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족산(鼎足山, 869.1m)
여행일 : ‘17. 2. 7(화)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서면
산행코스 : 해담마을→다리→교통호→임도→정족산→임도→버들계곡→내현리 버들골→양지말 버스정류장(산행시간 : 4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갤러리산악회
특징 : 정족산(鼎足山)은 그 생김새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높게 솟아난 세 개의 봉우리가 마치 솥발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런 생김새의 산은 이곳 양양 외에도 전국에 몇 곳이 더 있다. 그중 울산광역시 울주군과 경상남도 양산시의 경계에 있는 바위로 이루어진 정족산(749m)이 가장 유명하고, 인천광역시 강화군에도 정족산(220m)이 있다. 그리고 가장 덜 알려졌지만 경북 경주시에도 정족산(700m)이 하나 더 있다. 그나저나 정족산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산행 내내 바위다운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이 산은 여느 흙산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난 흙길이 보드라워 걷기에는 편하지만 눈에 담을 만한 볼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조망 또한 정상과 하산 길에 만나게 되는 벌목지역(伐木地域)를 제외하고는 거의 트이지 않는다. 이곳 정족산이 그동안 오지(奧地) 중의 오지로 남아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오지란 말은 이젠 옛말이 됐다. 양양군에서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조금만 가파르다 싶으면 계단과 안전로프를 설치하고, 곳곳에다 이정표와 산행안내도 등을 세워 일반인들도 마음 놓고 산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 찾을만한 산은 아닌 것 같다.
▼ 산행들머리는 해담마을(양양군 서면 서림리 128)
작년 말(2016.11. 24)에 개통된 동해고속도로 양양 I.C에서 내려와 56번 국도를 타고 구룡령(홍천) 방면으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담마을에 이르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에 종합 레저타운인 ‘해담마을’을 알리는 광고탑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 넓고 깨끗한 하천과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인 해담마을은 자연자원을 잘 활용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레저체험을 접목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넒은 계곡에서 물길과 숲길을 가리지 않고 질주하는 ‘수륙양용차 타기’와 하천의 물길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뗏목·카약 타기’ 등 수상레포츠와 활쏘기, 서바이벌 게임 등의 체험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참고로 이곳 해담마을은 지난 2007년 강원도의 ‘새농어촌 건설운동 우수마을’에 선정된 이래, 정보화마을(2007년), 전통테마마을(2008년), 산촌생태마을(2008년),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2011년) 등에 잇따라 선정되면서 매년 수많은 체험객들이 찾아오고, 7억 원이 넘은 마을소득을 올리는 국내의 대표적인 농촌체험마을이라고 한다.
▼ 하지만 우리 같은 산사람들에겐 예외이다. 레저가 아니라 이곳이 정족산 탐방로(9.62km)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이 탐방로는 자연 그대로의 숲속을 거닐도록 나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곳곳에서 울창한 소나무 숲을 만나게 되어 산행과 산림욕을 겸하기에 안성맞춤이란다. 아무튼 마을 앞에 ‘정족산 탐방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족산,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정족산의 유래를 적어놓고, 그 아래에다 들머리인 이곳 해담마을에서 날머리인 버들골(내현리)까지의 탐방로를 그려 넣었다. 거리는 9.62Km 정도가 된단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38선 숨길’의 코스도 소개하고 있다. 38선 휴게소를 출발해서 잔교리와 대치리, 명지리, 남천학생체험장, 서림리를 거쳐 영덕리까지 이어지는데 총 길이는 38Km가 된단다. 이름에 맞게 거리를 디자인한 모양이다.
▼ ‘후천(後川, 이 일대를 서림계곡이라 부르니 참조한다)’을 가로지르는 예쁘장한 인도교(人道敎)를 건너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양양군에서 추진한 ‘산소길 강원 300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정족산과 벽실계곡(벽실골)을 연결하기 위해 넓이 3.5m에 길이 74m의 크기로 만들었는데 예산이 8억 원이나 들어갔단다. 당연히 예쁘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이 다리는 ‘김영철 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해담마을을 이 정도로 성장시키다가 지난 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이 마을 이장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서란다.
▼ 벽실골을 오른편에 끼고 난 임도를 따라 2~3분 정도 들어가면 왼편 산자락으로 파고드는 오솔길이 나타난다. 방향표시만 있는 이정표(정족산 정상←/ 서림리 정족산 입구↓)와 ‘탐방로 안내도’, 그리고 거리표시만 있는 또 다른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아까 마을에서 보았던 ‘탐방로 안내판’과 비슷한 안내판이 이곳에도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지도는 조금 다르게 그려 넣었다. 해담마을에서 버들골까지 이어지는 탐방로는 같으나 조금 더 세밀하게 구간을 끊은 후에 각 구간마다의 거리를 표기해 놓았다.
▼ 눈에 익지 않은 이정표(정족산 정상 4.84Km/ 서림리 9Km)가 나무기둥에 묶여있다. 보통의 이정표들은 방향과 거리를 함께 표기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곳 정족산은 그것을 둘로 나누었다. 이런 이정표는 매 100m마다 나타난다. 너무 자주 붙여 놓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얼마만큼 진행했는지를 수시로 체크할 수 있어 산행을 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 산자락으로 들어서서 사면을 치고 오른다. 경사가 제법 가파르지만 통나무계단이 놓여있어 별 어려움 없이 능선 위로 올라설 수 있다.
▼ 일단 능선에 올라섰다 싶으면 이후부터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연결된다. 산길은 생각보다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조금만 가파르다 싶으면 어김없이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었고,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었던지 밧줄난간까지 매어 놓았다. 조금이라도 힘들다싶으면 의지해서 오르라는 배려일 것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25분 만에 첫 번째 산봉우리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참호(塹壕)가 파여 있다. 가운데에는 평상을 놓고 그 옆에다 ‘탐방로안내도’를 세웠다. 이로 보아 ‘38선 숨길’을 개설하면서 복원해 놓은 모양이다.
▼ 교통호를 이용해 몇 걸음 더 내려가면 또 다른 참호가 나타난다. 그 가운데에는 ‘6.25, 그때의 흔적인 교통호’라는 설명판을 세워놓았다. 국군 10연대 제1대대가 경계를 서던 지역이었는데, 당시 북한군 제1경비단 제2보병대대가 서림의 제9중대 전면을 돌파해 산간계곡을 따라 구룡령으로 급진하였단다. 그 아래에 북한군을 막던 당시의 상황들을 나열해 놓았으나 하나 같이 패퇴된 기록뿐이라 옮겨 적는 것은 생략하겠다. 그러나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던 우리 아버지와 삼촌들의 역사이니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 이후부터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가파른 구간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다만 그 거리가 짧은데다 경사까지도 버거울 정도가 아니기에 그런 표현을 써봤다. 다시 말해 큰 어려움이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구간이라는 얘기이다.
▼ 그렇게 17분 정도를 진행하면 송신탑(送信塔)을 만난다. 산길은 이 시설을 오른편으로 우회하여 임도(이정표 : 정족산 정상↓ 3.64Km/ 서림리→ 1.2Km)로 연결된다. 그리고 비록 잠시지만 오른쪽 방향의 임도를 따른다.
▼ 2분 정도 걸었을까 왼쪽 사면(斜面)으로 목제계단(이정표 : 정족산 정상←/ 서림리↓)이 놓여있다. 계단을 오르면 산길은 사면(斜面)을 옆으로 째면서 능선으로 오른다. 그리고 아까 송신탑이 있던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까지 가게 된다. 임도를 내면서 부득이하게 만들어진 절개지(切開地)를 피하려다보니 이렇게 한참을 돌게 만든 모양이다.
▼ 잠시 후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에는 이정표(정족산→/ 서림리↓)가 세워져 있다. 아까 들머리에서 거론했듯이 방향만 표기된 이정표이다. 이런 이정표들은 산길이 방향을 크게 트는 곳에는 어김없이 세워져 있다. 이런데도 길을 잃은 사람이 있을까?
▼ ‘둘레길’ 특유의 리본(ribbon)도 보인다. 노란색과 파랑색의 두 가지 색으로 만들었는데 시야(視野)를 벗어나지 않게끔 촘촘히도 매달아 놓았다. 100m마다 나타나는 거리표시 이정표에다 이런 리본들까지 갖추었으니 산행 초심자들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 산길은 또 다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많이 가팔라졌다. 그러나 힘들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심심찮게 나타나는 울창한 소나무 숲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피로회복 기능까지 함유하고 있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라니까 말이다.
▼ 아까 들머리에서도 얘기했듯이 오늘 걷고 있는 이 코스는 ‘38선 숨길’의 일부구간이다. 산림과 경관이 수려한 숲길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한 ‘양양판 둘레길’로 보면 되겠다. 이 길은 1945년 미·소의 포츠담 선언이후 군(郡)이 남북으로 분할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현북면 잔교리와 서면 서림리를 연결하는 38km구간을 복원해 의미를 되새기는 한편, 녹색관광 기반 마련을 위해 추진됐다고 한다. 또한 38선 길은 한국전쟁당시인 1950년 10월 1일, 국군 제3사단 23연대가 현북면 잔교리 38선을 넘어 최초로 북진을 시작한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단다. 현재 38선 휴게소를 비롯해 현북면 대치리와 명지리, 서면 영덕리 등에 38선 관련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으니 참조한다.
▼ 20분 남짓 더 걸었을까 오른편으로 조망(眺望)이 열린다. 송전탑(送電塔)을 세우느라 주변 나무들을 제거한 덕분일 것이다. 힘차게 꿈틀대고 있는 저 산릉(山陵)은 응복산에서 조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일 것이다.
▼ 언제부턴가 산길 주변은 산죽(山竹) 군락으로 변해있다. 무릎 아래로 깔릴 정도로 낮게 자랐지만 푸름만은 오히려 더 짙은 것 같다. ‘작은 것이 매운 것이여~’라던 어느 CF 광고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 얼마쯤 진행했을까 쉼터가 나온다. 조망터에서 15분쯤 떨어진 지점일 것이다. 자른 통나무를 세워놓은 의자가 눈길을 끈다.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런 쉼터는 서너 번 만났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곳들과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쉼터이다. 쉼터를 지나자마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엄청나게 길기까지 하다. 거리표시만 있는 이정표를 세 개나 만나고야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었으니 가파른 오르막길을 400m 가까이나 오른 셈이 되었다. 그러니 이 쉼터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기 전에 잠시 쉬면서 체력을 비축해보라는 배려용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쉼터는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도 만들어져 있다. 잠시 쉬면서 거칠어진 숨결을 고르라는 모양이다.
▼ 겨울 산행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눈밭을 헤지며 나가다 보니 힘이 배나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예술가가 과연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자연만이 가능하다 할 것이다.
▼ ‘위험, 미개설 구간’이라고 적힌 경고판도 보인다. 규모를 갖춘 능선이 갈리는 지점 마다 세워놓았는데, 만일 이정표가 없었더라면 자칫 길이 헷갈릴 수도 있겠다.
▼ 이후부터 산길은 또 다시 잦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골이 많이 깊어졌다. 고도가 높아졌는지 눈이 쌓여 있는 곳도 많이 늘어났다. 그만큼 산행이 힘들어졌다는 얘기이다.
▼ 산길은 30분이 지난 후 또 다른 쉼터를 만나게 한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가파른 오르막길이 길손을 맞는다. 그런데 이번의 것은 아까보다도 더 험난하다. 눈까지 수북하게 쌓여있기 때문이다. 허리춤에까지 차오르는 눈밭을 헤치며 나간다는 게 만만찮기 때문이다. 밧줄이 매어져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그것마저도 없었더라면 사투(死鬪)를 치룰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 눈요깃거리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시야(視野)가 열리는 오른편에서는 조봉으로 연결되는 산릉이 힘차게 꿈틀거리고, 왼편 나뭇가지 사이로는 설악산의 대청봉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 긴 오르막이 끝났는데 정족산의 정상은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제 한 굽이만 오르면 되겠지’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능선의 오르내림이 자주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지루함에 넌더리를 칠 즈음에야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35분 만이다. 정상에는 널따랗게 데크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전망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명을 적어 넣은 ‘전망사진’을 게시해 놓았다. ‘38선 숨길 안내도’도 보인다. 자기가 내려 가야할 코스를 살펴본 후에 하산을 시작하라는 모양이다. 또한 통나무 의자 몇 개를 놓아 쉼터의 기능도 겸하도록 했다.
▼ 하지만 정상표지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38선 숨길’을 조성하면서 매달아 놓은 이정표(정족산 정상, 서림 4.84Km/ 내현 4.78Km)를 보고 이곳이 정족산의 정상이려니 할 따름이다. 참고로 정족산은 산이 생긴 모양새로부터 생겨난 이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 이를 증명한다 할 수 있다. <정족산(鼎足山)은 부 서남쪽 40리에 있다. 세 봉우리가 높게 솟아나서 모양이 솥발 같으므로 이름한 것이다. 도적사(道寂寺)가 있다.>고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지도서’와 ‘양양부읍지’에는 <오대산에서부터 뻗어 내려와 도적사의 주맥(主脈)이 되었다. 관문에서 서남쪽 4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양양군읍지’에는 남쪽 45리로 기록되어 읍지마다 위치 표현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아무튼 조선 시대의 여러 문헌에 산 지명이 수록되어 있는 걸로 보아 산의 유래가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등산로에 설치된 ‘탐방로 안내판’에서 발췌)
▼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난 편이다. 시야가 절반만 뚫린 탓에 온전하지는 못하지만 보고 싶은 풍경들은 모두 다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면에 펼쳐지는 끝없이 너른 동해바다는 비취색으로 빛나고 그 왼편에는 설악산이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정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식탁이 아닐까 싶다. 전망대의 아래에다 배치했는데 전망이 뛰어나기 때문에 준비해 온 음식을 먹으면서 조망까지도 실컷 즐길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허리춤에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헤치며 내려가야만 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다. 눈이 조금 덜 쌓인 부분을 골라가며 내려서다 보면 15분쯤 되는 지점(이정표 : 내현리 4.7Km/ 정족산 정상 0.8Km)에서 산길이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주능선에서 지능선으로 갈아타는 것이다.
▼ 이후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눈도 많이 쌓여 있지만 걱정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조금만 가팔라도 어김없이 굵은 밧줄을 매어놓았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게 버겁다 싶으면 밧줄에 의지하면 될 일이다.
▼ 그렇게 17분 정도를 내려오면 멋진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벌목(伐木)을 마친 왼편 산자락이 텅 비면서 시야가 열리기 때문이다. 조망을 돕기 위해 데크로 대(臺)를 만들고 그 앞에다 조망사진까지 게시해 놓았다. 대에 오르면 동해의 너른 바다와 설악산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 하지만 넋을 빼앗길 필요까지는 없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한층 더 나은 전망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서는 곳마다 최고의 조망처가 된다고 하는 게 더 옳겠다. 갈수록 시야(視野)가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동해에 대한 조망은 조금 전과 다름없지만 설악산은 아까보다 한결 또렷해졌다.
▼ 조망을 줄기다가 또 다시 하산을 이어간다. 그리고 5분 후에는 방향만 표시된 이정표와 ‘탐방로 안내도’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임도에 내려선다. 안내도에는 정상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를 1.34Km로 적고 있다.
▼ 임도를 가로지른다. 계속해서 능선을 따르기 위해서이다. 가파르던 산길은 잠시 후 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낮추어간다. 힘들이지 않고도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하긴 심심찮게 나타나는 거대한 소나무들을 구경하면서 오르내리다보면 지루할 틈도 없을 것이다.
▼ 30분 후, 또 다른 임도를 만난다. 아까 만났던 임도에서 1.4Km가 떨어진 지점이다. 이번에도 역시 임도를 가로지른다. 하지만 곧장 연결시키지는 않고 오른편으로 50m 정도를 옮긴 후에야 아래로 향한다. 양쪽 모두 이정표를 세워놓았으니 길을 못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이후부터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능선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방향을 크게 트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워 놓았지만 약간의 주의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이 구간의 특징은 누가 뭐래도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소나무들은 대부분 굵다. 또한 여느 토종 소나무들과는 달리 하늘을 찌를 듯이 쑥쑥 솟아올랐다. 거기다 표피가 붉다는 것을 더하면 영락없는 미인송(美人松)의 특징이 된다. 팔등신처럼 잘 빠졌다는 그 미인송 말이다. 참고로 미인송은 금강송(金剛松)의 다른 이름이다. ‘금강산 소나무’를 줄인 말인데, 소나무를 자세히 보면 그 껍질이 황갈색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은 ‘황장목(黃腸木)’, 그 외에도 봉화에서 나는 소나무 목재가 춘양역으로 집결했다가 전국으로 팔려나갔다고 해서 춘양목(春陽木)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들이 황금색으로 빛나면서 아름다운 자태들을 한껏 뽐내고 있다.
▼ 임도를 내려선지 15분쯤 지나면 자잘한 바위들이 널려있는 쉼터를 만난다. 산길은 이곳에서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벼랑에 가까운 비탈길로 보면 된다. 하지만 길가에 매어놓은 밧줄에 의지해서 내려가면 별 문제 없이 내려설 수 있을 것이다.
▼ 그렇게 7분 정도를 내려서면 계곡에 이른다. 그러나 산길은 곧장 계곡으로 내려서지를 않고 계곡의 왼편 사면(斜面)을 따라 난 길을 따른다. 그리고 6분 후에 만나게 되는 계곡에부터는 임도를 따라 버들골로 나간다.
▼ 양지말 버스정류장(양양군 서면 내현리)
그렇게 6분 정도를 걸어 나가면 차단기가 나오면서 진행방향 저만큼에 잘 지어진 펜션 몇 채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에 세워진 이정표(정족산 정상 4.78Km/ 내현리 0Km)는 물론이고 ‘탐방로안내도’에 이곳을 ‘정족산 탐방로 입구’로 표기한 것으로 보이 이쯤에서 산행이 끝났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대형버스가 마을까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정족산 탐방안내도’와 이정표(정족산입구 1.8Km/ 남천 체험학습장 1.7Km)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59번 국도변의 양지말까지 20분 가까이를 더 걸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루할 정도로 먼 거리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별빛촌’과 ‘언덕위의 하얀집’, ‘수밸리펜션’, ‘펜션다산방’ 등 길가에 나타나는 어여쁜 펜션들을 눈에 담으며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정상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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