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터키 여행
여행일 : ‘18. 8. 16(목) - 8.24(수)
일 정 : 이스탄불(16~17)→아야스(17)→투즈괼(18)→카파도키아(18~19)→이고니아 콘야(19)→안탈리아(20)→파묵칼레(20)→에페소(21)→트로이(22)→이스탄불(23),
여행 다섯째 날 : 파묵칼레(Pamukkale)
특징 : 가장 기억에 남는 터키의 명소 세 개를 꼽으라면 난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 그리고 파묵칼레를 선택하겠다. 이스탄불이 동·서양 문물의 교차로 성격이 짙다면 카파도키아는 특이한 자연지형으로 명함을 내민다. 파묵칼레는 이 둘을 합쳐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석회층으로 이뤄진 온천지대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로마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런 복합 세계유산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라고 한다. ’목화(파묵)의 성(칼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파묵칼레는 하얀 온천지대 하나만으로도 독특한 풍경을 보여준다. 생긴 모습은 흡사 계단식 ’다랭이논‘을 닮았다. 소금가루를 겹겹이 쌓아놓은 듯 하얀 석회층이 절벽 한 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빙산이나 설산 같다. 석회를 머금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그 성분들이 층을 이루었고 그 층마다 푸른 물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맑은 날이면 석회층은 물과 함께 청아하게 빛난다.

▼ 차에서 내리면 상가의 앞이다. 기념품과 먹거리 가게 등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있다. 그만큼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특히 수영복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가 눈길을 끈다. 팔던지 아니면 빌려준다 치더라도 결국에는 물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곳 파묵칼레는 현재 수영복 차림으로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시키고 있는 걸로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 주변에는 너른 황무지가 펼쳐지고 있다. 그렇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저곳이 바로 ’복합 세계유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히에라 폴리스‘의 옛터이기 때문이다.

▼ 조금 더 들어가면 ’남문 매표소‘가 나온다. 파묵칼레에 들어가려면 소정의 입장료를 내야한다는 얘기이다. 매표소 옆에 ’현금자동인출기(bankamatik)‘가 들어서 있다는 것은 현금으로만 매표가 가능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터키 리라(TRY)‘가 없는 사람들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bankamatik‘에서 환전이 가능하다니까 말이다. 참고로 이곳 남문매표소 말고도 상부에 위치한 북문에 또 다른 매표소가 있다.

▼ 잠시 후 성벽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문 하나가 뚫려 있다. 5세기에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남문이란다. 그런데 키가 큰 서양인들은 허리를 굽히지 않고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하다. 문의 생김새 또한 안내판과는 조금 상이하다. 의문투성이지만 남의 나라 문화재이니 왈가왈부할 필요까지는 없겠다.


▼ 안으로 들어서면 ’히에라 폴리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아까는 빈터만 보였는데 이번에는 유적의 실체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다.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Pergamon) 왕국의 ‘에르메네스 2세’에 의해 처음 세워져 로마 시대를 거치며 오랫동안 번성했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들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단다. 다른 한편으로 ‘히에라’라는 이름이 페르가몬의 전설적 건국자인 텔레포스(Telephos·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아들)의 아내인 히에라(Hiera)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얘기도 있으니 참조한다.


▼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 이어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번성했다.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족인 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파묵칼레’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지배세력의 변천 속에서도 지속적인 번영을 누려왔던 히에라폴리스는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는 폐허가 되었다. 대지진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도시를 1887년 독일의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하였고 이후 발굴 및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저곳에는 로마시대의 원형 극장과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 유적이 남아 있는데 최대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원형 극장은 현재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란다. 또한 증기가 발생하는 단층 위에 아폴로신전이 세워져있는가 하면 세베루스(Severus) 시대에 만들어진 극장도 있단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유적을 동시에 갖추었다는 특이성으로 인해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복합)으로 지정되었다.

▼ 탐방로의 대부분은 판석(板石) 아니면 데크로 깔았다. 문화재의 훼손을 조금이라도 더 막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 조금 더 걷자 잘 정비된 광장이 나온다. 온천지대(석회층)와 히에라폴리스의 중간쯤 되는 곳인데 황량함 일색이던 조금 전의 풍경과는 달리 야자수 등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파고라(pergola의 일본식 발음)’나 벤치 등의 편의시설들을 갖추었는가 하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에다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간이상점도 몇 보인다. 여행객들을 위한 쉼터용으로 조성된 공간인 모양이다.


▼ '목화 성'이란 이름처럼 새하얀 석회층이 환상적인 ‘파물칼레’의 첫인상은 맑고 청아했다. 다랑이 논을 빼다 닮은 흰 석회층 위로 에메랄드빛 온천탕이 옹기종기 모였다. 석회암 위로 온천수가 흐르면서 계단식 논과 같은 풀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고인 물에 하늘이 비치는 풍경은 한마디로 아름답다. 거대한 그림 내지는 아름다운 영화 속 한 장면을 마주한 느낌이다.



▼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워서 초현실(超現實)처럼 느껴진다. 터키어로 파묵은 목화, 칼레는 성이라는 뜻이다. 사실 이 부근은 목화가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단다. 또한 이곳 파묵칼레는 염색 과정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 최초로 안약이 개발된 곳이기도 하다.

▼ 간혹 화보(畵報)를 찍고 있는 신혼부부도 눈에 띈다. 베일을 쓴 신부가 활짝 핀 흰 꽃처럼 웃는다. 연미복의 신랑 표정은 더할 수 없이 행복하고 구경꾼들 또한 더할 수 없이 풍요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들의 행복에 전이된 나는 손을 흔들어주는 것으로 답례를 보내준다. 낯설면서 낯설지 않은 이런 느낌을 위해서 이곳 터키까지 날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 그 아래에 놓인 꽃바구니 근처에는 아가씨들 몇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신부를 따라온 ‘들러리’들인 모양이다.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원님 덕분에 나발분다’는 격이라고나 할까?

▼ 사방팔방이 온통 흰빛이다. ‘목화의 성’이라는 ‘파묵칼레’에 딱 맞는 풍경이라 하겠다. ‘파묵칼레’는 온천수가 빚어낸 석회암 덩어리를 빗대어 붙인 지명이다. 석회 성분을 다량 함유한 35℃의 온천수가 수 세기 동안 바위를 타고 흐르면서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은 것이란다.


▼ 용액의 흐름을 보여주는 ‘층리’가 사방으로 펼쳐진다. 녹은 석회암이 저런 물결 모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치 다랑이논처럼 보이기도 한다. 석회암 위로 흐르는 온천수는 류머티즘과 피부병, 심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져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특히 로마시대에는 여러 황제와 고관들이 이곳을 찾았다.



▼ 가끔은 석회층에 걸터앉아 멍하니 사색에 잠기는 여행자들도 보인다.

▼ 저 석회층들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색이 변한단다. 푸르던 물은 희게 변색되기도 하며 해질녘에 띠는 색깔은 붉은빛이란다. 그래서 여행전문가들은 두세 시간 석회층과 인근 유적만 둘러보고 훌쩍 떠나는 것은 삼가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고스란히 재현된 옛 목욕탕에라도 들어가 볼 것을 추천한다. 후예들이 폐허가 된 유적지에 온천물을 담아 언덕 위에 온천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수영장 밑바닥에는 무너진 거대한 기둥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주변은 카페처럼 꾸며져 있으니 다른 여행자들과 미소라도 나누며 파묵칼레가 시간에 따라 빚어내는 색의 마술을 감상해보라는 것이다.


▼ 물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신발을 벗어 가이드에게 맡기고는 맨발로 물에 들어간다. 맨발로만 입수(入水)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보기와 달리 미끄럽지가 않다. 부담 없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정도로 온도도 적당히 따뜻하다. 창백한 석회암에 갇힌 푸른 물빛이 무척 차가워 보이지만 막상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면 겨울날의 이불 속처럼 따뜻하다는 얘기이다. 예전에는 탈의 후 목욕이 가능했지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1988년 이후부터는 발만 담글 수 있단다. 그럼에도 주위에는 수영복을 입은 여행자들이 가끔 눈에 띈다. 아니 몸 전체를 물속에 담그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 수로(水路)도 보인다. 최근 온천수의 수량이 점점 줄어든다고 하더니 이와 관련된 시설이 아닐까 싶다. 오전에 물을 막아 놓았다가 오후에만 물을 흘려보낸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도랑에 발만 담그는 데에 만족하고 온천은 오늘 저녁에 머무는 지역의 호텔에서 즐겨볼 일이다. 마침 온천수로 수영장까지 만들어놓았다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이 지역의 호텔들은 대부분 온천수를 이용하는 수영장들을 갖고 있다. 우리의 온천과는 다른 개념으로 남녀 공용이 대부분이니 수영복과 수영모는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 파묵칼레(석회층)의 오른편에는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의 유적이 있다. 지금은 비록 허물어져가는 유적에 불과하지만 저곳에는 냉·온탕과 스팀 사우나 방, 대규모 운동시설, 호텔 같은 귀빈실 등 귀족들의 휴양지로 완벽한 시설을 갖췄다고 한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니 말 다했다. 그러던 것이 1354년 이 지방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해 저렇게 폐허로 변해있다는 것이다.




▼ 반대편으로 가보기로 한다. 그쪽에도 오래된 유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데크로드를 따라 잠시 걷자 ‘중세에 지어진 요새(medieval fortress)’가 나온다. 본래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힘들 정도로 허물어져버린 이 요새는 방어벽과 더불어 3개의 2층 4각탑으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자연 침전 석회암 분지 윗부분에 있는 혀 모양의 땅을 둘러막으면서 파묵칼레와 Lycos계곡을 조망하던 요새란다. 요새의 건축연대는 비잔틴제국과 셀주크터키간의 마찰이 한창이던 13세기 초반으로 추정되며, 그 후 14세기 후반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 안내판의 제목에 적힌 ‘FRIGYA(프리지아)’는 BC 1500년경 유럽에서 인도 유럽어족(語族)의 프리지아인이 침입하여 선주민을 정복하고 터키에 세운 프리지아왕국을 말하는데.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황금으로 변한다’라는 전설로 유명한 마이다스왕도 프리지아왕국의 왕이었다고 전해진다. 히에로폴리스가 처음으로 지어진 연대가 기원전 546년까지 존속했던 프리지아왕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에서 적었지 않나 싶다.



▼ 반대편에도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은 사람들이 뜸하다. 온천수에 발을 담그는 이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 광장의 끄트머리에 서자 이번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아까 우리가 들어가 봤던 석회층에 여행객들이 만들어내는 길고 긴 줄 하나가 보인다. 바지를 걷고 설산을 걷는 것처럼 보여 이채롭다. 고개를 돌리니 오른편으로도 하얀 석회층이 끝없이 펼쳐진다. 한마디로 장관이라 하겠다.

▼ 구름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어둑어둑해져 버린다. 그리고는 햇살 한줄기, 흡사 노을이라도 된 느낌이다. 그러자 태양 아래에서 빛나던 하얀 석회질과 푸른 물이 묘한 분위기로 변한다. 불그스레한 노을빛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가히 환상적이다. 문득 석양이 만들어낼 풍경을 떠올려본다. 이 정도로도 저런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과연 그 정점은 어디쯤일까? 사람들이 이곳 파묵칼레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면서 일출과 함께 일몰을 꼽는 이유일 것이다.


▼ 파묵칼레에서의 자유시간이 끝나자 가이드가 우릴 불러 모은다. 그리고는 바로 곁에 있는 고대도시 ‘히에라 폴리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국가를 소아시아의 고대왕국인 페르가몬이 재건한 것으로 초대 왕비의 이름을 따라 ‘히에라 폴리스’라고 지었다고 한다. ‘히에라’는 당시 내조와 존중, 사랑의 아이콘이었단다. 아늑하고 따뜻한 땅 파묵칼레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 하겠다.


▼ 설명을 끝낸 가이드는 유적지로 들어가는 것을 생략한 채로 남문으로 향해버린다. 아까 들어왔던 길이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 또한 같을 수밖에 없다. 히에라폴리스의 유적들은 그저 곁눈질이나 하라는 모양이다. 곧장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겠다니 우리 부부만 남겠다고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덕분에 우린 최대 1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로마시대의 원형극장과 신전 등 귀한 문화유적들을 가까이서 볼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게 바로 패키지여행의 단점인 것을. 참고로 파묵칼레의 탐방코스는 북문 매표소에서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석회층(파묵칼레)으로 내려오는 길에 히에라폴리스 유적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회층을 구경하고 난 다음에는 우리와 같이 남문으로 나가면 된다.


▼ 나오는 길 왼편에 히에라폴리스의 유적들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로마인들의 유적인 ‘히에라폴리스’는 온천지대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아니 서로 섞여있다고 보는 게 옳을 수도 있겠다. 로마인들의 휴양지가 갖는 가장 큰 특징아 아닐까 싶다. 목욕을 좋아하는 로마인들은 우선 자연 용출장이 있는 곳에다 휴양지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목욕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어김없이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연극이나 스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극장과 원형 경기장도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 ‘파묵칼레’를 로마인들의 대표적인 휴양지 가운데 하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 주차장 근처에 이르니 바위에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게 보인다. 얼핏 들은 얘기로는 무덤 유적이라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이곳에는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다고 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의 하나인 이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단다. 아무튼 목욕탕과 어울려 있다는 점은 보는 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선지 일부 전문가들은 이 석관이 치료와 휴양을 위해 몰려들었던 병자들의 무덤이라는 주장을 피력하기도 한다.

▼ 하룻밤을 머문 스파 호텔 ‘콜로새 테르말(Spa Hotel Colossae Thermal)’
파묵칼레 유적지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이 호텔은 낡아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많은 부대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온천수영장과 야외수영장, 스파 센터, 터키식 목욕탕은 물론이고, 이런 부대시설과 관련된 작은 샵(shop)들을 갖고 있다. 또한 5성급 호텔답게 객실이 깨끗할 뿐만 아니라 제공되는 식사의 질 또한 뛰어나다. 다만 시설이나 객실의 배치가 복잡한데다 엘리베이터(elevator)가 없다는 점은 단점이라 하겠다.

♧ 에필로그(epilogue), 파묵칼레 일정도 역시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히에라폴리스의 유적들은 멀리서 눈요기만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고,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박물관 또한 들어가 보지를 못했다. 북문에서 시작해서 남문으로 빠져나오는 코스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데도 남문으로 들어갔다가 남문으로 나온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온천욕을 한 것도 아니다. 유물들을 옆에 두고 하는 온천욕이 일품이라고 했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또 하나, 이곳 파묵칼레는 터키 문화관광부가 추천하는 일출 명소이다. 떠오르는 해가 붉게 하늘을 물들이면 불투명한 하늘색이었던 온천수가 햇볕을 받아 거울처럼 빛난다는 것이다. 마침 여행 일정이 파묵칼레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것으로 짜여있기에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그냥 에페소로 출발을 해버리고 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새벽잠까지도 설치게 해가면서 말이다. 온천욕만 해도 그렇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즐겼다는 온천욕을 하면서 한번쯤은 안토니우스가 되어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이번 여행은 ‘패키지여행은 가이드의 마음대로’라는 유언(流言)이 정설이라는 게 확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구경거리가 많은 곳, 특히 유적들이 많은 곳은 가급적 자유여행으로 찾겠다는 결심이 굳어진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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