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래산(御來山, 1,064m)
산행일 : ‘11. 8. 5(토)
소재지 : 충북 단양군 영춘면, 경북 영주시 부석면,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의 경계
산행코스 : 어은동의 도경계 소공원→계곡→능선 안부삼거리→삼도봉→어래산→1014봉→회암령→화암봉(1,136m)→남대리→송내(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어래산은 조선 초기(朝鮮 初期)의 배극렴과 인연(因緣)이 깊은 산이다. 고려(高麗)의 멸망과 함께 이 산에 숨어든 배극렴을 신하로 맞아들이기 위하여 이성계가 세 번을 찾아왔다고 해서 어래산(御來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을 등지기 위해서는 심산유곡(深山幽谷)을 찾는 법이니 이곳도 당연히 심심(深深)산골일 것이 당연하다. 어래산은 산세(山勢)도 별로일뿐더러, 다른 산에 비해 내세울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그저 평범한 산이다. 이성계는 이곳을 세 번이나 찾았다지만, 이성계와 같이 특별한 것을 찾을 필요가 없는 보통사람들은 구태여 찾아올 이유가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곳이 충북과 경북, 그리고 강원도가 접경을 이루고 있는 의미가 있는 山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자체(地自體) 하나도 관심을 갖지 않는, 버려둔 산으로 남아있다.
▼ 산행들머리는 영춘면 의풍리 어은동마을의 도경계(道境界)에 있는 소공원(小公園)
38번 국도(國道/ 태백방향)의 영월에서 빠져나와 우선 남한강을 끼고 이어지는 88번 지방도(地方道/ 춘양면 방향)로 들어선다. 고씨동굴을 지나면서 도로는 남한강과 헤어지고 옥동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옥동천을 끼고 달리던 버스는 김삿갓면 와석리에서 88번 지방도를 떠나 오른편의 28번 지방도로 들어서더니 김삿갓계곡을 따라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도로를 비틀거리며 달리고 있다. 도로주변의 그림 같은 계곡에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다. 그들의 표정들이 행복하거나말거나 멀미에 약한 집사람의 얼굴은 벌써부터 죽을상이다. 28번 지방도는 935번 지방도를 만나면서 그 생명을 다하고, 935번 지방도(영주시 방향)를 따라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이내 어래산의 들머리인 영춘면 의풍리 어은동 마을에 이르게 된다.(* 참고로 중앙고속도로 북단양 I.C를 빠져나와 단양시가지를 우회(迂廻)한 후, 남한강줄기 옆으로 이어지는 59번 국도(國道/ 영월방향)와 522번 지방도(地方道/ 영춘면 방향), 935번 지방도(영주시 방향)를 이용해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산행들머리인 어은동마을은 충청북도의 의풍리와 경상북도의 남대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곳이다. 대개의 도경계(道境界)가 山의 능선(稜線)을 따라 이어지기에, 여기도 그러려니 했지만 의외로 이곳은 평지(平地)이다. 도로변(道路邊)에 세워진 경상북도라고 적힌 커다란 경계석이 아니라면 누구도 이곳이 도(道)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 도경계석의 뒤편에는 자그마한 공원(公園)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 핀 주황색 하늘나리들이 꽃망울을 활짝 열고 길손들을 맞이하고 있다. 산행은 공원의 맞은편에 있는 잘생긴 소나무 옆으로 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잘생긴 소나무는 이곳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에서 보호수(保護樹)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단다.
▼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農路)를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농로가 끝나면서 건너편 언덕에 우람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느티나무 뒤로 난 소로(小路)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묵밭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꺾어 들어서면 계곡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나타난다.
▼ 계곡은 그야말로 원시림(原始林) 그 자체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은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데, 거기다 한술 더 뜬 다래넝쿨들은 아예 어렵게 스며든 빛까지도 차단할 정도이다. 등산로는 계곡을 여러 번에 걸쳐 가로지르며 이어지는데, 계곡의 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건너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다.
▼ 녹색의 이끼가 가득한 계곡의 바위들은 많이 미끄럽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조심조심, 녹색의 계곡이 끝나면서 등산로는 능선을 향해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갈지(之)자를 만들어야만 겨우 경사(傾斜)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 무더운 여름 날씨에 경사까지 심하다보니 다들 힘들어 하는 기색들이 역역하다. 힘든 오르막길에서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이면 드디어 능선안부의 삼거리에 다다르게 된다. 왼편은 어은재에서 올라오는 길이고, 어래산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이 지났다.
▼ 주능선에서부터는 등산로는 뚜렷해지고 걷기에 편한 흙길이 이어진다. 작은 내리막에 긴 오르막, 그렇게 산길은 오르내림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이곳의 오르막길은 한마디로 예쁘다. 다시 말해 마음에 꼭 든다는 얘기이다. 간혹 만나는 봉우리들을 통과하지 않고도 정상으로 오를 수 있도록, 봉우리의 옆 사면(斜面)에 길을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 낙엽이 두텁게 쌓인 폭신폭신한 흙길, 걷기 좋은 길에서는 나도 몰래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오늘따라 집사람의 발걸음도 가벼운가 보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성큼성큼 걷고 있으니 말이다. 경사가 완만한 오르막길을 스스로 즐기며 걸다보면 어느덧 삼도봉(三道峰)이다. 충북과 강원도, 그리고 경상북도의 귀퉁이 한 자락씩을 붙잡고 있는 지점이란다. 삼도(三道)가 만나는 거창한 의미를 가졌건만 막상 도착한 봉우리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지리산과 민주지산에서 만나본 삼도봉을 연상했는데... 조그만 공터에는 정상표지석은 눈에 띄지 않고 어느 산악회에서 꽂아놓은 표지판만이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도 일절 없다.
▼ 삼도봉에서 경사가 거의 없는 능선을 따라 얼마간 오르면 헬기장이 보이고, 다시 조금 더 진행하면 이내 어래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어래산 정상은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헬기장이다. 한쪽 귀퉁이에 앙증맞도록 자그마한 정상표지석이 놓여있다. 영월군청에서 세워 놓은 것을 보면 그쪽 귀퉁이가 강원도의 끝자락인 모양이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의 머리너머로 소백산과 백두대간의 능선들이 허리가 잘린 채로 얼핏 나타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20분이 지났다.
▼ 간간히 떨어지는 빗방울에 쫓겨 회암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들 일색, 참나무 아래를 뚫고 지나가는 등산로는 대체로 경사가 완만(緩慢)하다. 발목을 감싸는 부드러운 촉감, 금잔디를 닮은 풀들이 수북하다. 참나무 일색이던 등산로 주변에 갑자기 소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얼마안가 다시 참나무가 제자리를 찾고 있다. 역시 이곳 어래산은 참나무들 천국이 맞나 보다. 이곳 회암령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송내계곡을 거쳐 송내마을에 이르게 된다. 회암봉은 전면(前面)의 능선을 따라 올라서야 한다. 시계를 보니 1시,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다. 하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인지라 집사람의 양해를 구하고 회암봉을 향해 맞은편 능선으로 향한다.
▼ 회암령 : 옛날 의상대사가 상동의 고승골(절골)에서 절(寺刹)을 짓고 있는데 까치 한 마리가 매일 날아와 대팻밥을 물어 가더란다. 그 까치의 행위를 의아스럽게 생각한 의상대사가 쫓아가 보았더니, 회암령을 넘어 부석사 자리에다 물어온 대팻밥을 쌓아 놓고 있었다나? 그래서 그 자리에다 새로운 절을 세웠으니, 그 절 이름이 부석사란다. 그러나 부석사에 가면 ‘선묘와 의상의 승화(昇華)된 사랑’을 테마로 한 창건설화(創建說話)가 따로 있으니, 이곳 회암령의 설화는 ‘믿거나 말거나’쯤으로 치부해도 좋을 듯 싶다.
▼ 회암봉으로 오르는 길은 초반에는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어래산과는 달리 집채만 한 바위들이 눈에 띈다. 바위를 붙잡고 오르거나, 바위를 에둘러 올라야할 정도로... 가파르게 오르던 등산로는 첫 봉우리를 지나면서 다시 능선을 만들고 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몇 개 지나면 순수한 흙산(肉山)으로 이루어진 회암봉에 오르게 된다.
▼ 역시 회암봉은 찾는 사람들이 드문 모양이다. 등산로 주변 참나무들의 굵기부터가 남다르다. 사람의 손때를 타지 않은 순수한 산길에서 나는 비릿한 산내음이 코끝을 따라 스치며 지나간다.
▼ 여기가 회암봉? 잡목에 둘러싸인 두세 평 남짓한 공터에는 아무 표식도 없다. 정상표지석은 물론 이정표 하나도, 하긴 오늘 산행하는 동안 단 한 개의 이정표도 구경할 수 없었다. 거기다 조망까지 없는 이곳에 왜 왔을까? 고생하며 억지로 끌려온 집사람의 눈초리도 곱지 않다. 회암봉에서 좌측으로 계속 진행하면 '선달산'인 백두대간으로 들어서게 되므로, 남대리로 내려가려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 화암봉을 뒤로 하고 남릉의 하산길로 들어서면 한동안은 등산로가 뚜렷하게 이어진다. 그러다 급격히 고도를 낮추면서 등산로도 따라서 희미해진다. 간간히 나타나는 집채만 한 바위들은 자못 위압(威壓)스럽다. 가도 가도 끝없는 내리막길,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은 손으로 붙잡을만한 나무들까지도 보기 힘들 정도이다. 행여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 부상을 입을 만큼 등산로는 험하다. ‘산을 다 내려온 후에 비가 와서 천만다행입니다.’ 하산 후에 일행들과 나눈 이야기와 같이, 행여 눈비라도 내릴 경우에는 이 길을 이용한 하산은 삼가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 지옥의 내리막길과 길게 싸우다가 힘에 겨울 때 즈음이면 능선은 완만해 지기 시작한다. 주변의 나무들도 소나무와 잣나무로 서서히 바뀌어 간다. 그러다가 이내 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임도(林道)가 보이고,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울창한 일본이깔나무(落葉松) 아래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이내 남대리에 닿게 된다.
▼ 산행날머리는 송내마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남대리, 도로변에는 때 이른 들국화들이 활짝 피어있다. 남대리가 산골인지라 가옥들도 수수한 시골집이려니했는데, 도로를 걸으면서 만난 집들은 다들 독특한 외양을 자랑하고 있다. 남대리에서 송내마을까지는 남대천을 왼편으로 낀 자동차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계곡쪽 도로변에는 잘지어진 팬션(vpension)들이 늘어서있고 계곡에는 물놀이 나온 사람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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