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산(內延山, 710m)

 

 

산행일 : ‘11. 7. 16(토)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송라면과 죽장면, 영덕군 남정면의 경계

산행코스 : 보경사주차장→보경사 일주문→임도→문수봉→삼지봉(정상)→향로봉(香爐峯, 929m)→시명리~청하골(12폭포)→보경사→주차장(산행시간 : 7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늘푸른산악회

 

 

특징 : 부드러운 능선, 폭포가 절경인 계곡, 거기다 산행을 마치고 조금만 더 다리품을 팔면 해수욕장이 널린 동해이다. 당연히 여름산행에 더 없이 좋은 산이다. 특히 청하골은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그렸을 정도로 빼어난 계곡미를 보여주므로 한번쯤은 꼭 찾아봐야할 곳이다.

 

 

 

산행들머리는 보경사 주차장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 톨게이트(tollgate)를 빠져나와 7번 국도(國道, 영덕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송라면사무소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얼마 안 있어 보경사 주차장에 닿게 된다. 주차장에서 내려 집단시설지구 사이를 지나 보경사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보경사 매표소(賣票所)에서 오른편 길로 접어든다. 매표소가 아닌 산령고개를 들머리로 잡은 것은 문화재관람료(文化財觀覽料)를 물지 않고 내연산에 오를 수 있어서이다. 시간에 쫓겨 둘러볼 여유도 없을 문화재에 돈을 내는 것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2,500원이라니...

 

 

산령마을로 이어지는 임도(林道)는 차(車)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시멘트 포장길, 울창한 소나무 숲을 뚫고 꽤나 길게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10분쯤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 없는 고개 하나를 넘게 된다. 고갯마루에 '고은사' 방향 푯말이 서 있다. 그 방향을 따라 왼쪽 길을 내려가면 꺾이는 지점을 만나게 되고, 그 곳을 지나 40~50m쯤 더 진행하면 왼쪽 산자락으로 조그마한 오솔길이 열려있는 것이 보인다.

 

 

 

 

왼쪽 산비탈을 오르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이후 산길은 산령전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갈림길까지 마루금을 따르면 된다. 대형 급수탱크와 텐트를 쳤던 흔적이 눈에 띄는 걸 보면, 이 능선은 어쩌면 송이버섯 채취(採取)지역이 아닌가 싶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편의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면 보경사에서 문수암을 거쳐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보경사에서 이곳까지는 약 0.8Km, 문화재관람료를 내지 않으려고 약 1Km가까이를 돌아온 것이다. 이곳에서 문수봉까지는 1.3Km가 남았다.

 

 

 

 

문수암 삼거리에서부터 길은 고와진다. 서너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걷기에 충분할 정도로 널따랗고, 거기에도 경사까지 완만하다. 등산로는 울창한 소나무로 덮여있다. 간혹 만나는 참나무는 양념... 하늘을 뒤덮은 숲으로 인해 조망은 없지만, 하늘을 가려주기 때문에 여름의 뙤약볕이 가려지는 반대급부(反對給付)도 있다. 문수봉을 오르지 않고 곧바로 삼지봉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만 서슴없이 문수봉으로 오른다. 모처럼 다시 찾은 내연산에서 한 곳이라도 더 둘러보고픈 마음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문수봉(622m)정상은 헬기장이다. 그러나 과연 헬기가 무사히 내려앉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비좁은 공간, 한쪽 귀퉁이에 정상표지석만 덩그러니 서 있다. 정상은 나무에 둘러싸인 탓에 조망이 일절 없다.(이정표 : 삼지봉 2.6Km/ 보경사 2Km)

 

 

정상에서 진달래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오솔길을 빠져나가면 문수봉을 들르지 않고 삼지봉으로 곧장 가는 널따란 등산로와 다시 만나게 된다. 삼지봉으로 향하는 길은 동네 뒷산같이 부담이 없는 능선 내지 비탈길이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운 길은 곳곳이 낙엽이 곱게 다져져 푹신푹신하기까지 하다.

 

 

 

 

 

삼지봉으로 향하다 보면 봉우리도 아닌데 삼지봉(내연산:710m)의 큰 입간판(立看板)이 서 있다. 입간판에는 문수봉과 향로봉, 북동대산 등 3곳으로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봉우리라서 삼지봉이라고 불린다고 적혀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원래의 삼지봉 정상이다. 이곳도 문수봉과 마찬가지로 조그만 정상표지석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로 인해 조망(眺望)이 없다.(이정표 : 문수봉 2.6Km/ 향로봉 2.6Km) 향로봉으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청하골로 내려가고 싶은 경우에는 조금 전 입간판이 서있던 곳으로 되돌아가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된다.

 

 

 

점심상을 차리는 산행대장을 앞질러 나가려는데 대장의 조언(助言) 한마디 ‘진행하다가 길이 나뉠 경우에는 무조건 능선을 탄다고 생각하고 진행해야한다’ 과연 얼마안가 두 갈래로 나뉘는 곳이 보인다. 산행대장의 말대로 직진(直進)인 사면(斜面)길(미결등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오른편 능선길으로 방향을 잡는다. 향로봉으로 가는 길도 한마디로 말해 곱다. 문수봉에서 걸었던 길보다는 좁고,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걷기에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다. 등산로 주변은 언제부터인지 참나무군락지(群落地)로 바뀌어 있고, 그 아래에는 곱디고운 풀들이 양탄자 같이 깔려있다.

 

 

 

 

향로봉 정상도 역시 헬기장이다. 그러나 삼지봉이나 문수봉보다는 훨씬 넓고, 정상표지석 또한 훨씬 큰 것을 보면, 세 봉우리 중에서 제일 높은 것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왼편으로 동해(東海)바다가 희미하게 조망되고 있다. 하산(下山)지점인 시명리로 방향을 잡으려고 이정표(里程標)를 보는데 이게 웬일일까? 삼지봉까지의 거리가 3.7Km란다. 삼지봉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에는 분명히 2.6Km로 적혀 있었는데 말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이정표를 보고 걷는 속도를 조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행정당국(行政當局)에서 조금만 더 신경 써 줄 것을 바래본다.

 

 

 

하산(下山)은 고메이등을 따라 시명리로 내려선다. 갑자기 고도(高度)를 떨어뜨리고 있는 등산로는 가파른 게 장난이 아니다. 물소리가 발아래에서 들려오건만 아무리 내려가도 계곡을 만날 수가 없다. 이정표에 적혀있던 시간(50분)이 거의 다 되어서야(40분) 오른편에 작은 개울이 보이는데, 벼랑을 타고 맑은 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다. 개울로 내려가 망설임 없이 물을 마시고 본다. 갈증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실컷 마시고서야 물통에 물을 채우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고메이등을 내려서면 시명(時明)마을이다. 시명마을은 세조의 서슬을 피해 숨어 살던 뼈대 있는 선비촌이란다. 밝은 시대를 기다리며 산(山)사람이 되었던 전설적인 마을인데 지금은 다 사라지고 허물어진 돌담만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추억을 더듬게 한다. 자시(子時: 밤 11-1시)가 되면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시명리(時鳴里)라고도 불리기도 한단다. 등산로는 시명리 이정표 앞의 개울을 건넌 후, 산의 허리를 따라 이어진다.

 

 

계곡 옆의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지루하게 이어지는 하산길은 험하다. 바위를 돌아내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예 바위를 잡고 위태롭게 내려서야할 때도 있다. 거기에다 등산로와 계곡이 너무 동떨어지게 이어지고 있어서, 그 유명하다는 폭포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등산로에서 짧게는 40~50m, 어떤 것은 100m이상을 걸어 내려갔다가 돌아와야 하니 들러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5시간 가까이 무더위와 싸우며 걸어온 내 발걸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기 때문이다.

 

 

 

계곡에 접근을 못하고 산허리를 따라 걷다가 너덜길 두어 곳을 지나면, 등산로는 계곡을 가로지르며 이어진다. 첫 번째는 바위를 건너 뛰어 무사히 통과했지만, 두 번째 계곡에서는 신발을 벗을 수밖에 없다. 상의를 벗은 채로 등목을 하고 있는 산행대장을 보고, 난 아예 알탕으로 누적된 피로를 풀어본다. 집사람은 탁족(濯足)으로 만족하고...

 

 

 

 

 

알탕으로 무더위를 날려버리고 난 후, 절벽의 자연 돌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청하골의 하이라이트인 관음폭포가 나타난다. 폭포의 옆 단애에는 굴들이 뚫려 있다. 관음폭포는 내연산 12폭포 중에서 아름답기로 제일이다. 물론 주관적이긴 하지만 폭포 아래로 마치 눈두덩처럼 뚫려 있는 관음굴과 그 뒤로 마치 빌딩처럼 버틴 절벽, 그리고 폭포 위를 잇는 구름다리가 한 폭의 동양화를 완성시키고 있다. 호쾌하게 떨어지는 폭포의 기세는 자못 웅장하기 그지없다. 범접하지 못할 카리스마는 덤으로 안고서... 여기에다 깎아지른 듯 서있는 절벽(絶壁)이 시야를 가득 채워주니, 한 폭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아닐 수 없다. 하긴 내연산은 진경산수화와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불리는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이 ‘경북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이곳에 올랐었고, 이날 둘러본 내연산의 절경을 ‘내연삼용추(內延三龍湫)’라는 연작 작품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연산폭포. 관음폭포 위 구름다리로 올라가면 우레(雨雷)와 같은 물소리가 먼저 반긴다. 30여m 높이서 산산이 부셔져 떨어지는 모습이 실로 장관이다. 더불어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소(沼)는 태초의 무게가 얼마나 광대한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수직으로 쏟아지는 여느 폭포와 달리 연산폭포는 바위를 타고 흐르는 와폭(臥瀑). 그러나 오늘은 장마 뒤 불어난 물 덕분으로 수직폭포처럼 보이고 있다. 구름다리 뒤의 암벽은 학이 깃든다는 학소대. 학소대와 비하대 사이로 연산폭포가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보현폭포는 숨겨져 있다. 폭포주변의 바위들은 청하골에서 제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란다.

 

 

제1폭인 상생폭포, ‘쌍둥이 폭포’라는 의미에서 ‘쌍폭(雙瀑)’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린다. 엊그제까지 내렸던 장마 덕분인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소리에 무더위가 다 날아갈 것 같다. 한여름에 무더위를 쫒는 것 중에 폭포수(瀑布水) 떨어지는 소리만한 게 또 어디 있으랴?

 

 

 

산행날머리는 보경사 주차장(원점회귀)

상생폭포를 지나면 왼편에는 수로(水路), 오른편에는 계곡을 끼고 나아가게 된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보경사가 있다. 폭포들이 끝나면 계곡은 작은 바위들과 바위 사이에 자갈들이 깔려있는 풍경으로 변한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날카로움은 다 없어지고 두루뭉술한 바위와 자갈들. 그렇게 물에 시달리며 떠내려 와서도 불평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물이 갖다 준 대로 놓여있다. 사람이 건들지만 않으면 불만 없이 처음 장소에 서 있는 나무들같이...

 

 

보경사(寶鏡寺), 불국사의 말사로 602년(진평왕 25)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경사원진국사비(보물 252)와 보경사부도(보물 430)가 있으며 조선 숙종의 친필 각판 및 5층석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