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터키 여행
여행일 : ‘18. 8. 16(목) - 8.24(수)
일 정 : 이스탄불(16~17)→아야스(17)→투즈괼(18)→카파도키아(18~19)→이고니아 콘야(19)→안탈리아(20)→파묵칼레(20)→에페소(21)→트로이(22)→이스탄불(23),
여행 다섯째 날 : 안탈리아(Antalya) 구시가지(Old town)
특징 :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중심도시로 상주인구가 1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여름철이면 이 지역의 인구는 급증한단다. 3000m를 훌쩍 넘기는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웅장한 토로스산맥(Toros Daglari)을 낀 자연경관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코발트색의 바다, 연중 300일 이상의 맑은 날씨, 부드러운 백사장 등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기 때문이다. 거기다 주변에 많은 유적지까지 품고 있으니 두말하면 뭐하겠는가. 이곳 안탈리아가 터키의 관광 수도로 꼽히는 이유이다. 이 도시는 기원전 159년 페르가몬의 ’아타로스 2세(Attalus II)‘의 ’땅위에 천국을 건설하라’는 명령에 따라 건설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옛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딴 ‘아딸레이야(Attaleia)’였다. 하지만 기원전 133년 로마인의 손에 넘어간 것을 시작으로 비잔틴·몽골·베네치아·제노바 등에게 지배당했으며, 15세기에는 투르크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또한 1919년에는 이탈리아가 점령했다가 3년 후 돌려주는 등 역사의 굴곡을 여러 번 겪었다. 그런 탓인지 이곳에는 부침의 세월만큼이나 많은 볼거리들이 있다. ‘성의 안(城內)’을 뜻하는 칼레이치(Kaleici), 즉 구시가지에 들어서서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하드리아누스의 문’과 ‘미블리 미나레트’ 등 역사를 품은 유적들은 물론이고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목조 가옥들을 만날 수 있다.

▼ 안탈리아 여행의 시작은 ‘춤후리예트(Cumhuriyet) 광장’이다. 광장은 조경이 잘 되어있는 탓인지 공원의 느낌이 더 강하다.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카페도 들어앉았다. 안탈리아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 이 광장의 특징은 한가운데에 세워놓은 ‘아타튀르크Atatürk)의 동상’이라 하겠다. 아타튀르크란 ‘투르크인의 아버지’란 뜻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부(國父)라고 해야 할까? 터키에서는 초대 대통령을 지낸 ‘무스타마 케말(Mustafa Kemal)’의 이름 뒤에 ’Atatürk‘을 붙여서 쓰는 게 보통이다. 그만큼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왕정(王政)을 폐지하고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그는 재임기간 동안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대명제 아래 이슬람의 개혁과 개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전해진다.

▼ 오른편에는 지중해의 너른 바다가 펼쳐진다.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저곳은 유럽 최고의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지중해에서는 보기 힘든 모래사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안탈리아 연안에는 크고 작은 모래사장이 네 곳이나 있는데, 가장 긴 콘얄트 해변은 모래사장이 무려 2㎞나 된단다. 그 왼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번에는 붉은색 기와를 얹은 주택들이 들어서있다. 지중해 연안 특유의 풍경이지 싶다.


▼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관광을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다. 우리 부부처럼 말이다. 하긴 질 좋고 물가가 싼 동남아를 놓아두고 이곳까지 휴양을 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취향대로 구시가지로 가는 길가에 오래된 성벽이 길손을 맞는다. 안탈리아의 역사는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돌로 쌓아올린 성벽은 도시가 생길 때 함께 건설된 것이라고 한다. 땅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으나 아름다운 성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 투어를 막 시작하려는데 두세 마리의 개가 쪼르르 몰려오더니 자기네들끼리 으르렁댄다. 마치 먹이 감을 앞에 두고 서로 다투는 모양새이다. 이윽고 순번이 정해졌는지 그중 한 마리가 우리 일행의 앞장을 선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듯이 꼬리까지 흔드는 게 아닌가. 영락없는 ‘가이드(guide)’이다. 이곳 안탈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란다.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얻기 위해서 안내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방영했던 KBS-1TV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는 내레이터(narrator)가 터키의 개들을 일러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곳 안탈리아의 개들은 예외라고 할 수 있겠다. 저렇게 손수 벌어서 먹고 사니 말이다.

▼ 가는 길에 ‘고양이촌’도 만나게 된다. 길가 숲속에 엄청나가 많은 고양이집이 지어져 있는 것이다. 몇 마리가 길가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도 피할 줄을 모른다. 어떤 놈들은 아예 포즈까지 취해준다. 이곳 터키는 개들만 천국인줄 알았더니 고양이들에게도 천국인가 보다.

▼ 첫 번째로 마주치는 건 시계탑인 ‘사아트 칼레시(Saat kalesi)’이다. 이 시계탑과 잠시 후에 만나게 될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기준으로 안탈리아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경계를 이룬다고 보면 되겠다. 안탈리아를 검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시계탑은 투박하지만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 해안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탑 하나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안탈리아의 상징물이자 구시가지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이블리 미나레트(Yivli Minare)‘이다. 높이 38m의 첨탑(尖塔)인 이블리 미나레트는 셀주크의 술탄 ’아라에딘 케이쿠바트(Alaeddin Keykubad I)‘가 13세기에 세웠다. 원래는 이슬람 사원에 세워졌지만 사원은 소실되고 현재는 첨탑만 남아 있다. 저 미나레트는 붉은 벽돌의 외부에 8개의 홈이 있는 독특한 문양이 특징이라고 한다. 참고로 저 첨탑은 시내 어디서도 보인다. 길을 잃었을 경우 방향으로 삼기에 딱 좋겠다.


▼ 시계탑 뒤쪽으로 빠지는 길로 들어서면 미로처럼 이어지는 칼레이치(Kaleici, 城의 안이라는 뜻), 즉 구시가지(Old town)가 나온다. 타임머신을 타고 로마시대로 돌아간 듯한 예쁜 길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터키 전통의 알록달록한 접시와 찻잔 등을 파는 곳들이 자주 눈에 띈다. 시간에 여유라도 생긴다면 노천카페에 앉아 한잔의 차로 여행의 피로를 풀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예스러우나 다른 한편으론 생소하게 느껴지는 풍경도 펼쳐진다. 자연석을 이용해 건물의 벽과 담장을 쌓았는데 그 정교함이 거푸집을 사용하는 요즘의 콘크리트만큼이나 정교하기 짝이 없다. 거기다 더 이상의 치장을 하지 않은 채로 속살을 보여주고 있어 한층 더 예스러워 보인다. 다만 미장했던 부분이 떨어져나간 채로 방치되고 있는 건물의 외벽은 아름다운 풍경은 아닌 것 같다.


▼ 잠시 ’이블리 미나레트‘와 함께 안탈리아의 상징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s Gate , Hadrian Kapısı)‘에 이른다. 이 건축물은 130년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안탈리아 인근의 프하세리스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세운 목적에 맞추려 했던지 당시에는 아치 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가족의 석상이 만들어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석상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참고로 당시의 하드리아누스 문은 안탈리아로 들어오는 유일한 관문이었다고 한다.

▼ 문은 이오니아식 기둥이 받치고 있는 3개의 대리석 아치로 꾸며져 있다. ‘스리 게이트(The Three Gates)’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이다.

▼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들이 돋보이는 성문의 바닥에는 마차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성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관문이었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을까?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이 오가며 남긴 흔적들이 아스라이 느껴진다.








▼ 히드리아누스의 문을 지나자 신시가지이다. 반듯반듯한 규모의 상점들과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는 보도, 길가에는 꼬맹이 광장도 만들어져 있다. 벤치를 놓았는가 하면 고대의 복장을 한 남녀가 뭔가에 흠뻑 빠져있는 듯한 조형물도 만들어 놓았다. 여자는 마이크를 들고 노래에 한창이고, 남자는 ‘무비 카메라’에 뭔가를 담느라 열중해 있다. 젊은이들을 위한 쉼터,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거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 그러고 보니 이곳 안탈리아는 ‘안탈리아 국제 영화제(International Antalya Film Festiva)’가 열리는 문화도시이기도 하다. 1963년 설립된 이 영화제는 터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영화제이자 터키의 오스카상(Turkish Oscars)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제의 주요 상 이름이 ’황금오렌지(Golden Orange)‘여서 2015년까지는 ’안탈리아 황금오렌지 영화제(Antalya Golden Orange Film Festival)‘라 부르기도 했다. 한국 작품으로는 전규환 감독의 ‘댄스 타운’이 2011년 개최된 제48회 영화제 경쟁 부문으로 초청받아 작품성을 인정받은바 있다.

▼ 이젠 본격적으로 구시가지(Old town)를 둘러볼 차례이다. 성(城)의 안(內)이라는 뜻으로 칼레이치(Kaleici)라고도 불리는데 도보로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아담한 규모이다. 하지만 로마 시대의 유적과 오스만 시대의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자리 잡은 운치 있는 옛 집들,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터기의 최고 관광지답게 안탈리아에서 즐길 수 있는 요트와 래프팅, 사파리 등 각종 레포츠들을 홍보하고 있는 안내판도 보인다. 휴양과 관광을 동시에 즐겨보라는 모양이다.

▼ 비좁은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길을 잃어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큰 어려움 없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골목에는 오스만의 전통가옥들들 많이 들어서있어 옛 도시가 보여주는 정취를 한결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 골목은 꽃과 나무들로 잘 가꾸어져 있다. 그런데 꽃은 물론이고 나무까지도 화분에다 기르고 있는 게 눈길을 끈다. 비좁은 옛 골목의 단점을 보완한 지혜가 돋보인다고 하겠다. 울타리에는 부겐빌레아(bougainvillaea)가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꽃말이 ‘정열’인 이 꽃은 한국에서는 실내에서 기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밖에서도 꽃을 피우는 걸 보면 그만큼 이곳의 기후가 따뜻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 세월의 흔적이 반짝이는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선물가게와 멋스러운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100년은 족히 넘은 고택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문득 이런 풍경에 반했다는 어느 작가의 글이 떠올라 잠깐 옮겨본다. <이리 휘고 저리 굽은 골목길 또한 하릴없이 걷기에 제격이다. 군데군데 펼쳐진 노점하며 가게들도 제각각의 꼴을 갖추고 있다. 따가운 햇볕을 막아선 좁은 길이 이리저리 이어진다. 유럽도 동양도 폭 넓게 받아들인 이네들 터키에서는 어떤 것도 자유롭다. 낯섦조차 반가움으로 받아들이는 땅에 서면 오랜만의 자유 또한 호사스럽게 누릴 수 있다. 정작 주민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아 보이는 거리에 서서 나는 익명성에 묻은 한가함을 넉넉하게 부린다.>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 골목의 끝에 보이는 괴상하게 생긴 첨탑(尖塔)은 ‘이블리 미나레트’ 만큼이나 유명한 ‘케식 미나레트(Kesik minaret)’일 것이다. 5세기경 처음 세워졌을 때는 ‘성모마리아 교회’였으나 셀주크투르크로 권력이 바뀌면서 모스크(Mosque)가 되었다고 한다. ‘케식 미나레트’는 ‘잘린 첨탑’이라는 뜻이라는데 생김새 또한 위가 싹둑 잘려나갔다.


▼ 길을 걷다보면 오래된 성벽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는 상점들이 가끔 눈에 띈다. 요즘의 트렌드인 재활용이라고나 해야 할까? 상점에는 터키 특유의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도자기 등이 진열되어 오가는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성벽의 출입문을 레스토랑의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도 보여 흥미로웠다.



▼ 아예 성벽을 그대로 놓아두고 그에 맞추어 지어놓은 집도 보인다. 성벽을 개인주택의 벽이나 담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 이런 종류의 유적들이 워낙 많다보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가 보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예 건축허가부터 나오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 시계탑으로 되돌아 나오기 직전에 18세기에 지어졌다는 ‘테켈리 메흐멧 파샤 모스크(Tekeli Mehmet Pasa Mosque)’를 만난다. 오스만제국 시절에 지어진 안탈리아의 모스크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점하다고 해서 들어가 보려했지만 가이드의 재빠른 발걸음을 뒤쫓느라 그럴만한 틈을 내지 못했다. 하긴 오전에 ‘올림포스 산’까지 다녀와야 하니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 칼레이치(Kaleici)를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니 바닥분수를 갖춘 작은 광장에 ‘아탈로스 2세(Attalos Ⅱ)’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 안탈리아를 세운 ‘페르가몬(Pergamon)’의 왕이다. 안탈리아는 BC 159년 그의 명령에 의해 세워졌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아탈로스의 도시(Attaleia)’, 훗날 안탈리아로 불리게 된다. 참고로 이 광장의 너머는 신시가지이다. 이곳 안탈리아의 주요 고객이 유럽인이기에 유러피안 풍으로 세련되게 꾸며진 가게들, 깨끗하고 깔끔하게 잘 정돈된 거리, 전차와 마차가 공존하는 트램 길 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 에필로그(epilogue), 안탈리아 투어는 아쉬움이 많은 여행이었다. 꼭 들러봐야만 하는 명소들을 대부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아펜도스극장’ 등 고대유적들은 도시를 벗어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신시가지는 물론이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안까지 곁눈질도 못해봤기 때문이다. 특히 안탈리아 인근에서 채집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는 고고학발문관에 들러보지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가슴이 아플 것 같다. 규모는 비록 작지만 1988년 유럽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박물관’으로 뽑혔을 정도로 전시되어 있는 유물만은 유럽의 어느 박물관에도 뒤지지 않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타이트하게 짜여진 여행 일정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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