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末島)

 

여행일 : ‘21. 6. 6(일)

소재지 :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트레킹 코스 : 말도항선착장→단도섬→말도등대→정자→83.8m봉→해변→112.9m봉→해안절벽→마을→여객선선착장→말도항선착장(소요시간 : 6.6㎞/ 3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군산시 서남쪽 약 50㎞ 해상에 위치한 총면적 0.36㎢에 해안선 길이가 3㎞인 자그만 섬이다. 63개의 섬으로 구성된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말도(末島)라는 지명을 얻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끝섬’이 더 익숙하단다. 섬은 규모에 비해 볼거리가 많은 편이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불을 밝힌 ‘말도등대’와 천연기념물 제501호로 지정된 ‘말도 습곡구조’가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파란 머리띠를 두르고 있는 민둥섬 ‘단도’와 신비의 천년송을 머리에 이고 있는 ‘토끼섬’, 바닷가를 따라 형성된 해안절벽도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충분하다. 특히 이런 관람 포인트들을 연결하는 탐방로를 잘 닦아놓아 둘러보는데도 어려움이 없다.

 

▼ 찾아오는 방법

말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장자도(군산시 옥도면 장자도리)’까지 와야만 한다. 말도를 왕복하는 여객선이 이곳 ‘장자도 선착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서해안고속도로 동군산 IC에서 내려와 21번 국도를 타고 부안방면으로 내려오다 ‘신시1사거리(군산시 옥도면 신시도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오면 신시도와 무녀도를 거쳐 ‘장자도’에 이르게 된다. 그건 그렇고 새만금방파제와 고군산군도의 6개 섬이 다리로 연결되면서 이곳 장자도도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고군산군도의 외곽 섬들을 한 바퀴 돌아오는 여객선의 기항지가 되었음은 물론, 상가와 펜션 등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관광지가 됐다. 시쳇말로 천지개벽했다고 보면 되겠다.

▼ 지도는 산악회에서 게재한 걸 사용했다. 중요 지점의 표시가 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트랙까지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따르면 섬의 곳곳을 빠짐없이 둘러볼 수 있다.

▼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가다보면 바다건너 저 멀리로 자그마한 섬들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가장 오른쪽은 횡경도이다. 이어서 소횡경도와 방축도, 광대섬, 명도, 보농도, 말도가 일렬로 늘어선 모양새이다. 이 가운데 방축도와 명도, 말도가 유인도이고 나머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 우리를 태워다 줄 배는 ‘고군산 카페리호’이다. 사람과 차량을 함께 싣는 이 배(총톤수 206톤, 승객 178명, 승용차 11대)는 하루에 두 번(11:00, 14:00) 이곳 장자도를 출발하는데, 관리도를 거쳐 방축도, 명도를 거친 다음 최종 목적지인 말도에 이른다. 참! 말도에서 돌아올 때는 방축도와 명도는 거치지 않고 관리도만 들른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 첫 기항지인 관리도를 거쳐 방축도에 이르니 명품바위로 입소문을 탄 ‘독립문바위’가 얼굴을 내민다. 바위는 아랫도리를 물속에 담그고 있다. 밀물 때라서 일 것이다. 그래선지 구멍을 둘러싼 바위 모양이 마치 아치처럼 보인다. 저런 모양새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독립문과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뒤에 보이는 다리는 방축도와 광대섬을 잇는 83m길이의 인도교이다. 2019년에 들렀을 때는 통행을 막고 있었는데 지금쯤을 풀렸을지도 모르겠다.

▼ 세 번째 기항지인 명도를 지나자 명도와 보농도를 잇는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군산시에서는 말도와 명도, 방축도 등 3개의 유인도서와 무인도서인 보농도와 광대섬을 인도교(人道橋)로 이어 명품 트레킹코스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지났던 구간(광대섬-명도)은 공사를 시작도 안하고 있었다.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면서도 말이다. 작년엔가 인도교 설치공사가 지지부진하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기사는 2019년 겨울부터 공사가 중단되고 있다했는데 한시라도 빨리 재개되어 이 섬들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장자도를 출발하고 50분을 훌쩍 넘기고서야 말도에 도착했다. 파도가 높다보니 더디게 달려왔던 모양이다. 거친 파도는 속도만 떨어뜨린 게 아니었다. 마을 앞에 마련된 기존 선착장에는 배를 댈 수가 없단다.

▼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곳 말도에는 파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튼실한 항구가 만들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마을 앞의 선착장에서 10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아 오늘처럼 선착지를 옮긴다고 해도 하등 문제될 게 없다. ‘배를 다른 곳에 대겠다.’는 선장님의 안내 방송 한 번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 방파제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면 길(말도길)이 양쪽으로 나뉜다. 오른쪽은 마을로 이어지는데 이따가 트레킹을 마치고 나올 때 이용하게 된다. 우리가 걷게 될 왼편은 등대로 가는 길이다. ‘말도길’로 명명된 이 해안도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물양장을 지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가정집은 눈에 띄지 않는다. 포구인데도 말이다. 마을은 아까 배를 대려고 했던 선착장 근처에 들어서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린 이 항구는 어선들의 정박항이자 어부들의 작업장, 인근 어장에서 작업하는 어선이 피난하는 포구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 조금 더 걸으니 항구를 감싸고 있는 ‘민둥섬’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오른편으로 작은 바위섬이 하나 더 있다. 이 섬들은 방파제 공사로 말도와 이어지면서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말도항’이라는 대피항이 생겨났음은 물론이다.

▼ 등대가 걸터앉은 본섬의 끄트머리를 지나자 방파제로 연결된 작은 바위섬이 얼굴을 내민다. ‘토끼섬’이라는데 바위 꼭대기에 나무 한 그루가 톡 튀어나온 게 무척 인상적이다. 대머리에 머리카락 한 올이 솟아나온 것 같다면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이 나무가 바로 바위 속에 뿌리를 내린 신비의 ‘말도 천년송’이다. 선착장에 세워놓은 안내도는 이 지역이 바다갈매기의 서식처로 5월 말경이 되면 수만 마리의 갈매기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룬다고 적고 있었다.

▼ 소나무의 생김새가 궁금해 올라가보기로 했다. 바윗길이 제법 험했지만 까짓 대수겠는가. 그렇게 만난 소나무는 과연 ‘천년송’으로 대접받을 만했다. 우선 굵기부터가 범상치가 않다. 척박하기 짝이 없는 바위틈에서 태어나. 모진 풍파에 시달려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천년’을 묵었다고 우긴다고 해서 누가 나무라겠는가.

▼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은 ‘천년송’뿐만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는가 하면, 방풍나물도 사방에 널려있다시피 했다.

▼ 다음은 민둥섬인 ‘단도’이다. 이 섬은 사방이 아찔한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있어 위로 오를 수는 없다. 단도의 또 다른 특징은 상부 전체가 푸른 초지로 덮여있다는 점이다. 오랜 풍화작용이 윗부분을 흙으로 바꿔놓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볼 때 민둥섬으로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 단도에서 방파제로 연결된 하양등대까지 가보기로 했다. 특별할 게 없는 외모였지만 멋진 조망이 펼쳐질 것 같아서이다. 등대로 연결되는 방파제는 한마디로 튼실했다. 널찍한 방파제로도 부족했던지 테트라포드(일명 삼발이)로 양옆을 감쌌다.

▼ 그런 내 짐작은 적중했다. 등대의 난간으로 오르자 ‘말도항’이 그 전모를 드러낸다. 빨강등대가 자리한 맞은편 방파제 안쪽으로 널따란 포구가 들어앉았는데 호수처럼 아늑하고 아름다웠다.

▼ 시선을 왼쪽으로 옮기자 이번에는 등에 지고 걸어왔던 풍경들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단도와 토끼섬. 그 오른편 본섬의 언덕에는 말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등대가 걸터앉아 있다.

▼ 아까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나가는데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들이 그 정체를 드러낸다. 그 가운데서도 ‘말도항 외곽공사 보강공사’ 현장사무실이 눈길을 끈다. 동·서방파제와 파제제(波除堤) 등의 보강공사를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맞다. 4년쯤 전인가 들렀던 가거도에서도 이런 종류의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서해 먼 바다에서 들이닥치는 파도를 가장 먼저 맞다보니 시설물이 자주 부서진다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 말도 역시 군산 앞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이로구나.

▼ 이 현장사무실을 왼편에 끼고 올라가면 ‘말도등대’를 만날 수 있다. 길은 널찍하다. 거기다 시멘트로 포장까지 해놓아 소형 차량쯤은 너끈히 지나다닐 수 있겠다.

▼ 언덕으로 올라서니 팔각 등탑의 하얀 등대 하나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올랐다. 외모는 특이할 게 없다. 하지만 호미곶등대와 함께 102년이나 된 역사가 깊은 등대다. 말도등대(1909년)보다 먼저 불을 밝힌 등대는 국내 1호인 팔미도등대(1903)와 부도(1904), 거문도(1905), 우도(1906)가 전부라고 한다. 뒤를 이어 어청도(1912)와 마라도(1915)에 차례로 불을 밝혔단다. 말도를 관광할 때 꼭 찾아봐야 하는 명물로 자리매김 된 이유이다.

▼ 등대의 앞에는 ‘스탬프 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등대 스탬프투어’를 위한 시설로 등대여권을 소지한 일반인이 저곳에 비치된 스탬프를 여권에 찍으면 된다. 일정 수 이상의 등대방문을 인증한 여행자들에게는 국립등대박물관에서 등대별 건축미를 반영한 특색 있는 메달을 수여한단다. 참! 그 옆에는 1909년 당시의 것으로 여겨지는 등대가 미니어처로 만들어져 있었다. 20세기 초반에 선보인 콘크리트 건축물, 게다가 높다랗게 지은 건축물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건축양식이었다고 한다.

▼ 등대 위로 올라가본다. 문이 닫혀있는 등탑부분은 들어갈 수 없기에 기단 위로 올라가서 주변을 바라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서해 먼 바다. 등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서해의 쪽빛바다는 바람이 할퀴어 하얀 백파가 일고 있었다. 하지만 어부들에게는 그런 바다까지도 삶의 현장이 되는가 보다. 뒤집힌 바다의 수평선 위에 여러 척의 어선이 떠있는 걸 보면 말이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이번에는 ‘말도항’이 눈에 들어온다. 고군산군도의 서측 끝에 위치하고 있는 저 항구는 주변 어장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의 대피항 기능은 물론, 중간 보급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먼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거친 파도를 막아줄 서방파제와 동방파제가 1998년에 완공되면서부터이다.

▼ 고개를 더 돌리자 잠시 후에 걷게 될 능선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통신시설이 올라앉은 봉우리가 섬에서 가장 높은 ‘112.9m봉’이다. 능선으로 연결되는 초입에는 관사로 여겨지는 부속건물이 지어져있었다. 소형선박까지도 위성항법장치(GPS) 등 첨단장비를 갖춘 요즘은 등대의 무인화 추세가 대세인데도 이곳은 아직까지 유인등대로 남아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한때 이 등대도 역시 무인화로 결정이 났었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아직도 유인등대로 남아있단다.

▼ 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왼편 능선으로 올라선다. 해안을 둘러봤으니 이젠 산도 올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 탐방로는 한마디로 곱다. 널찍한 것은 기본. 조금이라도 가파르다싶으면 어김없이 나무계단을 놓았다. 참! 부지런한 아줌마들에게는 횡재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바닷바람을 머금은 약쑥이 지천으로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 능선을 따르다보면 바닷가가 내려다보이기도 한다. 탐방로 아래에서 얼굴을 내미는 절벽은 아찔할 정도로 높고 험했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는 망설임 없이 오른편으로 향한다. ‘83.8m봉’을 다녀오기 위해서이다. 이어서 울창한 산죽 숲길을 잠시 걷자 정자가 나타난다. 몇 가지 운동기구까지 갖춘 걸로 보아 섬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분명하다.

▼ 몇 걸음 더 걸으니 ‘83.8m봉’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있다. 이제 눈이 바빠져야 할 때이다. 말도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중엽 한양에서 심판서라는 사람이 유배를 오면서부터였다고 전해진다. 그를 모시는 제당(영신당)이 마을 근처의 숲에 있다했으니 이 언저리쯤 되지 않겠는가.

▼ 하지만 제당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숲을 헤치며 기다란 계단이 놓여있을 따름이다. 그렇게 올라선 ‘83.8m봉’의 꼭대기에는 벤치를 갖춘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대를 둘러싼 나무들 때문에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 하산은 반대 방향의 데크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산허리를 반 바퀴 돌아 아까 산으로 올랐던 지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구간은 숲이 잠시 열리면서 고군산의 풍경을 살짝 엿볼 수도 있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계속해서 능선을 탄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이동통신사의 중계탑을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우린 또 하나의 삼거리와 맞닥뜨린다. 말도의 유일한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이곳에서 나뉜다.

▼ 마을 쪽의 구릉에는 작은 텃밭들이 줄지어 있었다. 식탁에 자주 올라야만 하는 야채류는 직접 재배해서 먹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왼편으로 내려가고 본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곳이니 일부러 찾아볼 필요가 없다는 산행대장의 조언이 있었지만 말도에서 하나밖에 없는 해변을 어찌 둘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가팔랐다. 되돌아 올라올 때를 걱정했었다면 어느 정도일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 그렇게 한참을 내려서자 산봉우리 하나가 앞을 막는다. 그런데 그 풍경이 자못 괴이하다. 능선으로 이어진 부분이 잘록한 탓에 본섬에 딸린 부속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것이다.

▼ 잘록한 곳에서 데크 계단을 내려서자 제법 너른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반달형으로 움푹 파인 해안에 모래가 축적되면서 그럴듯한 해변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물만 갖추어진다면 해수욕장으로 이용해도 부족함이 없겠다. 그건 그렇고 모래사장의 왼편에는 무인도인 ‘보농도’가 있다. 우리 같은 여행자들에게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섬이다. 하지만 찾아볼 날도 멀지 않았다. 말도와 보농도를 잇는 제1교(308m)와 보농도와 명도를 잇는 제2교(410m)가 2022년도에 완공된다고 했으니 말이다. 명도와 광대섬을 잇는 477m짜리 구간의 공사는 아직까지 시작도 안했다지만 까짓 조금만 더 속도를 내면 되지 않겠는가.

▼ 능선의 반대편은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서해 먼 바다에서 들이닥친 파도가 저런 모양새의 해안절벽을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저 바다는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있다. 대륙붕인데다 연안수와 황해난류의 영향으로 조기·고등어·새우·갈치 등 어족의 회유가 많아 4∼5월 성어기에는 각지에서 어선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 이동통신중계탑으로 되돌아와 또 다시 능선을 따른다. 이어서 몇 걸음 더 걷자 또 다른 갈림길. 이번에는 오르막길이다. 말도에서 가장 높은 ‘112.9m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니 당연하다 하겠다.

▼ ‘112.9m봉’은 불가침 구역이었다. 안테나로 여겨지는 군의 시설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입은커녕 사진도 찍지 말라는 경고판까지 걸어놓았다. 이를 어길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의거 처벌을 받는단다.

▼ 그 옆에는 은강교회의 기도원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오래 전에 운영을 중단했는지 잡초더미 속에 묻혀있었다.

▼ 삼거리로 되돌아가 조금 더 내려가자 왼편 산비탈을 따라 기다란 나무계단 놓여있다. 이곳 말도를 세상에 알리는데 일조한 ‘말도 습곡구조(褶曲構造)’로 내려가는 길이다.

▼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 중간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모처럼 시야가 열리는 곳이니 잠시 쉬어가라는 모양이다.

▼ 전망대에 서자 고군산(古群山)의 풍경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바다는 물론이고, 그 너머에 있는 선유도와 장자도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여기서 고군산은 ‘옛날 군산’을 의미한다. 현재의 군산은 하나의 도시이지만 원래는 지금의 군산 앞바다에 떠있는 섬들을 아우르는 지명이었다고 한다. 바다 위에 점점이 솟아있는 섬들이 마치 산봉우리의 무리처럼 보여 ‘군산(群山)’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 길고 긴 나무계단을 다시 한 번 내려서자 드디어 바닷가이다. 이 일대의 해안절벽은 약 5억9000만 년 전인 시·원생대 선캄브리아기(Precambrian time)에 만들어진 지질구조라고 한다. 최소 3회에 걸친 대규모 습곡작용의 흔적이 또렷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게 국내의 다른 장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단다. 그래서 정부는 이 일대를 ‘말도 습곡구조’라는 이름을 붙여 천연기념물 501호로 지정해 놓았다. 그만큼 학술적인 가치가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습곡이란 횡압력에 의해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층 또는 지층의 상부에 잡힌 주름을 말한다.

▼ 바닷가로 내려서자 기암절벽이 펼쳐진다. 바위는 흥에 겨운 누군가가 웨이브를 준 듯 휘어져 있다. 그래서일까? 얼핏 눈썹으로 보이기도 한다. 평소에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지형이라는 얘기이다. 맞다. 선캄브리아기는 고생대 이전의 매우 오래된 지질시대라서 이 시대의 암석은 대부분 심한 변성작용을 받아 원래의 암석 구조가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곳은 연흔(漣痕: 바람이나 물의 움직임에 의해 퇴적물의 표면에 형성되는 파상의 흔적 화석)과 경사진 층리 등의 퇴적구조를 아직까지도 잘 간직하고 있단다.

▼ 반대편도 역시 해안절벽이다. 생김새는 조금 달라도 저곳 역시 ‘말도 습곡구조’의 일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지질에 대해 문외한이 나로서는 저게 어떤 구조인지를 헤아릴 수는 없다. 그저 국내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구조들(충상의 듀플렉스 구조, 여러 단계에 걸쳐 만들어진 중첩된 습곡 등)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는 수준에서 마무리해볼 따름이다.

▼ 이젠 마을로 내려갈 차례이다. 조금 전 내려왔던 길을 되돌아 올라가다 중간쯤에서 이번에는 왼편으로 향한다. 이어서 길게 놓인 나무계단을 얼마큼 내려섰을까 숲이 열리면서 말도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컬러풀한 지붕의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아니 바다만 없다면 영락없는 산촌이다.

▼ 자그만 마을이지만 그럴듯한 교회도 들어서있었다. 하지만 마을을 둘러보는 것까지는 삼가기로 했다. 요즘은 관광까지도 언택트가 대세라 하지 않던가. 설상 들어간다고 해도 마을회관을 빼면 좁은 골목에 낡은 집들이 전부 아니겠는가.

▼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왼편에 제법 너른 공터가 보인다. 옛날에 초등학교(분교)가 있던 자리라기에 들어가 보니 공덕비가 몇 개 세워져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얼룩무늬 건물은 예전에 군인들이 근무하던 시설이란다.

▼ 교사(校舍)는 이미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폐자재만 가득했다. 웃자란 잡초에 반쯤 가려있는 ‘책 읽는 소녀상’과 반공소년상‘이 옛날 이곳에 초등학교가 있었음을 짐작케 해줄 따름이다.

▼ 마을을 빠져나오면 조그마한 포구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배는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 여객선용 부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고 왔던 배도 원래는 이곳에 대려고 했었다.

▼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도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 붉은 지붕을 한 ‘여객선대기소’는 물론이고 여행 포인트를 그려 넣은 ‘말도 안내도’와 천연기념물 제51호인 ‘말도 습곡구조’에 대한 설명판도 이곳에 세웠다.

▼ 선착장으로 나가니 건너편 해안절벽이 성큼 다가온다. 그러면서 조금 전 능선의 너머에서 보았던 바닷가 풍경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아니 아까보다 훨씬 더 또렷해졌다. 이번에는 영락없는 눈썹의 모양을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인상을 잔뜩 쓰고 있다. 선착장에 세워놓은 안내판은 저 모양새를 ‘물결 모양의 무늬’인 연흔(連痕)으로 적고 있었다. 이곳 말도는 저런 지층 말고도 사층리(경사진 층리) 등의 퇴적구조를 지금까지 잘 간직하고 있단다.

▼ 이젠 우리를 태우고나갈 여객선만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배를 ‘말도항’에 대겠단다. 아직도 파도가 높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고 항구로 나갈 걱정은 필요 없다. 옛날에야 고개를 넘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해안도로를 잘 닦아놓았기 때문이다. 물결무늬 기암절벽을 끼고 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히려 눈이 즐거워진다.

▼ 항구로 되돌아오니 섬으로 들어올 때는 보지 못했던 상점이 눈에 띈다. 카페와 민박을 겸한다는데 1.6리터들이 맥주 페트병 하나에 새우깡 하나를 집어 드니 1만원을 달랜다. 이곳까지 오는데 들어간 물류비가 포함되었나보다. 참! 부근에는 또 다른 편의시설인 펜션과 식당도 들어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