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飛鳳山, 230m)

 

산행일 : ‘14. 11. 16()

소재지 : 경북 상주시 중동면

산행코스 : 상주자전거박물관경천교동봉청룡사비봉산상도촬영세트장경천교경천대경천대국민관광단지주차장(산행시간: 3시간)

같이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상주에 가면 ‘MRF 코스라는 다소 생소한 낱말을 접하게 된다. 요즘 탐라도의 걷기 열풍'이 육지(陸地)에 상륙해 저마다 '걷는 길'을 만들고 있는데, 그런 이슈(issue)에 편승해서 만들어 낸 상주시의 둘레길이라고 보면 된다. ‘MRF’란 산(Mountain)과 강(River)과 들(Field)을 말한다. 즉 산길과 강길, 들길을 모두 아우르는 둘레길이라는 얘기이다. ‘MRF 코스는 총 11개 코스로 낙동강길(1코스), 똥고개길(4코스), 너추리길(7코스), 물소리길(9코스) 등 코스마다 이야기가 있는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입소문을 많이 탄 코스는 당연히 비봉산과 경천대국민관광지를 끼고 있는 낙동강길(1코스)과 나각산길과 낙동강변을 함께 걷는 숨소리길(11코스)이다. 이번 상주여행에서는 이 두 코스를 들러보기로 했다.

 

산행들머리는 상주자전거박물관(상주시 도남동)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 I.C에서 내려와 25번 국도를 이용 상주방면으로 잠깐 들어가다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자마자 국도에서 빠져나온 뒤 우회전하여 헌신교 다리를 건넌다. 이어서 경천로를 따라 달리다가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병성교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여 용마로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상주자전거박물관에 이르게 된다. 참고로 용마로로 접어들지 않을 경우에는 경천대국민관광지로 가게 된다. 자전거박물관(博物館)은 상주시가 자전거 도시임을 대변해 주는 존재다. 2002년 남장사 입구에 개관했다가 201010월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고 한다. 박물관의 전시물(展示物)은 모두가 자전거, 초창기에 발명된 자전거에서 현재의 MTB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다. 나무로 만든 자전거, 이층자전거, 물 위를 달릴 수 있는 수륙양용자전거 등 희귀한 자전거도 있다고 해서 비봉산을 둘러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들려보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희망사항으로만 남았다. 경천대를 들렀다가 국민관광단지까지 가야하는데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자전거박물관 앞,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경천교(擎天橋) 다리를 건너면서 투어(tour)가 시작된다. 낙동강길은 원래 경천대국민관광지에서 출발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 경우에는 박물관에서 경천대까지의 구간을 중복해서 걷게 되므로 중복구간을 생략한 것이다. 경천교 다리의 난간에는 커다란 모형자전거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모두 30대란다. 요즘 '자전거도시'임을 내세우고 있는 상주시가 상징으로 만들어 놓은 조형물인 모양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낙동강은 웅장하다. 그리고 건너편 강변을 이루고 있는 절벽 또한 우람하다.

 

 

 

다리를 건너면 가장 먼저 커다란 비석(碑石)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옛날 이곳 회상나루에서 사람을 태워 나르거나 물건을 운반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세워 놓은 모양이다. '회상나루는 회곡진(回谷津)이라고도 하며 풍양에서 상주로 상주에서 안동으로 왕래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 객주촌이 번성해 애환과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고 적혀 있다. 비석 옆에 낙동강생태문화탐방로 안내도와 이정표(봄꽃군락지 1.1Km,상도세트장 1.5Km/ 자전거박물관 0.3Km)가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고 길을 나설 일이다.

 

 

이야기가 있는 낙동강 길은 이곳에서 낙동강변(江邊)을 따라 오른편으로 크게 휜다. 들머리에 위에서 말한 시설물들 외에도 낙동강 투어로드라는 이정표를 하나 더 만들어 놓았으니 화살표를 따라가면 된다. ‘낙동강 길은 이곳에서 잠시 강과 함께 간다. 왼편은 산이 호위하고 오른편에서는 강이 따라오는 길이다. 길바닥은 걷기에 좋을 만큼 곱고, 마침 차량통행까지 금지되어 있으니 함께 걷는 이와 도란도란 낙동강 이야기라도 나누면서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이정표가 지시한 화살표를 따라 잠시(300m) 걷다보면 왼편으로 산길 하나가 열린다. 비봉산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부터 강길을 버리고 산길을 따른다. 계속해서 투어로드를 따르더라도 비봉산으로 갈 수 있겠지만, 이럴 경우에는 같은 길을 두 번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들머리에 이정표(#1 : 비봉산 4Km, #2 : 청룡사등산로 3.1Km/ 자전거박물관 0.6Km)가 두 개나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길의 초입은 제법 경사(傾斜)가 가파르다. 숨을 할딱거리면서 오르는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난다. 비봉산의 높이는 겨우 230m, 어린 시절 우리네가 뛰어놀던 뒷동산의 수준이다. 그런데도 숨을 할딱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산은 높으나 낮으나 간에 산은 산인 것이다.

 

 

일단 능선에 오르면 산길은 고와진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이 평탄한데다 바닥까지 고운 흙길이다 보니 걷는데 조금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걷기 좋은 능선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가 있다. 능선이 하도 밋밋하다보니 중간 포인트인 동봉(東峯)이 어디인지를 도대체 알아차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이쯤이려니 하고 산행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숲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생기(生氣)를 북돋워준다. 강바람은 시원하기 그지없고 거기에다 간혹 들려오는 새소리까지도 청아하다. 능선은 온통 소나무 숲, 가끔 참나무 군락도 보이지만 그저 소나무 천지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당연히 코끝을 간질이며 지나가는 바람결에는 짙은 솔향이 배어 있다. 거기에 두텁게 바닥을 덮고 있는 솔가리(소나무 落葉)는 융단처럼 푹신하다. 흔히 접할 수 없는 '자연숲길'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소나무 한 그루를 등에 이고 있는 '이무기바위'를 만나게 된다. 그 모양새가 이름만큼이나 이채롭다. 아주 오랜 옛날 낙동강 가운데에 있는 하중도에 금개구리(金蛙)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근처에 살고 있던 학()이 이 금개구리를 잡아먹고 봉황(鳳凰)으로 변해서 하늘로 날아간 모양이다. 이를 뒤늦게 안 뱀()이 울면서 내려오다. 굳어진 바위가 바로 이 바위란다. 하긴 금개구리를 잡아먹었더라면 용()으로 변해 승천(昇天)했을 텐데 그 행운을 학에게 빼앗겼으니 얼마나 분했을까?

 

 

비봉산의 들머리에서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능선 길은 대략 4정도. 산길은 줄곧 오른쪽 옆구리에다 강줄기를 끼고 이어진다. 얼마쯤 걸었을까 남쪽을 향해 내달리던 산길이 갑자기 호젓해진다. 그렇게나 또렷하던 길의 흔적 또한 희미해진다. 그러다가 능선을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자전거도로에 이르기 얼마 전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물론 이정표는 없다. 바닥에 놓인 방향표시지는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옳은 선택은 능선을 따라 곧장 진행하는 것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엄청나게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거리는 짧다. 하긴 이렇게 낮은 산의 능선에서 내려오는 길이니 길고 싶어도 길수가 없었을 것이다. 능선을 내려서면 아까 산으로 올라올 때 헤어졌던 길, 그러니까 들머리의 이정표에 적혀있던 낙동강 투어로드(tour road)’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청룡사 입구가 있는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또렷하게 나있는 산길 하나가 왼편에 보인다. 아까 삼거리에서 곧장 진행했더라면 이곳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괜히 고생을 사서 했던 것이다.

 

 

 

삼거리(이정표 : 청룡사 0.3m/ 삼림욕장 0.8Km 제철꽃단지 1.6Km)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잠시(300m) 후에 청룡사(靑龍寺)가 나타난다. 비봉산 중턱에 자리 잡은 청룡사는 일주문과 천왕문이 따로 없지만, 낙동강 풍경이 펼쳐지는 오붓한 숲길이 경내까지 이어진다. 1672(숙종 원년)에 창건된 청룡사는 비봉산 중턱의 가파른 절벽 위에 세워진 대한불교법화종 소속의 작은 사찰(寺刹)이다. 그러나 낙동강을 굽어보고 있는 뛰어난 풍광(風光) 때문에 예로부터 불자(佛子)뿐 아니라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많이 찾았다 한다. 낙동강 물줄기 중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는 경천대보다도 이곳에서 굽어보는 낙동강의 풍광이 더 뛰어나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동안 몇 번의 중창을 거쳐 현재는 주 전각(殿閣)인 극락전과 산신각, 종각, 그리고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세월의 흔적이 덜 느껴지는 것을 보면 새로 지은 지 오래지 않은 모양이다. 투어를 시작한지 정확히 1시간이 지났다. 물론 쉬지 않고 걸은 시간이다.

 

 

 

 

비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청룡사의 오른쪽 뒤편으로 나있다. 정상까지는 20분 남짓, 그러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오른쪽이 벼랑으로 이루어진 길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뛰어나니 구태여 갈음을 재촉하지 말고 느긋이 음미하며 걸어보라는 얘기이다. 걷다가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유장한 강물이 계속 따라붙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상으로 가다보면 바위절벽 위에 걸터앉은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서면 상류의 경천교에서 하류의 상주보까지 일망무제(一望無題)의 경관이 펼쳐진다. 발아래 깔린 낙동강은 상주보가 물을 가둔 덕에 수량이 풍부하고, 그 한가운데엔 인공섬으로 변한 경천(擎天)섬이 두둥실 떠있다. 4대강 정비사업에 의해 만들어진 섬에는 잔디와 나무들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려 놓았다. 멋진 발상이다. 섬 뒤에 보이는 마을은 어쩌면 도남마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릴라치면 저 멀리 MBC-TV에서 인기리에 방영(放映)했던 드라마 상도의 촬영지가 또렷하다. 참고로 이곳 전망대는 해질녘이면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 맞는 해넘이가 장관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정상으로 향하면 조금 후에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삼거리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이름표가 떨어져 나가버린 탓에 방향을 가늠함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별수 없이 눈치로 방향을 가늠할 수밖에 없다. 그 눈치가 바로 왼편이다. 왼편방향이 위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이정표들은 대부분 이렇듯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생김새로 보아 설치한지 그다지 오래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도 대부분의 이름표들이 떨어져 나가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설치나 관리 등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었더라면 보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삼거리에서 정상은 금방이다.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이정표에서 자전거길을 벗어나 왼편 산자락으로 올라서면 잠시 후에는 비봉산 정상이다. 벗어나는 지점에 이정표(자전거박물관 3.5Km/ 상주보 2.5Km/ ?)가 세워져 있고, 이도 아닐 경우에는 도로를 만드느라 생긴 절개지(切開地)의 모서리를 따라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세(山勢)가 봉황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모습을 닮았다는 비봉산의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외에도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바로 아래로 청룡사 경내(境內)가 한눈에 들어오고, 낙동강이 그 전모(全貌)를 드러낸다. 산과 들을 감고 돌아 흐르는 물길, 산자락은 강()을 보듬고 있고, 그 강은 들녘을 마치 어머니처럼 보살피고 있다. 강의 한가운데에 떠있는 경천섬은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품(藝術品)이 아닐까 싶다. 온통 강과 산, 그리고 하늘이 빚어내는 아스라한 전경이 한없이 펼쳐진다.

 

 

 

 

비봉산 정상을 둘러보고 난 후에는 올라갔던 길을 따라 다시 청룡사까지 내려와야 한다. 드라마 상도의 촬영지로 가는 길이 청룡사에서 삼거리로 되돌아나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이다. 갈림길에 이정표(상도촬영장 1.0Km, 경천교 2.2Km, 경천대 4.1Km)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청룡사에서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청룡사로 돌아오는 데는 35분이 걸렸다.

 

 

 

갈림길에서 가파르게 내려서면 잠시 후에 낙동강 투어로드(tour road)’를 다시 만나게 된다. 촬영세트장으로 가는 길에 오른편 언덕 위에 멋들어지게 지어진 3층짜리 철새 관찰전망대가 보이나 생략하고 발길을 재촉한다. 지금까지 투어(tour)를 이어오는 동안 단 한 마리의 철새도 눈에 띄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올라가봤자 철새구경은 물 건너갔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길가에는 온통 감나무 과수원들뿐이다. 그리고 그 과수원의 나무들마다 빨갛게 익은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것이 역시 삼백(三白)의 고장답다. 상주는 본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삼백이란 이곳 상주에서 많이 생산된다는 쌀과 곶감, 그리고 누에고치를 이르는 말이다. 이 세 가지 특산품의 색깔이 하얗다고 해서 삼백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올해 감이 풍년이라는 신문보도를 본 기억이 있는데, 감을 따봐야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또 하나 우리네 이웃들의 가슴 아픈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길가에 보이는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홍시 두어 개를 따먹으며 걷다보면 이내 드라마 상도의 촬영세트장에 이르게 된다. MBC-TV에서 200110월부터 방영되었던 드라마 상도는 조선시대 최고의 거부(巨富)이자 무역상(貿易商)이었던 임상옥(林尙沃)의 일대기를 그린 대하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미천한 장돌뱅이에서 3품의 고위 관직(官職)에까지 오른 극적이고 변화무쌍했던 임상옥이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상도정신(商道精神)과 이재술(理財術), 그리고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다라는 말과 함께 말년에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그의 상업철학(商業哲學)을 드라마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경제정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방영 당시가 IMF사태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기업인들의 윤리의식과 상도덕이 요구되는 시점이었기에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그 결과 장장 6개월이 넘도록 인기리에 방영된바 있다.

 

 

 

촬영세트장을 빠져나오면 낙동강 길(10.8)’은 다시 왼편에 낙동강을 끼고 이어진다. 널따란 길은 곱고 한가롭다. 그 한가로움 끝에서 사념(思念)의 장으로 들어서본다. 이 길의 이름은 낙동강 길’, 상주시에서 조성한 ‘MRF 코스의 첫 번째 구간이다. 강원도 태백의 황지못에서 시작된 낙동강의 1300(525.15) 물길은 남해바다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고을들을 지난다. 강이 지나는 각 고을들마다 낙동강이라는 이름을 들먹일 수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그런 흔한 이름을 지었을까? 상주고을이 낙동강과 맺고 있는 진한 인연 때문이란다. 우선 낙동강이라는 이름부터가 상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상주의 옛 이름이 상락(上洛)’인데 물길이 상락고을의 동쪽으로 흘러간다고 해서 낙동강(洛東江)’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니 말이다. 또한 상주에는 조선시대에 ‘4대 수산물집산지(水産物集散地 : 원산, 강경, 포항)’의 하나인 낙동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인해 당당하게 첫 번째 구간에다 그 이름을 올렸던 것이다.

 

 

다시 자전가박물관으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경천대로 향한다. 박물관에서 경천대까지는 대략 1.9Km정도, 이중 1Km이상은 자동차도로를 따라 걸어야만 하는 위험천만한 구간이다. 자동차도로 옆에 자전거도로가 있지만 오가는 자전거들 때문에 위험하기는 매 한가지이다. 도로를 따라 15분 정도를 걷다가 자전거도로가 데크로 변하는 지점에서 오른편 산자락으로 올라서면 경천대로 가게 된다.

 

 

산길은 오른편이 바위절벽인 벼랑 위로 나있다. 그러나 길이 벼랑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서 나있으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위태롭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낙동강의 풍경을 즐기면서 걷기만 하면 된다.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철()다리가 나오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출렁다리다. 그런데 이 출렁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다른 곳의 출렁다리들은 흔들림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인데 비해 이곳은 엄청나게 출렁거려서 스릴(thrill)을 만끽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바로 다리에 매달려 있는 위험, 뛰지 마시오!!’라는 경고판(警告板)일 것이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다리 아래 오른편에 옛날 가옥들이 보인다. 드라마 상도의 또 다른 촬영세트장이란다. 청룡사에서 50분, 투어를 시작한지는 2시간25분이 지났다.

 

 

 

 

출렁다리에서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더 넘으면 드디어 경천대이다. 거대한 바위무더기로 이루어진 경천대에 바로 옆에 반듯하게 지어진 정자(亭子) 하나가 보인다. 바로 무우정(舞雩亭)이다. 무우정은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 : 1605-46)가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무릎을 꿇은 삼전도의 굴욕에 울분을 삭이며 은거(隱居)했던 곳이다. 그 전까지 자천대(自天臺)로 불리던 바로 옆 암봉(巖峰)을 경천대(擎天臺)라고 고쳐 부른 이도 채득기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우여곡절 끝에 세자와 대군을 따라 중국 심양으로 들어가면서 부른 노래가 봉산곡(鳳山曲)’인데, 그 첫 구절이 가노라 옥주봉아, 잘 있거라 경천대야로 시작되는 것을 보면 그가 이곳을 얼마나 아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우정(舞雩亭) 바로 옆이 경천대이다. 예로부터 낙동강 물길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경천대(擎天臺)낙동강 제1으로 꼽히는데, 원래는 자천대(自天臺)라고 불렸다. 하늘이 스스로 만든 절경이라는 의미란다. 그만큼 이곳 경천대가 빼어나다는 의미일 것이다. 경천대는 빼어난 풍경뿐만이 아니라 여러 선인들의 발자취가 남아있어 더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정기룡장군에 얽힌 이야기가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임진왜란 당시 육지의 이순신이라고 불렸던 명장 정기룡(鄭起龍 : 1562~1622)장군이 젊은 시절 용마(龍馬)와 함께 수련을 쌓은 곳이 바로 이곳 경천대라고 한다. 입구에 장군의 동상(銅像)이 서 있는 이유란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경천대에 올라서면 눈앞에 유장한 낙동강이 펼쳐진다. 건너편에는 금빛 모래사장이 아름답고,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위절벽 위에 우거진 소나무 숲이 늠름하다. 이곳 경천대와 인연이 짙은 선비들의 올곧은 기상(氣像)을 대변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발아래로 보이는 강물은 좀 아쉽다. 거울처럼 고요하면서도 잔잔한데, 파란 하늘이 비치는 강물이 유난히도 녹색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녹조현상(綠藻現象)일까? 아니기를 빌어본다.

 

 

 

경천대를 빠져나오면 매점을 겸한 상가시설이 나타나고, 곧 이어 차도로 올라서게 된다. 길가에 보이는 공원의 시설들을 구경하며 고갯마루로 올라서면 오른편에 전망대로 올라가는 들머리가 보이나 올라가볼 시간이 나지 않기에 이를 무시한다. 고갯마루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다 보면 이번에는 왼편에 수영장과 어린이놀이시설 등을 갖춘 위락시설인 경천대랜드가 나타나고, 곧이어 국민관광단지 주차장이 나오면서 낙동강 길투어가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