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산(天燈山, 707m)

 

산행일 : ‘11. 12. 11(일)

소재지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행코스 : 원장선마을→빈덕바위→감투봉→천등산→산죽길→고산촌(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정산악회

 

특징 : 보통 천등산 하면 세 곳을 꼽는다. 전남 고흥의 천등산과, 충북 제천의 천등산, 그리고 이곳 완주의 천등산이다.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노래에 나오는 제천의 천등산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산 자체로만 놓고 볼 것 같으면 고흥과 완주의 천등산에 비해 품격(品格)이 한참 떨어진다. 완주의 천등산은 괴목동천을 사이에 두고 있는 대둔산의 유명세(有名稅)에 밀려 소외(疏外)되고 있지만, 우람한 근육질로 이우러진 암릉은 결코 대둔산에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산행들머리는 운주면 장선리 원장선마을

익산-장수간고속도로 완주 I.C를 빠져나와 17번 국도(國道/ 대전방향)를 따라 들어가면 경천면소재지를 지나서 산행들머리인 운주면 장선리 원장선마을에 이르게 된다. 참고로 대전통영고속도로 추부 나들목에서 17번 국도(전주방향)를 따라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

 

 

산행은 원장선 마을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동네를 통과하고 나면 농로(農路)가 나타난다. 왼편 언덕 위 대나무 숲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얼음이 꽁꽁 어는 겨울철, 영동지방은 이미 폭설(暴雪)로 몸살을 앓고 있을 정도로 겨울의 한 가운데이다. 한 겨울에 만나게 되는 푸르름은 생각만 해도 싱그럽다. 세상이 온통 메말라있는데 뭔가 하나 정도는 삶의 기척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농로가 끝나면서 길은 드디어 산으로 접어든다. 천등산은 바위산이라지만 아직은 순수한 흙길, 그곳도 빛깔 고운 황톳길이다. 산길은 서서히 정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고도(高度)를 높여가다가 갑자기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고 있다. 거대한 바위절벽이 마치 성벽(城壁)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바위벽을 피해 옆으로 우회(迂回)하는 길은 얼마 안가서 끝이 나고, 길은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오른편으로 가면 신망터를 지나 정상으로 가게 되고, 곧바로 정상으로 가려면 왼편 오르막길로 진행하면 된다. 이곳에서는 기도터를 들렀다가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일 것이다. 천등산은 기(氣)가 억센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천등산에는 유난히도 기도터가 많이 산재(散在)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이곳은 ‘신망터’라는 이름으로 산행지도에까지 등재(登載)되었을 정도로 명소(名所)로 알려진 곳이니, 당연히 들러보아야 할 포인트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야속하게도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진행표시지(進行標示紙)는 왼편을 향하고 있다. 아쉽지만 왼편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으로 올라서면 얼마 안 있어 거대한 슬랩(Slab)을 만나게 된다. 스릴을 즐기는 등산객들이라면, 앞뒤 가릴 필요도 없이 환호성과 함께 달려들 만큼 멋진 슬랩이다. 그러나 오늘 같이 눈이 오는 날은 그저 그림의 떡(畵中之餠), 입맛만 다시면서 우회로(迂廻路)로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몇 번의 바위 오름길을 통과하고 나면 반반하고 널따란 바위 위로 올라서게 된다. 아마 빈덕바위라고 불리는 바위일 것이다. 빈덕의 어원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을뿐더러 특별한 외형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트여있어서, 남쪽 용계천 건너편의 써레봉과 불명산의 연릉이 뚜렷하고, 남으로 뻗어간 금남정맥(錦南正脈)의 마룻금이 아련하게 하늘과의 경계선(境界線)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바위위에 자라고 있는 노송(老松)이 멋스럽다. 고고(孤高)한 자태로 주변의 바위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고사목(枯死木), 죽어서도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음이라니...

 

 

 

빈덕바위를 지나 잠시 완만하던 암릉길은 위로 향할수록 투박해진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위험지역에는 어김없이 안전(安全)로프가 걸려있으니까. 힘들지만 큰 위험없이 첫 봉우리인 520봉에 올라선다. 진행방향의 감투봉과 산군(山群)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520봉에서 바라보는 감투봉의 모습은 바위와 소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는 모습이다. 자못 탁월한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520봉에서 감투봉까지 이어지는 암릉코스는 천등산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감투봉으로 가려면 먼저 수직(垂直)에 가까운 절벽을 내려와야 한다. 안전로프가 매어있다고는 하지만, 절벽이 까마득하게 높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움을 없애주지 못한다.

 

 

 

 

 

 

건너편 천등산의 아랫도리에 있는 거대한 바위 아래에 인적이 보인다. 저곳에도 석굴이 있는 모양이고, 움막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아마도 기도꾼들이 상주(常住)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천등산의 곳곳에는 기도터들이 널려있고, 수많은 기도꾼들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찾아든다고 한다.

 

 

 

감투봉으로 오르는 길은 주로 바위틈 사이로 나있다. 밧줄을 잡고 올라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밧줄에 의지해서 내려서야만 한다. 아슬아슬하게 솟구치듯 절벽에 매달린 로프에 부대끼는 오르내림 끝에 감투봉에 올라선다. 520봉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선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천등산의 이름은 산의 형상(形象)이 옛날 시골집에서 쓰던 호롱같이 보인다고 해서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진산에서 운주로 넘어가는 배티재 마루에서 보면 그 호롱 꼭지는 더욱 분명해진다고 한다. 또한 견훤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진다. 천등산에 산성(山城)을 쌓고 있던 견훤이 한밤중 적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바위굴 안에 있던 용이 닭 울음소리를 내어 견훤과 군사들을 깨우고, 천등산 산신이 밝은 빛을 비춰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하늘(天)이 불을 밝혀(燈) 준 산'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천등산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산성의 이름도 용계성(龍鷄城)이다.

 

 

 

오르는 길목 곳곳에는 기도(祈禱) 흔적들이 눈에 띈다. 저 돌탑에 쌓인 돌멩이 하나하나마다 등산객들의 염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바위위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는 마치 분재(盆栽)작품을 보는 듯 아름답다. 저리도 척박(瘠薄)한 곳에서 삶을 영유해 나가고 있는 끈질긴 생명력, 우리네 삶도 저런 끈질김이 필요하지 않을까?

 

 

감투봉에 올라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면 520봉과 521봉은 또 다른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온다. 바위절벽(絶壁)과 그리고 깎아지르듯이 서있는 봉우리는 아까 지나왔던 520봉이 아닌 또 다른 520봉이다. 오를 수가 없어 우회해야 했던 저 봉우리 주변의 산세(山勢)가 천등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寶石)일 것이다.

 

 

 

 

 

감투봉에서 이곳 사람들이 고깔봉이라고 부르는 정상까지는 완경사(緩傾斜)의 연속이다. 바위를 넘어가야하고 때로는 피해야 하는 전형적인 능선길이다 이런 아기자기한 능선길을 10분 정도 걸으면 드디어 천등산 정상이다.

 

 

 

 

천등산 정상은 특별히 치솟아 올라있는 곳이 아니라 능선에서 약간 높은 지점일 따름이다. 한 가운데에 아담한 정상표지석이 서있고, 그 뒤를 지역의 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스테인리스로 만든 정상표시 쇠기둥이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도 천등산의 억센 기를 느낄 수 있다. 정상주변의 나무들에 매달린 깃발들에서까지 종교(宗敎)의 냄새가 흠씬 풍겨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서면 남으로 금당리 용계천이 들녘을 가르며 흐르고 있고 그 너머로 운장산으로 뻗어나가는 금남정맥(錦南正脈)과 그 안쪽에 솟아오른 산봉과 산릉이 꿈틀거리고 있다.

 

 

정상에서 하산은 고산촌 방향으로 잡는다. 원장선에서 올라왔던 길과 반대방향으로 길이 또렷하니 혼동할 일은 없을 것이다. 고산촌 방향으로 50m쯤 진행하면 왼편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보인다. 바위는 한쪽 면(面)이 깊게 파여 있고, 그 아래를 반반한 돌들로 제단(祭壇)을 만들어 놓았다. 아마 이곳도 기도터로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산길의 즐거움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나뭇가지 사이로 가끔 그 모습을 드러내는 대둔산 바위봉우리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이다. '호남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대둔산(大芚山·878m)은 대둔산과 천등산 사이를 흐르는 괴목동천의 건너편에 있다. 대둔산은 이름에 걸맞게 능선과 골짜기 곳곳에 기암(奇巖)을 세워놓고 바위절벽을 늘어뜨린 채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둔산을 찾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이곳 천등산은 은둔(隱遁)의 산으로 소외(疏外)되고 있는 것이다.

 

 

 

고산촌 방향으로 300m정도 내려가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진행표시지는 오른편을 가리키고 있다. 오른편 언덕을 오르면 나타나는 아찔한 수직(垂直)의 암벽(巖壁), 암벽에는 안전로프가 길게 메어져 있다. ‘무릎을 펴! 너무 바위에 들어붙지 말고’ 고함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마도 로프에 매달린 사람이 겁(怯)을 잔뜩 먹었나보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대부분 바위에 찰싹 달라붙는 경향이 있으니까 말이다.

 

 

 

 

정상에서 대둔산의 허둥봉을 향하여 이어지던 하산길은 암릉을 지나면서 갑자기 오른편으로 급선회(急旋回)를 하게 된다. 이어서 어른들의 키만큼 웃자란 산죽군락지(山竹群落地)를 지나면, 산길은 협곡(峽谷)을 통과하게 된다. 양옆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의 바닥은 너덜길, 까딱해서 발을 헛디딜 경우 다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산행 날머리는 고산촌

협곡(峽谷)을 빠져나오면 길은 고와진다. 가파른 경사(傾斜)를 배겨내지 못해 갈지(之)자를 그릴 수밖에 없는 내리막길도 길게 이어지지만 황토 흙으로 이루어진 산길은 대체로 걷기에 편한 편이다. 주변은 온통 참나무 일색, ‘사각사각’ 신발 밑에서 내지르는 낙엽(落葉)들의 신음소리가 마냥 경쾌하기만 하다. 참나무 아래로 흐르던 산길이 잔솔밭 속으로 숨어들면서 오솔길은 경사까지 없어져 버린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고산촌 마을의 뒤뜰에 내려서게 된다. 마을 앞의 냇가에서 땀을 씻으며 돌아보면, 천등산이 다시 한 번 만나자며 손짓하고 있다.

 

 

 

 

하천을 건너 도로가에 세워진 산악회의 간이식당, 내가 제일 고대하던 시간이다. 오늘 다시 한 번 정회장님의 맛깔스런 음식솜씨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치를 비롯한 밑반찬이야 익히 그 솜씨를 알고 있지만, 돼지고기 송송 썰어 넣은 김치찌개도 맛깔스럽기는 매 한가지이다.

 

거기다 먹음직스런 과메기가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까만 김 한 장 손바닥에 깔고, 그 위에다 꼬들꼬들한 과메기 한 점 올린 후에, 물미역과 실파, 그리고 송송 썰어 놓은 청양고추 살짝 올려서 한 입에 쏘옥 집어넣는다.

 

이렇게 좋은 안주에 어찌 술이 한잔 들어가지 않을 수 있으리오... 한 잔, 두 잔, 그리고 세 잔... 그렇게 마시던 술의 양을 조절 못하고 난 또 술에 절고 말았다.

 

좋은 산 안내해 주고, 거기다 이렇게 맛난 음식까지 제공해주신 정산악회 운영진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