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33코스(무안 황토갯벌랜드-상수장마을)
여행일 : ‘23. 7. 29(토)
소재지 : 전남 무안군 해제면과 현경면 일원
여행코스 : 무안 황토갯벌랜드→수암교차로→가입마을→마산마을→성재동→용정골→두동마을→석북마을→수양촌→상수장 버스정류장(거리/시간 : 19.9km, 실제는 13.20km를 3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32코스를 걷는다. 10개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마지막 코스이기도 한데, 해제반도의 북쪽 해안을 따라 걷는다. 덕분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함해만의 비경들을 빠짐없이 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마산마을 부근에서는 함해만과 탄도만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진풍경을 마주하기도 한다.(이 후기는 ‘무안문화원’의 자료가 많이 활용됐습니다)
▼ 들머리는 무안 황토갯벌랜드(무안군 해제면 양매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지도’방면으로 들어오다 수암교차로(무안군 해제면 유월리)에서 오른쪽 만송로로 들어오면 잠시 후 황토갯벌랜드에 이르게 된다. 서해랑길(무안 33코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판은 입구의 무안갯벌센터 표지석 옆에 세워놓았다.
▼ 해제반도의 북쪽 해안(함해만과 면한)을 따라 걷는 19.9km짜리 코스이다(돌출된 곶부리 모두를 걷지는 않는다). 오늘도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 코스를 조금 단축했다(홀통과 마산리 사이 검은 점이 찍힌 곳에서 시작). 거기다 길을 잘못 들어선 탓에 두동마을과 석북마을도 둘러보지 못했다.
▼ 실제출발지는 ‘홀통교차로(현경면 마산리)’. 홀통유원지로 들어가는 입구로 지난 24코스 답사 때 이곳을 지나가기도 했었다. 참! 주민들은 이 부근을 ‘배나무정(梨木亭)’으로 부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버린 배나무 씨가 자라난 곳으로 예전에는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됐었다나?
▼ 마산마을을 정면에 놓고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100m쯤 걷다가 삼거리에서 왼쪽 농로로 접어든다.
▼ 그렇게 6분쯤 걸어 방조제에 이른다. 함해만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24코스 때 길을 헤매다가 ‘방향표시가 왜 거꾸로 되어있지?’를 외쳤던 지점이기도 하다. 하나 더, 앱은 이곳이 출발지에서 4.35km 떨어진 지점이라고 한다. 그러니 오늘은 15.5km만 걸으면 된다.
▼ 정규탐방로를 만났으니 기념사진부터 한 장. 마침맞게 무안갯벌을 자랑하는 안내판이 둑에 세워져 있었다. 안내판 아래로 보이는 저 방향표시를 보고 24코스 때 헷갈려했었다.
▼ 둑으로 올라서자 조롱박처럼 생긴 바다가 펼쳐진다. 가입리 곶부리(串)와 마산리 곶부리가 빚어 놓은, 함해만 속의 작은 만(灣)이다. 그런데 갯벌이 검지 않고 붉은 게 아닌가? 맞다. 이곳은 황토로 유명한 무안의 해제반도이다.
▼ 둑길(아래로 나있다)을 따라 걸으면서 33코스의 탐방이 정식으로 시작된다. 마산마을을 부티 나게 해준 고마운 둑이다. 간척으로 인해 생긴 토지가 많아 현경면에서 첫째가는 부자마을이란 소리까지 들었다니 말이다.
▼ 잠시 후 도착한 방조제 끝(이정표 : 시점 4.5km/ 종점 15.4k), 서해랑길은 함해만과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내륙에 들어앉은 마산마을을 향해 내닫는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0분. 법정 동리인 ‘마산리’의 2개 자연부락(마산·신기) 중 하나인 ‘마산마을’에 이른다. 마산(馬山)이란 지명은 마을 지형이 말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실제로 마을 주변에는 말과 관련된 지명이 많단다.
▼ 이 마을은 효자·효열비나 공덕비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열각(旌烈閣)을 포함하여 22개나 세워져 있단다. ‘함평이씨세거지(이 마을은 광산김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빗돌이 수문장 노릇을 하는 동구 밖에서도 3개를 만날 수 있었다.
▼ 서해랑길은 마을 고샅길로 들어간다. 하지만 관통하지는 않고 마을 뒷산인 ‘비룡산’을 오른편에 끼고 한 바퀴 돈다. 마을을 관통하면 거리가 훨씬 단축되겠지만 아름답기로 소문난 함해만의 풍광을 구경해보라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 이때 느닷없이 펼쳐지는 진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해제반도를 감싸는 두 개의 바다가 한꺼번에 펼쳐지는 것이다.
▼ 일단 ‘탄도만’부터 주워 담고 본다. 무안군 운남면·망운면·현경면·해제면과 신안군의 지도읍에 둘러싸인 넓은 만(灣)으로 2008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으며, 전국 최초의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생명의 땅이기도 하다.
▼ 이후부터는 함해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으며 걷는다. 탄도만과 함께 무안갯벌의 양대 축을 이루는 해안이다. 이곳도 갯벌습지보호지역(1호) 및 갯벌도립공원(1호)으로 지정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2008년에는 ‘람사르습지’로도 지정됐다. 생물 다양성을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은 덕분이다. 실제로 무안갯벌에는 칠면초·갯잔디 등 47종의 염생식물과 250종의 저서생물이 서식한다. 또한 혹부리오리·알락꼬리마도요 등 52종의 철새가 찾는 곳이기도 하다.
▼ 전망 좋은 언덕. 노거수 아래는 쉼터로 변했다. 응접실용 소파를 놓아둔 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비경을 느긋하게 감상해보라는 모양이다. 조선 유학의 거두인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문인이 이곳 마산마을을 열었다더니, 그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예(禮)를 발로시켰을지도 모르겠다.
▼ 비룡산을 한 바퀴 에돌아가는 탐방로는 임도다. 그러다보니 약간은 가파른 구간도 나타난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가입리의 곶부리가 눈에 들어온다. 함해만에는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저런 곶부리가 수없이 많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번에는 마산마을의 곶부리가 함해만의 중심을 향해 뻗어나간다.
▼ 임도를 빠져나오면 또 다시 마산마을을 만난다. 아까 마을을 관통했을 경우 이곳으로 나오게 된다.
▼ 비닐하우스의 변신. 작물의 보금자리가 건조장으로 변했다. 온도 조절이 필요 없어진 농작물은 노지로 빠져나갔고, 그 자리를 고추·쪽파 등 최근 거둬들인 수확물들이 차지했다.
▼ 이곳에도 방조제가 축조되어 있었다. 하긴 현경면 제일의 부촌이라는 얘기가 허투루 생겨났겠는가. 그건 그렇고 이 부근에서 최근의 농촌 현실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15명 정도의 주민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새참을 먹는데, 주고받는 언어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큰 무리는 당연히 한글, 하지만 베트남어로 얘기를 주고받는 무리도 대여섯 명은 족히 되겠다. 이주 여성들의 숫자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가 아닐까?
▼ 아름다운 풍경은 흔하디흔한 들꽃까지도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나 보다. 바닷가에서 짠물을 뒤집어쓰고도 잘 자란다는 것 말고는 관심 밖의 들꽃이었는데, 오늘따라 저렇게 아름다운 걸 보면 말이다. 해녀들이 내는 ‘숨비기 소리’까지 떠오르게 만들면서...
▼ 천일홍(千日紅)도 그 빼어난 자태를 뽐낸다. 꽃의 붉은 기운이 1000일이 지나도록 퇴색하지 않는다는, 예로부터 불전을 장식하는 꽃으로 애용되어 왔을 정도로 존귀한 대접을 받는다.
▼ 서해랑길은 마산마을의 곶부리 앞(이정표 : 종점까지 13.2km)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는 용정리로 넘어가는 구릉지 위로 오른다. 이때 ‘해초랑’이라는 건조해산물 유통회사(사진 속 건물)가 눈에 띈다. 바닷가다운 풍경이랄까?
▼ 구릉지를 넘자 또 다른 해안이 얼굴을 내민다. 마산리와 용정리 사이의 해안으로 그 끄트머리에서 ‘용정리 곶부리’가 바다를 향해 달음박질을 친다. 무안지역의 또 다른 볼거리인 용정리 곰솔(전남기념물 제176호)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이즈음 길은 평야지대로 들어선다. 구릉지만 내내 걷다가 만나는 들녘이 생경스런 풍경으로 다가온다.
▼ 가슴 아픈 풍경도 눈에 띈다. 방송은 온 나라를 괴롭히던 장마가 남부지역, 특히 해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전했었다. 34코스는 그 해제반도를 걷는다. 그래선지 당시 만들어진 상처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 신기마을 갈림길(이정표 : 종점까지 11.6km)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7분쯤 더 걷자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24번 국도가 얼굴을 내민다.
▼ 조금 더 걸어 국도 아래로 난 굴다리를 통과한다.
▼ 탐방로는 24번 국도를 왼쪽에 놓고 나란히 간다.
▼ 길가 빗돌이 눈길을 끈다. ‘송암거사’. 빗돌까지 세웠을 정도로 명망 높은 인물인 듯한데,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빗돌은 웃자란 잡초 무더기에 묻혀버렸다. 그나저나 이 지역은 ‘거사(居士)’라는 호칭이 유행인가 보다. 아까는 ‘낙헌거사’라고 적힌 빗돌도 보았었다.
▼ 그렇게 10분 남짓 걷자 2차선인 ‘성재길’을 만나고, 이 길을 따라 24번 국도의 아래를 지난다. 용정리 곶부리(끝에 월두마을이 있다)를 향해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성재마을’. 법정 동리인 ‘용정리(龍井里)’를 구성하는 5개 자연부락(새터·용정골·월두·성재동·봉대) 중 하나로,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형 곶의 초입에 해당한다. 성재동(成才洞)이란 지명은 ‘땅이 기름지고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 마을회관 앞 정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얼음 막걸리로 목을 축이다가 문득 전해오는 노랫가락 하나를 떠올려본다. <먹고가자 성재동/ 어야디야 달머리/ 가갸거겨 두동/ 깔끔하다 신촌/ 뺐다박았다 용정골/ 건방지다 수양촌> 성재동 주민들의 어진 성격이 잘 나타나있는 노래라 하겠다. 맞다. 이 마을은 배고픈 길손을 그냥 보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넉넉한 인심을 자랑한단다.
▼ 계속해서 ‘성재길’을 탄다. 그리고 나지막한 고개를 넘는다. 마을을 지나면서 길은 1차선으로 바뀌었다.
▼ 고갯마루 조금 못미처에 ‘김해김씨 삼현파(용정가문)’의 가족묘역이 조성되어 있었다. 참고로 삼현파는 김수로왕의 49세손 김관(고려 고종·충목왕 때 사람)이 기세조(1世) 卽 파시조이다. 남의 집안 묘역이 뭐가 중요할까마는 하도 반듯하게 써져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 가선대부(종2품), 통정대부(정3품) 등 빗돌에 적힌 품계들이 하나같이 당당하다.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 중 하나로 보아도 좋을 듯.
▼ 고개를 넘으면 ‘내용마을(용정골에 속한 자연부락)’, 하지만 서해랑길은 내용마을로 들어가지 않는다. 갈림길(이정표 : 종점까지 9.0km)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용정골로 간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50분. 용정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용정골’에 이른다. ‘용정’이란 지명은 마을 앞 ‘용샘’에서 따왔다. 서해의 용이 승천하려다 샘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 형국이란다. 용정골은 무안군 제일의 쪽파 생산지로 알려진다. 외지와 계약재배를 통해 주민들의 소득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단다.
▼ 마을회관 건립 기념비는 마을의 유래와 함께 ‘김해김씨’의 내력을 주저리주저리 읊고 있었다. 삼현파의 13세손 김문암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생겨났단다. 이 마을이 김해김씨의 집성촌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월두마을(용정리 곶부리의 끝자락에 들어앉았다)로 연결되는 2차선 도로를 따라 트레킹을 이어간다. 아니 100m쯤 따라다가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갈라져나가는 농로로 들어선다.
▼ 갈림길 초입.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가 눈에 띈다.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역사 자원을 특성 있는 이야기로 엮어 국내외 탐방객들이 느끼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사업으로, 무안군은 ‘갯벌 낙지길’을 브랜드로 내세운다. 그중 월두마을에서 송정리 버스정류장까지의 2구간(11km)이 이곳을 지나가는데, 이 지점부터 서해랑길과 정확히 일치한다.
▼ 서해랑길은 이제 용정리에서 수양리로 넘어간다. 길은 바닷가에 인접해 나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온통 황토색으로 물든 구릉지다. 해제반도의 전형적인 풍경이 아닐까 싶다.
▼ 이즈음 가슴속에 꼭꼭 담아두고 싶은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함해만이 용정리와 수양리 곶부리 사이를 항아리 모양으로 움푹 파고들어온 것이다. 거기에 꼬맹이 섬 두어 개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 길은 또 다른 구릉지를 넘는다. 해제반도는 땅도 바다만큼 낮아 어디를 둘러봐도 하늘이 절반이다. 풍경으로만 따진다면 하늘이 ‘열 일’하는 곳이다.
▼ 폭우와 강풍을 몰고 온 장마가 온 나라를 헤집고 지나갔지만, 그런 땅에서도 살아남은 생명은 계절에 맞춰 익어가고 있었다. 그래.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다음 주 아니겠는가.
▼ 멋들어지게 지어진 한옥이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 저 저수탑(貯水塔)도 구릉지의 전형적인 풍경 중 하나다. 밭농사에도 물은 항시 필요했을 게고, 조상들은 밭의 한가운데나 근처에 작은 웅덩이(둠벙)을 팠다. 그 마저도 어렵다면 저런 저수탑이라도 만들어 물을 대야하지 않겠는가.
▼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15분. 2차선 도로인 ‘팔방길’로 내려선다. 수양리 곶부리의 끝자락에 위치한 ‘두동마을’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한다.
▼ 이때 수양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장마철 폭우 때문인지 물이 온통 황토색을 띠고 있다.
▼ 5분쯤 걸었을까 ‘석북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길이 둘로 나뉘고 있었다. 서해랑길은 직진해 두동마을로 간다. 참고로 서해랑길의 가장 큰 장점은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걷기길 여행자들의 가장 큰 걱정(혹시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이 이곳에서는 남의 집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난 길을 잘못 들어서고 말았다. 코스를 단축하려는 이들의 뒤를 무심코 따르다가 그만 서해랑길 표식을 놓치는 우를 범해버렸다.
▼ 길을 잘못 들어선지 5분, 또 다시 길이 나뉜다. 왼쪽은 ‘석북마을’로 이어진다. 우린 갈림길을 무시하고 2차선 도로(석북길)를 따라 직진했다.
▼ 5분쯤 더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아까 놓쳤던 서해랑길을 다시 만났다. 석북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우리와 헤어진 서해랑길은 ‘수양리 곶부리’를 한 바퀴 에돌아 이곳으로 온다. 이때 수양리(垂楊里)의 3개 자연부락(수양촌·석북·두동) 중 두동마을과 석북마을을 지나게 된다.
▼ 이정표(종점까지 3.5km)는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섰었음을 확실히 알려준다. 방향표시 날개가 좌(시점)·우(종점)로만 달려있고, 우리가 걸어온 방향은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 이후부터는 농로를 따른다. 좌우로 상당히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요 어디에 방조제가 축조되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오늘은 우리나라 대부분에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이곳 해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허옇게 배를 드러내놓고 있는 저 물고기들이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니, 흐름을 멈춘 저런 웅덩이쯤이야 물이 끓는 수준이 아닐까?
▼ 그렇게 15분쯤 걸어 수양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수양촌’에 이른다. 원래 이름은 ‘소양촌’. 소를 기르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러다가 마을에 버드나무가 많아 수양촌(垂楊村)으로 고쳤다고 한다. 수양촌은 부자마을로 유명하다. 하지만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초근목피로 삶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둑을 쌓아 농지가 마련됐고, 지하수가 개발되면서 삶이 확 바뀌었단다. 거기에 주민들의 부지런함이 보태졌음은 물론이다.
▼ 여름철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피서지로 변한다. 정부가 지원해준 냉방시설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게 오늘처럼 살인적인 무더위에는 여행자들의 쉼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목이라도 축일 수 있을까 기웃거리는데 잠시 쉬어가라며 자리까지 내준다. 덕분에 얼음처럼 차가운 정수기 물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 마을에는 ‘한마음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정자와 운동기구 몇 점을 배치했다. 회관 앞 팽나무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늘 아래 팔각정을 짓는 기지를 발휘했다. 덕분에 둘레길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쉼터가 되어준다.
▼ 마을 주변은 비닐하우스로 한 가득이다. 안에서는 고소득 작물인 참깨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여성들 할일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이 마을은 1970년대 80년대 농민운동의 발상지였다. 특히 1988년 전국을 뒤흔들었던 고추파동이 이 마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현실참여도 활발해 2000년대 들어서는 마을의 임원들이 대부분 여성들로 이루어지기도 했단다.
▼ 또 다시 길을 이어간다. 이때 무안의 특산품인 고구마 밭 너머로 함해만이 얼굴을 내민다. 그런데 이제껏 보아오던 황토색 갯벌이 아니라,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호수다. 참고로 함평과 해제 사이의 함해만(咸海灣)은 칠산 바다의 좁은 입구로 막힌 호수 같은 바다다. 그 바다에 물이 빠지면 황토색 갯벌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 ‘참솔고 버섯농장’이란다. 스마트팜 재배로 상위 1%, 천 개의 표고버섯 중 몇 개만 자라나는 백화고를 재배한다나? 희소가치만큼이나 특별한 효능으로 암, 면역질환 환자들의 필수 섭취 대상 1호라고 한다.
▼ 수양촌을 부촌으로 만들어준 들녘을 지난다. 이때 갈림길을 여럿 만나지만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의 이정표를 따라가면 길을 놓칠 일은 없다.
▼ 코스 막바지에 이른 서해랑길은 24번 국도의 아래로 난 굴다리를 지나 송정리로 들어간다. 이때 만나는 굴다리는 2개, 첫 번째 굴다리는 그냥 지나친다. 코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제방 쪽으로 간다.
▼ 굴다리를 지나 구릉지 위로 오른다. 24번 국도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걷는 모양새이다.
▼ 150m쯤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의 이정표(송정리 버스정류장 50m/ 수양마을 1.8km)는 이곳에서 오른쪽(송정리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가란다. 하지만 이를 무작정 따라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방향표지판은 없지만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간다. 이정표에 나타난 버스정류장을 33코스의 종점으로 삼고 있는 kakaomap을 절대 따르지 말라는 얘기다.
▼ 날머리는 무안방향 24번 국도의 송정교차로에서 300m쯤 못 미친 지점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150m쯤 걸으면 24번 국도의 아래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그러나 기점을 삼을만한 구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300m를 더 가면 송정교차로가 나온다는 국도 표지판이 전부다.
▼ 서해랑길 안내도(무안 34코스)와 이정표(종점까지 17.1km)는 국도 아래에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은 3시간 20분을 걸었다. 앱에 13.20km가 찍혔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아니 폭염경보까지 내려진 상황에서 시간당 4km를 걸었으니 무리하게 걸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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