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봉산(雲峰山, 285m)
산 행 일 : ‘21. 9. 18(토)
소 재 지 :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산행코스 : ’운봉교‘ 삼거리→용천사 입구→말안장바위→’미륵암‘ 갈림길→’22사단 정문‘ 갈림길→정상→’미륵암 갈림길‘ 복귀→주상절리→습지→머리바위→숲길입구→운봉리 숭모공원(소요시간 : 4.43km/ 2시간)
함께한 사람들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높이가 300m에도 못 미치니 산이랄 것도 없다. 그렇다고 백두대간이나 정맥, 하다못해 지맥에 걸쳐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가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크기에 비해 가슴이나 눈에 담아갈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운봉산은 제주도의 한라산처럼 화산활동의 결과로 생겨난 산이다. 그래서 주상절리 등 용암의 흔적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덕분에 산행 중 얼굴바위나 주먹바위, 거북바위, 안장바위 등 기암괴석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거기다 어디다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빼어난 조망까지 지녔다. 그러니 산행시간이 조금 짧다는 흠은 있지만 이런 좋은 볼거리들을 두고 어찌 사람이 찾지 않겠는가.
▼ 산행들머리는 ‘운봉교’(고성군 토성면 운봉리 314-19)
동해고속도로(삼척-속초) 속초 IC에서 내려와 56번 지방도를 이용해 교동지하차도사거리(속초시 교동)까지 이동한 다음, 동해대로(국도 7호선)를 타고 고성 방면으로 올라간다. 그러다가 문암삼거리(고성군 토성면 백촌리)에서 빠져나와 무릉도원로로 옮겨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운봉교’에 이르게 된다. 문암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 운봉산의 들머리는 이곳 ‘운봉교’ 말고도 ‘운봉산 숲길입구’와 미륵암, 그리고 22사단 정문 등이 있다. 하지만 열 중 아홉은 이곳 운봉교와 운봉산 숲길입구를 들·날머리로 삼는다.
▼ 문암천의 둑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됐다. 하지만 운봉리 방향으로 30m쯤 더 들어간 지점에 있는 삼거리가 옳은 들머리이다. 이정표는 물론이고 ‘운봉산 숲길 안내도’까지 그곳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하나라도 더 보려면 안내도를 한번쯤은 살펴보고 길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 50m쯤 문암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임도를 만나게 된다. 위에서 거론했던 탐방로인데, 두 길은 이곳에서 합쳐져 용천사로 이어진다. 합류지점에 세워놓은 ‘용천사’ 팻말의 방향표시를 참조하면 되겠다.
▼ 그렇게 15분쯤 들어가자 삼거리가 나타난다. 직진은 용천사, 오른편은 토종벌을 사육한다는 ‘청명농원’이다. 등산로는 두 길의 사이에서 열린다. 이정표(운봉산 정상↗/ 용천사↑/ 운봉리↓)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임도와 헤어지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은 초입부터 가파르다. 하지만 침목계단이 놓여있어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계단이 끝나자마자 길은 다시 완만해진다.
▼ 흙길로 시작된 탐방로가 느닷없이 바윗길로 변해버린다. 맞다. 이곳 운봉산은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산이라고 했다. 그 특징인 주상절리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바위들은 맛보기인 셈이다.
▼ 운봉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자주 만난다는 점이다. 그들과의 만남은 ‘말안장바위’로부터 시작된다. 생김새가 말의 등에 올려놓는 안장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말안장이 있으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동심으로 돌아간 집사람이 냉큼 올라앉고 본다. 그걸 본 나는 카메라부터 들이대고.
▼ 잠시 후, 이번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지점에 이른다. 안장바위처럼 팻말을 세워놓지 않았어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전망바위’라 부른다. 거침없이 내다보이는 기능으로 인해 저절로 붙여진 이름이다.
▼ 그중에서도 나 홀로 솟아오른 바위 하나가 유난히 돋보인다. 그러니 어찌 사람들이 버려둘 수 있겠는가. 인생사진이라도 하나 건질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 바위로 올라가자 비취빛 동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토성면 앞바다일 것이다. 그리고 저 풍경화 속에는 며늘아기가 머물고 있는 청간정 해안도 들어있을 것이다. 요양 차 내려온 지 4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그만 회복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이번에는 운봉산이 고개를 내민다. 그런데 아담한 것이 제주의 오름을 많이 닮았다. 다만 꼭대기가 펑퍼짐한 오름과는 달리 정상부가 뾰족하게 솟아올랐다는 게 다르다고나 할까? 아니 이곳 운봉산이 제주의 오름처럼 화산활동의 결과물이란 게 선입감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 조망을 실컷 즐겼으니 또 다시 길을 나설 차례이다. 이어지는 산길은 돌멩이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순수한 흙길이다. 덕분에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적당히 섞인 숲길이 이어지면서 눈이 호사를 누린다.
▼ 울창한 숲속에서 안내판 하나를 만났다. ‘튤립나무(Tulip Tree)’라는데 노란색이 감도는 녹색의 꽃이 튤립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제철이 아니어선지 꽃은 찾아볼 수 없고, 플라타너스처럼 생긴 잎을 매단 자잘한 나무들이 몇 그루 보일 따름이다. 하긴 저 나무는 200년을 자라야만 성목이 된다는데 이를 말이겠는가.
▼ 잠시 후 길이 가팔라지는가 싶더니 아예 허리를 곧추세워 버렸다. 그러니 길이라고 제대로 낼 수 있겠는가. 통나무계단을 일직선으로 놓았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
▼ 산행을 시작한지 35분. 길고 긴 계단을 올라서자 길이 둘로 나뉜다. 아니 미륵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쳐진다고 하는 게 옳겠다. 숲길 이정표(운봉산 정상↖ 0.3㎞/ 미륵암↘ 1.0㎞, 샘터·습지 0.3㎞, 머리바위 1.0㎞/ 용천사↓ 0.9㎞)는 오른편에 운봉산 제일의 명소인 ‘머리바위’가 있음을 알려준다. 정상은 물론 왼편. 정상을 둘러본 뒤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 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또 다시 가팔라진다. 아니 버거울 정도로 가파르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산허리를 휘감으면서 오르도록 길을 내놓았으면 좋았으련만, 이를 무시한 채 거의 수직으로 나 있기 때문이다. 통나무 계단에다 밧줄난간까지 매어놓았지만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 ‘세상 참 좋아졌다’. ‘22사단’이라는 지명이 표기된 이정표(운봉산 정상↑/ 22사단 정문→/ 용천사·미륵암↓)를 보고 어느 노익장이 내뱉는 넋두리다. 맞다. 그네들이 살아온 세상에서 22사단이란 지명은 입 밖에 내놓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꼭꼭 숨겨져 있어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공공기관에서조차 스스럼없이 드러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22사단 정문으로 내려가는 저 코스는 주상절리 답사의 명소로 알려진다. 중턱부터 정상부까지 온통 잿빛 바윗덩어리들로 덮여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고 한다.
▼ 산행을 시작한지 43분 만에 올라선 정상은 너른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원래는 이곳에 3m 깊이의 분화구가 있었다고 한다. 운봉산이 화산폭발로 생겨난 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을 군부대가 평평하게 만들어 헬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참고로 운봉산의 옛 이름은 ‘정산(鼎山)’이었다고 한다. 밀물과 썰물이 있던 먼 옛날 바닷물이 들어와 찼을 때 그 생김새가 솥을 엎어놓는 것 같은 정산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살았단다. ‘은봉산(銀峰山)’이라 칭한 기록도 있다니 기억해 두자.
▼ 어른 키 높이만한 정상석은 북쪽 귀퉁이에서 자리를 틀었다. 그런데 그 커다란 크기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게 있다. 4m의 높이의 깃대에 매달린 태극기가 천이 아니라 강철인 것이다. 왕대나무에 매달려 사시사철 펄럭이던 천 태극기가 자꾸 헤어지는 바람에 아예 펄럭이는 모양의 강철 태극기로 교체해 버렸단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일망무제(一望無際)이다. 시야를 가로막는 게 없기 때문에 탁 트인 세상을 한눈에 안아볼 수 있다. 지자체에서는 이를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조망도를 따로 세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대조해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조망도를 살펴봤다면 이젠 눈이 호사를 누릴 차례이다. 먼저 토성면 지역부터 살펴보자. 발아래로 펼쳐지는 드넓은 들판은 기본. 설악산을 오른편에 낀 쪽빛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수평선이 길게 늘어선다. 내륙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능파대·교암항·아야진항·청간리·봉포항을 지나 속초시까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이번에는 죽왕면 지역의 해안선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도 역시 널따란 들녘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에메랄드빛 동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지는가 하면, 끝 간 데 없는 바다에는 죽도와 백도 등 하얀 바위섬들이 아랫도리에 물에 담그고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풍광들이다. 하긴 이런 보상이 있기에 수고로움을 마다하고 산에 오를 것이다.
▼ 반대방향의 산악지역도 빼놓을 수 없다. 북녘하늘 아스라이 금강산이 있고, 그 앞으로 향로봉과 죽변산, 그리고 더 가까이로는 이따가 오르게 될 오음산이 눈에 들어온다. 남으로는 설악산과 마등령, 황철봉, 울산바위, 속초의 해안선이 눈 끝에 닿아 있다.
▼ 첫 번째 삼거리(마당바위 갈림길)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미륵암’쪽으로 진행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던 북쪽, 그러니까 금강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내려선다고 보면 되겠다.
▼ 눈을 들면 아까 정상에서 만났던 풍경들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불쑥 바다로 내달려 나간 수많은 곶과 길게 줄지어 있는 은빛 백사장, 점점이 이어지는 작은 섬들, 그 주변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등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 오늘의 꽃은 구절초(九節草)를 꼽아봤다. 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으니,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로 이만한 게 없을 것 같아서이다. 거기다 간장을 보호하고 혈액순환을 돕는 등 약효까지 뛰어나지 않겠는가. 구절초라는 이름은 중양절(음력 9월9일)에 채취한 것이 가장 약효가 좋다는데서 유래했다. 줄기의 마디가 단오에는 다섯 중양절에는 아홉 마디가 된다는 뜻의 ‘구’와 중양절의 ‘절’, 혹은 꺽는다는 뜻의 ‘절’자를 쓴다.
▼ 이밖에도 쑥부쟁이와 벌개미취, 잔대, 무릇, 마타리 등 꽤 많은 야생화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솔체꽃’도 그 가운데 하나다. 꽃봉오리의 모양이 구멍 뚫린 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학명의 스카비오사(Scabiosa)는 라틴어로 옴이란 뜻으로, 이 꽃이 피부병에 약효가 있다는 뜻에서 부르게 된 이름이라 한다. 역병으로 고생하는 마을사람들 위해 약초를 구하러 다니던 요정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얘기를 품은 꽃이기도 하다. 꽃말도 전설에 따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되었다.
▼ 10분쯤 내려왔을까 또 다른 삼거리가 나타난다. 운봉리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둘로 나뉘는 지점(이정표 : 미륵암↑ 0.6㎞/ 머리바위→ 0.6㎞/ 주상절리← 0.1㎞)이다. 같은 운봉리이지만 오른편은 ‘운봉산 숲길’ 입구, 왼편은 미륵암이란 사찰로 연결된다. 참! 왼편은 운봉산에서 꼭 들러봐야만 하는 ‘주상절리’로도 연결된다.
▼ 이곳에서 이정표를 보고 길을 찾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겠다. 주상절리의 방향 및 거리가 얼토당토않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주상절리가 지시하는 방향에는 길이 나있지 않다. 미륵암과 같은 방향인데도 왼편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100m라는 거리도 맞지 않다. 이를 믿고 갔다간 도착하기도 전에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정표 보다 세 배쯤 더 멀어요’라던 일행의 말마따나 200m쯤 걷고 나서야 ‘주상절리’의 입구라 할 수 있는 삼거리(주상절리←/ 미륵암↗)에 닿을 수 있었다. 우리가 가고자하는 ‘주상절리’는 왼쪽. 오른편은 미륵암이라는 암자로 내려가는 길이다.
▼ 50m쯤 더 올라가자 ‘돌이 흐르는 강’이라 적힌 팻말이 길손을 맞는다. 주상절리를 저렇게도 부르는 모양이다. 참고로 이곳 운봉산은 ‘강원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5개 군(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의 21개 지질명소 가운데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고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생대 제3기 알칼리 현무암의 분포지역이기도 하다. 제4기에 형성된 철원과 제주도 등의 현무암에 비해 침식 정도가 심해 주상절리의 원형 뿐 아니라 주상절리가 무너져 형성된 암괴류를 함께 관찰할 수 있다.
▼ 팻말 너머로는 별천지가 펼쳐진다. 운봉산의 북쪽 사면을 장식하고 있는 현무암 너덜지대인데, 이게 마치 물이 흐르는 것 같다고 해서 ‘현무암의 강’이나 ‘돌이 흐르는 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게 주민들에게는 경이롭게 보였던 모양이다. ‘서둑돌’이라 부르며 신성시 여겨 집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 작으면 농구공, 크면 건물 기둥만 한 돌들이 마치 강이 흐르다 멈춘 듯한 모습으로 쌓여있다. 지질학자들이 ‘암괴류’라 부르는 저 돌들은 주상절리가 부서지면서 만들어졌다.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만들어지는 수직 기둥 모양의 구조이다. 암괴류 곳곳에서 기둥처럼 생긴 돌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참고로 운봉산은 약 700만 년 전, 화강암을 뚫고 올라온 마그마가 만든 화산이다. 이 돌들은 당시 용암이 빠르게 식으며 만들어진 현무암이다. 하지만 제주도처럼 용암이 흐른 것은 아니고 얕은 땅속에서 그대로 식은 것이란다. 이렇게 굳은 마그마가 ‘주상절리’가 되었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머리바위’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어서 몇 걸음 더 걷자 발을 딛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바닥이 질퍽거리는 곳과 마주친다. 안내판은 이곳을 ‘습지’라 적고 있었다. 방금 전 들렀던 주상절리의 돌밭 밑에서 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더니 그 물줄기가 이곳을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참! 아들 없는 집에서 아들을 얻게 해달라고 정성을 드렸다던 ‘샘터’는 눈에 띄지 않았다. 선답자들의 후기에서 보았던 ‘팻말’도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 습지를 벗어나자 또 다시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번에는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삼아 바위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올랐다. 이정표에 적혀있던 ‘머리바위’일 것이다.
▼ 조금 더 걷다가 바위봉우리를 줌으로 당겨봤다. 아찔한 바위봉우리건만 스릴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한낱 놀이터에 불과한 모양이다.
▼ 잠시 후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즐비한 바위지대로 올라섰다. 그리고 운봉산을 만든 장사기 남긴 흔적들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남근석’. 남성의 성기를 쏙 빼다 닮은 바위 하나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그냥 닮기만 한 게 아니다. 그 생김새까지도 시샘이 날 정도로 아주 잘 생겼다.
▼ 다음은 ‘머리바위’다. 펑퍼짐한 이마에 눈·코·입, 그리고 툭 튀어나온 턱이 영락없는 사람의 얼굴이다. 혹자는 저 바위를 운봉산을 만든 장사의 머리라고 주장하나, 전설이란 옛 사람들이 남긴 얘기일 따름이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 머리바위 옆에는 크기는 작지만 사람의 얼굴을 한 바위 하나가 더 있다. 그런데 이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바위가 아니겠는가. 맞다. 폴리네시아의 이스타섬에 있는 ‘모아이 석상’이 딱 저랬었다. 길쭉한 코에 툭 튀어나온 턱은 물론이고 둥그런 눈까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모아이석상을 쏙 빼다 닮았다. 그런데 천만리 바다건너에서 언제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까?
▼ 머리바위를 왼편으로 우회하면 주먹바위가 얼굴을 내민다. 거대한 바위의 가운데 툭 튀어나온 부분이 주먹을 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마지막 만남은 ‘거북바위’다. 꽤 유명세를 타는 바위인데, 내 눈에는 거북의 형상이 그려지지 않으니 문제다. 다른 사람들이 지닌 심미안이 나에게는 왜 없을까? 무학대사는 부처와 돼지의 눈을 들어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 했다. 맞다. 칠십년 가까이 쌓아온 내 수양은 아직도 멀었다.
▼ 바위지대를 내려오다가 뒤돌아보니 조금 전에 만났던 바위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기괴하게 생긴 저 바위들은 전설에 의해 태어났다. 아까 얘기했듯이 금강산 장사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에 들어가려고 힘깨나 쓰는 짐승들을 불러 모아 구름보다 더 높이 산봉우리를 쌓아올렸는데, 이때 작업을 하다가 다치고 죽은 동물들의 형체가 굳어져 저렇게 변했다는 것이다.
▼ 바위지대의 특징은 역시 뛰어난 조망.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려는 듯 에메랄드빛 동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그 앞의 너른 들판은 바다를 만날 때까지 거침없이 쭉 뻗어나간 모습이다.
▼ 이젠 하산만이 남았다.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내려서자 이번에는 가파른 통나무계단이 나타난다.
▼ 하산을 시작한지 1시간 만에 ‘운봉산 숲길 입구’에 내려섰다. 미륵암 근처의 두 들머리 가운데 하나로, 이곳에 주차가 가능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숲길 입구에는 이정표(머리바위 0.3㎞, 운봉산 정상 1.2㎞)와 함께 ‘운봉산 숲길안내도’도 세워놓았다. 금강산이 되려고 돌을 알뜰살뜰 모으다가, 고성에서 이미 금강산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너무 억울해 으르렁거리며 울었다고 해서 ‘운봉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을 적었다. 안내판에는 없지만 또 다른 전설도 기억해두자. 옛날 부지런한 장사가 금강산의 장사와 집짓기 시합을 하던 중 금강산 장사가 집을 완성했다는 거짓 소문에 3일(석 달 열흘이란 설도 있다) 동안 울면서 통곡하며 그 동안 지은 돌성을 무너뜨렸는데, 이때 지었던 돌성의 높이가 구름 위까지 올라갔다고 하여 ‘운봉산’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 산행은 끝났지만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운봉리의 ‘숭모공원’까지는 1km쯤 더 걸어가야 한다. 농로가 좁은 탓에 승용차 외에는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 운봉마을로 이동하는 도중 담양의 관방제림(防堤林, 천연기념물 제366호)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제방(堤防)으로 여겨지는 둑 위에 백여 년은 족히 묵었을 것 같은 굵은 소나무들이 풍치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날머리는 ‘숭모공원’(고성군 토성면 운봉리)
숲길 입구로 내려선지 10분 만에 도착한 ‘숭모공원’은 온통 태극기 세상이다. 공원을 빙 둘러싼 50여 개의 태극기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숭모공원은 3·1운동 직후 조직된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철원애국단)에 가입해 활동한 이근옥·김연수·문명섭(이상 운봉리), 김형석(아야진리), 이석규(백촌리) 등 독립운동가의 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그러니 저 태극기의 물결은 숭모공원이란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라 하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운봉리의 모든 세대(70여 가구)는 매일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단다. 이곳 운봉리가 ‘태극기 마을’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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