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치산(王峙山, 902m)-월루산(月樓山, 758.6m).
여행일 : ‘16. 9. 22(목)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과 여량면의 경계
산행코스 : 반천2리 경로당→질등봉(537m)→큰등봉(820m)→왕치산→월루산(758.6m)→월루마을→월루산(715m)→반천리마을회관(산행시간 : 4시간10분)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오지(奧地) 중의 오지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마땅한 단어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산이다. 정상석이나 이정표는 물론 없다. 하지만 등산로는 분명이 나있다. 다만 찾기가 힘들 따름이다. 찾는 사람들이 하도 적은 탓에 잡목(雜木)들이 선답(先踏)한 산꾼들이 어렵게 내놓은 산길은 잠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두 산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그것도 바위다운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전체가 다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흙산의 일반적인 특징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첫째 눈에 담아둘 만한 볼거리가 일절 없다. 그런 눈요깃거리들을 만들어 낼 재료인 바위들이 일절 없기 때문이다. 조망(眺望) 또한 일절 터지지 않는다. 중간에 만나게 되는 두어 곳의 간벌지(間伐地)에서나 잠깐씩 열릴 따름이다. 그것도 겨우 손바닥만큼이나 적게 말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들을 다 올라볼 요량이 아닌 사람이라면 일부러 찾아올 필요는 없는 산이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산행 내내 황금색으로 빛나는 소나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짙은 솔향을 코 끝에 걸치고 걷는 즐거움은 실지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복일 것이다.
▼ 반천2리 경로당(敬老堂 : 정선군 임계면 반천리)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내려와 59번 국도를 타고 정선방면으로 내려오다 나전삼거리(정선군 북평면 북평리)에서 좌회전하여 42번 국도(동해방면)로 옮기면 잠시 후 여량면 소재지인 여량리에 이르게 된다. 이어서 아우라지성당(여량리)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군도(郡道 : 봉정로)를 따라 들어가면 오래지 않아 반천2리 경로당(버스 정류장에는 어전리로 표기되어 있으니 참조한다)에 이르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참고로 들어오는 길에 보이는 하천은 골지천이다. 정선아리랑으로 유명한 하천이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쯤 눈여겨 볼 일이다.
▼ 경로당의 뒷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골목의 맨 끝에 있는 민가(民家)의 오른편에 있는 밭을 가로질러 산자락으로 들어붙는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다. 애초부터 이 산자락에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잘못 들어선 대가는 혹독했다. 비탈진 사면(斜面)을 올라가는 것만도 부담스러운데, 거기다 능선을 가득 메운 잡목들까지 갈 길 바쁜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자꾸만 붙잡아 놓기 때문이다.
▼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런 오르막 구간이 무척 짧다는 것이다. 길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6분 정도를 오르다보면 능선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능선에 올라섰다고 해서 금방 길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흔적을 겨우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산길이 변해있을 따름이다. 아무튼 험난한 산행이 계속된다.
▼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커다란 바위가 길을 가로막는다. 산길은 바위를 피해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킨다. 그러다보니 비탈진 사면을 오르내리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나뭇가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간이다.
▼ 길은 여전히 사납다. 오르내림이 힘들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능선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잡목(雜木)들을 헤치고 나가기가 힘들다는 얘기이다. 길의 흔적을 찾기가 힘든 것은 물론이다.
▼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여름 내내 흐르는 땀 때문에 고생했었는데 무슨 일인지 몰라도 오늘은 괜찮다. 경사가 완만하다보니 힘이 덜 들었나 보다. 아니 그보다는 가을색이 완연한 바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마를 스쳐가는 바람결에 서늘한 기운이 완연하기 때문이다. 그래 우린 이미 가을로 들어섰음이 분명하다. 그 증거가 바로 능선에 가득하게 피어난 야생화(野生花)들일 것이고 말이다.
▼ 능선에는 구절초(九節草)가 만발해 있다. 그리고 이련 풍경은 산행을 마칠 때까지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된다. 가을의 전령사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꽃이니 가을이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나 보다. 구절초는 구일초(九日草), 선모초(仙母草), 들국화 등으로도 불리는데, 민간에서는 꽃이 달린 풀 전체를 약재(藥材)로 쓴다. 치풍과 부인병, 위장병에 좋단다. 언젠가 도예(陶藝)를 하는 지인이 ‘구절초 차(茶)’를 보내준 일이 있었다. 산골에 머물며 작업을 하는 틈틈이 채취했다며 보내주었는데 그 향이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면 차의 재료로도 사랑을 받고 있나 보다.
▼ 희미한 흔적을 찾아가며 진행하길 15분 만에 말끔하게 벌초(伐草)를 끝낸 묘역(墓域)을 만나고, 곧이어 산길은 작은 안부로 내려선다. 좌우로 제법 또렷한 길이 나있는 걸 보면 들머리인 ‘반천2리 경로당’으로 오기 전. 어느 지점에서 이곳으로 올라오는 길이 있었던 모양이다.
▼ 안부를 지난 산길은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하지만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로 밋밋한 경사(傾斜)이다. 거기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이런 길에서는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속도를 떨어뜨린 채로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걸어볼 일이다. 코끝을 맴돌던 솔향이 온몸으로 펴져나갈 것이다. 이어서 심신은 한없이 맑아질 것이고 말이다. 그게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의 영향이다. 피톤치드의 효능 중에는 몸으로 스며드는 각종 병균의 살균기능 외에도 심폐기능을 강화시키는 효능도 있기 때문이다.
▼ 솔향에 취한 채로 6분쯤 오르면 질등봉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은 두루뭉술한 게 구릉(丘陵)의 형태를 띠고 있다. ‘질펀하다’는 말이 있다. ‘땅이 넓고 평평하게 펼쳐져 있다.’는 뜻인데,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정상의 생김새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주민들이 이 봉우리를 ‘질등봉’이라고 부르는 연유가 될 수도 있겠다.
▼ 정상은 텅 비어 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긴 완전무결하게 버려진 이런 산에서 그런 시설물들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각점(405재설/77.6건설부)은 설치되어 있다. 옆에다 삼각점의 ‘관리표찰’까지 세워놓았다. 하지만 위치나 관리번호 등 삼각점의 관리를 위한 제반 사항은 텅 빈 채로이다. 무늬만 삼각점인 셈이다.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는 게 ‘서래야 박건석’ 선생께서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 코팅(coating)지’이다. 오늘 산행을 함께 하고 있는데, 나보다 한발 앞서 가고 계신 모양이다.
▼ 질등봉을 지나면서 산길을 제법 가팔라진다. 하지만 부담스럽지는 않다. 가파른 산길의 일반적인 특징인 갈지(之)자를 만들지 않고서도, 곧게 산길이 나있을 정도라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하긴 300m 정도의 높이를 50분 동안에 오르면 되니 서둘러가며 고도(高度)를 높여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 그렇게 16분쯤 걸었을까 ‘파평 윤씨’ 묘역(墓域)이 나타난다. 모처럼 조망이 트이는 곳이다. 능선을 깔끔하게 간벌(間伐)을 해놓은 덕분이다. 아무튼 높고 낮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 있는 것이 강원도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론산과 고양산, 문래산, 각희산 등일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 산길은 계속해서 꾸준한 오름세를 유지한다. 주변 풍경도 변함이 없다. 심심찮게 참나무들이 섞여 있을 뿐 온통 소나무들 천지인 것도 같다. 이런 풍경은 20분 이상 계속된다.
▼ 변화를 주어가던 산길이 언제부턴가 확연히 변해있다. 잘생긴 외모를 자랑하던 소나무들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에 참나무들이 대신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주위를 살피기 시작한다. 버섯이 자라기 좋은 여건이라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다.
▼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는 야생버섯들이 널려 있다. 대부분이 못 먹는 버섯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가을철 별미(別味)인 싸리버섯이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눈에 띄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집사람은 꽤나 많은 양의 싸리버섯을 채취할 수 있었다. 약간의 영지버섯도 땄음은 물론이다.
▼ 그렇게 40분쯤 진행하면 펑퍼짐한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물론 질등봉에서부터 걸린 시간이다. 이곳에 산악회의 리본 몇 개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곁에다 ‘큰등봉’이라고 쓴 종이를 내걸어 놓았다. 하지만 ‘박건석’선생의 코팅지는 보이지 않는다. 진위(眞僞)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뒤따라오는 일행이 고도계(高度計)를 갖고 있기에 물어보니 잘못된 표시란다. 그렇다. 이곳이 큰등봉이었다면 ‘박건석’선생이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 이번에는 일본이깔나무(낙엽송) 숲이다. 한때 조림용(造林用)으로 각광을 받던 나무인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오른 것이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다. 외모만 갖고 본다면 소나무들보다도 오히려 한수 위라고 할 수도 있겠다.
▼ 이어서 잠시 후에는 또 다른 봉우리에 올라선다. 첨부된 지도에 ‘큰등’으로 표기된 지점인데 인근 주민들은 ‘큰 질등봉’이라고 부른단다. 펑퍼짐한 것이 ‘질등봉’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 이곳도 역시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삼각점까지도 설치해 놓지 않았다. 완전무결하게 텅 비어있는 셈이다. 이번에도 역시 ‘박건석’선생의 정상표시 코팅지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다.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십중팔구 이곳이 정상인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 이후부터 산길은 거의 경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밋밋하게 이어진다. 큰질등봉과 왕치산의 높이가 40m 남짓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길도 많이 또렷해졌다. 모처럼 여유롭게 걸어볼 수 있는 코스이다. 하지만 볼거리는 없다. 조망 또한 트이지 않는다. 그저 쭉쭉 뻗어 오른 낙엽송을 눈에 담거나, 아니며 혹시라도 만날지도 모르는 싸리버섯이라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 그렇게 5분쯤 걸으면 송전탑(送電塔)을 만난다. 그리고 곧이어 임도(林道)로 내려선다.
▼ 임도를 만났다싶으면, 곧이어 둘로 나뉘어 버린다. 왼편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몇 걸음 걷지 않아 오른편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들머리에 산악회의 리본이 매달려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능선을 탄다고 생각하고 들어설 수밖에 없다.
▼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주변이 온통 넝쿨들로 뒤덮여 있어 길을 찾기가 힘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불평할 필요는 없다. 가을철 산행의 별미인 ‘다래’를 제법 쏠쏠하게 매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은 월루산 정상 근처에서도 만나게 된다. 시간에 쫒기지만 않는다면 발걸음을 멈추고 그 별미를 즐겨볼 일이다. 새콤달콤한 게 여간 맛있는 게 아니다.
▼ 산자락으로 들어선지 5분이면 왕치산 정상이다. 정상은 꽤나 너른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고 헬기장은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벌목(伐木)을 해놓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왕치산의 원래 이름은 왕지산(王旨山)이었다고 한다. 정선읍 봉정리에 왕의 교지(敎旨)를 받은 사람이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 산이 어찌어찌 하다 보니 왕치산(王峙山)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 이곳도 역시 텅 비어있다. 펑퍼짐한 모양새도 앞서 올랐던 두 봉우리와 같다. 그나마 이곳은 ‘서울마운틴’에서 정상표시 ‘아크릴판’을 매달아 놓았다. 오지산행을 전문으로 하는 산악회인데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들이 없었더라면 자칫 정상인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겠기에 하는 말이다. 박건석선생이 매달아 놓은 ‘코팅지’도 보인다. 이곳도 역시 우리보다 먼저 지나가셨던 모양이다. 잡목에 둘러싸인 정상은 조망(眺望)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글에서는 에워싼 나무 틈새로 북으로 노추산과 사달산, 노목산이 그리고 남쪽으로는 반륜산과 반논산. 고양산, 문래산 등이 보인다고 했는데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찾아온 시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하산은 남서쪽 월루마을 방향이다. 잡목들로 둘러싸여 있어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으나 잘 살펴보면 터널(tunnel)처럼 생긴 오솔길이 나타난다. 이어서 제법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5분 조금 넘게 내려오면 임도를 만난다. 누군가가 ‘월루재’라고 적었던 지점인 모양이다.
▼ 잘 자란 소나무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임도를 따라 걷는다. 그리고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추어간다. 차량이 다녀도 좋을 만큼 널따란데다가 포장까지 깔끔하게 되어 있는 편안한 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려오는 길에 지나가는 차량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임도를 따르던 집사람의 손길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길가에 보이는 민들레의 잎이 연하다는 것이다. 그런 질 좋은 먹거리를 살림꾼인 집사람이 놓쳤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 민들레는 이틀 동안이나 우리 집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임도를 따라 걷기를 10분,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지가 오른편 산자락을 향하고 있다. 아무런 표시도 없기에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산악회의 리본도 눈에 띄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저 마땅한 곳을 찾아 오른편 능선으로 치고 오르는 수밖에 없다.
▼ 능선에 오르자마자 길이 거칠어진다. ‘이런 十팔’이 절로 튀어나오게 되는 길이다. 이럴 수도 그렇다고 저럴 수도 없는 게 너무 화가 나기 때문이다. 바닥은 온통 베어놓은 나무 등걸들 천지, 주의하지 않으면 등걸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위를 내버려둘 처지도 못된다. 자칫 한눈이라도 팔라치면 잡목들이 싸대기를 두드려 패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산행이 계속된다. 아까 산행들머리에서 고생했던 것도 지금에는 비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이 부근에서 가끔 조망이 트이기 때문이다. 그다지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지만 하도 조망이 귀한 산이기에 이 마저도 감사하게 눈에 담는다. 아무튼 월루마을이 자리 잡은 널따란 분지(盆地)가 한눈에 잘 내려다보인다.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를 향해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잘 생겼다. 미인송(美人松)인 모양이다. 팔등신처럼 잘 빠졌다는 그 미인송 말이다. 참고로 미인송은 금강송(金剛松)의 다른 이름이다. ‘금강산 소나무’를 줄인 말인데, 소나무를 자세히 보면 그 껍질이 황갈색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은 ‘황장목(黃腸木)’, 그 외에도 봉화에서 나는 소나무 목재가 춘양역으로 집결했다가 전국으로 팔려나갔다고 해서 춘양목(春陽木)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들이 황금색으로 빛나면서 아름다운 자태들을 한껏 뽐내고 있다.
▼ 앞서가던 집사람이 엎드리는 것이 보인다. 뭔가 또 다른 ‘먹거리’를 발견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이 온통 잣나무 천지다. 커다란 잣나무 열매가 바닥에 널려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집사람은 심심찮게 식혜를 만든다. 유난히도 술을 좋아하는 내 ‘속풀이’ 용도이다. 그 식혜에 동동 띄울 것으로 잣 만한 것이 없으니 살림꾼인 집사람이 놓쳤을 리가 없다.
▼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해가며 이어진다. 그리고 수많은 봉우리들을 올라서게 만든다. 혹시 이게 ‘월루산’이 아닐까 하는 오해를 자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지루한 구간이다. 화부터 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거친 산길에서 그런 느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35분을 진행하면 송전탑을 만난다.
▼ 송전탑을 지나서도 작은 오르내림은 계속된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더 고생시키고 나서야 드디어 월루산 정상에 올라선다. 첨부된 지도에 ‘월루봉(768.6m)’으로 표기된 지점인데, 펑퍼짐한 서너 평 남짓의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도 역시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내력을 알 수 없는 삼각점 하나만이 외로울 따름이다.
▼ 박건석선생이 방금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 코팅지’가 보인다. 우린 그 코팅지를 넣어 인증사진을 찍는다. 그를 앞지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결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런 인증사진은 결코 찍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거친 산길은 월루산을 지나서도 계속된다. 짜증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분에 얽매이기 보다는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그 중의 하나가 ‘다래’이다. 새콤달콤한 다래가 이 구간에 지천으로 널려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야 그저 따먹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일행 중 한명은 비닐봉지로 하나를 가득 채웠을 정도였다.
▼ 바위구간도 보인다. 왼편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졌는데 서슬이 시퍼렇다거나 거대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규모는 갖추었다.
▼ 15분 조금 못되었을까 산길이 능선을 벗어난다. 왼쪽 방향이다. 그리고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가파름만 해도 버거운데 잡목까지 진로를 방해하는 만만찮은 내리막길이다.
▼ 그렇게 15분쯤 내려서면 ‘월루마을;에 내려서게 된다. 월루마을은 달과 같이 둥그렇게 생긴 지형의 분지(盆地) 속에 들어앉은 자그만 산골마을이다. 달빛이라도 비추일 때의 마을이 마치 빛나는 누각과 같다 하여 월루(月樓)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마을을 통과한다. 과수원을 통과하는가 하면 축사(畜舍)의 옆으로 지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금(禁)줄이나 망(網)을 넘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주민들에게 피해가 되는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는 얘기이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피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 축사를 지났다싶으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편은 반천리로 나가는 길, 산길은 오른편 포장 임도를 따른다. 그리고 100m쯤 지난 후에는 왼편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들머리에 아무런 표시도 없기 때문에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럴 때는 눈치가 필요하다. 그저 왼편에 보이는 산의 능선을 향해 치고 오른다고 생각하고 들어서면 되지 않을까 싶다.
▼ 또 다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막상 산자락에 들어서고 나면 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부터 길은 없었다. 아무튼 무작정 치고 오를 수밖에 없는 구간이다. 그것도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말이다.
▼ 그렇게 20분 가까이 오르면 능선을 만나게 되고, 잠시 후에는 금(禁)줄이 처져있는 곳에 이른다. ‘통제구역’이라는 팻말까지 매달아 놓은 것을 보면 귀한 약초라도 재배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무시해버린다. ‘약초만 캐지 않으면 되겠지’하는 자위(自慰)로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다. 금줄을 넘지 않고서는 진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금줄을 넘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면 5분 후에는 또 다른 월루산의 정상에 올라선다. 첨부된 지도에는 높이가 768.6m로 표시되어 있으나 이는 715m를 잘못 기재한 것이다. 이곳도 역시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는 없다. 대신에 서울마운틴에서 정상표지판을 걸어 놓았다. ‘서래야 박건석’선생께서 방금 전 걸어 놓은 코팅지도 보인다. 그런데 봉우리의 이름을 ‘반천봉’이라 적었다. 아마 요 아래에 있는 동네의 이름에서 따온 모양이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둘 모두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능선상의 최고봉이자 ‘월루산’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갖고 있는 봉우리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봉우리에다 ‘월루산’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놓은 ‘서울마운틴’에는 애초부터 동의할 생각이 없다. 그게 만일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건석선생의 작품에 동의할 생각도 없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새로운 이름을 지었을 경우 이를 본 다른 이들이 자칫 혼동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마지막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왔던 곳의 반대방향이다. 하산 길 초반은 금줄을 따른다. 희미하게나마 길의 흔적은 나타난다. 하지만 얼마 후에는 그마저도 없어져 버린다. 그리고 없는 길을 억지로 내가면서 진행하게 된다. 거기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파르기까지 하니 한걸음 내려서기조차 버겁다. 한마디로 악전고투의 산행이 이어진다.
▼ 그렇게 20분 가까이를 내려서면 드디어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포장이 되어 있는 탓에 멋스러움은 약간 떨어지지만 구절초가 반갑게 맞는 예쁜 길이다. 거기다 경사까지 완만하니 걷는 게 부담스럽지도 않다. 아니 즐겁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이런 곳에서는 콧노래라도 흥얼거려야 마땅하겠지만 음치(音癡)인 난 그저 묵묵히 걸어갈 따름이다.
▼ 산행날머리는 반천리 마을회관
임도를 따라 10분 조금 넘게 내려오면 저만큼에 반천리 마을이 나타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아침에 지나갔던 도로가에 마을회관은 물론 보건진료소까지 지어져 있다. 반천리가 제법 규모를 갖춘 마을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1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이 채 10분이 넘지 않았으니 오롯이 걷는데 걸린 시간이라고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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