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조지아 - 트빌리시

 

여행일 : ‘23. 5. 31() - 6. 12()

 

세부 일정 : (아제르바이잔)바쿠고부스탄쉐키(조지아)카헤티시그나기트빌리시(아르메니아)알라베르디세반예레반코르비랍에치미아진(조지아)트빌리시아나우리구다우리카즈베기므츠헤타바투미(튀르키에)리제

 

특징 :  코카서스(Caucasus) :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있는 지역으로 현지어로는 캅카스(Kavkaz)’라 부른다.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의 산악지역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역사·문화를 자랑하는 아제르바이잔·조지아(그루지아아르메니아가 있다. 뻔한 코스와 일정,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연일 북적거리는 기존 관광명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여행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지역이다.

 

 조지아(Georgia) : 코카서스 3국 중 하나로, 지정학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곳에 위치한다. 러시아 남하정책의 접점이자. 서구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이동 통로이기도 하다.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외부세력과 문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한편 조지아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맥과 고원이다. 하지만 그 사이를 흐르는 강과 계곡, 초원이 빚어낸 멋진 풍광으로 인해 코카서스의 스위스라는 별칭이 붙었다.

 

 트빌리시(Tbilisi) : 대카프카스 산맥 남쪽 기슭의 쿠라 강(Kura R.)’ 유역에 위치한 조지아의 수도. 5세기 사카르트벨로 왕 바흐탄그 1세 고르가살리(452-502)에 의해 세워져, 아랍인과 튀르크인들에게 점령당하기를 반복하다 1801년에는 러시아가 점령했다. 이후 그루지야 SSR의 수도를 거쳐 1991년 독립 조지아의 수도가 되었다.

 

 트빌리시 투어의 대미는 성 삼위일체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이 장식한다. 조지아 정교회의 총본산이자 트빌리시의 상징으로 예수 탄생 2000’, ‘조지아정교회 독립 1500주년’, ‘조지아공화국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1994년 건축을 시작해 2004년 완공되었다. 설계는 건축가 아킬 마인디아스빌리(Archil Mindiashvili)’가 맡았는데, 정교회 중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하나 더. ‘츠민다 사메바(Tsminda Sameba)’ 성당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성삼위일체 대성당이라는 뜻의 조지아어(그루지아어)를 영문 식으로 표기했다고 보면 되겠다.

 아블라바리(Avlabari) 지역 엘리아 언덕(Elia Hill)’에 위치한 대성당은 구도심에서 걸어서 20-30분이면 충분하다. 참고로 엘리아는 기원전 9세기 아합왕 통치 시기 이스라엘 북부에 살았던 선지자다.

 본당 앞. 조지아정교회를 지켜주는 수문장이라도 되는 양 열두 개의 기둥이 두 줄로 도열해있다. 각각의 기둥에는 조지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들이 부조되어 있다. 기독교를 승인해준 마리안 3, 트빌리시로 천도한 고르가살리 등등...

 계단 위, 그림처럼 서 있는 대성당은 보는 순간 완벽한 균형미에 감탄이 쏟아진다. 돔 위에 얹은 7.5m 높이 황금 십자가의 위용도 대단하다. 성당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어둠이 내리고 대성당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이 들어오면 가슴에도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켜진단다.

 대성당은 길이가 70m, 폭이 65m, 높이가 87m에 이른다고 한다. 지하층의 깊이가 13m라고 하니, 지하로부터 따지면 높이가 100m나 되는 셈이다. 외관으로 볼 때 성당은 4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옷차림에 주의가 필요하다. 여자는 바지는 길고 짧고 간에 무조건 안 된다. 스커트도 길이가 짧으면 퇴자다. 민소매도 안 된단다. 남자라고 해서 봐주지는 않는다. 모자와 반바지. 민소매의 착용이 금지된다.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웅장함으로 시선을 압도하는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정교회 특유의 정갈함과 고즈넉함이 가득했다. 성당의 중심은 돔이다. 사방으로 뚫린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온 빛이 성당을 밝혀준다. 하지만 성화로 치장된 로마 가톨릭교회들과는 달리 텅 비어있어 고즈넉한 감을 준다.

 성화는 돔의 아래, 제단 뒤쪽 벽면에 그려져 있었다. 반원형 공간에 예수님이 의자에 앉아 오른손을 들어 신도들을 축복하고, 왼손에는 성경을 들어 가르침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그려놓았다. 예수님 아래는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12사도가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이들 성인의 두광 양쪽으로 이름이 적혀 있다. 12사도 아래 초상들은 나중에 성인으로 추대된 위대한 인물들이라고 한다.

 성당에는 모두 9개의 경당이 있다고 했다. 지하에 5, 1층에 4개가 있는데, 그중 둘은 조지아 정교와 직접 관련된 성녀 니노와 성 조지에게 바쳐졌다고 한다.

 다른 경당들은 돔은 물론이고 그 아래 벽면까지도 텅 비어 있었다.

 본당에서는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다들 무릎을 꿇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애초부터 없다. 그러니 미사 내내 무릎을 꿇었다 일어서기를 반복할 것이다. 정교회의 미사는 2~3시간씩 진행되기도 한다니, 웬만한 체력 갖고는 미사에 참석하기도 어렵겠다.

 사제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데, 하물며 신도들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겠는가.

 성당 내부는 다양한 이콘(icon, 성화)들로 가득했다.

 성화 속 인물들은 다양했다. 성모 마리아, 성녀 니노 같은 여성들이 있는가하면, 조지아 정교에서 떠받드는 사도 성 안드레아와 성 조지 같은 남성도 있다. 성녀 니노의 성화가 유독 많은 것은, 그녀가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했기 때문이란다.

 성녀 니노의 초상도 그중 하나인데, 그녀에 대한 얘기는 오마이 뉴스의 기사를 옮겨본다. 320년경 카파도키아 출신의 수녀 니노(Nino)가 이베리아 왕국 남부지역에서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324년경 왕국의 수도인 므츠헤타(Mtskheta)에 이르러 왕비인 나나(Nana)를 만나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게 된다. 그러나 미리안(Mirian) 왕은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고, 왕비가 기독교를 버리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위협한다. 전승에 따르면 326년경 왕은 숲으로 사냥을 나간다. 그런데 갑자기 숲이 어두워졌고 왕은 길을 잃는다. 절망적인 상황에 당황한 왕은 나나가 믿는 신에게 기도했다. 그러자 갑자기 세상이 밝아지면서 길이 나타났다. 므츠헤타의 왕궁으로 돌아온 미리안은 니노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다. 기독교 사상은 왕족과 관리들은 물론 국민들에게까지 전파되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되었다. 이베리아 왕국은 아르메니아에 이어 두 번째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이콘은 동방정교회에서 우상논쟁에 휩싸기도 했다. 그러다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입어 실재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림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 성상은 교회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간주되어 특별한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정교도 신자들은 기도할 때 성화에 손을 대고 하는 모양이다.

 그밖에도 다양한 이콘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금이나 은으로 입혀져 화려하기 짝이 없다. 다양한 보석으로 치장된 작품도 눈에 띈다. 조지아 정교회의 본산이라서 그런지 다른 교회들보다도 훨씬 더 화려하다는 느낌을 준다.

 밖으로 나오니 입장할 때 무심코 지나쳤던 종탑이 눈에 들어온다. 정문 쪽으로는 아까 거론했던 열두 개의 기둥들이 두 줄로 도열해있다.

 종탑. 9개의 종이 매달려 있다고 했으나 헤아려보지는 않았다.

 그밖에도 성당 주변에는 주교관, 신학대학, 세미나실, 휴게소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조지아정교회 총대주교가 주석하는 성당에 걸맞는 규모라 하겠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덕분에 성당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맞은편에 있는 Mother of Georgia와 오른쪽에 하늘 높이 솟은 므츠민다파크의 타워가 보인다. 트빌리시는 이렇듯 높은 건물들이 많지 않아서 좋다.

 잘 가꾸어진 정원에는 왕으로 여겨지는 흉상들을 세워놓았다. ‘타이무라즈 1의 흉상도 그중 하나인데, 그에 대한 내력은 오마이 뉴스의 기사를 인용해본다. 타이무라즈 1세는 1605년부터 1648년까지 바그라티의 왕으로, 이란의 사파비 제국으로부터 조지아의 독립을 쟁취하기 노력하다 1663년 죽었다. 그는 조지아 정교가 이슬람세력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막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사파비 제국의 수도인 이스파한으로 끌려가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는 시인으로도 명성이 높다. 페르시아 시를 조지아어로 번역하면서 시작 능력을 키웠고, 1625년 자신의 어머니 케테반(Ketevan) 왕비의 수난과 순교를 시로 완성했다. 이 작품 속에서 시인은 삼위일체 신에게 바치는 어머니의 기도를 인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성 삼위일체 대성당 정원에 그의 흉상이 모셔진 것 같다.

 다른 한 인물은 안내판이 없어 누구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조지아어를 모르니 있어봤자 그게 그거였겠지만...

 안내판이 붙어있는데도 그 내력을 알 수 없었던 이 빗돌이 그런 상황을 증명해준다고 하겠다.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은 한마디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집사람 매의 눈에 뭔가가 걸렸던 모양이다. 후다닥 달려갔다 오더니 오디를 한 움큼 건네준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의 오디보다 훨씬 큰데다 새콤달콤하기까지 했다.

 길을 나서기 전 들른 화장실. 구분이 확실한 남녀 표시가 눈길을 끈다. 오래 전, 국내 어느 관공서 화장실에서 전통혼례복을 입혀놓은 남녀표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있었다. 우리 문화를 조금이라도 더 소개하고 싶은 충정이었겠지만, 이를 본 외국인들로서는 남녀구분이 썩 편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