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아빠! 아직 안주무시고 계시면 맥주한잔 사주슈~, 지금 양제동 화훼시장 사거리 지나고 있으니 5단지로 나오면 돼유~""

하루일 대충 마무리 짓고 사무실을 나서니 10시가 거의 다 되어간다.

집에 돌아오는 차속에서 애들로부터 하루일과를 보고 받고나니(피서중에는 매일밤 10시에 전화하기로 약속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집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와이프 집에 없는거야 이제는 익숙해져 있지만 애들까지 없는 텅빈 집은 처음이라서 그럴까?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지고, 그러다 보니 하루종일 문이 닫혀있어 찜통이 되어 있을 아파트가 겁난다.

어디가서 맥주라도 한잔 마시며 시간좀 죽이다 시원해 지면 들어가야지!
개포 5단지에 사는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동료에게 전화하여 대뜸 술부터 사주라함은 거절을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사실 별로 술생각이 없을 때 술 사준다 하면 거절을 할 수 있지만, 대뜸 술부터 사주라 하면 무슨 괴로운 일 있나 하고 거절치 못하는게 가까운 술친구들의 습성이다.

10시반이 못되어 개포5단지의 생맥주 집에 도착할 때 넘치는 손님들 서빙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주인 내외분이 반갑게 맞아 줌은 평소에 이집을 자주 들림이고, 특히 생맥주에 대해서는 회사보다도 자기가 더 낫다는 주인장의 자랑을 항상 맞장구를 치며 들어주기 때문이다.

야외에 자리를 잡고 골뱅이에 생맥주를 주문하자 마자 동료가 도착한다.
오늘도 역시 시원한 맥주에 골뱅이, 알큰한 파저리, 따끈따끈한 계란말이...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일미이다.

사실 이집 주인장의 자랑 말마따나 얼린 잔에 가득 채워주는 생맥주는 오장육부를 시원케하고, 뭐 파무침의 독특한 맛을 중화시키기 위한다는 계란말이와 파무침을 같이 먹는 맛은 따뜻함과 차거움이 함께 하는 것이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다. 맥주의 숙성도 온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주인장의 말에 알지는 못하지만 하여튼 다른집 보다 나은것 같으니 맞장구를 쳐주고, 그맛에 주인장 아저씨 시간만 나면 우리 좌석에 앉는다.

500cc짜리 몇잔 하고 기분 좋은김에 현금 계산한 후 집에 들어오니 자정이 다 되었다.
아직도 집안은 찜통이라 에어컨 시간 예약 해 놓고 침대에 드니 언제 잠든지도 모르겠고, 아침에 눈을 뜨니 여섯시다. 술덕분에 한번 뒤척이지도 않고 깊게 잠을 잘 잤다.

아침에 눈뜨니 온 집안이 썰렁한게 다시 외로움이 느껴진다.
아무도 없는집 일요일에 이미 밥은 떨어졌고, 별수 없이 냉장고에서 식빵을 꺼내다가 입맛을 잃어 그냥 집을 나선다. 에이 남들은 다이어트로 아침밥 굶는다는데 뭐~ 나도 다이어트다!

7시경에 나선 덕분에 금방 택시가 잡혀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술집 옆에 파킹해 놓은 차는 밤새 내린 비로 깨끗이 세차가 되어있다.

그나저나 하고 싶지 않은 다이어트를 어거지로라도 해서 좋고, 세차 공짜로 함도 좋지만 내일 까지는 혼자 있어야 하는데 날마다 술마실 수는 없고... 또한 애들이 커가는 이상은 앞으로 자주 이런 일이 생길텐데 그럴때마다 술로 위안을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외로움 극복 훈련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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