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안녕하세요?"
비록 날씨는 흐리지만 마냥 기분이 좋은 아침이다.
차창을 있는대로 다 내리고,
CD음향 시끄러울 정도로 높이고.
연가에 편집돼 있는 제목도 모르는 곡을 그냥 귀에 들리는 대로 따라 흥얼거려본다.
양재동 화훼공판장 사거리 오늘도 신호는 세번을 기다린 후에야 통과할 수 있다.
그냥 흥겨움에 어깨짓까지 하다 문득 옆을 돌아본다.
어! 옆차 운전석의 아가씨가 열심히 화장하고 있다.
"하이! 안녕하세요?"
아무 의미도 없다.
다만 나의 이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드리고 싶을 따름이다.
화장중이던 아가씨 놀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떡인 후 창문을 올려버린다.
선팅안된 유리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입모양
"아침부터 별 미친놈 다 보겠네"
그녀가 무어라 하든 어떠하리... 이 즐거운 아침에...
이 즐거움...
날씨가 흐리니 날씨 때문은 아니다.
오늘 따라 덜 밀리는 도로사정? 이것도 아니다.
"아빠! 아침드세요!"
바로 이것 때문에 마냥 즐거운 아침인 것이다.
한밤중에 잠이 깨어, 평소의 습관대로 소설책좀 읽다 잠이 든 때문인지
7시가 다 되도록 자고 있었나보다.
평소에 이시간에 깨면 아침식사 건너뛰고 출근하는데
오늘 아침은 진수성찬에 트림까지 하며 출근하고 있는데 이 어찌 아니 즐거울손가?
오늘따라 큰애가 아침준비를 다 해놓고 나를 깨워준 덕분이다.
새로운 메뉴로 계란후라이, 동그랑땡, 오리무침에 해물탕
(사실 이건 지난주말 냉장고에 보충해 놓은 인스턴트다)에
기존의 밑반찬까지 합치니 근래에 보기 드문 진수성찬이다.
"웬일이냐?"
"한밤중에 깨어보니 아빠가 책읽고 있길래, 저러다 늦잠 잘꺼고...
또 아침밥 못먹고 가실것 같아 내가 준비 했지유~"
이 얼마나 효자인가!
내가 낳아 놓고도 참 신통방통하게 잘 낳아 놓은것 같다.
성의만 갖고도 밥맛이 새록새록 솟구칠건데,
하물며 요리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는 정통파의 요리솜씬데 밥맛이 꿀맛 아니겠는가?
헤피 화요일!!!!
이거 내가 늙은겨? 아닌겨?
늙으면 초저녁 잠은 많고 새벽잠이 없다고 했잖여?
그런디 나는 어제 저녁 방송사 생방송 마치고 귀가한 탓이었다지만
하여튼 두시가 다 되어서야 잠들었으니 늙은게 분명 아녀
그럼 매일 아침 6시가 못돼어 눈이 떠지는건 왜인겨?
그것참 디게 헷갈리네!
아녀 내마음이 청춘인디 내가 늙긴 왜 늙어! 절대 못 늙는닷!
"기상! 빨랑 기상!"
오늘 아침은 찌개 안쳐놓고 못쓰는 글 한편 적다보니 7시...
8시 이전에 사무실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덕분에 우리 애들 물적셔 냉동실에서 조금 얼린 타월로 윗몸 마사지
(애들 잠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는 방법중 하나로 효과 만점임)한 탓인지
곧바로 식탁으로 모인다.
"와~ 아빠 된장찌게 디게 맛있다. 새로나온 요리책 샀수?"
"얌마! 원래 내 솜씨가 좋잖여~"
히~히~
평소에 내가 아무리 진실만을 추구한다 해도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받은 인스탄트란 말은 차마 못하겠다.
사실 제일제당에서 나온 된장찌개에
내가 한 일은 감자, 대파, 청양고추
거기다 약수를 부어넣은 것 밖에는 없는데...
그렇다고 나는 아무것도 안했다고 말 할 수는 없잖여~
그래도 감자 깎고 등등 쪼금은 고생 혔는디
그래도 인스탄트 얻어 먹은 죄루 제일제당이라는 메이커를
여기서 선전하고 있으니 내가 양심적인건 확실하잖여~~
글구 제일제당은 얼마전까지 업무 땜시로
나와 머리를 맞댄 일이 자주 있었기에 더욱 반갑네 그랴~
오늘도 맑은 날씨가 유지된다고 하니 할 일이 있구먼~
어제도 맑았기에 습기는 다 가셨을 거구
비오는 날이 디게 싫다는 그니에게 전화를 하여
화천은 물건너 갔으니 서울 근교라도 드라이브 하자고 해야겠당~
그리구 얼마전 보아둔 팔당호변의 카페에서 촛불 켜놓고 스테이크에 적포도주,
최대한 무드를 조성하여 그니의 맘을 흔들어 봐야겠다.
마침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
울 회사 사장님 휴가 가는 날 이거든~~~~
벌써 한시가 넘었다.
오늘은 휴가가 시작되는 날이다.
올해는 무주리조트에 보금자리를 틀고 아버님 3형제와 고모한분, 그리고 거기에 따른 식솔들을 다 초대했으니 꽤 많은 인원이 모일거다. 거기에 맞는 숙소를 구하다보니 콘도가 두개가 필요했고 그걸 마련하느라 제법 고생을 했다.
열시에 부모님 모시고 출발하려면 지금쯤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지만 머리에 염색약 바르고 대기중이다.
작년부터 부쩍 세치가 늘더니 요즘은 제법 흰머리라고 불러야 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놀러가는길 그냥 두면 어떻겠는가 마는 일년에 겨우 두세번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 아직은 자식이 젊다는걸 보여주고 싶어서이고,
항시 스스럼없이 말씀하시고 나무라시는 부모님이 혹시라도 같이 늙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하고 싶으신 말 못하실까봐다.
아버님의 연세 벌써 일흔넷 근래에 부쩍 늙으신것 같다.
누군가 말하길 자주 보면 변함을 느끼지 못한다는데 내눈에 아버님의 변하심이 느껴짐은 평소에 자주 뵈옵지 못함이고, 매일 문안을 드려야 한다는 성현의 말씀을 못 지키는 것은 차지하고 요사이는 바쁘다는 핑계로 일주일에 한번도 찾아뵙질 못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이번의 짧은 휴가동안 그동안의 불효를 다 씻을 수야 있을까마는 짧은 동안이나마 모든 근심걱정 다 털어버리고 환하게 웃는 부모님과 그 형제분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어느덧 염색약 씻을 시간이 다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