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전산(葛田山, 764.3m)-철마산(鐵馬山, 774m)-바랑산(796.4m)
산행일 : ‘16. 11. 3(목)
소재지 : 경남 산청군 오부면·생초면과 거창군 신원면·남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수영덩이→갈전산→갈밭재→철마산→흰머릿재→바랑산→소봉→갈림길→독촉주차장→오휴마을회관(산행시간 : 4시간 40분)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오늘은 갈전산과 철마산, 그리고 바랑산 등 세 개의 산을 올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에다 소룡산을 끼워 넣는 게 보통이다. 산행거리가 다소 버거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따로 떼어서 진행하기에는 거리나 시간이 좀 어중간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 오른 산들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철마산의 정상 어림에서 약간의 바위지대를 만날 수 있을 뿐 다른 곳에서는 바위다운 바위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때문에 눈에 담아둘만한 산세는 갖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철마산과 바랑산의 정상을 제외하고는 조망(眺望) 또한 보잘 것이 없다. 육산들이 지닌 일반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우선 산행들머리인 수영덩이의 해발이 560m나 되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산의 정상까지 오를 수가 있다. 오늘 오른 산들 중에서 가장 높다는 바랑산의 높이가 기껏해야 796,4m에 불과하니 230m만 더 오르면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산과 산 사이의 골도 깊지가 않다. 간벌(間伐)로 인해 생긴 나무들이 길 위에 널브러져 있고, 웃자란 잡목(雜木)들이 산길까지 비집고 들어온 게 흠이긴 하지만 산행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예동마을 근처에서 능선을 타지 않고 임도를 따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네 개의 산들을 한꺼번에 하려면 힘이 부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바랑산과 소룡산만 타볼 것을 권한다. 길도 훤하게 잘 나있을뿐더러 새이덤을 위시해서 눈에 담아둘만한 볼거리까지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수영덩이(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대전-통영고속도로 지곡 I.C에서 내려온다. T.G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하여 24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 지곡면소재지(창평리)에서 남강 건너에 있는 3번 국도로 옮긴다. 접점인 구라사거리(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서 우회전하여 산청방면으로 내려오다 대동교차로(수동면 화산리)에서 빠져나와 1084번 지방도를 따라 들어오면 남상면 진목리(거창군)에서 도로가 둘로 나뉜다.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편 1034번 지방도로 옮겨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덩이’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 들머리는 ‘원산종돈’ 입간판에서 버스가 달려왔던 방향으로 50m쯤 떨어진 지점에서 왼편으로 열린다. 초입에 이정표(갈전산 2.1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행들머리인 수영덩이는 ‘6.25 한국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51년 2월, 지리산에 웅거하면서 인근지역에 출몰하던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된 국군들이 공비들에게 협조했다며 양민 600여명을 학살했던 곳이 신원면이다. 이런 사실을 밝히려고 ‘국회 합동조사단’이 찾아오자 길 안내를 맡았던 군(軍) 당국은 군인을 공비로 위장 매복시켜 조사단을 향해 사격을 가하게 함으로써 조사도 못해보고 돌아가게 만들어버렸다. 당시에 사격을 가했던 곳이 바로 이곳 ‘수영덩이’인 것이다.
▼ 산자락으로 들어서자마자 산뜻하게 만들어진 다리가 나온다. 이정표에다 산뜻하게 다리까지 놓은 걸로 보아 등산로 정비도 잘되어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 산행도 공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곳 수영덩이의 고도(高度)가 560m나 되다보니 200m 남짓만 더 오르면 정상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호사스런 생각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는다. 길까지 비집고 들어온 잡목(雜木)들이 자꾸만 발길을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아니 길고 가파른 오르막에 짧고 완만한 내리막이 옳은 표현이겠다. 아무튼 가끔은 버겁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구간도 나오니 방심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 그렇게 30분 정도를 오르면 매봉산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봉(이정표 : 갈전산↑ 1.0Km/ 매봉산→ 0.4Km/ 수영덩이↓ 1.4Km)에 올라선다. 매봉산(810m)을 다녀올까를 갖고 고민을 하게 되는 지점이다. 거리가 400m 밖에 되지 않은데다, 이곳의 해발(海拔)이 770m나 되다보니 고도(高度) 또한 40m만 높이면 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매봉산에 들르지 않았다. 내가 파악해본 결과로는 볼거리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앎은 짧았다. 다녀온 사람들의 말로는 크고 멋진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 갈전산으로 향한다. 산길은 비교적 또렷한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걷기까지 편한 것은 아니다. 간벌(間伐)의 잔해(殘骸)로 보이는 나무들이 길 위에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장애물은 통째로 쓰려져 있는 나무들이다. 기둥이 꺾여 있거나 심지어 어떤 것은 뿌리가 뽑힌 채로 넘어져 있다. 이런 곳에서는 길을 새로 내어야만 진행할 수가 있다. 지자체에서 이정표 등 시설물만 새로 세울 게 아니라 등산로까지 손을 좀 봤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 잡목들의 방해만 제외한다면 산길은 괜찮은 편이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 완만해서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진행할 수가 있다. 거기다 절반쯤 섞여 있는 소나무들은 쉴 새 없이 솔향을 내뿜는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심신은 새로운 활력으로 충만해져 간다. 아무튼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진양기맥(晉陽岐脈)의 일부구간이다. 진양기맥이란 백두대간 상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황매산, 자굴산 등을 끼고 거창, 함양, 합천, 산청, 의령, 진주 등 서부경남 6개 시·군을 아우르다가 진양호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59㎞의 긴 산줄기 이름이다. 마룻금에는 월봉산과 금원산, 기백산, 바랑산, 소룡산, 황매산, 철마산, 산성산, 한우산, 자굴산, 천황산, 집현산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유명산들이 많다.
▼ 가끔은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기도 한다. 높고 낮은 산들이 두세 겹으로 첩첩이 쌓여있다. 그 뒤에는 지리산이 버티고 있을 게 분명한데도 짙게 낀 미세먼지 때문에 그 형태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 그렇게 15분 정도를 진행하면 갈전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5분만이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이정표(철마산 3.1Km/ 수영덩이 2.3Km)와 삼각점(거창 314)만 세워져 있을 뿐 정상표지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산친구’라는 아호를 쓰는 분이 이정표에다 매달이 놓은 정상표지판 하나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 빠뜨릴 뻔했다. ‘서래야 박건석’선생께서도 정상표시 코팅지를 매달아 놓았다. 이미 이곳을 다녀갔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근처의 다른 산들을 열심히 오르내리고 계실 것이고 말이다. 참고로 갈전산은 이 산에 칡이 하도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철마산으로 향한다. 이 구간은 소나무들의 천국이다. 수북이 쌓인 솔가리들 덕분에 산길은 여간 폭신폭신한 게 아니다. 거기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 또한 진하기만 하다. 피로가 싹 가시면서 심신까지 맑아진다. 소나무에서 많이 배출된다는 피톤치드(phytoncide)의 영향일 것이다. 한마디로 콧노래가 절로 나올만한 구간이다.
▼ 문득 송이버섯이 나올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 경고판(警告板)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송이 관리지역’이라면서 입산을 금지한단다. 철망(鐵網)으로 울타리까지 쳐놓을 걸로 보아 매우 많은 양의 송이가 채취되나 보다.
▼ 송이채취 금지지역을 지나면 산길은 급하게 아래로 향한다. 그렇게 20분 남짓 진행하면 희미하게나마 양쪽으로 난 길의 흔적이 보이는 안부를 만난다. 산청군 생초면 향양리와 거창군 신원면 청수리를 잇던 고갯마루인 갈밭재(갈전재)인 모양이다. 사통팔달로 뚫린 신작로(新作路)에 밀려 저렇게 흔적만이 남아있구나 하고 지나치려는데, 몇 걸음 옮기지 않아 의의의 장소에서 갈밭재임을 알리는 이정표(철마산↑ 1.7Km/ 갈전마을← 0.7Km/ 갈전산↓ 1.3Km)를 만난다. 하지만 펑퍼짐한 것이 고갯마루로 보이지 않을뿐더러 길의 흔적 또한 찾을 수가 없다. 이정표가 위치를 잘못 잡지 않았나 싶다.
▼ 갈밭(葛田)재를 지나면서 또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거기다 능선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봉우리(어쩌면 728m봉일 게다) 하나 정도는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해버린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진행하다보면 이정표(철마산↑ 1.4km/ 갈전산↓ 1.7km)를 만난다. 산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갈림길도 아닌 곳에다 이정표를 세워놓은 이유인 모양이다.
▼ 산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길고 가파른 오름에 비해 내림은 완만하면서도 짧다. 하긴 고도를 높이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20분 가까이 진행하면 또 다른 이정표(철마산↑ 0.4km/ 갈전산↓ 2.7km, ↑)를 만난다. 뜬금없는 장소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몇 걸음 옮기지 않아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팻말 모양으로 생긴 작은 이정표(정상↑ 0.2Km/ 임도→ 1.0Km)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오른편으로 갈림길이 나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방향으로 보아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갈 경우에는 노은리(산청군 생초면)로 이어지는 임도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산길은 노은리 보다 훨씬 가까운 향양리로 연결될 게 분명하다.
▼ 갈림길을 지나면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 길손을 맞는다. 그리고 그 위에서 헬기장을 만난다. 웃자란 잡초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인 모양이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트인다. 조망을 즐겨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이곳보다 더 뛰어난 조망대를 잠시 후에 만나게 되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잠시 후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바위지대라는 표현을 했지만 그렇다고 바위들이 널려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다 거대하다거나 빼어나게 잘 생기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무척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바위였기 때문일 것이다.
▼ 이어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철마산 정상에 올라선다. 갈전산을 출발한지 정확히 1시간 만이다. 열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아담하게 생긴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예동마을 1.7Km/ 갈전산 3.1Km)가 세워져 있다. 참고로 철마산(鐵馬山)이란 이름은 오랜 옛날 ‘고씨’ 성을 쓰는 이가 전란(戰亂)을 피해 산으로 들어왔는데, 이곳에서 철마를 발견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 사방으로 막힘이 없는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예외이다. 짙게 낀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글로서나마 그 아쉬움을 달래본다. <서쪽으로 향양리가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는 예동마을, 그 뒤로 황매산이 그림과 같이 펼쳐있다. 남쪽으로는 멀리 웅석봉과 천왕봉이 보인다. 그리고 북으로는 기백산과 황석산을 먼 배경으로 하여, 지나온 능선이 3겹으로 이어진다. 실로 장관이다.>
▼ 정상에서 내려서자마자 또 다른 조망처를 만난다. 비록 한쪽 방향뿐이지만 그쪽만 놓고 볼 때에는 정상보다 더 뛰어나지 않나 싶다. 발아래에는 향장리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에는 높고 낮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마침맞게 바위의 위가 반반하기까지 하다. 조망을 즐기면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다.
▼ 정상에서 내려서자마자 산허리를 따라 일정한 두께로 띠를 두르고 있는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아까 정상에 오르기 전에도 이런 풍경을 만났었다. 그런데 이게 보통의 돌무더기로 보이지 않으니 문제이다. 누군가가 일부러 쌓아올린 흔적으로 보인다는 얘기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가끔 만나게 되는 옛 성터의 흔적을 빼다 닮았다. 하지만 이곳에 산성(山城)이 있었다는 사료(史料)는 찾을 수가 없었다. 문득 이곳으로 내려오는 버스 속에서 오회장님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6.25 한국전쟁’ 때 이곳 철마산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다는 얘기 말이다. 그렇다면 저 돌무더기들은 당시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는 빨치산(partizan)이 참호(塹壕) 대용으로 쌓아올렸던 흔적일 것이다.
▼ 철마산을 출발한지 7~8분쯤 되었을까 산길이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거의 직각(直角)에 가까울 정도이다. 거창군에서는 이곳에다 이정표(예동마을← 1.3Km/ 철마산↓ 0.4Km)를 세워 놓았다. 아마 헷갈리지 말라는 모양이다. 이 부근에서 삼각점이 있는 750.1m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뉜다고 했는데 발견할 수는 없었다.
▼ 몇 걸음 걷지 않아 또 다른 이정표(노은↑/ 정상↓ 0.3Km)가 보인다. 그렇다면 이곳은 삼거리라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이정표는 산청군 관내(管內)인 ‘노은’만 표시된 걸로 보아 산청군에서 만들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철마산에 올라올 때도 이런 경우를 만났었다. 그때만 해도 무심코 지나쳤는데 여기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리들이 낸 혈세(血稅)를 너무 낭비한 것 같아서이다. 산청군과 거창군에서 따로따로 이정표를 만들게 아니라 하나로 합쳤더라면 예산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간에 떠도는 화두(話頭)는 ‘협치(協治, governance)’이다. 원래는 ‘주민이 직접 행정에 참여한다.’는 뜻이지만, 요즘에는 ‘여당(與黨)과 야당(野黨)’, 그리고 ‘행정부와 입법부’, 특히 ‘청와대와 국회’ 간에 서로 타협해가며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의미로 많이 쓴다. 산청군과 거창군에서 이런 화두를 조금만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거론해 봤다.
▼ 철마산을 내려선지 20분이면 임도(이정표 : 예동마을→ 0.8Km/ 철마산↓ 0.9Km)에 내려서게 된다. 해발 590m라는 흰머리재이지 않나 싶다. 내려오는 길에 ‘노은 갈림길’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지점(이정표 : 예동마을← 0.9Km/ 철마산↓ 0.8Km)에서는 왼편으로 90도 정도 크게 방향을 틀었었다. 그러고 보면 거창군의 이정표는 일정한 틀에 맞춰 세워 놓은 것 같다. 갈림길이거나, 아니면 크게 방향을 트는 곳에다 말이다.
▼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100m쯤 걸었을까 산길이 오른편 능선으로 향한다. 하지만 진양기맥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를 따를 필요는 없다. 길이 무척 험하기 때문이다. 길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잡목과 가시넝쿨들이 우거져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악전고투(惡戰苦鬪)를 각오했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아무튼 이곳에서의 올바른 선택은 예동마을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동마을에서 다음에 오르게 될 ‘바랑산’의 들머리까지는 또 다른 임도로 연결하면 된다.
▼ 능선 초입의 풍경은 산뜻하다. 길도 잘 나있을뿐더러 길가에는 가을의 전령이라 할 수 있는 들꽃과 억새가 그 화려함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풍경은 확 바뀌어 버린다. 위에서 얘기한데로 길의 흔적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길을 못 찾아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선두대장을 맡고 계시는 오회장님이 나타난다. 중간에서 잠시 쉬고 계셨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가 나타난 뒤로는 어렵게나마 길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이름에 걸 맞는 산꾼의 풍모를 보여주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 하도 헤매다보니 산길의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저 능선을 타고 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혹시라도 잡목(雜木) 때문에 길이 막혀있을 경우에는 그냥 헤치고 나아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동안 진행하다 보면 전류(電流)가 흐를 것 같은 줄로 울타리를 쳐놓은 경작지(耕作地)를 만난다. 이곳에서 진양지맥은 우측 울타리를 따른다. 하지만 우린 왼편으로 향한다. 기맥 답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러 삼면봉까지 에둘러서 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곳에서부터 길을 만들어가는 산행이 잠시나마 이루어진다. 오회장님이 선두를 맡지 않았더라면 진행이 불가능했을 구간이다.
▼ 능선을 빠져나오면 과수원(果樹園)이다. 주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가운데를 통과하고 본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또 다시 시멘트포장 임도로 올라선다. ‘예동마을 갈림길’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시간이 30분이나 걸렸다. 얼마나 힘든 구간이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앞서가던 오회장님이 또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하지만 고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곳에서라도 계속해서 임도를 따르고 볼 일이다. 두 길은 잠시 후에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일행은 다시 한 번 악전고투를 지르게 된다.
▼ 이 구간도 역시 처음에는 형편이 좋다. 비록 묘목(苗木)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심어진 지역이 끝날 때까지에 한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거론하기도 싫을 정도다. 특히 가시넝쿨이 아예 숲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 터널을 뚫고 나가듯이 가시넝쿨을 헤치고 나아가야만 할 정도라는 얘기이다. 아무튼 최악의 구간이었다.
▼ 또 다시 임도에 내려선다. 이번에는 15분이 걸렸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바랑산의 산행들머리로 연결된다.
▼ 왼편에 예동마을이 보인다. 애초부터 임도를 따라 저곳으로 돌아왔다면 15분 정도면 충분했을 거리를 45분이나 걸렸다.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한 구간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곳 예동마을은 해발이 600m가 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철의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5℃이상 낮은 지역이다. 고랭지채소를 많이 재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잠시 후 ‘Y'자 삼거리로 이루어진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삼거리에는 ‘진양기맥 종주 안내도’와 이정표(바랑산↖ 1.4Km/ 예동마을↓ 0.6Km)가 세워져 있다. 계속해서 포장임도를 따를 경우 왕촌리(산청군 오부면)로 연결된다. 바랑산으로 오르려면 왼편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야 한다.
▼ 길가에는 억새군락이 제법 길게 펼쳐진다. 임도를 따라 6분쯤 걸었을까 오솔길 하나가 오른편으로 나뉜다. 바랑산으로 올라가려면 이 길로 들어서야 한다. 들머리에 선답자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 몇 개가 매달려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산길이 썩 좋지는 않다. 간벌(間伐)로 생긴 나무들이 길 위에 널브러져 있는가 하면. 여름철 동안 자라난 잡목들이 산길까지 비집고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이것 숫제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경사(傾斜)까지 완만하니 거칠 것이 뭐 있겠는가.
▼ 그렇게 30분쯤 진행하면 바랑산 정상이다. 중촌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부터 잰 시간이다. 웬만한 헬기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널따란 정상은 한마디로 잘 가꾸어져 있다. 자연석에다 산의 이름을 새겨 놓은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소룡산 3.3Km/ 신촌 2.6Km), 삼각점(산청 315호)은 물론이고 널따란 공터를 아예 잔디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주저앉은 곳이 곳 쉼터가 될 정도로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다. 참고로 바랑은 '배낭'이 변한 말로 스님들이 지고 다니는 볼록한 주머니다. 산청 바랑산은 원래 마고할미의 주머니였다고 한다. 인근 소룡산의 새이덤은 마고할미가 바랑에 넣고 가다 흘린 돌무더기. 옆에 있는 월여산은 딸. 보록산은 아들이라고 한다.
▼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미세먼지에 가로막힌 산하는 흐릿하기만 하다. 다른 이의 글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황매산과 작은황매산, 소룡산이 겹겹히 층을 이루면서 시원하게 펼쳐지고 철마산과 갈전산 뒤로는 괘관산이 길게 하늘금을 이룬다. 아울러 좌측으로는 월여산과 감악산이 여전히 조망의 주체를 이룬 가운데 그 뒤로 가야산, 단지봉,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뚜렷하게 가늠할 수 있다.>
▼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소룡산 방향이다. 완만한 산길을 따라 10분쯤 내려갔을까 ‘천지사’로 연결되는 오솔길이 나뉜다. 이정표(천지사. 왕촌→/ 바랑산 정상↓ 500m)까지 세워 놓았지만 제 몫은 못하고 있다. 소룡산 방향이 주능선임에도 불구하고 표기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소룡산은 계속해서 능선을 타야만 한다.
▼ 잠시 후 나지막한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나뭇가지에 ‘문정남(文政男)선생님’의 리본이 매달려 있다. 14,205번째로 오른 산이란다. 우리 일행과는 다른 코스를 타신다고 했는데 우리보다 먼저 이곳을 지나가신 모양이다. ‘조삼국(趙三國)선생님’의 리본도 보인다. 1만 개의 산을 올랐다는 분이다. 문정남선생님과 12,500개의 산을 올랐다는 ‘심용보(沈爖輔)선생님(아래 사진에서 리본을 매달고 계시는 분)’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많은 산을 올랐다는 분이다. 잠시 기다렸다가 뒤따라오는 ‘심용보선생님’께 이곳의 위치를 알려드린다. 이곳이 ‘소봉’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이 봉우리는 일반의 지도(地圖)에는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산청군에서 만든 산행안내도에는 소봉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명색이 지자체에서 만들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봉우리의 이름을 적어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 잠시 후 또 다른 ‘천지사 갈림길(이정표 : 소룡산↑ 2.4Km/ 천지사→ 0.5Km/ 바랑산↓ 0.9Km)'을 만나면서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런 내리막이 10분 가까이나 계속되니 소룡산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면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내려온 것만큼 다시 올라가야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10분쯤 내려오면 안부가 나타난다. 양쪽으로 희미하게나마 길의 흔적이 보이는 걸로 보아 ‘큰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정표가 없어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어서 5분 정도를 더 걸으면 독촉골로 내려가는 삼거리(이정표 : 폭포·독촉주차장→ 0.6Km/ 바랑산↓ 1.60Km)를 만난다. 소룡산으로 가려면 계속해서 주능선을 타야 하지만 이곳에서 그만 내려가기로 한다. 소룡산은 5년 전에 올랐었기 때문이다. 당시 바랑산도 함께 올랐었지만 오늘 산행이 너무 짧아 바랑산은 한 번 더 올랐을 뿐이다.
▼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산길은 무척 곱다. 보드라운 흙길로 이루어진데다 솔가리들까지 수북하기 쌓여 폭신폭신하기까지 하다. 거기다 뺨을 스쳐가는 바람결에는 진한 솔향이 배어 있다. 이런 곳에서는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최대한 속도를 늦춘다. 그리고 가능한 크고 깊게 숨을 들이킨다. 몇 번 반복하다보면 심신(心身)은 이미 맑아져 있을 것이다. 그래 이런 걸 보고 힐링(healing)산행이라고 할 것이다.
▼ 얼마쯤 걸었을까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아니 바위무더기 정도로 표현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아무튼 이곳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푯말 하나를 만나게 된다. ‘전망대’라고 쓰여 있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혹시나’ 하고 바위 위에까지 올라가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나’였다.
▼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서길 15분 여. 작은 저수지의 둑 아래에 있는 ‘독촉주차장’에 내려선다. 널찍하게 공터를 만들고 시멘트로 포장까지 해놓았다. 들머리에 ‘바랑산·소룡산 등산안내도’를 세워놓은 걸로 보아 산행들머리용으로 조성해 놓은 모양이다.
▼ 주차장에서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시멘트로 포장된 데다 경사까지 거의 없어 누군가와 얘기라도 나누며 걷기에 안성맞춤인 길이다. 마침 곁에는 ‘심용보(沈爖輔)선생님’이 함께 걷고 계신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어봤다. 산을 좋아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도움이 되어 주실 것 같아서이다. 특히 30여년을 공직(公職)에서 머무르셨고, 퇴직 후에 더욱 더 산행에 심취하신 것 등은 현재의 내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니 그분에게 조그만 조언이라도 받는다면 나 역시 80이 넘을 때까지 산행을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연세가 79세나 되신 요즘에도 매주 5번 이상이나 산행을 해 오신다니 말이다.
▼ 산행날머리는 오휴마을회관(산청군 오부면 중촌리)
급할 것 없는 속도로 걷는다. 중간에 ‘진귀암 갈림길(이정표 : 진귀암← 600m)을 지나고, 느티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오휴 숲‘도 지난다. 이어서 ’오휴저수지‘를 지났다싶으면 저만큼에 오휴마을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휴마을은 까마귀와 인연이 깊은 마을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에도 ‘까마귀 오(烏)’자를 쓰고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사람들이 피난을 가는데, 흰 까마귀가 막대기를 물고 가더란다. 그래서 뒤따라가 보니, 홍굴 앞 바위에 머물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래에 터를 잡고 산 것이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 마을 이름을 오휴(烏休)라고 불렀단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40분이 걸렸다. 바랑산부터는 속도를 줄이긴 했지만 중간에 멈추지 않았으니 순수하게 걸은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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