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28코스(증도면사무소-증도관광안내소)

 

여행일 : ‘23. 4. 22()

소재지 : 전남 무안군 증도면 일원

여행코스 : 증도면사무소상정봉오산마을검산마을해저유물발굴기념비방축마을구분포저수지증도관광안내소(거리/시간 : 16km/ 16.43km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7코스를 걷는다. 10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다섯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증도의 절반 정도를 느리게 둘러보는 코스다. 문준경 전도사 순례길을 따라보는가 하면, 해저유물인양지에서는 700년 전의 못 이룬 항해를 아쉬워해본다. 거기에 드넓은 갯벌과의 한판 씨름은 덤이다. 물 빠진 갯벌도립공원은 짱뚱어·농게·칠게 등의 향연이 펼쳐지고, 반대편 간척지에서는 왕새우가 팔짝팔짝 하늘을 향해 뛰어오른다. 단 슬로시티라는 슬로건에 맞게 천천히 걷는 것은 필수. 그래야 숨겨진 보물들을 챙겨갈 수 있으니까.

 

 들머리는 증도면사무소(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지도로 들어온다. 지도사거리(지도읍 읍내리)에서 805번 지방도로 옮기면 송도 사옥도를 거쳐 증도로 들어간다. 곧이어 만나는 소금특산물판매소 앞 삼거리에서 문준경길로 직진하면 잠시 후 증도면사무소에 이른다. 서해랑길(신안 28코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판은 면사무소의 왼편에 설치되어 있다.

 증도는 느리게 둘러보는 섬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섬답게 모든 것이 더디게 흘러간다. 초반의 상정봉 구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전부가 평지길이니 그처럼 걷기에 딱 좋은 코스라 하겠다. 드넓은 갯벌과 다도해의 섬들을 눈에 담으며 느릿느릿 걸어볼 일이다.

 서해랑길 안내도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면사무소의 뒷산인 상정봉으로 오른다고 보면 되겠다. 해발이 127m 밖에 되지 않는 야산이지만 증도의 주산이라니 무시하지는 말자. 참고로 증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돈대봉(墩臺峰, 137m)이라고 한다.

 60m쯤 들어갔을까 느티나무 아래로 오솔길이 나있다. 초입에 상정봉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초입의 산죽지대를 벗어나자 시야가 확 트인다. 이곳 증도는 슬로시티, 걷기 편하다고 무작정 걸어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왼편에 펼쳐지는 풍경이 사뭇 빼어나기 때문이다. 너른 들녘의 안쪽 귀퉁이에 증동마을이 자리 잡고 있고, 들녘 너머에는 우전해수욕장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조금 더 올라 임도를 만났다싶으면 곧이어 상수원 물탱크가 나오고, 이곳에서 염산(또는 광암)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뉜다.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 산길은 급경사로 변한다. 그러나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통나무계단을 놓고 길가에다 밧줄로 난간을 만들어 힘이 들 경우 붙잡고 오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2. 나무계단이 끝나면 쉼터를 겸하고 있는 널따란 헬기장이 나온다. 남쪽 방향에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뛰어난 조망을 보여주는 장소라는 증거일 것이다. 상정봉에서, 아니 증도에서 가장 뛰어난 전망대이니 서둘지 말고 조망을 즐겨볼 일이다.

 전망대에 서면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갯벌에 놓인 짱뚱어다리. 그 너머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태평염전과 한반도 모양의 숲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허리가 잘리지 않은 통일된 한반도다. 우전해변의 배후 숲이 한반도를 빼다 닮은 것이다. 그 고즈넉한 풍경이 언젠가 사진전에서 눈길을 끌던 작품을 빼닮았다. 아름답다는 얘기다.

 조망을 즐기다가 메모지를 꺼내든다. 구간별 소요시간을 적기 위해서다. 그러다 문득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배낭 속에 넣어 버린다. 이곳은 슬로시티, 모처럼 느림보의 미학을 이행해 볼 기회였던 것이다. 대신 문준경 전도사가 순교 직전 드렸다는 기도문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본다. 다행이도 그 기도문엔 내가 할 수 없는 행동,  원수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난 역사인식도 제대로 못하는 대통령이 아니니까.

 느긋하게 조망을 즐기다가 정상으로 향한다. ‘기도바위 가는 길의 방향표시를 따르면 된다. ! 문준경 전도사의 제자인 이판일 장로(한국전쟁 때 순교했다)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읽어보는 게 좋겠다.

 평평한 능선길을 잠시 걸으면 문준경 전도사(1891~1950)’의 기도터가 나온다. 암태도에서 태어난 그녀는 17세에 지도읍 정씨가문으로 시집갔다. 이때 목포 북교동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1931년에는 서울의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해 사역자의 길에 들어섰으며 1933년 임자도의 진리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신안군 21개 섬들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좌익세력에 의해 순교했다.

 기도터에는 보혈이라는 시() 한 수가 적혀있었다. 덧붙인 문구로 보아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바위에서 문준경 전도사가 기도를 드렸던 모양이다. 참고로 보혈(寶血)이란 인류의 죄를 구속(救贖)하기 위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를 말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그녀의 순교를 그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나 더, 증도는 주민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토테미즘이 강한 일반적인 해안지방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특징이다. 이게 다 한국 최초의 여성 기독교 순교자라는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문준경 전도사의 제자이자 이판일 장로의 아들이라는 이인재 목사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헬기장과 대동소이하다)을 즐기다보면 어느덧 상정봉(上正峯, 127.7m) 정상이다. 정상은 의외로 허접했다. 봉우리의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삼각점과 이정표(짱뚱어다리 1.9Km/ 염산 3.0Km/ 면사무소 1.1Km)만 보일뿐 정상표지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산세(山勢)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하긴 구릉지 비슷한 산에서 특별한 볼거리를 찾는 것 자체가 잘못일 것이다.

 낮다고 해서 옛이야기 하나 갖고 있지 않을 리가 없다. 옛날 세상이 홍수로 뒤덮였을 때 이곳 증도도 물속에 잠겼는데 오로지 상정봉 정상만이 덜 잠겼다고 한다. 그때 물위에 드러난 정상의 모습이 상여(喪輿)를 닮았다고 해서 상정봉(喪頂夆)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정봉(上正峯)으로 불리고 있다. 상여의 뜻을 내포한 산의 이름이 주민들의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괜찮은 편이다. 아까 헬기장에서 보던 조망이 다시 한 번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니 서쪽 방향의 조망은 헬기장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증도에 들어오기 전, 지인으로부터 꼭 둘러보라고 추천받은 명소가 서너 곳 있다. 이곳 상정봉도 그중 하나다. 증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한반도 모양으로 생긴 우전해변의 해송 숲은 절대 놓치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검산마을, 서해랑길은 보물섬길로 연결되는 왼쪽이다. 하산 길 또한 곳곳에서 조망이 트인다. 우전해변의 해송 숲이 심심찮게 나타나지만 그보다는 점점이 흩어져 있는 다도해의 풍광이 더 눈길을 끈다. 다만 가파른 내리막길이 무릎이 시원찮은 이들을 괴롭히는 구간이기도 하다.

 가파른 계단길만 지나면 길은 고와진다. 잔디로 뒤덮인 산길이 폭신폭신하기만 한데 거기다 경사까지 거의 없다.

 그렇게 10분쯤 진행하면 보물섬길에 내려서게 되고, 탐방로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포장도로를 따른다. ‘모실길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구간이라 하겠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런 길은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도로를 따라 7분쯤 걷다가(중간에 방축리로 가는 도로가 나뉘기도 하지만 무시한다) ‘희망민박을 끼고 차도를 벗어나 해안으로 간다. 왼쪽 방향이다.

 잠시 후 이른 바닷가에는 오산(吾山)’마을이 들어앉았다. 법정 동리인 방축리를 구성하는 4개 자연부락(방축·검산·오산·염산) 중 하나로, 예전에는 수문개로 불리었다. 마을 앞에 배가 드나드는 수문개가 있었다고 해서다. 그러다 집이 다섯 채인데다 길까지 다섯 갈래로 나뉜다고 해서 오산으로 바꾸었다.

 바다는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증도의 갯벌은 물이 완전히 빠져도 표면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고 한다. 때문에 찰기로 윤이 나는 갯벌에 주변의 산과 마을, 하늘빛까지 고스란히 투영된단다.

 마을을 지나 썬 코스트 리조트로 간다. 이어서 리조트 후문으로 들어선 다음 숙소 지역을 관통해버린다. 리조트로 봐서는 고개를 내두르기 딱 좋은 구간이라 하겠다. 주인이나 투숙객들 모두 시도 때도 없이 지나다니는 트레커들을 좋아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리조트를 벗어나자 정자까지 갖춘 멋진 해변이 얼굴을 내민다.

 해변의 규모는 작았다. 하지만 잔잔한 파도나 모래의 질만큼은 여느 유명 해수욕장에 뒤질 게 없었다. ‘썬 코스트 리조트가 유명세를 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저런 멋진 해변을 자기 것처럼 품고 있는 리조트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해변에는 리조트에서 만들어놓은 그네가 차오르는 바닷물에 아랫도리를 적시고 있었다. 가히 환상적인 풍경이라 하겠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그네, 거기에 어여쁜 여인이라도 걸터앉는다면 인생샷 한 장쯤은 너끈하지 않겠는가.

 홍보용 입간판이 배웅하는 리조트의 초입에서 아까 헤어졌던 보물섬길 차도를 다시 만난다. 이어서 세목섬이 들어앉은 다도해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검산마을로 향한다. 가로수 삼아 심어놓은 야자수가 이국적인 멋을 선사하는 멋진 구간이다.

 텅 빈 선착장 너머로 보이는 섬은 세목섬’. 특별한 볼거리나 이야깃거리가 없는 밋밋한 섬이다. 그저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바닷길이 매일 열린다는 것 말고는...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모퉁이를 돌아 검산(劍山)’마을로 들어선다. 아까 지나왔던 오산마을처럼 방축리에 속하는 마을로, 원래 이름은 만들이었다. 마을 앞바다에 고기떼가 가득하다는 뜻이란다. 그러다 해적과 도둑으로 인해 마을이 피폐해지자 시주 나온 중의 의견에 따라 검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단다.

 탐방로는 마을을 스치듯 지나간다.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동구 밖(‘프롬 휴 펜션 방향)에 세워진 비석 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임신방액석(壬申防厄石)’, 돌에 새겨진 대로 액을 막기 위해 임신년에 세운 빗돌이다. 마을에 도둑떼의 출몰이 잦자 노승의 제안으로 마을 이름을 바꾸면서 저 빗돌을 세웠다는 것이다.

 탐방로로 되돌아와 노인 회관으로 간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해저유물을 최초로 발견·신고한 최형근씨 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집 앞에는 검생이의 달이란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검생이의 달 1990 KBS-2TV에서 방영된 드라마로 1976년 당시 해저 유물 발굴이 이루어진 검산(일명 검생이) 마을에서 보물과 관련된 마을 사람들 사이의 소동을 다룬 작품이다. 보물 소동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탐욕과 애증을 그려냈다.

 검산마을에서의 마지막 투어는 검산항이다. 증도에서 가장 큰 포구인데다 보여주는 풍경까지도 빼어나다니 어찌 거를 수 있겠는가. 해넘이가 무척 고운 곳으로도 입소문을 탔다고 한다. 밀물 때는 바다가 붉게 물들고 썰물 때는 갯벌이 깨진 거울 파편처럼 황홀하게 반짝인단다. 때문에 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진작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나?

 항구는 자그만 돌섬까지 방파제를 쌓고 그 안쪽에 선착장을 만들었다. 파도가 거친 날 어선의 피항지로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도 파시가 열리지 않았을까? 유홍준 작가가 소개한 목넹기가 이 부근이라고 했었는데... ‘목넹기 갈보야 뛰지 마라. 우네기(조기잡이 배) 떠나면 너나나나..’로 시작되는 그 목넹기 말이다.

 저 사진작가는 뭘 기다리고 있을까? 일몰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니,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해가 오메가라도 그려주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신안군 소속의 문화관광해설가 이종화씨는 바다로 떨어지는 해가 오메가 글자처럼 반사되어 보이는 현상을 오메가 일몰로 표현하면서 선택받은 자만이 볼 수 있다고 적고 있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20. ‘신안 해저유물 발굴해역에 이른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 ‘방축반도로 불러야할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해저유물발굴기념비 낙조전망대’, ‘700년 전의 약속(소단도의 카페·해저유물전시관)’ 등이 들어서 있다.

 그 초입은 주차장 차지다. 하지만 ‘700년 전의 약속이 공사 중이어선지 널디 너른 주차장은 자동차 대신 어망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4km쯤 앞서 출발한 집사람을 이곳에서 따라 잡았다. 아니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해풍과 햇볕에 말라가고 있는 생선이 욕심이라도 났던 모양이다. 그녀의 관심이 온통 건정에 쏠려있는 걸 보면 말이다. 참고로 우럭··참조기 등을 손질하고 염장한 다음 해풍과 햇볕에 말리면 건정이 된다.

 대단도와 증도 사이 해협에 꽂혀있는 저 지주들은 독살이 아닐까 싶다. 명덕섬과 대단도 사이로 들어온 바닷물이 독살을 지나 소·대단도 사이로 빠져나가는데, 함께 들어온 물고기가 저 독살에 갇히게 된다고 한다. 주민들은 그 물고기를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나? 참고로 독살이란 바닷가에 돌을 쌓거나 대나무 등을 엮어 만든 발을 설치하고, 밀물 때 물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여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방식이다. 증도에서는 갯벌에 대나무로 만든 독살을 일자로 길게 설치하는 방식을 사용한단다.

 건너편 소단도에는 특이한 외모를 지닌 이층 건물이 들어섰다. 유물과 함께 발견된 송·원대의 무역선, 즉 보물을 실었던 선박을 본 떠 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보물섬(Treasure Island)’이란 명찰을 내민다. 아니 서두에 적힌 ‘700년 전의 약속이 본명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특이한 외모의 건물을 머리에 인 섬이 그림처럼 고운데, 거기에 작은 섬들까지 합쳐지면서 그 자태는 한층 더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승화한다.

 건물은 일층은 카페, 이층에는 자그마한 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당시 보물선 안에는 도자기 2661, 동전 28018kg, 금속제품 729, 석제품 43점 등이 실려 있었는데, 이중 170여 점이 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단다. 박물관에는 유물들 외에도 보물선 인양 당시의 사진들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 옆에는 배의 갑판(甲板, deck) 모양으로 생긴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돛대(mast)까지 갖춘 의젓한 갑판이다. 갑판에 서면 유물을 건져 올렸다는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고, 그 왼편에는 대단도와 내갈도, 외갈도 등 비슷비슷하게 생긴 작은 바위섬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진입로 보수공사가 한창인 ‘700년 전의 약속은 들어가 볼 수 없었다. 8년 전 모실길을 답사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게시한 이유다. 그 아쉬움은 공사현장의 가림막을 살펴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림으로 소개하고 있는 ‘1004섬 신안 보물섬(Treasure Island) 증도의 풍경들이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소단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700年 前의 약속이라는 거대한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소단도에 들어선 보물선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원나라 상인이 일본에 전해주기로 한 약속. 지켜지지 못한 그 약속이 우리에게는 어부지리가 되었지만...

 조금 더 걸어 만난 갈림길에서는 바다를 향해 간다. 서쪽 끝의 바닷가 벼랑 위에 해저유물 발굴기념비가 세워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작정 빗돌 앞에 서는 우()는 범하지 말자.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나서 역사의 현장에 이르러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마침 초입에 어디서 어떤 유물들이 발견되었는지, 또 그 유물을 실은 배는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초입에 신안 섬 자전거길(증도 구간은 2코스이다)’의 안내도와 스탬프 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해 원점으로 돌아오는 회귀형 코스(48km, 4개 인증센터)로 증도의 얼굴마담인 갯벌과 소금꽃 핀 염전, 보물선을 건져 올린 해저유물발굴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청정의 공기를 마시며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해서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에 선정되기도 했다.

▼ 해저유물발굴비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바닷가 풍경, 해식애로 이루어진 바위벼랑이 제법 볼만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발굴된 유물의 중요성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빗돌의 크기도 대단했다. 참고로 신안해저유물은 1975년 도덕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중국도자기가 걸려 올라오면서 최초로 발견됐다. 이후 청자·백자·동전·생활용품 등 23천여 점에 달하는 해저유물이 1984년까지 발굴됐다. 이 신안해저유물 발굴은 동양문화사 연구에 길이 빛날 업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발굴된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발굴해역도 국가사적 제274호로 지정됐다.

 해저유물 매장해역 안내판 옆에는 슬로시티 보물찾기 호핑투어에 대한 안내판이 스탬프통과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증도에서 발견된 700년 전 보물들을 찾아 8개 숨은 명소를 관광한다는 컨셉으로 진행되는 스탬프 투어다. 느리게 보고, 천천히 걷고, 즐거운 체험을 하면서 보물을 찾아보라는 모양이다.

 빗돌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먼저 와있던 서해랑길 도반들이 바닷가로 더 나가보란다. 천애의 바위절벽 위에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는데, 그곳에서 빗돌이 명시하고 있는 유물 발굴지가 어디쯤인지를 직접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망대에 서자 서해바다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그 바다에는 청자 모양의 부표 하나가 떠있었다. 청자화병 등 23,0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된 지점임을 알리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란다.

 눈길을 살짝 돌리면 이 지역 해안선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다. 침식을 마친 리아스(Rias)식 해안절벽이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그 아래 갯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자신도 보아달라며 울부짖는다.

 소단도·대단도·내갈도·외갈도 등 꼬맹이 섬들이 일렬로 늘어선 반대편 풍경도 만만찮다. 바위투성이 섬에서 자라는 생명체는 차라리 경이. 작달막한 해송이 갖은 풍파를 다 이겨내며 꿋꿋이 자라고 있는 모습에서 생명의 강인함을 느끼게 된다.

 도로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나선다. 이후부터는 해안일주도로를 따른다. 증도의 자랑거리인 모실길’ 1코스인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이기도 한데, 이름 그대로 고즈넉한 해안 길을 걸으며 사색하기 딱 좋은 코스로 알려져 있다.

 몇 걸음 더 걷자 또 하나의 전망대가 나온다.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바닷가 벼랑에 기대듯 매달려있다. kakaomap에서 낙조전망대로 적고 있는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주워 담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어 보이니 말이다.

 지금은 대낮. 해 떨어지는 시간에 맞추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대신 먼 바다로부터 몰려온 거친 파도가 빚어놓은 절경을 눈에 담으면 되니 말이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곶()이 온통 깎아지른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손색이 없다.

 이 구간은 두어 곳에서 산길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이정표(글자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았지만)는 물론이고 초입에 쉼터용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맞다. 증도펜션민박 홈페이지는 이종화 문화관광해설가의 말을 빌려 바다 위에 흩뿌려져 있는 수많은 섬들, 산 위에서 보이는 수려한 풍광, 황금빛 노을과 서해낙조 등 아름다운 경관을 보유한 멋진 등산로라고 적고 있었다.

 두어 개의 작은 해수욕장도 눈에 띈다. 증도 주민들이 하트해변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목넘어·가운데·옥송구지 등 3개의 장불(‘장불은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밭(또는 갯벌)’의 전라도 방언이다)이 그려내는 선이 영락없는 하트()’라는 것이다. 모래사장 위쪽에 민물이 있는가하면, 썰물 때는 갯벌에서 낙지나 소라·고동 등을 잡을 수 있어 가족 단위 피서지로도 그만이라고 한다.

 김 양식용 지주 너머로 도덕도(‘도둑섬으로도 불리며 오른편은 호감섬’)가 떠 있다. 지금은 빈집 한 채만이 외로운 무인도지만, 한때는 14가구가 거주하면서, 초등학교 분교와 경찰서 초소까지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목포로 연결되는 여객선이 기항했을 정도라나?

 진행방향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채석장도 내다보인다. 지금은 산림복구까지 끝났지만, 저런 채석장이 있었기에 증도의 수많은 간척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처럼 생긴 모퉁이를 돌아서자 이번에는 만()처럼 움푹 들어간 해안선이 길손을 맞는다. 그곳에 푸른솔이라는 펜션이 들어서 있었다. 별장으로 지어진 것을 독채로 빌려준다는데, 여행 마니아들 사이에서 프라이빗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있단다.

 이즈음 방축마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옛 이름은 방죽끼미’, 마을에 큰 방죽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그러다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 섬이 많다 하여 방축으로 개명했단다. 방축·오산·염산·검산 등으로 구성된 방축리의 중심마을이기도하다.

 마을 앞 해변은 웬만한 유명 해수욕장이 부럽지 않았다. 300m 남짓의 백사장은 흡사 밀가루라도 되는 양 보드랍기 짝이 없고, 그게 울창한 송림까지 끼고 있다. 방축(防築)이라는 마을 이름에 어울리는 풍경이라고 하겠다.

 해변의 끝은 시가 있는 공원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놓았다. 하지만 풍선처럼 생긴 기구(漁具가 아닐까 싶다)만 매달려 있을 뿐, 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시를 지어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방축마을을 지나 임도로 들어선다. 걷는 내내 다도해의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적당히 굽이치는 찻길을 따라 고도를 높이니 아기자기한 바다 풍광이 발아래 깔렸다. 도덕도·호감섬·대섬·부남섬 등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사이좋게 늘어선 모습이 무척 곱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30. ‘나룻구지라는 작은 선착장에 이른다. 이종화 문화관광해설가는 이 부근을 목넹기(모실길안내도는 향월포로 표기)’로 적고 있었다. 크고 작은 섬들로 막힌 바다가 호수를 연상시킨다면서 말이다. 맞다. 자은도와 증도를 아우르는 이 일대의 바다에는 철마다 조기·민어를 쫓는 수백 척의 배들이 오갔다고 한다. 뱃사람의 돈을 쫓아 술과 색시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서해에 비바람이 들이치는 날이면 임자도의 타리파시와 더불어 가장 소란스럽던 항구였다고 한다. 잡아온 고기는 부산이나 시모노세키로 보내질 때까지 얼기설기 지은 생선창고로 옮겨졌고, 그물을 손질하는 사이 바다에서 먹을 쌀··땔감을 실었고, 짬이라도 나면 색시를 품었다.

 모퉁이를 돌아 임도를 빠져나오면 기다란 방조제가 반긴다. ‘장성저수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니 장성방조제 쯤으로 기억해두자. 아니면 방축마을 곁이라는 핑계를 대며 방축방조제라 우겨도 될 일이다.

 방조제 안쪽은 대하양식장이 들어서 있었다. 탐방로는 양식장의 안쪽을 에두르며 나있다. 하지만 난 방조제 둑을 따라간다. 양식시설이 한눈에 쏙 들어오니 일부러 에둘러 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방조제를 선택한 덕분에 500m 정도를 단축할 수 있었다.

 왼쪽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아니 시선의 끄트머리에 희미하게 임자도가 들어앉았다. 그 왼편에는 대섬과 부남섬. 저런 섬들이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기에 방축이라는 지명을 낳았고, 사람들은 저 바다를 바다호수라 부르기도 한다.

 방조제를 지나면 또 다시 임도로 올라선다.

 6분쯤 더 걸어 염산 방조제로 내려선다. 간척지의 안쪽에 들어앉은 염산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나저나 이 구간은 방조제로의 통행이 불가능했다. 방축마을 방조제에서의 경험을 살려 주변을 살펴봤지만 잡초만 무성할 뿐 길은 나있지 않았다. 방조제 안쪽으로 난 농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방조제가 만들어놓은 인공 습지는 웃자란 갈대로 가득했다. 가을에 찾으면 염산마을이 자랑하는 볼거리로 등장할 수도 있겠다. 참고로 염산(廉山)’ 마을의 옛 이름은 산너머이다. 산너머에 마을이 있다 해서인데, 언제부턴가 산 좋고 밭이 기름지다 하여 염산으로 개칭했다.

 바닷가 방조제와 그 안쪽의 농로. 그 농로의 좌우로는 간척사업이 만들어놓은 둠벙과 논이 펼쳐진다. 신안에 속한 섬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염산방조제를 지나면 돈대봉 임도가 시작된다. 그 초입에 작은 모래해변이 형성됐는데, 주민들이 선착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듯 어선 두어 척이 모래사장에 올라앉아 있었다.

 돈대봉(墩臺峰)의 허리께를 에둘러가는 임도는 길이가 2km쯤 된다. 하지만 가슴에 담을만한 특별한 볼거리는 갖고 있질 못하다. 그저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임도가 나있다고 보면 되겠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20. 임도를 벗어나자 구분포 방조제가 반긴다. 방조제 아래에 들어선 엄청난 규모의 대하양식장이 눈길을 끄는 지역이다. 하지만 kakaomap에서 포인트로 삼고 있는 구분포저수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

 대하양식장을 지나 또 다른 임도로 들어선다. 서해랑길 28코스의 대부분은 증도자전거길과 겹친다.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에 꼽혔을 정도로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을 탄 코스이다. 덕분에 라이딩을 즐기는 젊은이들과 살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 구간은 신안군이 자랑하는 명품 둘레길인 모실길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1코스)’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길가에 돌탑을 쌓는 등 탐방로 조성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했다.

 그렇게 10분 남짓 걷다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증도대교가 얼굴을 내민다. 사옥도(沙玉島)와 증도(曾島)를 잇는 1,964m 길이의 아치형 연도교이다.

 3~4분쯤 더 걸어 광암 들녘에 내려선다. 이어서 수로 곁으로 난 농로를 따라 805번 지방도로 간다. 화사하게 피어난 유채꽃 향기가 고갈된 체력까지 보충해주는 기분 좋은 구간이다.

 농로 왼편, 그러니까 광암 방조제가 있는 쪽으로도 꽤 너른 농경지가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오른편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평야지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이곳 증도가 풍요로 넘친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눈앞에 펼쳐지는 저런 풍경은 보고 그 누가 섬이라 무시할 수 있겠는가.

 날머리는 증도 관광안내소(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10분 조금 못되게 들녘을 걷자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에 올라서고 곧이어 관광안내소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서해랑길(신안29코스) 안내도는 슬로시티보물찾기 호팅투어 스탬프 함과 함께 관광안내소 곁에 세워져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가 16.43km이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오늘도 집사람이 함께 해 주었다. ‘너와 나가 아닌, ‘우리이길 원하기에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현상이다. 다시 태어나도 내 아내의 남편이 되고 싶다던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처럼 그 세상이 어떠하더라도 아내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난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난 천만 번 윤회를 거듭하면서도 내 아내와 함께하고 싶다. 세상사 힘들기만 한데, 고집스런 꿈을 찾아가는 날 믿고 따라주며 그 꿈이 이루어지길 빌어주는 여자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