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산(三丁山, 1261m)
산행일 : ‘11. 7. 2(토)
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
산행코스 : 양정→영원사→빗기재→삼정산→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삼정산능선→약수암→실상사(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지리산의 북쪽 주능선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알려진 산, 남쪽 주능선이 가장 잘 보인다는 삼신봉과 함께 ‘지리산의 양대 전망대(展望臺)’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지리산의 조망보다도 암자탐방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는 추세이다. 삼정산은 잘 알려진 실상사(實相寺)외에도 약수암(藥水庵), 삼불사(三佛寺), 문수암(文殊庵), 상무주(上無住), 영원사((靈源寺), 도솔암(道率庵) 등, 크고 작은 암자(庵子)와 절집들을 6개나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암(寺庵)마다 천왕봉이나 수도산 또는 가야산을 바라보고 있어 전망이 매우 뛰어나다.
▼ 산행들머리는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양정마을
88고속도로 지리산 I.C를 빠져나와 인월면소재지(面所在地)를 통과한 후, 60번 지방도(생초방향)를 따라 달리면 산내면사무소를 지나 함양군 마천면에 이르게 된다. 마천면사무소 소재지인 가흥리에서 오른편 엄천강을 가로지르는 가흥교(橋)를 건너 1023번 지방도를 따라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인 양정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양정마을 입구에서 삼정산을 보며 얼마간 올라가면 영원사 등산로라는 팻말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들어서면 서정적인 마을을 통과한 후, 이내 영원사골로 들어서게 된다.
▼ 등산로는 왼편에 영원골을 끼고 완만한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왼편 발아래에는 크고 작은 담(潭)과 소(沼)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널따란 암반(巖盤) 위를 구르며 떨어지는 폭포수(瀑布水)가 내지르는 외침이 경쾌하게 산꾼들을 반긴다. ‘영원사 1.6Km’라는 이정표를 지나면서 오른편에 지리산에서 활동했다는 빨지산의 ‘굴(窟) 비트’가 보이더니, 산죽(山竹)이 우거진 곳에는 ‘산죽 비트’라고 적힌 안내판도 보인다. 우렁차게 울리던 물소리가 가냘퍼질 무렵이면 영원사로 가는 포장길이 나타나고(이정표 : 비트 굴1km/ 상무주암2.3km/ 영원사0.5km), 이내 새하얀 개망초 꽃들에 둘러싸인 영원사 표지석 뒤로 영암사의 전각이 보인다.
▼ 영원사((靈源寺) : 통일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45) 때 영원(靈源)이 창건하였다. 영원이 이곳에서 8년간이나 수도하였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산을 내려가다가, 물 없는 산 속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노인의 말을 듣고 다시 정진해 깨우침을 얻게 되어 그 자리에 영원사를 지었단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 선불교(禪佛敎) 고승들이 거쳐 간 수도 도량이다. 건물은 인법당만 남아있고, 문화재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부속암자로 문수암(文殊庵)과, 상무주암(上無住庵), 도솔암(道率庵)을 거느리고 있다.
▼ 영원사를 둘러보고 사찰의 왼편에 우람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무 아래를 지나 삼정산 정상으로 향한다. 국립공원 통제구역 표시판과 함께 싸리문이 설치되어 있지만,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면 완전한 통제는 아닌 모양이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등산로는 정비가 잘 되어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 경사가 심하지 않는 오르막길을 느긋하게 오르다보면 어느새 능선 안부인 빗기재에 올라서게 된다. 빗기재에서 삼정산으로 향하는 길은 아예 신작로(車道) 수준, 등산로 주변의 산죽들을 깔끔하게 정비해 놓았다. 간혹 나타나는 바위지대에는 어김없이 지리산의 전망대가 나타나지만, 짙은 구름에 뒤덮인 지리산은 그 자태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빗기재 이정표 : 삼정산 정상 1.2Km, 상무주암 1.0Km/ 영원사 0.8Km)
▼ 아쉬운 마음을 갈무리하며 걷다보면 이내 삼정산이 보이고, 등산로는 정상을 향해 곧바로 뻗지를 못하고, 산의 허리를 돌아 상무주암으로 향하고 있다. 상무주암 가기 전 100m 앞(이정표 : 삼정산 정상 0.3Km/ 상무주암 0.1Km/ 영원사 1.7Km)에서 왼편으로 난 가파른 오르막길을 10여분 오르면 삼정산 정상이다. 함양군에서 세운 정상표지석 하나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는 정상은 잡목에 둘러싸여 조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조망을 허락한다고 해도 구름 때문에 볼 수도 없겠지만... 삼정산(三丁山)은 아랫쪽의 마을이름 음정(陰丁), 양정(陽丁), 하정(下丁)마을을 합쳐서 삼정리(三丁里)라고 부르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다.
▼ 삼정산 정상에 올랐다가 아까의 삼거리로 되돌아 나온 후, 100m 정도 걸어 내려가면 한국 선종(禪宗)의 중흥조(中興祖)인 보조국사 지눌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상무주암에 이르게 된다. ‘그 경치가 그윽하고 조용하기가 천하에 제일이라 참으로 참선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대오한 지눌은 상무주를 일컬어 ‘천하제일갑지(天下第一甲地)’라 하였다. 머물지 않는다는 ‘무주(無住)’... 법정스님도 늘상 무소유(無所有)를 외쳤었는데, 천하제일 甲地까지도 욕심내지 말고 선뜻 버리라는 의미일까?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라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상무주의 돌담에 기대어 지리산을 바라본다. 넉넉한 부처의 모습으로 다가와야 할 산은 짙은 구름에 잠겨 있다.(이정표 : 마천 8.5Km, 백무 7.3Km, 양정 3.2Km, 문수암 1.0Km /영원사 3.3Km, 삼정봉 0.4Km, 산문(초입) 1.2Km)
* 상무주암(上無住庵) : 영원사의 부속암자 중 하나. 보조국사 지눌이 이곳에서 ‘선종 결사운동’을 함으로써 유명해 진 암자이다. 지눌은 1, 2차에 걸친 결사운동에서 드러난 문제점 때문에 이곳에 들어왔고, 이곳에서 다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심기일전한 지눌은 1205년 지리산에서 송광사로 옮기고, 수선사 곧 오늘날 조계종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 상무주암 입구 쉼터. 거대한 소나무 아래에 앉을 자리를 만들어 놓았고, 바위 위에는 수행을 위한 앉을 자리인 듯, 석판이 삼정산 정상을 향해 심어져 있다. 주변 나무에 매달린 팻말의 ‘아니 온 듯 다녀가시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 상무주암에서 문수암까지는 짧은 거리지만, 수림이 울창하고 돌마다 짙은 이끼가 끼어 있는 등, 운치가 뛰어나다. 상무주암을 나서 너른 공터에서 왼편으로 내려서서 평탄한 산길을 얼마쯤 걸으면, 밧줄이 드리어진 약간 비탈진 길이 나온다. 바위와 오래된 나무 그루터기에는 초록 이끼가 피어있고 고사리와 관중 같은 양치식물들이 한껏 습기를 머금고 있다. 내리막 숲길을 걷다보면 문득 바위에 바짝 붙여지은 법당과 그 앞의 요사체가 나타난다. 문수암이다. 문수암 뒤편의 거대한 벼랑아래에는 수십 명이 충분이 들어앉을 수 있을 만큼 넓게 동혈(同穴)이 파여 있고, 바위 틈새에서 약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옹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약수는 달고도 얼음물처럼 시원했다. 지리산 8대(臺) 중 한 곳인 문수암의 마당에 선다. 저기는 마천면 마을들, 지리산과 금대산은 저기쯤, 친절한 스님께서는 이것저것 자세히도 알려주신다. 날씨만 좋으면 금대산 뒤로 첩첩이 쌓인 산들이 만들어내는 산그리매를 보는 눈의 호사(豪奢)까지도 누려볼 수 있으련만...
▼ 문수암(文殊庵) :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살자’는 취지로 만든 ‘봉암결사’에 참여했던 스님들 중 한 분이며, 나중에 조계종 종정까지 지내신 혜암스님이 상무주암에서 정진하시다가 그 아래에 세운 암자로서 선학원(禪學院) 소속이다. 벼랑위에 바위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전각을 세웠다. 선방 앞 의자는 산자락이 끝없이 펼쳐지는 지리산 제일의 전망대, 긴 의자는 혜암스님의 상좌로서 지금 이곳에서 수행중인 도봉스님의 따뜻한 배려이리라...
▼ 천인굴(千人窟) : 이 석굴은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명이 피난하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천인용굴(千人用窟)이라 하여 천년동안(즉,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 굴을 사용했다는 뜻이라는 얘기도 있다.
▼ 문수암을 나서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우거진 수림(樹林)아래로 난 산길을 따라 내려선다. 너덜길의 바위들은 짙은 이끼로 덮여 있어서 많이 미끄럽다. 조심조심 내려서며 산중의 삼매경에 빠져본다. 지리산의 품속에서 한껏 삶의 여유로움을 찾는다. 세속에서 옮은 번뇌(煩惱) 한 점 슬그머니 사라지고, 어느새 행복으로 차오르고 있다. 울창한 숲을 빠져나와 아담하게 지어진 새집 같은 초록색 해우소를 지나면 삼불사이다. 세 분의 부처가 머문다는 삼불사(三佛寺), 그 삼불(三佛)은 누구누구를 일컫는 것일까? 사찰에는 늙은 비구니보살님과 사나운 개 한마리가 산다고 들었는데, 인기척이 없고 문들마다 굳게 닫혀있다. 물로 개도 보이지 않는다. 주인 없는 절간의 문을 지키고 있는 자그만 판자만이, 오가는 길손에게 스님의 따스한 배려를 나눠주고 있다. 만일 50m 정도 내려가다가 왼편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그 안내판이 없었더라면 마천 마을로 내려서는 불상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 삼불사에서 약수암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험하기 그지없다. 너덜길이라서 길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길가에 매어진 가느다란 포장끈을 따라 진행하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이끼낀 너덜길을 조심스럽게 걷다보면 이내 삼정산의 주능선과 만나게 된다.
▼ 삼정산 주능선과 만나면서 갑자기 길은 고와진다. 울창한 소나무에 둘러싸인 오솔길은 수북이 쌓인 소나무 잎들로 인해 마치 양탄자처럼 폭신폭신하다. 저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보면 왼편에 산내면 시가지가 바라보이고, 등산로 왼편에 둘러쳐진 담장용 로프 너머에 약수암이 숨어있다. 약수암이라는 이름을 얻게 만들었다는 물은 보광전 앞에서 맛볼 수 있다.
▼ 약수암(藥水庵) : 실상사의 부속암자 중 하나로서 1724년(경종 4)에 천은스님이 세웠고, 1918년에 예암대유 스님이 개인 재산을 모아 보광전을 다시 세웠다. 경내에 약수샘이 있어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기 때문에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약수암에는 목조 팔작지붕으로 된 보광전이 있고, 보광전 안에는 1782년(정조 6)에 만든 보물 제421호인 아미타목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 약수암에 들러본 후, 사찰입구로 가지 않고 들어왔던 곳으로 되돌아 나와, 다시 방향표시를 따라 걸으니 약수암의 입구이다. 10m도 안 되는 거리를 포기하고 절을 한 바퀴 도는 고생을 사서 한 것이다. ‘뭐야 이게!’ 바닥에 깔린 진행표시지가 다소 원망스럽지만, 덕분에 고즈넉한 대나무 숲을 촬영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 산행날머리는 실상사 입구 주차장
약수암 입구에서 차량이 다니는 임도(林道)를 따라 내려가도 되지만, 명색이 산꾼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 약수암 입구를 나서자마자 오른편을 살펴보면 등산로 하나가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얼마간 내려가면 아까 헤어졌던 임도와 다시 만나게 되지만, 또다시 임도와 헤어져 오솔길로 접어든다. 길게 이어지는 산길은 가파르나 하면 어느새 완만해지고, 조금 걷기가 편하다 싶으면 어느 사이엔가 자갈길로 변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적송 숲이 끝나면 텃밭이 나오고, 작은 개울을 건너면 저만큼 앞에 실상사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실상사 입구의 다리를 건너면 매표소가 보이고, 왼편으로 깔끔한 화장실을 갖춘 주차장이 있다.
▼ 실상사(實相寺) :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洪陟)이 세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 홍척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으뜸 사찰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의 사찰이 대부분 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반해, 실상사는 들판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 보물 제33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4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보물 제36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37호인 3층석탑 2기(基), 보물 제38호인 증각대사응료탑(凝寥塔), 보물 제39호인 증각대사응료탑비,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 보물 제41호인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 보물 제420호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1호인 약수암목조탱화(藥水庵木彫幀畵) 등, 단일사찰(單一寺刹)로는 국보급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초록의 이끼들로 가득한 가파른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고 올라서야 당도할 수 있는 암자에는 노스님들이 진공 같은 적막 속에서 불법을 닦고 있다. 비질 자국 선명한 암자에서 바위틈에서 솟는 달고 찬 샘물을 받아드는 맛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암자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노스님이 툭툭 던져주는 몇 마디 말을 곱게 싸들고 돌아올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으리라. 그러나 문수암에서 만난 도봉스님 외에는 스님들을 만나 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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