집 옷까지 해 입혀왔다지만, 2001년 수형이 크게 훼손된 데다 목질부의 부패까지 심하다는 이유로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서해랑길은 가입마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마을 앞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들어 폐교된 수암초등학교 옆 구릉지로 오른다. 참고로 저 학교는 1969년 주씨 문중에서 기부한 땅에다 현경초등학교 수암분교로 문을 열었고, 1974년에는 수암국민학교로 승격까지 했으나 주민 감소라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1996년 문을 닫았다. 현재 대안학교로 변신하기 위해 리모델링 중이란다.

 갈림길 초입에는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에서 세운 이정표가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문화부가 자연경관이나 역사·문화 자원이 뛰어난 도보여행길 중 가볼 만한 곳을 지정해 지원하던 사업으로. 해남 땅끝길,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의 토지길, 안동 유교문화길 등 명성이 자자한 둘레길들이 이 탐방로에 포함되어 있었다.

 구릉지를 넘으면 이번에는 물암마을이다. 법정 동리인 유월리(柳月里)에 속한 자연부락(오류·용산·물암·언창·월암·유투) 중 하나로, 현경면을 달려온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해제면에 바톤(baton)을 넘겨준다. 참고로 물암(勿岩)’이란 지명은 마을 앞 바닷가에 있는 물바위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함해만 건너에는 영광의 랜드 마크인 칠산타워가 우뚝하다. 그 앞은 2019년에 개통한 칠산대교’. 영광군(염산면 옥실리)과 무안군(해제면 송석리)을 잇는 바다 위 다리다. 길이 1.82km의 저 다리는 공사 중 무너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었다.

 물암마을은 당난구지 한뿌리로 나뉘는데, 서해랑길은 마땅히 어려움을 구할 수 있다는 당난구지(當難求地)’부터 들른다. 당나라 사람이 이곳으로 피난을 와 구함을 받았다는 길지이기도 하다. 마을 안길을 지나다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하늘님을 모신 나는 스스로 조화를 정하여 평생 잊지 아니하고 하늘의 도에 맞도록 행한다는 민족종교의 본주문(本呪文)이 벽에 적혀 있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25. 당난구지를 지나면 물암마을회관(이정표 : 종점 9.0/ 시점 11.5), 물암마을(유월3)을 구성하는 당난구지 한뿌리는 회관 앞을 지나는 24번 국도를 가운데 두고 둘로 나뉜다.

 도로를 건너면 한뿌리 마을이다(사진은 마을을 빠져나오다 촬영했다). ‘한뿌리(一根)’란 지명은 마을 뒤 잿등(소나무가 울창했다는 언덕)의 맥이 바다를 향해 하나로 쭉 뻗었다는 데서 유래되었고 한다. 일부 주민들은 마을 지형이 한발로 찌는 방아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를 찾기도 했다.

 마을을 빠져나오니 다시 만난 탄도만이 반갑다며 손짓한다. 24코스의 대부분은 이처럼 탄도만의 해안을 걷는다. 그러니 함해만과의 짧은 외도를 즐긴 후 본가로 되돌아온 셈이다.

 바다에 떠있는 저 섬이 물바위(水巖)’가 아닐까 싶다. 고기잡이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다 지친 부인이 애기를 업은 채 돌이 되었다는 전설의 바위다. 아내의 혼이 바위가 되었다며 넋바위(魂巖)’로도 불리는데, 부부간의 정이 시원찮은 아낙내들이 저 바위를 찾아가 넋두리를 하거나 쓰다듬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서해랑길은 이제 해안선을 따른다. 탄도만을 옆구리에 끼고 걷다가 방해물이 가로막으면 내륙으로 에돌아간다. 저 앞에 보이는 마갑산(또는 마실산)이 첫 번째 장애물이라 하겠다. 해변에는 용유어촌계장이 내건 경고문도 눈에 띈다. 어업면허를 받은 어촌계 어장으로 고동··꼬막·바지락 등을 양식하고 있으니 사전승인 없이 채취를 금한다는 내용이다.

 500m남짓 걷다가 해안을 버리고 내륙으로 들어선다. 마갑산 해안에 길을 낼 수가 없기에 국도(24)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온다. 바다를 그리워하며...

 구릉지로 오르자 생소한 모양새의 한옥 한 채가 얼굴을 내민다. ‘물바우 황토펜션이라는데 한옥은 단층이라는 고정관념을 확 깨버렸다.

 펜션을 지나자마자 24번 국도로 내려선다. 이어서 도로변을 200m쯤 걷게 되는데, 이때 무화과 가판대가 눈에 띈다. 제철이 아니어서 진열대만이 외롭지만 이곳에서도 무화과를 재배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것도 내다 팔아야 할 정도로 많이. 하긴 이곳 무안은 무화과의 본고장인 영암의 옆 고을이 아니겠는가.

 잠시 후 횡단보도를 이용해 국도(해제·지도로)를 건너니 해제 8명당 중 하나라는 기룡마을(용학4)’ 입구다. 그렇다고 기룡마을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서해랑길은 국도의 우측 아래로 나있는 농로를 따른다.

 이 구간에서 우린 멋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를 만난다. ‘꿈의 드라이브 코스로 소문난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 만큼은 아니어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금산방조제가 만들어놓은 드넓은 들녘도 눈에 담을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600m쯤 농로를 걷다가 그 끄트머리에서 국도를 건넌다. 기룡마을의 터줏대감 함평모씨의 선산인 마갑산(馬甲山)을 왼편에 끼고 에둘러가는 모양새인데, 무안만민교회의 입간판을 기점으로 삼으면 되겠다.

 도로 건너 들녘에는 드론실기장이 들어서 있었다. 이론 수업을 마친 마니아들이 이곳에서 실습을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초당대학교(무안 소재 대학으로 백제약품 계열) 항공드론과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실습장이 될 수도 있겠다.

 몇 걸음 더 걸어 금산방조제로 올라선다. 해제면 용학리에서 시작해 죽도를 거쳐 천장리에 이르는 길고 긴 국가관리 방조제이다. 참고로 무안은 해남 못지않게 간석지(干潟地)가 발달돼 있다. 농지를 만들기 위한 간척사업도 해남에 뒤지지 않는다. 인근 지도(신안군)가 간척을 통해 육지로 연결되었을 정도인데, 이곳 금산방조제도 그중 하나로 보면 되겠다.

 둑으로 올라서니 가락회관(마실횟집)이 잠시 쉬었다가란다. 마침 요기할만한 곳을 찾던 지라 냉큼 다가가 봤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무안에서만 볼 수 있다는 귀하신 몸, ‘나무젓가락을 만나볼까 했는데 아쉬운 일이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와 함께 나무젓가락도 식당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산낙지를 파는 식당에서만은 예외란다. 미끌미끌 살아 꿈틀대는 세발낙지를 쇠젓가락으로 먹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 어쩌겠는가. ! 살아 꿈틀대는 세발낙지가 징그럽다면 기절낙지 낙지 오롱구이를 추천한다.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대섬강은 흐름을 멈추고 호수로 변했다. 거기에 습지까지 품게 되면서 드넓은 농경지의 젓줄이자 철새들에게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우리가 찾은 날에도 오리를 비롯한 철새가 떼를 지어 노닐고 있었다.

 눈이라도 돌릴라치면 갯벌낙지의 보고라는 탄도만이 아스라하다. 오른쪽 홀통(현경면 오류리)에서 시작된 해안이 마산마을과 가입마을을 거쳐 물암마을로 이어진다. 참고로 탄도만은 무안군 운남면·망운면·현경면·해제면과 신안군의 지도읍에 둘러싸인 넓은 만()으로 2008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으며, 전국 최초의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생명의 땅이기도 하다.

 금산방조제의 중간 어림에 들어앉은 대섬(竹島)’에는 선착장이 들어서 있었다. 물길이 튼실해서인지 포구에 정박해있는 어선도 많았고, 그 크기도 다른 선착장들보다 월등히 커졌다.

 물양장에서 낯선 풍경을 만났다. 많은 배들이 뭍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수리 목적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하다.

 대나무가 많다는 대섬(竹島)은 풍수상 말의 구시통에 해당된다고 했다. 명당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만민교회(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교회가 아닐까 싶다)에서 울타리를 쳐놓았기 때문이다.

 이정표(종점 5.6/ 시점 14.7)의 지시대로 반대편 방조제를 걷는다. 천장리(泉壯里)의 백동마을 방향이다.

 드넓은 갯벌은 풍경 또한 걸작이다. 검은 갯벌을 옅은 초록이 뒤덮고 있다. 가을철에는 저 위로 붉게 물든 칠면초가 덧씌워진단다. 이때 만들어지는 풍경, 즉 초록과 붉은 풀밭이 무언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나?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23. 800m쯤 더 걷다가 바다와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백동마을을 향해 구릉지로 올라간다. 이때 동구 밖에서 정자나무로 둔갑한 멀구슬나무의 멋진 풍모를 엿볼 수 있다.

 백동(栢洞)’이란 지명은 마을에 잣나무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탐방로는 백동마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저 스치듯 지나갈 따름이다. 때문에 한국전쟁 때 희생된 주민 148명을 기리는 위령비는 둘러볼 수 없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에 묵념이라도 드렸으면 좋았으련만...

 백동마을 역시 구릉지에 걸터앉았다. 그 위를 걸어가는 나그네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길은 또 다른 백동마을로 나있다. 백동마을이 2개의 자연부락(백동 및 가실)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어떤 부락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탐방로가 마을을 살짝 비켜나있어 확인해볼 수도 없었다.

 아무튼 탐방로는 해안으로 곧장 내려가는 지름길을 버리고, 마을을 에둘러서 간다. 땅이 바다만큼 낮아 어디를 둘러봐도 하늘이 절반이라는, 풍경으로만 따진다면 하늘이 열 일을 한다는 무안의 이국적인 멋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답다고 해서 가슴 아픈 현장이 없겠는가. 지난 해 양배추(배추 포함) 농사는 작황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생산과잉이 되면서 가격하락이 뒤따랐고, 많은 농가들은 밭을 갈아엎는 아픔을 겪었다. 저 농부는 끝까지 버텨보다 이제야 갈아엎고 있나 보다.

 잠시 후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고 내륙을 향해 동그랗게 파고들어 온 창매리(蒼梅里)의 해안선을 따라 탐방을 이어간다. 아니 방조제 아래로 난 농로를 한참 걷고 난 뒤에야 해안으로 올라선다. 이 구간에서 우린 탄도만의 풍경을 새롭게 담는다. 배를 드러낸 갯벌에 누워있는 어선들, 시선을 조금 옮기면 바다 건너 홀통해변의 전체적인 풍광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다가온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저 길도 노두(路頭)라 부를 수 있으려나? 갯벌에 놓은 어민들의 작업도로 말이다. 아무튼 바닷물에 잠겼던 길이 드러나 있기에 갯벌로 내려서봤다. 이곳이 칠면초의 군락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해살이 풀이어선지 칠면초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짭조름한 맛을 느껴보려고 했는데 아쉽다.

 해안선을 따르던 탐방로가 또 다시 내륙으로 파고든다. 백동마을 앞 해안에서 1km쯤 떨어진 지점인데, 중매산으로 가는 바닷가에 길이 나있지 않은 모양이다. 이어서 200m쯤 더 걸어 창산마을 앞 도로(이정표 : 종점 2.6/ 시점 17.9)로 올라선다.

 창선마을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지나친다. ‘창산(蒼山)’이란 지명처럼 푸름으로 가득한 철마산(지형이 말 형상으로 생겼단다)을 배경삼아 마을이 들어섰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58. 서해랑길은 이제 창매로를 따라간다. 24코스의 종점인 매당마을까지 이어지는 2차선 도로이다. 이 구간을 걸으며 우린 문드러져가는 배추밭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작황이 좋아도 걱정, 나빠도 걱정이라던 어느 농부의 넋두리가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600m쯤 더 걸으면 창매교회’, 이정표(종점 1.9/ 시점 18.6)는 버스정류장(창매리) 앞에서 도로를 벗어나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24코스 종점까지 도로가 뻥 뚫렸는데도 중매산을 에둘러가는 임도를 따르라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밭두렁을 따라 굽이굽이 휘도는 오솔길이 저리도 고운데, 삭막한 도로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탄도만을 위에서 바라보는 호사까지 누리지 않겠는가.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동그랗게 휘돌아나가는 탄도만의 끝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바닷물이 빠지고 민낯을 드러내는 저 갯벌은 어부에게는 생명의 땅이다. 대바구니를 짊어진 남정네들은 삽으로 갯벌을 파헤쳐 낙지를 잡고, 아낙들은 밭을 매듯 갯벌에 쪼그려 앉아 호미로 조개를 캔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바닷물이 밀려온다.

 임도로 들어선지 20분 남짓. 중매산(또는 매령산)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양지바른 산자락에 걸터앉은 매당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맹당으로 시작해, ‘맨댕이를 거쳐 현재는 매당(梅堂)’으로 불리는 마을이다.

 탄도(炭島)까지 물러났던 바닷물이 회색빛 갯벌을 야금야금 점령해오고 있다. 그러자 물이 빠지면 걸어서도 들어갈 수 있다는 꼬맹이 개구리섬(蛙島)’이 바다 위로 떠오른다. 운이라도 좋으면 모세의 기적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조금 늦었나보다.

 마을로 들어서니 잘 생긴 팽나무 두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팽나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나무다. 그래선지 서해랑길을 걷다보면 저런 팽나무를 심심찮게 만난다. 한편 팽나무는 포구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 매당마을도 의젓한 포구다. 그러니 정자나무 역할을 하는 팽나무 한두 그루 어찌 없겠는가.

 날머리는 매당노인회관’(무안군 해제면 창매리)

탐방로는 마을을 관통한다. 그리고 끄트머리쯤에 위치한 매당노인회관 앞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참고로 매당이란 지명은 마을 뒷산이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이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마을에서도 매령산으로 기우제를 지내러 왔다는 것이다. 하늘이 감응이 빠를 정도로 산의 기운이 좋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이유로 명당으로 불리다가, ‘맹당을 거쳐 현재의 이름인 매당으로 굳어졌다고 전해진다.

 서해랑길 안내도(무안25코스)는 노인회관 옆 민가의 담벼락에 기대듯 세워놓았다. 오늘은 3시간 40분을 걸었다. 앱에 찍 거리가 15.42km이니 빠른 속도로 걸은 셈이다. 강풍으로 인해 떨어진 체감기온을 끌어올리려고 속도를 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