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산(河之山, 207m)-귀비산(貴妃山, 496m)-명산봉(名山峰, 240m)
여행일 : ‘17. 1. 19(목)
소재지 : 경남 남해군 남해읍과 서면, 남면의 경계
산행코스 : 고실치→하지산→대부산→수리봉(돌탑봉)→귀비산→명산봉→잔땡이고개→임진성→기왕산(起王山, 105m)→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산들은 ‘한반도 바래길’의 일부구간이다. ‘한반도 바래길’이란 이곳 남면(南面)의 상덕권역(상가리 남구 북구, 덕월리 덕월 구미 4개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일종의 둘레길인데, 상덕권역을 감싸고 있는 산세가 만들어내는 지형이 한반도의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렇다면 ‘바래길’에는 무슨 사연이 깃들어 있을까? 바래길은 남해의 아낙들이 갯벌에 일하러 가던 길이고, 주린 배 움켜쥐고 물질 나간 어미 기다리던 자식의 길이다. 옛날 남해의 어미는 갯벌에서 갯것을 캐는 일을 ‘바래한다’고 했다. ‘바래길’은 여기서 나왔다. 아무튼 ‘한반도 바래길’은 귀비산과 천황산을 두 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귀비산(貴妃山)만 올랐다. 시간이 부족한데다가 산의 높이로 보아 아무래도 귀비산의 산세가 더 뛰어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귀비산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그 자태가 빼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정상 어림의 암릉구간은 일품이었다. 바위로부터 전해오는 손맛에는 짜릿한 쾌감까지 느껴지고 올라서는 바위마다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졌다. 그렇다고 해서 귀비산을 골산(骨山)으로 볼 수는 없다. 나머지 구간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의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편안한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한번쯤은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은 산이라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등산로를 정비하지 않은 채로 버려둔 탓에 짜증나는 산행을 할 수밖에 없음은 꼭 지적하고 싶다. 국비(國費)까지 들여가며 조성해 놓은 등산로를 무책임하게 방치한 것은 혈세를 낸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참고로 귀비산은 좌측 지능선에 명산봉과 기왕산을 끼고 있고, 우측의 능선은 하지산과 천황산(天皇山`395.1m), 조산(214.5m)을 일으키고서 남해바다로 가라앉는다.
▼ 산행들머리는 고실치(남해군 서면 대정리 산 160-6)
남해고속도로 하동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남해읍까지 들어온다. 남변삼거리(남해읍 남변리)에서 우회전하여 군도(郡道)인 스포츠로를 타고 잠시 들어가다 ’서면 대정리‘에서 좌회전하여 ’고실로(路)‘로 옮겨 ’힐튼 남해C.C’가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실치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고실치는 서면(대정리)과 남면(상가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로 오늘 산행의 들머리가 된다.
▼ 산행은 고갯마루에서 남면 쪽으로 50m쯤 내려가는 곳에서 왼편으로 열린다.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상가↔대정, 96년도 개설)인데다. ‘평장묘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임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길을 못 찾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참 잊을 뻔 했다. 고갯마루에서 반대 방향으로 올라갈 경우에는 봉황산이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10분쯤 지났을까 임도를 조금 넓혀놓은 곳이 보인다. 간이 주차장용으로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옆에 이정표(귀비산 정상 2.52Km/ 천황산 정상 1.88Km, 활성화센터 3.90Km)까지 세워놓았지만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곳에서 하지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뉘는데도 이정표에는 나타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 왼편 능선으로 오른다. 웃자란 잡목들이 등산로까지 비집고 들어온 것을 제외하면 길은 제법 또렷한 편이다. 이정표에도 나타나있지 않은 봉우리로 연결되는 길임을 감안한다면 의외가 아닐 수 없다.
▼ 그렇게 2분쯤 걸었을까 하지산 정상에 이른다.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도 물론 없다. 그저 대구의 산악인 김문암씨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정상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 임도로 되돌아 나와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방역복(防疫服)을 입은 사람들이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방금 전까지 작업을 했는지 농약 특유의 독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병충해의 피해를 입은 나무들에 약이라도 치고 있는 모양이다.
▼ 그렇게 12분쯤 더 걸으면 능선의 안부로 여겨지는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임도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귀비산은 이곳에서 오른편 능선을 타야 한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게 있다. 왼편 능선 상에 있는 대부산에 다녀오는 일이다.
▼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서툴게 쌓아올린 작은 케언(cairn, 돌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로 삼으면 딱 좋겠다. 이곳이 대부산의 들머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아무런 표시도 없으니 말이다. 2분쯤 걸었을까 대부산 정상에 올라선다. 하지만 이곳이 정상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밋밋하게 생긴 것이 마치 능선상의 어느 한 지점에 불과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도 보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저 죽은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을 따름이다. 앞서 지나간 일행이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종이쪽지마저 없었더라면 이곳이 정상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게 뻔하다.
▼ 임도로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오른편 능선을 탄다. 이곳 역시 이정표는 없다. 그저 대부산의 반대편 능선을 탄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이곳에서부터 고생이 시작된다. 웃자란 잡목과 가시넝쿨들이 등산로까지 비집고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는 산길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 8분쯤 걸었을까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상에 세워진 이정표(귀비산 정상 1.19Km/ 천황상 정상 3.21Km, 활성화센터 5.23Km)의 기둥에 ‘한반도 바래길’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의 이름인 모양이다. ‘바래’란 옛날 남해의 어머니들이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일컫는 남해 사람들의 토속어이다. 그러니 ‘바래길’은 남해의 어머니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갯벌을 오가던 길로 보면 되겠다. 참고로 남해에는 ‘바래길’이라 불리는 둘레길이 있다. 8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1코스부터 4코스까지는 남해 남해안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지고, 5코스는 내륙을 관통하며, 6코스부터 8코스까지는 남해의 동북해안을 따라 창선·삼천포대교까지 나아간다. 지금 걷고 있는 ‘한반도 바래길’은 그런 맥락에서 만들어졌지 않나 싶다.
▼ 귀비산 정상으로 가려면 왼쪽 능선을 따라야 한다. 이정표가 ‘천황산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는 오른편 능선으로도 길은 나있다. 아까 임도의 어디쯤에선가 이곳으로 연결되는 등산로의 들머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삼각점봉을 지나면서 길은 더욱 거칠어진다. 잡목(雜木)만 해도 버거운데 이번에는 가시넝쿨까지 발목을 휘어 감는다. 찔리고 할퀴는 것은 다반사, 자칫 한눈이라도 팔다가는 싸대기라도 얻어맞기 일쑤이다. 이런 곳에서 ‘육두문자(肉頭文字)’ 한 번 내뱉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성인군자의 반열에 올라서고도 남았을 것이다.
▼ 거칠기 짝이 없는 산길을 10분 조금 못되게 헤치다보면 산길은 또 다시 위로 향한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산길을 가꾼 흔적을 만난다. 오르막 구간에 수십 개의 기둥을 세우고 네 가닥의 밧줄로 연결시켰다. 하지만 그 용도를 모르겠다. 만일 붙잡고 오르라는 배려용으로 만든 난간이었다면 줄은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길로 가지 말라는 경계표시인지도 모르겠다.
▼ 잠시 후 오른편에 바위 협곡(峽谷)이 나타난다. 협곡 방향은 밧줄 난간으로 막아 놓았다. 설치 목적이 의아스러웠던 조금 전의 그 밧줄 말이다. 아무튼 이번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잠시 후, 이번에는 작은 바위봉우리가 나온다. 일단은 올라가고 본다.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조망이 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내 기대는 옳았다. 짙게 낀 연무(煙霧)로 인해 또렷하진 않지만 널따란 바다가 나타난 것이다. 광양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여수반도가 있을 것이고 말이다.
▼ 막혀버린 조망에 아쉬워하다가 또 다시 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널따란 암반지역(이정표 : 귀비산 정상 0.87Km/ 천황산 정상 3.53Km, 활성화센터 5.55Km)에 이른다. 단체로 점심을 먹기에 딱 좋은 곳이다. 터가 넓을 뿐만 아니라 조망까지도 트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오르게 될 귀비산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 ‘한반도 바래길’이라고 표기된 또 다른 유형의 안내판이 보인다. 왼편에는 귀비산코스의 지도를 그려놓았고, 오른편에다 귀비산과 시루봉의 높이, 그리고 코스의 길이와 걷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적었다. 언젠가 이곳 ‘남면 상덕권역(상가리 남구 북구, 덕월리 덕월 구미 4개 마을)’이 농림수산식품부가 선정하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선정되었다고 들었는데 당시에 만들어진 시설물인 모양이다. 상덕권역을 감싸고 있는 산세가 만들어낸 지형이 한반도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권역사업의 이름을 ‘한반도마을’로 정한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소득사업 발굴’을 주요목적으로 하는 권역단위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농촌관광의 활성화를 위한 체험코스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이 코스는 덕월마을의 힐튼골프장 입구에서 시작해 임진산성→잔땡이고개→귀비산→대부산(수리봉)→고실고개→천황산(시루등)→쇠마당→덕월마을을 거치는 5시간짜리 원점회귀 코스이다. 하지만 난 고실고개에서 역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전체를 다 돌아보는 게 옳겠지만 겨울산행인 점을 감안해서 코스를 줄였기 때문이다.
▼ 또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은 여전히 거칠다. 위에서도 얘기 했듯이 지금 걷고 있는 ‘한반도 바래길’은 국비(國費)를 들여 개설한 둘레길이다. 국민들이 낸 혈세(血稅)로 만들어졌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설치만 하면 그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후관리를 해가는 게 마땅하다는 얘기이다. 지자체(地方自治團體)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점검을 하지 않은 ‘농림수산식품부’도 그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 그렇게 13~4분쯤 지나자 바위 몇 개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에는 본격적인 바윗길로 연결된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다른 바위산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가 아닐까 싶다.
▼ 바윗길에서의 조망(眺望)은 화려하다. 오르내리는 바위들이 하나 같이 빼어난 조망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짙게 낀 연무(煙霧)가 시계(視界)를 가로막아 가까이에 있는 산들 외에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별로 없다.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가까이에 있는 천황산과 고동산, 망기산은 물론이고, 남해읍 시가지를 비롯하여 멀리 하동의 금오산까지 조망될 텐데 말이다. 더 멀리로는 바다 건너 여수시의 산군(山群)들까지도 눈에 담을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다.
▼ 통과하는데 16분쯤 걸리는 이 바윗길은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험상궂지도 않다. 생명을 위협 받을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는 바위들을 오르내리는 수고까지 피할 수는 없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손맛이 행복하기만 하고, 바위에 매달릴 때의 짜릿한 스릴은 차라리 쾌감에 가까울 정도이다.
▼ 바윗길이 끝나고 케언(cairn, 돌탑)이 있는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첨부된 지도에 ‘GPS상의 귀비산(돌탑봉)’이라고 표기된 지점이다. 나도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난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수리봉이라는 것이다. ‘수리’란 수릿과에 속하는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쉽게 말해 ‘독수리’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수리봉’이라는 이름의 봉우리들은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독수리의 머리 모습이 날카롭게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이곳이 ‘수리봉’으로 불린다는 이유이다. 또한 그는 지역 언론에서도 이곳을 수리봉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대부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고 했다. 아무튼 그의 말은 옳았다. 각종 자료들을 검색해본 결과 이곳을 수리봉 또는 대부산으로 부르고 있었다.
▼ 조망을 즐기다가 귀비산으로 향한다. 억새가 우거진 능선을 3~4분쯤 걸으면 산길은 능선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우회(迂迴)를 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희미하게나마 능선으로도 길이 하나 나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첨부된 지도에 ‘귀비산’으로 표기된 지점으로 오르는 길이니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참! 들머리의 기점으로 삼을 만한 게 하나 있기는 하다. 갈림길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는 곳에 세워진 이정표(임진성 3.79Km/ 귀비산 정상 0.24Km, 천황산 정상 4.64Km)이다. 그러나 이정표에는 이 봉우리에 대한 표시는 아예 빠져있다. 신중한 검증이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놓은 결과일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것이란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이정표를 들머리의 기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은 만일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귀비산으로 오르는 들머리를 찾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잠시 후 귀비산에 올라선다. 첨부된 지도에 ‘귀비산’이라고 표기된 지점이다. 하지만 난 이 봉우리가 ‘시루봉’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산행을 나서기 전에 살펴봤던 지역 언론의 기사들에서 ‘시루봉’이라는 지명을 발견했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으로 오는 길에 만났던 ‘한반도 바래길 안내판’에도 시루봉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나타나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귀비산의 정상은 텅 비어 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이정표가 귀비산으로 지명하고 있는 돌탑봉에도 그 둘은 보이지 않았었다. ‘한반도 바래길’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등산로를 개설했으면서도 막상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어 버린 셈이다. 참고로 고실치의 건너편에는 395.2m 높이의 천황산이 있다. 그런데 그 천황산은 ‘시루등’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정상 부근의 큰 바위가 떡시루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아까 안내판에서 보았던 시루봉은 천황산을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산행을 이어간다. 참 깜빡 잊을 뻔 했다. 방금 올랐던 귀비산의 정상에서 되돌아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능선을 탈 경우에는 송등산을 거쳐 호구산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지금 걷고 있는 이 능선은 명산봉을 거쳐 기왕산으로 연결된다. 능선을 따라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는 산길은 일단 순하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 능선을 따라 쌓아올린 돌담이 보인다. 이런 풍경은 산행을 하는 내내 거의 끊이지 않고 나타난다. 돌담뿐만이 아니다. 묘(墓)의 둘레도 둥그렇게 돌담을 쌓아올렸다. 그만큼 돌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다 돌담을 쌓았을까? 왜구(倭寇)들의 노략질을 대비해서 쌓아올렸던 산성(山城)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내 예측은 틀려도 한참이나 틀려 있었다. ‘산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한 표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돌이 많아도 그렇지 우리네의 일상이나 다름없는 ‘경제원칙(經濟原則)’에 어긋나도 너무 어긋났다는 생각이 든다. ‘경계 구분’이라는 효용가치에 비해 담장을 쌓는데 들어간 비용이 훨씬 더 커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목적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얘기이다.
▼ 하산을 시작하고 30분쯤 지났을까 앞서가던 일행이 멈춰서는 게 보인다. 괜찮은 전망대를 만났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망대에 서면 암릉으로 이루어진 귀비산 정상과 골짜기의 너덜이 보인다. 누군가는 후기에서 북쪽으로는 남해 최고봉인 망운산(785.9m)이, 그리고 좌측으로 용두봉과 물야산으로 이어지는 육중한 능선이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이다. 연무로 인해 사방이 흐릿하게 영상처리 되고 있을 따름이다.
▼ 10분 후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난다. 저 멀리 덕월리 방향이 내려다보인다. ‘힐튼남해컨트리클럽’이 있는 곳이다. 해안선 근처에 꼬맹이 섬 두 개가 있다. 대마도와 소마도란다. 저 섬들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등시(간만의 차이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에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모세의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아무튼 위에서 얘기했던 권역사업에는 저곳 대마도와 소마도에서 갯벌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시 운송수단이 꼭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 왼편에도 바다가 나타난다. 앵강만(鸚江灣)일 것이다. ‘앵무새가 우는 강, 다시 말해 앵무새 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바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바다가 잔잔하고 평화롭다는 얘기일 것이다. 앵강만은 어귀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노도’라는 섬으로 인해 더 유명세를 탄다. 이 섬에서 앵강 바다처럼 숨죽이고 살다 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구운몽’을 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다. 서포는 숙종 연간인 1689년 남해로 유배됐다가 3년 뒤 남해에서 죽었다.
▼ 10분쯤 더 걸었을까 나지막한 산봉우리 하나를 앞에 두고 산길이 오른편으로 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봉우리로도 길이 나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희미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길을 놓쳐서는 안 된다. 명산봉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 오솔길로 들어서서 2분쯤 더 오르면 명산봉 정상이다. 정상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 등 이곳이 정상이라는 시설물은 아예 없다. 그저 ‘서래야 박건석’ 선생이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 코팅(coating)지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그마저 없었더라면 이곳이 명산봉 정상인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는 반대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했는데 이곳을 지나가면서 붙여 놓았던 모양이다.
▼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경사가 거의 없는 완만한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진다. 그렇게 20여분을 진행하면 여러 문중(門中)들의 묘역(墓域)을 만나고, 이어서 ‘잔댕(盞堂)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잔땡이고개’라고도 불리는데 먼 곳을 가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술 한 잔을 마시면서 쉬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또한 임금과 궁녀들이 이 고개에서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도로에 이르면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30m쯤 떨어진 고갯마루에서 오른편으로 들어가야 임진왜란 때 쌓았다는 임진성(壬辰城)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 임진성으로 들어가는 길 오른편에 가지런히 정비된 묘역(墓域)이 보인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오는 길에도 저런 묘역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까 산행을 시작할 때 들머리에서 보았던 이정표의 ‘평장 묘원’이라는 문구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평장(平葬), 즉 평토(平土)에 쓴 묘지를 이르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정부에서 권장하고 있는 평장의 시범지역이고 말이다.
▼ 잠시 후 임진성(壬辰城 : 경상남도 기념물 제20호)에 이른다. 임진년인 1592년에 축성했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막기 위해 군·관·민이 힘을 합쳐 쌓았기에 ‘민보산성(民堡山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나선 단결의 정신이 면면히 살아 있는 산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본군과의 직접적인 전투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옛날 이곳 덕월리 앞에 ‘옥포’라는 작은 포구(浦口)가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을 무찔러 대승을 거두었던 거제도의 옥포와 같은 이름이다. 그런데 패배한 일본군이 옥포로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인근에 퍼졌던 모양이다. 그러자 이곳으로 쳐들어오는 줄로만 알고 서둘러 축성(築城)을 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임진성은 자연석과 마석을 이용하여 타원형으로 축성되었다. 높이 2∼6m에 둘레가 280m쯤 되는 작은 산성(山城)이다. 석축을 쌓고 둘레에 토루(土壘)로 통로를 만들었으며, 산성 축성법(築城法)을 이용하여 사람 머리보다 약간 큰 돌로 타원형으로 쌓았다. 또한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축조하였는데 내성은 주위 300m의 석축성(石築城)이고, 외성은 토성(土城)으로 흔적만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 성의 안으로 들어선다. 온전치 못한 깃발 몇 개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을 뿐이다. 텅 비어있다는 얘기이다. 옛날에는 성루(城樓)와 훈병사(訓兵舍), 감시사(監示舍), 망대(望臺), 탑대(塔臺), 서당(書堂) 등이 있었다는 데도 말이다. 지금은 그저 동서 두 곳으로 나 있는 성문지(城門址) 가운데 동문지(東門址)만이 남아 있고 우물터도 한 군데만 남아 있을 뿐이란다.
▼ 임진성(壬辰城)에 오르면 또 다시 앵강만(鸚江灣)이 내다보인다. 김만중(金萬重)선생이 유배 왔다가 홀로 죽어간 그 바다 말이다. 서포(西浦)가 남해에 내려왔다는 기록은 있어도 노도(櫓島)가 유배지였다는 기록은 없다. 대신 노도 주민 사이에 ‘노자묵고할배’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노도에 들어오더니 온종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 노도 주민이 ‘놀고먹는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노자묵고할배’라 부르곤 했는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위리안치(圍籬安置) 형(刑)을 받아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서포라는 주장이다. 지금 노도에는 서포의 허묘(虛墓)와 서포가 마셨다는 샘터가 남아 있다. 서포는 남해에 내려와 수십 수의 시편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사친시’는 지금 읽어도 목이 멘다.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리워 글을 쓰자 하나/글을 쓰기도 전에 눈물이 가득하구나/몇 번이나 붓을 적셨다가 다시 던졌던가/문집 중에서 남쪽 바다에서 쓴 시는 응당 빼버려야 하겠구나’ 조선 3대 문장가로까지 추앙받던 서포가 남해에서 쓴 시를 버리려 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 건너편에는 천황산(天皇山)이 선명하다. 천황산은 덕월마을의 주산이다. 그래선지 오늘 오른 귀비산(貴妃山)이나 고실곡, 잔댕(盞堂)고개, 공신(功臣)들, 군창(軍倉) 등 주변의 모든 지명들이 모두 천황산을 중심으로 붙여져 있다. 옥녀탄금(玉女彈琴)의 지형을 풀이하면 천황(天皇)의 무릎 앞에 신녀(神女)가 엎드려 있고, 왼쪽에는 귀비(貴妃)가 앉아 있으며, 곁에는 옥녀(玉女)가 앉아서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라 한다. 또 황제의 왼쪽 앞에는 술잔을 놓은 잔당(盞堂)이 있으며, 오른쪽 앞에는 공신(功臣)들이 부복(俯伏)하고 있고, 그 가까운 곳에는 군대의 창고인 군창(軍倉)이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 덕월마을도 한눈에 잘 들어온다. 옛날 옥포(玉浦)가 있었던 마을 앞바다에는 작은 섬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목도’라 불리는 섬일 것이다.
▼ 뒷문으로 빠져 나와 잠시 걸으면 기왕산의 정상이다. 넓게 터를 잡은 묘(墓)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이곳 역시 텅 비어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 등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일절 없다는 얘기이다. 하긴 높이가 105m에 불과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늘 반대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한 ‘서래야 박건석’ 선생께서 정상표시 코팅(coating)지를 매달아 놓으셨다. 함께 걷고 있던 일행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계신다. 박선생님의 봉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참고로 이곳 기왕산은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예전의 문헌에는 성당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최근에 완성된 5만 분의 1 지도에는 기옥산이라 적혀 있다. ‘한반도 바래길’의 안내판에도 기옥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참조한다.
▼ 하산 길은 기분이 썩 좋아지는 코스이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타나는가 하면, 남해안의 특징이랄 수 있는 동백나무 숲도 지난다. 힐링(healing)과 눈요기로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셈이다.
▼ 산행날머리는 덕월마을(남면 덕월리)
잠시 후 저만큼 아래에 덕월마을이 나타나고 곧이어 ‘힐튼남해 C.C’의 소유로 보이는 주차장(이정표 : 임진성 0.8Km)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누군가는 남해 하면 먼저 봄부터 떠올린다고 했다. 언제 가더라도 어김없이 시퍼런 기운이 감돈다면서 말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마을 앞 마늘밭은 벌써부터 푸른빛이 감돈다. 그 푸른 빛 너머에 남쪽바다 남해(南海)가 있다. 그리고 그 바다는 쪽빛 바다 남해(藍海)가 되어 일렁인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30분이 걸렸다. 오롯이 걷는데 걸린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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