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34코스(상수장마을-돌머리해변)
여행일 : ‘23. 8. 12(토)
소재지 : 전남 무안군 현경면과 함평군 함평읍 일원
여행코스 : 상수장마을→송정교차로→하수장마을→유수정마을→외현화마을→내현화마을→파도목장→돌머리해변(거리/시간 : 17.2km, 실제는 현경면사소부터 14.62km를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34코스를 걷는다. 7개로 이루어진 함평·영광 구간의 첫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함해만의 동쪽 해안을 따라 무안군에서 함평군으로 간다. 덕분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함해만의 비경들을 곳곳에서 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전천후 풀장 등 다양하게 꾸며진 돌머리해안은 잠시 쉬었다가기에도 충분하다.(이 후기도 ‘무안문화원’의 자료가 많이 활용됐습니다)
▼ 들머리는 상수장마을(무안군 해제면 송정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지도’방면으로 들어오다 송정교차로(해제면 송정리)에서 현해로(해제방면)로 옮겨 400m쯤 들어가면 상수장(3반)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150m쯤 들어가면 24번 국도의 가드레일에 닿는다. 서해랑길(무안 34코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판은 가드레일 아래에 세워져 있다.
▼ 해제반도의 동쪽 해안(함해만과 면한)을 따라 걷는 17.2km짜리 코스이다. 오늘도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 코스를 조금 단축했다. 5.7Km를 줄인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시간을 감안 ‘현경면’소재지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3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 실제는 현경면 소재지인 외반리(버스정류장)에서 출발했다. 77번 국도에서 곧바로 서해랑길로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접근성에 대한 설명이 난감해 거리를 조금 늘리기로 했다.
▼ 11 : 45. 815번 지방도(장군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때 5층짜리 아파트가 눈에 띈다. 이곳 외반리의 규모가 제법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 11: 55, 현경중학교를 지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77번 국도가 나타난다. 서해랑길과 만나는 지점으로 gpx트랙은 시점까지의 거리를 4km로 찍고 있다. 하지만 내 앱은 0.7km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쫒아낸다더니, 약하디약한 집사람에게도 내 코스를 3.3km나 줄여줄 능력이 있었나 보다.
▼ 서해랑길은 국도 아래로 난 소로를 따른다.
▼ 200m쯤 걷다가 굴다리 근처(이정표 : 종점 12.6km/ 시점 4.6km)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구릉지로 올라선다. 이곳은 황토로 유명한 해제반도.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온통 푸름으로 물들었다. 무안의 또 다른 특산물인 고구마와 콩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본래의 황토색을 덮어버렸다. 맞다. 무안은 요즘 구릉지마다 고구마 밭의 긴 이랑들이 줄지어 펼쳐진다. 지난 겨울 양파 밭이 그렇더니, 이 여름엔 또 고구마 밭들이 붉은 황토색 밭을 온통 푸르게 뒤덮어 버린다.
▼ 그렇게 10분쯤 걸으면 ‘유수정’마을이다. 법정 동리인 평산리(平山里)의 4개 자연부락(원평산·평림·통정·유수정) 중 하나로 유수정(流水亭)이란 지명은 감방산 아흔아홉 구비에서 흘러내린 물이 평산을 지나 마을 앞으로 흘러간다는 데서 유래했다. 또한 해방 전까지 마을 뒤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었는데, 이게 시원한 정자구실을 톡톡히 한다며 ‘정(亭)’ 자를 붙였다나?
▼ 마을회관 앞 빗돌은 마을의 유래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200년쯤 전 ‘장흥고씨’가 터를 잡았고, 이후 여러 성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이 커졌단다. 빗돌은 또 장흥고씨 후손들이 마을 앞바다를 막아 논을 만들고, 임야를 개간하면서 마을을 부촌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 마을을 벗어나자 널따란 들녘이 펼쳐진다. 무안문화원은 ‘고기주’라는 이가 ‘서해바다’라는 식당이 있는 곳에서 노두목까지 제방을 막았다고 적고 있었다. 그렇게 생겨난 들녘 덕분에 부촌이 되었다며 마을 주민들은 칭송하고 있었다.
▼ 들녘의 끝, 그러니까 건너편 구릉지 아래에도 작은 부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무안문화원의 자료에서 본 ‘저건너’란 마을일지도 모르겠다. 그걸 확인해볼까 민가를 기웃거리는데, 누렁이 두어 마리가 단체로 짖어대는 게 아닌가. 아서라. 난 그저 마을 이름이 궁금했을 따름이란다.
▼ 12 : 16. 길을 나선지 30분, 815번 지방도의 ‘평산4리 버스정류장’에 이른다. 평산4리는 ‘유수정’마을의 행정단위이니 유수정의 입구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 이곳에서 함해만과의 첫 대면이 이루어진다. 바닷가에는 ‘흰발 농게(수컷의 하얗고 큰 집게발이 특징)’와 ‘대추귀 고둥(주둥이 쪽이 사람 귀처럼 생겼고, 전체적으로는 대추를 닮았다)’의 집단 서식지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멸종위기 야생 생물 2급이니 무단 채집이나 쓰레기 투기를 금지한단다.
▼ 잠시지만 함해만의 해안선을 따른다.
▼ 집사람은 출발도 하지 않은 채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낭군과 함께 걷겠다며 2.4km쯤 뒤에서 출발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눈에 들어오는 바다는 온통 황토색깔이다. 맞다. 이곳 함해만은 자연 침식된 황토와 사구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런 특이성을 인정받아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지난 2001년 전국 최초 습지보호지역지정, 2008년 람사르습지 등록, 같은 해 6월에는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 함해만의 빼어난 경관을 구경하며 200m쯤 걷다가 구릉지로 올라선다. 이때 해제반도의 전형적인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양파 수확이 끝나고, 속살을 드러낸 농토가 온통 황토색이다. 얼핏 보기에도 한없이 부드럽고 기름지다. 그러다보니 저 땅은 언제나 푸름을 물든다. 늦가을 무와 배추 수확이 끝나고 겨울로 접어들어도 일대 들판은 푸른빛이 펼쳐진다. 대파와 양파, 마늘이 황톳빛 들판을 뒤덮기 때문이다.
▼ 구릉지에서의 ‘둠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구릉지는 농업용수 확보가 생명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상들은 밭의 한가운데나 근처에 작은 웅덩이를 팠다. 얼마나 물이 절실했으면 한 방울의 물도 아까워 바닥에 비닐까지 깔았을까 싶다.
▼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했다. 이를 알리는 입추도 며칠 전에 지났다. 수확을 마친 저 참깨 단이 그 증거라 하겠다.
▼ 구릉지를 헤집는 탐방로는 요리조리 잘도 방향을 튼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다는 게 ‘서해랑길’의 가장 큰 장점이니 말이다. 서해랑길의 방향표식과 리본으로도 모자라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의 이정표까지 가야할 길을 알려준다.
▼ ‘빼앗긴 땅에도 봄은 오는가?’ 웃자란 잡초로 뒤엉킨 밭이지만 ‘금화규’가 어여쁜 꽃을 피워냈다. (항산화·항바이러스·항알레르기·항균) 작용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최근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약초이다. 하지만 기르는 게 쉽지는 않은 듯. 동네 할머니는 어렵사리 씨앗을 구해 심었는데 자라라는 약초 대신 잡초만 한가득이라며 입을 석 자나 내밀고 있었다.
▼ 12 : 38. 2차선 도로인 ‘현화로’로 올라선다. 이어서 300m쯤 떨어진 ‘외현화마을’ 입구까지 이 길을 따라간다.
▼ 길가에 ‘효부 금성나씨 기행비’가 세워져 있었다. 여자들에 대한 칭송은 열부(烈婦), 즉 남편에 대한 순종과 수절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도 이 빗돌은 효부로 적었다. 그게 특이해 자료를 찾아봤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 외현화마을(현화1리) 입구. 버스정류장에 적힌 ‘로두목’이란 지명이 눈길을 끈다. 두음법칙을 적용 ‘노두목’으로 적는 게 보통일 텐데, 누군가의 ‘위트’가 더해지면서 정감어린 지명으로 변했다. 하나 더, 여기서 노두(路頭)는 갯벌을 건널 때 발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놓은 징검다리를 말한다. 그러니 저 로두목마을은 바닷가일 게 분명하다.
▼ 작은 고개 하나를 넘자 ‘외현화’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법정 동리인 현화리(玄化里)를 구성하는 6개 자연부락(외현화·청룡·내현화·성자동·절동·노두목) 중 하나이다. 새터와 구터로 이루어진 마을은 지형이 게(蟹)의 형국이란다. 구터와 새터가 게의 두 발이고 마을 앞에 있는 두 개의 선독이 게의 눈에 해당된다나? 하나 더, 옛날에는 저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주민들은 게가 거품을 품을 수 있어 당시는 부자마을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닷물이 끊기면서 게의 거품이 일어나지 않아 마을도 가난하게 되었단다.
▼ 동구 밖에는 ‘전주최씨 삼강문’이 들어서 있었다. 삼강(三綱)이란 한나라의 동중서와 반고가 인간관계의 기본으로 강조한 세 가지 덕목(忠·孝·烈)이다. 이 집안에서는 임진왜란 때 충신으로 병조참판을 역임한 제남을 충(忠)으로, 지극한 효성으로 하늘의 감응을 이끌어낸 달신과 그의 아들 상효를 효(孝)에, 그리고 열(烈)은 상효의 부인인 죽산안씨가 주인이다. 안씨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남편이 전염병으로 위독하자 허벅지살을 베어 약제로 사용함으로써 병을 낳게 하였단다. 삼강문 안에는 이를 기리는 2기의 비석이 있다.
▼ 길가에 ‘유정각’을 지어 주민들뿐만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에게도 쉼터로 제공하고 있었다. 문객들로 붐비던 옛날이 그리웠나 보다. 참고로 조선 말, 최동현(號 : 노강)이란 선비가 이 마을에 살았더란다. 덕분에 그에게 배움을 원하는 수많은 인재들로 마을은 항상 붐볐고, 고을에 원님이 부임할 때는 직접 노강 선생을 찾아와 담소를 나누었을 정도였단다.
▼ 건너편 구릉지에는 제각이 들어앉았다. ‘미수목란(난초가 필락말락 하는)’의 형국에 지었다는 전주최씨 제각 ’목란재‘가 아닐까 싶다. 이 집안에서 고시 합격자를 5명이나 배출했다니 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다.
▼ 탐방로는 ‘구터’를 지나 ‘새터’로 간다. 이어서 벽화로 치장된 마을안길을 지나 뒤편 들녘으로 빠져나간다. 원픽한 예쁜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딱 좋은 구간이다.
▼ 마을 앞에 서있는 저 바위가 게의 눈에 해당된다는 ‘선독’일지도 모르겠다. 뜬 눈에 해당된다는 새터의 그 바위 말이다.
▼ 마을을 빠져나온 탐방로는 현화리의 주산인 ‘태통산(兌通山, 55.1m)’을 에둘러 간다. 추석 때 현화리의 주부들이 저 산에 모여 강강수월래를 하며 정을 확인했단다. ‘화합의 장’이었던 셈이다. 당시는 정상 부근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져 풍치가 대단히 좋았다고 전해진다.
▼ 12 : 58.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12분, 탐방로는 ‘내현화’마을에 이른다. 와우형의 아늑하고 평화로운 지형이 주민들의 넉넉한 심성을 만들어주었다는 마을로, 조선시대의 대학자 미수 허목의 제자 김석구(金錫龜(호는 玄圃)가 ‘배우고 익히며 먹고 살 수는 있겠구나’하며 이곳에 터를 잡았단다.
▼ 앗! 내가 동경해온 풍경이 아닌가. 취선루(醉仙樓), 이백(李白)만 술과 달을 희롱하는 게 아니라는 저 배포가 부럽기만 하다. 벽에 적힌 싯구도 감성 풍부한 나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차창 바람 서늘해 가을인가 했더니 그리움이더라/ 그리움 이 녀석 와락 안았더니 눈물이더라/ 세월 안고 그리움의 눈물 흘렸더니 아! 빛나던 사랑이더라>
▼ 마을 앞 팽나무 그늘에는 정자가 들어앉았다. 유리문을 달아 신발을 벗어야만 이용할 수 있던 외현화마을과는 달리 이곳은 통째로 개방되어 있다. 덕분에 우린 걸터앉은 채로 준비해간 간식을 나누며 푹 쉬어갈 수 있었다.
▼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긴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덕분에 할머니들의 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먼저 밀고 다니던 유모차가 자신만을 위해 제작된 자가용으로 바뀐다. 편의성과 안전성을 모두 갖췄으니 모터가 없는 수동이라고 해서 뭐가 문제겠는가. 그러던 것이 요즘은 모터까지 달아 젊은이들의 승용차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 ‘은포 김영원’이란 이의 기행비도 눈에 띈다. 마을의 양대 성씨인 ‘김해김씨’가 낳은 효자로, 무안군청 홈페이지는 그의 효행을 ‘친병에 상분하고 정간에 애훼과인하다’고 적고 있었다.
▼ 이번 구간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의 시설물들을 자주 활용하게 된다. 무안지역은 ‘갯벌 낙지길’을 브랜드로 내세우는데, 그중 평산4리 버스정류장에서 해운보건소까지의 1구간(마을과 들녘 : 9.3km) 대부분이 서해랑길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 15분 정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4분쯤 더 걸어 ‘현화로(이정표 : 종점까지 8.2km)’로 올라선다. 만나는 지점에 ‘생록동’의 마을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 그렇다고 도로를 따르지는 않는다. 곧바로 횡단해 ‘생록동’ 마을을 향해 간다. 사슴이 물을 먹는 형국이라고 해서 그런 지명을 얻었다.
▼ 4분쯤 더 걸으면 삼거리, 왼쪽은 생록동으로 이어지는 길, 탐방로는 오른편으로 간다. 이정표는 4.5km 전방에 ‘후동마을’이 있다고 알려준다.
▼ 이때 현화리의 나머지 자연부락들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감방산(259m) 자락에 들어앉은 구산마을과 성자동마을이다. 현화4리에 속한 작은 부락들로 감방산 아래 815번 지방도(장군로)를 사이에 두고 내현화 마을과 마주보는 형세이다.
▼ 탐방로는 들녘을 향해 나아간다. 눈에 익숙한 구릉지가 아닌 걸 보면 간척사업으로 인해 생겨났을 것이다.
▼ 이 동네는 마음 고운 이들로 가득한 가 보다. 길가에까지 꽃밭을 만들었다. 덕분에 나그네들은 예쁜 낮달맞이꽃을 눈에 담으며 걸을 수 있었다.
▼ ‘생록동 삼거리’에서 8분. ‘광덕1교로’로 ‘현화천’을 건넌다. 그리고는 하천 둑길을 따라 바닷가로 간다. 하천변에는 ‘야관문’이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원래 이름은 ‘비수리’, 잘게 썰어 술로 담가 먹는데, 이게 남자의 정력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약재명인 야관문(夜關門)으로 세간에 입소문을 탔다.
▼ ‘야관문’의 약효를 의심하면서 걷길 8분. ‘약효가 없다’로 결론이 날 즈음 함해만에 이른다. 물 빠져나간 바닷가에는 꼬맹이 고깃배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니 주인을 모시고 고기잡이 나갈 물때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제방의 안쪽, 한때 양식장이었을 법한 연못은 방치되고 있었다. 대하양식장으로 그만이겠는데도 말이다.
▼ 이후부터는 함해만의 해안선을 따른다. 건너편 해제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며 걸을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 맑고 고운 황토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맞은편 해제반도까지 짧은 곳은 7km, 먼 곳은 11km까지 드넓은 갯벌이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진다. 갯벌은 하루 두 번 물이 들고 나면서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약 6시간마다 스멀스멀 갯골을 기어오른 바닷물은 다시 눈에 띄지 않게 슬금슬금 뒷걸음질치기를 반복하면서 갯벌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생명을 불어넣는다.
▼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는 저런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느긋이 쉬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눈이 아니라 가슴에 담아가라는 모양이다.
▼ 계단 모양으로 만든 방조제도 눈에 띈다. 단에는 구멍을 뚫어놓았다. 이게 또 자다르(크로아티아)에서의 추억을 소환시킨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바다 오르간(Moske Orgulje)’인데, 그곳도 역시 돌로 만든 방파제에 구멍을 숭숭 뚫어놓았었기 때문이다. 파도가 일렁이면서 이 구멍으로 물결이 밀려들어가고, 이게 방파제 밑의 공기를 밖으로 밀어내면서 오르간처럼 소리를 내는 것이다. 파도의 크기와 속도에 따라 다른 음을 내는 것은 물론이다.
▼ 바닷가 갈대밭은 가을철이면 또 다른 볼거리로 제몫을 할 수도 있겠다. 하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갈대꽃만으로도 아름다울 텐데, 그 너머로 해제반도의 빼어난 풍경까지 더해진다면 이 아니 아름답겠는가.
▼ 눈의 호사는 10분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는 바닷가를 떠나 내륙으로 향한다.
▼ 잠시 후 2차선 도로인 ‘해운로’로 올라선다. 이정표는 34코스의 종점인 돌머리해변까지 5.6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 14 : 00.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만에 갯벌체험과 낙농체험을 함께 할 수 있다는 파도낙농체험농장에 도착했다. 치즈만들기, 젖소 젖짜기 등 다양한 낙농체험 프로그램으로 억대 농외소득을 올리는 알짜 목장이라고 한다. 농촌 살림도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 목장의 끄트머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문화생태탐방로의 이정표는 1.7km전방에 있는 후동마을을 가리킨다. 서해랑길도 이를 따르면 된다.
▼ 탐방로는 바닷가를 향해 간다. 하지만 바다를 코앞에 둔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간척사업으로 인해 생겨난 들녘으로 들어선다.
▼ 들녘에 들어선 길은 요리조리 잘도 방향을 튼다. 이유는 단 하나, 해운천과 자명천에 놓인 다리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아무튼 이 구간은 서해랑길의 표식에 더해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의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 파도목장에서 21분, ‘해운1교’로 해운천을 건넌 다음 둑길을 따라 바닷가로 간다. 오리농장이 줄을 잇는 구간이다.
▼ 바닷가에 가까워지자 바닥을 드러낸 담수호(?)가 떡하니 길을 막는다. 탐방로가 내륙을 향해 방향을 틀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 잠시 후, 이번에는 자명천을 건넌다. 이름조차 없는 이 다리가 군경계이다. 무안군을 누비던 서해랑길이 이 다리를 건너 함평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14 : 30. 잠시 후 바닷가에 이르니 다리가 놓여있는 게 아닌가. 공사 중이기는 하지만 건너다닐 수는 있는 것이다. 이는 아까 파도목장에서 내려와 해안선을 따라 이곳으로 와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괜히 알바를 했다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 이후부터는 함해만의 해안선을 따른다. 진행방향 저 멀리서 34코스가 종료되는 돌머리해안이 어서 오라며 손짓한다.
▼ 함평 땅에서 만난 갯벌은 아까와는 많이 다르다. 맑고 고운 황토색이 아니라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하지만 보여주는 풍광만큼은 변함없이 아름답다.
▼ 모래톱이 고와 카메라에 담아봤다. 모래톱(沙濱)은 파도에 의한 침식으로 인해 생긴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지는 해안을 말한다. 그게 오래가면 ‘비진도’처럼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이어지기도 한다.
▼ 해안길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걷는 게 썩 편하지는 않았다.
▼ 목적지인 돌머리해안이 많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해안선을 따라 빙 둘러 가야하기 때문에 손에 잡힐 듯 가까우면서도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까 해안에 올라선 후로 35분이나 더 걸어야만 했다.
▼ 갯벌은 온통 구멍투성이다. 맞다. 이곳 함해만에는 해양수산부 지정 해양보호생물인 흰발농게, 대추귀고둥을 비롯한 250종의 저서생물이 살아간다. 또한 칠면초, 갯잔디 등 47종의 염생식물, 혹부리오리, 알락꼬리마도요 등 약 52종의 철새 등 많은 생명체가 이곳 갯벌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 15 : 06. 드디어 종착지인 돌머리해안에 도착했다. 첫 만남은 ‘Stone Dahlia’ 호텔&리조트이다. 해안선을 따라오면서 ‘랜드마크’삼아 방향을 잡았던 건축물로, 객실에서의 프리미엄급 spa와 ocean view, 거기에 갯벌체험이 더해지면서 최근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 리조트 앞 갯벌은 게나 조개, 해초류 등을 직접 잡아볼 수 있는 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나보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 노두 주변에서 뭔가를 잡느라 분주한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띈다.
▼ 탐방로는 리조트의 왼쪽 옆구리 쪽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우린 바닷가를 걸어보기로 했다. 기껏해야 30m쯤 걷다가 ’광산김씨세장산‘ 빗돌 앞에서 탐방로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지만...
▼ 하지만 잘 생긴 거북이 한 마리를 포획할 수 있었다. 보라. 바닷가 해식애 속에서 머리만 쏙 내밀고 있는 저 거북이를.
▼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모퉁이를 돌면 전망대가 반긴다. 아니 3층 높이에 조망대가 있으니 전망타워로 불러도 되겠다. 트레킹의 막바지, 이미 바닥을 보이는 체력 때문에 3층 높이의 계단은 다소 부담스럽다. 하지만 함해만이 한눈에 쏙 들어오니 어찌 올라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그런 내 예상은 옳았다. 일망무제의 조명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내륙을 향해 항아리처럼 파고들어온 함평만이다. 그 건너는 해제반도, 폭이 불과 400m 정도인 송정리 땅으로 인해 뭍과 하나로 연결돼 있다.
▼ 저 멀리 함해만 입구에는 ‘칠산대교’가 놓여있다. 함해만은 반 폐쇄적인 특성을 지닌다. 면적이 344㎢(길이 17km/ 폭 1.8km)쯤 되는데, 입구에서 영광의 칠산 바다를 만난다. 길이 109.2km의 해안선이 원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 맨 오른쪽에는 백사장의 길이가 1Km쯤 된다는 해수욕장이 들어앉았다. 아니 ‘돌머리지구 연안유휴지 개발사업(85억 원이나 들였단다)’이 만들어낸 일종의 유원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해수욕장 일대에 해변탐방로·갯벌탐방로·어린이풀장·해수풀장·오토캠핑장 등 친서민 휴양시설을 조성했다.
▼ 바닷가로 내려서니 잠시 쉬었다가라는 듯 정자를 지어놓았다. 눈요깃거리로 예쁜 돌탑도 쌓아올렸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함평만 생태보존기념비’, 함평 땅에 들어서더니 함해만이 함평만으로 둔갑해버렸다.
▼ 그 옆에는 ‘어린이 물놀이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워터버킷·워터슬라이드 등을 갖춰 해수욕과는 다른 재미를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 돌머리해수욕장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썰물 때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닷물을 끌어와 인공풀장을 만들었는데, 그 규모가 무려 7천480㎡나 된단다. 건강관리를 위해 주기적으로 해수를 교체해준다니, 피서객들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 서해의 특징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무척 크다는 것이다. 그런 서해에서도 가장 큰 곳을 고르라면 단연 이곳 돌머리해안이 꼽힌단다. 그런 특징을 살리기 위해 만든 게 ‘갯벌탐방로’이다. 해수풀장 근처에서 405m의 탐방로가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다. 그 끝에는 물이 차면 보이지 않는 암초가 있다고 한다. 이 암초를 ‘돌머리’라고 부르는데, 이게 해안의 이름이 됐다.
▼ 해안은 거의 유원지 수준이다. 샤워장·취사대·매점 등 편의시설을 두루두루 갖췄는가 하면, 원두막과 야영장 등 웬만한 유명 관광지가 부럽지 않게 잘 꾸며 놓았다. 하긴 깨끗한 갯벌, 아름다운 낙조, 상쾌한 소나무 숲이 부각되면서 ‘전국 청정해수욕장 20곳’에 선정되기도 했다니 어련하겠는가.
▼ 물이 빠져나간 해수욕장은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다양한 생태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에서 게, 조개 등이 살아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고, 마음 내키면 직접 잡아볼 수도 있다. 또 전망대 쪽으로 가면 자연산 석화(이 지역에서는 ‘꿀’이라 부르기도 한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갯바위도 만나게 된다.
▼ 서해랑길 35코스(함평)의 안내판은 해수풀장 근처에 세워져 있었다. 부근에 편의점이 있어 맥주 두어 캔(집사람은 아이스크림)을 챙기는 행운까지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3시간 40분을 걸었다. 앱이 14.62km를 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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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탄고도 1330’ 2길(각동리-모운동)
여행일 : ‘23. 8. 5(토)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일원
여행코스 : 각동리→가재골→대야리→김삿갓면사무소→예밀교차로 → 예밀와인힐링센터→구름품은캠핑장→모운동(거리/시간 : 18.8km)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폐광지역인 영월군·정선군·태백시·삼척시 등 4개 지역을 잇는 ‘운탄고도 1330’은 과거 석탄과 함께 흥망성쇠를 누리던 길이다. 출퇴근하는 탄부를 태우거나 탄 더미를 실은 트럭들이 이 길을 달렸었다. 그게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유산이자 역사·문화·힐링의 길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사라진 옛길을 복원하고, 와이너리(영월)·만항재(만항재)·매봉산(태백)·미인폭포(삼척) 등 주요 포인트들을 스토리텔링으로 각색해 세상에 내놓았다. ‘1330’은 운탄고도(運炭高道) 전체 구간 중 해발이 가장 높은 만항재의 높이에서 따왔다. 총 9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그중 두 번째 구간인 ‘김삿갓 느린 걸음 굽이굽이 길’을 오늘 걷는다. 옥동광산 광부들이 내뱉던 숨결에 더해 김삿갓의 흔적, 그리고 winery에 들러 시음까지 해볼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 들머리는 각동마을 버스정류장(영월군 김삿갓면 각동리)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내려와 34번 국도를 따라 태백방면으로 가다 영월교차로(영월읍 방절리)에서 88번 지방도(단양방면). 13km쯤 달리다 각동교차로(김삿갓면 진별리)에서 ‘595번 지방도(강변로)’로 옮겨 남한강을 건너면 곧이어 각동마을 버스정류장에 이르게 된다.
▼ 1길과 2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버스정류장 옆에 설치되어 있다.
▼ 2길은 ‘김삿갓 느린 걸음 굽이굽이 길’이란 브랜드를 내걸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 18.8km의 산길을 걸으면서 김삿갓 산천경개 하듯 느릿느릿 주변경관을 둘러보라는 모양이다. 하지만 폭염 경보에 놀란 우리 일행은 김삿갓면사무소에서 모운동까지만 걷기로 했다. 아니 2년 전에 걸었던 외씨버선길과 겹치는 구간을 제외시켰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다.
▼ 10 : 26, 실제로는 역방향(모운동에서 출발)을 선택했다. 굽이굽이 돌아가며 망경대산(1,087m)을 에도는 2길 중 가장 높은 지점(667m)을 조금이라도 편히 오르기 위해서이다. 제대로 진행하면 오르면 400m가까이를 치고 올라야지만 이곳 모운동에서는 140m만 오르면 되니 망설일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특히 오늘처럼 폭염 경보까지 내려진 날이라면...
▼ ‘김삿갓계곡’ 입구에서 모운동으로 올라오는 1차선 도로는 구절양장처럼 한없이 구불댄다. 거기다 천애의 낭떠러지 위로 나있어 눈 맞추기조차 두렵다. 하지만 산악회 황사장님은 요리조리 잘만 달린다. 그렇게 도착한 모운동에는 제법 너른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모운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꽤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 구미를 당기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구름이 모이는 마을, 모운동 걷는 길’이란다. 광부의 길, 명상길, 망경사길, 굽이길, 숲속길이 모운동 주변을 실핏줄처럼 헤집고 다닌다. 만사 제치고 저걸 걸어봐? 하지만 나는 주어진 시간 안에 트레킹을 마쳐야만 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아서라’다.
▼ 스탬프보관함은 ‘모운동 쉼터’에 기대듯 설치되어 있었다. 주차장 입구, 버스정류장 옆이다.
▼ 트레킹을 나서기 전 마을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첫 번째 만남은 ‘운탄고도 마을호텔’이다. ‘tvN’의 동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운영하던 호텔이다. 엄홍길 대장을 필두로 그의 찐친 정보석 그리고 막내 이장우와 함께 저 호텔을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 출연자들이 여유를 즐기던 소품이 눈길을 끈다. ‘운탄고도 마을호텔’ 방영 이후 모운동은 관광객이 급증했다고 한다. 제공되는 식사와 편의를 통해 백패커들과 출연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해피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 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양씨판화미술관’은 양태수 판화작가와 전옥경 냅킨아트 공예가 부부가 건립한 사립 미술관이다. 양태수 작가의 자연을 소재로 한 흑백판화와 다색 판화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냅킨아트 공방에서는 냅킨아트 공예 생활소품과 장식품이 전시·판매되고 있다.
▼ 근처 폐가(창고일지도 모르겠다)는 벽화로 인해 동화 속 나라로 새롭게 태어났다.
▼ 호텔 앞, ‘아랫마을’을 가리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짬을 내서라도 벽화마을에 들러보라는 모양이다.
▼ 작은 화전마을이던 ‘모운동(募雲洞)’은 옥동광업소가 문을 열면서 상황이 확 변했다. 돈을 캐낸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탄광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1만 명이 넘는 주민들로 늘 북적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영화는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한순간에 무너진다. 사람들은 떠나고 과거의 영화만 남긴 채 마을은 잊혀졌다. 그러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주민들은 텅 빈 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마을 곳곳에 산책로와 등산로를 만들고, 탄 더미가 쌓여 있던 빈터도 꽃을 심어 폐광의 흔적을 지워냈다.
▼ 마을은 곳곳에 동화 속 이야기를 담았다. 주택이나 담장의 빈 공간에 화사한 꽃, 백설 공주, 푸른 산과 구름 등 벽화를 빼곡히 그려 넣었다. 벽화마을이라는 애칭이 붙은 이유이다. 그게 또 ‘동화’를 담았다고 해서 ‘동화마을’로도 불린다.
▼ 무늬만이지만 사진관도 복원시켰다. 당시는 저런 사진관 말고도 영화관·당구장·미장원·양복점·병원 등 대도시 부럽지 않은 상권을 형성했단다. 특히 영화관은 서울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 영화가 상영되었을 정도라나?
▼ 마을 공터에서는 영월읍보다 더 큰 장이 열렸었다고 한다. 그곳에 지금은 공연장이 들어섰고, 그 벽에 수백 개의 옛 핸드폰이 진열돼 탐방객들의 눈요깃거리로 제공된다.
▼ 야외 테이블로도 모자라 비치파라솔까지 쳐놓은 저 집은 대체 누가 살고 있을까?
▼ 벽면은 홍보의 장으로 이용했다. 모운동의 역사는 ‘모운동 마을이야기’로 포장됐고, ‘버디버디’와 ‘짝’이 모운동에서 촬영되었음을 episode 형식을 빌려 전해준다.
▼ 10 : 36, 양씨판화미술관을 오른쪽에 끼고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참고로 모운동을 둘러보는 데는 10분 정도가 걸렸다.
▼ 80m쯤 걸으면 임도의 초입. ‘운탄고도 1330’의 이정표(장재터 3.22km/ 모운동 0.64km)가 길을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려준다.
▼ 이후부터는 울창한 숲속을 걷는다. ‘운탄고도 1330’은 기억너머로 사라졌던 석탄 길, 즉 탄광에서 이용하던 옛길을 복원시켰다. 출퇴근하는 탄부를 태우거나 탄 더미를 실은 트럭들이 이 길을 달렸었다. 바닥에 깔린 저 검은 흙이 그 증거일 것이다.
▼ 길 찾기는 나그네들의 몫.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길이 나뉘기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이정표가 나타났고, 그 구간이 멀다싶으면 운탄고도 특유의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 널찍한 임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르는 게 만만찮을 정도로 가파른 오솔길도 나타난다. 하지만 유일무이한 오르막구간이니 싫다는 내색은 너무 말자. 거기다 계곡을 끼고 있어 졸졸거리는 청량한 물소리까지 들을 수 있지 않는가.
▼ 트레킹을 시작한지 34분. 오르막의 막바지에 긴 나무계단이 놓여있었다.
▼ 11 : 01,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1차선 도로인 ‘모운동길(주문교←모운동→싸리재)’. 이정표(장재터 2.08km/ 모운동 1.78km)가 왼쪽으로 진행하란다. 오른편으로 가면 출발지인 모운동이 나오는데, kakaomap은 저 길을 따라 이곳으로 오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 ‘모운동길’은 싸리재에서 ‘솔숲길’에 바통을 넘긴다. 두 길의 특징은 한없이 꼬불댄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산꼬라이데이길’을 조성하면서 ‘굽이길’이란 브랜드까지 내걸었겠는가. 특히 솔숲길은 좁은 노폭에 400m의 고도차를 극복하기 위한 가파른 경사도까지 겹친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런 스릴이 좋아 찾아오는 드라이버들도 꽤 많다고 했다. 실제로 적당한 리듬을 타면서 달려가는 차량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 5분쯤 더 걸어 도착한 ‘싸리재(kakaomap의 정류장 이름)’. 한우 육종농가인 ‘서로목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고 있었다. 암소 계획교배로 생산된 보증씨수소를 기르는 농장일 것이다. 그러니 방역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일반인의 출입도 당연히 금물.
▼ 운탄고도는 망경대산의 7부 능선을 향해 고도를 높인다. 하지만 경사가 거의 없어 평지나 마찬가지로 걷는다. 거기다 주변의 숲은 따가운 햇살까지 막아준다. 덕분에 우린 폭염 경보까지 내려진 무더위인데도 피서를 나온 사람들처럼 즐기면서 걸을 수 있었다.
▼ 이즈음 ‘모운동(募雲洞)’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1.087m의 망경대산 6부 능선 분지에 형성된 산골 마을, 늘 구름이 모여든다는 지명처럼 마을 위 하늘은 뭉게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 잠시 후 망경대산의 한 지능선을 넘는다. 앱이 667m를 찍는 어엿한 고갯마루이지만 넘는다기보다는 모퉁이를 돌아가는 모양새이다.
▼ 이후부터는 내리막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경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해서 평지를 걷는 듯한 느낌이다.
▼ 이 구간에서도 시야가 트인다. 산태극수태극을 이루며 흘러가는 옥동천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저 어디쯤에는 외씨버선길을 걸으면서 답사했던 ‘김삿갓계곡’이 있을 것이다.
▼ 4분쯤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구름품은 캠핑장’. 이름처럼 구름을 품에 안을 만큼 높지막한 곳에 위치한 캠핑장이다. 특히 마운틴 뷰가 뛰어난 곳으로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단다.
▼ 이 캠핑장의 명물은 공중에 걸린 ‘캠핑사이트’이다. 솔숲에 대를 올리고 그 위에 사이트를 만들었다. 저 정도면 빗줄기 따라 내려온 구름을 품에 안아볼 수도 있겠다. 하나 더, 애견동반이 가능하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 11 : 35, 길을 나선지 1시간 8분 만에 ‘예밀2리삼거리’에 이른다. 초등학교(옥동초교 예밀분교)까지 있었다는 갈금마을의 초입이라선지 버스정류장 말고도 운탄고도 이정표(장재터 1.6km/ 모운동 4km) 같은 시설물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 이정표의 하단, 현 위치 안내판은 이름표까지 달았다. ‘산꼬라데이 길’, 그중에서도 굽이굽이 돌아가는 ‘굽이길’이란다. 옛 탄광 길을 강원도 사투리인 ‘산꼬라데이’로 명명하고, 굽이길·광부의길·솔숲길 등 구간마다 고유의 이름을 따로 붙였다. 그런데 이게 모운동을 찾는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요즘은 걷기 코스의 명소로 자리매김 되었다고 한다.
▼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도로가 구불대기 시작한다. 거기다 경사까지 가팔라진다. 첨부된 지도의 장재터 오른쪽에서 한없이 구불대고 있는 구간이다. 스릴을 쫓는 드라이버들이 딱 좋아할만한 코스라 하겠다.
▼ 5분쯤 더 걸으면 또 다른 삼거리. 오른쪽은 밀엄사(密嚴寺)라는 작은 절로 연결된다. 안쪽에 절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는지 여러 기의 돌탑을 쌓아올렸다.
▼ 도로변에는 쉼터도 조성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보수를 하지 않은 탓에 의자가 썩어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 ‘운탄고도 1330’의 2구간은 해발 1.087m의 망경대산을 에두르며 나있다. 덕분에 곳곳에서 시야가 트이며 1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한눈에 쏙쏙 들어온다.
▼ 하지만 썩 편치 않은 풍경도 펼쳐진다. 산비탈을 깎아 태양광발전소를 만든 것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한 결정이겠지만, 원자력을 축소하면서까지 장려된 점은 분명 문제다. 그로 인해 발전단가가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우리 국민은 두 눈을 뻔히 뜨고 물어야 할 수밖에 없었고.
▼ 17분쯤 더 내려오니 ‘삭도’를 설명해놓은 안내판이 반긴다. 안쪽에는 삭도가 설치되어 있었음직한 시멘트 구조물도 있었다. 삭도(索道)란 케이블카처럼 생긴 운반 장치를 말한다. 1960-70년대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옥동광업소에서 캐낸 석탄은 이곳에서 시작되는 삭도에 실려 산을 넘어 석항역 저탄장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열차를 이용해 전국의 연탄공장으로 운송되었다.
▼ 몇 걸음 더 내려오니 이번에는 삼거리. 왼쪽은 ‘예밀 와이너리’로 내려가는 도로, 이정표는 이곳에서 오른편(장재터길)을 타라고 지시한다. 참! 첨부된 지도에는 2길이 ‘장재터’를 지나도록 되어있었다. 이 부근을 이르는 지명이 아닐까 싶다. 하나 더, 장재터(長者坪)는 재물이 많은 부자가 살던 집터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산골짜기에서 그런 부자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
▼ 버스정류장은 ‘영월10경’을 홍보하고 있었다. 장릉·청령포·별마로천문대·김삿갓유적지·고씨굴·선돌·어라연·한반도지형·법흥사·요선암(요선정) 등인데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이 모두를 이미 둘러본바 있다.
▼ 산꼬라데이길 이정표가 가리키는 ‘송골길(운탄고도 이정표는 ’장재터길‘로 적는다)’ 방향으로 200m쯤 걷다가 왼쪽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선다. 들머리를 지키는 이정표를 참조하면 되겠다.
▼ 오솔길로 들어서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기를 확 꺾어버린다. 등산용 스틱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는 구간이다.
▼ 그럼에도 둘레길 나그네들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예밀천 계곡을 내려가며 원시림 속에 숨어있던 갖가지 비경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만남은 높이가 10여m쯤 되는 폭포, 수량까지 많아 여느 유명 폭포가 부럽지 않은 풍경을 선사한다. 참! 운탄고도 1330‘을 답사한 어느 기자는 이곳을 ’예밀폭포‘로 부르고 있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위험천만인 바윗길에는 굵직한 밧줄이 매어있었다. 그마저도 할 수 없는 곳에는 철제다리와 계단을 설치했다.
▼ 대간에 정맥·지맥을 다 마쳤어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여성분. 더 이상 오를 산이 없다는 듯, 요즘은 둘레길에 필이 꽂혔다. 그런 그녀의 눈에도 이곳 예밀천 계곡은 새로웠던 모양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비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 철다리를 지나자 또 다른 폭포가 반긴다. 제법 긴 물줄기의 옆. 수직 암벽에는 미지의 숲으로 들어가는 통로라도 되는 양 철제계단이 길게 놓여있다. 저 시설물은 ‘산꼬라데이길’을 개설하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찾는 이들이 드물어 그동안 방치되어오다가, 운탄고도를 내면서 새롭게 정비했단다.
▼ 계단 아래서 길은 더 험해지고 있었다. 안전 밧줄이 매어있지만 몸을 의지하기에는 2%쯤 부족. 다들 바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이유다.
▼ 계곡의 볼거리는 폭포만이 아니었다. 뾰쪽하면서도 긴 바위 하나가 수직의 절벽에 기대듯 서있었다. ‘촛대바위’라 불러주라면서.
▼ 12 : 17-37, 청량한 물길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는 노릇. 물가에 둘러앉아 망중한을 즐기기로 했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면서 20분 동안이나 족탕을 즐겼으니 이 아니 좋을 손가. 맞다. 오랜만에 누려본 호사였다.
▼ 다시 길을 나선다. 하지만 길 찾기가 편치만은 않았다. 쓰러진 거목이 길을 헷갈리게 만들어 한참이나 헤매야만 했다.
▼ 길이 묻혀버릴 정도로 웃자란 잡초도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데 동참했다.
▼ 12 : 51, 숲이 열리면서 첫 민가가 얼굴을 내민다. 이정표(출향인공원 0.3km/ 장재터 2.4km)는 출향인공원이 멀지않은 곳에 있음을 알려준다.
▼ 눈에 익은 이정표가 반갑다. 영월의 하천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말뚝 모양의 이정표로 2년 전 ‘외씨버선길(청송↔영월)’을 답사하면서 심심찮게 만났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일행은 이 부근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계곡으로 내려서서 ‘출향인공원’으로 가야하는데 무심코 민가 진입로를 따라버렸던 것이다.
▼ 놓쳐버린 ‘출향인공원’의 사진은 산악회 총무님의 것을 빌려왔다. 맑은 샘물이 흘러나와 족탕에 안성맞춤이라는데 족욕은커녕 눈요기도 못했다. 아까 계곡에서 청정수에 발을 담갔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랄까?
▼ 때문에 계곡이 아닌 민가 진입로를 따라 내려간다. 길가 옥수수 밭은 아직도 푸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옥수수자루가 여물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홍천에 농장을 두고 있는 난 옥수수 수확을 이미 끝냈는데... 같은 강원도임을 감안하면 씨앗의 종자가 서로 달랐음이리라.
▼ 잠시 후 ‘예밀2교’에 닿는다. 아까 삭도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졌던 길을 다시 만나는 지점이다. 탐방로가 ‘갈 지(之)’ 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려가며 내려오는 삭막한 아스팔트 도로 대신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고 보면 되겠다. 참! 운탄고도 이정표도 오른편 도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 전 길을 놓치지 않았을 경우 출향인공원을 거쳐 저곳으로 내려오게 된다.
▼ ‘운탄고도 1330’은 이제 ‘예밀촌길’을 따른다. 그런데 가로수삼아 심어놓은 저 예쁜 나무의 정체는 뭘까?
▼ 13 : 00,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15분, 예밀2리 영농조합법인에서 운영하는 ‘예밀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포도 품종인 ‘캠벨얼리’가 재료로 사용된단다. 스위트·드라이·로제 등을 생산하는데, 여러 와인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기도 했단다. 진한 장밋빛의 아름다운 색과 특유의 산미가 조화를 이루는 화사한 향에다 적당한 보디감을 느낄 수 있다나?
▼ 문간에는 탑도 하나 쌓아올렸다. 눈에 익은 모양새이나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와인체험관’은 문이 닫혀 있었다. 이 와이너리는 ‘예밀 와인’이란 자체 브랜드로 시장에 출시된다. 그 와인을 시음도 해볼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다보면 한 병쯤 사갔을 테니 와이너리로서도 이익이었을 것이고...
▼ 와이너리의 중심축은 ‘힐링족욕체험센터’이다. 전문자격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족욕(足浴)으로 피로를 푸는데, 그게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란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녹여낼 수 있는, 말 그대로 ‘힐링의 표상’이란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야함은 물론이다.
▼ 운탄고도 스탬프보관함은 족욕체험센터의 맞은편 소공원에 설치되어 있었다. 동화 속 나라에는 나비와 삿갓 등 여러 조형물 외에도 벤치 등 부대시설을 배치했다. 편히 쉬면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라는 모양이다.
▼ 와이너리 주변은 포도밭이 널려있다. 예밀촌은 낮에는 일조량이 많고 밤낮의 일교차가 심해 포도재배의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거기다 배수가 잘되고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토양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단다. 그러니 좋은 와인이 생산될 수밖에.
▼ 도로 건너 숲속에는 성황당이 들어앉았다. 당집의 생김새로 보아 오래된 게 분명한데도 이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운탄고도 1330’을 만들면서 스토리텔링이라도 입혀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 이후부터는 여름철 걷기 코스로는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아니 오뉴월 뙤약볕에 오롯이 노출되는 탓에 오늘처럼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에는 최악의 코스가 될 수도 있는 구간이다.
▼ 밭을 지키고 있는 저 소나무들의 정체는 대체 뭘까? 이탈리아의 우산소나무를 쏙 빼다 닮은 모양새가 하도 예뻐서 남겨두었는지도 모르겠다.
▼ 길옆 ‘예밀천’은 물기 한 점 찾아볼 수 없다. 장마철 폭우가 할퀴고 간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곳곳에서 수마가 남긴 상처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 정도라면 폭우 때나 잠시 물기를 보이는 순수 건천(乾川)이라 하겠다.
▼ 13 : 30. 88번 지방도와 만났다. 그렇다고 지방도로 올라선다는 얘기는 아니다. 잠시지만 두 도로가 나란히 서서 간다.
▼ 잠시 후 만난 ‘예밀교차로’는 공원 수준으로 꾸며져 있었다. 인공 숲은 물론이고 정자에 벤치까지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 탐방로를 겸한 ‘예밀천길’은 예밀천1교 근처에서 88번 지방도 아래로 난 굴다리(이정표 : 김삿갓면사무소 1.1km/ 예밀교차로 0.3km)를 지난다. 그리고는 ‘영월동로’에 바통을 넘겨준다.
▼ 탐방로(영월동로)는 이제 예밀천을 따라 ‘옥동천’으로 간다. 이때 예밀천2교를 건너기도 한다. 예밀천을 좌우로 번갈아가며 따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 그렇게 10분쯤 걸으면 드디어 옥동천, 천변에 정자와 화장실까지 지어놓은 걸 보면 이 부근이 유원지로 개방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맞다. 예밀천이 옥동천으로 유입되는 두물머리 일대를 물놀이장으로 열어놓고 있었다. 물이 깊은지 강가에는 안전요원도 몇 보인다.
▼ 예밀교는 쌍 다리다. 신·구 2개의 다리가 나란히 옥동천을 가로지른다. 탐방로는 이중 보행교로 변한 옛 다리를 건넌다. 퇴역을 하는 대신 수세미 넝쿨로 터널을 만들어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멋진 다리로 변신했다.
▼ 다리를 건너 만난 ‘외씨버선길’이 무척 반갑다. 2년 전 경북 청송의 주왕산에서 걷기를 시작해 영양과 청송 땅을 지나 이곳으로 왔었다. 아무튼 이후부터는 두 탐방로가 정확히 일치한다.
▼ 탐방로는 이제 김삿갓면 소재지로 들어간다. 트레킹이 끝나간다는 얘기다.
▼ ‘김삿갓면’은 파출소까지도 삿갓을 브랜드로 내걸었다. 하긴 김삿갓의 생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인연삼아 면의 이름까지 바꿨는데 어련하겠는가. 김삿갓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의 난 때 평안도 선천 부사로 있다가 반란군에게 투항했다. 역적이 된 조부는 참수당하고 가족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당시 김삿갓 일가가 숨어든 곳이 바로 영월이다.
▼ 14 : 10, 오늘은 김삿갓면사무소에서 마치기로 했다. 잔여 구간은 2년 전 외씨버선 13길(관풍헌 가는 길)을 답사하면서 이미 걸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오뉴월 삼복더위에 산 하나를 더 넘어야 하는 일정은 무리가 분명하다. 그나저나 오늘은 3시간 20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가 10.85km임을 감안하면 더디게 걸은 셈이다. 무더위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얘기도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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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33코스(무안 황토갯벌랜드-상수장마을)
여행일 : ‘23. 7. 29(토)
소재지 : 전남 무안군 해제면과 현경면 일원
여행코스 : 무안 황토갯벌랜드→수암교차로→가입마을→마산마을→성재동→용정골→두동마을→석북마을→수양촌→상수장 버스정류장(거리/시간 : 19.9km, 실제는 13.20km를 3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32코스를 걷는다. 10개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마지막 코스이기도 한데, 해제반도의 북쪽 해안을 따라 걷는다. 덕분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함해만의 비경들을 빠짐없이 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마산마을 부근에서는 함해만과 탄도만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진풍경을 마주하기도 한다.(이 후기는 ‘무안문화원’의 자료가 많이 활용됐습니다)
▼ 들머리는 무안 황토갯벌랜드(무안군 해제면 양매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지도’방면으로 들어오다 수암교차로(무안군 해제면 유월리)에서 오른쪽 만송로로 들어오면 잠시 후 황토갯벌랜드에 이르게 된다. 서해랑길(무안 33코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판은 입구의 무안갯벌센터 표지석 옆에 세워놓았다.
▼ 해제반도의 북쪽 해안(함해만과 면한)을 따라 걷는 19.9km짜리 코스이다(돌출된 곶부리 모두를 걷지는 않는다). 오늘도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 코스를 조금 단축했다(홀통과 마산리 사이 검은 점이 찍힌 곳에서 시작). 거기다 길을 잘못 들어선 탓에 두동마을과 석북마을도 둘러보지 못했다.
▼ 실제출발지는 ‘홀통교차로(현경면 마산리)’. 홀통유원지로 들어가는 입구로 지난 24코스 답사 때 이곳을 지나가기도 했었다. 참! 주민들은 이 부근을 ‘배나무정(梨木亭)’으로 부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버린 배나무 씨가 자라난 곳으로 예전에는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됐었다나?
▼ 마산마을을 정면에 놓고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100m쯤 걷다가 삼거리에서 왼쪽 농로로 접어든다.
▼ 그렇게 6분쯤 걸어 방조제에 이른다. 함해만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24코스 때 길을 헤매다가 ‘방향표시가 왜 거꾸로 되어있지?’를 외쳤던 지점이기도 하다. 하나 더, 앱은 이곳이 출발지에서 4.35km 떨어진 지점이라고 한다. 그러니 오늘은 15.5km만 걸으면 된다.
▼ 정규탐방로를 만났으니 기념사진부터 한 장. 마침맞게 무안갯벌을 자랑하는 안내판이 둑에 세워져 있었다. 안내판 아래로 보이는 저 방향표시를 보고 24코스 때 헷갈려했었다.
▼ 둑으로 올라서자 조롱박처럼 생긴 바다가 펼쳐진다. 가입리 곶부리(串)와 마산리 곶부리가 빚어 놓은, 함해만 속의 작은 만(灣)이다. 그런데 갯벌이 검지 않고 붉은 게 아닌가? 맞다. 이곳은 황토로 유명한 무안의 해제반도이다.
▼ 둑길(아래로 나있다)을 따라 걸으면서 33코스의 탐방이 정식으로 시작된다. 마산마을을 부티 나게 해준 고마운 둑이다. 간척으로 인해 생긴 토지가 많아 현경면에서 첫째가는 부자마을이란 소리까지 들었다니 말이다.
▼ 잠시 후 도착한 방조제 끝(이정표 : 시점 4.5km/ 종점 15.4k), 서해랑길은 함해만과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내륙에 들어앉은 마산마을을 향해 내닫는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0분. 법정 동리인 ‘마산리’의 2개 자연부락(마산·신기) 중 하나인 ‘마산마을’에 이른다. 마산(馬山)이란 지명은 마을 지형이 말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실제로 마을 주변에는 말과 관련된 지명이 많단다.
▼ 이 마을은 효자·효열비나 공덕비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열각(旌烈閣)을 포함하여 22개나 세워져 있단다. ‘함평이씨세거지(이 마을은 광산김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빗돌이 수문장 노릇을 하는 동구 밖에서도 3개를 만날 수 있었다.
▼ 서해랑길은 마을 고샅길로 들어간다. 하지만 관통하지는 않고 마을 뒷산인 ‘비룡산’을 오른편에 끼고 한 바퀴 돈다. 마을을 관통하면 거리가 훨씬 단축되겠지만 아름답기로 소문난 함해만의 풍광을 구경해보라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 이때 느닷없이 펼쳐지는 진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해제반도를 감싸는 두 개의 바다가 한꺼번에 펼쳐지는 것이다.
▼ 일단 ‘탄도만’부터 주워 담고 본다. 무안군 운남면·망운면·현경면·해제면과 신안군의 지도읍에 둘러싸인 넓은 만(灣)으로 2008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으며, 전국 최초의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생명의 땅이기도 하다.
▼ 이후부터는 함해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으며 걷는다. 탄도만과 함께 무안갯벌의 양대 축을 이루는 해안이다. 이곳도 갯벌습지보호지역(1호) 및 갯벌도립공원(1호)으로 지정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2008년에는 ‘람사르습지’로도 지정됐다. 생물 다양성을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은 덕분이다. 실제로 무안갯벌에는 칠면초·갯잔디 등 47종의 염생식물과 250종의 저서생물이 서식한다. 또한 혹부리오리·알락꼬리마도요 등 52종의 철새가 찾는 곳이기도 하다.
▼ 전망 좋은 언덕. 노거수 아래는 쉼터로 변했다. 응접실용 소파를 놓아둔 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비경을 느긋하게 감상해보라는 모양이다. 조선 유학의 거두인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문인이 이곳 마산마을을 열었다더니, 그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예(禮)를 발로시켰을지도 모르겠다.
▼ 비룡산을 한 바퀴 에돌아가는 탐방로는 임도다. 그러다보니 약간은 가파른 구간도 나타난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가입리의 곶부리가 눈에 들어온다. 함해만에는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저런 곶부리가 수없이 많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번에는 마산마을의 곶부리가 함해만의 중심을 향해 뻗어나간다.
▼ 임도를 빠져나오면 또 다시 마산마을을 만난다. 아까 마을을 관통했을 경우 이곳으로 나오게 된다.
▼ 비닐하우스의 변신. 작물의 보금자리가 건조장으로 변했다. 온도 조절이 필요 없어진 농작물은 노지로 빠져나갔고, 그 자리를 고추·쪽파 등 최근 거둬들인 수확물들이 차지했다.
▼ 이곳에도 방조제가 축조되어 있었다. 하긴 현경면 제일의 부촌이라는 얘기가 허투루 생겨났겠는가. 그건 그렇고 이 부근에서 최근의 농촌 현실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15명 정도의 주민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새참을 먹는데, 주고받는 언어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큰 무리는 당연히 한글, 하지만 베트남어로 얘기를 주고받는 무리도 대여섯 명은 족히 되겠다. 이주 여성들의 숫자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가 아닐까?
▼ 아름다운 풍경은 흔하디흔한 들꽃까지도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나 보다. 바닷가에서 짠물을 뒤집어쓰고도 잘 자란다는 것 말고는 관심 밖의 들꽃이었는데, 오늘따라 저렇게 아름다운 걸 보면 말이다. 해녀들이 내는 ‘숨비기 소리’까지 떠오르게 만들면서...
▼ 천일홍(千日紅)도 그 빼어난 자태를 뽐낸다. 꽃의 붉은 기운이 1000일이 지나도록 퇴색하지 않는다는, 예로부터 불전을 장식하는 꽃으로 애용되어 왔을 정도로 존귀한 대접을 받는다.
▼ 서해랑길은 마산마을의 곶부리 앞(이정표 : 종점까지 13.2km)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는 용정리로 넘어가는 구릉지 위로 오른다. 이때 ‘해초랑’이라는 건조해산물 유통회사(사진 속 건물)가 눈에 띈다. 바닷가다운 풍경이랄까?
▼ 구릉지를 넘자 또 다른 해안이 얼굴을 내민다. 마산리와 용정리 사이의 해안으로 그 끄트머리에서 ‘용정리 곶부리’가 바다를 향해 달음박질을 친다. 무안지역의 또 다른 볼거리인 용정리 곰솔(전남기념물 제176호)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이즈음 길은 평야지대로 들어선다. 구릉지만 내내 걷다가 만나는 들녘이 생경스런 풍경으로 다가온다.
▼ 가슴 아픈 풍경도 눈에 띈다. 방송은 온 나라를 괴롭히던 장마가 남부지역, 특히 해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전했었다. 34코스는 그 해제반도를 걷는다. 그래선지 당시 만들어진 상처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 신기마을 갈림길(이정표 : 종점까지 11.6km)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7분쯤 더 걷자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24번 국도가 얼굴을 내민다.
▼ 조금 더 걸어 국도 아래로 난 굴다리를 통과한다.
▼ 탐방로는 24번 국도를 왼쪽에 놓고 나란히 간다.
▼ 길가 빗돌이 눈길을 끈다. ‘송암거사’. 빗돌까지 세웠을 정도로 명망 높은 인물인 듯한데,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빗돌은 웃자란 잡초 무더기에 묻혀버렸다. 그나저나 이 지역은 ‘거사(居士)’라는 호칭이 유행인가 보다. 아까는 ‘낙헌거사’라고 적힌 빗돌도 보았었다.
▼ 그렇게 10분 남짓 걷자 2차선인 ‘성재길’을 만나고, 이 길을 따라 24번 국도의 아래를 지난다. 용정리 곶부리(끝에 월두마을이 있다)를 향해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성재마을’. 법정 동리인 ‘용정리(龍井里)’를 구성하는 5개 자연부락(새터·용정골·월두·성재동·봉대) 중 하나로,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형 곶의 초입에 해당한다. 성재동(成才洞)이란 지명은 ‘땅이 기름지고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 마을회관 앞 정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얼음 막걸리로 목을 축이다가 문득 전해오는 노랫가락 하나를 떠올려본다. <먹고가자 성재동/ 어야디야 달머리/ 가갸거겨 두동/ 깔끔하다 신촌/ 뺐다박았다 용정골/ 건방지다 수양촌> 성재동 주민들의 어진 성격이 잘 나타나있는 노래라 하겠다. 맞다. 이 마을은 배고픈 길손을 그냥 보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넉넉한 인심을 자랑한단다.
▼ 계속해서 ‘성재길’을 탄다. 그리고 나지막한 고개를 넘는다. 마을을 지나면서 길은 1차선으로 바뀌었다.
▼ 고갯마루 조금 못미처에 ‘김해김씨 삼현파(용정가문)’의 가족묘역이 조성되어 있었다. 참고로 삼현파는 김수로왕의 49세손 김관(고려 고종·충목왕 때 사람)이 기세조(1世) 卽 파시조이다. 남의 집안 묘역이 뭐가 중요할까마는 하도 반듯하게 써져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 가선대부(종2품), 통정대부(정3품) 등 빗돌에 적힌 품계들이 하나같이 당당하다.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 중 하나로 보아도 좋을 듯.
▼ 고개를 넘으면 ‘내용마을(용정골에 속한 자연부락)’, 하지만 서해랑길은 내용마을로 들어가지 않는다. 갈림길(이정표 : 종점까지 9.0km)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용정골로 간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50분. 용정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용정골’에 이른다. ‘용정’이란 지명은 마을 앞 ‘용샘’에서 따왔다. 서해의 용이 승천하려다 샘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 형국이란다. 용정골은 무안군 제일의 쪽파 생산지로 알려진다. 외지와 계약재배를 통해 주민들의 소득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단다.
▼ 마을회관 건립 기념비는 마을의 유래와 함께 ‘김해김씨’의 내력을 주저리주저리 읊고 있었다. 삼현파의 13세손 김문암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생겨났단다. 이 마을이 김해김씨의 집성촌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월두마을(용정리 곶부리의 끝자락에 들어앉았다)로 연결되는 2차선 도로를 따라 트레킹을 이어간다. 아니 100m쯤 따라다가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갈라져나가는 농로로 들어선다.
▼ 갈림길 초입.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가 눈에 띈다.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역사 자원을 특성 있는 이야기로 엮어 국내외 탐방객들이 느끼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사업으로, 무안군은 ‘갯벌 낙지길’을 브랜드로 내세운다. 그중 월두마을에서 송정리 버스정류장까지의 2구간(11km)이 이곳을 지나가는데, 이 지점부터 서해랑길과 정확히 일치한다.
▼ 서해랑길은 이제 용정리에서 수양리로 넘어간다. 길은 바닷가에 인접해 나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온통 황토색으로 물든 구릉지다. 해제반도의 전형적인 풍경이 아닐까 싶다.
▼ 이즈음 가슴속에 꼭꼭 담아두고 싶은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함해만이 용정리와 수양리 곶부리 사이를 항아리 모양으로 움푹 파고들어온 것이다. 거기에 꼬맹이 섬 두어 개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 길은 또 다른 구릉지를 넘는다. 해제반도는 땅도 바다만큼 낮아 어디를 둘러봐도 하늘이 절반이다. 풍경으로만 따진다면 하늘이 ‘열 일’하는 곳이다.
▼ 폭우와 강풍을 몰고 온 장마가 온 나라를 헤집고 지나갔지만, 그런 땅에서도 살아남은 생명은 계절에 맞춰 익어가고 있었다. 그래.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다음 주 아니겠는가.
▼ 멋들어지게 지어진 한옥이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 저 저수탑(貯水塔)도 구릉지의 전형적인 풍경 중 하나다. 밭농사에도 물은 항시 필요했을 게고, 조상들은 밭의 한가운데나 근처에 작은 웅덩이(둠벙)을 팠다. 그 마저도 어렵다면 저런 저수탑이라도 만들어 물을 대야하지 않겠는가.
▼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15분. 2차선 도로인 ‘팔방길’로 내려선다. 수양리 곶부리의 끝자락에 위치한 ‘두동마을’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한다.
▼ 이때 수양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장마철 폭우 때문인지 물이 온통 황토색을 띠고 있다.
▼ 5분쯤 걸었을까 ‘석북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길이 둘로 나뉘고 있었다. 서해랑길은 직진해 두동마을로 간다. 참고로 서해랑길의 가장 큰 장점은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걷기길 여행자들의 가장 큰 걱정(혹시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이 이곳에서는 남의 집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난 길을 잘못 들어서고 말았다. 코스를 단축하려는 이들의 뒤를 무심코 따르다가 그만 서해랑길 표식을 놓치는 우를 범해버렸다.
▼ 길을 잘못 들어선지 5분, 또 다시 길이 나뉜다. 왼쪽은 ‘석북마을’로 이어진다. 우린 갈림길을 무시하고 2차선 도로(석북길)를 따라 직진했다.
▼ 5분쯤 더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아까 놓쳤던 서해랑길을 다시 만났다. 석북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우리와 헤어진 서해랑길은 ‘수양리 곶부리’를 한 바퀴 에돌아 이곳으로 온다. 이때 수양리(垂楊里)의 3개 자연부락(수양촌·석북·두동) 중 두동마을과 석북마을을 지나게 된다.
▼ 이정표(종점까지 3.5km)는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섰었음을 확실히 알려준다. 방향표시 날개가 좌(시점)·우(종점)로만 달려있고, 우리가 걸어온 방향은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 이후부터는 농로를 따른다. 좌우로 상당히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요 어디에 방조제가 축조되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오늘은 우리나라 대부분에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이곳 해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허옇게 배를 드러내놓고 있는 저 물고기들이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니, 흐름을 멈춘 저런 웅덩이쯤이야 물이 끓는 수준이 아닐까?
▼ 그렇게 15분쯤 걸어 수양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수양촌’에 이른다. 원래 이름은 ‘소양촌’. 소를 기르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러다가 마을에 버드나무가 많아 수양촌(垂楊村)으로 고쳤다고 한다. 수양촌은 부자마을로 유명하다. 하지만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초근목피로 삶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둑을 쌓아 농지가 마련됐고, 지하수가 개발되면서 삶이 확 바뀌었단다. 거기에 주민들의 부지런함이 보태졌음은 물론이다.
▼ 여름철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피서지로 변한다. 정부가 지원해준 냉방시설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게 오늘처럼 살인적인 무더위에는 여행자들의 쉼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목이라도 축일 수 있을까 기웃거리는데 잠시 쉬어가라며 자리까지 내준다. 덕분에 얼음처럼 차가운 정수기 물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 마을에는 ‘한마음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정자와 운동기구 몇 점을 배치했다. 회관 앞 팽나무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늘 아래 팔각정을 짓는 기지를 발휘했다. 덕분에 둘레길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쉼터가 되어준다.
▼ 마을 주변은 비닐하우스로 한 가득이다. 안에서는 고소득 작물인 참깨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여성들 할일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이 마을은 1970년대 80년대 농민운동의 발상지였다. 특히 1988년 전국을 뒤흔들었던 고추파동이 이 마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현실참여도 활발해 2000년대 들어서는 마을의 임원들이 대부분 여성들로 이루어지기도 했단다.
▼ 또 다시 길을 이어간다. 이때 무안의 특산품인 고구마 밭 너머로 함해만이 얼굴을 내민다. 그런데 이제껏 보아오던 황토색 갯벌이 아니라,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호수다. 참고로 함평과 해제 사이의 함해만(咸海灣)은 칠산 바다의 좁은 입구로 막힌 호수 같은 바다다. 그 바다에 물이 빠지면 황토색 갯벌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 ‘참솔고 버섯농장’이란다. 스마트팜 재배로 상위 1%, 천 개의 표고버섯 중 몇 개만 자라나는 백화고를 재배한다나? 희소가치만큼이나 특별한 효능으로 암, 면역질환 환자들의 필수 섭취 대상 1호라고 한다.
▼ 수양촌을 부촌으로 만들어준 들녘을 지난다. 이때 갈림길을 여럿 만나지만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의 이정표를 따라가면 길을 놓칠 일은 없다.
▼ 코스 막바지에 이른 서해랑길은 24번 국도의 아래로 난 굴다리를 지나 송정리로 들어간다. 이때 만나는 굴다리는 2개, 첫 번째 굴다리는 그냥 지나친다. 코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제방 쪽으로 간다.
▼ 굴다리를 지나 구릉지 위로 오른다. 24번 국도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걷는 모양새이다.
▼ 150m쯤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의 이정표(송정리 버스정류장 50m/ 수양마을 1.8km)는 이곳에서 오른쪽(송정리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가란다. 하지만 이를 무작정 따라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방향표지판은 없지만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간다. 이정표에 나타난 버스정류장을 33코스의 종점으로 삼고 있는 kakaomap을 절대 따르지 말라는 얘기다.
▼ 날머리는 무안방향 24번 국도의 송정교차로에서 300m쯤 못 미친 지점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150m쯤 걸으면 24번 국도의 아래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그러나 기점을 삼을만한 구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300m를 더 가면 송정교차로가 나온다는 국도 표지판이 전부다.
▼ 서해랑길 안내도(무안 34코스)와 이정표(종점까지 17.1km)는 국도 아래에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은 3시간 20분을 걸었다. 앱에 13.20km가 찍혔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아니 폭염경보까지 내려진 상황에서 시간당 4km를 걸었으니 무리하게 걸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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