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방산(牛芳山, 494m)-수양산(首陽山, 538.2m)-소두방산(小斗芳山, 521m)

 

산행일 : ‘17. 4. 18()

소재지 : 경남 하동군 옥종면과 산청군 시천면단성면의 경계

산행코스 : 두양리우방산함박산(咸朴山, 624.7m)수양산(首陽山, 538.2m)옥동고개소두방산안부중태경로당(산행시간 : 4시간 20)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오늘 걸으려고 했던 코스는 정개산(520m)을 한가운데 두고 부챗살처럼 한 바퀴 도는 산길이었다. 우방산을 시작으로 함박산과 수양산, 소두방산(함미봉)을 거쳐 비룡산과 두방산까지 다녀올 요량이란 얘기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애초부터 불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길이 거친 탓에 진행속도가 한없이 더뎌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흔적도 보이지 않는 길은 일단 제켜두자. 다른 산들에서도 간혹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과 같이 처음에서 끝까지 길이 없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거기다 산은 온통 벌목(伐木)으로 인한 상처투성이였다. 잘려진 나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탓에 어느 곳 하나 곧장 치고나갈 수가 없었다. 잡목 사이를 뚫으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러다보니 산행 내내 가시넝쿨이나 잡목들과의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었다. 싸대기는 아예 맡겨 놓은 채로 말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니 어쩌겠는가. 그저 조금이라도 덜 긁히고 덜 찔리려고 조심하는 게 상책이었다. 덕분에 산행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지체되었고 결국에는 비룡산과 두방산은 답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산행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길 없는 길에서 길을 찾다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이런 산들은 봉우리 따먹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상석도 없는데다 그저 잡목들만 무성한 이런 야산들을 일부러 찾아올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산행들머리는 두양리 마을입구(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486-2)

통영-대전고속도로 단성 I.C에서 내려와 20번 국도를 타고 중산리(산청군 시천면) 방면으로 달리다가 창촌삼거리(산청군 단성면 창촌리)에서 1005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옥종면(하동군) 방향으로 들어오면 잠시 후 두양리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 이르게 된다. 들머리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두양리라고 적은 다음에 그 옆에다 두양과 두방이라는 지명을 따로 적었다. 두양리가 두방마을두양마을이라는 두 개의 자연부락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두양리는 숲촌마을이라는 또 다른 자연부락을 포함하고 있다. 이곳 삼거리에서 옥종면소재지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만나게 되는데, 이 마을 근처(정개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민무늬 토기조각(無文土器片)’들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기억해 두도록 하자.




버스에서 내려 들어왔던 방향, 그러니까 단성면(산청군) 방향으로 되돌아 나간다. 100m쯤 걸으면 또 다시 왼편으로 길이 나뉜다. 아래 사진에서 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부근인데 이 길도 역시 두양리로 들어가는 길이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50m쯤 걷자 저수지가 하나 나타난다. ‘두양소류지(沼溜地)’란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작은 규모의 저수지라고 보면 되겠다. 저수지 뒤편에는 두양(斗陽) 마을이 웅크리고 있다. 두방산(斗芳山) 아래 양지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런데 아래사진을 보면 마을의 주택들과 함께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수령이 900여년이나 되었다는 은행나무(경상남도기념물 제69)가 아닐까 싶다.



소류지의 둑에서 오른편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자락으로 들어서자마자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곧이어 무덤 몇 기가 모여 있는 묘역(墓域)이 나타난다.



묘역을 지나자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저 능선으로 오른다 생각하고 잡목(雜木)들을 헤쳐 가며 위로 오를 수밖에 없다. 나뭇가지에 싸대기 두어 대 정도는 맞을 각오를 하면서 말이다.



8분쯤 걸려 작은 봉우리에 살짝 올라서니 묘목(苗木) 재배지가 나온다. 나무의 종류는 알 수 없지만 야자나무 묘목들도 보이는 걸로 보야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재배하고 있지 않나 싶다.



묘목재배지를 지나면 산길은 또 다시 산자락을 파고든다. 이번에도 역시 무덤 두어 기가 길손을 맞는다. 아무래도 오늘은 무덤과 인연이 많은 산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순간이다.



무덤을 지나면서 산길이 가팔라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산행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거칠어진다. 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음은 물론이다. 엊그제 산행준비를 하면서 먼저 이곳을 다녀간 이가 써놓은 기록을 본 일이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일러 토끼가 다녔음직한 흔적뿐인 길이라고 적었었다. 맞는 말이다. 사람이 어찌 이런 길을 다닐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길을 만들어가며 진행할 수밖에 없다. 잡목(雜木)이나 가시넝쿨이 발길을 부여잡지만 어쩌겠는가. 헤쳐 나가다 그도 안 되면 에돌아간다. 싸대기 두어 대는 기본, 이제는 찔리거나 할퀴는 것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런 처절한 싸움은 40분 가까이나 이어진다. 그리고 자잘한 바위들이 하나 둘 보이는가 싶더니 언제부턴가 전형적인 바윗길로 변해있다. 그렇다고 길이 좋아졌다는 것은 아니다. 바위의 틈새마다 잡목들이 들어차있어 헤치고 올라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미끄러운 급경사 너덜을 통과한 후 험한 암릉 사이를 나뭇가지를 의지해가며 오른다. 긴장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아무튼 바위와의 한판 힘겨루기를 하다보면 주체 못할 정도로 많은 땀이 흘러내린다. 모자의 채양을 타고 흐르는 폼이 흡사 오뉴월 장맛비에 낙숫물 떨어지듯이 한다. 산길이 무척 힘들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초여름에 가까운 무더위까지 겹쳤으니 말이다. 준비해온 2리터의 물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시작된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바윗길의 특징대로 곳곳에서 조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는 바위마다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옥종면 일대가 발아래에 펼쳐지고 저 멀리 낙남정맥의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또한 구불거리며 진향호로 향하고 있는 덕천강 물줄기도 한눈에 잘 들어온다.



바윗길이 끝나면서 산길은 조금이나마 나아진다. 잡목이 갈 길을 방해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가파름은 그 기세를 뚝 떨어뜨렸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4분 정도를 더 걸으면 드디어 우방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만이다. 정상에 오르자 두 기의 케언(cairn)이 길손을 맞는다. 하나하나 쌓아올린 돌들에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을 담았나 보다.



대여섯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진주 봉산산악회에서 세운 것이란다. 이렇게 험한 곳까지 정상석을 둘러매고 올라왔을 이들에게 감사를 표해본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인증사진 하나 제대로 찍을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함박산으로 향한다. 산길은 아직도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충 방향을 잡고 내려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내려서면 안부에서 임도를 만난다. 자동차가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널찍한 길이다. 거기다 경사까지 거의 없다. 편안한 산행이 시작되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흠()도 있다. 햇빛을 가려줄 숲이 없기 때문이다. 오뉴월 뙤약볕이라도 내려쏜다면 쉽지 않은 산행이 될 것 같다.



사면(斜面)을 따라 난 임도를 15분 정도 걸었을까 능선에 올라선다. 임도는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초입만 보면 오솔길로 바뀌는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와 같은 넓이의 길로 되돌아간다.



능선을 따르던 임도의 앞에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임도는 봉우리를 피해 오른편 사면을 따라 우회(迂回)를 시킨다. 하지만 경사까지는 누그러뜨리지를 못했나 보다.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봉우리인가 하고 지나치려는데 그게 아니었다. 능선으로 올라선지 15분쯤 지났을 즈음 표지기 하나가 매달려 있는 곳에 산악회의 방향표시지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회를 했던 봉우리가 함박산이었던가 보다.



방향표시지의 지시를 따른다. 물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능선에 가득 찬 잡목들을 헤치며 나갈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그 길은 짧았다. 2분 후에 함박산의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올라선 정상은 텅 비어 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선답자들이 매달아 놓은 표지기(ribbon)들을 보고 이곳이 함박산의 정상이려니 해볼 따름이다. 우방산에서 이곳 함박산까지는 45분이 걸렸다. ! 깜빡 잊을 뻔 했다. 선답자의 기록을 보면 이곳에 삼각점(산청 27/ 1991재설)이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다.




다시 임도로 되돌아와 산행을 이어간다. 경사는 또다시 누그러졌다. 대신 길의 폭은 많이 좁아졌다. 눈요깃거리가 전혀 없는 답답한 산행이 잠시 이어진다. 그렇다고 지나온 구간에 별다른 볼거리가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까는 걸음을 옮기며 취나물을 뜯는 재미는 있었다.



얼마 후 진행방향을 또 다른 봉우리가 가로막는다. 이번에도 산길은 봉우리를 피해 우회를 시킨다.



그렇게 5분 조금 못되게 걸었을까 또 다른 방향표시지가 보인다. 방금 우회를 했던 왼편의 봉우리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고속도로처럼 널따란 길은 곧장 직진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갈림길에서 바라본 직진방향의 길, 이건 숫제 고속도로이다. 이런 좋은 길을 버리고 길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는 곧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라는 얘기이다.



왼편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Car navigation system)을 통해 주행안내를 받다보면 진행방향을 나타내는 기호로 시간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7시 방향이라 하면 거의 반 바퀴를 빙 돌아 반대방향으로 간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의 상황이 딱 그와 같기에 거론을 해봤다. 그만큼 크게 방향을 꺾는다는 얘기이다.



또 다시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는 산행이 시작된다. 아무래도 오늘 산행의 특징인가 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고역이 잠깐이면 끝이 난다는 점이다. 2분이 채 안되어 몸통만큼이나 굵직한 노송(老松)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623m봉에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도 역시 정상석이나 이정표 등 아무런 표시가 없다. 하긴 함박산처럼 이름이 있는 봉우리까지도 그런 표식이 없었는데 이런 무명봉에 누가 그런 표식까지 해놓겠는가.



623m봉에서는 오른편으로 내려선다. 이번에도 역시 길은 없다. 그저 방향표시지를 찾아가며 아래로 내려갈 따름이다.




그렇게 7~8분쯤 내려갔을까 안부에 이르게 되고 또 다시 작은 오름짓을 하다보면 수양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함박산을 출발한지 18분 만이다. 수양산의 정상은 전망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뛰어난 조망을 보여주는 바위이다.



수양산 정상도 역시 텅 비어있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는 물론이고 이곳이 수양산의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그 어떤 표식도 없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표지기(ribbon)마저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일행 한분이 현장에서 급조(急造)정상표시지를 붙여 놓았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북서쪽으로 시천면 소재지를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그 뒤에는 구곡산이 우뚝하다. 중앙 멀리로는 보이는 것은 물론 지리산의 천왕봉과 중봉이다. 정북 쪽에는 소리당 계곡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시무산과 또 다른 수양산, 깃대봉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벌목봉과 화장산 등이 도열해 있다. 백운산과 석대산까지 눈에 들어옴은 물론이다. 보면 볼수록 화려한 조망이 펼쳐진다.




소두방산으로 향한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이곳도 역시 길이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가시넝쿨들은 보이지 않는다. 잡목들만 헤치면 되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지만 이 구간은 간벌(間伐)로 인해 발생한 나무들이 이곳저곳에 널려있어 진행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는 애로가 있다.




그렇게 30분 가까이 내려서면 임도가 나있는 옥동고개이다. 이제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비록 잠시지만 말이다.



소두방산으로도 임도가 나있다. 가파른 곳에는 밧줄을 매어놓는 배려까지 해놓았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편의시설이 아닐까 싶다. 모처럼 밝은 마음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런 호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중간에 무덤을 만나면서 또 다시 산길이 끊겨버리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올라왔던 산길은 이 무덤을 위해 조성한 길이었던 모양이다.



또 다시 개척 산행이 이어진다. 방향을 잡을 수도 없다. 그저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지점을 향해 오를 뿐이다.



그렇게 고생을 치르다보면 잠시 후에 소두방산 정상에 올라선다. 인근 주민들은 할미봉또는 함미봉으로 부른단다. 이곳도 역시 텅 비어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선답자들의 표지기(ribbon)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 아까 수양산과 마찬가지로 함께 걷고 있는 일행이 급조해서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지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수양산에서 소두방산까지는 1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1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간벌지역을 통과하느라 많이 지체되었던 모양이다.



잡목으로 둘러싸인 탓에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별로이다. 하지만 몇 걸음만 옮기면 좁게나마 시야가 트인다. 그리고 지리산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비록 웃자란 소나무들이 아랫도리를 잘라먹어버렸지만 말이다.



비룡산으로 향한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올라왔던 길로 100m쯤 되돌아 나가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급사면(急斜面)의 내리막길이 마중 나오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길을 잘못 들어선 대가는 혹독했다. 경사가 가파른 것 정도야 문제가 될 수 없다. 길가의 굵은 소나무나 잡목들을 부여잡고 내려서면 되기 때문이다. 그보다 훨씬 더 큰 복병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간벌(間伐)이 아니라 온전한 벌목(伐木)지대이다. 바닥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모든 나무들을 베어 넘겼다. 때문에 쓰러진 굵은 나무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어서 통과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렸다. 그런데 범위까지 넓으니 문제다. 빙 돌아서 내려가는데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肉頭文字)가 튀어나오고 만다. 벌목을 했으면 그로 인해 생긴 부산물을 치워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느 글에선가 이 산들을 웬만한 꾼들에게서조차 외면을 받는다고 했다. 그 말이 실감이 난다. 내 생각에도 이 산들은 그저 원시림을 헤집으며 수많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렸다는데서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40분 이상 악전고투를 치른 후에야 우리 일행은 안부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코스 임에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만큼 길이 험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비룡산으로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중태리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산악회에서 공지한 하산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기 때문이다. 이후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그것도 시멘트로 포장까지 되어있다. 서두를 필요 없이 길가에 보이는 예쁘장한 전원주택들을 구경하면서 서서히 걸으면 될 일이다.



20분쯤 내려가다 길이 나뉘는 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한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제법 너른 개울을 만난다. 중태천(中台川)이다. 산행에 지친 다리도 풀어볼 겸 물속으로 들어가 본다. 맑으면서도 차갑다. 역시 지리산 줄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답다.



산행날머리는 중태마을 경로당(산청군 시천면 중태리 826)

개울에서 빠져나와 5분 정도 더 걸으면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 잡은 중태마을 경로당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경로당 앞에는 지리산둘레길을 탐방하는 사람들에게 스탬프를 찍어주면서 팸플릿(pamphlet) 등을 판매하는 지리산둘레길 중태마을안내소가 설치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안내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것이란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정확히 4시간 30분이 걸렀다.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4시간 20분이나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