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산 (大德山, 1,291m)-초점산(焦點山, 1,274mm)

 

산행일 : ‘12. 1. 8(일)

소재지 : 전북 무주군 무풍면, 경남 거창군 고제면, 경북 김천시 대덕면의 경계

산행코스 : 덕산재→얼음골샘터→대덕산→헬기장→안부→초점산(三道峰)→1180봉→소사고개(산행시간 : 3시간 3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삼도봉(三道峰)은 전국에 4군데가 있다, 그중 전북, 충북, 경북이 만나는 민주지산의 삼도봉(1,248m)과, 전북, 전남, 경남이 만나는 지리산의 삼도봉(1,499m)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전북, 경북, 경남이 만나는 이곳(1,248m)과 강원, 충북, 경북이 만나는 어래산의 삼도봉(1,064m)은 아직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곳이 백두대간(白頭大幹) 위에 올라앉아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입에 덜 오르내리는 것은, 흙산(肉山) 특유의 포근함 외에는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심설(深雪)산행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은 겨울철이면 이곳을 자주 찾는다. 눈이 수북이 쌓인 밋밋한 능선을 걸으며 주변 산릉(山稜)을 조망하는 것이 자못 호쾌(豪快)하기 때문이다.

 

 

무주 쪽에서 들어가려면 ‘나제통문(羅濟通門)’을 지나게 된다. 높이 3m, 길이 10m의 인공동굴로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만들어진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삼국시대는 아닐 것이라는 게 다수설(多數說)이다. 이 통문이 있는 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신라 땅이고 서쪽은 백제 땅이었다고 한다. 현재 이 통문의 양쪽에 위치한 무풍방면의 이남(伊南)과 무주방면의 새말[新村]은 행정구역상으로는 무주군 소천리에 속하지만, 아직까지도 언어와 풍속은 판이하게 다르다고 한다.

 

 

 

 

산행들머리는 덕산재 고갯마루

대전-통영간고속도로 무주 I.C에서 빠져나와 무주시가지(市街地)를 통과한 후, 30번 국도(國道/ 성주방향)를 따라 달리면 설천면사무소와 무풍면사무소를 지나 백두대간(白頭大幹) 마룻금을 가로지르고 있는 덕산재 고갯마루에 닿게 된다. 해발 644m의 덕산재는 김천시 대덕면과 무주군 무풍면을 경계(境界)로 하는 고갯마루이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맨 먼저 ‘백두대간 덕산재’라고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이 눈에 띠고, 그 뒤에는 폐업(廢業)을 한 휴게소가 지금은 '대덕산 산삼 감정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표지석의 건너편에 대덕산 등산로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다. 등산로는 안내판의 뒤에서 열리고 있다.(이정표 : 덕산재 3.5Km)

 

 

 

통나무 계단으로 시작되는 오르막길을 대략 10분쯤 올라가면, 잠깐 내리막길로 변한다. 산길은 또다시 오르막길로 변하지만, 경사는 완만(緩慢)하다. 길옆에는 온통 소나무와 진달래 천지이다.

 

 

 

 

 

무덤을 지나면서 산길은 잠시 내리막길을 보여주다가, 이내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가파름과 완만(緩慢)함을 번갈아 가며 만나게 해준다. 문득 내려오는 차 속에서 들었던 산행대장의 산행안내 멘트를 떠올린다. ‘덕산재에에서 대덕산 정상까지는 2시간이 걸립니다.’ 이제 겨우 40분이 지났을 뿐이니 앞으로도 1시간20분을 더 가파른 오르막길과 싸워야한다. ‘오늘 난 죽었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 바우군(君)의 얼굴색이 노랗게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어쩌면 나보다 그가 훨씬 더 힘들어할 것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기업의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바쁜 회사 일정 때문에 몇 달간 산행을 하지 못했었고, 체력(體力)이 달릴 것을 우려해서 망설이고 있는 것을 내가 우격다짐으로 데리고 왔다.

 

 

 

산길은 산의 생김새에 따라 변하고 있다. 너무 급한 경사(傾斜)를 만나면 길은 능선을 벗어나,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것도 안 될 경우에는 산길은 지그재그로 고도를 높인다. 지그재그 오르막길은 힘들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고도를 높여주기 때문에 차라리 반갑기까지 하다. 위를 향해 치닫던 산길은 파릇파릇한 조릿대가 장식하고 있다. 겨울에 만나게 되는 푸르름은 언제나 싱그럽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설량(積雪量)이 점점 많아지더니, 마침내 조릿대를 덮어버릴 정도에까지 이른다. 하얀 눈 위에 살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있는 파란 잎사귀 몇 개,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조릿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얼음골 약수터이다. 호스를 타고 흘러나오는 물의 량(量)은 졸졸 흐르는 수준, 그러나 가뭄에도 결코 마르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명품약수(名品藥水)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약수터를 지나면서 길은 더욱 가팔라진다. 길은 비교적 잘 정비되어있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어느 정도 헐떡이다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것이 보인다. 양쪽 다 정상으로 가는 길이지만,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한 오른편 길로 방향을 잡는다. 2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왼편에 시야(視野)가 확 트이는 전망대에 올라서게 된다. 서북쪽에 덕산재를 뚫고 이어지는 30번 국도가 눈에 들어온다. 눈에 꽉 차오르고 있는 둥그런 봉우리는 대덕산 정상이다.

 

 

 

 

고도(高度)를 높여가면서 점점 밀도(密度)를 더해가던 눈은, 이제는 아예 설국(雪國)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눈이 제법 많이 쌓여있지만, 꼬리를 물고 찾아드는 백두대간 산꾼들이 깔끔하게 러셀(russell)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은데도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솟구친다. 아무리 따뜻해도 겨울산은 겨울산인 것이다. 산길을 오르다보면 등산로 주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이 눈에 띈다. 1-1, 1-2, 1-3... 행정관청(行政官廳)에서 세운 팻말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구조신호를 보낼 때,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는 푯말이다. 아마 ‘1’은 덕산재에서 대덕산까지의 구간을 나타내는 숫자이고, 그 뒤의 숫자는 매 500m 마다 숫자를 하나씩 더해가고 있을 것이다. 숫자는 기쁨의 양(量)과 정비례(正比例)한다. 숫자가 늘어남은, 정상까지의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만큼 고통의 시간도 정비례로 줄어드는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의 힘든 고행(苦行)길에서 잠시나마 위로를 삼아본다.

 

 

 

 

전망대(展望臺)에서 채 10분이 못되는 거리에 대덕산 정상이 있다. 예전에 다락산이라고도 불리었던 대덕산은, 부드러운 흙산(肉山)이나 규모가 커서 우직한 남성을 연상케 한다.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대덕산(1,307m)과 이름뿐만 아니라, 산세까지도 비슷하다. 산의 이름에 걸맞게 정상은 넓고 평평한 헬기장이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시원스레 조망(眺望)이 트인다. 동남쪽에는 가야산이 있고, 서남쪽에 보이는 것은 덕유산의 향적봉이다. 오르는 도중에 쉬어가자는 투정을 부리기는 했지만, 친구 바우는 아직까지는 잘 따라와 주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 산행대장의 예고보다 30분이나 단축시키고 있다.(이정표 : 소사. 5.2Km/ 덕산재 3.5Km)

 

 

 

 

 

 

초점산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작은 헬기장을 지나고, 참나무 숲을 지나는가 싶으면 또다시 억새밭이다. 길의 양쪽을 억새가 뒤덮고 있어 마치 가르마 사이를 걷는 느낌이다. 가르마 사이의 길을 걷는 일은 제법 운치가 있을 법도 하건만 오늘은 영 ‘아니올시다.’ 이다. 눈이 녹은 흙길이 많이 질퍽대기 때문이다. 이건 운치가 아니라 숫제 짜증스러울 정도이다.

 

 

 

 

 

 

대덕산에서 초점산까지는 별로 힘들지 않는 산길, 경사가 완만(緩慢)한 내리막길에서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다보면 진행방향에 초점산이 보인다. 대덕산 정상에서 초점산 앞에 있는 안부까지는 대략 20분, 그리고 안부에서 10분정도 오르막길과 씨름하다보면 이내 초점산 정상이다.

 

 

 

 

초점산 정상은 거창군에서 세운 정상표지석과 이정표 두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에 왔을 때에는 삼도봉이라고 적힌 정상표지석이 보였는데 찾아볼 수 없다. 질퍽거리는 바닥에 부러진 대리석 두 개가 깔려있는데, 사라진 정상표지석의 잔해(殘骸)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몰상식이 안타깝기만 하다. 삼도봉 표지석이 보이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삼도봉이라는 지명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지나 않을까하는 노파심(老婆心) 때문이다. 이곳 삼도봉은 정상을 기준으로 서쪽은 무주 땅, 남쪽은 거창 땅, 동쪽은 김천 땅이다. 참고로 대화합기념탑이 있는 또 다른 삼도봉은 이곳에서 북쪽방향으로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이정표 : 대덕산 1.5Km/ 소사 3.2Km)

 

 

 

정상에 서면 서쪽 방향으로 덕유산과 삼봉산 그리고 향적봉과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남쪽 거창쪽에는 금귀봉과 보해산 그리고 수도산, 가야산 등 거대한 산군들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다. 오늘 지나온 대덕산은 내달리면 금방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코앞에 있다.

 

 

 

 

초점산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이 수도지맥의 분기점(分岐點)으로서, 왼편은 수도지맥인 국사봉으로 가게 되고, 우리가 가려고 하는 백두대간 마룻금은 오른편 능선(稜線)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수도지맥은 낙동강의 지류(支流)인 황강의 울타리를 만들면서 국사봉과 수도산, 우두산과 비계산, 오도산을 거쳐 황강 위에 놓인 청덕교에 이르게 되는 산줄기이다.(이정표 : 소사 2.8Km/ 초점산(삼도봉)0.4Km)

 

 

 

수도지맥 분기점에서 소사고개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急傾斜), 가파르기 짝이 없을 정도이다. 대부분 경사가 심할 경우에는 지그재그로 길을 만들면서 고도(高度)를 낮추는 것이 보통인데, 이 능선은 갈지(之)자를 쓸 만큼의 공간(空間)도 제공해 주지 못하는가 보다. 눈이 쌓인 양이 별로 많지 않지만 아이젠을 벗지 못하는 것은, 가파름 때문에 맨땅에서도 중심 잡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이다.

 

 

 

 

길가에 매어놓은 로프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조심스런 발걸음이 지겨울 때 즈음이면 저 아래에 임도(林道)가 보이고, 이때부터 길은 오솔길과 임도, 그리고 밭두렁을 따라 이어진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오솔길에는 일본이깔나무(落葉松) 군락(群落)이 펼쳐지고, 밭두렁 길옆의 배추밭에는 배추들이 하얗게 얼어있다. 채소(菜蔬)가 과잉(過剩) 생산되어 수확을 포기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데 사실인가 보다. 자식 같이 애지중지하며 키운 배추를 포기하며 가슴 아파했을 농부의 마음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음은 나 또한 시골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소사고개

높낮이가 거의 없는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인가(人家)가 가까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다가 저만큼에 외딴 농가(農家) 한 채가 보이고, 소사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시멘트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그리고 이내 소사고개에 닿게 된다. 소사고개는 동쪽 거창군 고제면 봉개리와 서쪽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를 잇는 1089번 지방도(地方道) 상의 해발 680m 고갯마루이다. 꽤 높은 고개지만 부근이 드넓은 분지(盆地)이고, 사방이 농토이기 때문에 높은 곳이라는 실감은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