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산(大美山, 1,232m )-청태산(靑太山, 1,200m)

 

산행일 : ‘15. 8. 4()

소재지 :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방림면·봉평면의 경계

산행코스 : 대미동 동산교농로끝능선삼거리대미산청태산헬기장1등산로청태산휴양림(산행시간 : 3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두 산 모두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셈이다. 청태산 인근이 국유림경영 시범단지로 지정되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심심산골 오지(奧地)이다보니 접근이 어려워 웬만큼 산에 이골이 난 사람들까지도 아직 답사를 못해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덕분에 좋은 점도 많다. 산이 온통 원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야생화들이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특히 봄이면 산나물이 지천이어서 산행보다도 나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지경이란다. 대신 볼거리는 빈약한 편이다. 바위가 없다보는 특출한 풍경은 애당초부터 기대할 수 없고, 거기다 청태산 정상을 제외하고는 조망(眺望)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오지 산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청태산자연휴양림에 쉬러 왔다가 겸사겸사해서 오른다면 몰라도 말이다.

 

산행들머리는 동산교(횡성군 방림면 계촌리 대미동마을)

영동고속도로 새말 I.C에서 내려와 우회전하여 42번 국도를 타고 평창방면으로 달리면 운교삼거리(방림면 운교리)가 나온다. 이곳 치안센터에서 좌회전하여 운지로(郡道)를 타고 계촌리(방림면)까지 간다. 계촌교()를 건너자마자 유영공업사 앞에서 이번에는 우회전하여 또 다른 군도(郡道)인 고원로를 따라 들어가다 잠시 후 계촌3리 경로당앞에서 좌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계촌2(대미동마을)에 이르게 된다.

 

 

 

산행은 동산교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만일 대미산만 따로 떼어서 오를 경우에는 왼편으로 진행해도 된다. 청태산과 대미산을 잇는 능선의 중간 안부로 올랐다가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대미산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미산과 청태산을 연계할 계획이기 때문에 오른편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2년 전에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사진에서 보았던 등산안내도'는 이젠 보이지 않는다. 공공기관에서 세운 시설물이 철거된 이유가 뭘까. 어쩌면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농사를 짓는 주민들의 눈에는 등산객들이라면 그저 피해만 끼치는 사람들로 여겨졌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하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농작물에 손을 대는 등산객들이 내 눈에도 띌 정도였으니 농민들이 등산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떨지는 불을 보듯이 뻔하다.

 

 

다리를 건너려는데 다석 류영모 묘소라고 적힌 푯말이 보인다. 정인보, 이광수와 함께 194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기도 했던 류영모(柳永模 : 1890~1981)선생의 묘역(墓域)이 이 부근에 있는 모양이다. 다석(多夕)은 그의 호인데, 하루 세 끼나 되는 많은 끼니 중에 한 끼만 먹겠다는 뜻으로 스스로 지은 것이란다. 사실 그는 1941년부터 하루 한 끼씩만 먹는 금욕생활을 몸소 실천했다. 그가 농사를 지으며 머물렀던 곳은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산 아래(종로구 구기동)였던 걸로 아는데 무슨 이유로 이곳에다 묘역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비록 널리 알려진 이는 아니지만 서울 출생인 그는 개신교 사상가이자 교육자였으며, 철학자이자 종교가였다. 오산학교 교장을 지내다 은퇴하여 농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가 가장 아끼던 제자 중 한명이 함석헌선생이었다. 함석헌의 씨알 사상은 류영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함석헌이 퀘이커(Quaker :17세기 조지 폭스가 창시한 기독교계 신흥 종교)로 종교적 외도를 한 것에 대해서 크게 나무라고 의절하였다. 참고로 그는 종교 다원주의자로 알려진다. 기독교를 한국화하고 또 유, , 선으로 확장하여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종교사상은 1998년 영국의 에든버러(Edinburgh)대학에서 강의되기도 했다.

 

 

다리를 건너면 등산로는 시멘트포장 임도(林道)를 따른다. 아니 길의 양쪽이 모두 밭이니 정확히는 농로(農路)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싶다. 꽤 길게 이어지는 이 길을 대하는 등산객들의 느낌은 계절에 따라 판이(判異)할 듯 싶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활한 평원(平原)에 눈()이라도 수북이 쌓일 경우에는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질 것이지만, 오늘 같이 무더운 여름날에는 따가운 햇볕을 가릴 수 없어 자칫 지옥의 행군(行軍)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뒤돌아본 대미동마을, 산골짜기에 들어앉은 전원마을이 마치 그림 같다. 작년에 오스트리아 쪽에서 알프스지역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본 풍경과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골풍경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비슷한가 보다.

 

 

길은 고랭지채소밭 사이로 나있다. 우리나라 3고랭지채소단지라고 하면 소위 바람의 언덕이라고 하는 태백시 매봉산(1,303m) 북쪽 사면(斜面)과 태백시 조탄동 지각산(1,079m) 북쪽의 귀내미지역, 그리고 강릉시 왕산면 피동령, 즉 고루포기산(1,238m)과 옥녀봉(1,146m) 사이의 백두대간(白頭大幹) 동쪽 사면(斜面)을 이른다. 비록 ‘3대 단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이곳도 역시 해발이 1,232m나 되는 대미산 산자락, 사면은 광활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넓은 편이다. 가을이라도 찾아오면 이 평원은 푸른 배추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은 비록 양배추와 다른 채소들이 섞여있어 특별한 볼거리를 보여주지 못하지만 말이다. 문득 요즘 끼니때마다 밥상에 올라오고 있는 배추 속이 연상되면서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거기다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삼겹살까지 더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안주가 어디 있겠는가. 소주가 원래 술일지니 술술 잘도 넘어갈 것이다.

 

 

농로가 끝나갈 즈음이면 채소밭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커다란 소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거칠 것 없이 널따란 평원에 나 홀로 독야청청(獨也靑靑)한 것만 해도 특이한 볼거린데 거기다 생김새까지도 연리목(連理木)을 닮았다. 두 나무가 중간에서 하나로 붙어있는 형상인 것이다. 문득 연리지에 끝없는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던 장한가(長恨歌)’가 떠오른다. 백낙천이 쓴 장대한 서사시(敍事詩)로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나눴던 사랑이야기이다. 그리고 집사람에게 그 구구절절(句句節節) 사랑표현을 립 서비스(lip-service)라도 해주고 싶은데 집사람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만큼 멀리 달아나 있다. 운동부족으로 아랫배가 나오기 시작한 요즘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지런을 떨어도 집사람을 따라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소나무를 지나면 양배추 밭이다. 끝도 없이 널따란 밭에는 푸른 양배추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길은 밭의 한가운데로 나있다. 조심해서 걸어야만 배추를 다치지 않을 정도로 좁디좁은 길이다. 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길을 없애야 하겠지만 차마 그러지를 못했던 모양이다. 이럴 때는 조심해서 걷는 게 최선이다. 함부로 걷다가 배추라도 상할 경우에는 그나마 있던 길마저도 없애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배추밭을 지나 산자락에 붙는다. 들머리에서 더디지 않는 걸음으로 15분을 걸었으니 제법 먼 거리이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결코 쉽지 않은 구간이라는 얘기이다. 산자락에 들어서면 곧바로 임도(林道)로 연결된다. 임도는 제법 넓다. 그러나 길은 곱지 않은 편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탓에 잡목(雜木)과 웃자란 잡초들이 길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잡목과 잡초가 가득한 것을 빼면 산길의 형편은 좋은 편이다. 비록 오르막길이지만 경사(傾斜)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緩慢)한데다 길바닥은 돌맹이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흙길이다. 잡초로 인해 발아래가 보이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산길의 풍경 또한 괜찮은 편이다. 하늘 높을 줄 모르고 곧게 뻗어 오른 소나무와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들이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산자락으로 들어선지 23분쯤 지나면 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삼거리로 이루어진 안부이다. 그런데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대미산 1.7Km/ 움트골 2.3Km)에는 대미동마을로 내려가는 방향표시가 없다. 동산교 앞의 등산안내도가 없어졌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물론 이곳에서는 왼편 능선을 따른다.

 

 

산길은 일단 능선에 올라붙고 나면 수월해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대미산은 그게 아닌가 보다.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팔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급하게 위로 향하던 능선은 10분쯤 후 그 기세(氣勢)를 누그러뜨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 다시 산길은 급하게 고도(高度)를 높인다. 그렇게 산길은 급경사와 완경사를 번갈아가며 고도를 높여간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쉽지 않은 구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각양각색의 야생화(野生花)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움은 힘든 것 까지도 잊게 만드는 모양이다. 들꽃에 눈을 맞추다보면 힘들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리니까 말이다. 대미산은 약용식물과 야생화들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흔한 것은 아예 군락을 이루고 있는 동자꽃이다. 샛노란 동의나물꽃과 금괭이눈, 거기다 여러 종류의 바람꽃도 보인다. 나리꽃과 양지꽃은 물론 노랑제비꽃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다들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땅속줄기와 포자로 번식한다는 속새는 아직까지 헐벗은 채로이다.

 

 

 

 

능선에 올라선지 25분쯤 지나면 두 번째 이정표(대미산 0.9Km/ 움트골 3.1Km)를 만난다. 두 이정표의 사이는 고작 0.8Km, 그런데 25분이나 걸린 것을 보면 오르는 길의 난이도가 만만치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능선은 두 번째 이정표를 지나면서 그 기세(氣勢)를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주변 풍경을 기웃거리며 걷기에 딱 좋은 구간이다. 그러나 숲이 짙어 조망(眺望)은 트이지 않는다. 거기다 전형적인 육산(肉山)인지라 볼만한 바위 또한 없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야생화들이 능선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것이다. 이건 숫제 등산이 아니라 꽃 나들이이다. 그리고 이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요 행복이다.

 

 

 

 

누군가 그랬다. 꽃보다 버섯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아래 사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꽃보다 더 화사한 버섯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순백을 자랑하는 것들도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버섯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두 가지만 대표로 올렸다.

 

 

 

꽃과 함께하는 행복한 산행을 10분 남짓하면 덕수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삼거리(이정표 : 대미산 0.6Km/ 덕수산/ 움트골 3.4Km)인 이곳에서 오른편은 덕수산으로 연결되고, 대미산은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대미산으로 가는 주능선 역시 거의 경사가 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능선의 윗부분이 제법 널따란 것이 얼핏 보면 평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그리고 이곳도 역시 야생화가 지천이다. 대미산(大美山)엄청나게 아름다운 산이란 뜻이다. 혹시 이런 풍경을 보고 지은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참고로 이곳은 산나물이 많기로 소문이 나있다. 특히 그렇게 귀하다는 곰취가 지천이라니 봄철에 한번쯤 찾아볼 일이다.

 

 

들꽃에 눈 맞추며 걷다보면 어느새 대미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덕수산 갈림길에서 10, 산행들머리인 대미동을 출발한지는 1시간30분 정도가 지났다. 헬기장으로 사용되었음직한 널따란 정상에는 말뚝으로 된 정상표지목과 삼각점(봉평26,1980복구) 외에도 거리표시가 엉망인 이정표(움트골 3.0Km)가 하나 더 세워져 있다. 아까 덕수산갈림길에서 한참을 더 걸어왔는데도 거리는 오히려 0.4Km가 더 줄어들었기에 하는 말이다. 정상은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眺望) 또한 없다. 참고로 대미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유래는 의외로 밋밋하다. 국립지리원에 따르면 요 아래에 있는 대미동 마을의 뒤편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붙여졌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청태산으로 가는 길은 올라왔던 방향과 반대편으로 나있다. 하산 길은 완만하게 시작된다. 대미산으로 올라올 때 만났던 산죽(山竹)길은 아까보다 더 짙어졌다. 그렇게 잠시 떨어지던 산길은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은 후에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러나 산이 후덕한 탓인지 내려서는 게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다.

 

 

 

능선은 온통 산죽(山竹)들이 밭을 이루고 있다. 산죽 길은 그 높이가 무릎 전후일 때가 가장 좋다. 걷는데 부담이 없어 더 없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행운이다. 오늘 만난 산죽들은 하나같이 걷기에 딱 좋을 만큼만 자랐다. 그렇게 좋은 산죽도 무릎을 지나고 또 허리를 넘고 나면 고역으로 변하게 된다. 자꾸만 휘감는 산죽들을 헤치면서 나가다보면 즐거움은커녕 걷는 것 자체가 고행(苦行)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미산 일대의 능선은 초원(草原) 지대이다. 덕분에 산나물이 지천이다. 어떤 이는 이런 장점을 들며 봄 산행을 권하기도 한다. 그 귀한 곰취나물을 배낭 한 가득히 채워 넣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며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겨울산행지로도 손꼽힌다. 이 인근이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겨울에 찾았을 경우 한 폭의 그림이라도 구경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흰 눈에 뒤덮인 설경은 화폭에 담은 수채화(水彩畵)를 말이다.

 

 

대미산에서 내려선지 25분 가까이 되면 참재에 내려서게 된다. 대미산과 청태산의 가운데쯤에 위치한 고갯마루(이정표 : 청태산/ 대미동 3.3Km/ 대미산 1.5Km) 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대미동마을이 나오고, 이정표에 나와 있지도 않을뿐더러 흔적까지 희미한 오른편 길을 따를 경우에는 하축덕마을(봉평면 유포리)에 내려서게 된다. 물론 청태산은 맞은편 능선을 따르면 된다.

 

 

청태산으로 향하자마자 임도(林道)를 만나게 되고, 산길은 그 임도를 가로질러 맞은편 능선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곧이어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고갯마루까지 300m 가까이 고도(高度)를 낮추었으니 다시 올라가려면 별 수 없었을 게다.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지 싶다. 가파른 오르막과의 싸움이 버겁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대미산을 넘으면서 체력이 많이 소진(消盡)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가파른 오르막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짧고 완만한 내리막길도 있다. 길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끝나면 완만한 내리막길이 짧게 나타나기를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는 얘기이다. 산길의 풍경은 아까 대미산 구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산죽(山竹)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나타나고 그 위는 참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때문에 조망을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싸움은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참재를 출발한지 30분을 넘기고 나서야 겨우 청태산 정상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갖가지 야생화들에 둘러싸인 정상은 아까 올랐던 대미산 만큼은 아니지만 넓은 편이다. 그 한가운데에다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커다란 말뚝 모양의 정상표지목을 세워 놓았다. 그 외에도 등산안내도와 대미산 방향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청태산자연휴양림의 안내판이 보인다. 거기다 벤치까지 놓아 쉼터의 역할을 겸하도록 했다. 요 아래에 있는 자연휴양림 덕분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청태산이란 이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관동지방(강릉)으로 가는 길에 이곳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요 아래 그러니까 지금 휴양림이 위치한 곳 부근에서 횡성수령으로부터 점심을 대접 받았단다. 이때 점심상을 폈던 커다란 바위(가로15×세로20)에 푸른 이끼가 잔뜩 끼었다고 해서 청태산(靑太山)이란 휘호를 직접 써서 횡성 수령에게 하사했다는 것이다. 설마 그가 이끼 낀 바위 하나를 보고 휘호까지 썼겠는가. 바위도 바위이지만 그보다 먼저 이곳 청태산의 아름다운 산세(山勢)에 반했음이 틀림없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보람도 크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반쪽짜리지만 말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왼편 그러니까 남쪽 방향으로만 열린다. 비록 희미하지만 건너편에 보이는 산은 백덕산과 구봉대산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오른편에 보이는 산군(山群)은 치악능선일 것이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더 많은 산들을 가슴속에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연무(煙霧)가 시야(視野)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물론 올라왔던 곳의 반대방향이다. 잠시 가파르게 내려서면 헬기장(이정표 : 1등산로/ 2등산로/ 청태산 정상 0.3Km)이다. 1등산로로 내려선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또 다른 갈림길(이정표: 매표소 1.3Km/ 3등산로 0.7Km/ 청태산 정상 0.5Km)을 만난다. 이번에는 등산안내도까지 반듯하게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매표소 방향으로 내려선다.

 

 

매표소로 내려서는 하산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길바닥은 사나운 편이다. 계단 노릇을 하고 있는 크고 작은 바윗돌들이 무질서하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산행 내내 제대로 된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었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돌맹이들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산길은 그게 부담스러웠던지 길가에다 로프로 난간까지 만들어 놓았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바위이다. 왜소한데다 볼품까지 없지만 하도 바위가 귀한 산이라 올려본다.

 

 

쉽지 않은 내리막길은 10분 이상이나 계속된다. 그러다가 중간에 이정표(매표소 1.1Km/ 청태산 정상 1.2Km)를 만나게 되면서 순해진다. 거기다 산길은 잣나무 숲 아래로 나있다. 바닥이 폭신폭신 한데다 솔향까지 진하다. 산행에 지쳐있던 육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회복되어 있다. 이게 다 소나무가 내뿜는다는 피톤치드(phytoncide)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소나무나 잣나무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이 피톤치드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이 각종 병충해(病蟲害)에 저항하기 위해 배출하는 분비물(分泌物)을 말한다. 그리고 이 물질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균작용은 물론이고, 장과 심폐기능을 강화시켜주는 한편, 스트레스 해소에도 뛰어난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발걸음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발걸음은 더디게 그리고 호흡은 크게 하면서 느긋하게 걸어보자. 코끝을 맴돌던 솔향이 온몸으로 펴져나갈 것이다. 그에 따라 심신(心身) 또한 한없이 맑아질 것이고 말이다. 피톤치드의 효과를 믿고 몸을 맡겨 보자는 것이다.

 

 

 

잣나무 숲에 들어왔다 싶으면 다음은 숲 체험 데크로드이다. 청태산자연휴양림의 또 다른 명물로 알려진 시설로 참나무 숲에다 데크로 길을 만들었는데 그 길이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 이 길을 걸으며 숲을 느껴보라는 얘기일 것이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더뎌진다. 가슴을 연다. 그리고 호흡을 길게 가져간다. 코끝에서 맴돌던 신선한 나무 내음이 어느 샌가 가슴속으로 들어와 있다. 이런 게 바로 힐링(healing)일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청태산자연휴양림 주차장

데크로드가 끝나면 곧바로 자연휴양림의 시설지구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친환경으로 지어진 화장실을 시작으로 야영장 등 갖가지 편의시설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휴양림 안으로 난 도로를 따라 잠시 걸어 내려가면 저만큼에 주차장이 보이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청태산 정상에서 40분 남짓 되는 거리이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40분 정도가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3시간30분이 걸린 셈이다. 참고로 해발 1,200m의 청태산은 국유림경영 시범단지로 조성되어 있다. 덕분에 인공림과 천연림이 잘 조화된 울창한 산림을 자랑한다. 운영주체인 산림청에서는 이러한 자연조건을 이용하여 이곳에다 자연휴양림을 만들어 놓았다. 402ha의 너른 숲속에 숙박시설과 체험시설 등 각종 편익시설은 물론이고 청소년의 심신수련을 위한 임간수련장과 삼림욕장, 그리고 청태산을 오르는 등산로까지 잘 정비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