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바다부채길

 

산행일 : ‘16. 12. 11()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강동면 일원

산행코스 : 옥계해변금진해수욕장금진항헌화로심곡항바다부채길썬크루즈리조트모래시계공원정동진주차장(소요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강릉의 정동진과 심곡항 사이에는 천연기념물 제437로 지정된 해안단구(海岸段丘, marine terrace)가 있다. 그동안 민간의 통행이 불가능했던 지역이다. 애초부터 길이 없었음은 물론이려니와 길이 나있다고 해봐야 해안경비를 위한 군()의 경계근무 정찰로로만 사용돼 왔을 따름이다. 단 한 번도 민간인에게 개방된 적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 비밀의 문이 최근 열렸다. 강릉시에서 총 사업비 70억 원을 들여 총 길이 2.86km의 둘레길을 조성한 후 바다부채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동진의 부채 끝 지명과 탐방로가 있는 지형의 모양이 마치 동해(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과 비슷하다 해서 이런 근사한 이름까지 얻었단다. 민간인 개방을 위해 국방부와 문화재청의 협의와 허가에만 2년간의 세월이 소요됐다니 얼마나 어렵게 세상에 공개됐는지 미루어 짐작이 갈 것이다. 아무튼 2300만 년 전 동해의 탄생 비밀을 간직한 이곳은 온통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새로 만든 길 또한 아름답기 짝이 없다. 바위벼랑을 따라 위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비취빛 동해와 어우러지는 것이 마치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이다. 둘레길이 해안선을 따르다보니 바위벼랑의 위는 물론이고 벼랑의 중턱으로까지 길을 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거리가 짧다는 것만 뺀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둘레길이 아닐까 싶다. 짧다는 흠을 보완할 방법도 있다. 동해안의 해안선을 따라 나있던 기존 헌화로의 일부구간을 포함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 역시 옥계해수욕장까지 연장해서 걸어 보았다. 참고로 바다부채길이란 이름은 공모를 통해 정해졌다고 한다. 강릉이 고향인 소설가 이순원의 작품이란다. 강릉의 대표 걷기길인 바우길도 그가 지은 이름이다.

 

트레킹의 들머리는 옥계해수욕장(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동해(속초-삼척)고속도로 옥계 I.C에서 내려온다. T.G를 빠져나와 좌회전, 곧이어 만나는 7번 국도에서 또 다시 좌회전, 이어서 낙풍삼거리(옥계면 낙풍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옥계해수욕장이 나온다. 표현은 길었지만 실제로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다시피 하니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옥계해수욕장(玉溪海水浴場)의 모래사장 가로 난 길을 따라 트레킹을 시작한다. 이 해수욕장은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서 주수리까지 약 2.5에 이르는 비교적 넓은 사빈(沙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낮은 해안 사구(沙丘)들과 해식애(海蝕崖) 등이 해당화와 어우러진 경치가 아름다우며 인근의 다른 해수욕장들에 비해 비교적 조용하기 때문에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이 이용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백사장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철망으로 된 울타리가 길을 막는다. 이후의 백사장은 개인사유라도 되는 모양이다. 별 수 없이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한국여성수련원앞에서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소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이후부터는 수령 40~50년은 너끈히 넘어 보이는 울창한 송림(松林)이 길손을 맞는다.



솔향에 취해 걷다보면 저만큼에 2차선 도로(이정표 : 금진항2.4Km, 정동진 9.7Km/ 옥계시장4.3Km)가 나타난다. 헌화로(獻花路)이다. 헌화로는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의 낙풍사거리에서 강동면 정동진리 정동진역 앞 삼거리에 이르는 도로로서, 헌화로라는 이름은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 지어진 헌화가(獻花歌)’에서 유래되었다.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가 되어 부임하던 길에 그의 부인 수로(水路)부인이 바닷가 절벽 위에 핀 철쭉을 탐냈으나 위험한 일이므로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 소를 끌고 가던 한 노인이 나서서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헌화가이다. ‘자줏빛 바위 가에(紫布岩乎邊希),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執音乎手母牛放敎遣),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吾肸不喩慚肸伊賜等),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花肸折叱可獻乎理音如)’



10Km 길이의 헌화로는 관광도로이다. 한적하던 이 도로는 금진리와 심곡리를 잇는 해안구간이 개통되면서 활성화되었다. 199811월 이전만 해도 이 구간은 통행이 불가능했었다. 해안단구(海岸段丘)의 바다 쪽이 절벽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곳에 해안도로를 내고 나머지 구간과 연결하면서 헌화로(獻花路)가 되었다. 아무튼 이 구간은 해수욕 철과 봄가을 관광 철만 되면 차량이 몰려 주차장으로 변하곤 한다.



도로에 올라섰다 싶은데 벌써 금진해수욕장이다. 옥계면 금진1,2리에 걸쳐 있는 길이 900m63,000의 백사장을 가진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의 초입에는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옥빛으로 물든 끝없이 너른 동해바다를 실컷 구경해보라는 모양이다.



길은 해수욕장과 마을을 양 옆에 끼고 나있다. 금진해수욕장은 어느 해변보다 조용하고 아늑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번이라도 와본 사람들은 해마다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삭막하기 짝이 없다. 따가운 햇볕을 피할 만한 나무 한그루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민박집이나 상점들이 도로를 끼고 늘어서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싶다. 그늘 대신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참 깜빡하고 그냥 지나칠 뻔 했다. 모래사장에 서핑보드가 수북이 쌓여 있는 광경을 말이다. 동해안에 서핑보드의 명소가 생겼다고 하더니 어쩌면 이곳일지도 모르겠다.



백사장이 끝나면 길은 또 다시 벼랑의 아랫자락을 지난다. 구불구불한 도로의 바다 쪽에 군()의 경계용 철제 펜스가 설치되어 있고, 반대편 산자락은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벼랑의 아래에는 차를 세울 수 있는 소규모 주차 공간과 벤치도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비록 포장마차들이 점령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헌화로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이곳 헌화로는 강릉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찾는 드라이브 코스이다. 그렇다고 오롯이 차량만 오가는 도로는 아니다. 두 개 뿐인 도로면의 하나를 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도록 설계해 놓은 것이다. 이로 인해 가끔은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자칫 한눈이라도 팔다가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으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가며 걸어야 할 일이다.



잠시 후, 그러니까 트레킹을 시작한지 25분 만에 작은 고깃배가 드나드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인 금진항(金津港)에 이른다.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고, 1989년에 제반 시설이 완공된 금진항은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하지만 세상에 알린 것은 드라마 '시그널'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시그널이 인기를 타면서 촬영지였던 이곳 또한 자연스레 세간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변은 무척 어수선한 모습이다. 시설물들이 오래된 탓일 게다. 그런 점이 중앙정부에까지 알려졌던 모양이다. 2020년 까지 국비 250억 원을 들여 수산물 유통·판매와 관광 중심지로 만들 계획이라니 말이다.



금진항의 선착장 근처에 제법 너른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갖가지 조형물과 벤치 등의 시설물들 외에도 돌로 만든 책도 보인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수로부인의 설화가 적혀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두 수의 노래가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헌화로(獻花路)와 연결시켜 관광객들을 유치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그래야만 현재 운행하고 있는 유람선 사업도 더 번창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금진항에서 출발해 심곡항과 정동진, 안인진 앞바다를 항해하는 골드코스트 유람선은 여행의 낭만을 더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심곡항으로 향한다. 항구를 빠져나가는데 아치형의 문()이 보인다. 문 위에는 몇 마리의 새()가 올라 앉아 있다. ‘강원도의 새라는 두루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고니(백조)라고 보는 게 더 옳겠다. 이곳 강릉시를 상징하는 새는 천연기념물 제 201호인 고니이니까 말이다. 겨울철에 이 지역에서 머물다가 봄이 오기 전에 떠나는 이 새는 길조(吉鳥)로 알려져 있다. 풍년을 상징하며, 또한 청순하고 깨끗한 순백색의 자태는 학문과 지조(志操)를 나타내기도 한다.



헌화로의 백미(白眉)는 금진리와 심곡리 사이의 2.4구간이다. 이 구간의 지형은 높이 60m 안팎의 해안단구(海岸段丘)로 이루어져 있고, 이 단구의 절벽을 따라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주변 경관이 가히 절경(絶景)이다.



노면(路面)이 젖어있는 곳도 보인다. 파도가 조금이라도 높으면 바닷물이 도로에까지 들이친다는 증거일 것이다. 누군가 한반도 땅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라고 했는데, 그 말이 실감이 난다. 한마디로 표현할 경우 헌화로는 아름답다. 한쪽은 무너져 내릴 듯 아슬아슬한 기암절벽이고, 다른 한쪽은 금방이라도 파도가 밀려들 듯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이다. 한 폭의 산수화라 할 수 있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이다.



왼편 산자락에 기괴하게 생긴 선 바위(立石)’ 하나가 보인다. 바위의 뒤는 움푹하게 파인 골짜기이다. ‘합궁(合宮)이라 불리는데 탄생의 신비를 보여주는 곳이란다. 남근(男根)과 여근(女根)이 마주하는 신성한 장소로서 동해의 떠오르는 서기(瑞氣)를 받아 우주의 기()를 생성하며 음양(陰陽)의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오면 금슬이 좋아지고 기다리는 아기가 생기게 된단다.



곡의 입구에 선 저 바위를 일러 헌화가(獻花歌)의 첫 소절에 나오는 자포암(紫布岩)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자포암은 발기했을 때의 검붉은 색을 띠는 남성의 성기(性器)’를 표현한 것이며 헌화가는 남근석(男根石)을 숭배하는 노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바위는 결코 무너질 일이 없겠다. 여성의 음문(陰門) 앞에 버티고 서있는 남근(男根)이 어찌 죽을 수가 있겠는가. 이에 대한 설명은 신라의 선덕여왕(善德女王)께서 해주시겠단다. 여근곡(女根谷)에 숨어든 백제군이 죽는 이유를 남성(男性)이 여성(女性)의 몸 안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신 말씀으로 말이다. 참고로 합궁골은 해가 뜨면서 남근의 그림자가 여근과 마주할 때가 가장 강한 기()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아들 낳기를 원해서 이곳을 찾으려는 사람들이라면 알아두어야 할 일이다.



배가 출출할 경우에는 금진항이나 심곡항에서 해결할 수 있다. 싱싱한 회를 파는 음식점들이 상당 수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음식 등 다른 식단을 차리는 음식점도 문을 열고 있음은 물론이다. 신경을 조금 더 쓸 경우에는 탐방로 주변에서도 허기를 때울 수가 있다. 간간이 푸드 트럭(food truck)’들이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도로는 바위 절벽과 바다 사이의 좁은 지역을 지난다. 바다에 바싹 붙어 있는 길이라는 얘기이다. 구불구불한 해안가를 걷다보면 바다에 흩어져 있는 독특한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닷물에 침식되면서 계단 형태로 만들어진 해안단구(海岸段丘, marine terrace)란다. 아무튼 바위들의 형태가 독특해서 눈길을 끈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해안단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라고 한다.



심곡항에 가까워지자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해버린다. 그에 따라 해안가로 난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만 간다. 나아갈 줄 모르는 차량에서 내려버린 관광객들이다. 하지만 누구하나 얼굴을 찌푸리지는 않는다. 그만큼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긴 꼭 경관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즐거워했을 것 같다. 30~40대의 젊은 연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걷는데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그렇게 조금 더 걸으면 어느덧 심곡항(深谷港 : 강동면 심곡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의 본래 이름은 지필(紙筆)’이었다고 한다. 마을의 생김새가 종이를 바닥에 깔아 놓은 듯이 평평한데, 그 옆에 붓이 놓여 있는 형국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러던 것이 1916년에 행정구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심곡(深谷)’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곳은 양쪽에 산줄기를 끼고 있는 오지(奧地)이다. 거기다 나머지 한 면은 바다로 막혀있다. 이 마을 주민들이 6·25사변 때에도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지냈다고 알려졌을 정도이다. 얼마나 깊 길래 전쟁까지도 몰랐다는 말이 전해져 오겠는가. 하긴 이런 오지였으니 수로부인에 얽힌 전설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고 있을 것이다.



심곡항에서 바다부채길이 시작된다. 초입의 데크계단은 방파제 부근에 있다. 입구에서 탐방객의 숫자를 헤아리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얼마 후부터 유료(有料)로 전환한다고 하더니 사전에 뭔가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강릉시에서는 성인은 3000, 청소년·군인 2500, 어린이 2000원의 관람료를 받을 계획이란다. 바람직한 계획이라 할 수 있다. 둘레길의 시설들을 유지·관리하려면 꽤나 많은 예산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돈을 물어야만 한다. 이럴 경우에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적용되는 게 옳지 않겠는가. 그래야만 두고두고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참고로 이 길은 탐방시간이 제한된다. 안보상 이유로 49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30분까지, 103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30분까지만 개방한다는 것이다. 너울성 파도나 태풍, 강설, 강우, 강풍 등 기상악화 시에도 출입이 통제된다고 하니 미리 알아보고 길을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강릉시청 민원콜센터(033-660-2018)에 확인할 수 있다.



들머리에는 바다부채길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 심곡항에서 해돋이 명소인 정동진을 연결하는 2.86Km 길이의 둘레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지도를 그려 놓았다. 그리고 이곳 둘레길에서 주의해야 하거나, 해서는 안 될 행위들을 나열해 놓은 안내판도 보인다. 길을 나서기 전에 한번쯤 살펴본다면 탐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트레킹의 하는데 도움을 주는 안내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단출입 또는 무단촬영을 할 경우에는 군형법에 의해 처벌하겠다는 군() 부대장(部隊長)의 서슬 시퍼런 경고판도 세워 놓았다.



계단을 오르면 4~5층 높이의 전망대로 연결된다. 철제 구조물로 만들어진 이 전망대는 갈매기를 형상화한 것이란다. 하지만 옆에서는 갈매기의 형상이 그려지지 않는다. 위에서 볼 때에만 나타난다고 하니 꼭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헬리콥터라도 타고 볼 일이다.





전망대에 서면 주변 풍광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끝없이 펼쳐지는 동해의 푸른 물결은 물론이려니와 제법 번화하다고 할 수 있는 심곡항도 숨김없이 그 속살을 드러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진행방향에서는 이제부터 걷게 될 바다부채길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트레킹을 시작한다. 길은 탐방객들이 오가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넓다. 하지만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두 사람이 겨우 비켜 지나가야 할 만큼 좁다란 구간도 만들어져 있다. 이런 곳에서는 어김없이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10월에 개방한 이후 월 평균 2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만큼 이곳의 아름다움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증거일 것이다.



탐방로는 시작부터 아름다움의 연속이다. 왼편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그리고 오른편에는 푸른 바다가 계속해서 동행한다. 옥빛 바닷물에 기암괴석, 주상절리, 비탈에 아슬아슬하게 선 소나무와 향나무 등 수많은 볼거리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곳곳에 벤치도 만들어 놓았다. 잠시나마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세상사 시름을 날려버리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먼저 선점한 사람들이 있어 실행에 옮겨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탐방로의 핵심은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기암괴석들을 감상하며 걷는 것이다. 해안가 바위들은 2300만 년 전 일어났던 한반도 지반 융기의 비밀을 곳곳에 새겨 놓고 있다. 이를 통칭해 정동진 해안단구(海岸段丘)’라 부른다. 해안단구는 계단 형태의 평탄한 지형을 말한다. 오랜 세월 침식(浸蝕) 또는 퇴적(堆積) 작용으로 만들어진 파식대(波蝕台, wave-cut platform)가 지반 융기나 해수면 하강으로 육지화되면서 형성된다. 동해 어달동, 부산 태종대 등에도 비슷한 형태의 해안단구가 있지만 정동진 해안단구는 길이가 압도적으로 길다. 2004년 천연기념물(437)로 지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정동진 해안단구는 학술적으로 우리나라의 지질구조 발달 과정과 퇴적 환경, 지각운동, 해수의 침식작용, 해수면 변동 연구에 대단히 중요하고 자연과학 학습장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고 적고 있다.




험상궂은 절벽이 나타난다. 바닷가로 내려서지 못한 길은 절벽의 경사면(傾斜面)을 따라 나있다. 아까 헌화로 구간에서 거론했던 수로부인(水路夫人)이 용()에게 납치되었다는 장소로 거론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바윗길은 험하다. 아무튼 수로부인은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사나운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물고 물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행들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역시 한 노인이 나타나 여러 입으로 떠들자고 선동하였단다. 백성들을 불러 모아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서 항의의 노래를 부르면 부인을 다시 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 내 놓아라라고 협박하였고 마침내 용이 수로부인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이때 불렀다는 노래가 해가(海歌)’이다.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약인부녀죄하극)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汝若悖逆不出獻(여약패역불출현)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략번지끽)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바위의 모양이 거북이의 머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한편 거북이의 머리는 남성의 성기(性器)로 상징되기도 한다. 성기를 닮은 생김새뿐만 아니라 몸통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모양새가 발기된 음경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수로부인의 설화를 떠올리다 문맥까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버렸다.



발아래로 파도가 들이친다. 상큼한 바다냄새가 듬뿍 실려 있는 파도이다. 넘실대는 파도를 따라 춤을 추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정동진과 심곡이 자랑하는 특산물 미역들일 것이다. 여름철이면 이 일대는 또 다른 구경거리로 넘친다고 한다. 붉게 핀 해당화가 탐방로 주변을 지키고 갯메꽃과 하얀 찔레꽃도 곳곳에서 탐방로를 빛낸단다. 내년 여름에 다시 한 번 찾아봐야할 이유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부채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부채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바라보는 방향에 관계없이 어디서 봐도 부채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45도 각도(角度)로 기울어져 마치 좌초(坐礁)하는 배()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니 참조한다. 다른 한편으론 시루떡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암석이 세월의 깊이를 대변해준다. 중생대 쥐라기부터 백악기 초까지 한반도에서 일어난 지각변동의 영향을 받아 솟아오르거나 기울어진 암석들이란다.



이 바위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200여 년 전 심곡마을에 살고 있던 한 노인의 꿈에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왔다는 여인이 나타났다. 이 여인은 내가 심곡과 정동진 사이에 있는 부채바위 근방에서 떠내려가고 있으니 구해 달라고 했다. 노인은 배를 타고 부채바위 인근으로 갔고 그곳에서 나무 궤짝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여인의 화상(畵像)이 있었는데 노인은 서낭당을 지어 이 화상을 정중히 모셨고, 이후 이 마을엔 풍어(豊漁)가 이어졌다고 한다. 심곡마을에 가면 그 서낭당을 만날 수 있다



옥색바다가 일렁인다. 그 파도에 실려 온 해풍(海風)이 귓불을 건드린다. 수로부인의 치명적인 유혹이 나풀대는 해풍처럼 내 가슴 속에서 물결친다. 두근거림은 끝내 멈출 줄을 모른다. 북받치는 감정에 겨운 난 더 이상 걷지를 못하고 바위에 걸터앉아버린다. 해풍을 맞아 움푹 파인 양 볼을 보여주는 바위가 천년도 지난 옛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전해준다. 어느새 바다는 수로부인의 매혹적인 미소로 바뀌어 있다.



탐방로에는 해안 경계철조망이 그대로 남아 있고 절벽 곳곳에는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한 시설 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하지만 해안철책은 탐방로 안쪽으로 설치돼 있어 조망을 해치지는 않는다. 아무튼 스스럼없이 분단의 현실을 접할 수 있으니, 이곳 바다부채길은 관광과 안보교육을 겸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 길의 진면목은 바다가 미친 듯이 울부짖을 때 드러난다고 한다. 집채만 한 파도가 기암괴석에 부딪쳐 포말로 날리는 모습이 장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상상황을 원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런 날에는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바다부채길의 최고 절경은 투구바위 부근이다. 바위의 모양이 투구를 쓴 장수가 양손을 올리고 전투 자세를 취하는 형상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투구바위 주위에는 다양한 모양의 크고 작은 바위가 조각공원을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이 발가락이 여섯인 육발호랑이를 백두산으로 쫓아냈다는 전설도 깃든 곳이다.




사선(斜線), 혹은 수직으로 세밀하게 갈라진 바위 군상이 거센 파도에 닳고 닳아 그대로 작품이다. 간간이 제주에서나 볼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玄武岩, basalt)도 보인다. 가끔은 거센 파도가 밀려오기도 한다.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물줄기가 바위 사이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장관이 펼쳐진다.



굴곡진 해안을 따라 굽이굽이 절경이 펼쳐진다. 기암괴석과 쪽빛 바다가 빚어내는 풍광은 아무리 감성이 무딘 사람의 마음도 촉촉하게 만들어버린다. 중간 중간 가던 길을 멈추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얼마쯤 걸었을까 저만큼에 자갈밭으로 이루어진 해변이 나타난다. 사람의 손길이 만들어낸 바닷가탐방로는 여기까지다. 꿈길을 거닐던 환상여행은 이쯤에서 끝났다고 보면 된다. 주변 풍광이 언제 그렇게 아름다웠냐는 듯이 평범하게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굵직한 돌맹이로 이루어진 자갈밭은 동해안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갖가지 소망을 담은 수많은 돌탑들이 늘어선 해변에 앉아본다. 자갈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심신(心身)을 맑게 해주고, 하얀 포말은 속세에 찌든 마음마저 씻어주는 듯하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이 끝나면 이젠 올라갈 일만 남았다. ‘썬크루즈 리조트로 연결되는 이 계단은 한마디로 길다. 거기다 가파르기까지 하다. 리조트가 산 위에 지어졌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곳에서는 서서히 걷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끝이 나올 테니까 말이다



길고 긴 계단을 오르면 썬크루즈 리조트주차장이 나온다. 그 뒤에는 선박의 외형을 닮은 썬크루즈 리조트건물이 위풍당당한 전모(全貌)를 드러내고 있다. 3만 톤급 호화 유람선이란다. ‘정동진역모래시계 소나무’, ‘밀레니엄 모래시계는 정동진을 대표적인 상징(象徵)들이다. 정동진을 내려다보는 산 위에 자리 잡은 배 썬크루즈 리조트도 그중의 하나이다. ‘썬크루즈 리조트CNN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CNNGO’에서 20122월 발표한 한국에서 가장 특이한 호텔 501위를 차지한 곳으로, ‘크루즈를 타고 있지만 실제로 바다에서 운항하지 않는 리조트라고 평가했다. 121개의 호텔형 객실과 82개의 콘도형 객실, 8개의 스위트룸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조트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해돋이 명소로 널리 알려진 정동진에 다다르게 된다. 드라마 모래시계를 촬영한 곳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으면서 내방객을 위한 숙박업소, 음식점, 노점상, 노래방, 유흥점 등 관광 시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한때 어촌 마을 속 도시를 방불케 하였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평일에도 여전히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정동진은 두말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일출(日出) 명소이다. 명성이 자자한 해돋이를 감상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일 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 요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최근에 새로 연 바다 부채길을 탐방하려는 사람들이 주중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몰려드는 탓이다. 모처럼 이곳까지 찾아온 그들이 어찌 모래시계공원을 들러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 수 있겠는가.



모래시계공원에는 최근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철로를 깔고 그 위에 1985년에 제작된 기차 7량을 세워 정동진 박물관을 꾸며놓은 것이다. 실제 기차가 오가는 정동진역과는 1정도 떨어져 있다. 정동진역의 기차와 이 공원의 모래시계를 모티브로 삼은 박물관 안에는 동서양의 시계 관련 유물 13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1912415일 타이타닉호에서 침몰 당시 멈춰버린 타이타닉 금장 회중시계도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