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25코스(매당마을-신안젓갈타운)
여행일 : ‘23. 3. 11(토)
소재지 : 전남 무안군 해제면과 신안군 지도읍 일원
여행코스 : 매당노인회관→매안마을→큰부수막들방조제→황토펜션→명양마을→해제·지도연륙교→봉황산임도→신안젓갈타운(거리/시간 : 17.8km/ 17.99km를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5코스를 걷는다. 10개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두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해제반도의 구릉지와 해안을 이어 걷는다. 덕분에 무안을 상징하는 드넓은 갯벌과 특산물(양파·마늘·양배추)로 덧씌워진 들녘, 그리고 신안의 다도해 풍광을 실컷 눈에 담게 된다. 주요 볼거리로는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串) ‘배암 혓바닥’과 신안의 새로운 볼거리로 등장한 ‘거북섬’을 꼽을 수 있다.
▼ 들머리는 매당마을(무안군 해제면 창매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신안(지도·임자도) 방면으로 내려오다 천장교차로(해제면 천장리)에서 왼편 창매로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당 마을’에 이르게 된다. 초입에 있는 노인회관이 25코스의 시작점이다. 참고로 법정 동리인 ‘창매리’의 3개 취락(聚落 : 창산·매당·매안) 중 하나인 매당마을은 풍수지리상 명당에 해당된다고 했다. 명당이 와전되어 맹당(孟堂)으로, 이후 ‘맨댕이’로 불리다가 한자화하면서 매당(梅堂)으로 고쳐졌단다.
▼ 해제면 매당마을(창매리)에서 시작해 지도읍 신안젓갈타운(읍내리)에서 끝나는 17.8km짜리 코스로 해제반도(海際半島)의 구릉지와 해안, 그리고 지도(신안군)의 해안과 임도를 따라 걷는다. 오늘은 우리 부부의 출발지를 따로 잡아봤다. 시점에서 4km쯤 전방에 위치한 ‘황토골휴게소’에서 집사람을 출발시키고, 시점에서 출발한 내가 뒤를 쫓는 형식을 취했다.
▼ 마을회관을 빠져나오자마자 길이 나뉜다. 서해랑길은 도로(창매로)를 놓아두고 바닷가를 향해 내려간다. 25코스가 시작됨을 알리는 ‘시작점’ 표지판은 이정표(황토골휴게소 4.4㎞, 종점 16.7㎞) 옆의 전신주 기둥에 매달려있다.
▼ 서해랑길을 제켜놓고 도로를 따라본다. 동네 수문장을 자처하고 있는 노거수를 만나보기 위해서다. 매화정이란 정자까지 품은 저 팽나무(군의 보호수이다)는 수령이 29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나무 앞에 ‘선돌’까지 모셔놓은 걸 보면 마을에서 당산나무로 모신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당산나무로 모시던 버드나무가 태풍에 쓰러지자 나무 옆에서 수호신처럼 서있던 바위를 이곳으로 옮겨놓았단다.
▼ 50m쯤 더 걸으면 ‘광산김씨삼강려’라는 제각도 만나볼 수 있다. 광산김씨 문중에서 배출한 忠·孝·烈의 삼강행실(三綱行實)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원래는 각각 다른 시기에 정려로 포상 되었으나 1946년에 하나로 합쳤다고 한다. ‘호은처사광산김공경모비’와, ‘회산처사김공강학비’, ‘효자김공치선실적비’, ‘창와김선생유적비’도 눈에 띈다. 이 마을에서 학문이 뛰어난 이들을 배출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정면 3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 제각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럼 병자호란 때 전사한 김득남(金得男, 1828년에 정려)의 충의(忠義)와 1891년에 정려를 받은 김성경 및 김철현의 효행(孝行), 김득남 의처 밀양김씨(1870년에 정려)의 열행(烈行)은 어디서 엿볼 수 있다는 말인가. 혹시나 해서 제각 곁에 세워놓은 빗돌을 살펴봤으나 관련 내용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제각까지 살펴본 다음 서해랑길로 합류한다. 이때 매당마을 앞바다에 떠있는 ‘머우섬’이 눈에 들어온다. ‘개구리섬(蛙島)’으로도 불리는데, 동백나무가 무성해서 한때는 마을 사람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유지로 변해버렸다나?
▼ 탐방로는 이제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串), ‘배암 혓바닥(또는 뱀머리)’을 바라보며 간다. 매당마을 앞바다에 떠있는 ‘와도(蛙島)’ 쪽으로 뻗어나간 지형이 마치 뱀이 개구리(섬)를 잡으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란다.
▼ 갯벌은 온통 푸른 해초로 뒤덮여 있다. 매당마을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고마운 색깔이라 하겠다. 저 갯벌(‘정챙이’이란 지명을 지녔다)에서 채취되는 감태가 무안에서 가장 질이 좋다니 말이다. 한때는 한 사람이 하루에 20동 이상씩 따오기도 했단다. 그밖에도 무안에서 가장 질 좋은 석화와 낙지를 잡아 높은 수익을 올린다고 했다.
▼ 방조제를 따라 100m쯤 걷다가 매안마을로 향한다. 이때 ‘허천들’이란 들녘을 걷게 되는데 물이 하도 귀해서 비가 내려도 물을 쑥 빨아들였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마을이라고 해서 하등 다를 게 없었단다. 공동우물의 수량이 적어 늘 줄을 서서 사용해야 했고, 가뭄이라도 들면 십리나 떨어진 창산 마을 뒤까지 가서 양동이로 물을 길러 와야 했단다.
▼ ‘허천들’에서도 무안의 특산품인 마늘과 양파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한겨울 맹추위를 굳건히 버텨낸 양배추는 수확이 한창이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2분. ‘매안’ 마을회관 뒤 도로(이정표 : 종점 15.4㎞/ 시점 1.3㎞)에서 특이한 표석을 만났다. 매안마을과 매당마을을 함께 담음으로써 경계석을 겸하게 했다.
▼ 매안마을을 빠져나와 구릉지 위를 걷는다. 이때 하늘이 반, 나머지 반은 바다나 땅이 채워준다는 해제반도의 독특한 풍경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 20분 정도 걸어 매안마을 구간을 빠져나오면, 탐방로는 또 다시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고 방조제 위를 걷는다. 그런데 어디서 난데없는 경고방송이 들려오지 않겠는가. CCTV가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 쓰레기 버릴 생각을 일찌감치 버리란다. 하긴 바닷가라고 해서 무단투기를 하는 못난 놈들이 없겠는가.
▼ 길고 긴 방조제를 걷다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만큼은 얘외다. ‘배암 혓바닥’이라는 신비로운 풍광을 계속해서 옆구리에 끼고 가기 때문이다.
▼ 오른쪽으로는 간척사업이 만들어낸 널따란 들녘(‘큰부수막 들’과 ‘노갱이 들’이 잇따라 나온다)이 펼쳐진다. 그 끄트머리에는 창매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창산(蒼山)’마을이 철마산(지형이 말 형상으로 생겼단다)을 배경삼아 들어섰다. 어촌이었을 마을은 이 방조제가 쌓이면서 이젠 산촌으로 변해버렸다.
▼ 서해랑길은 둘레길 나그네만의 것은 아닌가 보다. 라이더 한 명이 지도로 들어가는 연륙교에 이를 때까지 나타났다 사라기지를 반복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방조제를 1km쯤 걸었을까 ‘무안한옥리조트’라는 커다란 펜션단지가 나타난다. 서해랑길은 바닷가에 접해있는 이 숙박시설의 앞마당을 횡단한다.
▼ ‘참새골황토펜션’으로도 불리는 이 숙박시설은 전통 한옥의 고풍스러운 멋을 지닌 데다, 바닷가에 접해있다는 특이성으로 인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는 중이라고 했다. 노래방, 찜질방 바비큐장은 물론이고 널따란 수영장까지 갖췄다.
▼ 펜션 앞 바다에 물이 빠져나가면 드넓은 갯벌은 체험장으로 변한다고 했다. 갯벌을 향해 길게 뻗어나간 저 길은 체험 참여자들을 위해 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잡아온 해산물은 바비큐 장에서 구우면 되고, 반주 삼아 마신 술에 얼큰해졌다면 부대시설인 노래방이라도 찾아볼 일이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배암 혓바닥’이 얼굴을 내민다. 사두(蛇頭)라고도 부르는데, 예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최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집을 지어 거주하고 있단다.
▼ 참새골펜션에서 8분. 탐방로는 24번 국도로 올라선다. 그리고 잠시지만 이 도로(해제·지도로)를 따른다.
▼ 국도에서 만나게 되는 휴게소의 이름도 역시 ‘황토골’이다. 해제반도를 걷다보면 심심찮게 눈에 띄는 낱말인데, ‘황토’가 무안의 자랑거리로 굳어졌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힐링이 세간의 화두로 굳어지면서 황토의 건강 효용성 또한 부각됐고...
▼ 휴게소에서 우린 무안의 내로라는 자랑거리를 엿볼 수 있었다. 초의선사 탄생지와 노을길 등 서해랑길을 걸어오면서 만난 명소들은 물론이고, 밀리터리테마파크와 전통생활문화테마파크, 도리포, 식영정 등에 대한 자랑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 탐방로는 휴게소를 왼편에 끼고 돈다. 그리고는 임도를 따라 또 다른 해안으로 나아간다. 이 구간에서도 우린 ‘해뜰목황토펜션’이란 꽤 그럴 듯한 숙박시설을 만날 수 있었다. 지역 브랜드(황토)로도 모자라 ‘해뜰목’이라는 의미(해돋이)를 추가시켰다.
▼ 임도를 지나서 다시 만난 바다도 역시 ‘탄도만’이다. 보여주는 풍광 또한 대동소이하다.
▼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배암 혓바닥’이 노리고 있는 게 ‘개구리섬’이 아니라 ‘탄도’인 것이다. 뱀이 삼키기에는 너무나 큰 섬일 텐데도...
▼ 이번에도 방조제를 따른다. 이렇듯 무안의 해안은 해남과 함께 간척사업의 명소로 꼽힌다. 덕분에 들쭉날쭉해야만 할 리아스식 해안이 직선으로 변해버렸다. 혹자는 자연스러운 멋이 사라져버렸다며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그 또한 삶의 한 방편이었으니 어쩌겠는가.
▼ 양월리로 들어선 탐방로가 아까와는 또 다른 풍경을 선보인다. 창매리 해안을 장식해오던 ‘와도(개구리섬)가 사라진 대신, ‘밤섬(栗島)’이 새로운 풍경화의 화룡점정으로 들어앉았다. 물이 들면 밤송이처럼 보인다는 꼬맹이 섬인데, 풍수적으로는 자물쇠의 형국을 하고 있단다.
▼ 율도를 향해 쭉 뻗어나간 저 길도 노두(路頭)라 부를 수 있으려나? 갯벌에 놓은 어민들의 작업도로 말이다.
▼ 방조제를 10분쯤 걷다가 ‘명양마을(이정표 : 종점 10.6㎞/ 시점 6.1㎞)’로 들어간다. 해제반도의 끝에 위치한 마을로 ‘명양’이란 지명은 마을 옆을 흐르는 해협(지도와의 사이)의 물살이 거센데서 유래됐다. 물살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울돌목처럼 커서 ‘울두’ 또는 ‘울띠’라 불리다가 한자화하면서 명양(鳴洋)이 되었다.
▼ 마을을 관통해 ‘해제·지도로’로 올라섰다. 이 구간에서 우린 ‘산들밥상’이라는 소고기 샤브샤브전문점을 만날 수 있었다. 무안지역에서는 맛집으로 소문났다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꽤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 이곳 해제반도는 전형적인 구릉지. 농사를 지을 물이 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 방편으로 만들어진 게 ‘둠벙’, 얼마나 물이 절실했으면 한 방울의 물도 아까워 바닥에 비닐까지 깔았을까 싶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25분. 모퉁이를 돌아서자 해제반도와 지도를 잇는 연륙교(내 눈에는 방조제로 보였다)가 얼굴을 내민다. 1975년 저 다리가 놓이면서 무안군과 신안군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게 됐다. 300m 길이의 다리 2개가 놓였는데, 해안 쪽 다리(제방)는 농·어민의 생활도로로 쓰이며 안쪽은 국도가 지나간다.
▼ 우리가 건너고 있는 이 해협은 ‘제2의 울돌목’이라 불리었을 정도로 물살이 거셌다고 한다. 좁은 해협으로 칠산바다와 목포앞바다의 물이 서로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난파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물살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는 해제면소재지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나? 그게 이 연륙교가 놓이면서 이젠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건너편의 또 다른 연륙교로는 국도 24호선이 지나간다. 참! 반대편 연륙교도 이곳처럼 둑으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이름만 다리이지 실제는 방조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둘 사이의 공간을 객토를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 평의 땅이라도 더 만들고 싶었을 텐데...
▼ 물살이 거세다는 것은 물길이 깊다는 증거다. 그래선지 썰물 때인데도 불구하고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자동선착장(진변마을 쪽에 하나가 더 있다)의 배들도 하시라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참!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자동선착장에는 임자-지도-목포항을 운항하는 여객선이 들렀다고 했다. 300m 거리의 무안 해제를 연결하는 나룻배도 수시로 다녔단다. 하지만 세월의 뒤안길에 선 지금은 어민선착장으로 겨우 항구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 지도로 들어서니 팔각정이 잠시 쉬어가란다. 진변마을 주민들을 위한 쉼터겠지만, 둘레길 순례자들에게도 최고의 쉼터가 되겠다.
▼ 다리 건너 진변마을에 이르면 길이 둘로 나뉜다. 직진은 지도읍시가지로 가는 길, 서해랑길은 태천마을 방향(왼쪽)의 ‘동천길’을 따른다. 하나 더, 삼거리 오른편에는 지도체육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 300m쯤 걷다가 다시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고 효지방조제를 따라 ‘누동마을’ 쪽으로 간다.
▼ 둑길을 걷다가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밤섬’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매령산과 바다를 향해 쭉 뻗어나간 ‘배암 혓바닥’을 배경삼은 풍경이 아까보다 훨씬 고와졌다. 섬의 주위를 푸른 바닷물로 덧칠해놓은 덕분이지 싶다.

▼ 옥색 바다에 떠있는 ‘가두리양식장’도 잠깐의 눈요깃거리가 된다. 행여나 바람이라도 거세질세라 주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근심의 근원이기도 한 시설이다. 섬사람들에게 바람은 곧 풍파다. 어떤 삶에 풍파가 없으랴.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바람에 맞서 싸우기보단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풍요를 가져오게 되었고 말이다.

▼ 오른쪽으로는 간척사업이 빚어놓은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이즈음 우린 중산동과 효지마을 등 ‘자동리’에 속한 자연부락과 함께, 봉황산과 선봉산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서해랑길은 두 산의 사이로 난 임도를 따른다.

▼ 눈이 호사를 누리며 600m쯤 걷다가 효지2저수지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바다와 헤어져 내륙으로 파고든다.

▼ 마을(‘쩍골마을’이 아닐까 싶다)을 가로지르다 지극히 예스런 풍경을 만났다. 돌과 흙으로 벽을 쌓아올린 다음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다. 장식이라곤 틀도 없는 문이 전부, 그 소박함이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해줬나 보다.

▼ 마을을 빠져나와 또 다시 ‘동천길’로 올라선다. 이어서 ‘누동마을’ 방향(왼쪽)으로 70m쯤 걷다가 임도로 들어선다. 이후부터 서해랑길은 3km쯤 되는 임도를 따른다.

▼ 봉황산(165.5m)과 선봉산(121.5m) 사이로 난 임도는 순하기 짝이 없었다. 정비가 잘 되어 있는데다 경사까지 완만했기 때문이다. 하긴 임도의 길이가 3.1km나 되는데 반해, 가장 높은 지점의 높이가 101m에 불과하니 서둘러 고도를 높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 심지어는 양탄자 위를 걷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솔가리가 수북하게 쌓여 여간 폭신폭신한 게 아니다.

▼ 또 다른 즐거움도 있다. 곳곳에서 트이는 조망 덕분에 다각적으로 펼쳐지는 지도의 풍경을 두루두루 눈에 담을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농업회사 법인인 ’하늘애‘. 그 뒤로 보이는 게 ‘선봉산’인데 121m 높이의 산답지 않게 우뚝 솟아올랐다.

▼ 태천리 해안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하다. 그 뒤로는 다도해가 펼쳐진다. 비파섬과 선도, 병풍도일 것이다. 봉황산 임도는 이렇듯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 내륙에는 ‘오룡마을’이 있다. 법정 동리인 ‘자동리’를 구성하는 5개 자연부락(자동·자서·효지·오룡·중산동) 중 하나로, ‘오룡(五龍)’이란 지명은 마을 지형이 용 다섯 마리의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깨어 꿈틀거린다는 경칩(驚蟄)이 지난지도 벌써 5일이나 됐다. 남녘땅으로부터 꽃소식이 전해진지도 이미 오래, 산수유축제와 매화축제는 이미 시작됐고, 다 다음 주쯤이면 벚꽃축제도 열릴 것이다. 그러니 길가에 들꽃 하나쯤 눈에 띄지 않을 수 있겠는가.

▼ 40분이나 걸어서야 봉황산 임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내려선 도로변 텃밭에는 양배추가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수확이 한창인 농부 앞에서 우린 부부싸움까지 할 뻔했다. 트레킹을 마치려면 아직도 5km 이상 걸어야하는데 양배추 한 포기 얻어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귀경해서 가장 질 좋은 양배추를 사드리겠노라며 달랬지만 자칫 무거워진 배낭을 짊어지고 쩔쩔 맬 뻔했다.

▼ ‘이 뭣꼬?’ 갈대처럼 생겼는데 꽃은 영 딴판이다.

▼ 400m쯤 도로(동천길)를 따르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해안으로 내려선다. 이어서 길고 긴 ‘오룡방조제’의 둑길을 걷는다.

▼ 이때 ‘천사섬 신안’의 진면목을 살짝 엿볼 수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들이 바다에 늘어섰다. 소도·연도·마산도·고이도·매화도 등등 그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숨이 차오른다.

▼ 오른편에는 오룡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생겨난 간척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들녘의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오룡마을의 앞에 펼쳐져 있으니 ‘오룡 들판’쯤으로 해두자.

▼ ‘농자천하지대본’도 이젠 옛말이 되어버렸나 보다. 들녘의 많은 부분을 태양광발전소가 차지하고 있었다. ‘식량 안보’가 남의 나라 얘기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지만 멀쩡한 농경지에 저런 시설이라니...

▼ 하지만 옛 사람들은 한 평의 땅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 그러다보니 일직선으로 뻗어나갔어야 할 방조제가 저렇듯 바다를 향해 배불뚝이처럼 밀고 나갔다.

▼ 방조제와 들녘 사이에는 수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들녘 곳곳에는 저수지도 들어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가 보다. 길고 긴 가뭄은 논바닥을 저렇듯 거북이 등껍질로 만들어버렸다.

▼ 반대편의 갯벌에는 또 다른 문양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도 주변의 갯벌은 ‘농게’가 주인이라고 했다. 그러니 저 갯벌은 농게 가족의 ‘삶의 현장’이자 ‘삶의 흔적’이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10분, 배불뚝이처럼 튀어나온 광정리 ‘백양들’을 지나자 종점인 지도시가지가 더 또렷해졌다. 이제 종점이 가까워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갯길’이 또렷해졌다. ‘생명의 땅’ 갯벌을 보듬은 실핏줄로, 바닷가 사람들은 갯벌과 마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저 실핏줄을 통해 자연과 소통해왔다.

▼ 신안의 갯벌은 ‘생명의 땅’으로 알려진다. 그만큼 많은 식생을 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저 갈매기들도 그중 일부분을 담당할 게고 말이다.

▼ 잠시 후, 이번에는 지도읍의 또 다른 명물로 자리를 굳힌 ‘거북섬’이 눈에 들어온다. 본도와의 간극을 없애버린 긴 목교가 눈길을 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35분. 신안젓갈타운에 도착했다. 이제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25코스의 종점이다. 하지만 그 전에 ‘거북섬’부터 둘러보자. 신안군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했다는데 거를 수야 없지 않겠는가.

▼ 거북섬은 해상탐방로가 놓임으로써 관광지로 변했다. 썰물 때, 그것도 갯벌에 무릎까지 빠질 각오를 해야 들어가 볼 수 있었던 섬이, 마법 같은 나무다리를 놓아 밀물 때도 섬을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500m쯤 되는 거리를 부담스러워 할 필요도 없다. 중간 중간에 만들어놓은 쉼터에서 쉬어가면 될 일이다.

▼ 인생샷을 원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갯벌의 한가운데, 그것도 바닷물에 최대한 다가간 곳에 그네를 설치해 푸른 바다를 배경삼아 그네를 타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갯벌 차지가 됐다. 밀물 때가 가까워졌는지 움푹 팬 갯고랑 사이로 조금씩 물이 차오르면서 농게와 짱뚱어가 부산하다. 또 다른 풍경도 보인다. 무리를 지어 말라비틀어진 저 식생들은 대체 뭘까? 무안·신안의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칠면초’는 분명 아닌데...

▼ 6분 남짓 걸어 ‘거북섬’에 이른다. 눈에 들어오는 섬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거짓말 좀 보태면 주먹만 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품은 내력만큼은 심상치가 않았다. 탐방로 전체에 식생매트를 깔았음은 물론이고, 해양생물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편안한 쉼터도 만들어두었다.

▼ 길 끝에서 만난 섬은 귀여운 거북이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실제로 거북이가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지 거북이 조형물에다 섬의 지도를 그려 넣었다. 거북섬에도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기본은 277m 길이의 순환코스(해안을 따를 수도 있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 정상에 올라앉은 정자에 들러 피톤치드를 들이키며 힐링을 만끽할 수도 있다.

▼ 거북섬에서의 조망도 거침이 없다.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며 한 폭의 수묵화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 부근은 특히 해넘이가 곱다고 소문났다. 밀물 썰물을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풍광이 연출된단다. ‘놀멍’ 때리기 딱 좋다나? 그래선지 해변에 저런 의자를 꽤 여럿 놓아두었다.

▼ 관광지로 육성했으니 어찌 포토죤이 빠지겠는가. ‘천사섬’이란 신안군의 브랜드처럼 수많은 섬들을 액자 속에 담을 수 있도록 했다.

▼ 거북섬을 빠져나오자 ‘신안젓갈타운’이 잠시 들렀다 가란다. 전국 최대의 젓새우 생산지이자, 국내 최초의 천일염 생산지인 신안군에서 만들어놓은 젓갈 전문시장이다. 젓갈 등 수산물 판매장 20개소와 젓갈의 저장·숙성을 위한 저온저장시설, 전시·홍보관 등이 갖춰져 있다.

▼ 젓갈타운 앞에는 신안 갯벌의 상징인 농게를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저 ‘붉은 발 농게’는 한쪽 집게발이 자신의 몸집만큼 커다란 게 특징으로 농발이, 황발이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암컷은 양쪽 집게의 크기가 똑같지만 매우 왜소하다. 수컷은 한 쪽 집게는 암컷과 같지만 다른 쪽은 거대하여 갑각 길이보다도 더 길다.

▼ ‘지도갯벌’ 글자조형물과 ‘신안갯벌’의 표석도 보인다. 신안 하면 역시 갯벌이다. 다도해형 갯벌로 불리는 신안갯벌은 1,100.86㎢ 면적의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19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지정을 시작으로 국내외를 비롯한 수많은 보호지역 지정을 통해 갯벌을 보호·관리해 왔다. 제1호 도립공원·습지보호지역·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람사르습지 등등. 이를 알리고 싶었음이리라.

▼ 날머리는 송도교(신안군 지도읍 읍내리)
몇 걸음 더 걸으면 지도와 송도를 잇는 연도교인 ‘송도교’가 나오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가 17.99km이니 꽤 빨리 걸은 셈이다. 4km이상 앞에서 출발시킨 집사람을 따라잡으려 서둘렀던 게 원인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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