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544)

자작 산문

연가

2004. 3. 31. 10:58

사랑하면 애기가 된다?
그래 팔위에 얹힌 그니는 분명 애기다.
여장부보단 공주병이 낫다는 고언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배란다 넘어
슬로프의 휘황한 조명에 넋을 잃고
열어제킨 창으로 스미는 쌀쌀하지만 결코 맵지 않은 바람에 취했던...
분위기 띄우려 나눠마신 와인 한잔에 취했나?
언제 가슴설래었냐며 내어준 팔 베개 삼아 새록새록 잠들어있다.

 

눈을 여니 어리는 속눈섶...
파르라니 떠는게 아마 꿈속을 헤엄치나 보다.
그 꿈 부디 악몽이 아니길 빌며 행여 깰세라 콧김까지 죽여본다.

 

"팔위에 얹힌 그니의 머리무게가 느껴져 올 때...
품에 안긴 그니의 몸에서 향기 아닌 다른 내음이 풍겨올 때..."
어쩌나~ 舊友가 말한 이런 느낌 영원히 없길 바랬는데....
머리 밑 팔목은 그런 내 마음 몰라라 서서히 감각을 잃어간다.

 

비...
때아닌 겨울비가 심난했는데...
어느덧 눈으로 변한 비발디 초입이 그리도 반가울 수 없다.
"그려~ 평소에 좋은 일 많이 하면 복 받는겨~"
덩달아 반달을 그리는 이쁘디 이쁜 그니 입술은 상현달? 아님 하현달?

 

따스한 탓에 슬로프 컨디션은 별로다.
스키에 흥미를 못느끼는 그니를 위해 오늘은 에스키모의 개가 되어보자.
재빨리 비닐봉투 한장 구해 그니를 앉혀본다.
스키어 천지에 엉덩이 썰매라... 이걸 보고 群鷄一鶴?
색바랜 사진속에서 빠져나온양 동심으로 돌아간 그녀는 활짝 웃고 있다.

 

새벽 세시...
행여나 깰새라 조심조심...
인파를 피하려니 새벽코스를 택할 수 밖에 없다.
인구밀도가 높은걸 자랑이라도 하려는걸까?
리프트 앞 늘어선 줄은 자정전보다 그리 짧아진 것 같지도 않다.

 

산행 때 다친 오른손목 인대...
통증에 힘들어도 고난도 코스를 택할 수 밖에 없다.
사람에 부대끼는 것 보다야 한두번 딩구는게 더 나으니까.

 

그리나 후회는 곧바로...
속도감에 가뜩이나 시야가 좁은데
짙은 안개 때문에 50미터 앞이 안보일 정도다.
거기다 무리한 스틱사용이 손목의 통증을 더해준다.
본전생각에 두 번을 허덕이다 더 이상의 모험은 삼가기로...

 

요기 하러 들른 지하광장
눈에 띄는 인도산 머리핀에서 눈길을 땔 수 없다.
금은세공의 정교함에 끌려 브로치까지 하나 더...
곤히 잠든 그니의 침대머리에 놓고 마음에 들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그니 옆에...

어느새 팔위엔 둥그스런 달덩이가 얹혀있다.

'자작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업드려 살다보면  (0) 2004.05.11
난타  (0) 2004.04.07
집착  (0) 2004.04.06
봄날의 소고  (0) 2004.03.30
연모  (0) 2004.03.25

가을이 짙어간다.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개울가에는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성급한 나뭇잎들은 서릿바람에 우수수 무너저내린다. 나는 올 가을에 하려고 예정했던 일들을 미룬 채 이 가을을 무료히 보내고 있다.

 

..................... 생략....................................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자취를 뒤돌아 보면, 그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순례의 길처럼 여겨진다. 지나온 과거사는 기억으로 우리의식 속에 축적된다. 대개는 망각의 체에 걸러져 가맣게 잊어버리지만, 어쩐 일은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하다.

 

그러나 지나온 과거사가 기억만으로는 현재의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사를 자신의 의지로 소화함으로써 새로운 눈이 열리고 귀가 트인다. 그래서 그 과거사에서 교훈을 얻는다. 망각은 정신위생상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 망각 때문에 어리석은 반복을 자행할 수도 있다.

 

보다 바람직한 자기관리를 위해서는 수시로 자신의 삶을 개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남의 눈을 빌어 내 자신의 살림살이를 냉엄하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자기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에게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작은 이익에 눈을 파느라고 큰 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탐욕스런 사람들은 눈앞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려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 중략....................................

 

내 솔직한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내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 후략..................................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바깥 소리에 팔릴게 아니라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스승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깃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재대로 관리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花信  (0) 2004.04.09
어느 아침  (0) 2004.04.03
화합  (0) 2004.04.02
아빠 마음  (0) 2004.03.31
산을 좋아하는 이유  (0) 2004.03.29

"점심 안가져가도 괜찮아요. 친구들이 준비해 온거 같이 나누어 먹으면 되니까요"

 

평소 우리집 애들의 나들이 때에 하는 말이다.

 

요즘 부쩍 가을을 타는지 만사가 싫었고, 그냥 의미없는 외로움에 빠지다보니 애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아침에 밥 챙겨주는 것까지 얽매임으로 생각되고... 모든게 귀찮아져 애들에게 신경질 부리는 일까지 잦았던것 같다.

 

오늘은 그동안의 미안함도 해소시킬겸 애들과 함께 볼링 몇게임 한뒤 모처럼 외식까지 하려 했는데 둘째가 친구들과 야외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야외에 갈때에 필수가 김밥인데도 김밥을 말줄 모르기에 나도모르게 둘째에게 짜증을 부리게 되고, 도시락이 필요없다는 둘째의 어른스러움에 더 마음이 아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나들이 따위는 왜하는냐고 야단치는건 부족함이 많은 아빠의 투정이 아닐까?

 

일반 도시락이라도 가지고 가겠다는 둘째의 대답을 듣고서야 나들이를 승낙하고, 일주일분 부식거리도 살겸 삼부자가 양제동 하나로마트에 들른후 돌아오는 길에 저녁은 피자로 해결....

 

다섯시에 일어나 둘째의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는데, 큰애가 자기것도 싸 달랜다. 오늘 태권도 관원들 데리고 승단심사에 가는데 소풍기분좀 내겠다나?

 

도시락 하나엔 밥만, 나머지 하나에 반찬을 담으니 공간이 넓어 꽤 들어간다.

김치는 비닐로 싸고, 고기산적, 동그랑땡, 쏘쎄지는 두개씩 넣은 다음 위에다 케찹을 뿌리고, 단무지, 멸치볶음은 조금, 계란후라이 하나, 오이는 몇 조각 넣은 다음 고추장을 살짝 뿌려주고....

 

내가 생각해도 이정도면 훌륭한 나들이 도시락이 아닐까 한다. 몇번을 애들에게 보이며 자랑한 다음 포장을 해 주었다.

 

거기다 어제 사온 밤고구마와 밤을 쪄서 넣고, 후식으로 사과 두개, 사이다캔 2개에, 며칠전 주유소에서 받은 생수 두개를 챙기게 한 후, 용돈 2만원.....

 

싱글벙글하며 힘차게 현관을 나가는 둘째의 뒷모습이 너무 너무 보기 좋고, 모처럼 부모노릇한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조금 후 큰놈이 부르는 소리에 현관으로 나가니 자기도 용돈달라며 손을 벌린다.

 

기분 좋은 김에 2만원을 주니 얼마만에 받아보는 용돈이냐며 입으로 여러번을 쪽쪽거리며 집을 나선다. 사실 큰애 아르바이트 시작한 후로는 용돈 한푼 주어본 일이 없었다.

 

다들 집을 나간 후의 집안에 적막이 찾아든다.

 

또 다시 찾아온 외로움을 피해보려 창문있는대로 다 열어 제키고 대청소를 시작한다. 현관까지 열면 좋겠으나 팬티만 입고 청소를 하기에 조금은 덥지만 참을 수 밖에 없다.

 

땀 뻘뻘 흘리며 청소마치고 찬물로 샤워하니 외로움이 어디로 도망갔나 보다.

 

지금은 오디오에 클레식 CD올려 놓고 나른한 휴식 중...애들 반대로 파출부 부르려던게 수포로 돌아가 원망을 제법 했더랬는데, 오늘 보니 애들 의견에 따른게 잘된거 아닌가 한다. 잠깐이나마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아빠! 아침식사 거르지 마세요"

이른 세벽 기숙사에 들어간 있는 둘째로부터의 전화입니다.

 

벌써 아빠를 챙길 정도로 저렇게 훌쩍커버렸나봅니다.

 

사무실에 출근해 언젠가 써 두었던 글을 찾아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전부터도 어른스러웠던 아이였군요.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花信  (0) 2004.04.09
어느 아침  (0) 2004.04.03
화합  (0) 2004.04.02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0) 2004.03.31
산을 좋아하는 이유  (0) 200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