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불산(億佛山, 518m)과 편백숲 우드랜드

 

산행일 : ‘15. 4. 6()

소재지 : 전남 장흥군 장흥읍, 안양면, 용산면의 경계

산행코스 : 우드랜드 관리실데크길억불산 정상우드랜드 관리실(산행시간: 1시간30)

같이한 산악회 : 형제들과 함께

 

특색 : 세계적 석학 하버트 벤슨(Herbert benson) 박사는 마음으로 몸을 다스려라는 책에서 스트레스와 심신의 고통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명상과 휴식을 통해 질병의 80%를 치유할 수 있다고 했다. 거기다 신선한 공기와 향기까지 더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런 곳이 바로 편백나무 숲이 아닐까 싶다. 편백나무는 소나무보다 45배 많은 피톤치드를 내뿜기 때문이다. 편백나무의 피톤치드(phytoncide)는 항()우울, 항스트레스 성분이 많다. 이로 인해 편백나무 숲을 찾으면 스트레스 수치가 낮아지고 저항력도 높아진다. 그런 편백나무 숲을 찾는 사람들에게 장흥의 우드랜드를 추천하고 싶다. 장흥군에서 편백나무 숲에다 일종의 휴양림인 우드랜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드랜드는 일반 휴양림과 다른 점이 있다. 나무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체험장이 곁들여졌다는 것이다. 132(4만평)의 편백나무 숲 안에 숲 치유 체험장’, ‘목재전시장’, ‘목공예 체험장등 체험시설과 12채의 황토한옥, 통나무집, 황토흙집을 지었다. 편백나무 숲 사이로 톱밥을 깐 산책로를 내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편백 노천탕도 만들었다. 특히 억불산 정상(518m)까지 오를 수 있도록 만든 산책로 말레길은 우드랜드의 백미(白眉)가 아닐 수 없다. 바닥을 목제(木製)로 깔면서 계단을 없앴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도 정상까지 오를 수 있도록 했다. 노약자(老弱者)까지 배려한 장흥군청 관계자들께 감사를 드려본다.

 

장흥으로 가는 길에 들른 심청 이야기 마을’, 곡성의 명물로 자리 잡은 증기기관차가 마지막으로 멈추는 가정역 북쪽에 위치한 송정리에다 철도공사에서 만든 한옥마을이다. 곡성에 웬 심청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긴 몇 년 전만 해도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었기에 하는 말이다. 3년쯤 되었을 거다. 난 이 부근에 있는 곤방산과 천덕산 산행을 마치고 하산을 이곳으로 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낯선 풍경과 맞닥뜨리게 된다. 궁금증을 못 이기고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이곳 곡성과 심청이에 얽힌 설화를 찾아낼 수 있었다. 곡성이 심청전의 모티프가 된 실존 인물 원홍장의 고향이라는 것을 말이다. 원홍장의 이야기는 곡성군 오산면의 성덕산 기슭에 있는 백제 때 창건된 고찰(古刹)인 관음사(觀音寺)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절에 전해져 내려오는 '관음사사적기'에 심청전의 원형이라는 원홍장의 설화(說話)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700여 년 전인 백제 고이왕 때 오늘의 곡성군 오곡면 송정리 도화촌에 원량이란 가난한 장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 눈이 멀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생계를 꾸려오던 아내까지 산고(産苦) 끝에 죽는 바람에 젊은 나이에 홀아비가 되고 말았다. 그런 까닭에 원량은 갓 태어난 딸 홍장을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키울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홍장은 어느덧 꽃다운 열여섯 살 처녀로 자라났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시주로 바쳐졌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중국으로 건너가 고귀한 신분의 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향땅과 눈먼 아비를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금동관음보살상을 조성하여 이를 돌배에 실어 보냈는데 이 불상을 모신 곳이 성덕산에 있는 관음사라는 것이다. 이후 이 불상은 영험하다고 소문이 났고,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온 원량의 눈도 뜨게 되었단다. 이러한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전해내려 오다가 언젠가부터 구전소설의 형태로 변해 마침내 '심청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마을은 11채의 개별 한옥(韓屋)으로 구성돼 있다. 압권(壓卷)은 황토. 방마다 황토가 듬뿍 발려 있어 자고 나면 기운이 절로 넘쳐난다고 하니 하룻밤쯤 머물러 볼 일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꽃 이파리들. 봄바람이 꽃가지를 흔든다. 소리 없는 바람의 일렁임에 따라 허공에서 춤추듯 길가로 고요히 내려앉는 꽃비들.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어느 화가가 그린 그림이 이보다 더 아름답고 더 화려할 수 있을까. 아름답다 못해 처연할 정도이다. 마지막 생을 앞 다퉈 지는 꽃잎들을 찾아 섬진강변을 찾았다. 물론 장흥으로 향하는 일정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조금 돌면 되겠기에 망설이지 않고 감행한 것뿐이다. 그만큼 국도 17호선과 19호선을 낀 섬진강변의 벚꽃터널이 유명했기 때문이다. 국도는 어질어질했다. ()의 이쪽과 저쪽에 벚꽃이 지천이다. 속된 말로 환장하게 흐드러지게 피었다. 전국에서도 알아준다는 벚꽃 군락지. 가지와 가지가 맞닿은 벚나무 터널, 큰아기 속살같이 희뿌연 벚꽃이 피어나 있다. 시선을 벚꽃과 강물에 빼앗겨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치를 부리지 못한 탓에 예정보다 조금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조금도 후회되지 않은 여행이었다.

 

 

우드랜드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장흥읍에 있는 토요시장으로 향한다. 장흥의 명물인 삼합을 먹어보기 위해서이다. ‘삼합이란 세 가지를 합한다는 뜻, 사람들은 보통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를 묵은 김치에 싸먹는 홍어 삼합을 떠올린다. 그러나 장흥의 명품요리인 장흥 삼합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풀만 먹여 기른다는 장흥한우와 전국 생산량의 10%를 차지한다는 장흥 표고버섯, 그리고 장흥 앞바다에서 방금 건져 올린 도톰하게 살이 오른 키조개로 조합한 장흥삼합은 한우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에 버섯의 깊은 향 그리고 키조개의 담백함이 더해져 미식가(美食家)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한 잔 술이라도 곁들여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 지금은 봄, 남도의 봄에 어울리는 술을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난 그냥 진로소주를 집어 든다. 익숙함이 좋아서이다. 하긴 외국에 출장 나갈 때에도 꼭 챙겨가는 것이 진로소주일 정도니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치유의 숲으로 유명한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는 편백나무 숲 사이사이에 들어 앉아 있다. 억불산의 편백나무 숲은 무려 20만평에 이른다고 한다. 이 숲은 독림가(篤林家)였던 고() 손석연씨가 1959년부터 심고 가꾸어온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곳에 47만 그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었다. 이놈들이 무럭무럭 자라 수령이 이제 50년을 넘겼다. 사람으로 치면 지천명이 된 셈이다. 숲이 전하는 하늘의 뜻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일까 장흥군에서는 이 일대 132(4만평)을 사들여 일종의 휴양림인 우드랜드를 열었다. 숙박시설과 산책로, 삼림욕장 등을 갖춘 일종의 힐링(healing : 몸과 마음의 치유)단지인 셈이다.

 

 

 

우드랜드에서의 숙소는 쌍둥이복층등 세 가지 형으로 지어진 흙집중에서 원형이다. 이 집은 2010SBS-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대물(大物)’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되었던 가옥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의 줄임말인 대물은 제목 그대로 한 여자의 인생역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고현정과 권상우가 영원히 함께할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것이다. 숙소 앞에 영화촬영지였음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방 얻기가 만만치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운이 우리에게 돌아온 것을 보면 예약을 맡았던 매제(妹弟)가 얼마만큼 신경을 썼을지 능히 짐작이 된다. 덕분에 우린 고현정의 향기를 느끼며 즐기기만 하면 되고 말이다.

 

 

 

산행들머리는 편백숲 우드랜드 관리사무소

숙소인 흙집촌을 빠져나오면 곧바로 우드랜드의 관리사무소이다. 억불산 산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일부러 산행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느긋하게 걸어도 기껏해야 2시간을 채 넘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마침 근처에 표고버섯을 닮은 음수대가 만들어져 있으니 목도 축일 겸해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옆에 있는 우드랜드 안내도도 살펴볼 겸해서 말이다. 장흥은 우리나라 총 생산량의 1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표고버섯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샘터까지도 이렇게 표고버섯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나 보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조금 후에 만나게 될 연못에도 표고버섯의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참고가 될 것 같기에 이곳으로 오는 방법을 적어본다. 남해고속도로 장흥 I.C에서 내려와 23번 국도를 타고 일단 장흥읍까지 들어온다. 읍내에 있는 관산5구 삼거리(장흥읍 건산리)에서 좌회전, 다음 군민회관 5거리(건산리)에선 오른쪽 두 번째 방향의 남부관광로를 따른다. 이어서 향양삼거리(장흥읍 항양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편백숲 우드랜드에 이르게 된다.

 

 

 

 

관리사무소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음식점과 매점을 겸하고 있는 수라간앞을 지나면 목조 2층집이 나온다. 이곳 삼거리에서 곧바로 100m만 더 가면 편백소금집이 나온다. 편백나무의 피톤치드와 국내산 천일염에서 발생하는 원적외선을 이용해 아토피, 천식, 고혈압, 우울증을 치유하는 공간이란다. 소금마사지방 소금 해독방’, ‘소금 호흡방’, ‘황토방’, ‘편백방’, ‘소금동굴등의 시설이 있다.

 

 

 

 

2층집 바로 못미처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잠시 들어가면 왼편에 표고버섯 모양의 조형물을 세워둔 연못이 보인다. 연못 주변에 크고 작은 한옥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 이 부근이 한옥촌인 모양이다.

 

 

 

 

연못에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나오는 강의실에서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나타나는 갈림길들을 무시하고 곧장 100m쯤 걸으면 말레길이 나온다. 그리고 데크로 만들어진 말레길에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억불산 산행이 시작된다.

 

 

말레길에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우드랜드의 명물로 꼽히는 풍욕장(風浴場) ‘비비 에코토피아(Vivi Ecotopia)’로 가는 길이다. 한때 누드삼림욕장으로 소개되면서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던 비비에코토피아는 부직포로 만들어진 가벼운 옷을 걸치고 풍욕(風浴)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나무의자, 해먹, 토굴, 움막 등이 설치된 비비에코토피아는 피톤치드가 상큼해 삼림욕을 즐기기에 좋다고 한다. 좋은 경험이 되겠지만 아직은 철이 이르니 포기할 수밖에 없다.

 

 

말레길의 총 길이는 3,736m, ‘비비에코토피아앞에서 억불산 정상까지 놓여 있다. ‘말레는 대청 또는 마루를 일컫는 전라도 사투리란다. 이 길을 걷는 가족들에게 이해와 소통의 장()이 되라는 뜻을 담고 있단다. 말레길에는 여느 나무데크와 달리 계단이 없다.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등반할 수 있도록 정상까지 완만하게 설계됐다.

 

 

데크로 들어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편백나무 들이 뜸해져 버렸다. 언젠가 이곳 숲이 태풍의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때의 상흔(傷痕)인 모양이다. 민둥산처럼 변해버린 것이 보기 흉했나 보다. 그 빈자리에다 좋은 글귀를 적은 각양각색의 조형물들을 세워 놓았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글귀가 있어 옮겨본다. ‘나를 위해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봅니다.’ 그렇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조금 후에는 또 다시 편백나무 숲에 든다. 봄비를 맞아 촉촉해진 숲은 편백향 만이 가득하다. 맑고 상쾌하기 그지없다. 편백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놓인 완만한 나무데크를 따라 숲을 오른다. 서로 견주 듯 하늘로 쭉쭉 뻗은 편백나무들이 울창하다.

 

 

억불산 말레길에는 이정표가 없다. 비록 오는 길 중간, 그러니까 옛길이 말레길을 횡단하는 지점과 정상 근처에서 이정표를 볼 수가 있지만 말레길과는 무관하다고 보면 된다. 데크로 만든 길이 외길이다 보니 구태여 만들 필요가 없었나 보다. 대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던 독특한 이정표(?)를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출발지인 우드랜드에서 정상까지를 일정 비율로 나누고, 현 위치에 이를 때까지 소모되는 열량(calorie)을 적어 놓았다. 멋진 아이디어다. ‘말레길을 이용해 억불산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힐링을 위해 우드랜드를 찾아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건강에 쏠려있을 것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구간의 거리보다는 소모되는 칼로리(calorie)의 양()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보면 너덜겅을 만나게 된다. 안내판이 없는 것을 보면 비슬산이나 무등산과 같이 학술적 가치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그래선지 너덜겅 위에다 안냇가라는 이름표를 단 쉼터까지 만들어 놓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안내판은 안냇가 떨밭이었으니 이곳 지명이 안냇가인 모양이지만, ‘떨밭은 과연 무슨 뜻일까?

 

 

 

데크로 만들어진 길은 대부분 별다른 특징이 없이 이어진다. 하긴 휠체어를 타고도 오를 수 있도록 만든 길에다 변화까지 준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빗줄기 때문에 시야(視野)까지 막히다보니 눈 돌릴 곳도 마땅히 없다. 그저 길가에 핀 진달래에나 눈길을 맞출 수밖에 없다. 하긴 봄 산행에서 꽃구경만큼 좋은 눈요깃거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30분 남짓 걸으니 데크의 양쪽 난간이 트이면서 기존의 옛 산길과 연결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거리(이정표 : 억불산 정상 0.8Km, 며느리바위 1.0Km/ 평화상선약수마을 1.4Km, 천문과학관 주차장 1.2Km/ 우드랜드 2.3Km, 천문과학관 0.4Km)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천문과학관이나 평화상선약수마을로 내려가는 모양이고, 왼편은 정상으로 오르는 옛 산길인 모양이다. ‘우드랜드2천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만일 입장료가 부담스럽다면 평화리의 상선약수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되겠다.

 

 

말레길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참 많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금기사항, 여느 산에서나 볼 수 있으니 특이할 게 없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스틱이나 아이젠의 착용 금지, 그리고 자전거 통행금지 등 이곳에서만의 특별한 금기사항이다. 하긴 많은 자금과 노력을 들여 만든 시설이다 보니 그만큼 관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을 거다.

 

 

 

얼마쯤 올랐을까 진행방향에 괴이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뭐랄까 개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억불산의 정상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거북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말레길을 걷다보면 또 다른 등산로가 눈에 띈다.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는 안전로프까지 매달아 놓았다. 그만큼 산길의 경사(傾斜)가 만만치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 지형에다 계단을 두지 않은 채로 길을 만드느라 고뇌(苦惱)했을 관계자들을 생각하니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레길이 막바지에 이르면 길은 좌우로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만큼 산자락이 가팔라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장흥시가지와 그 뒤를 바치고 있는 수인산과 천관산, 부용산, 오봉산, 용두산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의 시계(視界)는 제로(zero). 제법 거세어진 빗줄기로 인해 50m 앞도 제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데크에 세워진 조망도(眺望圖)로 그 안타까움을 대신 위로받을 수밖에 없다.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내달아 도착한 나루터가 바로 정남진(正南津)이라는 짧은 지식 한 토막 주워 담으면서 말이다.

 

 

 

 

 

첫 번째 전망대에서 옆에 있는 바위를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하면 또 다른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번에는 아예 망원경까지 갖춰 놓았다. 그러나 시계가 열리지 않기는 매한가지이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망원경일지라도 이 빗줄기를 뚫을 수는 없을 것이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솟아 있는 모양이 모두 부처가 서있는 것을 닮았다고 해서 억불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내용이 적힌 또 다른 조망도를 보면서 마음속으로나마 조망을 즐겨볼 따름이다. 이곳에서는 장흥 앞바다가 잘 조망되는 곳이다. 바로 앞에 있는 소록도와 장재도, 거금도는 물론이고 금당도와 금일도, 생일도, 고금도까지 시야에 잘 들어온다고 한다.

 

 

 

 

두 번째 전망대의 맞은편에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억불산 정상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서면 이정표(며느리바위 0.2Km/ 암릉구간 0.7Km/ 우드랜드 1.5Km, 천문과학관 1.2Km)가 두 바위봉 사이 양 옆으로 길이 나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길을 찾지는 못했다. 바위가 물기를 흠뻑 품고 있어서 자세한 탐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정표 바로 뒤의 바위봉우리가 정상이다. 두세 평도 채 되지 않는 비좁은 정상에는 사각의 기둥으로 된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도 역시 전망이 좋기는 매한가지이다. 사방으로 시야가 열리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빗줄기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특히 억불산의 명물이라는 며느리바위를 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워할 것 같다. 정상 근처에 구두쇠 영감과 그 며느리에 얽힌 옛 이야기가 적힌 며느리바위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정상에서 조망이 가능한 모양인데도 비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아쉬운 마음만 가득 안은 채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정상을 둘러본 후에는 다시 말레길을 따라 내려온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갈지()자를 그리고 있는 것이 마치 아흔아홉 구비의 길인 천문산의 통천대도(通天大道: 하늘로 통하는 길)를 떠올리게 만든다. 계단을 만들지 않으려다보니 저렇게 힘겨울 수밖에 없었나 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톱밥산책로를 걸어보았다. 잘게 썬 편백나무 알갱이들이 톱밥처럼 바닥에 있어 걷기만 해도 편백나무향이 코끝을 찌른다. 갑자기 심신이 날아갈 듯이 가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