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주전골(鑄錢溪谷)
산행일 : ‘16. 10. 13(목)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서면
산행코스 : 오색주차장→오색석사(성국사)→선녀탕→용소삼거리→용소폭포→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역방향으로 하산→오색주차장((산행시간 : 2시간 30분)
함께한 산악회 : 산두레
특징 : 오늘 설악산을 찾은 목적은 46년 만에 개방된다는 망경대에 올라보기 위해서이다. 그것도 기간을 정해 임시로 개방한다니 어떻게 해서라도 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먹었던 목표는 끝내 이룰 수가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줄에 놀라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만 망경대 등산로로 들어설 수 있다는 말에 산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난 주전골을 왕복하는 것으로 원래의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주전골 트레킹만으로도 하루 일정으로는 충분한 나들이가 되지 않았나 싶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웠지만 주전골의 아름다운 풍광이 이를 상쇄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주전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단풍이 아직은 붉게 물들지 않았던 것이 흠(欠)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아쉬움은 좋은 일을 하나 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이틀 후에 이곳을 찾아올 계획인 ‘청마산악회’의 이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망경대를 쉽게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오색약수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내려서 먼저 망경대를 올랐다가 오색약수로 내려간 다음, 주전골을 탐방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래야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오색약수 대형버스 주차장(양양군 서면 오색리)
서울-양양(춘천)고속도로 동홍천 I.C에서 내려와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를 거쳐 한계령을 넘으면 강원도 양양이다. 오색약수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주전골 탐방로의 출발지인 오색지구가 나온다. 입구에 대형버스 주차장이 있다.
▼ 주차장에서 내려 오색약수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진행방향 저 멀리에 설악산의 특징이랄 수 있는 헌걸찬 암릉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가는 길에 ‘오색약수 온천 지구 안내도’가 보이니 잠깐 살펴보고 진행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따가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올 때 길이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오색약수를 향해 가는 길, 오른편은 온천(溫泉) 지구이다. 그런데 길을 걷다보면 이곳이 어디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시설이 보인다. ‘족욕(足浴) 체험장’이 바로 그것이다. 길게 물길을 내어 놓은 것이 맨발로 그 위를 걸어보라는 모양이다. ‘오색온천의 유래와 효능’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워 놓은 걸 보면 오색온천의 온천수를 흘려보내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물은 흐르지 않고 있다. 이왕에 만든 시설이니 관리를 잘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잠시 후 ‘오색천(五色川)을 만난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지만 어느 길을 따르더라도 주전골로 들어갈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둘 모두 ’산채음식점‘들이 늘어선 상가를 지나도록 되어있지만, 왼편 상가의 규모가 조금 더 크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트레킹을 끝내고 목이라도 축이고 싶다면 오른편에 보이는 오색교(五色橋)를 건너 주전골로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는 길에 왼편의 주전교(鑄錢橋)를 건너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때 마음에 드는 음식점에 들러 산책정식으로 요기를 때울 것임은 물론이다.
▼ 다리 위에서 바라본 주전골 방향, 골짜기 끄트머리에 바위 봉우리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는데, 그 생김새가 자못 범상치가 않다. 오늘의 트레킹은 저 기암절벽의 아래를 지나게 된다. 눈이 누릴 호사(豪奢)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려온다.
▼ 다리를 건너 냇가와 나란히 난 길을 따른다. 왼편 산자락 아래의 좁은 부지에는 상가가 들어서 있다. ‘산채음식점(山菜飮食店)’이라고 적혀있던 이정표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하나 같이 음식점 일색이다. 하지만 가끔은 ‘토산품(土産品)’을 파는 곳도 보이니 시간이 나면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 식당가가 끝나면 또 다시 다리가 나온다. 약수교(藥水橋)이다. 국립공원의 ‘탐방지원센터’는 약수교를 건너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발길을 재촉할 필요는 없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그 유명한 ‘오색약수(五色藥水, 천연기념물 제529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약수는 1500년경 성국사(城國寺)의 승려가 반석에서 용출하는 천맥을 발견하였고, 오색약수라는 이름은 당시 성국사 후원에 있던 ‘5가지 색의 꽃(五色花)’이 피는 신비한 나무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약수의 맛이 5가지’라는 데서 연유됐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 다리 아래로 가면 오색약수(五色藥水)가 나온다. 토양에 흡수된 물이 나트륨과 철분을 용해한 후 기반암 절리를 통해 솟아나는 형태의 약수이다. 약수가 대개 암설(岩屑)층에서 솟는데 반해 기반암(基盤岩)에서 솟아나는 희소성이 있다. 나트륨 함량이 높아 특이한 맛과 색을 지고 있으며, 살충력이 강하고, 밥을 지으면 푸른 빛깔이 도는 특이한 약수로도 유명하다. 빈혈·위장병·신경통·기생충구제·신경쇠약·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 너럭바위의 암반을 뚫고 나오는 샘은 둘이다. 이 둘은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나뉜단다. 위쪽 약수는 유황 성분이 많고 부드러워 여성들이 밥짓기에 좋다고 해서 ‘암약수’라고 불리고, 아래쪽은 탄산 성분이 많고 톡 쏘는 맛이 강해 남성을 건장하게 만든다고 해서 ‘숫약수’란다. 하지만 두 곳 모두 남녀의 구분 없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하긴 물맛을 보려는 사람들에게 그런 구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 약수교를 건너면 길은 냇가 오른편으로 나있다. 그리고 잠시 후 ‘오색약수 탐방지원센터’를 만난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46년 만에 개방되었다는 망경대로 연결된다. 하지만 진입은 불가능하다. 일방통행로로 망경대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주전골은 왼편에 보이는 현수교(懸垂橋)를 건너야 한다.
▼ 현수교를 건너면 아치(arch)형으로 생긴 나무문이 나타난다. ‘오색약수 편한 길’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다. 문 옆에 ‘무장애(無障礙) 탐방로’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걸로 보아 장애인들의 통행이 가능하게끔 길을 만들어 놓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문을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주전골(鑄錢溪谷)으로 들어선 것이다. 주전골은 설악산국립공원 남쪽에 있는 오색약수터에서 선녀탕을 거쳐 점봉산(1,424m) 서쪽 비탈에 이르는 계곡이다. 남설악의 큰 골 가운데 가장 수려한 계곡으로 계곡미와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다. 골이 깊어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며 고래바위와 상투바위, 새눈바위, 여심바위, 부부바위, 선녀탕, 용소폭포 등 곳곳에 기암괴석과 폭포가 이어져 풍광이 빼어나다. 주전골이란 이름은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옛날 이 계곡에서 승려를 가장한 도둑 무리들이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 적힌 내용이다.
▼ 잠시 후 또 하나의 다리를 건넌다. 이번에는 아치(arch)형으로 생긴 예쁘장한 철교(鐵橋)이다. 트레킹 중에는 이런 다리를 여러 번 만나게 된다. 계곡을 따라 나있는 탐방로가 심심찮게 좌우를 오가기 때문이다.
▼ 위에서도 얘기 했듯이 탐방로는 계곡을 따라 나있다. 보통이라면 걷는 게 사납겠지만 주전골만은 예외이다. 장애인들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고 탐방할 수 있도록 반듯하게 정비되어 있는 것이다. 들머리에 세워진 ‘무장애 탐방로’ 입간판을 보고 너무 자랑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감이 들었었는데, 이제 보니 그 정도 자랑은 해도 되겠다. 아무튼 이러한 탐방로는 3.5킬로미터 구간을 데크로 잇는다. 주전골의 자연과 생태와 주전골의 명소 등을 소개하는 22개의 안내 표지판도 곳곳에 설치해 놓았다.
▼ 약수터에서 10분 남짓 진행했을까 오른편에 사찰이 하나 나타난다. 신라 말 가지산문(迦智山門)의 개조(開祖)인 도의(道義)가 창건했다는 성국사(城國寺)이다. 이후 성주산파(聖住山派)의 개산조(開山祖)인 무염(無染)이 이 절에서 출가했다고 전해질 뿐 절의 역사는 알려진 바 없다. 그래선지 인법당(因法堂) 1동이 전부일 정도로 절의 규모 또한 단출하다. 하지만 전해오는 얘기만은 범상치가 않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의 후원에 한 그루의 이상한 나무가 있어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었으므로 절 이름을 오색석사(五色石寺)라 하고 지명을 오색리라 하였으며, 절 아래에 있는 약수도 오색약수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청·황·적·백·흑색의 오색을 정색(正色)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들 다섯 가지 색에서 절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절은 오랫동안 폐사로 방치되다가 근래에 인법당을 세우고 성국사라 이름 하여 명맥을 잇고 있다.
▼ 경내(境內)로 들어서면 돌로 만들어진 용(龍)이 물을 내뿜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절 입구에 ‘오색석’에서 분출되는 약수가 있다고 하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아무튼 약수부터 받아 마시고 본다. 당뇨와 위장병, 이뇨, 위하수, 위채, 혈압, 중풍, 위장병, 변비 등 만병에 효과가 있다는데 어찌 안 마실 수 있겠는가. 특히 고혈압 약을 상시 복용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말이다.
▼ 절간에는 국보급 문화재도 보유하고 있다. 보물 제497호로 지정된 ‘양양오색리삼층석탑(襄陽五色里三層石塔)’이 바로 그것이다. 1971년에 복원해 놓은 높이 4.1m의 이 석탑은 5매의 장대석(長臺石)으로 결구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건립되었는데, 상하 2층의 기단(基壇)을 형성하고 그 위에 탑신부(塔身部)를 놓았으며 탑 꼭대기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하였던 전형적인 신라시대의 조탑(造塔) 양식을 보이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부터 텅 비어있다. 다만 3층옥개석 정상면에 지름 7㎝, 깊이 4.5㎝의 둥근 찰주공이 있을 뿐이다. 오래되다 보니 유실되었나 보다.
▼ 절간을 나서자 헌걸찬 암릉이 선을 뵈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은 탐방로 주변의 울창한 숲에 가려 그 위용을 반 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성국사를 나선지 5~6분쯤 지났을까 ‘독주암교’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다리를 만난다. 주전골이 자랑하는 명물인 독주암을 조망할 수 있는 다리인 모양이다.
▼ 다리에 올라서면 독주암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혼자만 올라 비경을 즐길 수 있다는 기기묘묘한 바위가 계곡의 한편에 우뚝 서서 우람한 자태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저렇게 거대한 바위가 맨 위는 한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좁다니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홀로 독(獨)’자에 ‘자리 좌(座)’를 써서 ‘독좌암(獨坐岩)’이라 불러오다가 언젠가부터 독주암으로 바뀌었단다.
▼ 독주암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눈의 호사(豪奢)가 시작된다. 설악산은 바위가 많아 수려하지만 험한 산이다. 그러나 오색에서 만나는 남설악은 다르다. 바위들이 계곡 양옆으로 둘러싸고 있어서 흡사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 독주암에서 10분 남짓이면 이번에는 선녀탕을 만난다. 암반(巖盤) 위를 흐르던 맑은 물길이 아담한 물웅덩이, 즉 소(沼)를 만들고 있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것이 목욕탕으로 보였나 보다. 선녀탕이라는 이름을 떡하니 붙여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이곳에는 전설이 하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달이 밝은 밤이면 선녀(仙女)들이 내려왔단다. 그리고 반석 위에다 날개옷을 벗어 놓고 목욕을 즐기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이 큰 선녀들이었나 보다. 이 골짜기에 본거지를 두었다는 ‘도둑’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 느긋하게 걷다가 성급하게 물든 한 그루 단풍을 만난다. 이제 막 정상에서 첫 단풍이 시작됐으니 주전골의 단풍은 아직 열흘쯤 더 기다려야 한다. 한데도 성미 급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온통 선명한 붉은빛의 단풍을 매달고 있다. 지난여름 가뭄과 폭염이 길었던 탓인지 단풍잎이 좀 마른 듯했지만 붉은색만큼은 고왔다. 이 정도라면 올해 설악의 단풍도 기대할 만 하겠다.
▼ 이번에는 ‘전망대교’라는 이름표를 단 다리를 건넌다. 다리 이름으로 보아 조망(眺望)이 뛰어난 다리인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의 위는 트레킹 코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망대였다. 언젠가 중국의 ‘장가계’를 다녀온 일이 있었다. 원가계와 양가계를 함께 둘러봤음은 물론이다. 당시 빼어난 경관에 놀란 난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하긴 2010년 제67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그리고 제82회 아카데미에서는 촬영상과 미술상, 시각효과상 등을 수상한바 있는 ‘아바타(Avartar)의 촬영지였을 정도이니 더 말하면 뭣하겠는가. 그런데 당시 보았던 절경(絶景)이 또 다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 규모만 조금 작을 뿐이지 갖고 있는 기괴한 아름다움은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 걷는 속도가 자꾸만 더뎌진다. 인파들 때문에 속도를 낼 수가 없는 것이 그 원인이지만, 주변의 경관에 정신이 팔려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일 것이다. 그만큼 주변의 풍광이 빼어나다는 얘기이다.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진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서 기암절벽(奇巖絶壁)이 반기고, 기암을 돌아서면 맑은 물을 가득 저장한 연못이 나타난다. 그 가장자리에 있는 단풍나무들이 불긋불긋한 색동옷이라도 갈아입었더라면 더욱 환상적이었겠지만 그러지 못한 게 조금은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설악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다.
▼ 선녀탕에서 15분 정도 걸었을까 금강문(金剛門)이 나온다.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맞물리면서 ‘입(入)’자 모양, 아니 왼편 바위가 더 크니 ‘팔(八)’자 모양이라고 해야겠다. 하여튼 두 바위가 맞물리면서 직삼각형 모양의 문(門)을 만들고 있다. 겨우 한 사람이 비집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문의 앞에는 ‘금강문’에 대한 해설을 적어 놓았다. 불교에서 금강석처럼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부처의 지혜를 배우고자 들어가는 문을 ‘금강문’이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잡귀(雜鬼)가 미치지 못하는 강한 수호신이 지키는 문이라고 첨언을 했다.
▼ 탐방로는 계곡을 끼고 나있다. 하지만 바닥으로 난 것은 아니다. 계곡 사면(斜面)의 허리를 잇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니 바위 위에다 다리를 놓았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저런 길을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아마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아니었더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중국여행을 하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탐방로를 보면서 심심찮게 감탄을 했었다. 이곳 주전골의 탐방로도 그에 뒤지지 않는 것 같다.
▼ 계곡 좌우로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 병풍처럼 이어져 있는데, 마치 계곡이 오랜 세월 동안 거친 암반을 깎아내며 물이 흘러내린 듯 계곡의 암반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경관이 독특하다. 거대한 암석이 차례차례 포개지며 그 사이로 물줄기를 쏟아내는 풍경도 압권이다. 한마디로 비경(秘境) 그 자체이다.
▼ 금강문에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용소삼거리가 나온다. 등선대를 거쳐 흘림골로 이어지는 탐방로가 이곳에서 나뉜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고, 계곡이 깊으면 안개가 잦은 법. 흘림골은 늘 안개가 끼고 날씨가 흐린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자연휴식년제로 묶인 지 20년 만인 지난 2004년에 개방됐다. 이 구간에는 등선대와 여심폭포라는 명소가 있다. 신선이 날아올랐다는 등선대는 시야가 확 트인 전망대이다. 기암절벽으로 무장한 칠형제봉과 장엄하게 펼쳐지는 설악산의 서북 능선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흘림골의 명소는 20m나 되는 기암절벽에서 떨어지는 여심폭포(女深瀑布)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김새부터 특이한 이 폭포는 한때 폭포수를 떠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알려지면서 신혼부부가 많이 찾던 명소이기도 했다. 어쩌면 여성의 음부(陰部)를 닮은 폭포의 생김새가 그런 속설을 낳았지 않나 싶다.
▼ 흘림골 입구는 꽉 막혀있다. 올 7월25일부로 막았다는데, 지난해 8월에 일어났던 흘림골 탐방로의 낙석사고(사망 1명에 부상이 2명)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별도의 안전성 평가를 마친 후에야 다시 열겠다니 그 기한을 장담할 수는 없겠다. 언젠가 ‘망경대 개방(開放)’이 ‘흘림골의 폐쇄(閉鎖)’와 맞바꾼 것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주전골 계곡의 단점은 그 길이가 짧다는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계곡이 온통 붉게 물들 때면 더욱 짙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존의 주전골에다 흘림골 구간을 보탬으로서 그 아쉬움을 달래 왔다. 흘림골이 막혀버린 올해는 그 부족한 부분을 망경대 코스로 대신해 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하나를 잃게 된 대신에 다른 하나를 얻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또 하나, 지금으로써는 실낱같긴 하지만 흘림골이 다시 열릴 것이란 기대와 희망을 가져본다.
▼ 드디어 단풍을 만난다. 어쩌다 한 그루씩 나타나던 단풍이 ‘흘림골 갈림길’ 부근에서는 제법 무리를 짓고 있는 것이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란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있다. ‘온 산에 단풍이 들어 붉게 물든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늘 찾은 주전골은 단풍으로 유명세를 탄 계곡이다. 때문에 난 만산홍엽을 기대하면서 주전골을 찾아왔다. 그러니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붉음 정도로는 내가 기대했던 만산홍엽에는 근접조차 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난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무릇 행복이란 ‘작은 만족’에서부터 찾아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 만족을 하고 나니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이 한없이 아름다워진다. 행복이 별거던가. 현실에 만족하면 그게 바로 행복인 것을 말이다. 행복에 겨워하다가 문득 김영랑 시인의 ‘오매 단풍 들것네’라는 시구(詩句)를 떠올린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이 얼마나 감성적인 표현인가.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보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은 각기 다른 모양이다. 그리고 난 김영랑시인의 감성에 한참을 못 미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 ‘용소삼거리’ 근처에서 기괴하게 생긴 바위를 만난다. 절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 흡사 무엇인가를 쌓아 올린 것 같다. 혹시 ‘동전을 쌓아올린 듯한 모양’으로 생겼다는 그 ‘주전(鑄錢)바위’일지도 모르겠다. 시루떡을 쌓아 놓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시루떡바위’라고도 불린다는 그 바위 말이다. 아무튼 저런 현상은 암석의 절리(節理, joint)라고 한다. 암석에 외력(外力)이 가해져서 생긴 틈이다. 참고로 절리에는 구상절리, 판상절리, 주상절리 등이 있는데 주전바위는 ‘판상절리’의 한 형태라고 한다.
▼ 삼거리에서 주전골 탐방로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용소폭포(龍沼瀑布)는 지척이다.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또 다른 현수교(懸垂橋)를 건너면 반대쪽이 막혀 있는 다리가 하나 나온다. 끝이 막혀있다고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들어가 볼 일이다. 용소폭포를 조망(眺望)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다리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 다리에 서면 용소폭포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폭포는 붉은빛을 띠는 높이 10m의 부드러운 암반 위를 하얀 계곡물이 미끄러지며 우렁찬 소리를 뱉어내고 있다. 이곳에도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천년 묵은 이무기 두 마리가 용이 돼 승천(昇天)하려 하다가 수놈만 승천하고 암놈은 미처 준비가 안 돼 이곳에서 굳어져 바위와 폭포가 됐다는 것이다.
▼ 상부에서 바라본 용소폭포, 7m 깊이의 소(沼)는 옥색 물빛을 자랑하고 있다. 버들개와 날도래, 가재 등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1급수라고 한다.
▼ 용소폭포에서 조금 더 오르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보인다. 다정하면서 행복에 겨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앉아 있는 주변 풍경이 더욱 시선을 끈다.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그런데 그 물빛이 어쩐지 눈에 익다. 지난달에 다녀온 구채구에서 만난 호수의 물빛, 즉 옥색(玉色)인 것이다. 황룡의 작은 연못에서 저 물빛을 본 나는 하마터면 눈물까지 흘릴 뻔 했다. 그 정도로 감동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니 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주전골 입구를 출발해 1시간여 만에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이젠 새로 개방된 망경대 둘레길 탐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차례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과 부닥치고 만다. 탐방지원센터 앞에 천 명도 훨씬 넘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는 것이다. 하나 같이 망경대 둘레길의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현장통제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인데 20여 명씩 나누어 시차(時差)를 두고 입장을 시키고 있단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줄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거기다 줄의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까지 있다 보니 관리가 잘될 리가 없다. 극심한 정체현상이 혼란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 이왕에 왔으니 망경대를 올라보기로 한다. 그리고 늘어선 줄의 맨 뒤로 향한다. 그리고 족히 200m는 더 뒤로 가서 줄지어 선다. ‘까짓 두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되겠지 뭐’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도대체 줄이 줄어들지를 모르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한두 사람이라면 이해라도 하겠다. 20~30명씩 몰려온 단체관광객들이 미안스러운 기색도 없이 비집고 들어온다. 줄을 서있던 기존의 사람들이 나무라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들은 채도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결국에 난 줄을 빠져나오고야 만다. 더 이상 그 혼탁 속에 내 심신을 맡길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전골을 따라 되돌아 나오면서 오늘의 트레킹을 마감한다.
♧ 에필로그(epilogue), 여행이 취미인 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자주 나가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들렀던 나라도 꽤나 많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끔은 무질서를 만나기도 한다. 특히 중국에 들렀을 때 그런 경우를 가끔 접한다. 늘어서있는 줄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들을 보면서 난 질서를 잘 지키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러워했었다. 하지만 오늘부로 그런 생각은 지워야 할 것 같다. 아귀(餓鬼)처럼 덤벼드는 저 아줌마 부대들은 중국에서 보았던 그 사람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날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세상이 다 그런 거’라며 앞에서 아줌마들을 부추기고 있는 한두 명의 몰지각한 아저씨들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장부(大丈夫)인데, 그깟 혼란을 빌미삼아 소영웅주의(小英雄主義)를 내세워서야 되겠는가.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있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뜻으로, 중국의 하나라 계(啓) 임금의 아들 태강이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그의 다섯 형제들이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부른데서 유래한 고사성어(故事成語)이다. 그중 막내가 부른 노래에 ‘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답답하고 서글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구나(萬姓仇予, 予將疇依. 鬱陶乎予心, 顔厚有)’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후안(厚顔)에다 무치(無恥) 를 더하여 후안무치(厚顔無恥) 라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나들이를 끝내면서 오늘을 되돌아본다. 오늘의 혼란 속에서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렸던 것이 과연 내 잘못이었을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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