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미도(頭尾島)

 

여행일 : ‘21. 8. 16(월)

소재지 :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 두미리

트레킹 코스 : 북구선착장→남구선착장→전망대→대판마을(왕복)→천황산(468m)→투구봉(333m)→임도→북구선착장(소요시간 : 11.6km/4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통영시청에서 남서쪽으로 약 26km 해상에 위치한 총면적 5.03㎢에 해안선 길이가 11㎞인 자그만 섬이다. 섬의 모양이 꼬리가 달린 물고기의 머리와 비슷하다 하여 두미도라고도 부른다. 최고봉인 천황산(467m)으로부터 투구봉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로운 암석해안으로 남쪽과 서쪽 해안이 해식애를 이룬다. 그 덕분에 섬은 규모에 비해 볼거리가 많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동뫼섬이다. 가오리처럼 생긴 섬의 꼬리에 해당되는 위치인데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암릉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천황산 등산도 빼놓을 수 없다. 정상부위의 암릉은 암벽산행의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고, 특히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조망은 가히 일품이다.

 

▼ 찾아가는 길 : 일단은 통영항 여객터미널까지 와야만 한다. 두미도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두미도 말고도 사량도(상도)나 욕지도, 한산도, 매물도, 연화도, 비진도, 우도, 추도 등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그건 그렇고 첫 배의 출항시간인 6시50분에 맞춰 아침식사를 하려면 조금은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하지만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터미널 주변에 새벽부터 문을 여는 식당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통영의 별미라는 ‘충무김밥’은 물론이고 해물뚝배기나 백반 등 제공되는 메뉴도 다양하다.

▼ 우리를 태워다 줄 ‘바다누리호’이다. 승객 124명과 승용차 6대를 동시에 운송할 수 있는 194톤급 카페리여객선으로 통영항에서 아침 6시50분과 오후 2시30분 등 하루 2차례 출발하는데, 낙도 보조항로 운항선박이라 두미도·상노대도·하노대도·욕지도 등 통영의 여러 섬들을 두루두루 거친다. 하나 더. 배편이 요일별로 차이가 날뿐만 아니라 삼천포 장날 역시 다르게 운행하는 등 조금 복잡하게 되어 있으니 운항사(한림해운, 055-644-8092)로 문의하여 배 시간을 확인하는 게 최상이다.

▼ 1시간 20분쯤 되었을까 안내방송과 함께 배는 두미도에 이른다. 아니 정확히는 두미도의 첫 번째 기항지인 ‘북구선착장’이다. 이 배는 반대편에 위치한 ‘남구선착장’에서 두 번째로 기항하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그 기항 순서가 바뀐다고 한다. 두미도 북구→남구→상노대도→하노대도→욕지도의 순서를 오후에는 반대 방향으로 배를 띄운다는 것이다.

▼ 섬은 꼬리가 달린 바닷고기인 가오리나 홍어처럼 생겼다. 두미도(頭尾島)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이다. 탐방코스는 배가 닿는 남구선착장에서 출발해서 천황산과 투구봉을 오른 다음, 북구선착장을 거쳐 남구선착장으로 되돌아와 배를 타고 통영으로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배의 출항시간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 지루하다는 약점이 있다. 이럴 경우 섬의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 남구선착장에 기항이 어렵다는 전갈을 받고 부랴부랴 ‘북구선착장’에서 내리기로 했다. 덕분에 7시간(1항차와 2항차의 간격이 긴 탓이다)이나 되는 섬 채류시간에 맞춰 느긋하게 섬을 한 바퀴 둘러보려던 계획은 바꿀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두미도는 하선과 승선을 달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남구선착장에서 배를 내려 천황산을 먼저 오르고, 이어서 순환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돈 다음 북구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나오면 같은 코스를 중복해서 걷지 않고도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배에서 내리자 마을 표지석이 반긴다. 두미도를 대표하는 두 개의 마을 가운데 하나인 ‘북구마을’이다. 아니 설풍, 고운, 학리, 사동이 북구마을을 이룬다고 했으니 정확히는 ‘학리’라고 하는 게 옳겠다. 학리란 바다에서 보면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는 형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때 천황산은 학의 머리가 된다는 것도 알아두자. 참고로 두미도의 주민은 현재 61가구 91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북구마을과 남구마을에 모여 사는데, 30%가량이 70살 이상인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농업과 어업이던 주업도 바뀌었다. 최근에는 낚시꾼이나 등산객들을 상대로 하는 관광업이 늘어나는 추세란다.

▼ ‘두미개척 100주년’ 기념비가 보초를 서고 있는 마을회관에는 ‘두미도 섬택근무 업무협약 체결식’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섬택근무’란 재택근무와 유사한 형태지만 집에서 근무하는 것이 아닌, 섬에서 근무 하는 것이다. 올 봄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는데, 공단 직원들이 일주일에 3~4명씩 근무하면서, 일상 업무뿐만 아니라 섬마을 공동체 활동을 주민들과 함께 해오고 있단다. 두미도는 8년 전에 이미 광케이블이 깔렸기 때문에 뭍에서와 다름없이 인터넷·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정상 근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 북구마을의 오래된 집들 대부분은 높다란 돌담에 둘러싸여 있었다. 지붕의 끝과 맞닿게 지붕을 쌓은 것이다. 두미도 사람들은 여름 태풍도 두려워하지만 봄에 부는 동풍을 가장 무서워한다고 한다. 그 바람은 회오리처럼 몰아쳐 집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기도 한단다. 그래서 두미도 사람들은 높디높은 돌담을 쌓기 시작했는데, 가옥을 가운데에 두고 둥글게 쌓은 게 보통. 하지만 달팽이 모양으로 구불구불하게 쌓기도 했다. 담장 전시장이라고나 할까? ‘돌담섬’이란 별칭을 얻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 바닷가는 타포니(tafoni) 현상으로 여겨지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수없이 널려있었다. 타포니란 염풍화작용으로 암석에 동굴처럼 구멍이 뻥뻥 뚫린 지형을 말한다. 멀리서 보면 벌집이나 해골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혹자는 골다공증 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 두미도는 등산객들이 주로 찾는 섬이다. 스쿠버다이빙이나 낚시를 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그들을 환영이라도 하는 양 저런 멋진 조형물까지 세워놓았다. 맞다. 찾아오는 이를 반기고 배려하는 것이 불심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두미도는 본디 미륵이 머물다간 섬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둔미도(芚彌島)’란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연화세계를 알려거든 세존께 물어보라(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는 불경의 말씀을 근거로 삼는다. 이를 입증하듯 1937년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산속에는 암자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잔해만 남아있고, 불상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 일단은 남구마을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천황산 등산을 남쪽전망대에서 시작하기 위해서다. 물론 부근의 작은 마을 두엇도 둘러볼 예정이다. 남구마을은 섬의 중턱을 따라 내놓은 순환임도를 따르면 된다. 두미도를 한 바퀴 도는 이 임도는 지난 2013년에 완공됐다. 길이는 9.29km. 2007년에 착공했다니 6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만큼 공사가 쉽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이 뚫림으로써 주민들은 등짐을 지고 산길을 넘거나, 배를 타지 않고도 생필품을 보급 받을 수 있게 됐단다.

▼ 길가 취수탑의 철망을 감싸고 있는 담쟁이넝쿨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그동안 꽃을 안 피우는 식물인줄로만 알았는데 꽃을 피우고 있었고, 그것도 이렇게나 아름답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정'이라는 꽃말도 만만찮다.

▼ 순환임도(일주도로)를 따라 10분 남짓 걸었을까 승용차가 멈춰서더니 타라고 한다. ‘두미연수원’의 책임자라는 분이 전망대까지 태워다준다는 것이다. 이동하는 도중 그로부터 섬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이분은 천황산의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하는 일등공신이란다. 정상으로 오르는 바윗길도 이분이 개척했단다. 산행을 끝마치고 식사를 할 때도 만났는데, 마치 자기 일처럼 식당 일을 거들어주고 있었다. 남에게 도움을 주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 전망대까지 데려다준다는 것을 굳이 ‘남구선착장’에서 내렸다. 명색이 선착장까지 들어선 마을이니 특별하진 않더라도 유의미한 이야깃거리 하나쯤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작은 어선 세 척만이 외로운 포구로 내려서니 선착장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잡석더미만 눈에 들어온다. 저 공사로 인해 배가 기항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이곳 남구마을의 옛 이름은 ‘굴밭기미’라고 한다. 어른 머리만한 벚굴이 지천으로 나고, 그 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인 마을이라는데, 요즘은 ‘구전’으로 표기되고 있다.

▼ 펜션과 민박에 식당까지, 편의시설들이 즐비하던 북구마을과는 달리 이곳 남구마을은 썰렁하기만 했다. 그저 공공기관의 하나인 보건진료소와 반듯하게 지어진 이층짜리 ‘마린리조트센터’가 전부라고나 할까? 두미도는 제철 생선이 풍부하게 잡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 산호를 비롯한 해저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바닷속 비경을 구경하려는 스쿠버다이버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저 리조트에 ‘다이브샵’이 들어서있는 이유일 것이다.

▼ 세찬 바람에 쫓긴 민가는 높은 돌담 속으로 숨어버렸다. 지붕의 처마 높이에 맞춰 쌓은 돌담이 둥그렇게 집을 감싸고 있어 아래서 바라보면 지붕은 보이지 않고 담만 보일 정도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계절풍의 심술을 잘 아는 이곳 사람들은 높은 것으로도 모자라 겹담까지 쌓았다고 한다. 강하게 부는 바람에 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저 돌담의 한가운데에 바람이 통하도록 ‘바람길’까지 내 놓았다니 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참! 바닷가에 터를 잡은 동백나무 숲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했다. 수십 년은 족히 넘겼음직한 동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나무그늘 아래에는 데크 쉼터까지 만들어놓았다. 그만큼 경관이 뛰어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비록 꽃을 피울 때에 한해서이겠지만 말이다.

▼ 두미도 여행에 큰 의미를 부여해준 가장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웬만한 후기에는 빠짐없이 얼굴을 내미는 ‘누렁이’가 내게로 찾아와준 것이다. 환영한다고 꼬리까지 치면서...

▼ 임도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순환 임도를 따른다. 청석마을로 연결되는 이 길은 낭떠러지를 꿰뚫으며 나있다. 바다로 뚝 떨어지는 산비탈. 도저히 길을 낼 수 없는 상황인데도 사면을 깎아 외길을 만든 것이다. 토목 공법의 발전이 만들어낸 역사라 하겠다. 이 임도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청석마을은 섬 속의 섬이었다고 한다. 생필품이라도 받으려면 배를 이용하거나 지게를 지고 산길을 넘어 다녀야만 했단다. 그게 지금은 걸어서도 15분이면 충분하다니 이게 바로 상전벽해가 아니겠는가. 거기다 심심찮게 시야까지 트이니 이 얼마나 좋은가. ‘상노대도’를 중심으로 비상도와 하서도, 납도 등 자그만 섬들이 마치 돛단배라도 되는 양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닌다.

▼ 누렁이가 인도하는 대로 고갯마루를 넘자 ‘남쪽전망대(혹자는 청석전망대라 부르기도 했다)’가 나온다. 바다를 향해 툭 트인 지점에다 나무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안내판도 보인다. 하지만 글자가 지워진 탓에 판독할 수는 없었다.

▼ 전망대에 서면 ‘상노대도’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그 앞에 일렬로 서있는 밖·안· 돌 등의 ‘거칠리도’는 흡사 멀리뛰기라도 할라치면 단번에 이를 것같이 가깝다. 그 뒤의 큼지막한 섬들은 하노대도와 욕지도일 것이다.

▼ 이곳 남쪽전망대는 천황산 등산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난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보기로 했다. 남쪽 해안가에 터를 잡은 마을들도 하나쯤 둘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누렁이도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앞장을 서주고 있다.

▼ 잠시 후 두세 명은 너끈히 걸터앉을 수 있는 반석이 나타났다. 그 옆에는 의자까지 놓여있다. 뭔가 바라볼만한 게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두미섬이란 지명을 낳게 한 동뫼섬(혹자는 ‘독뫼섬’이라고도 한다)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곳이다. 덕분에 난 의자에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을 감상하며 숨을 고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 반대편에서는 두미도의 또 다른 명물인 ‘새끼섬’이 확 달려든다. 그 뒤에 보이는 섬은 남해도의 부속섬인 ‘호도’일 것이다.

▼ 잠시 후 만나게 된 청석마을에서 경작지다운 경작지를 만날 수 있었다. 예전 남구의 중심은 지금처럼 구전마을이 아니라 청석마을이었다고 한다. 일 년 먹을 양식만 있어도 부자소리를 듣던 시절이니 넓은 밭과 논까지 있던 청석이 당연 큰 마을일 수밖에. 당시는 두남분교 역시 청석에 있었단다. 하지만 농업이 쇠하고 수산업이 번창하면서 중심이 구전마을로 옮겨갔고 청석마을은 이제 한 집만이 외롭게 남았다.

▼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청석마을의 민가가 내려다보인다. 그 너머로는 두미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동뫼섬’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바다로 향해 길게 뻗어나간 능선은 푸른 모자를 썼다. 그 아래는 서슬 시퍼런 해안절벽. 누군가는 저런 풍경을 보고 용머리가 다도해 파도와 만나면서 살아난다고 했다. 그 용이 상·하노대도와 욕지도 방향으로 누워있다면서 말이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 줌을 당겨보면 바위능선의 중간이 끊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잘려나간 부분이 섬(島)이 되었고, 동쪽에 있는 뫼(산이라는 뜻의 옛말이 아닐까 싶다)라 해서 ‘동뫼섬’이란 이름이 붙여졌지 않나 싶다. ‘독뫼섬’이란 또 다른 지명은 그 섬이 돌로 이루어졌다는데서 따왔을 것이고 말이다.

▼ 도로에 ‘꼬맹이 의자’가 놓여있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지금은 폐교되었다는 초등학교에서 흘러나온 모양인데, 두미도 종주도로에서는 바다 쪽을 향해 놓인 의자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여행객들을 위한 섬 주민의 따스한 배려일 것이다.

▼ 임도 따라 걷기를 20분. 대판마을에 닿았다. 옛집 두 채에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에 발이라도 맞추려는 듯 펜션형의 주택이 새롭게 들어섰다. 두미도에는 저런 마을이 여럿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퇴락하여 마을마다 한두 채가 겨우 남아있을 뿐이고, 북구의 학리마을과 남구의 구전마을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 돌담과 노거수가 조화를 이루는 옛집 마당에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도 더 되었을 것 같은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걸 가지치기까지 해놓은 덕분에 마치 분재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 전망대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등산을 시작한다. 등산로는 전망대 맞은편에서 열리는데, 이때 계단 왼편으로 천황산 정상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두미도는 전체적으로 엎어 놓은 바가지 형태이다. 때문에 평지가 거의 없는데, 그 한가운데에서 우뚝 솟아오른 게 천황산이다. 높이는 467m. 그다지 높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해발 제로(0)에서 시작하는 산행이다 보니 그리 만만하게 볼 수도 없다.

▼ 들머리에 단순하게 방향표시만 해놓은 이정표와 함께 ‘천황산 등산로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그런데 천황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의 시점이 이곳 남쪽전망대(1코스)와 동쪽전망대(2코스) 뿐이다. 천황산 정상에서 투구봉을 거쳐 고운마을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아예 표시조차 하지 않았다. 섬을 일주하는 순환임도도 고운마을에서 설풍마을까지는 끊겨있다. 현실에 맞게 고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철거해버리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 울창한 동백나무 숲을 헤집으며 난 탐방로는 한마디로 곱다. 돌이 많은 길바닥이 조금은 거칠지만 길은 널찍했고, 길 주변의 잡목이나 잡초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또한 경사가 조금이라도 가팔라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계단을 놓았다.

▼ 산을 오르다보면 작은 암봉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두미도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는 7시간(선택이 아니라 필수 시간이다)도 알차게 사용할 겸해서 빼놓지 말고 올라가보자. 섬 산행의 특징대로 주변 풍경이 한눈에 쏙 들어올 것이다.

▼ 암봉에 오르자 오른편에는 남구선착장을 포함한 다도해 풍경. 왼편도 새끼섬이 낀 바닷가 풍경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그 한가운데는 두미도의 최고봉인 천황산이 놓여있다. 멀리서 봐도 거대한 암봉임을 알 수 있다.

▼ 얼마쯤 걸었을까 천황산이 1.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산길이 가팔라진다. 흩어진 바위더미 사이로 난 탐방로도 많이 거칠어졌다.

▼ 이곳 두미도는 관광객보다 등산객이 더 많은 섬이다. 그러니 돌탑 하나쯤 없겠는가. 그런데 쌓아올린 솜씨가 신기에 가깝다. 갈망하는 바람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저런 솜씨를 발휘했을까 싶다.

▼ ‘이게 투구바위이나요?’ 웬 투구가 이리도 많으냐는 내 넋두리를 어느 가족이 단체로 물어온다. 그네들은 내가 ‘투구봉’의 투구바위를 일컫는 것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바위의 생김새를 내 생각대로 표현했을 따름이라고 서둘러 마무리했지만, 아무리 봐도 투구를 쏙 빼다 닮았다.

▼ 계단으로도 모자라 바윗길에는 밧줄난간까지 설치했다. 경사가 약한 탓에 썩 위험해 보이지도 않는데 ‘위험구간’이라는 팻말까지 매달아놓았다.

▼ 산행을 시작한지 55분, 첫 번째 삼거리(이정표 : 천황산 정상↑ 640m/ 동쪽전망대→ 1㎞/ 남쪽전망대↓ 1.5㎞)를 만났다. 동쪽전망대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쳐지는 지점으로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 이곳에서도 기암 하나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영락없는 사람의 얼굴. 그것도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표정이다.

▼ 천황산 등산로의 특징 중 하나는 이정표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등산로 전체가 외길 수준이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지만 그래도 2개(들머리 제외)라니 드물어도 너무 드물다. 그게 미안했던지 길바닥 곳곳에 화살표를 그려 방향을 표시하고 있었다. 지인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눈 여겨 보았다던 화살표도 저렇게 그려졌을까?

▼ 전위봉에 올라선다. 이곳은 조망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두미도의 최고 비경으로 꼽히는 ‘동뫼섬’은 물론이고, 다도해라는 남해바다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이니 그냥 지나쳐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

▼ 바위에서 바라보는 ‘동뫼섬’은 두미도 여행의 백미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 꼬리가 흡사 연화도의 용머리를 보는 듯하다. 주민들은 저 바위섬을 ‘개바위’라고도 부른단다. 그 생김새가 마치 개가 쭈그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무튼 코발트빛 바다를 배경으로 멀리 노대도, 욕지도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 전위봉에서 살짝 내려선다. 이때 반반한 바위지대가 나타나면서 동뫼섬이 다시 한 번 얼굴을 내민다.

▼ 전위봉에서 내려서니 완만한 능선을 따라 길게 돌담이 쳐져있다. 이곳 두미도에서도 염소를 방목한다고 했으니 경계용으로 쌓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염소란 놈이 이까짓 높이를 넘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은 계속 남는다. 참! 이런 돌담은 아까 지나왔던 돌탑 부근에서도 눈에 띄었었다.

▼ 잠시 후 마주친 삼거리(이정표는 없다)에서는 오른쪽 길을 따르기로 했다. 아까 우리를 태워다 준 연수원 책임자께서 개척했다는 새로운 루트이다. 하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다며 되돌아오는 등산객을 본 집사람이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발길을 돌려버리는 게 아닌가. 그럼 하네스(harness)를 차고 암벽을 오르내리던 그녀는 어디 갔단 말인가.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는 없었던 모양이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왼편 우회로를 타기로 했다. 아니 안전이 확보된 정규탐방로이다. 이어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시 치고 오르니 급경사 바위벼랑이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굵직한 밧줄이 매어져 있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 1시간 20분 만에 올라선 정상에는 표지석이 2개나 있었다. 말뚝 모양의 정상석 말고도 세 동강난 또 다른 정상석이 나뒹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쓰러져 있는 정상석에 ‘天黃峯’으로 적혀있는 게 아닌가. 이제껏 ‘天皇峯’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일제의 잔재라 할 수 있는 지명을 아직까지도 고수한다며 꾸짖으려했던 내 무지가 들통 나는 순간이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망무제이다. ‘상·하 노대도’와 욕지도 등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섬들이 은빛 바다 위를 점점이 수놓는다. 한려수도의 전형적인 풍경이라 하겠다. 망원렌즈라도 챙겨왔더라면 그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연화도와 연대도, 비진도 등도 함께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 잠시 후 오르게 될 ‘투구봉’ 너머로는 남해도 인근의 풍광이 펼쳐진다. 이곳도 역시 올망졸망한 섬들이 동네잔치라도 벌이는 양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호도. 조도, 모도 등 일일이 나열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그 숫자가 많다.

▼ 북쪽 방향도 만만찮다. 추도 뒤로 통영의 미륵산이 보이고, 그 왼쪽에는 사량도가 있다. 한마디로 이곳 두미도는 수많은 섬들에 둘러싸인 모양새라 하겠다. 눈을 들면 들어오는 게 오로지 섬뿐이니 말이다.

▼ 하산을 시작한다. 천황산으로 오르는 능선이 순하지도 그렇다고 거칠지도 않은 길이었다면, 투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시작부터 바윗길로 시작된다. 때문에 갖가지 등산 기법을 활용해야만 무사히 산을 내려갈 수 있다. 먼저 선보여야 할 기법은 밧줄에 매달려 20m쯤 내려가는 것이다. 수직에 가까운 바위절벽이지만 암벽산행의 이력이 있는 집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두 번째는 직접 바위를 잡고 내려가는 기법이다. 바위절벽에 이어 나타난 칼바위능선에서 써먹게 되는데, 뾰쪽한 바위들이 공룡의 등허리처럼 날을 세웠는가 하면, 그 양짝이 수직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하지만 암릉의 특징인 조망은 이를 보상하기에 충분하다. 좌우로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광을 발아래에 두다보면,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붙잡아야 할 바위의 크랙(crack)을 살피는 일까지 소홀하지는 말자.

▼ 세 번째는 스틱에 의지하거나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방법이다.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대신 스릴을 느낄 수 없어 산행의 재미까지 한꺼번에 뚝 떨어져버린다.

▼ 하산을 시작한지 30분. 안부까지 고도를 낮춘 산길은 또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거대한 바위절벽을 만나자 오른편으로 우회를 한다.

▼ 바위 위로 오르자 천황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천황산은 자그마한 섬에 위치하지만 통영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통영이 자랑하는 미륵산(461m)이나 동명인 욕지도의 천황산(392m)보다도 더 높은 것이다. 두미도를 찾는 외지인 대부분이 등산객들인 이유이다.

▼ 이후부터 길은 썩 편치가 않다. 능선이 크고 작은 바위들을 잔뜩 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산길은 바위능선을 버리고 9부 능선쯤 되는 산자락의 사면을 헤집으며 나있다. 오른편에 바위능선 그리고 왼편에는 염소 방목장의 철망펜스를 끼고 이어지는 모양새인데 길이 정비가 안 되어 있는 탓에 걷기가 영 사납다.

▼ 안부를 지난 지 20분. 동백나무와 소사나무가 적당히 섞인 숲을 빠져나오자 ‘투구’를 쏙 빼다 닮은 거대한 바위봉우리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투구봉(333m)’이지 싶다. 투구처럼 생긴 봉우리이니 응당 투구봉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핸드폰의 앱은 자꾸만 더 가라고 한다. 그래야만 진짜 투구봉을 만날 수 있다면서 말이다.

▼ 바위에서 내려와 울창한 소사나무 숲을 조금 더 걷자 앱이 ‘투구봉’이란다. 하지만 커다란 바위덩어리 몇 개가 무리지어 있을 뿐이다. 정상석이나 이정표는 물론이고 선답자들이 남겨놓았어야 할 그 어떤 흔적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앱의 지도가 ‘투구봉’의 위치를 잘못 표시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이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북서쪽으로 이어지던 능선은 이후부터는 온전히 북쪽으로 향한다. 길도 순해졌다. 바위가 듬성듬성 박히기는 했지만 전형적인 흙길로 변하기 때문이다. 경사까지도 완만해진 덕분에 무릎이 약한 등산객들도 내려서는데 조금도 무리가 없다.

▼ 하산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 만에 일주도로(임도)에 내려섰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아까 산행을 시작하면서 둘러봤던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을 만나게 된다. 그밖에도 고운·설풍·덕리·순천 등의 작은 마을들도 기웃거려 볼 수 있다. 하지만 둘러보는 것까지는 그만두기로 했다. 척박한 섬 마을, 특히 한두 집이 전부인 외진 동네에 등산복을 입고 어슬렁거린다는 게 옳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언택트(un-contact)가 최고의 미덕으로 자리 잡은 코로나-19 팬데믹(COVID-19 pandemic)이 아니겠는가.

▼ ‘고운마을’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마을 표지석 대신에 ‘그 겨울 꽃 동백’이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송호룡이란 사람이 1890년대 중반 두미도에 정착하여 험난한 개척의 삶을 사셨던 조부모님과 부모님에게 바치는 글이라는데, 글 솜씨가 여간 뛰어난 게 아니다.

▼ 날머리에도 이정표(투구봉 정상 1.0㎞)와 함께 안내판 하나를 세워두었다. 이번에는 ‘숲길 안내판’이란 제목으로 순환임도와 등산로를 같이 그려 넣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지도 위에다 낙서를 해놓았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에 ‘위험’, 그리고 천왕봉에서 투구봉 사이에는 ‘정비하삼’이라 적었다. 단지 두 마디일 뿐인데도 오늘 걸었던 등산로의 형편이 속속들이 표현되어 있다.

▼ 가슴이 툭 트이는 바다를 내다보며 북구마을로 향한다. 이어서 25분쯤 후에는 북구마을에 이르게 되면서 두미도 트레킹은 막을 내린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4시간 30분(간식을 먹느라 쉬었던 시간은 뺐다) 만이다. 그런데 나가는 배를 타려면 아직도 3시간을 더 버텨야만 한다.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동네나 한 바퀴 더 돌아봐야겠다.

▼ 점심식사는 ‘두미 양지휴게소(010-6557-4485)’에서 할 수 있었다. 선마리나(주)에서 운영하는 두미연수원의 펜션 상가1층에 식당을 열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섬에 왔으니 회는 필수. 소·맥을 반주삼아 회정식(15,000/1인)을 주문해봤다. 하지만 막상 밥상머리에 나온 회는 맛보다가 끝나버렸을 정도로 양이 작다. 그게 미안했던지 주인장은 요즘은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며 가격을 3,000원이나 깎아주었다.

▼ 식당 근처에는 ‘샘’도 하나 있었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니 석간수인 셈. 바가지까지 놓아둔 걸 보면 마실 수도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 두미도의 명물은 ‘장군샘’이다. 위치를 몰라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통영 섬 지역의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아기장군 ‘설영’이 마신 물이라고 했다. 고려 충신 최영 장군을 떠올리게 만드는 설영은 비늘 갑옷을 입고 섬과 섬 사이를 날아다녔다는 설화 속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