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조지아 – 므츠헤타, 즈바리 수도원
여행일 : ‘23. 5. 31(수) - 6. 12(월)
세부 일정 : (아제르바이잔)바쿠→고부스탄→쉐키→(조지아)카헤티→시그나기→트빌리시→(아르메니아)알라베르디→세반→예레반→코르비랍→에치미아진→(조지아)트빌리시→아나우리→구다우리→카즈베기→므츠헤타→바투미→(튀르키에)리제
특징 : ① 코카서스(Caucasus) :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있는 지역으로 현지어로는 ‘캅카스(Kavkaz)’라 부른다.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의 산악지역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역사·문화를 자랑하는 아제르바이잔·조지아(그루지아)·아르메니아가 있다. 뻔한 코스와 일정,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연일 북적거리는 기존 관광명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여행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지역이다.
② 조지아(Georgia) : 코카서스 3국 중 하나로, 지정학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곳에 위치한다. 러시아 남하정책의 접점이자. 서구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이동 통로이기도 하다.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외부세력과 문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한편 조지아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맥과 고원이다. 하지만 그 사이를 흐르는 강과 계곡, 초원이 빚어낸 멋진 풍광으로 인해 ‘코카서스의 스위스’라는 별칭이 붙었다.
③ 므츠헤타(Mtskheta) : 3,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도시로 BC 3세기~AD 5세기 ‘이베리아(Iberia) 왕국’의 수도였다. 므츠바리(Mtkvari)와 아라크비(Aragvi),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 잡은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덕분에 고대 무역로가 지나가던 흔적들이 종종 유물로 발견된다. 5세기에 조지아의 수도는 트빌리시로 이전됐지만 므츠헤타는 여전히 조지아정교회의 정신적 수도다.
▼ 트빌리시를 떠난 버스는 아라그비강(Aragvi river)이 쿠라강(Kura river, 조지아에서는 ‘꽈리강’으로 부른단다)에 합류되는 지점에 이른다. 그곳에 고대 도시 ‘므츠헤타(Mtskheta)’가 있다. 기원전 4세기부터 약 천년 동안 이 지역을 지배하던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조지아 여행은 ‘시그나기’를 거쳐 수도인 ‘트빌리시’로 들어온 다음, ‘아나우리’와 ‘구다우리’를 지나 ‘카즈베기’로 간다. 돌아오는 길에 ‘므츠헤타’를 둘러본 다음, ‘바투미(흑해 연안에 위치한 조지아 제2의 도시/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지도에는 누락되어있다)’를 거쳐 튀르키에의 ‘리제’로 넘어간다. 하나 더. 중간에 트빌리시에서 아르메니아를 돌아본 다음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오기도 한다.
▼ ‘즈바리 수도원(Jvari Monastery)’은 가파른 산 정상에 있었다. 자동차가 아니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위치다. 그런 곳에 걸터앉아 천년고도 ‘므츠헤타’를 보호라도 하려는 듯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1994년 므츠헤타의 다른 역사적 유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우리를 태운 버스는 수도원 바로 아래에 있는 주차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올라오는 도로는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완만했다. ‘즈바리 수도원’은 4세기 초 기독교가 전파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십자형으로 세웠다고 한다. 중세 말에는 성벽과 입구를 돌로 쌓아 요새화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에 축조되었던 건물 일부가 현재도 보존되어 있다. 참고로 조지아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은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온 성녀 ‘니노’다. ‘즈바리’는 조지아어로 ‘포도나무’라는 뜻. ‘니노’ 성녀가 포도나무로 된 십자가를 가져온 것을 기념하여 지었다는 얘기다.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로 기적이 행해지자, 이 교회는 순례자들의 필수코스가 됐단다.
▼ 수도원은 ‘미리안 3세’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세운 ‘나무 십자가’ 위에 지었다고 했다. 334년 성녀 ‘니노’의 노력으로 미리안 3세가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즈바리 언덕에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는 것이다(성녀 니노가 세웠다는 설도 있단다). 그러다 585-604년 카르틀리의 공작 ‘스테파노즈 1세’가 십자가가 있던 자리에 수도원을 세웠으니 이게 지금의 ‘즈바리 수도원’이다. ‘즈바리’는 조지아어로 ‘십자가’, 그러니 ‘십자가 수도원’이란 뜻이 되시겠다. 참고로 전설은 사냥을 나간 미리안 왕이 짙은 안개에 갇혀 꼼짝할 수 없게 되면서 시작된다. 미리안은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드렸으나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다급해진 그는 니노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드려본다. 그러자 순식간에 안개가 걷혔다.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인 미리안은 그 즉시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세례를 해 줄 수 있는 사제를 보내줄 것을 청하였단다.
▼ 건물은 본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반원형 돌출부가 있으며, 각 4개의 돌출부 사이에는 본당과 부속 예배당을 연결해 주는 원형모양의 통로가 있다. ‘테트라 콘’ 양식이라 불리는 이 건축양식은 조지아 교회의 건축 양식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남 코카서스 전 지역에 있는 교회의 모델이 되었다.
▼ 전체적으로 무척 낡아보였다. 비바람에 부식된 채로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나 혼자만의 오해일까? 명색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는데 말이다. 아니 그런 내 추측은 옳았다. 조지아 정부의 부실한 관리를 지적받은 이 유적은 2004년 세계 유적재단(World Monuments Fund: WMF)에 의해 ‘관리해야 하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단다.
▼ 풍광 좋은 수도원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수도원이 모두에게 개방된 것은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라고 했다. 소련 시절에는 군사기지로만 사용되었었기 때문이다.
▼ 성당 입구. 누렁이 한 마리가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코카서스 여행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익숙한 풍경이다. 모든 개들을 국가가 관리해주기 때문일 것이다(개들의 귀엔 그 증표로 단추만 한 표지가 붙어 있다). 문득 그늘 한 점 없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낮잠을 자던 이집트 개들이 생각난다. 거기에 비하면 조지아 개들은 천국에서 사는 셈이다.
▼ 파사드 외부는 얕게 새긴 조각품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 헬레니즘과 사산왕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남쪽 정문 입구에 있는 팀판(그리스식 건축의 지붕에 의해서 구획된, 박공지붕 윗부분의 벽)은 십자가의 영광을 표시하는 양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파사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장식한 양각이 있다.
▼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십자가가 낯선 이방인을 반긴다. 중앙에 천장까지 높이 솟은 커다란 나무십자가를 세워놓았다. 미리안 3세가 세웠다는 십자가이다. 십자가 앞에 서니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제단 위 십자가에 닿으면서 내 마음까지 포근하게 감싸준다. 저 빛과 함께 성령께서 찾아왔었나 보다.
▼ 십자가의 좌대는 이콘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만큼 신성시되는 십자가라는 얘기일 것이다.
▼ 성화에 손을 댄 채로 기도드리고 있는 조지아 여성. 저 성화는 이곳 즈바리 수도원의 십자가가 하늘나라까지 이어짐을 나타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경배를 드리는 신자들의 마음도 하느님에게까지 전해질 것이고...
▼ 이코노스타시스(ikonostasis, ‘이콘을 거는 칸막이’라는 뜻, 지성소와 회중석을 구분하는 칸막이로 여기에 이콘을 건다)인 듯.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의 주위에는 이콘 몇 점이 걸려 있었다.
▼ 꽃으로 치장된 작은 경당도 눈에 띈다.
▼ ‘성녀 니노(Saint Nino : 280-332)’의 이콘. 조지아의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4세기 경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카파도키아의 난민 출신 수녀인 성녀 니노는 계시를 받고 조지아 땅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고생 끝에 조지아의 남부 아할치헤주의 ‘자바헤티’를 거쳐 ‘어버니시’에 도착했고, 이어서 상인들 틈에 끼어 ‘므츠헤타’로 들어왔다. 니노는 므츠헤타의 유대인 지구에 머물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돌보면서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때 여러 기적을 행하였는데 특히 당시 카르틀리를 다스리던 미리안 3세의 왕비 나나의 병을 낫게 하는 기적을 행했다고도 전해진다.
▼ 벽에 걸린 성화 몇 점 외에 성당 내부에는 별다른 장식물이 없었다. 나무십자가의, 나무십자가에 의한, 오롯이 나무십자가만을 위한 수도원이라고나 할까?
▼ 또 다른 이콘.
▼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앞에는 꽃이 바쳐져 있다. 누군가가 촛불까지 켜 놓았다.
▼ 즈바리 수도원을 있게 한 ‘미리안 3세(Mirian Ⅲ)’와 ‘나나(Nana)’ 왕비의 이콘이 아닐까 싶다.
▼ 수도원 입구의 언덕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즈바리수도원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 발아래로 쿠라강과 아라그비강이 하나의 물줄기로 합해져 흘러간다. 두물머리에 들어앉은 므츠헤타가 강줄기에 녹아들며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웅장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라고나 할까?
▼ ‘꽈리강’은 조지아의 젖줄이다. 그것은 조지아의 중심도시 대부분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꽈리강으로부터 얻는다. 그러므로 4500년 전부터 꽈리강을 따라 주민들이 거주하며 문명과 문화를 이룩해 왔다.
▼ 두 강의 물 색깔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꽈리강이 흙탕물인데 반해 카프카스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아라그비 강’의 색깔은 훨씬 더 맑고 깨끗하다.
▼ 건너편 언덕은 청춘남녀들로 가득했다. 결혼식을 막 끝내고 왔는지 하나같이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 어떤 상태일지가 궁금해 줌을 당겨봤다. 문득 결혼식 날 500리터(한 사람당 1.5리터) 이상의 와인을 준비한다는 조지아 신부 아버지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 누구에서도 술 취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지아 여행 ⑦ : 천년고도, 그리고 조지아정교회의 성지. 므츠헤타-스베티츠호벨리 성당 (2) | 2024.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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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 조지아 – 카즈베기, 게르게티 츠민다 시메바 교회
여행일 : ‘23. 5. 31(수) - 6. 12(월)
세부 일정 : (아제르바이잔)바쿠→고부스탄→쉐키→(조지아)카헤티→시그나기→트빌리시→(아르메니아)알라베르디→세반→예레반→코르비랍→에치미아진→(조지아)트빌리시→아나우리→구다우리→카즈베기→므츠헤타→바투미→(튀르키에)리제
특징 : ① 코카서스(Caucasus) :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있는 지역으로 현지어로는 ‘캅카스(Kavkaz)’라 부른다.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의 산악지역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역사·문화를 자랑하는 아제르바이잔·조지아(그루지아)·아르메니아가 있다. 뻔한 코스와 일정,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연일 북적거리는 기존 관광명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여행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지역이다.
② 조지아(Georgia) : 코카서스 3국 중 하나로, 지정학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곳에 위치한다. 러시아 남하정책의 접점이자. 서구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이동 통로이기도 하다.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외부세력과 문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한편 조지아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맥과 고원이다. 하지만 그 사이를 흐르는 강과 계곡, 초원이 빚어낸 멋진 풍광으로 인해 ‘코카서스의 스위스’라는 별칭이 붙었다.
③ 카즈베기(Kazbegi 또는 스테판츠민다) : 조지아는 맛좋은 와인이 유혹하는 와인 천국이고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트빌리시 북쪽 차로 3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하는 산악지역 ‘카즈베기’가 단연 으뜸이다. ‘카즈베기’는 구소련 시절에 부르던 이름이고, 현재는 ‘스테판 츠민다’로 불리고 있지만 그래도 현지에서는 ‘카즈베기’라는 지명이 더 쉽게 다가온다.
▼ 창밖으로 지나가는 고산지대의 풍광에 젖다보면 어느덧 ‘카즈베기’에 도착한다.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가 산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다는 신화의 땅이다. 조지아인들의 정신적 고향인 ‘게르게티 츠민다시메바(성 삼위일체) 성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는 해발 1,870m쯤 된다는 ‘게르게티(Gergeti)’마을 주차장에서 주어진 임무를 마친다. 이어서 사륜구동차량으로 갈아타고 ‘츠민다시메바 교회’로 올라간다. 포장까지 된 도로이지만 폭이 좁은데다 커브가 심하고, 거기다 경사까지 가파르기 때문이다.
▼ 조지아 여행은 ‘시그나기’를 거쳐 수도인 ‘트빌리시’로 들어온 다음, ‘아나우리’와 ‘구다우리’를 지나 ‘카즈베기’로 간다. 돌아오는 길에 ‘므츠헤타’를 둘러본 다음, ‘바투미(흑해 연안에 위치한 조지아 제2의 도시/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지도에는 누락되어있다)’를 거쳐 튀르키에의 ‘리제’로 넘어간다. 하나 더. 중간에 트빌리시에서 아르메니아를 돌아본 다음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오기도 한다.
▼ 자동차로 10분 남짓 올랐을까 상부주차장에 이른다. 교회 앞에 또 하나의 주차장이 있지만, ‘츠민다시메바 교회’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니 잠시 쉬었다가겠단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을 보여주려는 택시기사의 배려라고 보면 되겠다.
▼ 차에서 내리자 눈앞이 훤해진다. 푸름으로 젖은 초원 너머, 광활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언덕에 조지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Gergeti Tsminda Sameba Church)’가 다소곳이 앉아있는 것이다. ‘츠민다(Tsminda)’는 ‘성스러운’이라는 뜻이고, ‘사메바(Sameba )’가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뜻이니 ‘게르게티에 있는 성 삼위일체 교회’쯤 되시겠다.
▼ 교회는 거대한 산릉을 병풍삼아 오롯이 앉아있다. 교회 왼쪽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산은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는 ‘샤니 산(Mt. Shani : 4,451m)’일 것이다.
▼ 하도 높다보니 구름이 산허리에 걸려있다. 수천 미터의 산허리를 감싸며 제 모습을 시시때때로 바꾼다. 하늘 아래 구름이요 그 아래가 산이련만, 코카서스에서는 구름 위의 산이 일상인 모양이다. 그런 산의 꼭대기에는 6월 하순인데도 눈이 하얗게 쌓였다.
▼ 반대편에는 ‘카즈벡 산(Mt. Kazbek)’이 있다. 하지만 구름을 뒤집어쓴 채 속살 보여주길 거부한다. 그렇다고 트레킹까지 마다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민둥산을 오르고 있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는 걸 보면 말이다. 택시기사의 말로는 8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설마 Altihut, Bethlemihut(METEO)를 거쳐 카즈벡산 정상까지 다녀온다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튼 트레킹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도 구해주지 않는다니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챙길 수밖에 없을 듯... 참고로 ‘카즈벡 산’은 조지아인들에게 성산(聖山)과 같은 존재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와도 연결된다. 제우스에게 벌을 받아 프로메테우스가 묶였다는, 지구를 받치고 있는 바위산이 카즈벡 산이라는 것이다. 제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독수리가 간을 쪼게 하는 무서운 형벌을 내린다. 낮에 길어난 간은 밤마다 독수리에게 쪼여 먹혔고, 이런 고통은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죽이고 사슬을 풀어줄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아손과 아르곤 원정대’라는 또 다른 신화와도 관련이 있다. 아르곤이 황금양털을 취하러 찾아간 세상의 동쪽 끝이기도 하다.
▼ 조망을 즐긴 다음 교회 아래에 있는 다른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택시를 타고 갔음은 물론이다.
▼ 주차장에는 기념품판매점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지만 문은 열고 있지 않았다.
▼ 일단은 주차장 뒤에 있는 언덕부터 올라보기로 했다. 꽤 많은 젊은이들이 서성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 꼭대기에는 망원경까지 만들어놓았다. 뭔가 가슴에 담아둘만한 볼거리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그런 내 예상은 적중했다.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먼저 교회 쪽부터 눈에 담는다. 오른쪽 포장길은 교회로 올라가는 길. 왼쪽의 오솔길은 트레커들이 게르게티 마을에서 올라오는 산길일 것이다. 성질 급한 사람들도 꽤 되는 듯 교회로 곧장 올라다는 샛길도 눈에 띈다.
▼ 푸른 언덕 위에 우직하게 서 있는 교회는 고풍스러운 자태가 돋보인다. 14세기에 건립된 이 교회는 조지아 케비(Khevy) 지방에서 교차식 돔 지붕 형식을 띠는 유일한 종교 건축물이란다. 본당을 포함해 종탑, 성직자들이 거주하던 건물들로 구성된 작은 복합단지를 이루고 있다. 워낙 높고 험준한 산세에 자리한 덕분에, 국가 재난 시 성 니노의 십자가를 비롯한 조지아정교회의 주요 성물들을 므츠헤타(Mtskheta)로부터 피신시키는 성소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 시선을 조금 비틀자 구름 속에 갇혀있던 카즈벡 산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코카서스 산맥에서 일곱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첫 번째가 유럽 최고봉인 엘브루스(Elbrus : 5,642m). 조지아에서는 시카라(Shkhara : 5,193m)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수년 전까지 융가(Janga : 5,051m)가 두 번째였으나 2019년 조지아 정부의 실측 결과 5,053m로 밝혀져 순서가 바뀌었다. 카즈벡의 뜻은 그루지아어로 ‘Glacier Peak’ 또는 ‘Freezing Cold Peak’를 의미한다. ‘얼음산’이나 ‘만년설산’ 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 반대편에는 ‘샤니 산’이 있다. 조지아의 산간지역. ‘카프카스 산맥’에 속하는 산봉우리들은 평균 높이가 4,600m를 넘길 정도로 높다. 때문에 항상 운무가 잔뜩 끼어있어 평상시 산봉우리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샤니 산은 자신의 속살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행운이라 하겠다.
▼ 이제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로 올라가 볼 차례이다. 조지아 여행의 필수 코스이자 하이라이트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주차장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담벼락은 투박하면서도 우람한 것이 영락없는 성벽이다. 맞다. 오스만투르크 전성기와 맞물린 14세기에 건립된 이 교회는 종교적 기능 말고도, 외세의 침입을 막는 요새의 역할까지 수행했다고 한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즈벡의 산자락에 교회를 지어놓고, 전쟁 때는 이곳으로 들어가 외적과 맞섰단다.
▼ 교회는 돔이 있는 십자가 모양의 정사각형 건물이다. 이 교회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건축물의 아름다운 조화가 특징으로 꼽힌다. 한쪽을 바라보면 하늘 높이 솟은 카즈벡 산이 펼쳐지고, 또 다른 한쪽에는 보석처럼 알알이 박힌 카즈베기 마을의 전경이 품 안에 들어온다. 하늘과 맞닿은 산봉우리에 걸터앉은 교회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을 풍경들이다.
▼ 교회 건물은 남쪽과 서쪽에 출입문이 있다. 아래 사진은 서쪽 출입으로, 문 주위에 부조로 새겨진 화려한 장식이 있다. 하나 더. 교회의 출입문은 무척 작았다. 종탑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유사시 문을 폐쇄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아보려는 지혜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 출입문 위쪽 벽에도 여러 장식이 있다. 부조로 새겨진 자그마한 십자가가 있고, 이 십자가에 매달 듯이 아치형 장식이 있는 좁고 긴 창문을 내놓았다.
▼ 돔 아래의 톨로베이트(Tholobate : 돔이 세워진 건물의 직립 부분)에 좁고 긴 창들이 있다. 이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은은하게 실내를 비춘다.
▼ 동쪽 벽면은 장식이 좀 복잡하다. 화려하게 장식된 사각형 틀이 있는 좁고 기다란 창을 냈다. 그 위에 커다란 십자가가 있는데, 이게 쉽게 볼 수 없는 십자가 형태다. 십자가 교차점의 네 구석에 정사각형 장식이 하나씩 붙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형태의 십자가를 ‘쿼드레이트 크로스(Quadrate Cross)’라고 했다. 마태(Matthew), 마가(Mark), 누가(Luke), 요한(John) 등 4대 복음이 이 땅의 사방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나?
▼ 그밖에도 낙서에 가까운 부조들이 눈에 띈다. 인간, 동물, 십자가 등 다양한 형상을 보여준다.
▼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 차례다. 조지아 국민들이 정신적 고향으로 여긴다는 교회는 14세기 이후 한 번도 예배를 멈춘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선지 제약도 많았다. 민소매나 미니스커트, 반바지, 모자를 입거나 쓰지 못하는 것은 기본. 사진도 찍지 말란다. 인터넷에서 주워 모은 사진들로 내부를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내부 사진은 인터넷에서 얻어왔다). 동쪽 제대 앞에 있는 이코노스타시스(ikonostasis, ‘이콘을 거는 칸막이’라는 뜻, 지성소와 회중석을 구분하는 칸막이로 여기에 이콘을 건다)가 눈에 띈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의 위쪽에 십자가를 들고 승천하는 예수를 하느님이 맞이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문에서도 가브리엘이 성모에게 예수를 가지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수태고지’와 복음사가들이 예수의 생애와 말씀을 기록하는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다.
▼ 성당의 돔. 화려하게 치장된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그림이나 장식이 전혀 없다. 돔은 열 개의 창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다섯 개는 벽으로 나머지 다섯 개는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그 유리창을 통해 성당 안으로 빛이 들어오게 설계되었다.
▼ 반면에 벽면은 성화들로 가득했다. 예수 그리스도, 성모자, 천사, 12사도 등등... 화풍이 같지 않은 것은 이들 성화의 만들어진 시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콘 앞에는 염원이 담긴 촛불이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었다. 성화 앞에서 십자 성호를 긋고 촛불을 밝히는 신자들도 눈에 띈다.
▼ 밖으로 빠져나오니 또 다른 문이 보인다. 남쪽 출입문인 모양이다.
▼ 암굴처럼 생긴 공간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이콘이 걸려 있었다. 이쯤에서 궁금증 하나. 교회 천정으로 올라가는 길은 어디 있을까? 국가 재난 때 옮겨 온 보물들을 숨겨두던 ‘비밀의 방’이 교회 천정에 있다고 했는데...
▼ 종탑은 교회 건물의 남쪽에 있다. 초기 교회의 부속 건물이나 본관보다는 약간 늦게 지어졌다고 한다. 종탑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은 사각형으로 문이 동쪽으로 나 있다. 위층은 6각형으로 6개의 창을 가지고 있다.
▼ 민둥산의 꼭대기에 걸터앉은 교회는 시야를 막는 게 없다. 때문에 멈추는 곳마다 최고의 전망대가 된다.
▼ 멍때리기 삼매경인 젊은이들이 부럽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한시도 멈추지 못하는 내 자신을 돌아본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흔적까지도 지워버리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내가 꿈꾸고 있는 세계일주도 하나의 집착일 수밖에 없겠다.
▼ 이때 어렴풋이나마 카즈벡 산이 얼굴을 내민다. 그런데 이게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카즈벡 산을 코카서스산맥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꼽고 있었다. 하나 더. 카즈베기는 평범한 사람을 사진작가로 만들어주는 곳이라고 했다. 카메라를 어디다 들이대도 작품이 된단다. 흔히 말하는 ‘인생샷’을 건져올 수 있는 곳이다. 스위스 알프스나 네팔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들이 그 이상으로 꼽는 곳이 바로 카즈베기라면 대충 짐작이 갈지 모르겠다.
▼ 교회 뜨락에는 아예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마을도 마을이지만 그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고산준봉들이 하얀 눈을 뒤집어쓴 채 멋진 풍경화 한 폭을 그려낸다.
▼ 발아래로 ‘카즈베기’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정식 이름은 ‘스테판 츠민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카즈베기’로 더 익숙하다. 눈에 들어오는 마을은 제법 컸다. 맞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하나의 마을이던 곳이 이제는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이 있고, 여름이면 버스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거대한 마을로 성장했단다. 관광객들에게는 트래킹과 산악자전거 타기를 위한 최고의 기지가 되어준다고 했다.
▼ 1921년부터 2007년까지의 공식 지명이었던 ‘카즈베기(Kazbegi)’는 이 지역 출신의 작가이자 농민가수였던 ‘알렉산더 카즈베기(Alexander Kazbegi)’라는 원주민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마을에는 이 사람의 동상도 있단다. 현재 지명인 ‘스테판 츠민다(Stepantsminda)’는 ‘성스러운 스테판(Saint Stephan)’이라는 의미로 조지아정교회 수도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단다.
▼ 집사람 눈높이에도 최고의 여행지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만세 삼창으로도 모자라 승리의 ‘V’자를 두 개나 더했다. 맞다. ‘카즈벡 산’이 있는 북동부 코카서스 지역은 조지아 여행이 완성되는 곳이다. 만약 조지아에 왔다 가면서 카즈벡 산에 와보지 않으면 조지아를 제대로 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조지아인들은 ‘유럽의 기원은 조지아다’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드는 것 중의 하나가 와인이 조지아에서 발원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그리스·로마 신화의 원천이 코카서스라는 것이다. 이곳 카즈벡 산은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던 바고 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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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60코스(대천해수욕장 – 깊은골 버스정류장)
여 행 일 : ‘24. 10. 12(토)
소 재 지 : 충남 보령시 신흑동·남곡동·대천동 및 주교면·오천면 일원
여행코스 : 대천해변→대천항→대천천 노둣길→대천방조제→안산마을→사당골→토정묘역→깊은골 버스정류장(거리/시간 : 17.2km, 실제는 사당골까지 14.63km를 3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60코스를 걷는다. 8개로 이루어진 서천·보령·홍성 구간(56-63코스)의 다섯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보령시의 해안선을 따라 북진하는 여정이다. 난이도는 별이 3개(전체 5개)로 분류되나, 평지라서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 들머리는 대천해수욕장(충남 보령시 신흑동)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IC에서 내려와 36번 국도를 타고 ‘대천해수욕장’으로 들어오면 된다. 매년 열리는 ‘보령 머드축제’의 주 무대이자, 본격적인 휴가철에는 야간에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즐기자 밤바다’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패들보드, 수상 징검다리 등 다양한 미니게임이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진행된단다.
▼ 서해랑길(보령 60코스) 안내도는 ‘머드광장’의 바닷가 ‘바다의 여인’ 조형물 옆에 세워져 있다.
▼ ‘대천해수욕장’에서 보령시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북진, ‘보령화력 입구(오천면 오포리)’까지 가는 17.2km짜리 여정이다. 주요 볼거리로는 대천해수욕장, 토정묘역 등이 꼽힌다. 하나 더, 물때를 못 맞춰 ‘대천천’의 노둣길을 못 건널 경우, ‘쇳개포구’의 인도교까지 6km 이상을 더 걸어야만 한다.
▼ 10 : 13. 해수욕장과 상가 사이로 난 도로(해수욕장10길)를 따라 북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 바닷가 해송 숲을 따라갈 수도 있다. 조금 구불대기는 해도, 하트모양의 예쁜 통로 등 눈에 담을만한 조형물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어 걷기 여행자들에게 더 선호되는 코스다. 솔숲 사이로 내다보이는 서해바다는 덤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삽시도(揷矢島)도 눈에 담을 수 있다. 화살(矢)을 꽂아놓은(揷) 활처럼 생겼다는 섬이다.
▼ 10 : 22. 잠시 후 ‘분수광장’에 이른다. 노을광장, 머드광장과 함께 대천해수욕장의 핵심을 이루는 광장 중 하나로 다양한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개성 넘치는 사진을 찍기에 딱 좋다. 여름철에는 음악분수가 운영되는데, 저녁이면 현란한 조명까지 가미된단다.
▼ 로봇을 닮은 ‘우체동’은 커도 너무 크다. 간절곶의 우체통보다도 더 크다나? ‘감성’이란 이름표까지 달았는데, 거짓말 좀 보태 원룸으로 개조하면 사람이 살아갈 수도 있겠다.
▼ 10 : 24. 집트랙(Zip Trek) 탑승장. 바다로 돌진하는 듯한 오싹한 설렘을 선사해주는 집트랙은 ‘액티비티 스포츠’다. 하지만 갈 길 바쁜 걷기 여행자들은 그저 눈으로 즐길 수밖에 없다. 주어진 시간 안에 트레킹을 마치려면 말이다.
▼ 서해랑길은 바닷가를 따라 계속 직진한다. 스카이바이크 궤도와 함께 가는 멋진 구간이다. 대천해수욕장과 대천항을 오가는 전국 최초의 해상 레일 바이크로, 수면에서 8-15m 높이에 선로를 달아 바닷길을 달리게 했다.
▼ 스카이 레일 위를 씽씽 달려가는 바이크, 40분간 2.3km를 왕복 운행한다. 그런데 하나같이 쌍쌍이다. 고로 스카이바이크는 연인끼리 즐기기에 딱 좋은 레저이다.
▼ 집트랙은 왜 싱글을 고집했을까? 커플로 타는 곳도 있던데 말이다. 하나 더. 요 아래로는 ‘보령 해저터널’이 지나간다. 원산도까지 6,927m로 우리나라에서 가징 긴 해저터널이다. 원산도에서 안면도까지는 다리로 연결된다.
▼ 아무튼 난 ‘집트랙 탑승장’에서 바닷가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천항로’를 따르는 지름길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아니 고갯마루에 있는 ‘김성우장군전첩사적비(金成雨將軍 戰捷史蹟碑)’를 만나고 싶었다는 것이 더 옳겠다.
▼ 10 : 27. 김성우(金成雨, 1327~1392)는 고려 말 전라우도 도만호로 보령지역을 황폐화시킨 왜구를 격퇴한 무장이다. 왜구를 토벌한 공으로 충청남도 보령에 사패지(賜牌地)를 하사 받아 ‘광산김씨’ 입향 시조가 되었다. 이후 초토영전사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던 백성들이 다시 보령으로 돌아와 살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조정에서 부르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거절하고 자결하였다. 김성우를 도운 신마가 나온 옥마봉, 보검이 나온 비도, 김성우의 군사가 들어온 군입포, 병사를 매복시킨 매복 등 김성우의 행적과 관련된 지명들이 아직까지 보령 곳곳에 남아있다. 보령을 기초를 마련한 인물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대천항로’는 고개를 넘어 ‘대천항’으로 이어준다. 곧장 직진하면 ‘유람선 선착장’에 이르게 된다.
▼ 10 : 34. 꽃게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 사거리(이정표 : 종점 15.6km/ 시점 1.6km)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 다음, ‘대천항4길’을 따라 동진한다.
▼ 도중에 ‘대천항연안여객선터미널’과 ‘대천항’을 스치듯 지나간다. 하지만 하도 여러 번 들렀던 곳인지라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 10 : 52. 강당마을. 신흑동(新黑洞) 최북단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앞바다에 조개·게·소라 등 해산물이 풍부하여 옛날부터 군마루·절굴·거먹개 사람들이 넘어와 해산물을 잡아가고는 했단다. 현재도 김 양식 등 수산업에 종사하는 집이 많다고 한다.
▼ 바닷가 외딴 마을은 현재 ‘통나무 펜션단지’로 변신해 있다.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지어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단다. 해안도로변에 위치해 아름다운 바다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 계속해서 ‘해안로’를 따른다. 아니 도로변을 따라 내놓은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 이때 ‘대천천’의 하구역 풍경이 드넓게 펼쳐진다. 그 너머로 지금은 육지로 변해버린 ‘송도(松島)’와 ‘보령화력’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 11 : 06. 같은 신흑동인 ‘군헌(軍軒)마을’에는 어촌유치(귀어)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농어촌 공동화(空洞化)’가 사회문제가 되어버린 요즘. 시(市)라고 해도 바닷가 외진 마을은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추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 체험장 옆 데크 전망대. 망원경 말고도 벤치 두어 개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한 줄기 쇠줄로 얼굴을 그린 조형물도 배치했다. 덕분에 밋밋할 수도 있는 해변 길이 감상의 포인트가 됐다. 분명 인위(人爲)인데도 배경으로 삼은 자연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대천방조제와 보령화력발전소는 물론이고 죽도와 송도, 원산도 등 주변의 섬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눈만 좀 크게 뜨면 원산·안면대교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 시선을 조금 비틀자 대천천의 하구역이 놓여있다. 대천방조제가 서해안고속도로의 ‘대천2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탐방로는 이제 ‘대천천(大川川)’을 거슬러 올라간다. 서해안고속도로 ‘대천2교’의 거대한 교각을 앞에 두고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 넝쿨장미로 치장된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꽃이라도 필라치면 꽃 대궐에서 노니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겠다.
▼ ‘오월의 장미’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10월. 장미가 있을 리가 없다. 대신 ‘송엽국(松葉菊)’이 만발해 있었다. 솔잎과 닮은 잎에 국화를 닮은 꽃이 핀다는 ‘상록 식물’이다. 잎 모양과 무리 지어 피는 모습이 채송화와 비슷해 ‘사철채송화’라고도 한다.
▼ 11 : 20. ‘밤골마을’ 해변은 해수욕장이 부럽지 않은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보령지역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해안 곳곳에 사빈이 잘 발달되어있는 현상 말이다. 그 대부분은 해수욕장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은 대천해수욕장과 가깝다보니 그냥 방치하고 있지 않나 싶다.
▼ ‘남곡동(藍谷洞)’에 속한 자연부락인 ‘밤골’에는 리조트와 펜션, 카페, 음식점이 여럿 들어서 있었다. 유원지 수준이라고나 할까? 하긴 뻥 뚫린 시야로도 모자라 새하얀 모래사장까지 끼고 있으니 어찌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고 배기겠는가.
▼ 동화나라에서나 볼 법한 집도 눈에 띈다. 하지만 스머프가 이사를 가버렸는지 새로운 주인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 밤골마을 앞바다. 해망산 갯벌도 일반인에게는 금단의 땅인 모양이다. 어촌계에서 바지락 양식을 하고 있으니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단다. 저 벤치에 앉아 조개 캐는 주민들의 뒷모습이나 구경하다 가라는 모양이다.
▼ 11 : 30 – 11 : 40. 이곳에는 자전거 라이더들을 위한 휴게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덕분에 벤치에 않아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또 다른 스머프네 집. 노을이 곱다고 알려진 ‘357카페’라는데, 이곳 역시 영업은 하고 있지 않는 듯 했다. 요즘 경기가 안 좋다고 하더니 사실인 모양이다.
▼ 11 : 46. 내항동(內項洞)의 왕대골. 왕대산(王臺山, 122.7m) 자락의 마을인데, ‘밤골’처럼 리조트와 음식점이 여럿 들어서 있다. 숫자는 작아도 규모는 밤골보다 훨씬 더 크다. 참! 왕대산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천년사직을 넘기고 돌아오다 머물렀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는 것도 기억해 두자.
▼ 이때 느닷없는 간판 하나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友のや’라는 일본어 간판만 내걸려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저걸 ‘토모노야’로 읽고 있었다. ‘친구며···’라는 뜻이라나? 건물의 외벽도 검정과 흰색이 대비되며 일본 전통 건축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일본인들의 전용 호텔인가? 아니면 일본인이 운영하는 숙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썩 흔치않은 풍경인데다, 얼마 전 광복절날 일장기를 내걸었던 지역이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기에 심사는 편치 않았다.
▼ 11 : 52. 서해랑길은 서해안고속도로의 ‘대천2교’ 앞에서 일단 멈춘다. 그리고는 잠수교(‘노둣길’이라 부르기도 한다)를 이용해 ‘대천천’을 건넌다. 초입에 이정표(종점 9.8km/ 시점 7.4km)가 세워져 있다.
▼ 초입에 만조(滿潮) 때는 우회도로를 이용하라는 안내판이 걸려있었다. 대천천을 따라 대천3동까지 올라가 ‘대천천 인도교’를 건넌 다음, ‘대천1동’에서 대천천의 제방을 걸어 저 건너(잠수교 북단)까지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6.1km나 더 걸어야 한다니 서해랑길 60코스는 때를 잘 맞추어 걷는 게 필수라 하겠다.
▼ 잠수교는 영농철 농기계의 통행을 위해 개설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모든 차량의 통행을 금지한다는 경고판까지 입구에 붙여놓았다. 하지만 많은 차량들이 잠수교를 오가고 있었다. 덕분에 차량을 만날 때마다 다리 난간으로 아슬아슬하게 비켜 설 수밖에 없었다.
▼ 다닥다닥 붙어있는 저 따깨비는 이 다리가 심심찮게 바닷물에 잠긴다는 증거다.
▼ 앗! 소라가 가득담긴 그물망이 바닷물에 잠겨있는 게 아닌가. 마침맞게 주위에는 사람도 없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했는데, 저걸 가져다가 산악회에 부탁해 삶아달라고 해?
▼ 대천천 하구역(河口域). ‘대천천(大川川)’은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에서 시작하여 궁촌동을 거쳐 서해로 흘러드는 길이 13.8km의 지방하천이다. 보령지역의 옛 이름 중 하나인 ‘큰내(한내)’를 한자로 고치면서 대천천이 됐다. 하천은 크게 2개의 지류가 있는데, 한 지류는 오서산(烏棲山) 동남쪽에서 발원하고, 다른 한 지류는 성주산(聖住山) 줄기인 성태산(星台山)과 백월산(白月山)에서 발원하여 흐른다.
▼ 뒤돌아 본 잠수교. 그 뒤에는 아까 본 왕대산 말고도 ‘해망산(海望山, 114.3m)’이 있다. 고려 말, 도만호(都萬戶) 김성우 장군이 병사로 하여금 왜구의 동태를 감시하게 했다는 산이다.
▼ 11 : 59. 잠수교 북단(이정표 : 종점까지 9.4km)에 올라선 다음부터는 대천방조제의 제방을 따라간다. 둑 위에 우레탄을 깐 탐방로를 곱게 내놓았다. 참고로 대천1동에서 시작되는 ‘대천방조제’는 대천2동과 주교면의 주교리(舟橋里) 및 은포리(隱浦里)를 거쳐 같은 주교면의 송학리(松鶴里)까지 이어진다. 길이 6.2km로 1952년에 착공하여 1960년에 준공되었다.
▼ 둑길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왼쪽으로는 ‘대천천’의 하구역이 드넓게 펼쳐진다. 한껏 등치를 부풀린 물줄기를 서해바다가 집어삼켜버리는 모양새이다. 그런데 제방에 쌓아놓은 저 돌탑들은 대체 누구의 작품일까? 50m쯤 되는 간격으로 줄지어 있는데 그 하나하나가 공들여 쌓은 흔적이 역력했다.
▼ 오른쪽으로는 ‘봉당천’과 ‘신대천’ 하구를 막아 조성한 거대한 간척지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그 뒤에서 솟아오른 ‘봉대산(烽臺山, 233.3m)’은 동쪽으로 뻗어 ‘태봉산(240m)’을 솟구친다. 군사시설인 봉수대 및 아현산성(我峴山城)을 각각 품고 있는 산들이다.
▼ 12 : 16. 방파제가 90도에 가깝게 휜다. 대천1동과 송학리를 잇는 대천방조제는 이렇듯 중간쯤에서 크게 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농토를 만들기 위한 눈물겨운 투쟁의 결과일 것이다. 하나 더. ‘대천동’을 달려온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주교면(보령시)’에 바톤을 넘겨준다.
▼ 이곳은 ‘대천천’의 하구역이 거침없이 폭을 넓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내륙을 휘젓고 내려온 냇물은 이곳에서 드넓은 바다의 품에 안긴다. 그런데 저 강태공들은 대체 뭘 잡고 있을까? 낚싯대는 망둥어 낚기에도 부담스러워 보이는데...
▼ ‘이 뭣꼬?’ 스님의 화두가 아니라 도로변에 적치되어 있는 저 통들의 정체가 궁금해서 게시해봤다.
▼ 코너를 돌아서자 해안도로에 꽤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화장실까지 갖춘 공영주차장이 마련되어있는가 하면 둑에는 무선방송장비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 주교마을(허락 없이 갯벌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판을 세워놓았다)에서 뭔가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도로변에 조성된 공영주차장. 차선을 하나 더 만든 다음 화장실까지 갖춘 주차장을 만들어놓았다.
▼ 반대편에는 바다를 향해 길게 줄을 매어놓았다. ‘해루질’ 나가는 누군가를 위한 안전시설이다. 둑 위의 방송장비 또한 저들을 위해 설치했다. 조개채취 중 방향을 잃는 갯벌 고립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기 때문이란다.
▼ 갯벌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조개를 캐고 있었다. ‘해루질’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야외활동 중 하나로 꼽힌다. 거기다 조개까지 얻을 수 있으니 숫제 ‘꿩 먹고 알 먹고’이다. 하지만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물때와 지형을 미리 확인하고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등 안전수칙을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 방조제는 이후로도 꽤 오래 이어진다. 하지만 하늘거리는 억새꽃을 옆구리에 끼고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 12 : 42. 대천방조제는 ‘주교배수갑문’에서 끝을 맺는다. 둑길에서 내려선 탐방로는 ‘대천방조제2교’를 건너 ‘송학리’로 들어간다.
▼ 12 : 45. 다리를 건너 ‘현장마을(버스정류장의 이름표)’로 올라선다. 송학리(3리)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바지락마을’이란다. 아니 ‘황금’이란 최상의 서술어까지 덧붙였다. 대체 바지락이 얼마나 많이 널려있기에 저런 표현까지 쓸 수 있을까?
▼ ‘송학항’도 이제껏 보아온 다른 포구들처럼 텅 비어있었다. 안내판에 그려진 배들은 마을 어디쯤에선가 출어의 날만 기다리고 있겠지? 경운기 꼬랑지에 매달려서...
▼ 선착장 옆으로 나있는 ‘갯길’이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머드 맥스’라고 일컬어지는 경운기의 행렬이 펼쳐지는 곳이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버스정류장에서 그 사진을 볼 수 있다.
▼ 계속해서 ‘대천방조제로’를 따라간다. 방조제의 둑길 구간이 끝났는데도 도로는 아직까지 같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아무튼 좁고 긴 백사장을 옆구리에 끼고 가는 멋진 구간이다.
▼ 이때 ‘죽도(竹島)’가 눈에 들어온다. 시쳇말로 주먹만큼이나 작은 섬인데, 옛날엔 저 섬이 대나무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 12 : 53. ‘송학2리’에 이른다. 마을 표지석은 이곳을 ‘안산고내’라고 적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밖산고내’가 나온단다. ‘고내’라는 마을이 ‘안산’을 사이에 두고 둘로 나누어져 있는 모양이다.
▼ 이 마을 갯벌도 귀어·학습 체험장을 열고 있었다. 허락받지 않은 사람들이 갯벌에 들어갈 수 없음은 물론이다. 참! 이곳 송학리는 조선시대부터 바지락 양식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지금도 매년 5천 톤씩이나 생산하고 있는데, 오랜 역사만큼이나 뛰어난 양식기술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품질 좋은 바지락을 시중에 내놓고 있단다.
▼ 버스정류장을 치장하고 있는 사진이 눈길을 끈다.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 ‘머드 맥스(Mad Max)’를 연상시키는 갯벌을 질주하는 경운기들의 행렬이다. 사진은 주민들이 갯벌에서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장면을 담았는데, 이게 광활한 갯벌과 어우러지며 자못 비장감까지 불러일으킨다.
▼ 13 : 03. 잠시 후 도착한 ‘(안산·고내)버스정류장’은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서해랑길이 도로를 벗어나 마을길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탐방로는 마을안길은 누빈 다음 ‘안산마을’에서 다시 도로(대천방조제로)로 나온다. 오가는 자동차를 피할만한 공간(갓길)이 없는 협소한 도로를 피해 일부러 에둘러놓지 않았나 싶다.
▼ 13 : 06 – 13 : 19. 우리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한 채 계속해서 도로를 따르기로 했다. 그 위험에 대한 보상은 컸다. ‘산고래 하늘공원’이라는 멋진 공간을 만났기 때문이다. ‘산고내(散古乃)’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뼈를 상했을 때 약재로 쓰는 돌(산골)이 채취된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 엉덩이 대기가 부끄러울 만큼 예쁜 의자. 공원은 정자에 벤치는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우린 10분 정도를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조망도 자랑거리라고 했다. 맑은 날에는 효자도, 삽시도, 원산도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단다. 그래선지 바다 쪽으로 ‘전망대’까지 만들어놓았다. 난간에 서자 죽도가 성큼 다가온다. 고려청자가 발견된 ‘해저유물 매장해역(사적 제321호)’의 중심에 놓여있는 섬이다.
▼ 1983년경 고려청자 등의 유물이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1987년 수중발굴조사를 진행 32점의 상감청자를 비롯한 100여 점의 청자류를 수습했다. 13세기 또는 14세기, 전남 강진(대구면)이나 전북 부안(보안면)의 가마터에서 제작되어 배로 운반하던 도중 이 부근에서 배가 난파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신보령발전본부’를 당겨봤다. 보령지역의 발전소에서 전국전기생산량의 7.3%를 만들어내고 있단다.
▼ 13 : 27. 다시 길을 나선다. 이어서 오가는 차량을 주의해가며 10분 정도를 걸어 ‘안산마을’에 이른다. 그리고 마을안길로 에돌아 온 ‘서해랑길’을 다시 만났다.
▼ 13 : 30. 잠시 후, 서해랑길이 또 다시 도로(대천방조제로)와 헤어지란다. 이번에도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예쁜 풍경을 보여주는 기존의 탐방로를 따를 것을 권한다.
▼ 탐방로는 해안길을 따라간다. 오른편의 농경지가 갯벌보다 낮으니 방조제의 둑길이라 할 수도 있겠다.
▼ 해안길 구간은 잠깐이면 끝난다. 하지만 보여주는 풍광만큼은 만만치 않았다. 고운 모래사장이 발아래 놓여있고, 그 너머로는 검붉은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 13 : 33. 잠시 후, 탐방로는 바닷가를 떠나 내륙으로 파고든다. 또 다른 마을을 에돌아가는 길이다.
▼ 볼거리도 그렇다고 이야깃거리도 없는 마을길이 싫은 우리는 논두렁을 이용해 ‘ㄷ’자 형의 구간을 단축하기도 했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송학천’을 가로막은 방조제가 나타난다. 이 둑을 쌓음으로써 안쪽에 상당히 너른 간척지가 만들어졌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오던 고정리 주민들에게 넉넉함을 가져다 준 풍요의 상징이다.
▼ ‘송학천 배수갑문’의 밖. 즉 송학천의 하구역이었음직 한 갯벌에는 작은 포구가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충남의 바닷가에서 만났던 여느 포구들과는 달리 꽤 많은 배들이 갯벌에 기대어 쉬고 있다. 배를 올려둘만 한 공터가 없었나?
▼ 13 : 40. 제방 끝에서 610번 지방도를 만났다. ‘토정로’라는 이름이 토정 이지함 선생의 고향으로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사당골(고정2리)’이 반긴다. 법정 동리인 고정리(高亭里)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로, ‘사당골’이란 ‘한산 이씨’ 사당(祠堂)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그래선지 마을 입구에 찬성공파(贊成公派)의 사당(高巒齋) 말고도 조상의 묘갈(墓碣)과 신도비(神道碑)가 즐비했다.
▼ 13 : 46. ‘신보령발전본부’ 입구(화력발전소 폐기물처리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松島’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초입에 위치한 보령시민체육공원 주차장에 산악회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종점인 ‘깊은골’에 주차 공간(점심상을 차릴 수 있는)이 없는 탓에 이곳에서 식사를 한 다음 잔여 구간은 버스로 이동하겠단다.
▼ 종점으로 가는 도중 들른 ‘토정선생 묘역’. 국수봉(187m)의 남쪽 산자락에 들어선 묘역에는 선생과 형제, 존·비속 등 14기의 묘가 모셔져 있다. 선생의 학문과 전해지는 기이한 일화들로 인해 명당자리로 인식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단다.
▼ 선생은 생전에 미리 ‘墓터’를 정해두었다고 한다. 모친상을 당해 형제분들과 함께 선영의 묘를 이장할 자리를 찾다가 이곳이 명당임을 알았다나? ‘토정비결(土亭秘訣)’까지 지은 현인이니 어련하겠는가.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정초가 되면 가족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낡은 ‘토정비결’을 펼쳐들고 저마다의 괘를 뽑아보면서 한 해의 길흉을 점쳤다. 누군가 좋은 점괘가 나오면 함께 기뻐했고 나쁜 점괘가 나오면 서로 격려하면서 새해의 첫날을 보냈다. 그 시절 토정비결은 힘겹게 살아가던 서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안겨주던 비밀의 열쇠였다.
▼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은 조선중기 학자로 천문·지리·의약 등에 능통하였으며,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평생을 방랑하다 1573년(선조6년) 56세에 도덕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로 추천되어 포천현감으로 백성의 가난해결을 위해 많이 노력하였다.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지어 빈민구제에 힘썼다고 한다. 1713년(숙종39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선생은 한 곳에 얽매이거나 구속되는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남긴 ‘대인설’에 걸맞는 삶이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안으로는 똑똑하고 강하기를, 밖으로는 귀하기를 바란다. 벼슬하지 않는 것보다 귀한 것이 없고, 욕심내지 않는 것보다 부유한 것이 없으며, 다투지 않는 것보다 강한 것은 없고, 알지 못하는 것보다 똑똑한 것은 없다. 알지 못하면서 똑똑하고, 다투지 않으면서 강하고, 욕심내지 않으면서 부유하고, 벼슬하지 않으면서 존귀한 것은 실로 대인만이 할 수 있다>
▼ 넓적바위(簿石). 연당자락 바닷가에 놓여 솔섬목을 오가던 사람들의 쉼터로 사용되던 바위였으나, 토정선생이 타고 다니던 ‘돌배’라는 설이 있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 돌의 존재로 인해 항해의 영웅이라는 설화 속 선생의 또 다른 인물상이 생겨났다나?
▼ 고개를 넘어온 탐방로는 보령화력발전소 입구에 있는 ‘깊은골 버스정류장’ 앞에서 끝을 맺는다. 서해랑길(보령 61코스) 안내판은 버스정류장 곁에 세워져있다. 오늘은 본의 아니게 종점에서 1.7km 정도 못 미친 ‘사당골’에서 트레킹을 마쳤다. 그래선지 gpx트랙에 14.63km를 3시간 20분에 걸었다고 나타난다. 적당한 속도로 걸은 셈이다.
▼ 오늘도 집사람이 함께 걸어주었다. 하루 세끼를 차려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야외활동까지 함께 해주는 집사람. 이 모든 것은 나에 대한 절대적인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현대는 무목적·무감동·무책임·무관심이라는 ‘4무(無)’ 병이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건 무관심일 것이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닌 무관심이라고 했다. 아름다움의 반대도 추함이 아닌 무관심이란다. 그러니 나에게 집사랑은 사랑이자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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