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화누리길 9코스(양구 평화의 길)

 

여행일 : ‘23. 9. 3()

소재지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및 양구군 방산면 일원

여행코스 : 평화의 댐오천터널종점상회각시교금악교방산면소재지(백자박물관·직연폭포)자월교송현1백석대대송현하수처리장두타연갤러리(거리/시간 : 23.5km, 실제는 종점상회부터 송현하수처리장까지 14.80km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평화누리길이란 북한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의 서해안 강화도에서 강원도 동해안 고성까지의 접경지역을 동서로 연결하는 트레킹·자전거 길이다. 이중 강원도 관내(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을 경유) 강원도 평화누리길이라 부르는데 생태·평화의 상징공간인 DMZ 일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20개 코스(370.6km)로 구성됐다. 분단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지는 길,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평화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들머리는 평화의 댐 주차장(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춘천과 화천을 거쳐 오는 것이 보통이나 산사태로 길이 막혀 양구 쪽으로 돌아왔다.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 IC에서 내려와 44번 국도와 46번 국도를 이용 양구까지 온다. 이어서 460번 지방도를 타고 화천방면으로 가다보면 평화의 댐이 나온다. 댐의 상부에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

 오늘은 9코스를 걷는다. 4개 코스(75km)로 이루어진 양구지역의 첫 번째 구간으로 양구 평화의 길이라는 브랜드로 포장되어 있다. 공식적인 거리는 23.5km, 산행대장은 실제 거리가 30km에 육박한다며 겁부터 준다. 이에 놀란 난 출발지에서 10km쯤 떨어진 종점상회부터 걷기로 했다. 빈약한 내 체력으로는 20km 이상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평화의 댐은 북한의 수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세워졌다. 북한이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려고 금강산댐을 건설, 무려 200억 톤의 수공을 펼쳐서 서울을 물바다로 만든다는 과장된 발표로 국민 성금을 모았었다(나도 참여했을 정도로). 그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온종일 63빌딩이 절반이나 물에 잠기는 것을 비롯해서 서울특별시의 주요 건축물이 물에 잠기는 모형을 보여주었고, 대학 교수들이 출연하여 그럴싸한 설명까지 덧붙이는 바람에 국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었다(그 교수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모든 것이 허구였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홍수 조절기능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증축되기도 했고, 화천 관광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 ① 평화의 댐  세계평화의 종  비목공원  평화의 댐 물문화관  피스스카이워크  세계평화의 종공원 / 벨 파크  염원의 종 / 댐 하류전망대  국제평화 아트파크  평화누리마당  노벨평화의 종  DMZ 아카데미  물의 정원  평화오름 길  평화의 숲  평화나래교  평화캠핑장  자유의 숲  물빛누리호 선착장  배수터널

 댐의 상류 쪽 풍경, 하단의 하얀색 부분(80m)은 전두환 대통령 때 쌓았고, 위쪽은 45m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 증축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물은 바닥이 보일 정도다. 다른 댐들과는 달리 북한의 수공을 막기 위해 쌓은 탓에 물을 채우지 않고 배수터널을 통해 화천댐으로 그냥 흘러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란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세계 평화의 종이 반긴다. 분쟁 현장에서 사용된 탄피 1만관(37.5)에 세계분쟁 종식 및 평화의 의지를 담아 만들어진 초대형 범종이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 발포한 탄피,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 분쟁 현장의 탄피, 국방부의 한국전쟁 유해 발굴 작업 중 수집한 탄피 120여 개 등 모두 29개국에서 모은 탄피들로 제작되었다. 1만관 중에서 9,999관으로 종을 주조하고, 나머지 1관은 통일이 되면 추가하여 완성시킨다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는 미완의 종이기도 하다.

 조금 더 가면 전쟁의 상흔을 되새기는 비목공원이 나온다. 녹슨 철모를 얹은 나무 십자가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시간에 쫓긴 난 반대편 방향인 피스 스카이워크로 간다. 거대한 댐에 매달린 공중 전망대로 바닥이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 시원스런 조망과 스릴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하류의 파로호,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풍경이 평화로우면서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매점 옥상도 전망대로 만들었다. 아래층(cafeteria)에서 산 커피라도 마시며 주변 풍광에 푹 빠져보라는 듯 테이블까지 배치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Peace Man’이란다. 자신처럼 같이 온 이에게 사랑을 고백해 볼 것을 귀띔한다.

 이젠 댐의 하부로 내려가 볼 차례다. 산비탈을 따라 569개나 되는 나무계단이 길게 놓여있다.(안내판은 하늘 오름길로 소개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서면 세계평화의 종 공원(bell park)’이 반긴다. 평화의 댐이 우리나라의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평화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공원의 한가운데에는 정이품송 장자목(長子木)’이 자라고 있었다. 천연기념물 103호인 보은의 정이품송을 아버지로 삼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어미목(강원지역 금강송)을 선발해 인공 교배시켜 얻은 첫 소나무란다.

 평화와 상생을 바라는 종도 눈에 띈다. 상단은 각 대륙을 상징하는 평화의 아기천사가 지구를 감싸고 있는 형상, 중단의 첨탑은 평화와 행복을 세계로 넓히길 염원하는 화천군민의 의지를 담았다. 종을 형상화 한 하단에는 불교철학자이자 평화건설자인 이께다 다이사쿠 SGI회장의 소설 ·인간 혁명에 나오는 글귀를 담았다. 평화만큼 존귀하고, 평화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는...

 생명의 나무(수많은 생명을 품어 기르는 한 그루 나무를 통해 생명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깨닫는다)와 평화의 종(분쟁과 분단을 넘어 화해와 통일을 기원한다), 어린이들의 기원(에티오피아와 한국 어린이들의 세계평화와 남북통일 소원을 담은 그림엽서를 매달고 있다)도 주요 볼거리 중 하나다.

 공원 주차장 오른편, 언덕을 향해 계단이 놓여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평화의 댐을 아래서도 올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니 망설이지 말고 올라볼 일이다.

 언덕 위에는 나무로 만들었다는 염원의 종이 매달려 있었다. 남북분단의 현실을 담은 침묵의 종이란다. 저 종이 침묵을 깨고 세계를 향해 울려 퍼지기를 기원한다나?

 댐 하류 전망대라는 이름처럼 거대한 댐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특히 통일로 나가는 문이라는 초대형 벽화가 눈길을 끈다. 그런데 댐 중앙이 뚫려 하천의 물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 댐 상류 700m에 있는 민간인통제구역의 풍경을 트릭 아트로 그렸기 때문이란다. 참고로 저 트릭아트는 높이 93m에 폭이 60m로 기네스 세계기록(4775.7)에도 등재됐다. 기존에 세계 최대였던 중국 난징의 트릭 아트 작품보다 2배 가까이 크다.

 다음은 국제평화 아트파크이다. 탱크와 장갑차 그리고 비행기를 놀이기구와 합성하여 155마일 휴전선 일부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테마파크로 DMZ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표현하며, 색색의 기원을 담은 리본들이 철조망에 있는 한 평화는 지속된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아트파크의 중심에는 38m 높이의 평화의 약속이라는 상징탑이 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인류와 생명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꼭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3개의 포신은 자유·평화·사랑을, 2개의 반지는 다음 세대와의 영원한 평화의 약속을 담았다나?

 평화의 약속, 염원, 이카루스의 날개 등 다양한 조형물들이 상징탑을 둘러싸고 있다. 안보·평화·생명을 주제로 탱크·자주포·대공포·전투기·대북확성기 등 수명이 다한 폐장비류를 재활용하여 평화 예술품으로 재구성해 놓았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이라 하겠다.

 평화를 위한 여정은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의 하나 된 걸음이 더 낫다고 한다. 그런 정신이 저 조형물의 문구(All over the world)처럼 세상으로 퍼져나간다면 전쟁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11 : 23. 실제 출발지는 종점상회. 양구군 군내버스의 오미리 종점에 위치한 상점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듯 버스정류장의 이름을 얻어다 썼다. 그나저나 출발지인 평화의 댐에서 이곳까지는 9.7km. 코스 길이가 30km나 된다는 산행대장의 겁 때문에 그만큼의 거리를 단축했다. 아니 그보다는 지방도를 따라 걸으며 어두컴컴한 터널을 들락거려야 하는 끔찍함을 피하려는 마음이 작용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정표는 수입천 쪽으로 내려가란다. 그리고 중요 기점 중의 하나인 각시교까지의 거리가 3.6km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우기인 여름철에 찾아왔다면 각시교까지 곧장 도로(460번 지방도)를 따라 진행할 것을 권한다. 평화누리길을 따르다보면 수중보를 이용해 수입천을 건너야하는데, 냇물이 불어날 경우 자칫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트레킹이 시작된다. 수입천으로 내려간다고 보면 되겠다. 또 다른 이정표는 5km 전방에 파서탕(破署湯)’이 있음을 알려준다. 얼마나 물이 차고 맑았으면 물줄기가 더위를 깬다는 지명까지 붙였을까 싶다.

 파서탕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뉘는 지점(이정표 : 각시교 3.5km/ 피서탕 5km/ 오미종점 0.1km). 다른 지역 사람들이 내뱉었더라면 큰일 날 단어를 상호로 내건 입간판이 눈에 띈다. 강원도 지역이나 그 출신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감자바위도 강원도 사람들이 쓰면 흉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고개를 들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평화누리길은 그 산과 산 사이 협곡,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기대어 나있다. 맞다. 이곳은 방산(方山)’. 푸른 산이 사방에 널려있다는 고장이다.

 그렇다고 논이 없겠는가. 우리네 선조들은 냇가에 둑을 쌓고, 비탈진 산자락을 일구어가며 농토를 만들었다. 그 논에서 지금 벼가 누렇게 익어간다.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백로(白露)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간이화장실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둘레길 나그네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쉼터도 심심찮게 만난다. ‘평화누리길은 트레커보다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주 고객이다. 쉼터마다 만들어놓은 저 자전거 거치대가 그 증거다.

 평화누리길 평화의길과 함께 간다. 평화누리길에 평화의길이 숟가락을 살짝 올려놓은 것 같은데, 두 길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뭐가 문제겠는가.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니 말이다.

 탐방로는 수입천(水入川)을 오른쪽 허리춤에 차고 간다. 수입면(양구군)의 청송령(靑松嶺)에서 발원하여 문등리와 방산면 건솔리·금악리 등을 우회하여 파로호로 유입하는 길이 34.8km의 하천이다. 접경지역이라서 개발이 덜 되었지만 두타연 등 명승지를 여럿 끼고 있다.

 건너편 산자락에도 띄엄띄엄 민가가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삶은 편치 않겠다. 장마 때 물이라도 불어날라치면 잠수교를 건너지 못할 것이고, 그네들의 집은 육지 속 섬으로 변할 테니까.

 역시 강 건너, 잘 지어진 집들이 무리지어 들어선 것이 영락없는 펜션이다.

 12 : 10. 트레킹을 시작한지 45, 난감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평화의길 방향표시는 수입천을 건너라는데, 이게 수중보를 겸한 잠수교라서 수문으로 해결을 못한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발목을 넘길 정도로 물이 차올라 건너려면 상당한 모험을 각오해야만 한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안전 불감증의 현장이 아닐까 싶다. 해파랑길이나 서해랑길, 지리산둘레길 등 그동안 걸어온 대부분의 둘레길들은 강우기를 대비한 우회로를 따로 내놓고 있었다. 이에 대한 안내문도 붙여놓았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양구군은 위험요소를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맡은바 일을 제대로 하라며 비싼 세금을 내온 국민들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싶다.

 앞을 가로막는 산자락을 에돌아나가는 농로가 나있음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되돌아나가는 도중 오미리(五味里)의 자연부락인 낭구미를 지나기도 한다. 참고로 오미(五味)라는 지명은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5개 반이 갖고 있는 단맛·쓴맛·싱거운맛·짠맛·매운맛 등 각각의 독특한 매력과 맛 좋은 청정 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2: 30. 400m쯤 진행하니 46번 지방도가 나온다. ‘오미리 산촌 생태체험관이 있는 곳이다. 오미리는 친환경농법(벼 사이에서 노닐고 있는 우렁이를 쉽게 볼 수 있다)으로 생산한 쌀이 자랑거리라고 한다. 오리농법으로 생산한 오리쌀이나 키토산농법으로 생산한 오대쌀로 밥을 지으면 구수한 밥 냄새가 온 동네에 퍼질 만큼 향이 좋단다. 밥맛도 대한민국 최고를 자랑한다나? 마을에서는 그런 특징들을 살려 산나물 채취·다슬기잡기·농작물 수확·썰매 만들기 등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사시사철 운영하고 있단다.

 도로변에는 앞서간 이들의 후기에서 자주 소개되는 오미막국수도 있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그냥 지나쳤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소문난 맛집으로 꼽힌다. 그나저나 앱은 4.67km를 찍고 있다. 종점상회에서 이곳까지는 800m(460번 지방도를 따랐을 경우), 길이 끊긴 평화누리길을 고집하다가 3.8km나 더 걸은 꼴이 되어버렸다.

 속상한 마음을 길가 코스모스로 달래본다. 기상청은 오늘도 폭염주의보를 발령했다. 그렇다고 계절까지 속일 수 있겠는가. 가을의 전령이라는 코스모스가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백일홍은 마음고생에 대한 보너스다.

 12 : 35 : 300m쯤 더 걸으면 각시교’. 평화누리길 이정표가 기점으로 삼고 있던 곳이다. 평화누리길은 잠수교(수중보)를 건너 다리 저편으로 온다. 하지만 물이 넘치는 잠수교를 건널 수 없어 빙 돌아왔다.

 다리 건너에서 만난 이정표(금악교 1.2km/ 방산면사무소 3.1km/ 평화누리길 오미리종점 3.6km/ 오미리 버스종점 1.1km)가 현재 상황을 알려준다. 아까 종점상회(오미리 버스종점)에서 도로를 따라 곧장 왔더라면 1.1km면 되었을 것을 길이 끊긴 평화누리길을 고집하느라 3배 이상을 더 걸었던 것이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금악교를 향해 간다. 금악교로 곧장 가는 도로를 놓아두고 수입천의 강둑을 따라 에둘러 간다고 보면 되겠다. 하나 더, 건너편의 또 다른 이정표는 직연폭포 방향으로 가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길가 비닐하우스에서는 풋풋한 오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한 물소리의 터’. 이름처럼 수입천의 강둑에 매달 듯 탐조대를 겸한 쉼터를 만들었다.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어가라며 벤치를 놓아두었음은 물론이다. 독수리·황조롱이·두루미·꾀꼬리 등 이곳에서 살고 있는 새들에 대한 설명판도 보인다. 일종의 다목적 쉼터인 셈이다.

 독수리는 아예 조형물로 만들어놓았다. 나머지 새들에 대한 조형물도 있다는데 웃자란 잡초에 묻혔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물소리의 터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팔랑개비다. 10여 개의 커다란 팔랑개비가 힘차게 돌아가는 풍경이 쏠쏠한 볼거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누렇게 물들어가는 금악리 들녘도 무척 넓었다. 심심산골인 양구 지역에 저런 들녘이 있다는 것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12 : 55. 금악교를 건너 금악리(金岳里)로 간다. 옛날 사기를 굽는 막이 있던 곳으로 초기 이름은 사기막 혹은 사금막(沙金幕), 그게 세월이 흐르면서 금막(金幕) 또는 금악으로 변했다고 한다. 아무튼 탐방로는 마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도로를 횡단해 수입천의 둑길을 따른다.

 잠시 후 요런 무지개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중간에는 주변 풍광을 감상해보라는 듯 전망대까지 만들어놓았다.

 수입천에 바위가 늘어나면서 풍경이 한결 고와졌다. 저 물길에는 꺽지·쉬리· 탱가리·뚝지·메기 등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단다. 덕분에 가족과 함께 낚시여행을 즐기기에 딱 좋다나?

 13 : 16. 460번 지방도(이정표 : 직연폭포 0.4km/ 평화의 댐 19.9km)로 다시 올라선다. 가드레일 밖으로 잔도처럼 데크길을 따로 냈다.

 ! 거북이 닷!’ 거북이 한 마리가 소를 향해 나아가는 모양새다.

 13 : 20. 방산면(方山面)의 면청소재지인 현리(縣里)’로 들어선다. 어깨를 맞대고 있는 장평리(長坪里)와 함께 방산면의 행정 중심을 이룬다. 조선시대 때 이곳에 방산현(方山縣)의 현청(縣廳)이 있었다고 해서 현리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탐방로는 수입천의 천변을 따른다. 560번 지방도와 수입천 사이에 데크로 길을 냈다.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인 듯 길가에는 정자와 파고라도 배치했다. 수입천의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으니 쉼터로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장평마을로 가는 초입, ‘조선백자 시원지라는 빗돌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종류의 자기 중 조선백자가 시작된 곳(始原地)’이라는 것이다. 흔히 백자 하면 경기도의 광주·이천·여주를 떠올린다. 하지만 세종실록 등 역사서에 양구의 자기소가 언급될 정도로 양구도 빠지지 않는 백자의 고장이다. 국가에 공납품으로 들어갈 만큼 품질이 좋은 백자를 생산해왔다(금강산에서 발견된 이성계 발원 사리구가 양구에서 생산된 백자로 알려진다). 분원백자(조선시대 왕실용 자기)에 공급되던 최고 품질의 백토가 이곳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민들의 삶을 엿본다며 상가지역으로 들어가는 나그네들도 여럿 눈에 띈다. 하지만 난 수입천변을 따르는 평화누리길로 진행한다. 그래야 먼 거리에서나마 직연폭포의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 나오는 두 번째 다리에서 바라본 직연폭포이다. 폭포전망대가 막힌 줄 알았더라면 줌으로 당겨보았을 텐데 아쉽다.

 13 : 34. 탐방로는 양구 조선백자박물관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는 수입천 쪽으로 간다. 하지만 난 박물관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그윽하고 담백한 여백의 미로 보는 이를 매료시키는 조선백자를 구경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어찌 놓치겠는가. 참고로 양구백자박물관은 양구의 백자 제작 역사를 보존하고 조선왕실 백자의 주원료로 사용된 양구 백토 연구를 통해 현대적인 사용 가치를 모색하기 위해 지난 2006년 개관했다.

 전시실은 시대 순으로 백자가 전시되어 있다. 양구 백토에 대한 설명부터 고려·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많은 유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첫 대면은 14~15세기 초(고려 말 조선 초기)의 백자, 불순물이 섞여 있어 약간 노르스름하고 녹색을 띤다.

 주류를 이루는 조선 중후기 백자는 백색 도는 회백색을 띠며 청화(靑畫)와 철화(鐵畵)로 그린 꽃··물고기·문자 등 다양한 문양이 나타난다. 초기에는 대접이나 접시의 겉면에 간단한 초화문(草花文)을 그려 넣었으며, 18세기로 갈수록 제기류를 비롯 다양한 기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현대백자실이다. 양구 백토로 만든 백자가 전시되고 있는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달항아리를 비롯해 현대 백자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박물관에서 열린 기획전을 통해 기증된 작품들과 구백자연구소에서 진행한 백자의 여름 전시에서 기증된 작품, 호주 도예가 스티브 해리슨의 작품 등이 전시되고 있단다.

 저게 백자? 하긴 예술에 문외한인 내가 현대 예술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어찌 따라갈 수 있겠는가.

 기획전시실에도 다양한 백자가 전시되고 있었다. 양구백토로 제작된 작품과 남북한의 원료를 합토해 만든 통일백자 등이라고 한다.

 야외도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도자기를 제작하는 전 과정을 조형물을 통해 재현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는 피노키오가 귀여워 그중 하나를 게재해 본다.

 양구 가마도 복원되어 있었다. 양구는 고려시대부터 20세기까지 600여 년간 백자가 생산되어 왔다. 양구 가마터는 1454(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에서 처음 소개된다. 전국의 139개 자기소 중 2개가 양구현에 있었단다. 1530(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전국 자기소 32개소 중에 양구현이 포함된다. 139개에 달했던 자기소가 100년 만에 32개소로 축소됐지만, 양구는 도자기 생산의 요지로 남아있었음을 알 수 있다.

 13 : 50  14 : 20. 15분 정도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직연정(直淵亭)’이란 정자가 잠시 쉬었다가란다. 덕분에 준비해간 간식을 서로 나누며 여유롭게 쉬다 갈 수 있었다.

 정자에서 내려와 냇가(수입천)로 간다. 아니 입구에 세워놓은 직연폭포(直淵瀑布)’안내판부터 살펴본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잠시 쉬어가는 곳인데, 폭포수가 곧바로 떨어진다고 해서 직연이란 이름이 붙었다나? 떨어진 물줄기가 잠시 멈췄다가는 ()’는 깊이가 20m나 된단다. 1922년 칠천리 김왈룡의 어린 송아지가 물에 빠졌을 때 석자 이상의 메기가 이를 잡아먹었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일화도 전해진다.

 몇 걸음 더 걸으면 폭포를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하지만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입구를 막아버렸다. 그것도 꽤 오래된 듯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국가나 지방 행정도 고객 서비스로 바뀐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도 양구군청은 저 폭포를 보려고 찾아온 관광객들의 바람을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납세자인 국민에 대한 배반이라고나 할까?

 폭포는 상부에 놓인 다리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폭포는 아래서 올려다봐야 제멋이다. 그러니 반쪽자리 구경이라고 하겠다. 그나저나 물줄기가 곧바로 떨어져서 직연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와폭(臥瀑)’이 분명했다. 그저 높이 20m의 암벽이 병풍을 둥글게 세워놓은 듯한 경관이 아름답다는 설명만이 공감을 줄 따름이다.

 그 아쉬움은 상부에 있는 수중보의 물줄기로 달랠 수 있었다. 보를 넘어오는 물줄기가 나이아가라 폭포가 부러워할 정도로 멋지게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 건너에 45m 높이의 인공폭포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물줄기가 끊긴 채 시커먼 배만 들러내고 있었다. 물이 흔한 여름철인데도 저렇다면 다른 철에는 아예 운영을 검토할 일도 없겠다.

 평화누리길은 계속해서 수입천을 오른쪽에 끼고 이어진다. 강줄기를 따라 난 산책로는 고요하고 은밀하다. 길은 잘 닦여있으나 사람의 발길이 드물기 때문이다.

▼ 14 : 33. 그렇게 10분쯤 걸으면 일차선 도로(소풍정길)로 올라서고, 곧이어 자월교로 수입천을 건넌다.

 자월교를 건넌 다음 수입천 강둑으로 올라선다. 이후부터는 수입천을 왼편에 두고 걷는다. 오른쪽으로 누렇게 물들어가는 장평리의 들녘이 펼쳐지는데 제법 넓다.

 길은 접어들수록 물 향기가 짙다. 평화누리길과 어깨를 맞대고 가는 강줄기 뒤로는 맑은 세상이 펼쳐진다.

 경관 좋은 곳에는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전망대 맞은편, 두타연갤러리로 가는 460번 지방도가 하천 건너로 지나간다.

 백색의 암벽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그 위를 물줄기가 떨어지듯 흘러가며 굉음을 낸다. 양구의 또 다른 명소로 꼽아도 손색이 없겠다.

 경관이 고운데 정자 하나 없겠는가. 하천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정자를 올렸다. 이정표(두타연까지 6.7km)는 직연폭포에서 2.5km쯤 걸어왔음을 알려준다.

 하천 건너로 큼지막한 건물들이 줄을 잇는다. 이곳 송현리의 규모가 제법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15 : 00. ‘송현1리 경로당을 지나 송현교로 수입천을 건넌다. 초입에 이 구간이 ‘DMZ 평화의길’ 25코스임을 알리는 이정표와 함께 평화누리길의 방산면 구간에 대한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송현리(松峴里)는 웬만한 면소재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하지만 인근 군부대의 이전 등으로 경기가 많이 침체되었다고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숙박 및 휴게 시설 등 인프라를 갖춘 캠핑장을 송현리에 조성하기로 했다나?

 송현리에서 46번 지방도를 다시 만났다. 그런 다음에는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간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강원도가 무대다. 장돌뱅이인 허 생원은 우연히 만난 젊은 장돌뱅이 동이와 대화 장터로 가는 길에 밤길을 동행하게 되고, 달빛 아래 메밀꽃 밭에서 자신이 젊었을 때 물레방앗간에서 있었던 성 서방네 처녀와의 이야기를 회상한다. 이곳 역시 강원도, 그러니 어찌 메밀꽃밭 한번 지나지 않겠는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도로, 왼편은 군부대의 연속이다. ‘백석대대라는 버스정류장까지 있을 정도다.

 여유롭게 산천경개를 즐기다보니 어느덧 후미가 되어 버렸다. 덕분에 앞질러간 일행이 매달아놓은 표지기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허총무, 사슴과 구름... 산에서도 뛰어다닐 정도로 건각을 자랑하는 여성 도반들이다.

 15 : 25. 그렇게 25분쯤 걷자 송현 하수처리장이 나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점심상을 차릴만한 자리를 찾던 산악회버스가 하수처리장 맞은편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9코스의 종점인 두타연갤러리까지는 30분을 더 걸어야 한다. 하지만 느긋하게 배를 채운 상태로는 걷는 게 무리, 별수 없이 산악회버스로 왔다. 그렇게 도착한 두타연갤러리는 문이 닫혀있었다. 소지섭이 영화와 드라마 촬영 때 입었던 의상과 스틸 사진으로 꾸며 소지섭갤러리로도 불린다는데... 참고로 배우 소지섭은 영화 촬영을 하며 양구군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민통선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 강원도 DMZ 일대를 배경으로 2010년 포토에세이집 소지섭의 길을 출간하면서 양구군과 깊이 교류하게 됐다고 한다.

 백석산지구 전투전적비에 들러 묵념을 드려본다. 백석산 전투(1951.8.18.-10.28)에서 산화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육군 제3군단에서 세운 전적비로, 격전 끝에 백석산과 그 일대를 점령하게 되었으며, 중공군은 어은산 방면으로 퇴각하고 10 25일부터 휴전회담이 재개되어 백석한 일대의 전투가 종료됐다.

 갤러리 앞 고방산교차로 중앙에는 백자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 양구가 조선백자의 시원지임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다. 고려청자가 옥빛의 화려함으로 보는 이를 찬탄하게 한다면, 조선백자는 그윽하고 담백한 여백의 미로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